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원 모집! 상상 사무국
브래드 몬태규 지음, 크리스티 몬태규 그림, 김지은 옮김 / 창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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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도 재미가 있을 것 같은 책이다. <요원 모집! 상상 사무국>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상상의 문이 열리고 그 속에서 어떤 기발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지 기대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 책은 마음 속에 숨겨둔 상상을 꺼내 세상과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상상 사무국'이라는 독창적인 설정을 중심으로 하여 '뚝딱 공방', '꿈의 부서', '이야기 동굴'과 같은 공간들이 등장하여 어린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상상을 단순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험하고 개발하며 구체화 함으로써 아이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상상력과 표현력을 북돋을 수 있을 듯하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상상 사무국에서 온 비밀스러운 편지 한장은 이 이야기에 단숨에 빠져들게 만든다. 미래의 특수 용원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마치 실제로 비밀 임무를 부여 받은 듯한 기분을 들게 하며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상상 사무국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게 한다. 유쾌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어조, 그리고 마지막에 남긴 농담섞인 경고는 이 책에서 펼쳐질 이야기들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편지는 독자가 단순히 구경꾼이 아니라 직접 상상하고 행동하는 '상상 요원'이 되기를 바라는 초대장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라면 이 한 장의 편지만으로도 충분히 요원으로 합류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독자는 상상 사무국의 공식요원이 되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중앙 본부의 겉모습은 특급 기밀 사항이라 인간은 볼 수 없다는 설정은 이야기의 몰입감을 한층 더 높인다. 오직 상상하는 이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세계라는 설정은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독자가 이 책이 이끄는 상상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인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그리고 책은 상상 사무국에서 일하는 여러 상상 요원 중 스파키를 소개한다. 이 책의 주인공 스파키는 상상 사무국의 편지를 전달하는 배송 요원이다. 세상의 모든 상상인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소소한 고민까지 상상 사무국으로 모이고 스파키의 손을 거쳐 각 부서로 전달된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스파키는 배송 일이 없을 때면 혼자 시를 쓰며 상상의 세계에 빠지지만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는 건 늘 두려운 일이다.


