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15번째 선정 도서]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피에르 소베트르, 오 게강

정기헌 옮김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원더박스

2024






 

   

2025517일 토요일

오전 10~오후 1

장소: 컬처플렉스 더숲(노원구 상계동)


 

 



<생각이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를 돌리고 

책에 불꽃을 피운 독자들>









 

서한용(진행, 발제, 참여, 간식)

김지용(서평)

이진범(발제, 참여)

보람(발제)

최해성(발제, 참여, 북클럽투르기 · 윤색)




북클럽투르기(bookclubturgy, bookclubtur+)


독서 모임 후기 엮은이

북클럽투르기는 공연 제작을 위해 희곡과 연극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 또는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드라마투르기(dramaturgy)’에서 따온 말입니다.

 





자유란 무엇일까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자유라고 합니다. 자유의 반대말결박구속입니다. 이 두 개의 단어는 우리의 삶을 더욱 비좁게 만듭니다. 결박은 자유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차꼬입니다. 구속은 자유를 가두는 감옥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유를 못살게 구는 사람들은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이야말로 자유를 정말 정말,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하네요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어요. 자유를 괴롭히고 있는데 자유를 사랑한다는 자유주의자라? 다시 생각해 봐도 무언가 잘못되었어요. 그러나 자칭 자유주의자는 뻔뻔합니다. 오히려 자유를 괴롭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하네요. 자칭 자유주의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야말로 자유를 짓밟는 이라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까지도 자유를 무시하는 적으로 몰아세웁니다


도대체 그들이 사랑하는 자유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돌아가게 만드는 경제적 자유입니다. 자칭 자유주의자는 개인과 기업이 이익을 더 많이 얻으려면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은 자칭 자유주의자는 기업의 자유를 더 좋아합니다. 그들이 말하길 기업이 잘 돌아가면 나라가 잘 돌아간다나 뭐라나. 거대한 자본주의 마당 안에서 기업이 알아서 돈을 벌면 모든 사람이 풍요로워지고 잘 살 수 있다고 하네요. 


자유는 누구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자유의 의미는 다양합니다. 그런데 자칭 자유주의자는 자유를 독차지하고 있어요. 그들은 자유를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믿는 자신의 태도가 자유를 괴롭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그들이 자유를 여러 번 떠들고 다닐수록 자유는 점점 더러워지는 단어가 됩니다. 자유는 이기적이고 건방지고, 오만한 단어가 되고 말았어요.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자칭 자유주의자를 가리켜 신자유주의자라고 말합니다


신자유주의자는 정직하게 생각하고,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자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자유주의자는 자유를 방해하는 권력을 비판하고 저항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상식에 반하는 권력에 아부하지 않습니다. 반면 신자유주의자는 자신의 자유를 문제 삼는 타인을 굴복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합니다. 특히 기업과 친한 정부 앞에서는 아부를 잘합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광장의 민주 시민들, 노동자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기업의 경제 활동에 동참하지 않는 노동조합. 신자유주의자가 보기에 민주주의와 노동조합은 자유를 침해하는 세력들입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정부와 기업에 반하는 생각들을 결박하고 구속합니다. 심지어 그들이 더 이상 살아나지 못하도록 폭력을 쓰기도 합니다.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김이석 옮김 노예의 길(자유기업원, 2024)


* 밀턴 프리드먼 · 로저 프리드먼 함께 씀, 민병균 외 옮김 

선택할 자유(자유기업원, 2022)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루트비히 폰 미제스 외, 전용덕 옮김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 이론(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 [절판] 애덤 테블, 이화여대 통역 번역 연구소 옮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아산정책연구원, 2013)

 

* [절판] 이근식 신자유주의: 하이에크, 프리드먼, 뷰캐넌(기파랑에크리, 2009)




내전, 대중 혐오, 법치는 자유를 왜곡하면서까지 기업과 권력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신자유주의자들은 대체로 하이에크(Hayek)라는 경제학자의 신념을 따릅니다하이에크는 1947년 스위스 몽펠르랭에서 반공주의 지식인들이 모인 몽펠르랭 협회(Mont Pelerin Society)를 설립합니다. 여기에 모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비판하고, 시장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일명 오스트리아학파경제학자입니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와 노조의 기세가 오르면 자유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마저 무너진다고 진단했습니다. 그가 쓴 책 중 가장 유명한 노예의 길사회주의로 인해 자유가 억압받으면, 개인은 결국 노예가 된다고 경고한 책입니다. 하이에크의 자유 지상주의기업과 친한 보수주의 정치인들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자유에 미친 하이에크는 민주적인 목소리를 내는 시민마저 자유를 반대하는 적대 세력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유주의적 독재 정권의 반민주적 정치를 눈감아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신자유주의자와 보수 우파들은 나라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자유를 위한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평등을 지향하는 좌파와 사회 진보적인 운동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적이 됩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물불 안 가리는 분노와 뒤돌아볼 줄 모르는 폭력입니다.


































