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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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는 <1984>와 함께 디스토피아 문학의 쌍두마차로 유명하다. 하여 독서가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나 다름없는 이 작품을 나님은 정말이지 읽고 싶지가 않았다. 이유인즉슨 내가 SF 장르, 일명 이과소설을 극도로 싫어해서 그렇다. 아니, 취향이 아니면 아닌 거지, 싫어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님은 드라마가 빠진 이야기에 흥미를 갖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아무리 작품성이 높다 한들 드라마적인 요소가 없다면 영 매력을 못 느낀단 말이다. 그럼에도 억지로라도 읽은 것은, 요즘 공부하고 있는 책들마다 이 작품을 인용하여 도저히 안 볼 수가 없어서였다. 정신분석학, 사회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서 다루는 이 책의 영향력을 알고자 했지만 워낙 안 내켜서 질질 끌었다 보니 퍽 남는 것도 없다. 아무튼 <멋진 신세계>를 끝으로 SF와는 아주 절연을 해야 쓰겄다.


점수를 짜게 준 것은 순수하게 글이 재미가 없어서였다. 작품성이야 대단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 외의 장면들을 참 지루하게도 풀어간다는 인상만 받았다. 여하튼 워낙 유명하니까 요약은 생략하겠다.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 세계관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과학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오늘날에 와서는, 헉슬리가 염려한 과학기술 진보의 폐해를 모두가 느끼며 공감하고 있다. 사실 과학 자체로는 문제랄 게 없으나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악용되어 병폐를 낳고 있으니 말이다. 진보라는 이름 아래 생겨난 제도와 기술들은 의도한 대로 굴러가는 법이 없는데도 인간은 끊임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에 잠식당한 노예가 된다. 이 악순환의 최종 버전이 <멋진 신세계>의 세계관이라고 보면 되겠다.


근심과 고통, 불행이 사라지고 오직 쾌락만이 지배하는 세상이라. 아직 겪어보지 못한 우리들한테는 어쩐지 거부감이 든다...라고 했다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연민이나 우울에 취약해서 지구 따위 멸망해버렸으면 하는데 말이다. 이렇듯 평생을 고통에 짓눌려온 나 같은 사람들은 번민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가짜 행복 속에 살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 주변인들과 그런 얘기들도 나눈다. 온갖 병치레를 하면서 100세까지 사느니, 건강하게 살다가 한 60세쯤에 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의료기술이 발달한 만큼 고통의 기간도 연장되었다는 뜻이므로, 나 또한 그렇게 골골대면서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 얘기가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문명인들은 죽기 전까지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생명의 유한성도 알지 못하고, 온통 자극적인 문화에만 가치를 두고 살아간다. 이제껏 우리가 중요시했던 가치들은 휴지 조각이 되고, 오로지 자기만의 기쁨과 쾌락과 행복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 작품을 한 10년 전에 읽었다면 모를까, 지금에서는 오히려 나도 그런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현실의 괴로움이 압도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결국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이므로, 나는 모든 현대인의 고통이 다 같다고 본다. 또한 그 고통의 뿌리이자 종착점은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문명의 발달로 더 이상 나와 맞지 않는 이들과 잘 지낼 필요가 없어졌고, 의학의 발달로 건강해진 가족과 이웃들을 챙기지 않아도 되었고, 정보의 발달로 과거에 죽어라 했던 노력의 의미는 퇴색돼버렸다. 과학기술의 진보는 정녕 우리 사회를 더 발전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핵개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보다 더한 작중의 문명 세계는, 시험관으로만 새 생명이 탄생되고 각종 세뇌 학습을 통해 제법 건강한 자아가 형성되고 있다. 그들은 가족, 친구, 동료, 이성 등 인간관계로 고민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도파민 탐색뿐이다. 어떤가, 오늘날의 현대인들과 다른 점이 하나 없지 않은가. 이미 현실은 헉슬리가 그려낸 신세계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멋지다고 할 단계가 아니지만 이미 예견돼있는 미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예로부터 미래를 걱정한 학자들의 주장을 수차례 듣고도 위기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는 멍청이가 되었고, 그로 인해 생겨난 환경문제들로 지구는 다 죽어간다. 이 모든 게 예정된 결과이다.


