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마이리뷰 당선작

8점
차이가 혐오로 변하는 디스토피아적인 세상 - scott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1788년 1월 26일 영국의 군인이자 식민지 행정관인 아서 필립은 11척의 배에 1500명의 선원을 태우고 1년을 탐험한 끝에 거대한 대륙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다.허허 벌판의 빈 땅 '시드니'에 행정관 아서 필립과 천 오백명의 선원들이 첫 발을 내딛고 나서 이 호주 대륙에 영국인들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영국은 첫 번째 이주민 상선에 포화 상태인 감옥의 죄수들을 가득 태워 보냈다.영국의 감옥 죄수들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도착 하자 마자 사고가 터지기 시작했다.백인 죄수들은 눈에 보이는 데로 호주 원주민 남자들은 죽여...

8점
우주여행의 과학부터 여행하기 - 로렌초의시종
<우주여행자를 위한 생존법>
우주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내가 얼마나 잘 잊는지, 무척 잘 아는 과학자가 쓴 책이다. 시시때때로 “얼마든지 나가보세요, 돌아오지는 못하겠지만요.”라는 식으로 말한다. 현대 과학이 지금까지 규명한 우주의 경이를, 독자들의 우주여행을 전제로 구성했다는 이 책의 개성은, 그 모든 지식의 결론이 다채롭지만 일관된 경고라는 데서 가장 선명하다. “그래서 죽을 수도 있답니다, 우주에서, 어떻게든.” 이제 인류가 우주에서 무엇을 알아내야 하고, 현재까지 파악한 우주는 어떠한지에 관한, 이 모든 지식이야말로 우주에서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목숨을 잃...

10점
[마이리뷰] 모스크바의 신사 - 물감
<모스크바의 신사>
나와 조금도 겹치지 않는 소설 속 인물에게도 몰입과 공감이 가능한 것은, 그 안에서 내 것과 닮은 구석을 어떻게든 발견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각각 살아온 독자마다 ‘이건 마치 내 얘기‘라고 자신 있게 말들 한다. 그런 이유로 <모스크바의 신사> 또한 나님이 줄곧 느껴오던 감정들과 겹친 부분 위주로 공감하며 읽었음을 밝혀둔다.​이 블로그는 내가 중학생이던 2004년 7월 17일에 개설했으며, 2015년부터 독서 기록과 일기 쓰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다. 블로그에 썼던 최초의 일기가 뭐였냐면, 사라져 가는 ...

8점
비움으로 얻어진 순수한 관조 - 페넬로페
<단 한 번의 삶>
대책 없이 물에서 나와 여기저기로 팔딱팔딱 뛰는 생선 같던 젊은 날의 김영하 소설을 젊은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와 내가 거의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마트한 세상이 약간 고개를 내밀 때, 아직은 촌스러운 낭만과 전근대적 성향이 남아 있었을 때의 김영하 소설은 다른 작가의 글과는 많이 달랐다. 한마디로 신박했다. 민족이나 모든 사람을 위한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그냥 개인이 주인공인 그의 소설이 재미있었고, 공감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동안 김영하 글쓰기는 변화되어 갔으며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어갔다. 치열하게...

8점
사실주의적 ‘벌레스크(Burlesque)‘ 선언 - beatrice1007
<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사실주의적 '벌레스크(Burlesque)' 선언-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1839.​​6개월 전 읽었던 [두 도시 이야기](1859)는 내가 읽은 찰스 디킨스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아마도 영문학사에서 19세기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 1812~1870)는 16세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꼽히는 영국의 대표적 작가일 것인데, 막상 영문학 전공자인 나는 어릴적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1843)을 읽은 게 그의 작품의 전부였다.​영어가 좋아서 대학의 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영자 신문사...

8점
죽음의 씻김굿 - kinye91
<죽은 자의 꿈>
쓱쓱 읽힌다. 재미 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 된다. 얼마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아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꺼번에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무서워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이야기가 바로 귀신 이야기이니, 무섭고도 재미 있는 이야기가 바로 귀신 이야기다.이 소설도 일종의 귀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귀신 이야기? 귀신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귀신이 무엇이지? 정말 존재하나? 이런 의문을 가지면 소설을 소설로 읽지 못하게 된다. 문학은 문학으로서의 길을 가기 때문에, 문학에서 귀신이 필요하면 귀신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다....