* 존 스튜어트 밀, 김만권 옮김 자유론(책세상, 2025)

 

* [구판 절판]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자유론(책세상, 2018)

 

* [절판]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여성의 종속(책세상, 2018)

 

* [절판] 이근식 존 스튜어트 밀의 진보적 자유주의(기파랑에크리, 2006)

 

* 이사야 벌린, 박동천 옮김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아카넷, 2014)





저는 자유주의자, 온건 보수주의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자유주의 사상가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다른 생각과 사상을 존중했고, 자유주의의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한 자유주의자였어요







밀은 시대를 앞서 나간 진보적인 자유주의자입니다. 지적인 동지인 아내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를 만나면서 여성의 평등을 옹호했습니다. 이사야 벌린은 한 사회 안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자유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 문제를 오직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해결하려는 태도를 반대했습니다.


자유주의자인 저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만 쏙 빼놓고 민주주의를 논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볼 때마다 늘 아쉬웠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더럽히진 자유를 원래의 올바른 모습으로 되돌려야 한다면 자유 또한 민주주의 못지않게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편, 서한용 작가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가 극우마저 함부로 쓸 정도로 흔해졌고,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수록 경제적 평등에 초점을 맞춘 사회민주주의가 주목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권력에 아부하는 신자유주의는 정부와 자신들의 세력에 유리한 법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들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진보적인 정당의 정치 행위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거나 이를 규제하는 행정 기관을 설치합니다. 결국 자기들을 위한 법을 만들겠다는 거죠. 보람 님은 작년 정부의 퇴행적인 계엄령과 탄핵 과정을 지켜본 이후로 헌법에 관심을 가져서 공부를 시작했다는데요, 본격적으로 대선 시간에 접어들수록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줄어들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7월의 도서]

* 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 함께 씀, 박세연 옮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어크로스, 2024)





한 번 만들어진 헌법은 영원히 좋은 법으로 남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소수의 극우 정치 세력들은 잘 만들어진 법을 정적을 공격하거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라는 책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헌법을 점진적으로 고치거나 수정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합니다. 헌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인은 헌법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헌법을 제대로 뜯어고쳐야 하는 일에 소극적입니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쓴 미국 출신 두 명의 저자는 미국 헌법이 민주주의 세상에서 가장 수정이 힘든 헌법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고 봐요. 개헌 논의가 점점 미뤄지거나 잠잠해지면 미국처럼 개헌에 소극적인 여론이 상당히 오래 지속될 수 있어요.


진범 님은 신자유주의자의 생각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지만, 왜 주변 사람들이 보수주의자로 살아가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말했어요. 자유주의자 또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개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진범 님이 만난 보수적인 사람들(우파 성향의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아닌, 정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은 개인의 이익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최대한 더 많이 누리기 위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타인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거나 타인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개인의 이익을 제한하는 상황을 마주하면, 갑작스러운 변화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어 왔던 생각과 신념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 당황하게 되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위협하는 듯한 불안과 두려움이 클수록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타인의 의견을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반대하는 성향이 더 커집니다.






 












* 디디에 에리봉, 이상길 옮김 랭스로 되돌아가다(문학과지성사, 2021)


* 디디에 에리봉, 박정자 옮김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 2012)




서한용 작가는 본인을 포함한 진보적인 사람들의 마음속에 크고 작은 보수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서 작가는 보수성을 무조건 숨겨야 하고 나쁘다고 봐야 할 성향이 아니라 내 안의 모순과 불일치를 인정할 수 있는 인생의 한 지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내 안의 모순복잡한 개인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과 같아요. 이 거울이 불편하다고 해서 부술 순 없어요.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거울을 잘 들여다본다면 자신의 정체성과 정치적 신념이 부딪힐 때 제대로 고민할 수 있어요. 







내 안의 모순을 탐사하는 일을 긍정한 서 작가는 이와 관련해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Didier Eribon)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추천했어요. 이 책에서 디디에 에리봉은 동성애자로서의 성 정체성과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이 교차하면서 생기는 내적 갈등을 분석합니다. 여담으로, 디디에 에리봉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평전을 쓴 저자로도 유명한데요, 내전, 대중 혐오, 법치푸코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술 분석에 바탕으로 만든 책이에요.


신자유주의자와 극우 과두제를 비판한 내전, 대중 혐오, 법치의 공동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에 제대로 저항하려면 이미 과거에 실행된 중도적인 대안 정치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자유주의가 조금이라도 가미된 좌파의 중도 정치는 좌파 정책을 지지하는 인민 계급들을 뒤돌아서게 했으며, 신자유주의에 날개 하나 더 달아준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들이 바라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좌파의 모습은 교차성(Intersection)에 초점을 맞춥니다. (), 인종, 민족 등 여러 정체성의 평등이 보장되면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좌파 안에서의 정체성 내전또는 계급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신자유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결집력이 약해집니다. 저자들은 기성 정당 중심의 사회운동이 아닌 소규모 사회운동 플랫폼, 협동조합, 노동조합 등이 서로 연결된 사회운동을 제안합니다. 김지용 님은 내전, 대중 혐오, 법치서평에서 저자들이 제시한 급진적인 대안 역시 한물간 실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내전, 대중 혐오, 법치신자유주의를 미워하고, 좀 더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싶은 좌파라면 꼭 읽어봐 할 책입니다. 그리고 참된 자유의 의미를 인지하고, 자신과 다른 견해에 경청하고 토론하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독자들도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신자유주의자는 기고만장한 상태입니다. 이 기세라면 온건한 보수주의자들도 신자유주의자가 일으킨 내전에 휘말릴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점진적인 개혁마저 시도하지 못하게 됩니다.


