2025년 4월 마이리뷰 당선작

6점
의미 없이 사라짐을 사유한다 - 레삭매냐
<산 자들의 밤>
3월의 마지막 날, 다키구치 유쇼의 <산 자들의 밤>을 읽는다.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아 중고서점에서 지난주에 사서 읽기 시작했다. 분량이 적어서 금방 읽을 줄 알았으나,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라는 변수가 발생해서 좀 늦어졌다. 지난 12월에 고모님의 장례를 치러서 그런지 일본의 어느 마을에서 농사꾼으로 살아온 핫토리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모인 일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사실 너무 많은 인원들이 등장하다 보니 하나하나 기억할 수조차 없다. 우리 친척들 이름도 모르는 판에, 소설에 ...

10점
불안, 소외, 출구없음 - 인삼밭에그아낙네
<카프카, 카프카>
“100년 전 6월 3일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세상을 떠났다. 일찍이 소설가 존 업다이크는 카프카가 현대인의 의식 구조를 전형적으로 보여 주었다고 풀이했다. 그 전형성이란 세 가지 느낌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첫째, 정체불명이라서 달래지도 못하는 불안과 모멸의 감지. 둘째, 밑도 끝도 없이 난해한 세상이 개인의 발목을 잡는다는 감각. 셋째, 오랜 관습과 신앙의 외피로부터 발가벗겨진 나머지 모든 접촉에 아파하는 신경 조직처럼 과도하게 예민한 감수성 등이다.'카프카를 위하여' (p.21)2024년 카프카 사후 100주기 ...

8점
<마이너 필링스>˝소수적 감정˝ - 은하수
<마이너 필링스>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는 코로나 대확산 이전에도 있었고 작가도 누누이 말했듯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어져 왔으며 살아오는 내내 있었고, 인종주의가 전혀 새롭지도 않고 결코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뉴스로 접한 것은 아마도 코로나 대확산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확산으로 인하여 유럽에서 이미 인종주의와 아시아인 차별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고 곧 미국에서도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뉴스에서 빈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시아계 노인과 여성을 표적으로 삼고 자행된 폭행 - 침 뱉기, 괴롭...

10점
영국사 세계사책 추천: 영국의 여왕과 공주 - 피로
<영국의 여왕과 공주>
지금까지 영국사 관련 책은 꽤 읽었지만, 크게 감흥이 없었다. 내가 읽은 책들이 대게 영국의 남성 위주 정치, 역사, 문화에 관련된 책이었기 때문인 영향도 크다. 그러다보니 관심 자체가 떨어지고, 관심이 떨어지니 이해도가 떨어지는 악순환! 영국 왕실은 비슷한 이름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관심을 갖고 봐야만 헷갈리지 않는다. 헌데 관심이 없으니, 찰스 1세인지 찰스 2세인지, 메리 1세인지 메리 2세인지 알게 뭐람?​그런데! 그런 나에게!! 영국사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영국 왕실에 관심을 갖게 해준 세계사책이 나왔다. ...

10점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박현수 - flkurt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어느 물을 건너온 것인지 모르겠으나 마트에가보니 이국적인 과일들이 꽤 많아 보인다. 남편과 이것저것 눈으로 휘적거리다 “파파야 멜론이 이젠 한국에서도 나오나 봐?”했다. 지구가 어지간히 따뜻해지긴 했나 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겨우사먹을까 하던 과일이 3월에도 눈발이 거세게 날리는 이 곳에도 판다.이 코너를 돌고 저 코너를 살펴보니 해외에서만 볼 수 있던 간식들도 매대에 꽤 많이 진열되어 있다.굳이 비싼 비행기표를 살 필요가 있나,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싶으면 이 곳에서도 팔고있다. 내가읽은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

"나는 철없이 센비키야에 멜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이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서 깎아서 대접했지만 이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향취가 좋다고 미소 짓는 듯 표정이 한 번 더 움직였을 뿐 눈은 감겨진 채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가끔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고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 P106


10점
인생이라는 그래프 - 잭와일드
<즐거운 어른>
삶은 직선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그래프는 출생이라는 하나의 '점'으로 시작하여 사망이라는 '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점철된다. 저마다 다른 그래프이지만 삶은 그 누구에게도 예측가능한 형태의 직선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처음 병에 대한 진단을 받으셨을 때부터 투병하시던 기간 내내 나는 아버지가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다는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힘든 항암과정 속에서 나날이 체력적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도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아버지를 위해서도, 또 그 과정을 함께 이겨내야 하는 가족을 위...