10점
압도적인 폭력이 자아내는 절망 - 바람돌이
<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이 이야기를 고통에 잠식 당해 가는 여자 영혜와 그 고통을 지켜보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혜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로지 꿈 이야기를 할 때만 나레이션으로 처리된다. 등장인물들 대부분은 영혜의 고통이 무엇 인지에 관심이 없다. 독자도 영혜의 고통은 오직 그 나레이션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주인공 영혜가 자기 목소리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의 진행을 따라 가다 보면 영혜의 고통의 연원을 짐작할 수 있다. 가부장적인 ...

10점
최후의 승자 인공신경망, 그 80여 년의 (긴) 역사 - 김필산
<기계는 왜 학습하는가>
인공지능은 ‘기계 학습’인가? 기계는 학습하는가?아마 2012년에 이미지넷 ILSVRC라는 이미지 분류 대회에서, 제프리 힌턴 교수와 그의 제자들의 딥 러닝(Deep learning, 심층 학습) 알고리즘이 뛰어난 성과를 거둔 시점부터였을 것이다. 이제 근 10년이 좀 넘게 지났는데, 이 세계는 그때로부터 조금 다른 모습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게 되었다. ChatGPT 류의 거대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 그의 이론적 기반인 Transformer, 그림을 그려 주는 Dall-E...

8점
한낮을 달구는 유월의 무더위에도 - 꼼쥐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요즘 산에는 비릿하고 은근한 밤꽃이 피어나고 있다. 자연의 섭리는 때론 놀라운 데가 있어서 초봄에 피는 꽃들은 향기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숲 속의 다른 생물을 자극하지 않는다.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많은 동식물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산수유꽃, 벚꽃 등 봄을 알리는 꽃들이 금세 피었다 지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봄이 여러 봄꽃들이 경쟁하듯 피어날 즈음이 되면 그 향기도 덩달아 짙어지게 마련이다. 조팝꽃이며, 아카시아꽃이며 심지어 찔레꽃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의 꽃들은 꽃의 화려함보다는 자신의 향기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10점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테일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아이고, 늙고 힘들어서 농사 못 헌다고 시골마다 땅을 내논다는데, 시상에... 팔순 너머에 농사를 한다고 그걸 또 사는 사람이 있네. 아부지한테 늙어 편하게 사시라구랴. 머더러 힘들게 농사를... 쯧쯧. 농사 지긋지긋혀." 61" 남 일이 아니다. 함께 늙어가는 부모님과 밭농사라니. 그것도 칠할 정도를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 낯선 동네로 거처를 옮겨서. 있는 땅도 헐값이든 제값이든 팔아 없애라고 성화를 부리고 있는 나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세대에게는 그 분포가 얼마...

6점
국악에 대한 많은 사실들 - 닷슈
<처음 만나는 국악 수업>
한국의 대중음악은 세계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자국의 음악이 그 나라를 넘어 세계에서 이 정도로 흥행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더구나 우린 변방인 아시아가 아닌가. 그치만 그 이름은 한국음악이 아닌 K pop이다. 글자 그대로 외국, 특히 미국음악을 들여와 우리의 색을 입힌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진정한 한국의 음악은 국악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음악을 단순히 음악이라 하지 않고 국악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앞에 별도의 지칭이 붙었다는 것은 이미 즐기고 듣는 생활음악의 자리를 서...

8점
걷기의 방식 - 거리의화가
<걷기의 인문학>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걷기는 여러 효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햇빛 아래에서 걷는 일은 우울감을 떨쳐버리는 데 정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어떤 일에 부딪치거나 관계상으로 어려움이 생길 때면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걸었다. 그런데 나뿐 아니라 과거의 문인들이 걷기를 예찬하고 있다.어쩌다보니 솔닛의 에세이를 오랜만에 읽었다. 처음 그녀의 에세이를 추천 받아 읽고 반해서 더 많은 작품을 읽어봐야지 했었다. 그러나 다른 책들을 읽느라 또 한동안 방치 상태가 되었다. 무심코 책장에 꽂아둔 이 책(구입한 것은 한참 전인데)을 ...