내 인생에 깊이 새겨진 단어 자유가 극우로 더럽혀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생각하고, 공부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에 똑바로 경청해야겠어요. 누구나 인정하는 진짜 자유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고요,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유주의자로 살아가고 싶어요신자유주의자들이 네가 생각하는 자유는 틀렸어!’라고 비난해도 개의치 않습니다틀렸으면 이를 인정하는 자유주의자. 나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일이라면 익숙한 과거를 거부하고, 과거보다 더 나은 현재를 만들 수 있는 변화에 동참하는 자유주의자.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뇌는 굳어지고, 변화를 거부합니다. 생각을 멈춘 뇌는 자유와 반대되는 비상식적 상황에 침묵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를 보호해 주며 편안하게 해주는 폭신한 이불과 같은 권력에 복종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거대한 이불 속에 갇힌 자유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희곡 전문 서점 <인스크립트> 낭독서 모임: 연기 실험실’ 5월의 희곡]

* 에드몽 로스탕 원작, 김태영 각색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제철소, 2024)

 

* [절판] 미셸 옹프레, 곽동준 옮김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인간사랑, 2011)


 


연극과 뮤지컬에서 연애편지를 잘 쓰는 낭만적인 시인으로 묘사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는 실제로 자유를 사랑했고, 자유를 억압한 권력을 비판하는 글을 쓴 바로크 시대의 지식인입니다







비록 창작물에서 나온 가상의 말이지만, 시라노의 연설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또다시 힘 있는 보호자를 찾아 그를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까? 혼자 힘으로 날아오르는 대신 나무 둥지를 휘감아 돌며 껍질을 핥아대는 덩굴처럼 술수로 기어올라야 합니까? 재력가에게 찬미의 시구를 지어다 바쳐야 합니까? 아니면 어릿광대처럼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길 바라는 천박한 희망을 품어야 합니까? 매일 밥 먹듯 굴욕을 삼켜야 합니까? 허리를 더 유연하게 굽히는 연습을 해야 합니까? 아니, 그것도 나는 싫습니다


 나는‥… 노래하고, 꿈꾸고, 웃고, 지나가고, 혼자 있고, 자유를 즐기고, 똑바로 보는 눈과 떨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마음이 내킬 때 이 펠트 모자를 비스듬히 쓴 채 찬성 혹은 반대를 위해 싸우거나 시를 쓸 겁니다. 명예나 부를 위해 일하지 않고, 달라나 여행을 꿈꿀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어이, 친구. 참나무나 떡갈나무는 못 되더라도 

그에 빌붙어 사는 덩굴이 되진 말게!”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중에서,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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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5-1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투르기! 네가 붙인 직함인감? 암튼 꽤 괜찮게 들린다. 아무나 뭣할 것 같고 너 같이 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급료는 받나? ㅋㅋ

Comandante 2025-05-19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자유주의 통치의 무서운 점은 대다수 사람들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나는 책도 많이 읽고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환경보호에 앞장서니 좋은 일을 하고 있겠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만들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현실에 서서히 굴복하게 만들지요.
소위 3차원적 권력의 작동입니다.
시장 영역 외의 모든 영역도 하나의 이데올로기 국가기관처럼 만들면서, 충실한 복종을 저항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점, 이게 신자유주의 통치의 용서할 수 없는 점입니다.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
케네스 W. 포드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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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물리학자들은 괴롭다. 왜냐하면 양자물리학이 그들을 괴롭히니까양자물리학은 괴상한 과학이다양자물리학은 우리에게 아주 작은 세계를 보여준다. 아주 작은 세계에 아원자 입자들이 돌아다닌다아원자 입자는 원자보다 크기가 작다양자물리학은 아원자 입자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아주 작은 입자들을 측정하는 일은 상당히 까다롭다여전히 정체를 숨기고 있는 입자들도 있다.


