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 수기
크리스티네 라반트 지음, 임홍배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처음 읽은 크리스티네 라반트. 이 책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번역, 출판한 라반트인 모양이다. 유럽에서는 나름대로 이름을 떨쳐 국제 크리스티네 라반트 학회도 만들었고, 크리스티네 라반트 문학상도 제정되어 2016년부터 상을 주고 있다 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크리스티네 톤하우저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다음은 이이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

  크리스티네 라반트는 1915년 7월 오스트리아 카린티아의 라반트 계곡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광부 아버지와 삯바느질하는 어머니의 아홉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톤하우저Thonhauser이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하던 1948년에 이름을 자기가 태어난 고장인 라반트Lavant로 바꾸었다. 20세기 초의 오스트리아. 패전국 산골의 다산 가정 자녀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줄 수 없었겠지만, 이중에도 불행한 아이들은 그로 인해 치명적 질병을 앓아야 했다. 이 악마의 발톱이 크리스티네를 할퀴었다. 신생아는 훗날 유방으로 성장할 오른쪽 가슴과 목, 얼굴에 ‘음낭’ 또는 ‘왕의 악마’라고 불리는 질병, 마이코박테리아 경추 림프절염에 걸렸다. 사진처럼 목 부분에 만성적인 종괴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음낭처럼 생겼다고 ‘음낭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행스럽게 빈민 특별의료를 지원해 1924년, 아홉 살 때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종합병원에 입원, 안과과장 아돌프 프루처 박사를 만나는 행운을 얻어 거의 잃을 뻔한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와 그의 아내 폴라 프루처 여사가 크리스티네의 문학적 소질을 알아보아 릴케의 시집을 선물하는 것으로 시작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출판사를 알아봐 주는 등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이름이 아돌프라고 다 나쁜 종자만 있는 건 아니다. 원래 흔한 이름이었다가 전쟁 이후에 다시는 “아돌프”를 구경하지 못하는 운명을 맞았지만. 시력을 완치한 어린 크리스티네는 집까지 갈 교통비가 없어서 엄마와 함께 60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했던 모양이다. 이때 병원에 입원하고, 병동에 입원한 소녀들, 주임의사, 간호사, 기타 관리인, 그리고 엄마/언니와 함께 퇴원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이 책 《정신병동 수기》 제일 앞에 실린 <어린 아이>에 고스란히 나온다.

  대개 이 림프절염이 결핵부터 시작을 한다고. 그럴 확률이 청년일 경우는 대부분이고, 유소년일 경우엔 10퍼센트 미만이라지만 크리스티네는 1927년, 열두 살에 결핵까지 걸렸다. 혹은 결핵에 걸린 것을 발견했다. 다시 종합병원에 입원한 어린 크리스티네한테 병원은 고선량의 뢴트겐을 사용해 “실험적으로” 치료했는데, 이것에 효과를 얻었는지 결핵은 거의 완치, 림프절염도 놀랄만큼 좋아졌다. 다만 고선량을 사용한 후유증으로 오른쪽 가슴과 목, 얼굴에 화상을 입었고, 머리 부분이 온도변화에 유난히 민감한 성향을 지니게 됐다고. 그래서 이이는 이후 종종 머리에 스카프를 착용한 상태로 지냈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한 1930년대 초반, 직업교육을 받다가 중도에 그만 둔 크리스티네는 다시 부모의 비좁은 아파트로 돌아와 그림과 글쓰기에 전념했다. 작품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 거의 출판을 할 듯하다가 결국 거절을 당했을 때 이이는 이미 깊은 우울증 상태에 돌입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1935년에 수면제 서른 알을 한꺼번에 먹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사흘만에 다시 깨어나, 또다시 극빈층 의료지원 프로그램 혜택을 받아 6주 동안 정신병동에 입원하니, 이 때의 경험으로 쓴 작품이 이 책의 표제작인 <정신병동 수기>이다.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당이 유대인 멸절에 앞서 시행한 것이 아리안 족의 탁월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형이나 불구, 유색인과 유대인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었다. 내용을 알고 있는 크리스티네 입장에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1938년은 1년 안에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생을 접은 다음이었다. 이제 특별히 기댈 만한 의지가지가 없던 라반트는 더욱 불안에 휩싸여 숨죽이고 살다가 39년에 서른다섯 살 연상인 화가이자 지주출신인 하버니히씨와 결혼했다.

  특히 오스트리아 병합 후 불안 속에 살던 크리스티네 라반트는 전쟁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문학 창작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이의 여러 산문 또는 소설 작품은 스스로 발표하기를 꺼려해 결국 사후에 출간되기도 했는데, <정신병동 수기>도 이 범주에 든다. 아마 작가적 부끄러움이 그렇게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 책에서 표제작을 제일 먼저 읽었다. 생소한 시각과 생소한 문법을 사용하여 사물과 인물을 응시하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을 출판하는데 머뭇거렸을까? 실제 경험을 묘사한 작품이라 자신 스스로의 부끄러움이 많았으리라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이이는 1964년에 과부가 되고 9년을 더 살다가 1973년 6월, 쉰여덟 살 생일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뇌졸중으로 삶을 접었다.