8점
자유와 잃어버린 유산을 되찾기 위해 싸운다 - 레삭매냐
<울지 마, 아이야>
한 시대가 가고 있다. 우연히 응구기 와 티옹오(1938.1.5.~2025.5.28.) 작가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인스타를 통해 알게 됐다. 기록을 찾아보니, 응구기 선생의 책은 <한 톨의 밀알> 읽은 게 전부인가 보다. 그래서 그를 추념하는 의미에서 역시 책쟁이는 고인의 책을 읽는 방식을 선택했다. 응구기 선생은 총 8편의 소설을 썼는데, 그의 첫 작품이 바로 <울지 마, 아이야>였다. 어제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 이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피의 꽃잎들>과 <십자가 ...

10점
돌아보고 돌아보면 처음의 그 기억에 다다를 수 있을까 - 제코루
<치유의 빛>
강화길 작가의 [치유의 빛]을 읽었다.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다이어리앱을 열면 무심코 작년, 제작년 그리고 그 이전의 같은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무런 일정이 표시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거나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과 만남의 기록이 단출하게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은 그렇지만 어떤 특정한 날은 다이어리를 살펴보지 않아도, 아니 그 부근의 날력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아직은 언제가는 좀 더 여유롭게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막연한 두려움의 감정을 지금껏 모르고 ...

8점
금복이는 검은 고양이 - 희선
<금복이 이야기 1>
지금 한국에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은 어느 정도나 될까. 꽤 많겠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고 괴롭히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고양이 먹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길고양이한테 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 보고 고양이한테 먹을 거 주지 마라 하는 사람도 있겠다. 길고양이 숫자도 많은 듯하다. 늘 잘 보이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걸 찾으러 나오겠다. 조선 시대에는 고양이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조선 시대에도 고양이 좋아한 사람 있을 거다. 화가에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 해도 고양이를 방에서...

10점
아직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 장화원
<이민자들>
📚W.G. 제발트, 『이민자들』 / 독서 기록<아직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매우 경솔하게도,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그들만의 ‘특별한’ - 소설이라면 흔히 기대하게 되는 - 이민 이야기를, 나와는 철저히 분리된 채, 그저 청자로서 듣게 될 거라 단정했다. 하지만 소설 속 이들은 공간의 이탈을 넘어 정체성과 존재 기반을 잃어버린, “일종의 상실”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본질적인 결핍을 품은 존재들. 그리고 화자는 조용히 무너져가는 이들의 행로를 그저 묵묵히 짚어간...

10점
추락 - 꼬마요정
<추락>
진실과 화해는 누구에게 허락된 것인가.작년에 <지옥에서 온 판사>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인간의 영혼이 지옥에서 예기치 않은 난동을 부리다가 악마인 유스티티아에게 불똥이 튀어 유스티티아는 대악마(?)의 명으로 인간 세상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 임무가 못된 짓을 했음에도 참회하지 않는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일이었는데, 유스티티아는 이 악인을 데리고 가기 전 자신이 한 짓을 그대로 돌려받는 형벌을 내렸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보다 더 통쾌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솔직히 잠깐 그 고통을 ...

8점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차원 이동 - Falstaff
<킨>
. 내 일찍이 옥타비아 버틀러 <킨>의 유명세를 알았건만 이제야 이 책을 읽은 것은, 책방 광고문에 과학소설, SF라는 문구가 자꾸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SF 장르를 무조건 경원하는 건 아니다, 라고 믿는다. 읽기는 읽는데 즐기지 않는 독자의 수준으로 말하자면 브래드버리, 스트루가츠키 형제, 스타니스와프 렘 등 지구 대표선수들의 작품은 즐겁게 읽었고, 지금도 열심히 읽으려고 (나름대로) 애쓴다. 근데 <킨>은 독자들이 워낙 열광을 해서 그랬는지 영 손에 잡히지는 않더라는 것. 그리하여 도서관의 관...

