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시대 - 미래 화폐의 승자가 만들어낼 거대한 부의 물결
김창익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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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년 반쯤 전, 그러니까 2021년 9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부수입을 올린 경험이 있다. 로또복권은 사지도 않지만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여담이지만 내가 내 돈을 내고 로또복권을 샀던 건 지금껏 살면서 두세 번쯤 된다. 처음 로또복권을 샀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로또복권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초창기의 어느 날 은행(지금은 국민은행으로 통합되었지만 당시에는 주택은행)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근무하던 고등학교 동기의 권유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서 거금(?) 1만 원을 투자하고 말았다. 당시에는 한 게임당 가격이 2,000원이었고, 복권 담당이었던 친구는 반 강제적으로 1만 원의 복권 구입을 종용했었다. 그 후에 두어 번 샀던 것은 주로 회식이 파한 자리에서 삼삼오오 편의점에 들러 서로의 행운을 점쳐보기 위한 하나의 재미 혹은 놀이 차원에서였다.


복권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 샛길로 빠졌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2021년 당시 나는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많지 않은 돈을 암호화폐에 투자했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무척이나 귀가 얇은 사람인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코로나 시기에 주식에 투자하여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나는 그 돈의 일부를 암호화폐에 투자하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되었던 게 일평균 거래금액이었다. 암호화폐 시장의 일평균 거래액이 주식시장의 거래액을 초과하였다는 기사가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래. 돈은 역시 돈이 모이는 곳에서 벌어야 해.'라는 생각으로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무척이나 단순한 인간이다. 투자라는 게 사실 고려해야 할 사항이 얼마나 많은 일인데...


나는 그렇게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투자금 전액을 통장으로 이체했고, 묘하게도 내가 암호화폐에서 손을 뗀 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비트코인 가격도 연일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 후 암호화폐는 나의 관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적어도 2024년 11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트럼프의 재선 이후 1억 원을 돌파한 비트코인 가격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야말로 쳐다볼 수 없는 넘사벽의 투자 대상이 되고 말았다. 경제 스토리텔러이자 비트코인 투자자이기도 한 김창익이 쓴 <비트코인의 시대>를 읽어보자고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짐작했겠지만 투자는 과거 데이터와 미래 전망에 대한 함수다. 2025년 초 비트코인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된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 비트코인이 큰 폭으로 올랐고, 이 같은 추세가 적어도 당분간 유사하게 반복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p.27)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할 테지만 책은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라고 하더라도 암호화폐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고 이에 대한 접근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화폐의 본질을 파헤치고, 비트코인의 달러 대체 가능성과 비트코인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변화 및 투자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비트코인 현상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비트코인이 직면한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에너지 소비 문제, 확장성 문제, 규제 리스크 등이 그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비트코인의 영웅 서사에서 가장 강력한 조력자로 등장한다. 비트코인은 페트로달러라는 구체제의 모순에서 태동했다. 바로 이 점이 트럼프와 비트코인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능케 한 이유다.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을 몰락시킨 페트로달러 체제, 즉 세계화의 종식을 선언하며 미국인의 강력한 지지를 끌어냈다."  (p.143)


책의 목차를 읽어 보면 대략적인 책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1장 '비트코인, 투기가 아닌 투자가 되다', 2장 '비트코인은 오를 수밖에 없다', 3장 '트럼프는 왜 비트코인 대통령이 되었나', 4장 '비트코인은 세계 경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5장 '비트코인에 투자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6장 '비트코인의 시대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의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현시점에서 왜 비트코인의 가격이 이처럼 오르고, 여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는지, 즉 이 시대를 왜 비트코인 시대로 명명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국면이 지나면 비트코인 투자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인플레이션 헤징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화폐의 구매력 관점에서 비트코인 투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개미들의 영역이 아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이때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다."  (p.396 '에필로그' 중에서)


계엄령 이후 대통령의 파면과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대선 국면에 있는 우리나라는 모든 게 불안정한 시기이다. 트럼프의 재선 이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에 매진하고 있는 이 시국에 다른 나라라고 해서 안정적인 발전을 꾀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트럼프의 재선 이후 세계 경제는 극도의 혼란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렇다 보니 내 주변에서도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 투자처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트코인이 투기의 대상에서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이 변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전에는 비트코인이라면 말도 꺼내기 전에 손사래부터 치던 사람들이 지금은 투자 방법과 전망을 묻는 걸 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김창익의 저서 <비트코인의 시대>는 비트코인에 대한 유익한 길잡이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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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예년에 비해 날씨가 짓궂었던 탓인지 피는 꽃들이 비실비실 생기가 없고, 언제 피었다 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금세 지고 만다. 그런 느낌이 든다. 봄의 절정을 알리는 벚꽃의 개화기에도 한두 번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미처 감상할 새도 없이 서둘러 지고 말았고, 아카시아 꽃이 만개한 요즘에도 잊을 만하면 비가 내려서 버선발 같은 꽃잎이 하얗게 쏟아지는가 하면 더러는 줄기째 떨어지기도 하여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게다가 화려한 자태를 오랫동안 뽐내던 철쭉과 영산홍도 올해는 그 기한이 어찌나 짧던지 지금은 메마른 꽃잎만 겨우 매달고 있다.


