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마이페이퍼 당선작

비지식(non-knowledge)과 이중 신비화 - 필리아
우리들이 어떤 새로운 현상에 대한 사실을 자신의 앎으로 인지하고 그로인한 반응에 적합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것은 정말 인간만이 지닌 기괴함이 아닐 수 없다. 여타 동물은 자신에게 위협될 만한 어떤 사태가 발생하면 예외 없이 그에 따른 행동(반작용)을 취한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인간, 특히 자신이 특권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자들일수록 명백하고도 자명한 사실이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여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양상을 보이지만 그 정도는 권력의 정도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도 기이한 현상...
 
5월 독서목록 - Yujin
1. 빛과 실(한강. 문학과지성사. 2025. 172쪽):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첫 작품. 시, 일기, 에세이 등이 주를 이루고,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도 포함되어 있다. 책의 구성이나 분량 때문에 여러 말이 나오는 거 같은데, 난 만족한다. 이보다 못한 글과 문장으로 이보다 훨씬 비싸게 받아먹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물론 출판사가 급하게 책을 낸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예전부터 소설가 한강보다 시인 한강을 더 좋아했던 난 작가의 정원일기와 미발표 시들을 읽을 수 있어서, 그리고 노벨상 수상 연설문을 인쇄물로 소유할 수 있어...

이해는…시계추가 약간 기우는 것이다 - 페넬로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디 아워스(The Hours)>는 딸아이가 어렸을 때 비디오대여점에서 DVD로 빌려본 영화이다. 아이가 잠들면 남은 집안일을 하고 피곤하니까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아이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던 것 같다. <디 아워스>는 1999년 퓰리처상과 펜 포크너상을 동시에 받은 마이클 커닝햄 작가의 소설이다. 작가는 열다섯 살에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 감동받아 그 작품의 오마주격인 이 소설을 집필했다. ‘댈러웨이 부인’이 댈러웨...

어떤 위로의 방식 - 구단씨
항상 내 옆에 책이 있었으나,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다 읽었어도 후기를 남기지 못하거나 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늘 그렇듯, 바쁘기만 한 마음에 시간이 협조해주지 못한 게 아닐까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게으름이다.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못한 습관의 결과라고 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이게 최근의,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구나 싶어서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꽤 여러 해 동안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말하고 보니 반복된 게으름에 부끄럽기도 하고. 머릿속을 빙빙 도는 하고 싶은 말을 더 생각하게 하지 못하는 저급한 체력, 발만...

우리가 실재를 읽는 방식 - blanca
한창 화제인 인공지능의 가장 큰 취약점은 인공 신경망의 학습을 통한 창발 과정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의식의 기원을 제대로 밝혀내기 힘든 지점과 맞물려 있다. 우리의 몸 안에 담긴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의식과 마음이 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심리학자, 뇌신경학자, 물리학자들이 오랜 세월 여러 가지 이론으로 밝혀내 보려 애썼지만 결국 우리 앞에 놓인 건 우리의 신경망을 닮은 물리적인 기계의 출현이다. 결국 우리의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면, AI의 특이점 도래 앞에서도 우리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그...

헌책방에서 만난 필립 말로 - cyrus
청계천은 여전히 푸르다. 한때 개천 주변 거리에 하얀색과 누런색이 제법 많았다. 애서가들은 두 개의 색이 활짝 펼쳐진 헌책방 거리를 걸었다. 보도블록에도 깔린 헌책방 거리의 색깔은 하천과 함께 흐르는 시간에 의해 씻겨 나갔다. 먼지를 털어내면서 책을 만지작거리던 애서가들의 손길도 줄어들었다. 현재 거리에 남아 있는 헌책방 가게는 열 개도 채 되지 않는다.내가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처음으로 갔던 해는 2013년이다. 십 년이나 훌쩍 지났으니 그때 가본 헌책방 가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주 토요일은 독서 모임 <달의 궁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 noomy
한 남자가 죽었다. 부유한 지역 유지였던 그는 단검에 목이 찔린 채 발견된다. 살인이 있던 밤 많은 사람이 그의 저택에 드나들었고, 그들 모두는 유력한 용의자다. 가장 의심스러운 피해자의 양아들은 사건 직후 모습을 감춘다. 저마다의 사정과 범행 동기를 가진 인물들 속에서 수사는 점점 미궁에 빠진다.하지만 걱정 마시라. 마침 이곳에는 은퇴한 명탐정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에르퀼 푸아로! 작은 회색 뇌세포를 이용해 수수께끼를 해결할 유일한 희망이다. 남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에 집중해 놀라운 추리를 선보인 푸아로는 마지막에 범인을 지목하...

환락의집 / 이디스워튼 정체성 찾기 - 구름모모
​여성과 운명에 대해 성찰하는 소설들 중에서 『환락의 집』이라는 민음사 세게문학전집이 있다. 2권으로 구성된 소설로 이디스 워튼의 출세작이며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 수상작가의 작품이다. 19세기말 뉴육의 아름답고 젊은 여성 릴리 바트는 상류 사회의 언저리에서 생활하는 인물로 높은 교양과 고상한 취향을 지녔지만 일찍 부모를 잃고 부유한 남자와 결혼을 통해서 상류층으로 진입하려고 하는 여성이다. 작가는 뉴욕 벼락부자들의 과시적 소비와 경박함을 소설을 통해 폭로하면서 여성이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간 과정을 전하는 소설이다. ​​현대사회의 언...