  이이의 바이오그래피를 길게 쓴 것은, 책에 실린 세 작품 가운데 처음 두 편, <어린아이>와 <정신병동 수기>의 내용이 작가의 경험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번째 작품 <마귀 들린 아이>는 앞의 둘과 다른 내용, 서양 중세시절부터 내려오는 기형아이에 관한 미신을 아직도 믿는 시골 지역 이야기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체인즐링Changeling.

  아기가 기형이다. 이 책의 주인공 소녀 치타는 소리를 듣고 내용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말은 하지 못한다. 아마 선택적 실어증 같다. 아이들과 놀 때,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짧지만 한 문구를 우물우물 말하고는 한다. 북쪽의 다른 지역에서 흘러 들어온 렌츠라는 이름의 하인이 등장할 때까지는 그나마 어린아이 답게 천진하고, 귀여움도 받고, 벙어리라 은근히 더 배려도 받으면서 잘 지냈다.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일 터이니까 자연스럽기도 하다.

  렌츠가 체인즐링, 아기 바꾸기 이야기를 한다. 젖먹이 치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마귀가 나타나 치타의 몸에 자기 새끼를 씌우고, 치타는 마귀가 데리고 갔다는 거다. 유럽 지역마다 마귀가 아니라 집시일 경우도 있다. 하여간 렌츠는 마귀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진짜 치타를 다시 데려오려면 치타를 발가벗겨 놓고 외눈박이 하녀 엄마 부르가가 아주 힘껏, 모질게 아홉 번을 때려야 한단다. 너무 아파 마귀의 새끼가 치타의 몸에서 살 수 없어 자기 엄마인지 아빠인지 하여간 부모 마귀를 찾아간 다음에야 마귀가 진짜 치타를 치타의 몸에 보내줄 것이라고. 아니면 치타를 거의 숨이 넘어갈 때까지 물에 빠뜨려야 한다고. 하지만 엄마 부르가는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딸 치타에게 그런 모진 일을 할 수 없다. 완벽하게 그렇다. 엄마가 무슨 이유로 사는 데? 근데 어떻게 치타를 때리거나 흐르는 물에 빠뜨릴 수 있을까?

  그러나 소설작법 7장 2절. 불운한 예언이나 주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 기억하시지?

  처음에 <정신병동 수기>를 읽고, 별 다섯 만점, 했다. 이어서 <마귀 들린 아이>와 <어린아이>까지 다 읽은 다음에는 넷 반 정도. 하긴, 별점이 뭐가 중한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자 왕
마자 멩기스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Maaza Mengiste. 이름을 ‘마자’라고 쓰는 건 알겠는데, 성이 멩기스테? 이탈리아와 전쟁을 두 번 치룬 경험이 있어서 이탈리아 식 발음으로 ‘멩기스테‘라고 쓴 건가? 에티오피아의 공식 언어는 암하라어와 영어이다. 그러면 알파벳으로 표기한 Mengiste는 ‘멩기스트’ 혹은 ‘멩기스티’로 써야 할 것 같다. 하긴 뭐 어떻게 써도 상관없다. 문학동네가 우리나라 메이저 출판사 가운데 하나니까 멩기스테라고 쓴 이유가 있겠지.

  마자 멩기스테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1974년에 태어난 범띠 에티오피아계 미국인이다. 멩기스테가 출생한 1974년에 에티오피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적 있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폐위하고 혁명 후 본격적인 권력투쟁으로 접어든다. 3년이 지나고 최종적으로 멩기스투가 권력을 잡았는데, 혁명에 이은 권력투쟁은 거의 언제나 매파가 잡는 법이라, 멩기스투는 1977년에 집권을 한 후에 곧바로, 당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유행했던 대로 사회주의 군사 독재의 전범을 이룬다. 공식적으로는 전립선 수술 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도 멩기스투의 작품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인 모양이다. 진짜 그랬다는 건 아니다. 위키피디아 같은 곳에서도 그렇게 짐작한다고 쓰여 있다. 이때 마자 멩기스테 가족들도 어마 뜨거라 싶어서 더이상 아디스아바바에 머물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숨 넘어갈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껴 멩기스투 집권 다음 해인 1978년에 에티오피아를 탈출, 순서대로 나이지리아, 케냐,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마자 멩기스테가 공부를 곧잘 한 모양이다. 풀브라이트로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뉴욕대학으로 돌아와 문예창작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당연히 소설을 썼는데 첫 작품이 <사자의 시선 아래서 Beneath the Lion’s Gaze>이고 두번째 작품이 <그림자 왕>이다. 데뷔 후 두 작품 모두 부커상 최종심까지 올랐다가 장렬하게 바나나 껍질을 밟았다. <사자의 시선 아래에서>는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하지 않았다. 세번째 작품도 있는 모양이다.


  그림자 왕이 무엇일까? 누굴 일러 그림자 왕이라 하는 것일까?