과거 물리학자들은 실험과 계산만 잘하면 자연 현상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과학자들이 발견한 법칙들은 늘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보여주는 근거였다확실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물리학을 고전 물리학이라고 부른다그러나 양자물리학은 고전 물리학과 정반대로 세계는 불확실하며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특히 아원자 입자들의 세계는 고전 물리학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말로 이상한 세계다확률이상야릇한 입자들의 세계에서 일어날 현상을 예측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아무리 정밀한 계산을 해도 입자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양자물리학은 고전 물리학을 거스른다. 고전 물리학이 생각하는 빛은 입자 상태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펼친다.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고 말한다. 빛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은 이중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드 브로이(Louis de Broglie)가 발견한 파동-입자 이중성은 양자물리학의 핵심이다빛이 입자임을 알 수 있는 증거(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파동임을 알 수 있는 증거(빛의 회절 현상과 간접 현상)가 동시에 있다. 정확성을 선호하는 고전 물리학은 서로 맞지 않는 두 가지 증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양자물리학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고전 물리학이 깔끔하게 감긴 실타래라면 양자물리학은 헝클어진 실뭉치. 고전 물리학 실타래는 요령(법칙)을 알면 쉽게 풀 수 있다. 그러나 제멋대로 헝클어진 양자물리학 실뭉치는 요령이 통하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매듭을 천천히 풀어야 한다. 양자물리학은 느리게 배워야 하는 과학이다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The Quantum World: Quantum Physics for Everyone)는 양자 실뭉치를 완벽히 푸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양자 실뭉치를 풀지 않고도 가지고 노는 법을 알려준다각 (chapter)이 끝나면 독자와 학생들을 위한 복습 문제와 심화 문제가 나온다부록으로 문제 해답이 실려 있다모든 문제를 다 풀어봐야 할 의무가 없다. 관심 있는 문제 몇 개 선택해서 풀어보면서 양자물리학을 천천히 배울 수 있다.


학생들에게 물리학을 잘 가르쳐주기로 유명한 케네스 포드(Kenneth W. Ford)도 양자물리학에 두 손을 든 과학자다그는 양자물리학을 기괴한 이론이라고 운을 떼면서도 아원자 입자들을 설명하는 데 성공한 이론이라고 말한다사실 고전 물리학자와 양자물리학자들을 괴롭힌 건 아원자 입자들이다. 입자들이 계속 발견될수록 양자물리학은 무럭무럭 자랐다. 고전 물리학의 키를 넘어선 양자물리학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물질의 기본 입자라는 오래된 믿음을 무너뜨렸다. 고전 물리학의 편안한 그늘에 벗어난 젊은 과학자들은 물질의 기본 입자인 원자를 쪼개기 시작했다. 그 속에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들이 있었다.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 원서2004년에 출간되었다. 번역본은 2008년에 출간되었고, 책 이름은 양자 세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였다. 2018년에 이름과 앞모습이 바뀐 개정판이 나왔다. 올해가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 이 뜻깊은 해에 맞춰 앞모습만 바뀐 책이 다시 나왔다. 어떻게 보면 개정 2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의 겉모습만 바뀐다고 해서 개정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 번역자, 편집자는 책 속에 있는 내용 중에 잘못 알려졌거나 시간이 지나서 생명력을 잃은 상식이 있으면 고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과거의 책을 단 한 번도 교정하지 않은 채 표지만 바꾼 책은 개정판이 아니라 독자를 속이는 개판이다구판에 남아 있는 오탈자도 고치지 않고 내놓은 개정판도 대충 만든 개판이다.


원서는 2012년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가 검출한 힉스 보손 입자가 발견되기 한참 전에 나온 책이다. 원서를 번역한 김명남 번역가는 자신이 직접 쓴 서문에 원서 출간 후에 나온 2012년의 성과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 책을 딱히 고칠 데가 없이 좋은 양자 교과서라는 역자의 자화자찬은 동의할 수 없다.


2004년 원서에는 원자 번호 114’원자 번호 118’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당시에 두 원소의 실체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오랜 실험과 관측을 거친 끝에 새로운 원소로 판명되면 원소에 이름이 붙여진다.



* 224




 

 실제로 몹시 무거운 원소들 가운데 원자 번호 114(아직 이름이 없다)의 수명이 약 30초 정도로 제일 길다. [중략]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무거운 원소는 원자 번호 118이고, 탐색은 계속되고 있다.



* 242, <도전 문제>




 

4. 이 책의 출간 이래,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거나 명명된 것이 없는지 조사해 보자.

 

 


* 414, <부록>





4번 문제 해답: (아쉽게도 2008년 현재는 없다.)



이 책의 문제 중 하나는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었는지를 묻는 것인데, <부록>의 해답에는 ‘2008년 현재는 없다라고 되어 있다


2012년에 원자 번호 114의 정식 명칭플레로븀(flerovium)으로 확정되었다. 원소 기호는 FI이다. 2016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원자 번호 118번의 이름은 오가네손(Oganesson, 원소 기호: Og)이다.[주1]


‘The Amazing Randi’라는 별명을 가진 마술사로 활동한 회의주의자 제임스 랜디(James Randi)인쇄된 이야기를 접할 때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주2] “전문가가 그렇게 말했다.”,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 우리는 전문가와 그들이 쓴 책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사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회의주의자는 책과 신문에 나온 이야기를 무조건 사실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권위가 된 지식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검증해야 한다.