그러던 중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야기들이 쌓인 '꼭꼭 숨어라 이야기 동굴'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고 스파키는 용기를 내어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과연 스파키는 무너질 위기에 처한 이야기 동굴을 구해낼 수 있을까? 스파키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스파키가 인간 요원들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그 편지는 오랜 시간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상상르 꺼내 세상과 나누는 용기를 낸 스파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글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는 위기의 순간에 편지를 써 자신의 상상과 감정을 밖으로 내보인다. 그렇기에 이 편지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상상과 표현, 행동의 첫 걸음이자 두려움을 넘는 용기로 보이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특히 '우리 모두 용감하게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요'라는 문장은 상상이 혼자만의 마음 속에 간직했을 때보다 누군가와 나눌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큰 응원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는 데에 망설임이 많은 아이들의 작아진 마음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으며 상상하고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일깨워준다. 스파키는 두려움을 무릎쓰고 용기를 내어 쓴 자신의 글로 상상 사무국을 지켜내고 마침내 진심을 담은 편지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성정의 서사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용기 있게 표현하는 것이 세상을 향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깊은 메시지를 전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정교하게 설정된 세계관과 독자가 직접 상상 요원이 되어 참여하게 만드는 구조에 있다. 책 곳곳에 배치된 아기자기한 그림과 이야기들은 어린이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상상을 실천하는 주체가 되어 이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상상하는 힘, 말로 꺼내는 용기와 그것을 나눌 때 생기는 기적 같은 변화에 대해 유쾌하고 따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상상은 혼자 할 때 보다 함께 나눌 때 더욱 풍성하고 힘을 지니게 된다는 이야기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용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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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의 사랑 - 소란한 세상에서 조용히 귀 기울이기
최다은 지음 / 김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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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세상에서 조용히 귀 기울이기'라는 소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우리는 살면서 말하기, 읽기, 쓰기에는 꾸준히 집중하면서 발전시켜왔지만 듣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며 살아왔다. 일상에서도 교육에서도 '잘 듣는 법'은 좀처럼 강조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듣기는 어느새 가장 소홀한 감각이 되었고,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런 무관심 속에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 '듣기'에 집중한다. 저자인 최다은 PD는 라디오와 팟캐스트라는 소리를 매개로 한 매체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며 듣는 사람으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듣기의 본질과 가치를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듣는 행위를 단순히 수용의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듣는다는 것은 시간을 들여 타인의 존재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동적인 행위이며 그것이 곧 관계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맨 처음 실린 〈듣다 보면 괜찮아져〉에서 저자는 '듣기'라는 행위가 단순히 정보를 수용하는 감각이 아니라, 무력하고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유일하게 작동 가능한 내면의 능력이자 위안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 감염으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상태에 놓인 저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듣는 것'만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순간에도 듣기는 그 어떤 장비도 도구도 없이 작동하며 오히려 그 절대적인 수동성과 정적 속에서 더 깊은 감각을 일깨운다. 이 경험은 저자에게 듣기의 본질을 다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된다. 피아노를 배우던 유년기부터 음악을 전공하던 시절, 그리고 라디오 PD로서 살아온 지난 시간들까지, 자신의 삶은 줄곧 ‘듣는 일’과 함께해왔음을 깨닫는다. 단순히 많이 듣는 것이 아니라, 다시 듣고, 나누어 듣고, 천천히 음미하는 것. 저자는 이러한 듣기의 다층적인 차원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명확히 깨닫게 된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듣기가 단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행위가 아님을 알게 된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감각이며, 타인과의 연결, 자기 회복, 의미 있는 사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유튜브 영상을 2배속으로 소비하는 것이 효율로 여겨지는 시대에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귀를 기울이는 일은 어쩌면 낡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바로 그 느린 속도와 비효율 속에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타인의 감정과 취향, 말의 뉘앙스까지도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고, 그 사람의 내면에 켜켜이 쌓인 결들을 시간 들여 하나하나 살핀다. 효율을 앞세워 빠르게 판단하기 보다는, 상대를 구성하는 복합적인 요소들을 존중하며 듣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자,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저자는 음악을 다루는 태도에서도 같은 원칙을 고수한다. 음악을 듣는 데 있어서 배경 지식이나 전공 여부는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어떤 자세로 귀를 기울이는 가이다. 단순한 정보보다 청자의 감각과 해석이 더 우선된다는 생각은 그의 음악 소개 방식에도 드러난다. 음악가의 이력이나 발매 연도 같은 사실들은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감상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예술을 향유하는 데 있어 부담을 줄여준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반드시 사전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중요한 것은 집중해서 듣고 보는 태도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음악으로의 진입에 문턱을 낮춰준다고 할까. 그리고 오히려 지식의 강박이 감상의 기쁨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저자의 ‘알면 좋지만 몰라도 괜찮다’는 태도는 그렇기에 많은 공감과 위안이 된다.


음대를 졸업하고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한 뒤 라디오 PD로 입사해 인기 팟캐스트까지 꾸준히 제작하고 있는 저자의 이력은 겉보기에 단단하고 일관된 커리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러한 몇 줄의 성과 이면에 숨어 있는 수많은 실패와 우회, 반복된 좌절의 순간들을 고백한다. 음악을 처음 꿈꿨을 때의 부모님의 반대,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음대 입시 준비 과정, 어린 시절의 열등감, 음악가라는 꿈을 접고 언론 고시로 방향을 틀며 겪었던 불확실성과 불안까지. 그의 삶은 계획된 직선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곡선의 연속이었다. 그 자체로 이력서에선 지워지는 비효율의 기록이 하겠다.


