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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왕
마자 멩기스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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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aza Mengiste. 이름을 ‘마자’라고 쓰는 건 알겠는데, 성이 멩기스테? 이탈리아와 전쟁을 두 번 치룬 경험이 있어서 이탈리아 식 발음으로 ‘멩기스테‘라고 쓴 건가? 에티오피아의 공식 언어는 암하라어와 영어이다. 그러면 알파벳으로 표기한 Mengiste는 ‘멩기스트’ 혹은 ‘멩기스티’로 써야 할 것 같다. 하긴 뭐 어떻게 써도 상관없다. 문학동네가 우리나라 메이저 출판사 가운데 하나니까 멩기스테라고 쓴 이유가 있겠지.
마자 멩기스테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1974년에 태어난 범띠 에티오피아계 미국인이다. 멩기스테가 출생한 1974년에 에티오피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적 있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폐위하고 혁명 후 본격적인 권력투쟁으로 접어든다. 3년이 지나고 최종적으로 멩기스투가 권력을 잡았는데, 혁명에 이은 권력투쟁은 거의 언제나 매파가 잡는 법이라, 멩기스투는 1977년에 집권을 한 후에 곧바로, 당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유행했던 대로 사회주의 군사 독재의 전범을 이룬다. 공식적으로는 전립선 수술 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도 멩기스투의 작품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인 모양이다. 진짜 그랬다는 건 아니다. 위키피디아 같은 곳에서도 그렇게 짐작한다고 쓰여 있다. 이때 마자 멩기스테 가족들도 어마 뜨거라 싶어서 더이상 아디스아바바에 머물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숨 넘어갈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껴 멩기스투 집권 다음 해인 1978년에 에티오피아를 탈출, 순서대로 나이지리아, 케냐,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마자 멩기스테가 공부를 곧잘 한 모양이다. 풀브라이트로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뉴욕대학으로 돌아와 문예창작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당연히 소설을 썼는데 첫 작품이 <사자의 시선 아래서 Beneath the Lion’s Gaze>이고 두번째 작품이 <그림자 왕>이다. 데뷔 후 두 작품 모두 부커상 최종심까지 올랐다가 장렬하게 바나나 껍질을 밟았다. <사자의 시선 아래에서>는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하지 않았다. 세번째 작품도 있는 모양이다.
그림자 왕이 무엇일까? 누굴 일러 그림자 왕이라 하는 것일까?
영화 <광해>를 떠올리시라. 두 명의 이병헌. 이 가운데 한 명은 진짜로 훗날 광해군이라 불릴 당시의 왕이고, 다른 한 명은 시장판에서 특정인을 흉내내는 잡배 광대 하선. 근데 광해가 병에 걸려 정사를 돌보지 못하게 되자 미자 아빠, 내시 역의 장광과 허균 역을 하는 류승룡이 하선을 발탁해 임시로 왕 역할을 하게 만든다. 이때 하선을 칭하기를, “그림자 왕.”
훗날 광해군이라 불리는 조선의 15대 왕 역시 임진왜란 당시 자신의 아빠 선조가 한반도 서북 모서리 의주에 짱박혀 숨어 있을 때 왕을 대신해 동쪽 모서리 함경도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등장해 군사와 의병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다가 화살인지 조총인지 맞은 적 있다. 광해 자신도 한 시절에 그림자 왕이었을 수도 있으니, 세상 재미있지? 근데 한 번 그림자 왕을 했던 인물은 진짜 왕한테, 저것이 감히 나를 사칭했다는 말이지, 라는 질투심 유발죄로 시기가 끝나면 치도곤을 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에티오피아의 그림자 왕은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중에 나타났다고, 마자 멩기스테는 주장한다.
1935 을해년. 일 두체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왕국군이 1896년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의 패전을 복수할 겸, 아프리카 식민지를 개척할 겸해서 비교도 되지 않을 막강한 화력을 동반해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다스리는 에티오피아 제국의 땅에 군화발을 디민다. 1차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확장을 염두에 두어 나름대로 그럴 듯한 무기체계와 훈련된 병력을 보유했었지만 1935년에는 전쟁을 할 수 없을 지경의 초라한 군사력만 지니고 있었다. 검은 제복의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심지어 항공기에서 독가스를 분사해 살아있는 모든 동물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하천과 우물 등 식수자원을 고갈시키며 보무당당,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향해 짓쳐 나갔다. 이에 화들짝 놀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황제궁에서 마지막으로 분당 78회전의 플라스틱 음반으로 에티오피아 공주와 적국인 이집트 장군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주제페 베르디의 <아이다>를 들은 다음에 열차를 타고 수도를 빠져나가 영국 바스로 도망한다. 조선의 광해 아빠 선조 닮았지?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정복한 이탈리아 군은 즉각 승전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식민지로 다스리겠다고 세계만방에 고한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아무리 국제연맹 총회 연단에 올라 세상이 놀랄만한 웅변술로 이탈리아의 무력 불법 침략과 독가스 살포 같은 비인도적 행위를 규탄해도 파시즘의 나라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일본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 또는 마이동풍.
유럽식 전쟁술의 기준으로 보면 이탈리아가 전쟁에 이긴 건 분명한데, 그럼 이탈리아가 실질적으로 다스렸느냐,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다. 마자 멩기스테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고 하고, 당시 세계정세를 봐도 이탈리아에 그럴 여력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음. 독후감이 너무 길어지는군. 요점만 말하자.