10점
세 번 부를 그 이름 - 잠자냥
<고독한 카라바조>
오래전 재미나게 읽은 동화 중에 <미운 오리 새끼>가 있다. 여느 오리들과 달리 생겨서, 그런 터에 가장 못난 오리 취급을 받던 그 오리가 나중에 알고 보니 백조였다는 이야기. 스토리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 동화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그 못난 오리가 태어날 때의 장면이다. 그러니까, 알에서 깨어나 눈을 딱 떴는데 눈앞에 있던 오리, 처음 본 그 오리를 당연하다는 듯 엄마라고 생각하는, 본능처럼 받아들이는 그 묘사 때문이었다. 좀 더 세월이 흐른 후에야 그 못난 오리가 처음 본 대상에 품었던 감정이 ‘각인’효과라...

8점
노생거 사원 - 베터라이프
<노생거 사원>
제인 오스틴은 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주 스티븐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인 조지 오스틴은 당시 스티브틴과 딘의 성공회 교구 목사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양털 모직 상업의 오래된 가문의 출신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녀의 모친인 카산드라 리는 저명한 리 가문의 출신으로 신사 계급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1783년에 제인 오스틴과 여동생 카산드라는 앤 콜리에게 교육을 받기 위해 옥스퍼드로 보내졌고, 앤 콜리는 그해 말, 이 자매를 사우샘프턴으로 데려갔습니다. 같은 해, 가을 두 자매는 갑작스런 발진티푸스에 걸리게 되고,...

하지만 몰란드 부인은 귀족과 남작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그들의 일반적인 악행을 헤아릴 수 없었고 그들의 계략으로 딸이 위험에 빠지리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10점
[조승리] 나의 어린 어둠 - 황수진
<나의 어린 어둠>
나의 어린 어둠'이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감성이 아닌 분명히 무언가를 견뎌낸 이야기일 것 같았다. 실제로 이 책은 2025년 6월 출간된 조승리 작가의 첫 연작소설집으로 실명을 앞둔 청소년기를 살아가는 네 명의 화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네 편의 연작소설과 창작기를 다룬 에세이 한 편이 담겨 있다. 각 화자는 시각의 상실이라는 공통된 경험을 기반으로 관계의 붕괴, 미래에 대한 불안, 자존감의 흔들림 등을 겪는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개인적 고통에 머물지 않는다. 장애로 인해 드러나는 가족 내 갈등, 사회적 단절, ...

8점
작품성과 재미를 모두 충족하는 SF소설 - yamoo
<우주 순양함 무적호>
정말 아주 오랜만에 멋진 SF소설 한 편을 읽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SF 소설 중 최고는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와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이었는데, 여기에 스타니스와프 렘의 <우주 순양함 무적호>(민음사, 2022)를 동일선상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 장르 소설에서 보기 드물게 인간 존재론에 대한 심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어서다. 이 작품이 출간된 때는 1964년도다. 60년대에 이러한 구상을 하고 이러한 외계 생명체를 설정할 수 있다는 자체가 경이롭다. 빈말...

10점
결국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 <여수의 사랑> - 새파랑
<여수의 사랑>
N25056"그때 떠오른 것이 고향이었다. 십수 년 동안 돌아갈 생각을 품어보지 않았던 고향이었는데, 막상 하행선에 오르자 정환의 마음은 설레었다. 때는 봄이었다. 정환의 고항은 종착역이었으므로 다소 방심한 채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고향의 변한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한강작가님 작품 읽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첫 단편집인 <여수의 사랑> 이다. 첫 단편집인 데다가 제목 때문에 최근 작품들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작가님은 첫 작품때부터 이미 본연의 색깔이 있었었다. 이 ...

6점
프레임 바깥의 가능성 - umiearth
<호텔 디어 그레이스>
당신이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요? 지금까지 당신이 걸어온 길은 원하던 곳으로 데려다 주었나요? 그런 일은 없었다고요? 그렇다면 여기 호텔 디어 그레이스를 방문해 보면 어떨까요? 호텔 디어 그레이스에서는 자신이 꿈꾸는 삶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방문할 때는 무료, 두 번째 방문부터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비용은 돈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물건입니다. 원하던 삶을 경험하는 비용치고는 굉장히 싼 값입니다. 은혜도 가성비가 훌륭하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선뜻 자신이 왜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물건을 내놓습니다...