그리고 가장 큰 위기는 귀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에게 역설적으로 청각에서 찾아왔다. 바로 이명(耳鳴). 이전까지 어떤 문제든 더 노력하고 더 준비하는 방식으로 돌파해왔던 저자에게 이명은 통제와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처음이자 낯선 경험이었다. 이 소리를 지우려 했던 모든 시도는 오히려 그 소리를 더 또렷하게 만들었고, 결국 저자는 이명과 ‘싸우기’보다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기’로 방향을 바꾼다. 이 과정에서 그는 소리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과거에는 차단하려 했던 냉장고 모터 소리, 초침 소리, 거리의 소음들이 이제는 오히려 마음을 진정시키는 저자와 ’주파수가 맞는' 소리가 된다. 냉장고 옆에서 자는 것이 더 편하다는 그의 고백은 그렇기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더 이상 없는 소리를 상상하며 고통받기보다는 지금 있는 소리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렇게 저자는 ‘다시 듣는 삶’으로 회귀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지난 삶에서 ‘비효율적’이라 여겨졌던 선택들이 오히려 자신을 회복시키고, 음악을 계속 사랑하게 만든 중요한 요소였음을 받아들인다.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그 길이 아니었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감각과 관계, 그리고 애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듣기는 본질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행위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던져 파악할 수 있는 ‘보기’와 달리, ‘듣기’는 반드시 일정한 시간의 흐름을 통과해야만 가능하다. 찰나에 모든 것을 알아채는 ‘한눈’은 가능할지 몰라도, ‘한귀’에 모든 걸 듣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의 목소리, 음악의 한 소절, 또는 사연의 첫 문장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과 집중이 필요하다. 바로 그 점에서 저자는 ‘듣는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며,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이처럼 효율성과 속도를 강조하는 시대이지만 오히려 비효율이야말로 관계를 지속시키는 핵심적인 감각임을 말한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말의 맥락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일상의 소음을 차단하는 대신 받아들이는 일. 이런 ‘비효율적인 선택’들이 쌓여 결국 더 깊은 공감과 진정한 연결을 만들어낸다. 저자의 오랜 방송 경력과 삶의 경험이 녹아든 이 책은 듣는다는 단순한 행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로 하려금 성과와 효율의 언어가 우위를 점하는 시대 속에서 관계의 깊이와 감정의 온도는 오히려 느리고 손이 많이 가는 ‘비효율’의 시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과 듣기라는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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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들의 도시
김주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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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혜 작가의 신작이라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작은 땅의 야수들>로 톨스토이문학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저자가 3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다시 한번 김주혜 작가만의 매혹적인 이야기 세계에 폭 빠져들게 만든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파리의 세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무용수의 삶은 단순한 성공의 서사를 넘어 예술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으며 깊은 울림을 가져다 준다. 가난과 결핍을 딛고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가 된 주인공의 삶의 여정은 눈부시도록 아름답지만 그 빛의 이면에 함께 따르는 짙은 그림자들은 깊은 공감을 사며 그녀의 이야기 자체에 매료되게 만든다.


이 책은 무대에서 모든 걸 잃고 떠났던 발레리나가 2년 만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그녀는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고, 도착 직후부터 이미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다시 만난 인물, 드미트리와의 재회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오래 묻혀 있던 갈등의 시작점처럼 보인다. 나탈리아는 그를 단순히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적처럼 여기는데, 도대체 이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책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먼저 떠나는 삶을 선택해 온 나탈리아가 결국 다시 돌아와 과거를 직면하고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파리라는 도시들을 배경으로 발레 세계의 냉혹한 현실, 예술가로서의 욕망, 인간관계의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추락한 후 마린스키의 ‘지젤’ 무대 제안을 받게 된 그녀는 망설이면서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무언가 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듯한 나탈리아의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지고, 서막부터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책은 현재의 나탈리아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며 시작되지만, 이야기는 그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과거의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는데, 1장은 나탈리아가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다룬다. 아무도 그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나탈리아는 외롭고 고립된 환경 속에서 살았다. 그런 그가 발레를 배우겠다고 결심한 순간 역시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한 외로운 시작이었다. 바가노바 발레학교의 오디션을 앞두고 그녀의 엄마는 현실의 벽과 발레계의 냉혹함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말렸지만, 결국 나탈리아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 오디션 현장에서 나탈리아는 이미 수년간 훈련을 받아온 다른 아이들 틈에 섞여 위축되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신도 놀랄 만큼의 점프와 기량을 보여주며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고 심사위원조차 ‘발 모양이 안 좋다’는 평가를 내렸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오디션을 통과한다. 500명의 지원자 중 최종 합격자는 단 두 명, 그 중 한 명이 바로 나탈리아였다. 이 책은 이렇게 단단한 현실을 배경으로 치열한 예술의 세계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나탈리아와 과거의 나탈리아가 교차되며 드러나는 이야기는 슬프고 아프면서도 계속해서 궁금증을 자극하여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며 그녀의 선택과 여정을 자꾸만 응원하게 된다.