  영화 <광해>를 떠올리시라. 두 명의 이병헌. 이 가운데 한 명은 진짜로 훗날 광해군이라 불릴 당시의 왕이고, 다른 한 명은 시장판에서 특정인을 흉내내는 잡배 광대 하선. 근데 광해가 병에 걸려 정사를 돌보지 못하게 되자 미자 아빠, 내시 역의 장광과 허균 역을 하는 류승룡이 하선을 발탁해 임시로 왕 역할을 하게 만든다. 이때 하선을 칭하기를, “그림자 왕.”

  훗날 광해군이라 불리는 조선의 15대 왕 역시 임진왜란 당시 자신의 아빠 선조가 한반도 서북 모서리 의주에 짱박혀 숨어 있을 때 왕을 대신해 동쪽 모서리 함경도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등장해 군사와 의병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다가 화살인지 조총인지 맞은 적 있다. 광해 자신도 한 시절에 그림자 왕이었을 수도 있으니, 세상 재미있지? 근데 한 번 그림자 왕을 했던 인물은 진짜 왕한테, 저것이 감히 나를 사칭했다는 말이지, 라는 질투심 유발죄로 시기가 끝나면 치도곤을 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에티오피아의 그림자 왕은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중에 나타났다고, 마자 멩기스테는 주장한다.

  1935 을해년. 일 두체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왕국군이 1896년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의 패전을 복수할 겸, 아프리카 식민지를 개척할 겸해서 비교도 되지 않을 막강한 화력을 동반해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다스리는 에티오피아 제국의 땅에 군화발을 디민다. 1차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확장을 염두에 두어 나름대로 그럴 듯한 무기체계와 훈련된 병력을 보유했었지만 1935년에는 전쟁을 할 수 없을 지경의 초라한 군사력만 지니고 있었다. 검은 제복의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심지어 항공기에서 독가스를 분사해 살아있는 모든 동물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하천과 우물 등 식수자원을 고갈시키며 보무당당,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향해 짓쳐 나갔다. 이에 화들짝 놀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황제궁에서 마지막으로 분당 78회전의 플라스틱 음반으로 에티오피아 공주와 적국인 이집트 장군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주제페 베르디의 <아이다>를 들은 다음에 열차를 타고 수도를 빠져나가 영국 바스로 도망한다. 조선의 광해 아빠 선조 닮았지?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정복한 이탈리아 군은 즉각 승전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식민지로 다스리겠다고 세계만방에 고한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아무리 국제연맹 총회 연단에 올라 세상이 놀랄만한 웅변술로 이탈리아의 무력 불법 침략과 독가스 살포 같은 비인도적 행위를 규탄해도 파시즘의 나라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일본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 또는 마이동풍.

  유럽식 전쟁술의 기준으로 보면 이탈리아가 전쟁에 이긴 건 분명한데, 그럼 이탈리아가 실질적으로 다스렸느냐,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다. 마자 멩기스테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고 하고, 당시 세계정세를 봐도 이탈리아에 그럴 여력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음. 독후감이 너무 길어지는군. 요점만 말하자.

  이탈리아의 실질 통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건 에티오피아 전역, 특히 북부지방을 근거로 하는 무장한 지방세력과 흩어진 정부군들이 꾸준히 국지적 게릴라전을 활발하게 전개해서 주요 대도시를 제외하고 이탈리아가 통치할 수 있는 지역이 거의 없었다. 1936년에 전쟁이 끝나자마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스페인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불과 3년 후에 있을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흉흉한 유럽 분위기에서 에티오피아에 전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황제가 도망가고 없는데 저항군이 누굴 의지해 전투를 벌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지. 그리하여 작품 중에서 지방 군벌인 키다네는 하녀이자 주인공이며 자신이 강간한 적이 있는 어린 처녀 히루트의 제안으로 ‘없음’이라는 뜻의 ‘미님’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병사들이 께름칙하게 생각하는 (일종의)나팔수가 황제와 우연히 거의 비슷한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하일레 셀라시에를 참칭, 황제 역할을 대행해 전장에 등장해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게 한다. 손톱에 새까맣게 때가 끼고, 맨발로 지내 굳은 발꿈치가 쩍쩍 갈라졌으며, 구멍 난 것을 꿰매지도 않은 남루한 옷을 입은 농부에게 황제의 복장을 입혀 그림자 왕으로 용맹한 에티오피아 민병들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왕, 황제의 옷을 입은 농부 미님이 주인공이 아니고 하녀 히루트가 주인공인 것은 작가 마자 멩기스테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그러했듯이,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도 여성들이 직접 총을 들고 전투에 임했다는 것을 세계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의 에티오피아는 반half봉건적 사회였던 모양이다. 히루트의 아버지 파실은 1차 전쟁에 뛰어들어 이탈리아 병사 다섯 명을 죽였다. 당시에 사용하던 구식 우지그라 소총을 아들이 있었으면 아들에게 물려줄 텐데 무남독녀 딸 히루트만 있어 딸에게 물려주면서 총기 사용법과 죽음을 위한 장비의 엄혹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가르쳐준다. 지역 군벌 체콜레 역시 1차 전쟁에 참여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있으며 작중 중요한 등장인물인 키다네의 아버지로, 젊은 시절에 주인공 히루트의 엄마이자 파실의 아내가 될 젊은 게테이를 강간한 적이 있었다. 게테이는 키다네보다 몇 살 위이지만 곧잘 키다네를 업어 키워 둘의 사이는 매우 가까웠다. 이후 세월이 흘러 파실과 게테이가 비슷한 시기에 죽자, 키다네는 게테이의 딸 히루트를 데려와 하녀로 고용한다. 근데 말이 하녀이지 거의 노예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주목. 이제 곧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발발해 남자들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자 여성들도 실제 전투에 참여해서 싸웠다는 어떤 의미에서 페미니즘 적 사실. 이것 가지고는 부족하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국을 위해 외세와 싸운 여성. 그리고? 1930년대 중반이며 황제는 에티오피아 땅이 아니라 런던의 온천 휴양도시 바스에서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으로 침략국 이탈리아의 국가대표 작곡가 주제페 베르디의 작품 <아이다>를 듣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패배와 왕 아모나스로의 죽음, 그리고 적국 이집트의 장군을 사랑해 자진해서 그와 함께 죽음을 선택하는 에티오피아 공주 이야기를. 그러면 작가는 패전한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와 기원전 에티오피아의 패전한 왕 아모나스로와 어떻게 관련을 맺어줄까를 궁리하는 대신, 제정 철폐 등의 근대적 정체, 이를 위한 여성의 노력을 발견하기 위해 더 힘을 쏟아야 했지 않았을까? 물론 작품의 프롤로그, 1974년 아디스아바바 철도역에서 여성 혁명군의 모습이 잠깐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주인공이 하녀 히루트와 진정한 주인공인 민병대원 모두는 사실 군벌 키다네와 그의 아내 아스테르의 노예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오직 대 이탈리아 항전에만 열을 올리고, 히루트는 자신을 강간한 키다네에 대한 복수의지에 불탈 뿐, 자신들의 계급과 해방, 도망간 황제의 폐위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다. 끊어진 목걸이처럼 히루트의 목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흉한 상처가 집안 안주인 아스테르가 휘두른 말채찍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아스테르는 히루트의 손에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적군이라서가 아니라 적대적인 계급의 잔인한 분자라서. 아, 물론 아스테르의 경우엔 저자와 마찬가지로 여성이기 때문에 각성을 하기는 한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히루트와 함께 이탈리아 군의 포로가 된 아스테르가 적군 병사들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자 우리의 주인공 히루트와 작가 마자 멩기스테는 이렇게 되뇐다.