10점
말과 글이 시가 될 때 - 나비종
<맡겨진 소녀>
절묘하게 맞아 들어가는 말이 공기를 울리면, 멈춰있던 톱니바퀴가 움직이듯 심장이 반응한다. 영화 <동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의 심장에 박히던 말은 한 단어다. "시!" 몇 년이 지나 어떤 맥락이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 사람 이름은 잊었어도 시인의 가슴에 있다는 눈동자와 입술처럼 각인된 기억이 있다.시를 짓는다는 건 불필요한 언어의 더께를 훌훌 털고 꼭 필요한 말로 출렁이는 리듬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시인은 촌철살인의 언어, 화룡점정의 언어만을 남기기 위해 끊임없이 언어를 조각한다. 고갱이만 남은 언어의 조합은 마...

10점
노름꾼이 쓴 노름꾼 - bookholic
<노름꾼>
사랑하는 딸과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도스토옙스키의 <노름꾼>이란 책을 이야기해줄게.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은 아빠가 몇 편 읽었는데 모두 그 묵직함이 주는 여운은 오래가는 것 같더구나. 책을 쓴 도스토옙스키도 존경스럽긴 하지만, 그 책들마저 존경하고싶다는 생각도 들었어. 물론 아빠가 러시아 문화와 역사를 잘 몰라서,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나중에 그의 책들은 천천히정독으로 다시 한번 읽어볼 생각이란다. 이번에 읽은 <노름꾼>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 중에 하나로...

그런데 나는 빨간색이 연이어 일곱 번씩이나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한 오기가 생겨서 일부러 빨간색을 물고 늘어졌다. 내가 그렇게 한 데에는 자존심도 절반쯤 작용했다고 보는데, 정말이지 나는 앞뒤 가리지 않는 모험으로 구경꾼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아, 이상야릇한 느낌이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전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는데도 별안간 모험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영혼은 수많은 느낌들을 거쳐 왔으면서도 그것들에 의해 충만되는 것이 아니라 자극만을 받은 채 완전히 진이 빠질 때까지 더 많은 느낌들, 더욱더 강렬한 느낌들을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거짓이 아니라 정말인데, 만일 게임의 규칙상 한꺼번에 5만 플로렌까지 거는 것이 허용되기만 한다면 나는 분명히 5만 플로렌을 걸었을 것이다. 주위에서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난리들이었다. 빨간색이 벌써 열네 번이나 나왔다고들 했다. - P206


8점
그들의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는 - 자목련
<엎드리는 개>
연인을 사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랑을 원하는 방식도 그러하다. 분명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이지만 갈구하는 사랑은 같을 수 없다. 사랑이라는 속성이 그렇다. 그래서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게 현명한 사랑이라는 말도 있다. 사랑하니까 뭐든 원할 수 있고 괜찮다고 믿는 사람에게 그건 아니야, 그럴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사랑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말은 해도 사랑에 빠지거나 미치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성적인 판단은 사라지고 순간의 감각과 감정에 취해 그게 전부라고 믿고 만다. 프랑수아즈 ...

10점
[마이리뷰] 아비가일 - 곰돌이
<아비가일>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를 다시 만났다.저번에 읽은 <도어>는 한 인간이 살아가며 겪은 엄청난 사건과 그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극적으로만 표현하지 않았던 점이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는 것 같아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와서 좋았다. 나쁜 평판은 듣고 싶지 않아 타인에게 친절은 베풀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그들로부터 방해받고 싶지는 않은 솔직한 심리 묘사는 세밀했고 따끔했다.삶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일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버겁다. 어쩌면 그래서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인물의 감정이 마...