오늘도 아침부터 흐렸던 하늘에선 간간이 비가 내렸고, 주말의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려는 듯 '우르릉 쾅!' 벼락이 치기도 했다. 그나저나 대선이 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재명 후보의 워낙 일방적인 우세 탓인지 선거 분위기는 과열되거나 격화되지 않고, 그저 차분하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란을 주도했던 정당이 해산도 되지 않은 채 다시 또 후보를 낸다는 것도 지극히 비정상적인데, 그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미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더구나 내란 우두머리였던 자가 지금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그가 속한 정당에서도 그를 내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다들 미쳐 돌아가는구나' 싶은 것이다.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고 있다. 얼마 전에 구입한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을 아직 들춰보지도 않은 채 작가의 산문집을 인근 도서관에서 빌렸다. 나는 종종 이런 어이없는 짓을 저지른다. 그러다 보니 구입한 책은 그 순서가 마냥 뒤로 밀려서 숫제 읽지도 않은 채 책꽂이에 꽂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나의 변명은 이렇다. 책을 구입할 당시에는 바로 읽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도서관에 가 보면 읽고 싶은 책이 어찌나 많은지... 나는 몇 권의 책을 덥석 빌린다. 구매한 책은 반납 기일이 없지만, 대여한 책은 언제나 기일이 정해져 있는 까닭에 대여한 책을 먼저 읽을 수밖에 없다. 구매한 책은 결국 순서에서 밀리고 밀리다 때론 잊히기도 하고, 구입한 지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겨우 읽히기도 한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이 고쳐지지 않고 반복된다.


"오늘 아침 창밖엔 사늘한 빛이 설핏하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전기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인다. 집 안 여기저기에 놓인 사물들에는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밤새 차가워진 공기를 데우기 위해 전기난로를 켜고 식탁 겸 책상에 앉아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신다. 조금 있으면 소란을 떨며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오겠지만, 아직은 조금 더 부드럽게 게을러도 괜찮은 겨울의 끄트머리다."  (p.193)


백수린 작가의 글은 따뜻하다. 소설에서나 산문집에서나 작가의 부드러운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신의 글에 자신이 지닌 본래의 성품을 담는다는 건 삶 자체가 그렇다는 뜻이다. 자신의 글과 삶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글이 추구하는 방향에 배치되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지 않으려 애쓴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작가의 인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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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5-16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알라딘이나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책은 자꾸 밀리고 있고 매주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먼저 읽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꼼쥐 2025-05-17 12:50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 님도 저와 비슷하시군요. 저 역시 그런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읽지 않은 책이 한 보따리 쌓여 있습니다. 언제 읽을지 모르겠어요.
 
위대한 개츠비 소담 클래식 2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유혜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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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재독, 삼독, 나아가 아무리 읽는 횟수를 늘려가더라도 설렘의 강도가 여전히 줄지 않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줄기는커녕 다시 읽을 때마다 전에 읽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은 물론 추억에 더하여 새로운 느낌과 기대감으로 인해 설렘의 강도가 예전에 비해 절반쯤 높아지는 책이라면 명작임에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명작임에 틀림없다. 내가 판단하는 기준에서는 그렇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 듯하다. 나의 기억으로는 그러한데 네 번이나 다섯 번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제 읽었던 책의 저자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은 나로서는 나의 기억력을 도통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개츠비', 내가 확실하게 경멸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개츠비는 내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만약 개성이라고 하는 것이 일련의 남다른 행위와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에게는 정말 눈부신 면이, 그러니까 인생의 성공을 감지하는 뛰어난 감수성 같은 것이 있었다. 마치 수만 마일 밖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감지할 수 있는 그런 정교한 기계처럼 말이다."  (p.11)