 


* 46





중력은 본질적으로 약하지만 언제나 인력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중력은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보다 제일 약하다. 하지만 중력은 질량이 있는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면서 생기는 힘이 아니다. 중력은 질량이 있는 물체가 시공간을 휘거나 구부리면서 생기는 부산물이다.[주3]







포드는 2011년에 양자물리학과 관련된 책을 더 펴냈다책 이름은 <101 Quantum Questions: What You Need to Know About the World You Can’t See>번역본 이름은 양자: 101가지 질문과 답변(이덕환 옮김까치, 2015)이다전작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에 다룬 양자물리학의 주요 개념들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 쓴 책이다








[1] 참고문헌: 오시마 켄이치, 원형원 옮김, 곽영직 감수 알수록 쓸모 있는 원소 118(Gbrain, 2020), 171, 173쪽.

 

피터 워더스, 이충호 옮김 원소의 이름: 신비한 주기율표 사전, 118개 원소에는 모두 이야기가 있다(윌북, 2021), 58쪽.





 


[2] 제임스 랜디, <여전히 사이비 과학과 회의주의의 길> 중에서, 한국 스켑틱 편집부 엮음, 김보은 · 김효정 · 류운 · 박유진 · 장영재 · 하인해 옮김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 (바다출판사, 2025), 281쪽.






 


[3] 참고문헌: 야우싱퉁 · 스티브 네이디스, 박초월 옮김 수학의 중력: 일반상대성이론부터 양자 중력까지, 우주를 지배하는 수학의 최전선 (동녘사이언스, 2025).





 

빌 브라이슨, 이덕환 옮김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 2020), 149빌 브라이슨은 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미치오 가쿠(加來道雄)초공간: 평행우주, 시간 왜곡, 10차원 세계로 떠나는 과학 오디세이(박병철 옮김, 김영사, 2018)를 재인용했다. 

 





<cyrus가 만든 정오표>



2018년 개정판에 있는 오탈자 1가 개정 2판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세상을 떠난 과학자들의 사망 연도가 적혀 있지 않다.


하인리히 로러(Heinrich Rohrer)와 존 휠러(John A. Wheeler)는 개정판이 나온 2018년 이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개정판에는 두 학자의 사망 연도를 표기하지 않았다



* 76





1058 1958





* 130





스티븐 와인버그(1933년 출생)


2021년 별세





* 198





하인리히 로러(1933년 출생)


2013년 별세




* 363




 

존 휠러(1911년 출생)


2008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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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5-05-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티븐 와인버그가 별세했는지 모르고 있었네요. cyrus 님 꼼꼼하신 모습에 늘 감탄합니다~

cyrus 2025-05-19 06:35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학자들의 별세 소식을 한 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거든요. 그래도 착각할 수 있어서 다시 한번 확인해요. ^^

페크pek0501 2025-05-1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자물리학을 공부해야겠단 생각으로 장바구니에 담아 둔 책이 있어요. 읽는 게 어려울 것 같아 망설여지더라고요. .

cyrus 2025-05-19 06:39   좋아요 0 | URL
양자물리학 관련 책들이 아주 많아서 이 중에 몇 권 골라서 읽기가 쉽지 않아요. 좋은 책 딱 한 권 선택해서 읽었는데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거든요. 책 읽기 전부터 어려워요. ^^;;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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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6월의 세계 문학





소크라테스(Socrates)지혜를 사랑한(philosophy) 말쟁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어떤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주1] 그는 자신을 훈계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신중하게 생각했고, 행동했다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Plato)은 이 신적인 존재를 다이모니온(daimonion)’이라고 불렀다. 다이모니온은 철학 하는 수호신이다.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아편을 사랑한 글쟁이. 치통과 위장병은 궁핍한 생활로 허약해진 드 퀸시를 괴롭혔다. 한동안 잠잠했던 병은 불쑥 튀어나와 드 퀸시의 몸과 마음을 들이쑤셨다. 아픔을 참지 못한 드 퀸시는 아편을 자주 마셨다. 드 퀸시가 살았던 19세기 영국 사회는 지금과는 다르게 아편에 관대했다. 아편은 약국에 가면 구할 수 있는 진통제였다. 하지만 아편은 야누스(Janus)의 얼굴을 가진 마약이다. 통증이 조용해지면 소란스러운 금단 증상이 생긴다. 드 퀸시는 불면에 시달렸고,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다. 이렇듯 정신이 어지럽거나 알 수 없는 불안이 덮치면 아편을 찾았다. 드 퀸시는 아편에 절인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세상에 알리는 글을 썼다. 그 글이 바로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약칭 고백’)이다.