  “저 사람에게 가게 해줘요. / 왜냐하면 세상에는 평생 생채기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자비가 있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역사와 귀족의 혈통을 지니고 태어난 이들을 위한 암묵적인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온전하게 유지되기 위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있고, 상처가 많은 소녀들은 그 상처를 만든 이들 속에서 제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p.478~479)


  이거 개소리 맞지? 이런 작품이 부커상 롱 리스트도 아니고 숏 리스트까지 올랐다는 건 뭐지? 혹시 국적이 에티오피아-미국 이중국적, 이 가운데서도 특히 에티오피아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별 걸 다 의심하게 만든다.

  정말 히루트가 전투에 총 들고 나가서 이탈리아 병사를 죽이느냐고? 그렇다. 치열한 전투 도중에 불쌍하게도 급똥이 와 야전 변소에서 아랫도리 훌렁 까고 쭈그려 앉은 장동건 같은 외모의 이탈리아 청년을 총 쏴서 죽인다. 그러고는 넋이 빠져 전장을 마구 달리다가 그대로 적군한테 포로로 잡히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책은 재미있다. 그래서 6백쪽을 훌쩍 넘는 장편 소설이지만 생각만큼 오래 걸리지 않는 착한 책이다. 시간 죽이기에 좋지만 생각 많은 사람들한테는 별로 영양가 없을 듯.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5-07-07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티오피아가 궁금해서 이 책 읽을까했는데 의욕 꺾입니다. ^^

Falstaff 2025-07-08 05:54   좋아요 0 | URL
읏, 우짜 댓글을 못봤을까요. ㅜㅜ
근현대 에티오피아를 알려면 이 책, 괜찮습니다. 등장하는 사건을 위키피디아 참고 하시면서 읽으시면, 제 경우로 말씀드립자면, 궁금한 게 많이 해소되더라고요. ^^
 
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처음 나왔을 때 한눈에 척 보고 희망도서 신청을 하려다가 아무래도 너무 올드 패션인 거 같아서 참았었다. 근데 책방 독자 서평도 괜찮고, 마침 도서관 서가에도 꽂혀 있기에 망설이지 않고 읽었다. 그리고 조금 고민.


  책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 전쟁 끝난 날이 언제라고? 그래. 1918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 책의 초판이 1920년이니까 실제로 작품의 시간적 공간은 1918년 겨울부터 19년까지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이래서 고민이 생긴다. 다만 이건 전적으로 잘못된 세월에 청춘을 소비한 내 경우에 국한하는 것이니까 다른 독자들과는 관계가 없다는 점을 말해야겠다. 무슨 고민인가 하면:


  작품의 주인공은 49세의 과부 레오니 롱발. 애칭 레아 롱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시절에 행복한 사교계 이력을 끝마쳤다. 질서와 아름다운 속옷과 레이스 달린 비단 잠옷, 그리고 잘 숙성된 와인을 곁들인 공들인 요리를 좋아한다. 여사님의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하우스와인은 파리의 극히 제한된 계층만 홀짝거릴 수 있는 명품으로 알려질 정도. 눈치로 보아하니 19세기까지 토지를 매개로 한 부르주아, 즉 영주 정도의 계급이었다가 세월이 흘러 부동산을 정리하고 대부분 채권과 증권에 투자하여 배당금과 이자, 그리고 증권 가격 상승에 따른 차액으로 전혀 노동할 필요 없는 최고위층 부르주아이다.