10점
SF계의 혁명적 작품 - 인간실존에 대한 파국적 물음들 - 필리아
<모데란>
이 소설은 자신의 증오에 완전히 먹혀버렸거나, 적어도 그것에 그대로 사로잡힌 한 존재의 증오가 “차가운 바람처럼, 모든 것을 불사르는 화염처럼, 인간의 모든 시도와 포부를 녹여 없애는 독액을 질질 흘리는 산성 물질의 구체처럼 이야기 속”을 휘감아 돈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 낸 세계에 대한 불신, 그들이 자초한 조잡하고 기만적인 허구의 세계가 기어코 초래한 종말적 실체에 대한 이가 빠드득 갈리는 증오와 분노, 무한한 살육과 파괴가 지면을 흥건히 적시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선혈이 낭자한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모데란(Moderan...

8점
메리 셸리 작품집 - 꼬마요정
<강변의 조문객>
이 책은 아홉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에 <변신>은 고딕서가에서 출판한 책인 <공포, 집, 여성>에도 실린 이야기이다. <변신>은 돌아온 탕아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과 <나귀 가죽>이나 <카사노바의 귀향> 같은 이야기가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였다. 탕아와 사악한 난장이의 계약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저러나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약혼녀 줄리엣일텐데, 이런 18, 19세기 유럽 상황 너무 화가 났다. 표제작인 <강변의 조문객>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불이 나서...

10점
미움 이상의 사랑 : 대온실 수리 보고서 - 김금희 - 키치
<대온실 수리 보고서>
어릴 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쉬웠다.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선이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 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악.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재단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지금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일단 나 자신부터가 선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선이라는 확신은 더더욱 안 든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악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 사람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나에게는 보여주...

8점
빛과 멜로디 - 조해진 - Breeze
<빛과 멜로디>
#빛과멜로디 #조해진 #문학동네 소설을 읽는데 어쩐지 읽었던 것 같았다. 권은과 인터뷰, 사진작가 그리고 스노우볼과 카메라라는 단어의 조합이 익숙했다. 어쩌면 어떤 소설의 확장판이 아닐까. 블로그를 뒤졌더니 단편 「빛의 호위」였다. 작은 빛이 모이는 순간들을 그렸던 소설이 더 많은 빛으로 가득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눈을 내리는 장면을 본 승준이 권은의 인터뷰 장면을 떠올리며 소설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제가 알았던 사람이란 것을 몰랐지만 우연히 알게 되며 애틋함을 느낀다. 과거 권은의 ...

8점
‘늙어감’에 대한 새로운 접근 - yamoo
<타임 셸터>
2023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인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타임 셸터>를 읽었다. 처음 읽는 불가리아 소설. 불가리아 국민작가라는데, 이런 작가가 있었는지 나는 알 턱이 없었다. 번역되어 나오는 세계문학 전집에 불가리아 작가는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으니까. 다소 의외인 건 문학동네에서 자기네 세계문학 시리즈로 펴낸 게 아니라는 거. 왜 그런지 좀처럼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이름도 모르는 작가의 신간을 사서 읽는 건 모험에 가까운데, 일단 알라딘 문학 리뷰의 대가이신 뽈 님이 본 소설에 무려 별을...

8점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 희선
<연수>
이런 말은 처음으로 하는데, 예전에 운전 면허증을 땄다. 운전 면허증 땄지만, 운전은 하지 않아 그냥 있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없다. 운전하지 않아도 면허증은 갱신해야 한다. 그걸 하려면 사진도 찍어야 해서 갱신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갱신해뒀다면 더 나았으려나 하는 생각을 했구나. 멀리에 가야 하는 일이 있어서. 운전 면허증이 있었다면 차를 빌려서 가면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운전하는 것보다 남이 운전하는 차 타는 게 마음 편하기는 하겠지만. 택시를 오래 타는 게 참 싫었다. 차 냄새도 싫고 얼...