고백은 드 퀸시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글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괴롭힌 글이기도 하다. 드 퀸시와 알고 지낸 시인 새뮤얼 콜리지(Samuel Coleridge)도 아편 중독자였는데, 그는 아편을 미화한 고백을 비난했다. 예전부터 아편 남용의 문제점을 주장한 의사들도 고백의 비난 행렬을 멈추지 않았다. 19세기 영국 사회는 변하고 있었다. 고백이 발표된 이후부터 아편을 관대하게 바라보던 여론이 줄어들었고, 대중의 아편 남용이 사회를 좀먹는 문제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도덕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 지식인들은 고백이 아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아편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드 퀸시는 고상한 비평가들의 반응에 맞서서 변론했다. 그는 아편 중독 문제의 원인을 무조건 고백탓이라고 몰아세우는 집단 심리를 비판했다.


드 퀸시는 아편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고통과 불행에 초연한 삶이다. 고통이 아예 없는 삶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편은 일시적으로 고통을 가라앉히게 해준다. 아편의 약효가 사라지면 고통이 다시 생긴다. 드 퀸시는 가난한 부랑자로 살아온 시절이 무척 힘들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매춘부 앤(Anne)과 함께했던 가난한 시절을 그리워한다. 앤은 드 퀸시에게 선심을 베풀고, 지쳐서 거리 한가운데서 죽을 뻔한 드 퀸시를 살려주었다. 드 퀸시는 아편 중독에 관해 고백하기에 앞서 앤이 어떤 인물인지 소개한다. 앤은 드 퀸시의 은인이자, 드 퀸시에게 고통과 불행을 견디는 법을 알려준 수호신이었다.


아편쟁이생계형 글쟁이는 지금까지도 드 퀸시를 졸졸 따라다니는 명함이다. 이 명함을 치우면 철학쟁이드 퀸시를 만날 수 있다. 드 퀸시는 철학을 혼자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철학 저서를 쓰고 싶어 했다. 드 퀸시는 고백에서 종종 자신을 철학자인 것처럼 언급한다. 그는 성별, 신분, 학벌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어울리는 소크라테스 풍대화를 좋아한다고 했다(예비 고백, 47).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아무에게나 다가가서 먼저 질문을 던지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의 삶,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아편을 마시는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품성. 고백》에서 드러난 드 퀸시의 삶의 자세는 플라톤이 미친 소크라테스라고 평가한[주2] 거리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를 떠올리게 한다.


드 퀸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 아닌 겨울이라고 했다(『아편의 고통으로 들어가는 말』, 124~125쪽). 역시 고통을 견딜 줄 아는 사람답다. 남들은 따사롭고 편안한 봄을 좋아하지만, 그는 폭설과 한파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살려고 한다.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Seneca)고난과 불행을 차분히 견디면서 사는 삶은 결국 우리 정신을 강인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주3] 고대 그리스 · 로마 고전을 즐겨 읽은 드 퀸시는 고백에 세네카를 인용하지 않았지만, 그는 세네카처럼 살았다.

 

니체(Nietzsche)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다.[주4] 아편은 드 퀸시의 몸을 갉아 먹으면서 죽였다. 하지만 철학을 사랑하는 정신은 죽이지 못했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철학을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가? 드 퀸시는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74세에 눈을 감았다). 드 퀸시를 강하게 만든 것은 아편과 철학이다.








[1]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31d, 79~80(강철웅 옮김, 아카넷, 2020). ‘다이모니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루이-앙드레 도리옹의 소크라테스(김유석 옮김, 소요서가, 2023)을 참조할 것.

 

[2]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6<견유학파>, 518(김주일 · 김인곤 · 김재홍 · 이정호 옮김, 나남, 2021).

 

[3] 세네카, <섭리에 관하여> 4, 22~23(김남우 · 이선주 · 임성진 옮김, 세네카의 대화: 인생에 관하여, 까치, 2016).

 

[4] 니체, 우상의 황혼, <잠언과 화살>, 14~15(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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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07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이 한국에도 벌써 번역되었군요.개인적으로 이책은 셜록홈즈가 왜 아편중독이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지식같은 설명으로 언틋본기억이 납니다.마약이아닌 기호식품으로써의 아편을 다룬 책이라고 들었는데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고 싶군요

cyrus 2025-05-11 09:46   좋아요 0 | URL
홈스가 사건 해결을 위해 아편굴에 위장 전입한 일을 언급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본인 말로는 아편을 피우러 간 게 아니라고 해명해요. <네 개의 서명>에 홈스가 단순히 심심해서 코카인을 복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의 말을 믿으면 홈스가 아편을 복용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심심해서 약물을 즐기는 홈스가 아편을 그냥 지나쳤을지 위험한(?) 상상을 해보게 돼요. ^^;;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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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문학 속으로>

7월의 책





지금, 민주주의는 아프다. 기생 정체(政體)가 민주주의를 아프게 한다기생 정체는 민주제에 기생한다. 건강한 민주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인 국민의 기본권, 인권, 다원성을 보장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은 민주주의 사회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영양분이다. 기생 정체는 민주적 영양분을 빨아 먹는다







영양분을 빼앗긴 민주주의는 시름시름 무너지면서 죽는다(Democracies Die). 민주주의를 죽이는 기생 정체의 정체(正體)는 극단주의다.