  여사님의 애인은 벌써 6년 동안 연애를 하고 있는데 지금 나이가 스물넷. 작품 뒤로 가면 여사님은 쉰, ‘셰리’ 즉 귀염둥이, 자기, 여보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셰리’라고 불리는 당대 최고 미남 프레드 플루도 플루 집안의 외동아들인데 이 집도 애초에 부자가 아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 최고 중의 최고 부르주아 집안이다. 심지어 자작이 플루 집안의 식객으로 머물고 남작도 이 사람들한테 껌벅 죽는 정도. 이 프레드, 즉 셰리가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셰리는 생긴 건 번드르르 하다. 어려서부터 가정부들이 돌려가며 키워 당연히 응석받이로 자라 이날 이때까지 세상만사 안하무인, 버르장머리 없는 청년으로 살았다. 일찍이 열일곱 살 때부터 금리생활자로 등극했는데, 공부를 못해 바칼로레아에 합격하지는 못했어도 셈 머리가 대단해서 마필, 보석, 자동차 등을 수집하고 두둑한 용돈을 써 댔지만 두 명의 자가용 운전수들의 장부를 꼼꼼히 살펴 운행거리와 연료비를 비교하며 닦달을 하는 등 좀스러운 부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전쟁 끝나고 바로 직후의 파리를 무대로 했으면서도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셰리>에서는 시민들 가운데 아주, 아주 극소수만 차지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사랑만 열나 묘사하고 있다. 작품은 레아의 침실에서 벌거벗은 셰리가 아침부터 응석부리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이어서 며칠 안 지나 결혼식 전날 다시 레아의 침실에 들르고, 결혼을 하고, 마흔아홉 살 레아 롱발 여사는 이에 상심해 남부 유럽 각지로 여행을 떠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셰리는 신혼생활에 당연히 있는 불편함과 레아를 향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앞에서 말한 가문의 식객인 자작이 머무는 호텔로 가서 몇 달 동안 방황하고, 뭐 이렇고 저렇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타령만 한다. 그러니까 일부 독자들이 주장하는 문학 속의 삶의 모습을 완전히 증발시킨 작품이어서 읽으면서 상당히 불편했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면 꼭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고 굳세게 배워서 그렇다. 카뮈가 쓴 <이방인>을 감동 깊게 읽었다는 것이 중요 죄목이었던 시절에 재수 없이 젊은 시절을 보낸 일단의 무리들은 대강 그러할 걸? 정오의 태양이 눈부시게 빛난다는 이유로 알제리의 식민지 청년을 권총을 쏴서 죽인다? 그걸 감명 깊게 읽었다고?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이런 시절이었다. 나도 하필이면 딱 그때, 지랄났다고 딱 그때 청춘시절을 보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이 누구였느냐 하면,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쓴 백범사상연구소 소장이자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쓴 백기완 선생. 지금 말은 이렇게 해도 당시 청년한테 이런 충고가 얼마나 새롭고, 획기적이고, 따당, 쇠망치로 대갈빡 한 대 맞은 것 같았는지. 눈이 다 번쩍 띄어지더라니까. 92년이던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이 양반한테 투표까지 했다는 거 아냐.

  이제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세월도 알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 알 거 같아서, 이까짓 소설책 한 권 읽으면서 구태여 그리 생각하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는 건 충분히 이해를 하는 시절이 왔건만, 콜레트의 <셰리>는 사실 너무하기는 너무 했다. 일반 시민들은 전후 망가진 경제,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 지내기가 무지하게 팍팍한 시절이었을 텐데, 등장인물은 부르주아, 귀족, 사교계 늙은 퇴물들, 일년 365일 로얄스위트룸에서 묵으며 유럽, 아메리카를 여행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한다. 아주 넌덜이가 나더라고.

  그거 보면 공화국 프랑스도 참 오른쪽으로 멀리 간 거 같다. 콜레트가 1954년에 죽었을 때 프랑스 역사상 여자로는 처음으로 국장을 치뤄주었다잖아? 어떻게 봐도 자유, 평등, 박애하고는 거리가 좀 있는 양반 같은데 말씀이야.



