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인
마리 은디아이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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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2009년에 파리 2구에 있는 드루앙 레스토랑에서 수여하는 공쿠르 상과 소액의 상금 10유로(16,220원)를 받아 전세계 잡지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공쿠르상은 세계에서 상금을 주는 문학상 가운데 가장 적은 돈을 수상자한테 주는 걸로 유명하다. 대신 최고의 프랑스 문학상이라 공쿠르 상만 받았다 하면 단박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스토리가 그럴 듯하면 영화로 만들어져 금세 돈벼락을 맞을 수 있어, 프랑스 소설가한테는 이 상 받는 것이 일생의 로망이기도 하다. 한 작가에 딱 한 번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유일하게 두 번 받은 작가가 있었으니 로맹 가리. 이 심술궂은 작자가 에밀 아자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자기 앞의 생>을 출간해 1956년에 이어 75년에 한 번 더 공쿠르 상을 받았다. 이런 염병할 작자가 있나. 누군가한테는 필생의 소원일 텐데, 1975년이 ‘누군가’에게 절호의 기회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지.

  마리 은디아이는 프랑스 누아르Loiret의 피티비에에서 세네갈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1967년에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첫째는 65년에 세상을 본 아들 팝 은디아이. 국가교육청소년부 장관을 거쳐 2023년부터 유럽 평의회 프랑스 대사로 재직중인 역사가 겸 정치인이다. 마리 은디아이가 첫 돌을 넘기던 해에 세네갈 아버지는 처자식을 몽땅 버리고 세네갈로 돌아가 호적등본 상 가족의 인연을 탁 끊어버렸다. 이후 홀어머니와 함께 설마 평생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유년기까지는 함께 살았다고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다. 그래도 백인 홀엄마가 “1960년대에” 유색인 남매를 이렇게 둘 다 번듯하게 키웠으니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세 여인>을 읽어보니 마리 은디아이의 다른 작품은 굳이 찾아 읽을 거 같지 않아 이 정도만 가비얍게 소개하고 만다. 이 가운데 제일 중요한 소개는 은디아이가 돌 지나자마자 세네갈로 돌아간 아버지.

  작품 속 세 여인 가운데 첫번째 여자의 이름은 노라. 서른여덟 살이다. 결혼을 했었는지 모르겠고, 프랑스에서는 중요하지도 않지만, 딸 뤼시와 함께 살았던 변호사이다. 얼마전부터 법학을 공부하는 남자 자콥과 그의 딸 그레트를 자기 집에 데려와 주민등록등본에 올리지 않은 가족으로 함께 살고 있다. 다행히 뤼시와 그레트는 사이가 좋아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함께 잘 논다. 아이들이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라나. 다만 자콥이 이제는 법학 공부에도 관심이 없고, 따라서 변호사가 되고자 한다는 말도 허풍선으로 밝혀져 암만해도 노라가 버는 돈으로 모두 먹고 살아야 할 형편인 것 같다. 가정의 권력은 경제력에서 나오는 법이니, 이 가족의 왕초는 당연히 노라이다. 두번째 공동으로 아이들, 그리고 제일 꼬붕이 자콥이며,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개는 키우지 않는다는 것. 노라는 거의 모든 교육과정을 “총을 들고 건설하는 보람에” 사느라고 죽을 똥을 싸는 향토예비군처럼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졸업을 했고, 어렵게 변호사 자격을 땄으며, 넓지는 않지만 집값에 관한 한 전세계적인 악명을 향유하고 있는 파리에서 30년 할부로 아파트를 구입한 데 대하여 도처에 자부심을 은밀하게 뿜어대는 중이다.

  그런데 무려 30년 전에 순서대로 딸-딸-아들을 키우고 있다가 다섯 살 난 아들만 홀딱 데리고, 사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세네갈로 잠적해버린 아버지한테, 급하게 세네갈로 오라고, 꼭 와야 한다는 연락이 온 거였다. 학교에 다니는 뤼시도 있고, 파리 직장에서 해야 할 일도 있어서, 아몰랑! 단칼에 거절했건만, 딱 한 번만 방문해달라고 끈질기게 부탁, 아니, 간청하는 아버지를 끝까지 모른 척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노라는 세네갈 공항에서 내려, 아버지가 보낸 구형 검정 메르세데스를 타고 저택에 도착하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30년 전에 세네갈로 돌아온 아버지는 해변가의 휴양 리조트를 프랑스인에게 인수받아 이를 성공적으로 리모델링해 대단한 성공을 이룬 왕년의 부자였다. 휴양 리조트를 넘길 수밖에 없었던 전 사장은 유럽에서도 소설에 나오는 아버지들이 주로 완벽하게 더럽고 난폭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동업하던 세네갈 흑인 남자를 때려 눕힌 다음 커다란 트럭을 앞뒤로 몰아 나가 떨어진 동업자의 해골을 바퀴로 짓이겨 죽여버렸다. 자신은 감옥에 수감된 상태에서 당시 세네갈에선 뇌물로 안 되는 일이 없어 어떻게 권총을 감옥에 반입해 총구를 입에 물고 장하게 방아쇠를 당겨 숟가락 놨고. 전 사장의 처자식은 다시 프랑스 보르도 지방으로 돌아가 살다가 아들 뤼디가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세네갈로 가서 고등학교 교사를 했다. 이때 같은 학교에서 불문학을 가르치던 현지인 교사 판타와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는데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러 해고를 당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사는 게 2부. 그래서 좀 자세하게 쓰는 거다.

  세네갈에서도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가는 법. 노라의 아버지 사업도 날이 갈수록 시들기 시작해 견디다 못해 지금은 리조트 전부를 팔아서 생긴 현금으로 어떻게 살고 있다. 그동안 아들이자 노라의 사랑하는 동생인, 정말 남매간의 우애는 아주 좋은 상태인데, 아버지의 아들 소니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정치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번 방문이 노라의 첫 세네갈 나들이는 아니다. 열두 살 때부터 몇 번 온 적이 있다. 한 번은 날이 가면 갈수록 가난해지는 가정을 견디기 어려워 어머니는 미용실 헤어디자이너를 때려 치우고 조금 비싼 매춘부를 하기 시작했었나보다. 이때 나이도 좀 많고 경력이 있지만 다정다감한 은행 지점장을 만나 처음으로 엄마, 아저씨, 그리고 엄마의 두 딸이 세네갈을 방문한 적도 있다. 당시엔 아버지도 세네갈에서 잘 나갈 때라, 엄마가 결혼해 가정을 다시 꾸렸다는 것에 안심을 해 지점장 아저씨와 친밀하도 위풍당당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만나는 아버지는 과거의 오만과 당당하던 풍채는 완전히 사라지고, 늘 깔끔하고 광채나던 의복과 신발은 간데없이, 길고 누런 발톱을 깎지도 않은 채 샌들을 신은 반바지 차림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불룩 나온 배를 숨기지도 않은 차림이었다. 한 마디로 이제는 쇠락해도 많이 맛이 간 상태에 처했다는 것. 이 아버지는 이제 막 도착한 노라를 식탁으로 안내해서 하인 겸 메르세데스 운전수 마세크와 하녀 카디 뎀바에게 일러 방문객을 대하는 세네갈인의 전통인지 뻑적지근하게 저녁상을 차리게 하고 오직 먹는 일에만 집중한다.