현대인에게는 업그레이드만 있고 다운그레이드는 없다고 한다. 최신형을 써본 사람은 다시 구형 제품을 찾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기력한 삶을 날려버린 신문물의 맛을 본 인간들은, 그것들로 인해 인간다움을 잃어버렸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과반수가 그래버리면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이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원주민들을 보고 미개하다 말할 자격이 없다. 오히려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월등히 높은 그들의 삶이 훨씬 낫다. 아무튼 나님은 지금 세상에 리셋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언젠가 3차 대전으로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어 멸망하게 되면 그것이 내게는 멋진 신세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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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트루트 헤르만 헤세 선집 5
헤르만 헤세 지음, 황종민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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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여러 가지로 바빠서 도저히 독서할 새가 없었다. 개인적인 일도 있고 해서 답답해진 마음을 달래고자 하여 헤세를 집어 들었다. 항상 느끼지만 헤세의 작품은 영혼이 갈하고 메마를 때 읽어야 한다. 이번 작품도 많은 위로와 울림을 주었는데 아무리 봐도 제목은 다시 지어야 할 것 같다. 제목에 게르트루트는 주인공이 좋아한 여인의 이름인데, 막상 읽어보면 그녀와의 사랑보다도 음악을 통한 주인공의 성장과 번뇌에 더 맞춰져있단 말이다. 아무튼, 옛날 분들이 다 그렇지만 독일 작가들도 제목을 참 못 짓는 것 같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주인공 쿤은 여자친구와 눈썰매를 타다가 사고 난 뒤로 다리 한쪽을 못쓰게 된다. 수술 후 산속 어느 별장에서 있는 동안 음악적 영감이 마구 샘솟아 작곡에 전념하면서 아픔을 달래는 쿤. 그의 재능을 발견한 가수 무오트와 친해지면서 쿤은 프로 음악인의 세계로 향한다. 인기 많고 발도 넓은 무오트 덕분에 쿤의 곡들은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고, 무대에서 쿤의 곡을 노래하는 무오트 또한 날로 유명해져갔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있어서, 기쁨과 만족이 좀처럼 오래가지를 못했다.


쿤과 무오트에게는 ‘여백‘이 있었고, 그곳을 사랑으로 채워넣고자 했다. 그러나 불구자인 쿤은 이성에게 마음을 전하기가 두려웠고, 반대로 무오트는 마음을 여는 법이 없었다. 누구는 표현 한 번 하기도 어려운데, 누구는 여자들에게 상처나 주고 있으니 쿤의 마음이 얼마나 쓰라릴까. 그런 무오트가 괘씸하면서도 막 멀리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불안정한 영혼이 여러모로 쿤 자신과 닮은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이번에도 헤세 표 공생관계인가 했더니, 게르트루트와의 불투명한 삼각관계로 이어지며 예정된 파국을 맞게 된다.


주인공은 오페라를 위한 곡 작업에 매진한다. 때마침 나타난 여가수 게르트루트가 쿤의 곡들을 불러주면서 작업에 도움을 주게 된다. 무오트가 쿤의 음악성을 알아봐 주었듯이, 쿤은 게르트루트의 음악성을 발견한다.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끝내 그녀를 사모하게 돼버린 쿤. 그녀는 친구 사이로 남기를 원했고, 쿤도 기분 좋게 체념하였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커다란 나의 단점과 열등감. 차이고서 또 한 번 검증된 나의 현주소. 그래, 슬프긴 해도 여기까진 괜찮았다. 이후 그녀는 곡 작업에 합세한 무오트에게 반해버리고 만다. 슬픈 티도 낼 수 없고 축하해 줄 수도 없는 착잡함과, 내 음악에 협력해 준 고마움들이 뒤엉켜 어쩌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 쳐낼 수도 없는 이 애매모호한 관계를 보면서 옛 생각에 그만 눈물을 흘렸다.


한때는 예술가들의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이 참 부러웠었다. 하지만 그들이 무언가에 기대지 않고선 달랠 길 없는 공허함의 실체를 알고부터는 전혀 부럽지가 않다. 내가 본 천재들은 창조물보다도 창조해나가는 과정에 더 진심이었다. 마침내 결과물이 나오면 뿌듯하고 후련해하기보다 괜히 허무하고 허탈해지는 것이다. 흔히 슈퍼스타가 무대를 마치고 나오면 느낀다는 고독과 외로움처럼. 쿤과 무오트 또한 성공에 상관없이 채워지지 않는 영혼 때문에 고뇌하고 있다. 내내 그러다가 끝나버려 살짝 아쉬운 작품인데, 그래도 볼거리가 풍부해서 대만족이었다.