8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짓말. - 잠자냥
<계엄령>
K는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크게 놀란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좀 많이 받았고요.” 법정에서는 듣기 어려운 표현인 데다가 저런 문학적인 표현을 할 법한 사람이 아닌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생경하고 어이없어 K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저런 표현을 저 사람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일까. “그대 저어오오 내 마음은 호수요.” 또는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이런 시 구절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K는 그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더욱 놀란다. “이번 그 사건을 보면 실제 아...

10점
『호르몬 체인지」 돈만 있으면 호르몬을 통해 젊음도 사고파는 시대 근미래 소설, SF - sailor_moon
<호르몬 체인지>
최정화 소설/ 은행나무혐오의 시대다. 그것도 극단적인 혐오가 판치는 세상이다. 전 세계 유례없을 만큼 심각한 양극화, 이 모든 기저에는 '교육'이 한몫한다고 리뷰에서 수없이 말했다. 엘리트주의, 1등만 치켜세우는 세상, 돈이 제일인 세상이다. 이 모든 악이 은유되고 포장되어서 의문을 가지지 않는 무사유의 시대이기도 하다. 유튜브 세상, 숏폼에 의존하고 배달음식과 외적인 미모가 중요한 세상. 청소년 50%가 스마트폰 과의존 증상, 성인도 마찬가지. 특히 0~9세 아이들의 스마트폰 의존도는 심각하다. 7세부터 고시에 내몰려 유치원 마치...

10점
[마이리뷰] 시간의 계곡 - 곰돌이
<시간의 계곡>
먼저 떠나보낸 사랑하는 이를 향한 상실감을 가진 채, 함께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수 없는 허망함을 가슴에 묻고, 슬퍼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소란스럽지 않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견뎌내는 것이 애도의 과정이라면, 그 애도의 기간은 평생이지 않을까.무한한 슬픔을 달래도록 시간의 흐름이 내게 준 요령이란 애써 떠올려본들 눈물만 차오를 것 같은 기억들은 마른침 한번 꿀꺽 넘기고, 애처로움은 찾아낼수 없을만큼 행복했던 사소한 일상만을 얼른 떠올려 맺힌 눈물을 닦아내는 거.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거니까... 뭐 이렇게 하나마나한 생각하면서...

10점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테일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연쇄살식마인 나는 식물을 키우는 것에서 손을 떼기로 마음 먹었다. 마음은 사실 수년전에 먹었지만 그 와중에도 식물을 주겠다는 사람이나, 버려질 위기에 처한 식물을 데려오는 등 몇번의 연이 있어서 들였으나 작년 봄 즈음해서 꽤 오래 간신히 살려두었던 식물들과도 작별하고 정말 이제 더는 집안에 살아있는 식물은 없다. 길가다 보는 예쁜 꽃들만 예쁘다,하고 즐길 뿐이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마일로 작가의 '크레이지 가드너'를 보기 시작했다. 식덕인 마일로 작가의 '크레이지 가드너'를 보면 식물은 꺾어도 의지는 꺾이지 않는 애정과 노력이 보인...

10점
조선을 떠나며 - 거리의화가
<조선을 떠나며>
여러 번 이곳에서 언급했듯 나는 해방 전후 조선의 역사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동안 관련 책들을 읽어오면서 느끼는 것은 ‘이런 일이 있었다니(고?).’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매번 놀라움을 느낀다. 동시에 여전히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느끼게도 한다. 저자는 해방 전후 한반도에 있다가 일본으로 귀환한 자, 해외에 동원되었거나 해외에 거류하다가 한반도로 돌아온 자들에 대하여 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현재 일본 소피아 대학에서 일본인이나 외국인(유럽인)을 상대로 역사를 가르치...

8점
하나로 연결되는 - 자목련
<고독의 이야기들>
모든 글은 하나로 연결된다. 발터 벤야민의 『고독의 이야기들』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이다.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의 다른 글을 읽은 기억이 없다. 설사 읽었다 하더라도 기억에 남지 않았으니 읽지 않았다고 해야 맞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첫 느낌이 가장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 실린 마흔두 편의 짧은 글은 벤야민의 가장 근본적이고 내면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 책은 꿈과 몽상, 여행과 이동, 놀이와 교육론으로 3부로 나눠져있다. 『고독의 이야기들』의 표지부터 본문에서 만나는 벤야민이 사랑한 화가 파울 클레의 작품은 글을 더욱 풍성하...