  이 이야기에는 완전하게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하녀 카디 뎀바는 책의 3부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해서 임신을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수태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남편이 죽고 만다. 시댁으로 들어가 대바구니 짜서 내다 파는 일을 했지만 시누이들과 비교해 전혀 생산성도 없고 영업도 하지 못해 하루는 종이쪽지에 주소를 써 주면서 유럽의 사촌, 앞에서 말한 고등학교 불문학 교사 판타를 찾아가라고 돈 몇 푼을 쥐어주고 쫓아버린다. 그래서 역시 갖은 고생을 하며 프랑스로 장정을 떠나는 이야기가 3부이다.


  아버지는 둘째 딸 노라를 왜 와달라고 그렇게 간청했을까? 집에 와서 보니까 아버지가 최근에 낳았다는 딸 쌍둥이는 있는데, 명색이 아버지이면서 딸 쌍둥이의 이름도 모르고, 쌍둥이의 엄마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나, 이럴 수가. 알고 보니, 그렇게도 점잖고, 말없고, 내성적이고, 절대 과격하지 않은 서른다섯 살 먹은 동생 소니가 쌍둥이 엄마이자 아버지의 새 아내인 여자와 수년 동안 간통을 했으며, 틀림없이 쌍둥이가 소니의 딸임에도, 의붓어머니가 자신한테 싫증을 내는 것 같아서, 나일론 빨래줄로 목을 졸라 죽여버렸다는 거다. 이렇게 증언을 하고, 한 점의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최종 심판을 앞두고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범죄의 질이 하도 좋지 않아 세네갈에서는 어떤 변호사도 사건을 수임하지 않으려 해, 아버지는 언어가 같은 프랑스에서 변호사를 하는 노라에게 소니의 변호를 맡기려 한 것. 그리하여 세네갈의 비위생적인 유치장에서 소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니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어떠한 증명도 하지 않으며 이렇게 말한다.

  “누나,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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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5-05-22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일천한 독서 경험에 의하면...

뭔 상 받았다고 해서 마냥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특히 그 중에서도 공쿠르상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5-05-22 14:52   좋아요 1 | URL
저도 동감입니다. 공쿠르상 받은 책 중에 나랑 안 맞는거 제일 많음요. ^^

Falstaff 2025-05-22 15:59   좋아요 1 | URL
저도 오랜 세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21세기 들어와서 많이 읽을 만? 보통 독자들한테 어필할 만한? 하여간 그렇더라고요.
특히 21세기로 접어들어서 영어의 제국주의적 언어 지배도 특별히 생각하는 시절입니다.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4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박종소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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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드밀라 울리츠카야가 1943년생인데, 이 또래 가운데, 특히 여성 중에서 소비에트 연방 치하에는 꼭꼭 펜을 숨겼다가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에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제법 있다. 옛 소련 같은 체제, 지금의 북한 같은 곳에서 글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미술행위를 하는 건 정말 재미없을 거 같다. 그러느니 차라리 그냥 보통 생활인으로 살았다가 해빙이 오자 봇물이 터지듯 자신의 예술혼을 만개한 사람들. 울리츠카야는 소련 시절에 결혼해 아들 둘 낳은 후에 유대인 극장에 들어가 문학 감독을 하며 각본, 평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희곡이라고 하지 않고 각본으로 표기한 것을 보니까 드라마투르그 비슷한 일을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전적으로 추측이다. 연표를 보면 훗날 희곡을 썼다고 해 이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영화 시나리오일 수도 있다. 책 뒤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연표 상으로는, 1992년 마흔아홉 살 때 중편소설 <소네치카>가 처음 발표한 작품이다. <소네치카>로 러시아 부커 상 최종후보에 오르고, 96년에 프랑스 메디치 상, 98년에 이탈리아 주세페 아체르비 상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2012년에 작품집 《소네치카》로 비채 출판사에서 출간해 표제작과 <스페이드의 여왕>,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을 합해 한 권으로 팔았던 것을 2023년에 문학동네에서 공역자 두 명으로 구분해 두 권으로 개정판을 냈다. 이게 미워서 책 읽기를 미루었다가 이번에 읽어봤는데, 아이 씨, 진작 읽을 것을. 평점을 줘도 그게 얄미워 별 한 개 정도는 까려고 생각했어도, 특히 <소네치카> 문장이 얼마나 예쁜지 도무지 깔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어서 <부하라의 뜰>을 빼고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울리츠카야는 죄다 읽는 셈이다. <소네치카>는 처음 발표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나름대로 유명세를 탄 21세기 책들과는, 글쎄 아마추어가 이렇게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표현, 즉 이야기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렇게 느꼈다.

  책에는 표제작과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이 실렸다. <소네치카>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소네치카는 ‘소냐’의 애칭이다. 러시아 소설 읽으려면 한 이름 갖고 무수하게 다른 애칭으로, 또 자주 무지하게 긴 이름으로 쓰는 걸 참아야 한다. 이 각오 없이 러시아 소설 읽으려면 뇌에 땀날 수도 있고, 읽다가 때려치우기 십상이다.

  소네치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아이들은 문자를 누가 가르쳐주어 배우는 게 아니다. 아무리 복잡하게 생긴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에 살아도 “아주” 어린 아이가 책을 읽는 경우가 제법 있다. 내가 말하는 건 “아주” 어린 아이. 그냥 아이들은 많으니까 혹시 내 아이가 영재 아닐까, 이런 생각하기 없기. “아주” 어렸을 때 글자를 저절로 익힌 아이들이 그렇다고 천재는 아니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고, 아마도 평생 따라다닌다. 공부 머리가 그렇다는 거다. 공부머리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니까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

  어려서부터 책만 팠으니 그러면 체형이 어떻게 됐을까? 게다가 소네치카가 유대인이라면. 당연히 서양배pear 모양으로 부푼 코, 넓은 어깨, 길고 가느다란 체격, 마른 다리, 납작한 엉덩이, 이런 모든 것과 달리 일찍 성숙한 큰 여인네의 가슴. 한 마디로 생긴 건 별볼일 없다는 거. 아, 못생긴 건 아니다. 그냥 보통 수준이겠지.