아무리 힘껏 살아봐도 불구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몇 번이고 좌절했던 쿤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 역시 음악을 했고 다리를 다친 몸이라서, 남들 앞에 작아지기만 하는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살려면 어떻게든 주변에 손을 뻗어야만 했고, 그렇게라도 해서 경직된 내 영혼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처럼 자살을 결심했던 주인공도 소원했던 부모와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 이것은 사랑받을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믿어왔던 사람이, 그 부정한 마음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느낀 위대한 순간이라 하겠다. 세상에 이로움을 가져오고 행복을 기여함은 더없이 훌륭한 일이지만, 만인에게 추앙받더라도 내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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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르와 장 창비세계문학 9
기 드 모파상 지음, 정혜용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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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인 모파상에게는 러시아 문학의 냄새가 풀풀 난다. 저자를 모른 채로 작품을 읽는다면 영락없이 도스토옙스키의 글이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이 같은 날것의 맛과 거친 감성은 합격이지만, 불필요한 묘사와 장면들로 재미가 반감되었다. 글자 수만큼 돈을 주니까 억지로 분량을 늘렸다지만, 누구는 그 억지마저도 몰입감을 주는 반면 누구는 지루함을 안겨주니 비교하지 않을 수가 있나. 쓸데없는 거 다 빼고 절반으로 줄인다면 별 다섯 개도 줄만한 작품인데, 쯧쯧.


동생인 장은 형인 삐에르보다 뛰어난 신체 스펙을 가졌다. 형은 열등감에 가득 차 있지만 아닌 척하기 바쁘다. 어느 날 운명하신 모 어르신이 동생에게 유산을 전부 물려주면서 장은 벼락부자가 돼버렸다. 배 아파하는 삐에르의 마음도 모르는 가족들은 마냥 기뻐한다. 줄 거면 형제에게 반반해주는 게 상식인데, 한 명에게만 몰아준다? 어딘가 구린내가 난다. 탐정모드가 된 형은, 그 어르신과 모친 사이에서 장이 태어났음을 밝혀냈다. 다만 이 진실을 공개하면 가족 모두가 상처 입을 것이고, 잠자코 있자니 화병에 돌아가실 지경이다. 하.


‘사느냐, 죽느냐‘를 내내 고뇌하는 삐에르의 모습. 이 정도면 프랑스판 ‘햄릿‘으로 불러도 될 듯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평화를 깨뜨리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분했다. 세상 모두가 동생을 더 우대하는데 편애한다는 기분이 안 들겠는가. 이래서야 열등감이 안 생길 수가 없단 얘기다. 그렇다고 형이 막 비교될만한 인물도 아니었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도 있고, 생김새도 멀쩡하고, 성격도 무난한 편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늘 동생한테 밀려났었던 삐에르에게, 재산 상속 일도 그렇고,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부모님의 태도도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가정의 파괴까지 고려하는 그의 질투를 누구인들 욕할 수 있을까.


결국 삐에르는 입을 열고 말았다. 부친한테만 빼고. 모친은 순순히 인정하고, 두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동생도 충격은 받았지만 가족의 해체를 막고 싶어 한다. 그와 반대로 삐에르는 가족들에게 실망하여 멀리 떠나버린다. 이렇듯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각색한 느낌마저 든다. 서사보다는 개인의 심리에 집중한 작품이었고, 그것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만한 감정선이었다. 종종 친자 불일치로 확인된 자녀(와 아내)를 끝내 정리했다는 미디어 소식을 듣곤 한다. 그게 만약에 내 얘기라면 어떨까. 배신감에 잠 못 이룰게 뻔한데, 그렇다고 정이 든 아이를 떠나보낼 수 있을까. 마지못해 눈 감고 같이 살아갈 듯하지만 평생 괴로울 각오도 해야 한다. 혹 그렇게 되면 아이와 아내를 투명히 대할 순 없을 텐데 그럼에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가. 정말 어려운 문제다. 이와 같은 윤리적 갈등을 다룬 <삐에르와 장>은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작품이다. 적당히 스킵하면서 읽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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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 - 포기하지 않으면 만나는 것들
김호연 지음 / 푸른숲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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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신간을 보내주신 김호연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글을 꾸준히 읽어준 분들은 아실 테지만 <파우스터>의 리뷰를 인연으로, 해마다 작품을 보내주고 계신다. 이제는 슬슬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인데, 아무튼 변치 않는 팬심과 리뷰와 홍보로 내 나름의 보답을 하고 있다. 전에는 블로그에 와주셔서 댓글도 주시고 소통도 해서 좋았는데, <불편한 편의점>이 대박 난 뒤로는 바빠지셨는지 넷상에서 볼 수가 없어졌다. 나는 예전부터 이 분이 크게 성공할 것을 예감했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고 나자 괜스레 아쉽기도 하고 뭐 그렇다. 아무튼 김호연 작가님과는 꼭 소설이 아니어도 나님의 인간미와 겹치는 구석들이 있어서 더욱 응원하게 된다.