8점
내 귀에 베토벤 바이러스 - cyrus
<왜 베토벤인가>
🙅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4점 ★★★★ A- 귓속에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 여러분! 귓속에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귀에 기생하는 ‘음악 바이러스’다. 귀 벌레(earworm)는 음악 바이러스의 매개체다. 귀 벌레는 사람들이 즐겨 듣는 노래에 달라붙어 있다. 달팽이관으로 들어간 귀 벌레는 음악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음악 바이러스가 뇌를 침투하면 머릿속에 멜로디가 계속 맴도는 증상이 일어난다.음악은 다양하고,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런 만큼 음악 바이러스의 종류도 많으며 질긴 생명력을 가졌...

10점
어떤 동사의 멸종 - bookholic
<어떤 동사의 멸종>
사랑하는 딸과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오늘 이야기할 책은 한승태 님의 <어떤 동사의 멸종>이라는 책이란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국어 관련 교양 서적인 줄 알았단다. ‘동사‘라는말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지. 사라진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 정도? 책소개를 읽어 보니, 뜻밖에도 노동 에세이라고 하는구나. 노동에세이라는 장르도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 이 책은 한승태 님이 출간한 세 번째 노동 에세이라고 하는구나. 미래 AI가 발전하면서 사라질 직업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되었어. 제목이 왜 ‘어떤 동사의 멸종’이냐면, AI...

상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럴 때가 가장 두려운 순간이다. 극도로 화가 난 고객이 갑자기 조용해졌을 때, 이런 상황은 상담사에게 이런 이미지로 다가온다. 두 사람이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인다. 침이 튀고 삿대질이 오간다. 분노에 눈이 뒤집힌 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상식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자신이 느낀 좌절감을 담아낼 수가 없다. 뒷일은 상관없다. 어떻게든 이 분노를 해소해야만 한다. 칼, 망치, 포트, 연필, 젓가락 무엇이든 상대를 한 방에 보내버릴 무기를 찾는다. 이 순간의 정적은 수화기 너머의 고객이 상담사에게 휘두를 언어적 흉기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는 뜻이다. - P55


10점
세상에 일어났던 적이 없던 일은 없으니 - Falstaff
<오래된 빛>
. 1945년생이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을유생 해방둥이 닭띠. 생일이 12월이라 아직 일흔아홉 살이다. 독후감을 쓰느라 위키피디아 검색을 해보니, 이이가 아일랜드 사람인 줄은 알았는데, 거기서도 웩스퍼드 출생이다. 웩스퍼드에서 아마 매년 오페라 축제가 열리지? 마이어베어의 <북극성>, 안톤 루빈스타인의 <악령> 등 자주 공연하지 않는 작품들을 무대에 올려 다양한 레퍼토리를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엔 실황 음반이 종종 나왔다. 아쉽게도 녹음/화면 저장 장치의 시대가 끝나 이젠 구경하기 힘들지만. 웩...

10점
셜리의 선택 아닌 선택 - 독서괭
<[세트] 셜리 1~2 세트 - 전2권>
샬럿 브론테가 <제인에어>의 성공 후 썼다는 <셜리>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제목과 달리 셜리가 등장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우선 보좌사제 3인방(개그담당)과 주임사제 헬스턴이 나오고, 이들은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정치적 소란의 근원지인 할로 공장으로 간다. 이제 공장주 로버트 무어, 매력적인 젊은 남성이 등장할 차례다. 그는 공장에 최신식 기계를 들여오면서 많은 사람을 실직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방인이며, 영국 북부의 요크셔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공장에서 일어난 소동을 해결하고 ...

슬픔과 두려움은 침묵 속에서 돌보면 거인족의 아기들처럼 자라나지요. (2권) - P266


10점
지구의 종말을 예견하는 두 과학자의 역작 - 벤투의스케치북
<지구의 삶과 죽음>
‘희귀한 지구’의 속편격인 ‘지구의 삶과 죽음’은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고생물학과 지구과학, 우주과학 학자인 피터 워드와 천문학자인 드널드 브라운 리이다. 과학자들이 자신감을 갖게 되고 행성들의 생애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며 두 저자는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이 이제 지구의 삶과 죽음을 추측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천문학, 지질학, 고생물학은 모두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바위, 화석, 망원경을 통해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은 모두 과거의 파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미래를 알려면 오늘날의...