  일곱 살때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쉼 없이 책을 읽었다. 마치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소냐는 인쇄된 글자에 너무 매료되고 공감해 실제 사람 사는 것보다 활자 속의 인생이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운 것처럼 생각했을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러시아 내전 시기 때 시계공방을 그만둔 아버지와 함께 저 멀리, 스베르틀롭스크로 피난을 갔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싱어 재봉틀로 빈궁한 시절에 어울리는 옷을 만들어 팔아 살아서 세상에 가장 무서운 인간이 세무조사원이었단다.

  도서정보 전문학교를 졸업한 소냐는 스베르들롭스크의 오랜 도서관 지하 보관실에서 일 하기 시작해 몇 년 후에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냐한테는 도서관 지하실이 유일한 희망의 공간이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 이날은 1층 대출과에 직원이 휴가를 낸 바람에 소냐가 대신 앉아 있었다. 운명은 그렇게 온다. 우연히. 소냐 앞에 나타난 남자. 로베르트 빅토르비치. 역시 유대인이다. 비쩍 마르고 키가 작은 남자. 그가 프랑스어로 된 도서목록이 없느냐고 묻는다. 없다. 있었는데 찾는 이가 없어서 흐지부지 망실됐다. 대신 소냐는 로베르트를 데리고 서유럽 서고로 가고, 그곳에서 프랑스 장서를 발견한 로베르트는 경탄을 하며 전율한다. 뒤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소냐가 조금 반한 것도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이날 남자는 소냐에게 세 권을 대출해달라고 하고, 대출증을 만들려 했지만 그의 거주지가 이곳으로 되어 있지 않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로베르트는 며칠 안에 반드시 가져오겠다고 맹세를 하고, 소냐는 아무 이유도 없이 맹세를 믿고 책을 빌려준다.

  이틀 후, 신문지에 싼 책을 반납하러 온 로베르트. 신문지 포장을 벗기고 소냐가 발견한 것은 거친 종이에 부드러운 갈색과 세피아 색 물감으로 그린 소냐의 초상화였다. 소냐가 보기에는 자기 같지 않다. 하지만 누가 그림을 본다면 틀림없이 소냐를 그렸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로베르트 빅토르비치는 이제 마흔일곱 살 더하기 3일. 1930년대 초에 프랑스에서 귀국한 전설의 사나이다. 전설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전설이 아니라 파리의 전설이라는 뜻이다. 갑자기 사라진 구 러시아 시대의 화가. “불행한 이들 속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불렸던 그의 작품에 대하여 훗날 미국의 평론가들은 각종 매체에 멀쩡하게 살아있는 로베르트더러 이제 죽어 사라진 한 세월의 대가로 극찬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의 그림 값은 천장을 뚫어버린다. 그러니 대단한 화가인 모양이다. 전쟁 당시에 그는 실제 삶과 상관없이 점령된 파리의 죽어가는 갤러리들 속에서 비방과 망각을 다 견디고 죽음과 부활을 겪게 되는, 이상한 그림들과 함께 구전적인 삶으로만 살고 있었다. 소련에 입국하자마자 스탈린 시대가 줄창 그러했듯이 교화 수용소에서 5년형을 마치고 보호관찰하에 변방 중의 변방, 스베르틀롭스크의 공장관리부에서 화가로 일하고 있었다. 당연히 생산전투를 독려하는 그림 같은 걸 그렸겠지.

  그가 소냐에게 초상화를 건네며 말한다.

  “이건 제 결혼 선물입니다. 사실 당신에게 청혼하러 왔어요.”

  이미 열네 살에 짝사랑했던 동급생 비티카 스타로스틴, 잔인한 오네긴에게 독한 거절의 말을 들어 소냐로부터 사랑의 불꽃이 떠나버린 것으로 여기고 살았기 때문에 소냐의 대답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

  “뭐예요, 지금 농담하시는 거예요?”

  스타로스틴의 유령이 찾아왔던 거였다. 하지만 노쇠한 로베르트 빅토르비치와 태생적으로 허약한 소네치카는 피란 생활의 지극한 곤궁 속에서 새 삶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바로 두 주일 후에.


  결혼을 했으니 당연히 임신도 하고, 그것도 산달을 꽉 채웠을 때, 로베르트는 모스크바로 가게 된다. 소냐도 함께 갔다. 위험한 상태이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혼자 보낼 수 없고 남편과 따로 살 수도 없어서 남편과 함께 의자가 다 뜯어진 열차에 올랐다. 딸 타냐, 2킬로그램의 타네치카를 낳아 튼튼하고, 키도 크고 비쩍 말랐지만 별로 아프지도 않게 잘 키웠다. 타냐는 책을 읽지 않았다. 공부도 하지 않았다. 다른 것에 소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 그런 거지. 부모가 바라는대로 되는 자식이 몇이나 되랴?

  이렇게 세월이 갔다. 타네치카에게 친구가 생기고, 불쌍한 고아로 성장한 친구 야샤에게 자기 집에 와서 머물라 권하는 소네치카. 애초에 정조관념이 없고, 고아로 홀로 성장하기 위하여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편한 방법을 잘 알고 있던 야샤는 이 가족에게 휘청거리는 충격파를 몰고 오지만, 우리의 소네치카는 이것도 다 사는 것이라고, 그냥 그냥 넘어간다. 어쩌면 그것,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더 지혜로웠던 것일 수도 있을까? 모르겠다.

  정작 내가 넘어간 건 스토리가 아니라 문장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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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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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에 프랑스 생제르맹앙레Saint-Germain-en-Laye에서 출생한 소설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장바티스트 앙드레아가 영화 관련일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이이가 세계적인 영화제가 열리는 칸에서 자랐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파리로 올라가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한 다음에 다시 영화계에 뛰어들어 감독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다가 소설이 더 매력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쓰기에 전념해 <나의 여왕>으로 데뷔, 첫 작품부터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이후 오늘 독후감을 쓰는 네 번째 소설 <그녀를 지키다>로 2023년에 모든 프랑스 소설가의 로망인 공쿠르 상을 받기에 이른다.