시비(是非)를 밝혀야 인정(人情)이 따라 온다. - 그레이스
마오쩌둥이 이끈 정풍운동은 '학풍'(學風), '당풍'(黨風), '문풍'(文風)의 삼풍정돈(三風整頓)을 말한다. 이 중 문풍, 문예정풍은 작가들의 글쓰기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1942년 5월 ‘옌안 문예좌담회’ 문예활동에 가이드를 마련한다. 문화대혁명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1942년부터 문화대혁명이 있기 전까지 있었던 문예정풍에 딩링을 비롯한 옌안의 작가들은 저항했다. “…… 루쉰은 죽었다. 우리는 그의 뒤를 잇기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습관적으로 말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남김...

가로 막고, 가리는, 정신적인 혹은 물리적인 벽들 - 감은빛
얇은 책이다. 벽을 주제로 쓴 6편의 단편 소설을 담고 있다. 4편은 SF임을 확실히 알 수 있지만, 두 편은 잘 모르겠다. 이런 류의 주제별 모음집은 수록 작품들의 편차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취향으로만 봐도 그렇고, 구조와 밀도를 생각해도 그렇다.첫 소설인 듀나 작가의 [아레나]는 이 책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할만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미국의 코믹스나 영화 같은 곳에서나 나올 법한 초능력자들이 엄청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K팝 아이돌 문화를 엮었다. 초능력자 아이돌이 공연도 하고 악당들도 물리친다. 그 장면들은...

[The Housemaid] housemaid와 second shift - 단발머리
보통의 경우, 독자는 '나'에 감정이입하기 쉽다. 특히 작중 화자 '나'가 독자와 동성일 경우, 비슷한 연배일 경우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The Housemaid』의 housemaid, 오늘의 주인공 밀리에게 동일시하는 게 자연스럽다. 밀리는 비밀을 숨긴 채 나타난 사람이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고,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진 사람이며, 이상한 구조의 다락방에서 오늘 밤 잠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밀리에게 동일시하지 못했다. ​"Who has the time?" ​I bite back a...

든든한 우리말 길잡이 - 자목련
글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文解力)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금일 오후에 만나자고 했는데 금요일 오후라고 여긴다거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말에 제대로 사과를 하라고 한다든지. 상대가 전하는 말의 뜻을 다르게 해석하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유명 연예인이 문해력 검사에서 중학교 수준이 나왔다며 문해력 공부를 하고 있다는 방송을 보고 나도 문해력 검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연예인이 문해력 수업을 하는 방송도 보게 되었는데 수업 중 나온 특질이란 단어를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무슨 뜻인...

여러 번 읽고 또 새롭게 발견한다 - 잠자냥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여유가 없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새로이 읽을 책이 쌓이고 쌓였는데 읽은 책을 또 읽는다니! 그런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가끔은 해를 지나, 몇 년에 한번쯤 생각이 나서 읽고 또 읽는 책들이 있다. 며칠 전 읽은 <소세키의 말>의 나쓰메 소세키 작품이 그렇다. <마음>이나 <행인>, <한눈팔기> 등은 모두 두 차례 넘게 읽었고, <산시로> <그 후>도 두 번은 읽은 것 같다. <소세키의 말>을 ...

백수린 작가의 책을 읽으며 모든 날의 밤이 아름다워졌다. - 바람돌이
책을 읽다가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책 제목조차 <아주 오래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이다. 백수린 작가의 이 에세이 속에서 작가는 반려견 봉봉이 나에게 온전한 신뢰를 주는구나라는걸 느끼며 봉봉과 온기를 나누는 그 순간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낀다. 산다는건 정말 별거 아닌 날들의 연속이지만 그 나날들 중 어느 한 순간은 빛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담담하지만 찬란하게 포착해내는 작가의 글이 너무 좋아서 연이어서 2권의 책을 읽었다. 사실은 소설 <봄밤이 모든 것>을 먼...

2025년 상반기에 읽은 책 - 닷슈
경제[6권]-달러전쟁, 트럼프 2.0 시대, 홍춘욱의 최소한의 경제토픽, 데이터를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이어드 머니 돈이 진화한다, 환율의 대전환과학[11권]-저속노화 식사법, 그래서 포유류, 인간이 되다, 초가공식품, 플래닛 아쿠아, 질병은 없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블루머신, 매직필, 트랜스포머, 노화도 설계하는 시대가 온다역사[3권]-한국인의 탄생, 한국인의 기원, 폴란드 역사사회[7권]-낱낱히 파헤치는 여론 조사의 모든 것, 재앙의 지리학, 생존십, 명령에 따랐을 뿐, 붉은 인간의 최후, 혐오 사회,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