현시점에서 가장 마지막 소설인 <나의 돈키호테>의 집필이, <불편한 편의점>보다 먼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업 소설가로서의 생존과 연명을 위해, 또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한 작품 구상을 위해 작가님은 스페인에서 몇 달간 체류한다. 신작의 소재와 영감을 위해 곳곳을 쏘다니며 스페인의 문화, 감성, 역사 등등을 익혀나가는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묶어냈다. 따라서 일반 스페인 여행기처럼 보일 테지만, 여행보다는 소설가로서의 신앙고백에 초점이 더 맞춰져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의 모든 생각이 일상과 맞닿아있다는 점, 그래서 일과 삶을 분리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일상 속 작은 활동에도 글감으로 연결 짓기 바쁜 나날들이, 어쩐지 내 얘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 나는 글쓰기에 진심인, 나와 닮아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한국과 다르게 스페인은 습도가 없어 항상 쾌청한 날씨가 유지된다고 한다. 그 나라 사람들이 괜히 에너제틱하고 친절한 게 아님을 보고 어찌나 부럽던지. 근데 좀 의외였던 건, 스페인 사람들은 돈키호테나 세르반테스에 퍽 열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작가님이 현지인들과 돈키호테 얘기를 나누면 다들 하나같이 케케묵은 전래동화를 쫓느냐는 듯한 분위기였다. 한국으로 치면 <홍길동전>에 열광하는 외국인을 보는 기분인 걸까. 그래도 전 세계를 강타한 <돈키호테>와는 급이 다를 텐데, 자국민들한테는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거로군. 돈키호테의 팬으로서 많이 씁쓸하고만.


<나의 돈키호테>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전부 꿈 많은 돈키호테로 자라나서, 지독한 현실에 굴복한 산초가 되고 만다. 아니, 지금은 어릴 때부터 산초로 커가는, 낭만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적 압박으로 죽어라 공부만 해왔던 현세대 청년들이 구직은커녕 그냥 쉬고 있다는 뉴스가 매일같이 보도된다. 물론 거기에는 일자리 부족과 부당한 기업문화 등등 여러 요인이 있을 테지만, 각자만의 목표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여 좌절해버리는 게 아닐까 싶다. 작가로서 계속 고배를 들어야 했던 김호연 작가님도 마찬가지였다. 수차례 포기하려다가도 글 쓰는 게 좋아서, 또 이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버텼더니 쨍하고 해 뜰 날이 돌아왔단다. 물론 이런 승리의 신화는 누구나에게 해당되고 적용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러나 비관적으로 살아본들 달라지는 것 또한 없다는 사실도 명심해야겠다.


개인적으로 세상에 불만이 많은, 즉 하고 싶은 말들로 가득한 타입의 작가를 선호한다. 그래서 나는 세르반테스를 좋아한다. 그의 작품이 <돈키호테> 외에는 거의 전무하지만, 나님은 무인도에 책 하나만 가져가라면 망설임 없이 <돈키호테>를 집어 들 것이다. 김호연 작가님이 돈키호테에게 보인 집착의 이유도 내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모든 것이 과열된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돈키호테와 산초가 적절히 섞인 하이브리드형 인간이다. 여기서 더 나빠질 수가 있을까,했던 사회 분위기는 날로 날로 갱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보다도 자신을 지탱할 무언가가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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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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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H.