  앙드레아의 모계가 이탈리아 출신이고, 알제리에 살던 프랑스, 그리스, 발레아레스 혈통도 섞인 모양이다. 왜 혈통을 말하느냐 하면, <그녀를 지키다>의 주인공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약칭 ‘미모’가 프랑스 출신 이탈리아 사람이며 작품의 대부분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986년 가을, 피에몬테의 피르키리아노 산꼭대기에 있는 사크레 디 산미켈레 수도원. 죽음의 침상을 둘러싸고 서른한 명의 수도사가 수도원에서 유일하게 서원하지 않고 40년을 머물렀다가 이제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려 하는 140센티미터의 왜소증 환자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의 영면을 기다리고 있다. 이 죽어가는 노인의 차마 꺼지지 못하는 영혼은 자신의 일생을 회상한다. 자신이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기억하고 싶은, 그러나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지극한 비밀, 은밀한, 그러나 정결했던 사랑 이야기를.


  미모는 1904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미모를 낳기 15년 전에 제노바 리구리아를 떠나 프랑스에서 터를 잡은 조각공방의 마이스터였다. 1889년의 프랑스는 벨에포크 시절. 물자는 풍부하고 전쟁도 없는 태평시대. 저택과 고급주택, 그리고 성당은 자신의 건물과 분수대와 정원을 꾸미기 위하여 조각 공방에 잔뜩 주문을 해대던 시절이라 비탈리아니 집안은 이탈리아 이민 가족과 달리 전혀 어렵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정부는 아버지의 출생증명을 10년 젊게 기록하고는 징병 대상에 이름을 올려 버렸다. 아버지는 전사했다.

  갑자기 견디기 힘들 정도의 궁핍을 맞게 된 어머니 안토넬라는 미모를 토리노에서 역시 작은 조각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삼촌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1916년 10월 미모는 아버지의 동료 가운데 마침 이탈리아로 귀국하는 술주정뱅이 카르모네와 함께 기차를 타고 토리노로 갔으나, 알베르토 삼촌은 미모를 난쟁이라는 이유로 도제로 받아주지 않으려 한다. 카르모네는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이탈리아 식 의리는 있어서(떼어먹지 않고), 어머니가 미모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했던 봉투의 돈 전부를 삼촌에게 주어 도제로 삼게 한다. 이 돈은 아버지가 번 돈 가운에 남아 있던 거의 모든 재산을 현금으로 만들어 이탈리아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미모의 앞날을 위한 것이었다.

  제네바 항구에서 잘 나가는 매춘부의 아들인 알베르토는 당연스레 미모의 돈을 손에 넣고 단 한 푼도 미모에게 주지 않는다. 말만 도제일 뿐 조각과 관련한 일은 전혀 알려주려 하지도 않고 잡일만 노예 수준으로 하게 만들고. 당연히 보수도 전혀 없다. 일찌감치 조각에 관한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미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조각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철학을 익혀, 삼촌이 조각가로서 완벽하게 3류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겨우 열두 살의 소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찾을 수는 없었다. 삼촌은 미모와 지내면서 미모가 간혹 보여주는 번쩍이는 조각가로서의 재능에 심각하게 질투하고, 못난 사람들이 종종 그러하듯 더욱 미모를 괴롭히게 된다. 이들의 악연은 조금도 풀리지 않은 상태로 훗날 삼촌이 제네바 매춘부 출신으로 큰 부자가 된 어머니의 재산을 상속받아 떠날 때까지 이어진다.


  토리노에서 상황이 나빠지자 삼촌은 미모를 데리고 리구리아의 시골 피에트라달바에 있는 공방을 거의 헐값에 인수해 떠난다. 피에트라달바는 오르시니 후작 가문과 부르주아 감발레 가문이 적대적으로 이웃하며 이들 주변으로 농민들이 거주한다. 고도가 높고 샘이 산재한 지역으로 유명한 산피에트로 델레 라크리메 성당이 있으며 갓 부임한 파드레 돈 안셀모가 주임신부이다. 파드레 안셀모가 자랑하는 성당의 보물은 17세기에 이름없는 장인이 만든 조각품 <피에타>. 십자가 아래에서 죽은 자식을 안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어머니는 성 마리아, 죽은 자식은 그리스도이다. <피에타>의 죽은 그리스도는 대개 고귀한 모습을 한 미남 소년으로, 어머니는 역시 고결한 외모의 젊은 여성으로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곳에 가서 우연히 돈 안셀모 신부와 이야기하게 된 미모. 신부가 조각을 극찬한다. 미모가 처음엔 수긍하다가 신부가 너무 오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솔직한 품평을 해버린다.

  “이건 엉터리예요. 어머니는 슬퍼 보이지 않아요. 예수의 팔이 너무 길고, 외투 자락도 저렇게 길게 내려오면 성모님이 걷다가 발에 걸릴 거예요.”

  미모는 천부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해부학적 균형에 입각해 볼 줄 아는 시각을 지녔다. 게다가 작품을 놓을 장소에 따라 인체나 사물의 비율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도 아버지한테 배웠다. 한스 홀바인이 그린 <대사들> 아랫부분에 심하게 찌그러진 시계 기억하시지? 계단에 걸 목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계단 아래에서 보면 정확하게 시계가 보이지만 정면으로 그림을 보면 찌그러진 원반 같이 보일 뿐인 거. 이런 장면은 뒤에서 미모가 피렌체의 필리포 메티 공방에서 일할 때 수석 도제의 조각을 품평하며 적나라하게 나온다. 지붕 꼭대기에 설치할 조각은 사람들이 건물 아래에서 올려다보기 때문에 머리 쪽을 더 과장해야 정상 비율로 보이는 현상.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그 유명한 작품 <다비드> 상도 이 때문에 해부학적 균형이 맞지 않게 조각한 건 더욱 유명하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 성 베드로 성당


  숱한 조각가들이 도전한 작품이 바로 <피에타>. 미모가 눈물의 성 피에트로 성당 신부에게 솔직한 품평을 하니, 신부는 미모가 교만의 죄와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다고 가볍게 야단친다. 성모는 기품이지 추함이 아니라면서. 이때 독자는 한방에 알아차린다. 미모가 언젠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피에타>를 조각할 것을. 이것을 위해 미모의 이름을 미켈란젤로라고 지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불멸의 <피에타>를 조각했다. 반면에 독자는 결코 미리 알 수 없는 것이 ‘미모’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의 또다른 걸착 <피에타>는 부오나로티를 능가하지만 결코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독특한 가치가 있어서 저 먼먼 산꼭대기 성당의 지하 보관소에 안치하고 있다는 것. 정말이냐고? 순진하기는.