당연한 일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주목하게 되는 등장인물은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달라지곤 한다. 주인공인 개츠비였다가, 데이지의 남편인 톰이었다가, 이야기의 화자인 닉이었다가... 그러나 주목하는 인물이 달라짐에 따라 책을 읽은 느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벌어진다. 개츠비를 주목했을 때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뭐란 말인가' 하는 느낌과 함께 삶에 대한 열정이 뭉글뭉글 피어나지만, 이번처럼 닉에게 주목했을 때는 모든 게 허망하고 덧없다는 느낌이었다. 삶에서 획득하고 경험하는 모든 게 손안에 거머쥔 가는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로 쉽게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살면서 맺게 되는 멀고도 가까운 인간관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개츠비가 한 말을 통해, 지독히 감상적인 그의 생각을 통해, 내 마음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주 옛날,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생각이 날 듯 말 듯한 리듬, 잊힌 말의 단편을...... 일순 내 입에서 한마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면서 내 입술이 벙어리처럼 벌어졌다. 마치 아무리 소리를 내려고 해도 입술만 달싹거릴 뿐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결국 말을 하지 못했으며, 거의 생각날 뻔했던 것은 영원히 전달되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p.181)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까닭에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대강의 줄거리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젊은 시절, 순수한 열정만으로 연인 관계를 유지하던 데이지와 개츠비. 결국 개츠비는 전쟁터로 나가고 데이지는 톰 부캐넌이라는 부자와 결혼한다. 한편 미국 중서부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한 닉은 증권업을 배우기 위해 고향을 떠나 뉴욕 교외의 웨스트 에그에 있는 작은 집을 빌려 생활하는데, 그것이 하필 부자가 된 개츠비의 대저택 옆집이었다. 데이지와 헤어지게 된 것이 오로지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개츠비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결국 부자가 되었고, 데이지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고,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일 밤 파티를 열었다. 개츠비는 자신과 데이지 사이의 관계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뉴욕 시내로 외출을 했던 데이지가 자신이 운전하던 차로 교통사고를 내고, 결국 그 사고로 톰의 정부였던 윌슨 부인이 사망하게 된다. 개츠비는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지만 데이지는 톰과 공모하여 개츠비가 사고를 낸 것으로 몰고 가는데...


"그 섬의 사라진 나무들, 개츠비의 집으로 향하는 길가 양쪽에 늘어서 있던 나무들은 한때 모든 인간의 꿈 가운데 가장 위대한 마지막 꿈에 탐닉하여 소곤거렸을 것이다. 덧없이 흘러가는 황홀한 한순간, 인간은 이 대륙의 존재 앞에 넋을 잃고 숨을 죽였을 것이며, 역사상 마지막으로 자신의 경이로운 능력에 어울리는 무언가를 마주 대한 채, 이해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어떤 심미적인 명상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갔으리라."  (p.290~p.291)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을 때 나는 어쩌면 숨 죽인 채 바보처럼 살았던, 자신의 아내 머틀이 누군가(톰)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오직 일만 하며 살았던, 그러다 결국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고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자 했던, 그러나 끝내 그것마저 이루지 못했던 자동차 정비공 조지 윌슨을 주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착하고 성실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선하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어쩌면 망연자실 넋을 놓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조금쯤 분개할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 이 책을 다시 읽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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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흐린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우울합니다. 할끔할끔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듯 시차를 두고 이따금 비가 내렸고, 더웠던 날씨를 의식한 듯 바람도 제법 불었습니다. 오슬오슬 한기가 느껴지는 날씨가 어제오늘 길게 이어졌던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던 국민의힘 어느 정치인의 마음도 그와 같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코미디와 같았던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국민들은 하나같이 참담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저것이 과연 대한민국을 3년이나 다스렸던 집권 여당의 모습인가, 하는 자괴감이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나 그렇지 않은 시민들 모두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감마저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일절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뻔뻔함과 오만함은 저들이 과연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맞긴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들게 했습니다. 내란을 주도했던 총리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임에도 그들은 여전히 일반 민심을 등진 채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하나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입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에세이 <빈 자리>를 읽고 있습니다. 130쪽도 안 되는 이 얇은 책을 나는 며칠째 붙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현실에서 바라보게 되는 거칠고 험한 풍파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사유하고 싶다는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해수면의 거친 파도를 지나 햇볕도, 소리도 없는 심해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다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잠시나마 누려보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일 속에서, 휴가 속에서, 어떤 이야기 속에서 소모된다. 시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활동 속에서 소모된다. 그러나 어쩌면 글쓰기는 다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시간을 잃는 것과 매우 가까운 일이지만, 또한 시간을 온전히 들이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남아서 눅눅해진 시간을 조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매 순간은 감미로워지고 모든 문장은 축제의 밤이 된다. 글을 쓰는 동안 영혼은 길 위에 흩어진다. 길을 잃어 헤매기도, 길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러다 단 하나의 단어가, 단 한 차례의 숨결이 흩어진 영혼을 다시 모은다. 왕의 만찬처럼 풍요로운 말, 맛의 정수를 담은 사랑의 글자."  (p.112)