8점
현실감 넘치는 현대 사회 이슈를 폭넓게 담아낸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 scott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꼬마 라일리가 13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겪게 되는 혼란과 자기 발견의 이야기가 중심인 '인사이드 아웃2'의 감정 컨트롤 센터에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한다.새롭게 감정컨트롤 센터에 들어 온 불안 , 당황 , 따분 , 부끄러운이 감정들이 센터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던 기쁨이 , 슬픔이 , 버럭이 , 까칠이 , 소심이들과 감정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더 이상 단순한 감정만으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인간은 하루에도 여러 번 기쁘기도 하다가, 슬픔을 느끼다가 , 당황 하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 어느 ...

10점
족쇄, 자유! - 그레이스
<죽음의 집의 기록>
“족쇄가 떨어졌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던 나의 마음속에서 ‘철커덕’ 하는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이 소설은 이 장면으로 기억하게 될 듯하다. 형기를 마치고 유형지를 떠나던 날 그의 다리와 손을 연결해 묶고 있던 사슬을 푸는 장면!“나는 그것을 들어올렸다……. 나는 그것을 손으로 들어 올려 마지막으로 한번 보고 싶었다.”“지금까지 그것들이 내 발에 있었다는 것이 새삼스레 놀라웠다.” 10년 동안 항상 몸에 붙어 있던 것이었음에도, 그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 물건은 그에게 생경한 외형과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족쇄 자체...

8점
‘공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 kinye91
<나쁜 동물의 탄생>
퀴즈로 시작하자. 이 중에서 유해동물이라고 낙인 찍히지 않은 동물은?(쥐, 뱀, 생쥐, 비둘기, 코끼리, 고양이, 코요테, 참새, 사슴, 곰)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쥐와 뱀은 망설이지 않고 유해동물로 꼽을 것이다. 그런데 사슴은? 우리나라에서 가끔 고라니가 출몰해서 밭작물을 먹어치우는 일들이 있으니, 고라니와 비슷한 사슴도 유해동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도시에서 엄청난 배설물을 낙하시키는 비둘기도? 생쥐는 쥐와 구분하지 않을 테니, 유해동물이고...참새? 예전에 곡물을 먹어치운다고 박멸해야 할 새로 규정한 적도 있으니 당연히 유해동...

10점
앙투아네트!! 그녀는 유죄인가? - 강나루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마리아테레지아의 막네딸,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고해요'라는 말을 했다는 잘못된 정보로 유명한 그녀이다. 혁명파들에게 그녀는 죽어야만하는 여성이다. 적국인 오스트리아의 여성이며, 구시대의 유물인 왕권에 너무도 가까이 있었기에 그녀는 추악한 여성이여야만했고, 민중의 이름으로 국민의 면도날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만했다. 그녀에 대한 측은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믿고 읽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펼쳤다. 14살! 요즘으로 말하면 중학생 나이에 정략...

8점
마지막 붉은 인간은 어떻게 될까 - 닷슈
<붉은 인간의 최후>
내가 어릴 적 음악 교과서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가 있었다. 노래를 배우며 그래도 막연히 내가 어른이 되면 통일 정도는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고 내가 상당히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여전히 분단이 유지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이러다 곧 분단 100년을 맞이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한국의 분단은 더둑 고착화되는 느낌이다. 통일이 될 것만 같던 시기도 있었다. 70년대의 남북 기본 합의서 작성 때가 그랬고, 90년대에 동구권이 붕괴했을때는 가장 기대감이 컸으며, 김일...

10점
나의 정원에서 모두의 정원까지 - 망고
<정원의 기쁨과 슬픔>
올리비아 랭의 책은 처음이다. 검색해 보니 번역서가 여러 권 나와 있던데 내 흥미를 끌 정도는 아니었는지 읽은 건 없고 제목만 조금 낯이 익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이 책은 일단 제목에 마음이 쏠렸다. 나는 정원 가꾸기에 꽤 관심이 있는데 무려 “정원의 기쁨과 슬픔”에 관한 책이라니...반가운 마음에 드디어 올리비아 랭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직접 정원을 가꾸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2020년 코로나 시기에 남편과 함께 마련한 집에 이사를 가면서 정원 생활을 하게 된다. 오랫...