  작품 속 미모의 <피에타>를 본 레너드 B. 윌리엄스 박사는 이렇게 썼다.

  “비탈리아니는 자신의 선배(부오나로티)와는 다르게 그리스도에게 아름다움을 부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사후에 발생한 젖산 가득한 육신의 경직 속에서 십자가형의 후유증이 드러난다. (중략) 얼굴의 안도감, 입술에 걸린 희미한 미소와의 대조, 비탈리아니는 아름다움을 부여하려고 애쓰지 않지만, 매끈한 뺨이 임종의 고통으로 움푹 패고, 어머니가 방금 위무의 손길로 두 눈을 감긴 그리스도는 의도와 상관없이 아름답다. (중략) 이러한 대조는 눈부신 마리아의 얼굴에서 절정에 달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다정한 미소로 내려다보는데, 기이하게도 두려움과 고뇌는 찾아볼 길 없어…(후략)” (p. 310~311)

  사후 경직이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라니. 정말 놀랄 만하지 않나? 만일 이런 <피에타> 상이 있어서 세상의 한 큰 성당에 안치한다면 숱한 예술가들은 열광을 할지라도, 더 많은 수의 가톨릭 신자들은 조각가를 화형에 처하라고 요구하면서 바티칸 광장에 집결할 지도 모른다. 바티칸 여우들도 이런 가능성을 충분히 감안하여 산 꼭대기 수도원의 지하 보관실에 묻어 버린 것이겠지.

  그런데 내가 더 놀란 것은 미모가 훗날 교황 비오12세가 될 파첼리 추기경이 주문한 <천국의 열쇠를받는 성 베드로> 상이었다. 미오는 최후의 만찬을 한 날, 밤이 새기 전에 그리스도를 세 번 모른다고 한 그 양반이며, 최초의 교황이며, 로마에서 도망가려다가 십자가를 다시 지고 로마로 들어가는 그리스도한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물었다가 다시 로마로 가서 스스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임을 당한 사람을 조각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베드로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염 기른 혈색 좋은 현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남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듯이, 살면서 고통스러워했으니까, 1년 내내 세계의 온갖 교회에서 그가 저지른 배신에 관한 성경 구절을 읽어 댔으니, 아무도 그가 아픈 과거를 잊고 살게 놔두지 않았다. 또한 그는 다른 성 베드로들이 보여주는 그런 대가연하는 표정으로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지도 않았다.” (p.334)

  그래서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어떻게 받느냐 하면,

  “열쇠는 그것을 받으려고 벌린 베드로의 경직된 손과 땅바닥 사이 어딘가의 허공에 걸려 있었다. (중략) 그 효과는 강렬했다. 하느님은 자신의 교회를 올릴 반석으로 자신의 아들을 세 번 부인했던 남자를 골랐다. (중략) 내가 창조한 성 베드로는 법열에 빠진 성인, 이제 은퇴한 건강하고 권태로 가득한 종교인이 아니라, 자신의 임무 앞에서, 그의 늙은 두 손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물건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안 그래도 두 손은 그걸 막 놓쳐 버렸다. 어쩌면 혹시 열쇠가 깨지는 건 아닐까, 자신이 벼락을 맞는 것은 아닐까 자문할지도 몰랐고, 그러면서 공포에 질려 열쇠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p.335)


  훗날 교황 비오12세가 될 추기경 파첼리가 주문을 해서, 이 <천국의 열쇠를 받는 성 베드로>를 성당에 모시지는 못하고 대신 자기 사비로 비용을 지불해 개인 소장하겠다고 했으니, 미모,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조각가로 최고의 명성을 떨치게 된다. 미모의 배경에는 피에트로달바의 오르시니 후작 가문이 있다. 후작은 아들 셋과 막내 딸이 있다. 첫째 바르질리오는 1차 세계대전에 지원해 참전했다가 유명한 열차 사고를 당해 전투 한 번 못해보고 죽고, 둘째 스테파노는 일 두체, 무소리니의 파시스트로 맹활약하다가 미모 때문에 오히려 파시스트에 체포된 후 곧바로 해방을 맞는 바람에 거의 죽었다가 살아나며, 셋째 프란체스코는 젊은 나이에 차례대로 사제, 주교, 추기경까지 올라가지만 역시 미모 때문에 교황까지는 가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자줏빛 수단을 몸에 두르고 지낸다.

  막내딸이 비올라. 누군가 그랬지, (현악기)비올라는 여인의 눈물샘 같다고. 이 동네 성당 이름이 “눈물의 성 피에트로.” 비올라는 미모와 생년월이 같다. 미모가 우연히 비올라의 생일을 알고 있어서 둘이 한꺼번에 생일을 말하는데, 22일, 같은 날 태어난 것으로 오해해 둘은 진정한 우정을 나눈다. 우정은 당연히 진정한 사랑이 되지만 신분의 격차는 둘에게 정결한 사랑을 요구하고, 둘은 이에 순응한다.

  하여간 이 집의 셋째 아들이 추기경까지 오르니, 오르시니 가문의 후원을 받는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는 귀족과 바티칸의 후광을 입어 찬란한 꽃길을 갈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집안 사람들과 아들들이 가장 우선하는 것은 가문의 자존을 지키는 것. 그것을 위하여 성직자임에도 더러운 거짓말을 종용하기도 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파시스트가 되기도 하지만, 끝까지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비올라는 20세기 초반의 여성이라는 제약에 걸려 자신의 뜻을 전혀 펴지 못한다.

  재미있는 책이다. 이런 책은 책꽂이에 꽂아 두어도 좋다. 혹시 아는가, 나중에 한 번 더 읽어볼까, 이런 생각이 들 지. 오늘 독후감을 길게 썼는데, 스토리의 1/10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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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5-2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번쩨 소설만에 콩쿠르상 수상이라...이 작가 엄청나군요! 거기에 별 다섯 개라...이거 또 안 살수가 없네요..뽈 님때문에 전 세계 몰랐던 작가의 걸출한 작품을 하나씩 알아가네요..^^

Falstaff 2025-05-20 16:41   좋아요 0 | URL
넵. 강추 작품입니다. 즐기셨으면 좋겠네요. ㅎㅎㅎ
 
정신과 의사 페이지터너스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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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아킹 마샤드 지 아시스의 장편소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을 읽은 것이 벌써 11년 전이다. 세월이 무섭다. 다른 건 거의 기억나지 않고 이미 죽은 브라스 꾸바스가 살아생전 겪은 연애 이야기를 중심으로 지난 시절의 회상한 작품이란 것만 어렴풋하다. 책꽂이에서 제목도 독특한 <… 회고록>을 꺼내 갈피를 넘기니 탁 눈에 들어오는 ‘헌사’. 맞아, 이거였어. 지독하게 인상적이어서 늘 머리에 삼삼했던 헌사.