기생 정체에 흡수당한 정치는 극단주의자와 손잡는다. 극단주의자는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적으로 규정한다. 기생 정체의 규모가 작다고 얕보지 마시라. 소수의 기생 정체는 다수의 의견을 뭉개 버리는 소수의 폭군(Tyranny of the minority)’이다. 극단주의자는 자신을 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민주주의가 아플 때 내는 신음을 선명하게 들려주는 청진기와 같은 책이다. 전자의 책이 독재자를 잘못 만난 민주주의의 전조 증상들을 보여준다면, 후자의 책은 민주주의가 무너졌을 때 극단적 소수가 소수의 폭군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당은 선거에 패배하면 쓰라린 결과를 받아들이고,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전략을 세운다. 하지만 극단주의자들의 정당은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선거에 승리한 야당을 불법 선거를 시도한 반민주적 세력으로 몰아세운다.


극단주의자와 친한 민주주의자는 표면적으로 충직한민주주의자. 그들은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치적 영양분을 제거하는 극단적 소수의 그릇된 행보를 묵인한다권력이 극단적 소수에 집중되어 있으면 다수 의견은 통제당한다소수의 폭군은 자신을 비판하는 정당과 여론, 민중을 폭력으로 응징한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극단적 소수와 그들을 감싸는 미국 정치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을 알려준다. 이 책을 만난 독자는 극단주의에 빠진 정치적인 그들’의 속셈을 간파하면서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를 비판하는 것은 쉽다. 시민은 비정치인이지만, 정치적 견해를 말하면서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적인 개인이다. 멀찍이 서서 극단주의적 정치인을 비판하는 일에 익숙한 정치적인 개인은 스스로 비판하고 반성하는 기회를 놓친다.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생각이 꽉 막힌 뇌가 어떻게 극단주의에 쉽게 빠지는지를 보여준다경직된 뇌는 극단주의에 취약하다뇌가 딱딱한 사람은 자기 생각이 틀렸어도 바꾸지 못한다민주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극단주의에 쉽게 빠지지 않을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극단주의는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정치적인 개인에게도 극단주의적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고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정치적인 개인은 표면적으로 충직한민주 시민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져서 극단주의자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가지각색 생각을 쭉쭉 펼치지 못하는 사람이 극단주의에 잡아먹히면 극단주의자로 만들어진다.






<cyrus가 만든 주석>




* 86






 정부는 정적을 겨냥해서 선택적으로 법을 집행할 수 있다. 여기서 정부는 합법적으로 움직이지만 오로지 정적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에서 부당한 방식이다. 다시 말해 법을 무기로 삼는 것이다. 페루의 독재자 오스카르 베나비데스(Óscar Benavides, 1933~1939)[]는 이런 말을 남겼다. “친구에게는 모든 것을, 적에게는 법을.”



[] 베나비데스는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두 차례(38, 42) 대통령을 지냈다. 38대 대통령 임기는 1914~1915년이다. 책에 적힌 연도는 제42대 대통령 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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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5-05-05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은 소수의 폭정이라는 원래 제목이 훨씬 나은 것 같네요.

cyrus 2025-05-06 13:11   좋아요 0 | URL
책 제목을 전작의 제목이 생각나게끔 만든 것 같은데, 제목이 길어서 입으로 책 제목을 말하면 틀려요.. ㅎㅎㅎ 막상 책 제목을 말하려고 하면, 생각이 안 나요... 제목 말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극단적 소수’뿐이에요. ^^;;

transient-guest 2025-05-05 0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이나 미국 아니 전 세계적으로 극우가 단결해서 난리를 치는 이런 시대에 뼈를 때리는 책이네요 언젠가 구해봐야죠

cyrus 2025-05-06 13:13   좋아요 1 | URL
시간이 지나면 상황에 따라 극단주의의 노선이 조금씩 달라질 거예요. 이런 비슷한 책들이 많이 나와야겠어요. ^^
 
수학의 중력 - 일반상대성이론부터 양자중력까지, 우주를 지배하는 수학의 최전선
야우싱퉁.스티브 네이디스 지음, 박초월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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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지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삶은 고통스럽다고 했다. 어떤 욕망을 충족하려면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만 한다. 우리는 노력한 끝에 욕망 하나를 충족시키지만, 또 새로운 욕망이 나타난다욕망을 폭식하는 인간은 자기 자신마저 먹어 치운다.


에릭 와이너(Eric Weiner)는 기차 타고 철학 여행(The Socrates Express)을 한 작가다. 그는 고통스러운 삶을 잊기 위해 음악을 듣는 쇼펜하우어를 만난다쇼펜하우어는 사는 게 힘들면 예술을 즐기라고 했다. 염세주의 철학자로만 알려진 그는 로시니(Rossini)의 음악을 플루트 연주용으로 편곡했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플루티스트음악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쇼펜하우어가 제일 행복해 보인다와이너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를 중력과 같다고 주장한다.[주1] 그는 의지를 의 형태로 본 것이다그러나 중력의 진정한 실체를 이해한다면 의지라는 힘을 중력과 동일한 의미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중력은 힘이 아니니까!