이탈리아의 실질 통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건 에티오피아 전역, 특히 북부지방을 근거로 하는 무장한 지방세력과 흩어진 정부군들이 꾸준히 국지적 게릴라전을 활발하게 전개해서 주요 대도시를 제외하고 이탈리아가 통치할 수 있는 지역이 거의 없었다. 1936년에 전쟁이 끝나자마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스페인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불과 3년 후에 있을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흉흉한 유럽 분위기에서 에티오피아에 전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황제가 도망가고 없는데 저항군이 누굴 의지해 전투를 벌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지. 그리하여 작품 중에서 지방 군벌인 키다네는 하녀이자 주인공이며 자신이 강간한 적이 있는 어린 처녀 히루트의 제안으로 ‘없음’이라는 뜻의 ‘미님’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병사들이 께름칙하게 생각하는 (일종의)나팔수가 황제와 우연히 거의 비슷한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하일레 셀라시에를 참칭, 황제 역할을 대행해 전장에 등장해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게 한다. 손톱에 새까맣게 때가 끼고, 맨발로 지내 굳은 발꿈치가 쩍쩍 갈라졌으며, 구멍 난 것을 꿰매지도 않은 남루한 옷을 입은 농부에게 황제의 복장을 입혀 그림자 왕으로 용맹한 에티오피아 민병들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왕, 황제의 옷을 입은 농부 미님이 주인공이 아니고 하녀 히루트가 주인공인 것은 작가 마자 멩기스테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그러했듯이,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도 여성들이 직접 총을 들고 전투에 임했다는 것을 세계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의 에티오피아는 반half봉건적 사회였던 모양이다. 히루트의 아버지 파실은 1차 전쟁에 뛰어들어 이탈리아 병사 다섯 명을 죽였다. 당시에 사용하던 구식 우지그라 소총을 아들이 있었으면 아들에게 물려줄 텐데 무남독녀 딸 히루트만 있어 딸에게 물려주면서 총기 사용법과 죽음을 위한 장비의 엄혹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가르쳐준다. 지역 군벌 체콜레 역시 1차 전쟁에 참여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있으며 작중 중요한 등장인물인 키다네의 아버지로, 젊은 시절에 주인공 히루트의 엄마이자 파실의 아내가 될 젊은 게테이를 강간한 적이 있었다. 게테이는 키다네보다 몇 살 위이지만 곧잘 키다네를 업어 키워 둘의 사이는 매우 가까웠다. 이후 세월이 흘러 파실과 게테이가 비슷한 시기에 죽자, 키다네는 게테이의 딸 히루트를 데려와 하녀로 고용한다. 근데 말이 하녀이지 거의 노예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주목. 이제 곧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발발해 남자들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자 여성들도 실제 전투에 참여해서 싸웠다는 어떤 의미에서 페미니즘 적 사실. 이것 가지고는 부족하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국을 위해 외세와 싸운 여성. 그리고? 1930년대 중반이며 황제는 에티오피아 땅이 아니라 런던의 온천 휴양도시 바스에서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으로 침략국 이탈리아의 국가대표 작곡가 주제페 베르디의 작품 <아이다>를 듣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패배와 왕 아모나스로의 죽음, 그리고 적국 이집트의 장군을 사랑해 자진해서 그와 함께 죽음을 선택하는 에티오피아 공주 이야기를. 그러면 작가는 패전한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와 기원전 에티오피아의 패전한 왕 아모나스로와 어떻게 관련을 맺어줄까를 궁리하는 대신, 제정 철폐 등의 근대적 정체, 이를 위한 여성의 노력을 발견하기 위해 더 힘을 쏟아야 했지 않았을까? 물론 작품의 프롤로그, 1974년 아디스아바바 철도역에서 여성 혁명군의 모습이 잠깐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주인공이 하녀 히루트와 진정한 주인공인 민병대원 모두는 사실 군벌 키다네와 그의 아내 아스테르의 노예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오직 대 이탈리아 항전에만 열을 올리고, 히루트는 자신을 강간한 키다네에 대한 복수의지에 불탈 뿐, 자신들의 계급과 해방, 도망간 황제의 폐위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다. 끊어진 목걸이처럼 히루트의 목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흉한 상처가 집안 안주인 아스테르가 휘두른 말채찍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아스테르는 히루트의 손에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적군이라서가 아니라 적대적인 계급의 잔인한 분자라서. 아, 물론 아스테르의 경우엔 저자와 마찬가지로 여성이기 때문에 각성을 하기는 한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히루트와 함께 이탈리아 군의 포로가 된 아스테르가 적군 병사들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자 우리의 주인공 히루트와 작가 마자 멩기스테는 이렇게 되뇐다.
“저 사람에게 가게 해줘요. / 왜냐하면 세상에는 평생 생채기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자비가 있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역사와 귀족의 혈통을 지니고 태어난 이들을 위한 암묵적인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온전하게 유지되기 위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있고, 상처가 많은 소녀들은 그 상처를 만든 이들 속에서 제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p.478~479)
이거 개소리 맞지? 이런 작품이 부커상 롱 리스트도 아니고 숏 리스트까지 올랐다는 건 뭐지? 혹시 국적이 에티오피아-미국 이중국적, 이 가운데서도 특히 에티오피아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별 걸 다 의심하게 만든다.
정말 히루트가 전투에 총 들고 나가서 이탈리아 병사를 죽이느냐고? 그렇다. 치열한 전투 도중에 불쌍하게도 급똥이 와 야전 변소에서 아랫도리 훌렁 까고 쭈그려 앉은 장동건 같은 외모의 이탈리아 청년을 총 쏴서 죽인다. 그러고는 넋이 빠져 전장을 마구 달리다가 그대로 적군한테 포로로 잡히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책은 재미있다. 그래서 6백쪽을 훌쩍 넘는 장편 소설이지만 생각만큼 오래 걸리지 않는 착한 책이다. 시간 죽이기에 좋지만 생각 많은 사람들한테는 별로 영양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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