10점
그 초라한 퇴행, 늙어감이라는 사실의 실체들 - 필리아
<늙어감에 대하여>
상상의 공간에서의 위치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실체감을 지닌 ‘내’가 느끼는 위치로서의 ‘자리’로 체감되는 것의 규명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라고 여겼던 것이 문득 불편과 불쾌로 가득 차올라, 그것을 명료하게 하여야만 이후 삶의 균형 감각을 찾을 수 있다고 강하게 느낀 까닭이다. ‘장 아메리’의 시간이 축적된 몸, 세계 신뢰의 배신감에 몸을 떠는 이 책, 『늙어감에 대하여; 체념과 저항 사이에서』 ‘그것’의 실체를 찾을 수 있으리라며 읽었다. ‘죽음’에 관한 인류의 영원한 고전을 쓴 블라디미르 장(얀)켈...

10점
도시산책자의 뿌리찾기 - 처음처럼
<발터 벤야민과 도시산책자의 사유>
오래 벼르다 읽은 에리히 케스트너의 시집 『마주보기』에서 「사촌의 구석 창문」이라는 시의 주석을 따라가다가 도시산책자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윤미래교수의 <발터 벤야민의 도시산책자와 사유>를 읽게 된 이유입니다.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벤야민의 산책자의 사유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대부분 글이 도시관상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일방통행로』,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베를린 연대기』, 『파사젠베르크』 등이 산책자의 ...

10점
다음에 네가 줄 수 없어도 괜찮아 - blanca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이 제목만 놓고 보면, 쫄깃한 미스터리 소설을 연상시킨다. 굳이 이 인류학 책을 소설에 빗대자면, 주인공 카라마는 오히려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이 인류학 보고서의 중심 캐릭터인 카라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특정 집단을 타겟으로 한 이런 인류학 필드워크 책은 자칫 피상적이고 딱딱한 외부자적 시선이라는 한계를 갖기 쉬운데, 저자이자 조사자인 일본인 여성 오가와 사야카는 실제 그 집단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내밀한 문화와 정서적...

10점
언젠가 나도 이런 삶을 꿈꾼다! - 피오나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정신없이 일의 세계를 유영하다보면 가끔은 수면 위로 나와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을 잊기도 하잖아요. 대충 라면이나 끓여 먹자 싶은 마음이지만 그 마음을 떨치고 텃밭으로 나가는 것이 핵심이자 결정적 고비입니다. 먼저 텃밭에 무엇이 열렸는지 보고 그 채소로 할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를 검색해요. 인터넷에 계신 여러 요리 스승님들의 가르침에 따라 채소를 씻고, 다듬고, 조리합니다. 그러면서 조록조록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싱그러운 채소의 향을 맡고, 나무 도마에 칼이 탁탁탁 부딪히는 감촉을 느끼고, 오묘하게 바뀌는 요리의 색깔들을 봅니다...

10점
인간의 초상 : 추락 - 존 쿳시 - 키치
<추락>
존 쿳시.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작품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두 번 놀랐는데, 한 번은 이른바 '고전'으로 분류되는 책인데도 의외로 술술 읽혀서 놀랐고, 다른 한 번은 문장이 쉽고 내용이 자극적인 소설 대부분이 문제의식이 부족하고 사유나 통찰이 얕은 데 반해 이 소설은 문장이 쉽고 내용이 자극적인데도 문제의식이 뚜렷하고 사유와 통찰이 깊어서 놀랐다. 존 쿳시가 한 작가에게 두 번 수여하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사상 최초 두 번째 부커상을 수상하고(1983년, 1999년), 2003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

8점
예술에서 ‘침묵‘의 효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 젤소민아
<브레송이 말하는 브레송>
Hide the ideas, but so that people find them. The most important will be the most hidden.아이디어는 숨겨두되,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세요.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는 가장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브레송이 한 말이다.이건 단지 그가 천착한 영화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소설에도 더할 수 없이 적절하게 적용된다.소설을 쓰다 보면 인물의 감정과 처한 상황을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강박에 눌린다.그래서 어떻게든 자세히, 상세히 묘사하고 풀어내려 든다.친절해도 너무 친절해진다...

