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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메리골드의 처방전
찰스 디킨스 외 지음, 이주현 옮김 / B612 / 2025년 1월
평점 :
닥터 메리골드의 이름이 닥터가 된 데에는 닥터를 받아 준 의사가 친절했기 때문이었다. 돈이 아닌 차 쟁반을 받고도 친절했던 의사에게 감사한 마음과 경의를 표하기 위해 아기의 이름은 닥터가 되었다. 우리로 치면 산파나 의사가 이름이라는 건데, 아무리 사연이 있다 한들 당장 개명 신청할 일이건만 책을 읽다보니 '닥터'란 이름이 제법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닥터 후>의 닥터처럼 말이다.
닥터는 잡상인으로 딸 소피를 먼저 보내고 아내마저 보낸 후 수레에서 혼자 살았다. 그러던 중 학대받던 소녀였던 청각장애인 소피를 입양하고 행복을 찾는다. 닥터는 소피가 세상을 배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엮었는데, 그것이 바로 <닥터 메리골드의 처방전>이다.
여러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엮은 것이다보니 다른 곳에서 본 이야기들도 있었다. 여기서는 <소금 한 알과 함께 복용할 것>이란 제목인데 나는 이미 <유령심판>이란 제목으로 읽은 이야기였다. 유령을 사랑하는 디킨스답게 살해당한 유령이 나와서 범인이 받아야 할 벌을 받도록 하는 이야기이며, 인과응보란 주제가 딱 걸맞을 것 같다. 소피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꼭 소금 한 알을 먹고 싶을 것 같았다. 아니, 소금을 마치 운동장 줄 긋듯이 그어둘 것 같다. 물론 소피는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로사 멀홀랜드가 지은 <잠들기 전에는 복용하지 말 것>이란 이야기는 사악한 마법이 결국 한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파멸시키는 지 보여줬다. 콜 두는 블레이크 대령과 원수였다. 콜 두의 아버지와 블레이크 대령이 도박으로 원한을 진 것이었다. 하지만 콜 두는 블레이크 대령인 줄 모르고 그의 목숨을 구했고 블레이크 대령의 딸인 에블린을 사랑하고 말았다. 문제는 콜 두만 사랑한다는 거였다. 에블린은 콜 두를 거부했고 콜 두는 에블린에게 '부라그 보스'(시체 정수리부터 발꿈치가지 조심스레 벗겨낸 피부)를 채워 사랑을 얻고자 했다. 사악한 주술은 진정한 사랑을 쟁취할 수 있겠는가. 잠들기 전에 봤다가는 무서워서 잠 못 들거나 악몽을 꿀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늘 존재해서 사고를 치니 무섭다.
찰스 콜린스의 <저녁 식사 시 복용할 것>은 뭔가 웃긴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마치 현재 우리가 밥 먹을 때 가볍게 유튜브를 보거나 티비 드라마 혹은 예능을 보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수수께끼를 만드는 작가가 어떻게 그 재능을 잃어버렸는지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말장난들이 있어서 제법 흥미로웠다. 같은 언어가 아니어서 재미가 반감되었겠지만 영어를 잘 구사한다면 더 재밌을 것 같다.
헤스바 스트레튼이 지은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복용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살면서 비굴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를 알려주고 세상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신마저 팔아먹는 나쁜 놈들이 있기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결코 행운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고난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야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같은데, 솔직히 돈 많은 삼촌은 치트키가 아닐까 싶다. 이 시대 딸을 팔아 감옥을 벗어날 수 밖에 없는 아버지나 그 사정을 이용해 유니스와 결혼하려는 모어 형제나 참 별로다. 결론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며 큰 행운이다가 되겠다.
월터 손버리의 <물속에서 복용할 것>은 첩보물이다. 이탈리아에서 가리발디가 승리하기 3년 전, 허버트는 나폴리 왕에게 거금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 기차와 배를 이용해서 목적지까지 가야했기 때문에 그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을 경계했다. 허버트는 과연 이 임무를 성공할 수 있을까. 누가 도둑일지 추리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마 소피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숨을 참게 되는 경우가 제법 있지 않았을까.
가스코인 부인의 <복용을 시도해 볼 것>은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이다.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질투에 눈이 먼 남자의 계략으로 헤어진 뒤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음모에 휘말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소피에게도 곧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연인이 생길 것이다. 이별이 아프다고 사랑까지 외면할 수 없으니 부디 소피에게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이야기의 수전과 조지는 사랑했고 이별했으며 재회했다. 그들이 만들어 가는 감정들은 아프지만 훗날 삶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마지막 찰스 디킨스의 <평생 복용할 것>은 정말 행복한 결말이다. 그들은 진정한 가족이었고 더 크고 많은 사랑을 나누고 받았다. 세상은 좋은 것들보다 나쁜 것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닥터 메리골드의 처방전이 있으므로 그들은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