  * 3별 반 정도가 마땅.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이 2025-07-04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팔스타프님.
저같은 소인은 모두가 열광하는 책을 읽고 나서 아무도 안보는 독후감을 쓸 때조차 살짝 눈치를 보게 됩니다. 내가 멍청이라 이렇게 느낀 거 아냐? 하는 생각도 들고요 ㅋㅋㅋ
하여튼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서재의 다른 분들과 다른 이런 견해를 써주실 때마다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팔스타프님처럼 읽진 못하겠지만, 나도 눈치보지 말고 내 의견 그대로 읽고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글이네요.
저희 애기들은 한국 나이로 5살이 되니 많이 건강해 졌어요. 결석이 잦던 재작년 작년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정도예요. 저는 드디어 얼굴에 8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고요. 운좋게 흰머리는 안나네요. 이제 곧이겠지요.
가족들 모두 더운 여름 잘 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좋은 리뷰 감사드려요. 건강하세요!

Falstaff 2025-07-04 19:14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케이 님. 이렇게 삐딱한 독후감을 올려야 등장하시네요. ㅋㅋㅋㅋ (농담인 거 아시지요?)
오, 아이들이 벌써 다섯 살이군요. 애 많이 쓰셨어요. 8자 주름도 다 훈장이겠거니 생각하시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시려나요?
케이 님도 건강하게 여름 잘 보내셔요. 집안에 두루 행운이 가득.... 아오, 이런 추상명사 말고요, 올 여름엔 그저 로또 한 방 꽝! 맞으시기 바랍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5-07-04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소인 심지어 새 책으로 이거 구매해놨는뎁쇼...읽기 싫다...

Falstaff 2025-07-04 22:24   좋아요 1 | URL
반쌤도 참. 걍 읽으셔요. 쇤네야 주둥이만 깐 찐 아마추어인뎁쇼. -_-;;
 
환승 - 또 다른 삶으로 가는 여정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번이 세 번째 읽는 커스크로 읽은 책마다 페미니즘적 작품이라는 소개문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읽기로는 그냥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인데 굳이 페미니즘을 입에 올리는 것을 보니, 요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로 광고를 하면 책 판매에 도움이 되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던 것이 기억난다. <환승>도 비슷하다. 결혼을 하고 아들 둘 낳은 여성이 이혼하고 아들들과 함께 살다가 사정이 생겨 사실상 거주가 가능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지역자치회 소유 부동산을 구입해, 두세 주 동안 내부수리에 들어간다. 이 기간 동안 아들들은 아빠한테 보내고, 특히 아랫집에 사는 고약한 늙은 부부를 위시하여 몇몇 사람을 만나고 몇몇 문제도 생기는데 그런 몇몇을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이다. 특정 사건 또는 인물, ‘특정’이라고 해도 살면서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는 유별나지 않은 사건 또는 인물 이야기에서 따른 사건 또는 인물로, 이 사건 또는 인물에서 또다른 사건 또는 인물로 옮기는 것을 레이첼 커스크는 “환승transit”라고 썼다.

  내 경우엔 이 책이 레이첼 커스크의 “환승 3부작” 가운데 첫번째 책인 줄 알고 골라 읽었다. 근데 다 읽고 독후감을 쓰려 책 소개 같은 걸 훑어보니 이런, “윤곽 3부작” 가운데 두번째 책이란다. 맞다. 뉴욕 타임즈가 “21세기 최고의 책 100” 가운데 열네 번 째로 꼽은 것이 <환승>이 아니라 <윤곽Outline>이었네 그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다음에 읽을 레이첼은 <윤곽>으로 하면 되지 뭐.


  제일 먼저 소개하는 에피소드는 주인공이자 화자 ‘나’에게 점성술사가 보낸 메일 이야기이다. 흠. 점성술사, 즉 점쟁이의 예언이라고? 소설작법 7장 2절에 보면 “점쟁이와 노파의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 특히 불운이나 불행에 관한 예언은 더욱 그러하다.”라고 쓰여 있는 건 몇 번 이야기했다. 그러니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기도 전에 이거 뭐 시작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겠군, 긴장하게 만든다.

  점성술사가 보낸 메일은 말한다. ‘나’와 관련한 천궁에 아주 중요한 뭔가가 곧 통과할 예정인데, 그것이 ‘나’의 앞날에 아주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지금 ‘나’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고 지금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다가올 일에도 희망을 가질 수 없어 힘들어하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단다. 아울러 보태기를, ‘나’가 고통스러워하며 몇몇 질문을 떠올렸지만 아마도 아직 답을 찾지 못했을 거라니, 이게 얼마나 맞는 말인지.