10점
우리가 ‘개별성’을 잃는다면, 우리는/나는 누구인가? - 초란공
<우리들>
우리가 ‘개별성’을 잃는다면, 우리는/나는 누구인가?- 《우리들》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1996/2006) “매일 아침 육륜(六輪)의 정확성으로 동일한 시간, 동일한 분에 우리 - 수백만의 우리는 마치 한 사람처럼 기상한다.”(18) 29세기의 지구를 지배하는 ‘단일제국’의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매일 오전 7시에 단일제국 찬가를 합창하며 기상한다. 이들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집에서 살아가는 반면, ‘녹색의 벽’ 너머에는 불투명한 ‘고대관’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1] "나이며 동시에 내가 아니다."(8) - P8


8점
‘진짜‘ 어른으로 키운다는 건 - 구단씨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네 인생의 8할이 내 지분이야. 너는 내 프라이드고! 내 인생이고!”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금명은 첫사랑 영범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영범의 엄마에게 상처받는다. 영범과 만나는 내내 자기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영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영범과의 미래를 꿈꾸었던가 보다. 그러다가 영범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순간이 왔다. 영범 엄마의 저 말에, 자기 부모님이 더는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이별을 결심했다.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운 영범 엄마는 아들의 미래까지 정해주려고 한다. 마치 자신의 계획만이 정답인 것처럼,...

8점
아침 산행에서 - 꼼쥐
<바움가트너>
발아래 밟히는 흙은 적당히 부드러웠습니다. 봄비 치고는 꽤나 많은 양의 비가 내렸습니다. 새벽 산행. 하루를 시작하는 경건한 의식과도 같은 나의 오래된 이 습관은 비가 그친 다음날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청량한 공기와 더욱 선명해진 풍경, 그리고 낙엽 더미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와 코를 자극하는 솔향기. 아침을 깨우는 새의 울음소리는 어제보다 더욱 또렷했습니다. 이렇듯 매일매일의 다른 풍경과 일상이 모여 세월이 되고, 궁극적으로 어느 누군가의 삶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기온이 더 올라 아카시아 꽃의 향기가 ...

10점
삶은 여기에 정지해 있다 <등대로> - 새파랑
<등대로>
N25037"내일 날이 맑지 않더라도...내일은 또 다른 날이 될 거야."어느날 과거의 특정 순간의 기억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똑같은 장소에 다시 갈 때, 혹은 어떤 생각을 할 때, 혹은 음악을 들을 때 그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때 그랬었지, 그때 누군가를 좋아했었지, 그때 정말 기뻤거나 슬펐던 과거의 감정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이 순간을 애뜻하게 떠올릴 줄 알았을까? <등대로>를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등대로>는 큰 사건 없이 이야기가 진행된다. 줄거리를 보자면, 과거에 등대에 가려고 했으...

10점
[몸에 갇힌 사람들] 불안을 주입하는 세상에 좀 저항하며 살아보자 - 다락방
<몸에 갇힌 사람들>
나에게도 수치스러운 내 몸의 부분들이 있다. 수치라는 단어가 너무 강하다면 남들에게 내보이기 좀 꺼려지는 부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런데 내가 왜 남들에게 내보일 생각을 하는걸까? 내 몸은 나이고 그 부위는 그 부위대로 존재하는데. 돌이켜보면 내가 그곳을 타인에게 보이기에 꺼려진다,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건, 처음부터 그랬던게 아니었다. 그 부위가 그렇다면, 그 부위의 살의 분포도가, 냄새가, 색깔이, 모양이 그렇다면 그건 문제야, 라는걸 학습해 얻게된 결과이다. 눈돌리면 닿는 모든 곳에서 그것이 문제라고 말해서, 아 문제구나...