너의 가장 오래된 친구로서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어 편지를 쓴다. 전보다는 표정이 많아진 것 같던데, 좀 어때? 이제는 그 지독했던 환멸과 염세에서 떠나온 거니? 아마 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한때 네가 그토록 어둡고 부정적이었다고는 상상조차 못할걸. 그만큼 지금의 네 모습이 보기 좋다는 얘기야. 그나저나 이제 우린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돼버렸네. 게을리 살든, 바삐 살든 지나간 시간들이 아까운 건 다 똑같은가 봐. 주변에서 하나둘씩 세월을 그리워하는 게 느껴지거든. 그런데 너하고 나는 그 반대였어. 오히려 시간이 약이라서 다행이다 싶어 했지. 특히 너의 영원할 것만 같았던 고통과 증오가 옅어진 걸 보면 더욱 실감 나.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이 오래 살고 볼일이라는 말들을 했던가 봐.


참. 러브스토리의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말에 솔직히 놀랐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의외였어. 너는 드라마 자체를 잘 보지 않는 데다 그런 장르는 취향이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 내 기억으로는 J와의 실패한 연애로부터 어떤 연애물도 찾는 법이 없었지, 너는. 그래서 완전히 달라진 네 모습 가운데 그 점이 가장 신선했어. 사랑했던 이에게 배반당하는 기분, 그 경험과 기억들은 좀처럼 극복하기 힘들지. 어떤 이들은 또 다른 사랑을 잘만 찾아가는데 너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잖아. 한 사람에게만 마음을 다 쏟아부어서, 다음 사람에게 줄 것이 남아있지 않은 그런 타입이잖아. 솔직히 너의 순애보가 이해되면서도 현실감이 모자라서 큰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 때마침 우연하게도 이번에 읽은 <책 읽어주는 남자>를 통해서 H, 너의 해소되지 않는 미련과 앙금들이 확 이해가 되었어. 그래서 내가 느낀 것들이 맞는지 어떤지 확인받고 싶어졌거든. 잘 들어봐.


내가 읽은 책의 내용들을 곁들여 설명할게. 먼저 중학생 남자애가 삼십 대 여자의 섹스 파트너가 돼. 매일을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정이 들었지. 물론 여자는 소년의 어설픈 구애 따위에 걸려들지 않아. 뭐 그러시겠지, 짬 차이가 얼만데. 근데 사귀자는 말만 안 했지, 연인들이 하는 건 다 하는 사이야. 아무튼 소년을 쥐락펴락하는 그녀를 보면서, 모든 남자들의 첫 연애는 무조건 여자한테 잡혀사는 주종 관계가 된다고 느꼈어. H, 너도 그랬듯이 이건 남자들이 호구이기를 자처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남자들에게 있어서 첫사랑의 위력은 ‘개츠비‘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지. 그런데 여기서 두 유형으로 갈라져. 첫 연애가 짧은 사람은 이내 상처를 회복하고 곧이어 성숙한 사랑을 하게 돼. 반대로 첫 연애가 좀 길었다 싶은 사람들이 문제야.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첫 경험들이 저주가 되어서 평생을 따라다니니까. 어느 노래의 가삿말처럼,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그 사람이 있는 거야. 하등 의미 없는 일들까지도 그 사람의 기억이 대신해버리지. 그래, 맞아. 다 네가 나한테 해줬던 얘기들이야. 그만큼 <책 읽어주는 남자>의 주인공은 딱 너를 닮아있어.


어느 날 그녀는 말 한마디 없이 소년을 떠났어. 그녀에게 뭔가 잘못했던 걸까? 소년에게 그만 싫증이 난 걸까? 좋았던 관계가 갑자기 틀어져 버리면 아무래도 내 잘못인 것만 같잖아. 그래서 H, 너도 그토록 자책했었던 거였고. 사랑이란 놈은 말하자면, 자동차끼리의 교통사고 같은 거야. 나만 운전을 잘해봤자 소용이 없거든. 그게 내가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운 사랑에 대한 결론이야. 소년도, 너도 차라리 확실한 이별이었다면 덜 괴로웠을까. 너를 보면서 흐지부지하게 끝난 사이에는 납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단 걸 알게 됐어. 현실에는 열린 결말 따윈 없다는 사실까지도. 아무튼 위대하신 첫사랑이 대 실패로 끝난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각성하는 것 같아. 외모를 가꾸고, 스펙을 쌓고, 명성을 키우는 등 광적인 자기 계발에 들어가더라고. 난 그것이 다음 사랑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더는 호구로 남아있기 싫어서라고 생각되지 않아. 분명히 그 밑바닥에는 ‘후회하게 해주마‘라는 무의식이 깔려있어. 다시 만날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혹시 모를 그 언젠가를 계산에 넣는 게 남자들이니깐. 다만 H, 너는 각성이 아니라 흑화에 가까웠어. 그래서 안타깝긴 했어도 뭐라 할 생각은 없어. 너의 전부를 지켜본 나로서는 네가 자살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니깐.