  이 과정을 무난하게 헤쳐 나가려면 방법이 있는데 그건 아래 칸을 클릭하면 가르쳐 주겠다, 다만 소정의 요금을 내야 한다, 해서 화자 ‘나’는 기꺼이 많지 않은 돈을 지불하기로 결정했단다. 당연히 메일이 주장하는 바는 화자 ‘나’ 한 명에게만 적용되는 현상이 아니라 현대를 살고 있는 거의 모든 도시 인류가 겪는 공통의 현상이고, 아마도 이 메일을 받은 영어권의 무수한 영어 사용자들 역시 마찬가지 현상이며 따라서 똑 같은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 것이다. 이걸 알면서도 ‘나’는 돈을 지불한다. 당장 집 사는 일을 결정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렵고 정신 사나운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런던은 서울만큼 그럴까, 그랬을까 싶기는 하지만 부동산 열풍에 휩싸여 있어서 런던과 이웃한 위성 도시에 적당한 집을 구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던 때였던 모양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은 한정되어 있다. 부동산 중개인이 조언한다. 양식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의 허름한 집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불안한 동네의 좋은 집보다 훨씬 바람직하다고. 맞는 말이다. 특히 런던과 위성도시 같이 다양한 인종이 살고 치안이 불안정한 곳에서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둘을 키우려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고른 집이 위에서 말한 형편없는 상태의 지역자치회가 소유한 집. 전에 살던 사람은 가나 출신의 아프리칸 영국인으로 딸과 아들을 의사와 변호사로 키워 이제 자기들 책임을 벗어나 아름다운 가나로 돌아가 여생을 마칠 계획이다. 아랫집 노부부는 40여 년 전에 입주한 터줏대감으로 자치회와 직접 계약한 유일한 세대이기도 하다. 집 수리를 위하여 방문한 건축업자가 내부를 둘러보더니 말한다. 고생을 자초했다고. 집안에 벌레가 가득할 거란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변 다른 집과 똑같이 보이는 회색 벽돌로 지은 아담한 빅토리아식 3층집이건만 내부는 거의 폐허 상태로 차마 독후감에 옮기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게다가 사사건건 기고만장해 악담과 욕설을 쏟아내는 아랫집 고약한 늙은이들까지. 이래서 만나는 사람이 건축업자, 아마 인테리어 업자일 텐데 역자 김현우는 건축업자라고 옮기기를 고집한다. 그리고 아랫집 부부.


  길을 가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자 제러드를 발견한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15년 전, 아파트 꼭대기 층 그의 집에서 1년 남짓 동거했던 남자. 이날 지나치고 며칠 후에 초등학교 교복을 입은 어린 여자애와 손잡고 있을 때 다시 만난다. 그의 여덟 살 먹은 딸 클라라. 길가에 빅토리아풍 집들이 모인,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의 거주지역에서. 제러드는 몇 년째 클라라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학부모 역할을 수행한다. 이제는 엄마들과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처음에 아기 엄마들 모임에서 여자들이 자기에게 적대적이라 놀랐다고 한다. 캐나다 사람인 아내 다이앤은 일이 많은 사람이라 엄마 역할에 무관심하고, 엄마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반감을 드러낸다.

  이제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다이앤은 남편인 한 남자로 하여금 ①다른 사람을 돌보는 법, ②책임감을 가지는 법, 그리고 ③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고 그것을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제러드가 육아를 전담하게 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건 비평가들이 레이첼 커스크에게 페미니스트 작가라는 타이틀을 줄 수 있게 하는 다분히 여성주의적 시각에서의 돌봄, 책임감과 관계를 말한다. ‘남성’은 돌봄, 책임감, 관계가 결여된 인간을 가리키는 단어라는 뜻? 설마 아니겠지. 남자들은 이 책에서 말하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체득하기를 바라는 여성적 돌봄, 책임감, 관계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다른 의미에서 돌봄, 책임감, 관계의 형성과 유지 방법이 있다. 커스크의 이 책은 이런 남성성에 관해서는 침묵한다. 뭐 좋다. 그럴 수 있다. 의견 차이이고 커스크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비난할 생각은 없다. 조금 아쉽기는 해도.

  다만 남성이 여성의 이런 성향을 익히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여성이 남성의 돌봄, 책임감, 관계를 익히는 것도 매우 어렵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화자 ‘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다음에는 염색하러 간 미용실의 주인 남자 데일과 수습 미용사, 그리고 10대 초반의 소년 고객과 아이의 어머니. 그러면 점성술사의 예언은 어떻게 된 거냐고? 소설작법 7장 2절? 놀랍게도 이 책 속에서 7장 2절은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저 뒤쪽으로 가면 ‘나’가 점성술사의 메일을 한 번 더 거론하기는 해도.

  내가 그간 읽은 커스크의 작품과 사실 그리 특별하게 구별되는 작품은 아니다. <어느 도시 아가씨의 아주 우아한 시골생활>에서는 말 그대로 도시 아가씨가 아닌, 아직 이혼수속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도시 유부녀’가 갑자기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시골 마을로 내려가 오페어로 입주해 가정부가 되는 이야기이며, <브레드쇼 가족 변주곡>은 아내가 대학 학과장이 되자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두고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고 남는 시간에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또는 몰두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환승> 중에서 제러드 이야기는 이미 전에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커스크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독자에게 즐거움까지 줄 수준이다. 아쉬운 건 이런 옴니버스 식 모음은 읽고나서 얼마 되지 않아 금방 휘발되는 수가 많다는 것. 이 책은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전한 영혼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29
정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정찬. 한국전쟁 휴전서류에 서명도 하지 않았던 1953년,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그나마 모든 전쟁물자와 구호물품이 쏟아져 들어오던 항구도시 부산에서 출생해 부산고등학교, 서울대 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 입사해 월간지 기자로 활동하면서 소설을 쓴다. 1983년에 등단한 후 계속 정진해 1992년 소설집 《완전한 영혼》을 내니 그의 나이 서른아홉.