이 책에는 문장이 너무 좋고 공감되어 자꾸만 멈추게 되는 장면이 곳곳에 존재하는 게 큰 매력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목 역시 그러하다. 나탈리아는 살아오며 수많은 사람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고 함께 웃고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은 기억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몇 달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지만, 결국 이별 뒤에는 그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반대로 몇몇 사람들은 머리와 가슴 깊은 곳에 오랜 시간 남아 있는 존재로 평생 떠나지 않을 것처럼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마음의 한 부분처럼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나탈리아는 어린 시절 친구들을 종종 떠올리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다. 이제는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기억이자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어쩜 그 감정들을 이리도 잘 표현하고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듯 김주혜 작가의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단단한 이야기 구성과 매력적인 인물의 설정 뿐만 아니라 문장에 있다고 본다. 단순히 서사를 전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섬세한 감정묘사와 통찰이 차곡차곡 쌓인 문장들이 오래 마음에 남게 되는 것이다. 공감되거나 되새기고 싶은 표현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으니 이야기의 길이나 복잡성과 무관하게 우리는 문장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난 후 나탈리아 레오노바가 바가노바 발레학교 오디션에 합격한 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장하며 결국 세계적인 발레단에 입단하게 되는 과정의 이야기를 아주 촘촘하게 담고 있다. 무대에 모든 것을 바친 그는 프리마 발레리나로 정점에 오르지만 한순간의 사고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무대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이후 나탈리아는 어린 시절 꿈을 키우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다시 춤을 출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태에서 그는 상처를 직면하고 재기를 위한 고통스러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리허설실에서의 긴장감, 동료 예술가들과의 충돌과 연대, 과거의 관계들 속에서 그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으로서의 존엄 사이에서 깊은 내적 싸움을 이어간다. 그렇게 이 책의 이야기는 단순한 복귀 여정을 담는 것을 뛰어 넘어 예술의 의미와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묻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나탈리아는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답이 궁금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확인해보기를 추천해본다.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난 아버지와 냉담한 어머니의 시선 속에서 자란 나탈리아는 일찍이 삶은 사랑이나 행복이 아닌 불안과 슬픔, 상실로 채워진 것임을 깨달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떠나는 삶을 선택해온 그녀에게 절박함은 곧 생존의 방식이었다. 책 속에서 나탈리아가 새로운 안정과 풍요를 경험하게 되는 순간 오히려 불안이 싹트는 장면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호화로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붓을 드는 화가는 없다는 인식 아래, 그녀는 예술의 진정한 원동력이 고통과 긴장 속에 있다고 믿는다. “절박함은 내 평생의 항상성이었다”는 고백처럼 나탈리아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도 자신의 전부를 예술에 내던지며 버텨왔다.