  “나의 차가운 시신을 가장 먼저 갉아먹은 벌레에게 그리움이 가득한 기념품으로 이 사후 회고록을 헌정한다.”

  이 <… 회고록>이 당시에 우리말로 번역해 출간한 유일한 아시스의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경우, 아시스가 1839년생이라는 것을 알고, 에이 설마, 1939년생이겠지, 이렇게 지레짐작했는데, 1939년생은 아니더라도 생년의 숫자가 “아마도 오타”일 거라고 엉뚱하게 믿어버릴 만큼 그럴 듯했었다. 근데 1839년생 맞고, 게다가 해방노예 아버지와 포르투갈 청소부 엄마 사이에서 나온 소위 파르도pardos 출신이면서 어떻게 시와 소설, 희곡까지 썼다는 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파르도는 남미에서 유럽,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흑인의 피가 모두 섞인 사람을 일컫는다. 그래서 예일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헤럴드 블룸(현대 미국의 4대 소설가로, 토마스 핀천, 돈 드릴로, 필립 로스와 더불어 ‘코맥 매카시를 꼽아서 내게 미운 털이 박힌’ 인물)은 주아킹 마샤드 지 아시스를 가장 위대한 흑인 작가라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신과 의사》는 단편 넷, 중편 하나를 실은 작품집이며, 중편 <정신과 의사>를 제목으로 땄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세번째 순서로 실린 단편 <자정 미사>가 제일 그럴듯했다. 크리스마스날 밤, 자정미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시간을 기다리는 열일곱 살 청년과, 그의 방에 들어온 서른 살 가량의 콘세이상 부인과의 대화를 그렸다. 화자 ‘나’가 머물고 있는 곳은 공증인 메네지스 씨의 집이었는데, 이이는 ‘나’의 사촌 누이와 결혼을 했었다. 사촌 누이가 죽고 다시 결혼한 부인이 바로 콘세이상이며 집에 부부와 부인의 늙어서 귀 밝은 어머니가 살고 있다. 메네지스 씨는 저녁을 먹고 해가 떨어져 어두워지면 19세기 돈 많은 공증인답게 집을 나서서 온갖 사교활동을 하느라 영화관, 극장, 콘서트홀, 클럽하우스 등등을 활보하는데, 이게 정말 공증인의 업무상 비즈니스 때문인지, 아니면 기타 등등의 사유, 예컨데 혼외 연애 같은 은밀하고 유혹적이며 동시에 추잡한 문제 때문인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판단해야 하건만, 아무튼 콘세이상 여사와 비슷하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터. 콘세이상 여사도 처음에는 부처님도 돌아 앉을 만큼 질투도 하고, 사립탐정도 붙여보고 별 짓을 다 해봤는데 그래도 눈 하나 껌벅하지 않는 남편 메네지스한테 학을 떼 이제는 그러거니 할 정도의 보살이 된 거다.

  다 좋다. 19세기 중후반이니 다른 문제만 없다면 까짓것, 눈 한 번 질끈 감아줄 수 있는 것이지. 둘 사이에 자식도 하나 생기지 않은 터수에. 그런데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이 크리스마스, 어째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 있느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콘세이상은 사람도 아니다. 속으로는 열불이 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해야겠지. 가슴 속에 불이 활활 붙어 ‘나’의 방에 쳐들어온 부인은, 이야기하는 내내 옆방에서 자고 있는 늙어서 귀만 밝은 어머니가 남녀가 유별한데 한 방에 들어 소곤거리는 걸 알아챌까봐, “목소리 좀 낮추세요. 엄마가 깨겠어요.”를 연발하면서도 정작 대화를 그만 둘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 자정 가까이 왔고, 애초에 ‘나’가 친구 집에 가서 그를 깨워 함께 성당에 가려 했으나 거꾸로 친구가 집 밖 창문에서 ‘나’를 부르고, 여사는 ‘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컷.

  그러나, 정작 내가 독후감을 쓰기 위하여 메모를 한 작품은 표제작 <정신과 의사>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걸 먼저 읽었거든. 제일 마지막에 실렸지만 지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편이라서 책을 앞에서부터 읽으면 도서관 퇴근시간에 중편을 읽다가 도중에 뚝 끊어야 할 시간이 된다. 그래서 제일 긴 <정신과 의사>를 읽고, 남은 시간에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기 시작. 앞의 두 작품까지 마치고 퇴근해서, 놀라지 마시라, 장장 “닷새”를 쉬고 쐬주 한 병 깠다. 하여간 하고 싶은 말은, <정신과 의사>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제일 좋은 작품을 고르라면 <자정 미사>를 선택하겠다는 정도.


  주인공은 시망 바카마르치 박사. 아주 오래전의 귀족 집안 자제이며,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을 통틀어 최고 의사였던 사람이다. 포르투갈의 코임브라와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수학해 의학박사 학위를 딴 실력자로, 일찍이 포르투갈의 국왕이 직접 코임브라에 머물며 의과대학을 이끌거나 리스본에서 왕실 의학업무를 처리해달라 요청했음에도 서른네 살 때 물리기 어려운 국왕의 청을 극구사양하고 브라질로 귀국한 진짜배기 애국자이기도 하다. 바카마르치 박사가 이때 포르투갈 국왕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폐하, 과학이야말로 저의 유일한 소망이며 이타구아이는 저에게 우주와 같은 곳입니다.”

  과학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건 아시겠지? 그럼 이타구아이는? 동네 이름이다. 박사의 고향. 이타구아이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서쪽으로 거의 붙어있는 도시이다. 근데 이건 교통이 무지막지하게 발달한 지금 이야기고, 19세기 말에도 ‘아주 오래전’이라 했던 당시엔 비록 기차는 다녔지만 그곳 태생이면서도 리우데자네이루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며, 심지어 훗날 바카마르치 박사의 아내가 될 에바리스타도 박사와 혼인하고 한참 후에야 겨우 수도에 한 번 다녀올 정도였다.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의 가장 유명한 의사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이 작은 도시 이타구아이에서 의사 개업을 하겠다는 거였다.