우리는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중력(重力)이라고 배웠다. 중력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예시가 나무에 달린 사과가 땅으로 툭 떨어지는 현상이다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이유를 묻는다면 대부분 사람은 지구의 중력이 사과를 힘껏 잡아당겼다고 대답할 것이다중력을 어렴풋이 배운 사람들은 중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중력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세지 않다.


세상 전체와 모든 물질을 구성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할 기본 상호작용(fundamental interaction)이 있다. 한때 기본 상호작용을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네 가지 힘은 강한 상호작용(강한 핵력, 강력), 약한 상호작용(약한 핵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이다. 네 가지의 기본 상호작용 중에 힘의 세기가 가장 큰 것은 강한 상호작용이다. 그다음이 전자기력, 약한 상호작용, 중력 순이다. 중력이 기본 상호작용 중에 제일 약하다.


중력은 너무 약해서 관측이 쉽지 않으며 연구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물리학자들은 수학의 도움을 받아 중력의 실체를 밝힐 수 있었다물리학자들은 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수식을 사용했다그런 다음에 실험이나 관측을 수행해서 수식을 검증했다. 사실 몇몇 물리학자는 수학자들과의 협업을 반기지 않거나 수학의 중요성을 간과하곤 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Einstein)도 처음에 중력을 연구했을 때 수학이 자신의 연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시간이 지나서야 수학의 가치를 깨달았고 중력의 실체가 힘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보다 바이올린을 먼저 배웠다고 말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바이올리니스트연구하고 생각하는 일은 고통의 감옥이다. 풀어야 할 문제가 계속 생긴다. 음악을 즐기는 아인슈타인은 생각이 막히면 고통의 감옥에서 빠져나와 바이올린을 켰다.


수학도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처럼 어려운 문제 앞에서 쩔쩔매는 과학자들을 위로해 준다. 때로는 물리학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아이디어까지 준다수학의 중력은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화음을 내는 물리학과 수학의 앙상블(ensemble)을 들려준다물리학이라는 울타리에만 갇힌 과학자들은 수학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수학자들은 실험해서 결과를 확인하는 것보다 계산하면서 간결한 수식을 도출하는 연구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수학이 물리학의 발전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별개의 개념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3차원 공간에 1차원 시간을 더한 4차원 시공간을 제시했다. 4차원 시공간은 시간과 공간이 섞여 있다4차원 시공간 속 물체는 끊임없이 변하며시공간으로 이루어진 우주 또한 변한다사실 시공간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독일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 그는 특수상대성이론을 기하학적 관점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질량이 있는 물체가 움직이면 시공간도 움직인다. 이때, 시공간은 구부리거나 휘어진 상태가 되는데, 이것을 곡률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정체가 시공간 곡률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주장했다. 중력은 힘이 아니라 에너지의 형태에 가깝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실체를 증명하는 중력장() 방정식을 도출한다. 이 방정식이 그 유명한 ‘E=mc2’휘어진 공간비유클리드 기하학(Non-Euclidean geometry)이 주로 탐구하는 개념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우리가 느낄 수 없는 휘어진 시공간을 명쾌하게 풀어 주는 수학적 도구다.


물리학과 수학의 앙상블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중력의 실체와 중력파의 존재를 증명한 수학은 천체물리학자들의 블랙홀 연구에 합류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학이 만난 과학 문제 중에서 해결 불가능한 난적으로 손꼽히는 것이 양자 중력연구. 양자 중력은 양자역학으로 중력을 설명하는 물리학 분야다. 양자 중력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앙상블을 시도하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이론은 동시에 성립할 수 없는 관계라서 현재까지는 만족스럽지 못한 불협화음만 나오고 있다.


두 이론의 음이 서로 안 맞는다고 해서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대한 미지의 우주를 알아내고 싶은 지식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다. 수학을 공부해서라도 물리학의 난제를 풀려고 하는 과학자들의 의지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물리학과 수학의 앙상블은 끝나지 않는다.


ensemble is possible.

     







<cyrus가 만든 주석>

 

 

  

  

[1] 에릭 와이너, 김하현 옮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크로스, 2021), 156.




* 45, 옮긴이 각주





영국[주2]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2]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스코틀랜드 출신이다.





* 110





 

베소 미켈레 미켈레 베소(Michele Besso)



* 152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으로 둘러싸인 구는 오늘날 사건 지평선[3]이라고 부른다. 한 번 넘어가면 돌아올 수 없는 지점 또는 표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3] 사건 지평선의 실제 형태는 구()의 표면이다. 그래서 정확한 명칭은 사건 지평면이다. 그렇지만 학계와 대중은 부정확한 이름에 익숙해서 사건 지평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참고문헌: 브라이언 콕스 · 제프 포셔, 박병철 옮김, 블랙홀: 사건 지평선 너머의 닿을 수 없는 세계, RHK,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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