몇 년 후, 소년은 법대생이 되었어. 어느 법정의 재판에 참관했던 그는, 피고인으로 앉아있는 그녀를 보게 돼. 놀랍게도 그녀는 친위대에 들어가 수용소의 감시원이 되었다고 해. 그리고 수감자들을 건물 안에 가두고 화재로 전부 죽게 했다는 게 죄목이래. 옛사랑과의 재회가 온통 배드 뉴스라니. 너와 내가 학수고대하던 그림은 이런 게 아니었잖아. 너를 버리고 떠났던 J의 ‘죄‘가 밝혀졌음에도 너는 습관처럼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고 죗값을 물었지. 주인공도 마찬가지였어. 내가 정말 저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을 사랑했던 것인가 하고. 그처럼 너도 실망과 비난의 화살은 전부 J가 아닌 너에게 겨눴지. 이제 슬슬 편지의 목적을 눈치챘길 바래. 아무튼 주인공은 하루도 안 빠지고 재판에 참석했어. 예외 없이 각성했던 그는 전과 달리 이성적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거야. 그 덕분에 동기 여학생과 결혼도 하고 딸까지 얻은 미래를 만들 수가 있었어. 하지만 너도 느꼈다시피 ‘두 번째‘ 애인과는 십중팔구 배드 엔딩이 되고 말지. 그런 의미에서, 모든 남자들의 ‘두 번째‘는 가장 불쌍한 운명이 아닐까 싶어.


다시 잘해보고 말고 할 것도 아닌, 전혀 가망이 없음에도 놓지 못하는 너의 그 감정들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또 사랑까진 아니라 한들 달리 무엇으로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지나온 날들처럼 앞으로도 종용히 삭히는 것 말고는 없을 테지. 그래서 주인공도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는 게 다였어. 더는 할 말이 없다면서 냉소적인 태도를 하고는 있지만, 누가 알겠어?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던가, 그걸로 됐다던가 하는 말들은 다 허울좋은 변명에 불과하단 걸 네가 더 잘 알잖아. 진상을 규명해서 득이 될 게 전혀 없다 해도 남겨진 자들은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그치만 주인공은 그녀를 직접 마주할 뜻은 없었고, 단지 지금도 내가 당신을 기억한다는 의사만 전달하고 싶어 했어. 그래서 한때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것처럼, 낭독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교도소에 보냈어. 무려 10년이 넘도록 그걸 했다네? 사랑이 죽어버린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게 대단해 보일지 모르겠다. 우리 때는 ‘싸이월드 댓글 100개 쓰기‘ 같은 것들도 아무렇지 않게 했었는데. 너와 J가 주고받은 편지들이 생각나. 상자에 가득 채울 만큼 차고 넘쳤던 편지들. 또 그것들을 하나씩 불태우던 네 얼굴까지도. J의 흔적을 다 없애면 후련해질 거라던 너의 확신은 보기 좋게 빗나갔어. 그러게, 다른 건 몰라도 편지는 간직하라고 말했잖아. H, 너는 꼭 내 말을 안 듣고 나중에 가서 후회하더라.


언젠가 네가 스치듯이 해준 얘기가 있어. 차라리 괴로운 기억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부럽다던. 요즘 뉴스에서는 갈수록 연애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대. 그러면 네 말대로, 사랑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더 낫다는 걸까? 글쎄. 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 끔찍한 터널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성숙해지고 인간에 가까워질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지워버릴만한 추억조차 없는 이들이 불쌍해 보여, 나는. 이 얘기를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냐. 이제 너는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진 나비가 되었으니까. 너도 참 징글징글한 놈이야. 그래서 말인데, 이젠 그만 좀 잊으라고 했었던 말들을 철회할게.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게 얼마나 잔인한지도 잘 알았어. 너처럼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내가 너무 몰아붙였던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해. 그냥 지금처럼 잊고 살아가다 한 번씩 회상하고 울적해지고 추억 팔이 하는 정도여도 좋을 것 같아. 그러니 앞으로는 너를 통제하거나 고치려 들지 않을게. 그리고 H, 나는 네가 다시 한번 ‘편지 써주는 남자‘가 되기를 바라. 그것이 너의 아이덴티티라는 걸 부디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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