  우여곡절의 시기를 살았다. 유소년기 시절의 부패하고 무능했던 이승만을 거쳐 1992년까지 한 시절도 빠짐없이 정치군인이 지배하던 오오 대한민국, 우리 대한민국을 관통했다. 꼬박 40년을. 대학시절에는 유신반대를 외치며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도피하고, 검거되어 고문 끝에 동지들의 이름과 숨은 곳을 발설한 후 제법 길게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을 것이고, 작가보다 선배들의 경우에 1970년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에 큰 빚을 진 것처럼, 정찬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 피해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산다는 부채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소년시절 이후 30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정치군인에 의한 군부독재 속에서 호흡하던 작가는 월간 “신동아”를 발간하는 신문사 기자로 자신의 젊은 시절에 독재정권의 정보, 수사기관이 민간인 운동가들을 어떻게 탄압하고 고문했는지, 이에 대한 넓고 자세한 자료를 확보하고 열람하는 데 유리했을 것이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소년이었다는 배고픔의 기억과, 부패한 사회 속에서도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 경제규모가 점점 천민자본주의를 향해 맹렬하게 발진하는 모습도 목격하였을 것이니, 다른 건 몰라도, 고생은 했겠지만, 작가로의 소위 “문학적 재산”은 다른 세대보다 제법 빵빵했으리라.


  이 시대를 산 사람들은 비교적 편했다. 무조건 정부를 비판하면 곧바로 정의를 편드는 쪽에 선 것 같은 기분을 가질 수 있었으니. 사실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긴급조치 9호에 의하여 정부나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을 딱 한 번 했다는 죄목으로 무거운 벌을 받아 감옥에 갇힐 수 있었으니. 몇 번 말한 적 있듯이 나 또한 교사 한 명이 수업시간에 붙들려 나가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런 세월이었다.

  정찬 앞에 드디어 변화의 시기가 왔다. 1987년 선거. 시민저항으로 얻은 전두환 정권의 백기는 6.29 선언으로 이어져 오랜 세월을 거쳐 드디어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 기회가 온 것. 기억난다. 나는 선거권이 있었으나 그동안 한 번도 투표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직접 뽑을 때까지 모든 선거를 보이콧하고 있었던 거다. 정찬처럼 나 역시 1987년 선거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다. 유력 후보는 여당에서 노태우 후보, 갈라진 야당에서 김대중, 김영삼 후보. 나는 절망했다. 둘 중에 한 명만 나와라, 누가 됐든 찍겠다, 했는데 둘 다 나왔다. 그래서 이번 선거 역시 또다시 보이콧해버리고 말았다. 이건 내 경우이고 정찬은 당연한 선거 결과에 깊이 절망했던 거 같다.

  그래서 이이의 작품 속에는 민주화 운동 당시 정권에 의해 당한 고문, 고문이 인간성에 얼마나 심각한 상흔을 남기는지에 관한 이야기, 광주민주운동 당시 살아남은 피해자의 삶과, 관동지진 당시 현장에 있었던 1909년생 소년이 무정부주의자에서 일본 고문 기술자의 유일한 제자가 되는 과정과 이후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을 썼다.

  그리하여 인상깊었던 작품은 미친 20세기를 관통해 지나온 늙고 은퇴한 고문기술자가 그의 일본인 고문 스승의 죽음을 맞아 과거를 회상하고 장례식에 참가하고, 다시 돌아와 소회를 밝히는 중편소설 <얼음의 집>이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은 건 <얼음의 집>에 비하면 소품이랄 수 있는 <패랭이 꽃>.

  <패랭이 꽃>에서는 어린 아들과 용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안양을 거쳐 당시 우리나라 유일의 협궤열차인 수인선을 타고 가다가 다시 버스로 바닷길을 달려 갈 수 있었던 오이도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수인선 타 보셨나? 수원에서 아침 열차를 타면 왼쪽으로 끝도 없는 염전과 작은 포구가 줄지어 늘어서고, 생물 생선과 해산물, 해초 등이 든 세피아 색 다라를 들고 멀지 않은 시장으로 향하는 아주머니들. 어전, 야목, 고잔, 사리, 군자역을 지나 한 시간 너머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역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인천 송도역에 닿는다. 40년도 넘었다. 멀리 놀러 갔다가 후배들을 데리고 수원에 들러 이름을 잊은 극장에서 심야영화, 실비아 크리스텔이 타이틀 롤을 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단체관람한 후 수원역으로 걸어가 해장국 한 그릇씩 먹인 다음 수인선 경험도 시켜주던 나. 이만하면 괜찮은 휴학생 선배였던 것도 같은데….

  책을 읽는 것도 책 속에 독자의 경험이 들어 있으면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패랭이 꽃>이 제일 좋았다. 하지만 작가의 기억과 기대와는 달리 이미 다 개발해 갯가라고 해도 건조한 먼지와 플라스틱 폐품과 문짝 떨어진 쓰레기 냉장고만 나뒹구는 오이도. 그리고 보태지는 화자 ‘나’의 어린 시절 기억. 그 속에 단 하나 남은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는 아마도 전후 산으로 도피한 파르티잔. 살면서 계속된 경찰의 방문과, 누에 물레를 돌려 생활을 꾸리던 어머니, 그리고 기타 등등.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