국민의힘의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던 그가 불과 일주일 만에 강제로 물러나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했던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을 듯합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 이 일이 마무리될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아마도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흔들리는 삶으로부터 심한 멀미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그로 인한 야비한 술수와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크리스티앙 보뱅의 에세이를 권해 봅니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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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5-05-1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오늘 산 책이네요. 비가 주룩주룩 오는 주말이라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읽고 싶네요. ^^

꼼쥐 2025-05-13 18:58   좋아요 1 | URL
아,그러셨군요.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은 언제 읽어도 정말 좋지요. 어쩜 그렇게 글을 맛깔나게 쓸 수 있는지...
 
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 마키아벨리에서 조조까지, 이천년의 지혜 한 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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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할 때는 뭔가 집중하여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주제 혹은 하나의 문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생각할 거리가 필요한 셈이다. 용맹정진을 하는 스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삼매에 빠져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생각을 단순화하고 잡생각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하나의 주제나 문장에 몰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달아나려는 생각을 붙잡기 위해 스님에게는 화두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때 우리는 평소 맘에 담았던 어느 철학자의 경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철학자의 저서 한 권을 통째로 이해한다는 건 나와 같은 지능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니 기회가 될 때마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겨우겨우 이해하는 게 그나마 앞으로의 삶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053 당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당신의 행복과는 상관이 없다. 행복과 상관 있는 것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It isn't what you have, or who you are, or where you are, or what you are doing that makes you happy or unhappy. It is what you think about."  (p.35)


인문학자이자 지식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현 작가의 저서 <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은 이따금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 유용한 책이다. 자신의 삶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강물에 떠밀려 흘러가듯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작정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또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의문이 들 때 책의 어딘가에서 자신에게 맞는 문장을 골라 사색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책은 저자가 선별한 각각의 주제에 어울리는 철학자 몇몇을 각각의 장에 배치하여 우리의 삶 전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와 고민거리를 그때그때마다 적기에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제1장 '삶과 처세에 대한 통찰', 제2장 '사유하는 인간에 대하여', 제3장 '대문호들이 던지는 철학적 교훈', 제4장 '생각의 폭발을 이끈 동양의 철학자들'로 구성된 이 책은 세네카와 같은 고대 로마의 철학자에서부터 프로이트와 같은 비교적 우리 세대와 가까운 철학자들을 아우르고 있으며, 괴테나 칼릴지브란과 같은 대문호와 루쉰이나 법정스님과 같은 동양의 현자들의 생각도 담고 있다. 이처럼 시대를 아우르고 동서양을 섞음으로써 우리의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고 있다.


"379 젊은 영혼들이 내 눈앞에 우뚝 서 있다. 그들은 벌써 거칠어져 있거나, 거칠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 피 흘리면서 아픔을 견뎌내는 영혼을 사랑한다. 내가 인간 세상에 있음을,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年輕的靈魂在我面前延立着. 他們已經從粗糙尖銳起來. 可是我, 他們洗血, 痛苦的靈魂. 我在人間, 人間, 住在感覺."  (p.182)


요즘 산에는 아카시아 꽃이 피고 있다. 아카시아 꽃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책에서 발견한 한 문장을 화두 삼아 깊은 사색에 빠져들다 보면 멀게만 느껴지던 정상까지의 거리도 힘든 줄 모르고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규칙적으로 들리는 멧비둘기의 울음에 박자를 맞춰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산의 정상, 발아래 펼쳐지는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한 줄기 바람에 땀을 식히노라면 사는 게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절로 들 것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비슷한 파장의 사람들이 잘 모이듯, 깊은 통찰력을 지닌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본인부터 먼저 삶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가 철학자입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p.231 '마치며' 중에서)


오늘은 어버이날. 두 분 부모님 모두 세상을 떠난 까닭에 본의 아니게 고아 아닌 고아가 된 나로서는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일을 하다가도 툭툭 생각이 끊기고, 그리움인지, 죄스러움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감정에 때론 목이 메고, 하염없는 생각에 넋을 놓는 일도 다반사. 그렇게 긴 하루를 보내고 나면 피곤에 지쳐 잠이 들 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벽 산길을 걷고 있을 테다. 삶은, 생명을 유지하는 자의 일상은 그렇게 또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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