  정말로 고향에 돌아와서 5년간 의사로 지내다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지역판사의 아내였던 스물다섯 살 먹은 과부 에바리스타 다 코스타 이 마스카레냐스와 결혼했다. 예쁘지도 않고 매력도 없는 그냥 그런 여자. 사람들이 왜 하필이면 에바리스타냐고 물으면, 박사는 아내가 1등급의 생리학적, 해부학적 조건을 가졌으며, 좋은 소화력과 규칙적인 수면습관, 좋은 맥박과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어서 튼튼하고 건강한 2세를 생산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근데 사실 에바리스타는 그리 건강하지 못해서 임신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박사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동안 쉰두 살이 되어버렸다.

  이 동안 박사는 새로운 장르인 정신분석과 뇌 병리검사에 특별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전혀 개척되지 않은 분야에 용맹정진하겠다는 학자적 탐험심이 없으면 시도도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그는 “정신의 건강이야말로 의사의 가장 고귀한 책무이다.”라는 슬로건으로 불멸의 금자탑을 세우기 위하여 시의회에 강력하게 정신병원 건립을 요구했다. 이때까지 이타구아이 시의 중증 미치광이는 집에서 거의 감금한 상태로 밖에 나가지 못하게 막았으며, 경증의 조현병 환자들은 별로 구애받지 않고 시내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말이 그렇지 엄연히 방치하는 수준이었던 거다.

  그리하여 시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바가街에 50개의 창문이 있고 수많은 작은 방이 달린 흰 집이 들어섰다. 브라질 각지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신병원 개원 축하 파티를 일주일에 걸쳐 성대하게 치룬 다음 본격적으로 환자를 받기 시작했는데, 환자들 역시 이타구아이 시에서뿐만 아니라 브라질 전국에서 쏟아져 몰려들어 병원은 개원하자마자 다시 증축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병원의 이름은 “카자 베르치” 녹색의 집이라는 뜻이다.

  바카마르치 박사는 병원의 행정업무를 약제사 크리스핑 소아리스에게 맡기고 자신은 연구에 매진해, 환자를 심한 광기와 유순한 환자로 나누고, 하위 분류로 편집, 망상, 다양한 환각 증세로 구분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이상한 상태를 누가 판정하느냐, 하는 것. 누가 하기는 누가 하나? 당연히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는 바카마르치 박사가 하는 것이지. 이제 그가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와 관찰을 했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에 정상이 아니면 즉각 그를 강제로 카자 베르치에 입원을 시켜버리는 권한을 저절로 갖게 된다. 상대가 누가 됐든 상관없다. 하다못해 시 의회 의원이라도. 바카마르치 박사 자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이제 최고 권력자가 되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전부 조현병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절대 권력을 쥐게 되고, 언제나 내가 부르짖듯이, 권력이 문제가 아니었던 적은 인류사에 한 번도 없어서, 박사는 점점 공포의 대상이 되어간다. 독재가 따로 있나? 뭐 그게 인생이다. 근데 독재의 끝이 뭐야? 폭동이고, 반란이고, 혁명.

  그렇다고 주아킨 마샤드 이 아시스를 혁명가 비슷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이이는 가난한 유색인 출신의 반동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브라질의 오히려 알아주는 군주제, 즉 왕정주의자라서 작품 속의 저항을 체제 전복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도 없고 그렇게 봐도 안 될 것 같다. 작품은 재미있다. 이이의 반동적 사상 때문에 작품까지 멀리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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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7
나탈리 사로트 지음, 위효정 옮김 / 민음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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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탈리 사로트의 소설. 생각만 해도 멀미난다. 그러나 이 책은 1939년 작품. 책이 나오자마자 독일이 폴란드 국경 너머로 탱크를 몰아 2차 세계대전의 막이 올랐다. 나탈리 사로트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랑스의 누보 로망의 대표선수. 그러나 1939년에는 누보 로망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으며, 누보 로망의 기수라고 할 수 있는 알랭 로브그리예는 열일곱 살, 미셸 뷔토르가 열세 살이었다. 내가 읽은 사로트의 소설은 <황금열매>와 <어린 시절>. 각각 63년과 83년 작품이다. 사로트가 1900년생이라 작품을 썼을 때의 나이도 금방 계산이 된다. <황금열매>는 예순세 살, <어린 시절>은 무려 여든세 살에 썼다. 두 작품 다 진땡 누보 로망 작품이며 이때는 특히 로브그리예처럼 미분적 묘사를 사용하는데, 로브그리예보다 훨씬 강력한 배율의 현미경으로 사물과 현장을 탐색하는 바람에 그걸 읽는 독자는 (못 믿으시겠지, 믿는 자에게 복이 있으니 믿으시라) 까무러친다.

  나도 사로트의 소설을 읽는 중에 멀미를 하다가 까무러쳐서 그냥 홱 내팽개치고는 몇 해가 지난 다음에 아무래도 책값 본전이 생각나 다시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멀미 나는 건 여전했다. 근데 사로트나 로브그리예나 하여간 이 누보 로망 작가들이 낸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면 읽게 된다. 그리고 세상에나, 언젠가 흉내까지 내보고 만다니까 글쎄. 이게 말이 되느냐는 말이지. (희곡은 빼고) 사로트의 소설도 그렇게 죽을 똥을 싸며 읽었으면서도 또 다른 번역서가 나오기 무섭게 얼른 찾아 읽는 것을 보시라. 뭐 내가 이쪽 방면으로 병이 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읽고 나서도 내 입에서 결코, 재미있게 잘 읽었다, 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을 번히 알면서 또 읽게 되는 거. 이게 누보 로망이고 나탈리 사로트다.


  이번에도 멀미 났다. 근데 저번보다는 덜했다. 아무래도 작품을 쓴 시대가 본격적으로 현미경 관찰을 시작하기 전이라서 그랬던가 보다. 실제로 물체의 미분적 분쇄는 없다. 그래도 누보 로망의 누군가와 닮았다. 누보 로망이란 건 어떤 특별한 작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로 로망이라는 기치 아래 모여 쓴 반소설적 전위적 작품을 일컫는 것으로, 꼭 물체의 미분적 분쇄만 말하는 것은 아닐 것. 훗날 중국의 찬쉐도 <오향거리>의 주인공 X여사가 사물을 거울에 반사된 모습이나, 현미경을 통해 보는 것이 이 전위적 표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향성>에는 적어도 이런 ‘봄watching’은 존재하지 않아 덜 피곤했다는 말이다. 이들과 같은 패거리로 불리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후기 작품에 더 가깝다고 할까?