개조의 유혹은 우선 몸들을 인종에 따라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으로 분류하는데서 시작된다. 다음은 계급이다. 한때는 노동계급, 중간계급, 상류계급의 몸들이 서로 다르게 보고 움직이고 입고 말했다. - P61


10점
‘모성의 공동체 여성, 독립, 운동가‘ - 윤석남과 박현정의 빈틈을 채우는 다정한 기록 - 철학본색
<모성의 공동체>
'모성의 공동체 여성, 독립, 운동가'(연립서가) - 윤석남과 박현정의 빈틈을 채우는 다정한 기록0. 23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로 윤석남 선생님이 선정되었고, 대구미술관에서 지난해 말 <윤석남>전이 열렸다. 전시 공간의 절반은 윤석남 선생님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가, 나머지 절반 정도는 <핑크룸>, <손이 열개라도> 등 그녀의 초창기 스케치 작품부터 대표작까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전시 관람 전 <혼자 가는 미술관>에서 소개된 윤석남 선생님에 대한 글을 다시 ...

10점
너네 자랑할 거 있음 자랑해 나는 불안하지가 않어. - 반유행열반인
<불안>
-20250426 알랭드보통. 스스로 잘 웃지 못하고 늘 긴장해 있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그 긴장조차 사실은 심한 불안의 신체화였을 것이다. 불안에 관한 내 관심은 생각보다 오랜 것이었다. ’불안-불안과 공포의 뇌과학‘(조지프 르두) ’범불안장애의 인지행동치료‘(이건 뭐 대학 교재나 치료 상담 받는 사람 워크북 같은데 일단 사 둠) 같은 책을 5,6년 전에 사 놓고 아직도 안 봤다. 정작 불안 콜렉션 중에서는 보통의 이 책을 먼저 보게 되었다. 작년에 아나이스 닌의 삶의 일부를 다룬 만화책 ‘아나이스 닌-거짓의 바다에서’와 이 ...

10점
내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 - 바람돌이
<단 한 번의 삶>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마음은 뭔가 좀 특별하다. 원래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싶다는 것이고 가까워지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돌 사생 팬도 아닌데 작가 집 앞에 가서 무작정 커피나 한 잔 하자는 무례를 저지를 수는 없으니 그냥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하던 에세이가 나오면 우아하게 커피를 내려놓고, 그 다음은 전혀 우아하지 않게 커피를 홀짝이다가 어느 순간 소파에 드러누워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새겨듣듯 읽어나가는 것이다. 가장 편한 친구와 어딘가 놀러가서 맘껏 수다를 떠는...

8점
살아 있다는 고통과 무게. - 마크와트니
<오늘을 잡아라>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는 실패한 한 인간의 초상을 그리는 데 주저함이 없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사프디 형제의 영화 <언컷 젬스>가 떠올랐다. 주인공 윌헬름은 단지 사회적으로 낙오한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 침몰을 겪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한 인간의 인생 전체가 응축된다. 경제적 실패, 가족으로부터의 소외, 존재론적 고립을 통해, 물질주의 세계에서 현대인의 삶이 얼마나 쉽게 균열되고 붕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벨로는 이 몰락을 결코...

10점
삶이라는 것은 무수한 디테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 kangda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기록한다는 것사람이 아니더라도사람의 주변부를 이루던 것들어쩌면 중심이기도 했을 것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우리에게 남겨준 문제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서점에서 책 제목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원전 사태가 뉴스의 중심에서 사라진 뒤 해산물 먹거리 문제나 일본으로 여행갈 때 느끼는 우려 등등을 주로 생각하거나 표현했다. 때로 일본 정부가 사태에 대해 무책임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정도로 국가 권력에 대한 불신을 표하거나 조금 더 시야를 넓게 갖는다면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원전...

10점
[마이리뷰] 게르트루트 - 물감
<게르트루트>
4월은 여러 가지로 바빠서 도저히 독서할 새가 없었다. 개인적인 일도 있고 해서 답답해진 마음을 달래고자 하여 헤세를 집어 들었다. 항상 느끼지만 헤세의 작품은 영혼이 갈하고 메마를 때 읽어야 한다. 이번 작품도 많은 위로와 울림을 주었는데 아무리 봐도 제목은 다시 지어야 할 것 같다. 제목에 게르트루트는 주인공이 좋아한 여인의 이름인데, 막상 읽어보면 그녀와의 사랑보다도 음악을 통한 주인공의 성장과 번뇌에 더 맞춰져있단 말이다. 아무튼, 옛날 분들이 다 그렇지만 독일 작가들도 제목을 참 못 짓는 것 같다.​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