10점
무용의 유용. - 반유행열반인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
-20250628 샌더 엘릭스 카츠. 부록과 주석 빼고도 848쪽이 되는, 발효의 백과 사전 같은 이 책을 조금씩 오래 읽었다. 엄마는 직접 장을 담고 김치를 만들고 채소를 썰어 병에 담아 실온에 방치(?)하곤 했는데, 난 채소에서 오는 식중독이 더 무섭다는 소리를 어디서 주워듣고는, 채소 뿐 아니라 자주 식재료나 조리된 음식물을 내놓고는 깜빡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냉장고에 이거저것 치워버리길 반복했다. 발효책 읽기는 엄마가 정성을 다해 절이고 말리고 다듬고 하는 걸 이해하고 견뎌보기 위한 시도였던 것 같다...

8점
항상 호기심을 켜둘게 - cyrus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4점 ★★★★ A-공부 기계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부 기계는 성적에 미쳐 돌아가네.공부 기계의 연료는 수험서와 문제집이다. 공부 기계는 눈에 보이는 모든 문제에 매달려서 싸운다. 학교는 공부 기계를 제조하는 공장이다. 교사와 교수들은 공부 기계의 머리에 실용적인 학문과 기술 분야를 주입한다. 그래야만 사회에 쓸모 있는 공부 기계를 최대한 많이 만들 수 있다. 팔려 나간 공부 기계는 회사에 쓸모 있는 로봇(robot)이 된다. 로봇은 여전히 공부 기계다. 회사는 로봇을 믿고 강제로 공부를 시킨다.[주1] 로봇은 회사에서 인정...

10점
안녕이라 그랬어 - 김애란 - Breeze
<안녕이라 그랬어>
#안녕이라그랬어 #김애란 #문학동네 계급의 차이는 돈이 아닐까 한다.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 굽신거리고, 나보다 돈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에게 계급 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본인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시선에서 혹은 말에서 은연중에 드러난다. 반대로 나보다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다고 여겼으나 나보다 나은 집으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들어보라. 갑자기 질투의 감정으로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떠한 사정 때문에 이사를 가야 할 형편(그것도 전세로)에 놓였는데, 젊은 부부가 집을 사서 이사 온다는 소식에 조금은 우울해지...

10점
시간의 베틀 위에 필연과 우연과 자유의지로 짜여지는 삶 - 그레이스
<모비 딕>
무한한 상징으로 가득 찬 소설이다. 멜빌이 포경선 선원이었던 경험담으로부터 나왔을 이 작품은 모험담으로 읽기에는 단어, 문장, 장면들의 상징 때문에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첫 문장 “Call me Ishmael.”을 이 책에서는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라고 번역했다. 여러 다른 책에서는 “내 이름은 이슈메일이다.” “나를 이슈메일이라고 불러라”라고도 되어있다. 이 번역을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만큼 이 소설에서 중요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화자의 이름이 이슈메일이다. 이슈메...

10점
놀러 와요, 북유럽살롱 / 휘게 슬로 라이프 - 구름모모
<놀러 와요, 북유럽살롱>
"삶이 우선, 다음으로 공간, 그리고 건물, 반대의 접근은 성공할 수 없다." 덴마크 건축가 얀 겔의 말에 긴 멈춤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는 어떤 패턴을 유지했고 지속하고자 하는지부터 둘러보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삶과 개인의 삶까지 유심히 짚어보게 하는 건축가의 말이다. 괴상한 건물들이 밀집한 지역이 갑자기 등장하면서 선호하지 않는 건물들이 생겼고 이러한 건물들을 지나칠 때마다 그곳에서의 삶은 불안정해 보이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찾지 않는 지역이 되어버린 것을 상기하게 된다. ​마음이 닿는 건물에 공간과 삶이 존재하기 마련...

6점
[율리시스]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 다락방
<율리시스 2>
책을 읽을 때 반드시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찾으려는 건 아니지만, 읽다 보면 아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구나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는 책을 읽는 것 같다 세상의 다른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런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대해서라면 책을 읽으면서 수차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가에 대해 묻고 또 물어도 나는 어떤 답도 할 수 없었고 나는 책을 읽는게 아니라 글자를 읽고 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 때문에 자괴감이 몰려오기를 수차례였다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