  그래서 이해하기 좋았느냐고? 천만의 말씀. 이번에도 나는 사로트를 제대로 오해했다.

  처음에 좀 헷갈리더니, 읽어가다 보니 한 여성의 시각으로 가족 구성원을 묘사한 것으로 읽혀, 아무리 사로트라도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1939년에 사람 뇌 저리게 만들 수 있었겠어? 이렇게 자만하려고 할 즈음부터 또다시 오리무중의 첩첩산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스스로 알아서 이런 책을 고르는 (나 같은)인간이 문제다.


  나는 가끔 만들기 쉬운 순두부 계란탕이나 아욱국, 콩나물국, 매운탕 같은 것을 끓인다. 대개 아침 5시 경부터 멸치, 다시마를 끓여 육수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 나름대로 ‘제대로’ 끓이려고 한다. 이렇게 그나마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 밥을 퍼 먹으려는데, 마누라쟁이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럼 기분이 어떻겠어? 예전에 어머니가 식탁을 차리면 할머니는 걸레들고 마당의 수돗가로 나간다. 어머니는 입이 댓발 나와서 밥상 차리면 꼭 저렇다고(아마도 속으로는, 저 지랄이라고) 지청구를 넣고. 이거 우리나라만 그러는 게 아니다.

  “방에서 방으로 다니며, 부엌을 뒤지며, 누군가가 들어가 있는 욕실 문을 맹렬하게 두드리면서, 그녀는 간섭하고, 지도하고, 닦달하고, 내처 한 시간을 거기서 있을 작정인지 그들에게 묻고, 혹은 늦었다고, 전차나 기차를 놓치게 되리라고, 너무 늦었다고, 되는 대로 무신경하게 있던 그들이 뭔가를 놓쳤다고, 혹은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식었다고, 두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다고, 다 얼어붙었다고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다… (후략)”  (p.21)

  위 인용문을 읽어보면, 아직 한 문장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가정주부가 일찍부터 아침식사를 마련해 식탁에 차려 놓았건만 자식새끼들과 남편이란 작자는 내쳐 자빠져 있다가 다 늦어서 허겁지겁 세수하고, 면도하고, 개인위생 처리하는 바람에, 엄마가 열이 빡세게 돈 모습으로 보인다. 나도 소설책 읽은 세월이 있고 페이지 수가 있는데 이런 정도라면 뭐 껌이지, 안 그래? 이런 마음이, 자만심이 들었다는 말씀. 그럴 만하지? 내가 지금 읽어도 그럴 만하다.

  게다가 이런 문장이라니. 가족 가운데 누가 욕실에서 물을 틀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을 듣는다.

  “팽팽한 침묵 속의 돌연한 물소리, 그것은 마치 하나의 신호, 그것들을 향해 울릴 호출, 막대기 끝으로 건드린 해파리를 역겨워하면서 그게 불현듯이 소스라치며 곤두섰다가 다시 움츠러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으리라. / 그녀는 그것들을 그렇게 느꼈다. 벽 뒤에, 늘어앉아, 부동 상태로, 소스라칠 태세를, 요동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p.19)


  사로트는 남성들의 행위에 관한 묘사도 좋다. 그는 어린 아이와 산책을 간다.

  “그는 길을 건널 때마다 자신의 뜨겁고 끈적한 손으로 그들의 작은 손을 꽉 붙들면서, 그러나 그 작디 작은 손가락들을 짓뭉개지지 않도록 자제하면서, 한없이 신중하게 왼쪽 그다음에는 오른쪽을 살피면서 그들이 지나갈 겨를이 있는지 확인했고, 자동차가 오지 않는지 잘 보았고, 그의 작은 보물, 귀여운 그의 어린애, 그가 책임진 그 살아있고 보드랍고 순순한 작은 것이 짓뭉개지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  (p.27~28)

  문장 속에 지시대명사 ‘그’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가 읽기 불편하고, 한 문장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우나 그렇다고 줄줄이 인용할 수도 없어서 그렇지 이 챕터 역시 괜찮다. 나는 당연히 아빠가 두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줄 알았다. 앞 챕터, 밥 차려 놓았는데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별 짓을 다 하던 식구들일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고 읽었으나, 아이고, 갑자기 이 남자 어른이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이전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숱한 ‘그’와 ‘그녀’는 누구를 특정하는 그와 그녀가 아니라 단순하게 챕터를 쓸 때 작가가 떠올린 여자와 남자에 관한 소묘라고 생각해 마땅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뇌가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아오, 내가 지금 틀림없이 오독하고 있는 중이야. 오독오독한 오독뼈 씹는 게 아니라고. 또다시 죽을 똥을 싸며 오리무중의 첩첩산중으로 자진해서 기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탈리 사로트는 자신이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를 밝힌다. 소설이라는 픽션의 형식을 통해서 말하기 때문에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 독자는 판별할 수는 없지만 사로트의 소설을 읽기 위하여 큰 힌트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 클리셰들, 복제품들, 발자크,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로 말하자면, 오, 그들은 아주 잘 알았고, 그 모든 것에 훤했고, 하지만 그들은 겁내지 않았고 ― 그들은 그녀를 상냥하게 바라보았고, 그들은 미소 지었고, 그녀 곁에서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고, 또 그들은 그 점을 아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하략)”  (p.69)

  사로트는 여태까지 지속해온 소설을 답습하지 않겠다, 그리하여 신 소설을 쓰겠다는 선언이다. 아무도 겁내지 않고 무심결에 쓰는 저 왕년의 거장 발자크, 플로베르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그리하여 탄생하는 작가군을 그들은 누보 로망이라 불렀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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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5-16 0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그 모든 것, 클리셰들, 복제품들, 발자크,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로 말하자면, 오, 그들은 아주 잘 알았고, 그 모든 것에 훤했고, 하지만 그들은 겁내지 않았고 ― 그들은 그녀를 상냥하게 바라보았고, 그들은 미소 지었고, 그녀 곁에서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고, 또 그들은 그 점을 아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하략)” (p.69)

이것을:

“그리고 모든 것, 클리셰들, 복제품들, 발자크,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로 말하자면, 오, 그들은 아주 잘 알았고, 모든 것에 훤했고, 하지만 겁내지 않았고 ― 그녀를 상냥하게 바라보았고, 미소 지었고, 그녀 곁에서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고, 또 그 점을 아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하략)” (p.69)

이렇게 교정correction 했으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