그리고 소설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새’의 이미지는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는 자유의 상징인 동시에 절박함과 귀환, 생존의 본능을 나타낸다. 주인공은 정점에서 추락했음에도 다시 무대를 향해 날아오른다. “아무리 멀리 날아가는 새도 결국엔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문장처럼, 나탈리아는 결국 예술이 시작된 바로 그 도시, 그 무대로 되돌아온다. 그곳이 고통의 장소인 동시에, 유일하게 자신을 온전히 증명할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상과 현실, 예술과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려는 한 인간의 고구분투를 정밀하게 따라가고 있다. 간절할수록 더 깊은 상처를 감내해야 했던 삶, 창작이라는 긴장 상태에 자신을 밀어 넣으며 끝까지 버티고자 했던 발레리나의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에게 예술을 통해 삶의 본질을 묻는다. 예술가의 고통과 구원, 인간의 존엄과 연민 그리고 삶에서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발레리나의 무대 복귀 이야기를 넘어 위기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끝내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스스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김주혜 작가의 답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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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막에서 삶을 배웠다 - 고비사막 250km를 달리며 배운 나를 사랑하는 법
방주희 지음 / 마음연결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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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자체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사막과 삶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과연 그 안에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책은 평범하게 살던 저자가 고비사막 마라톤 250km에 도전하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도전과 성장,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사막이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매일같이 마라톤 풀코스에 해당하는 거리를 달리며 신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 한계와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페이스를 찾아가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저자의 여정은 책을 읽는 우리에게도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아가는 태도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만든다. 


책은 고비 사막 250km 마라톤을 완주한 한 사람의 기록이지만 단순한 도전기를 넘어 삶의 본질과 태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작가는 처음부터 큰 목표를 세운 것도 특별한 체력이나 운동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고 고백한다. 단지 자신을 믿고 한 번쯤 달려보고 싶었고, 그런 마음이 출발점이 되었다. 저자는 과거 오랜 시간 건강 문제로 고통받았던 경험이 있었고 병원을 오가며 일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조금씩 회복하면서 걷고 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점차 삶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고 한다. 움직임 속에서 자신의 내면이 회복되는 경험은 이 책의 핵심이자 출발점이라 생각된다.


마라톤에 도전하는 과정은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막이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날씨, 거리, 고통, 불확실함을 견뎌야 했고 그 모든 순간마다 스스로를 다시 다잡아야 했다. 특히 주변의 걱정과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도 그 도전을 이어간 선택은 단지 하나의 도전 이상으로 삶의 우선순위와 방향을 다시 점검하게 만든 계기였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성취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결과보다는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생각으로 스스로를 이끌었는 지가 더 깊이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저자는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막이 있다고 말한다. 길이 보이지 않거나 방향을 잃는 순간이 있지만 멈추지 않고 걷다 보면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여정을 진솔하게 담아내며 도전을 준비하며 머뭇거리는 우리 모두에게 실질적인 용기와 방향을 제시하며 큰 울림을 남긴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사막 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족의 존재이다. 저자는 매주 주말마다 40~50km씩 훈련을 이어가며 점차 체력을 끌어올렸고 훈련 강도를 높이기 위해 평지에서 산길로 코스를 바꾸며 준비에 집중했다. 단순히 훈련 거리나 강도가 인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 옆을 지켜주고 때로는 걱정하며 함께해 준 가족들의 모습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무더운 날, 훈련 중 뒤따라온 남편과 딸은 힘들어 보이는 저자를 향해 “그만하라”고 외치면서도 끝까지 함께했고 중간에 달리며 동행하거나 조용히 기다리며 응원했다.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들도 훈련 중간 지점에 아이스커피를 들고 나타났고 저자가 좋아하는 빵을 챙겨 오기도 했다. 말로는 무심한 듯하지만 행동으로 응원과 관심을 표현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렇기에 훈련 중 저자는 자신을 지탱하는 것이 단지 다리의 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반복되는 훈련 속에서 진짜 에너지가 되어준 것은 바로 곁을 지켜주고 응원해 주는 가족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단단하게 받치고 있는 것은 다리가 아니라 가족이었다고 말하고 이 문장이 큰 울림을 전하는 듯하다. 과정의 힘 그리고 함께하는 존재가 얼마나 큰 동력이 되는지를 실감하게 만든다.


저자가 완주한 고비 사막 250km 마라톤은 얼핏 보면 현실과는 거리가 먼 아주 비현실적인 도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책 속에 담긴 여정은 과장 없이 담담하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 길이 결코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렇기에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이 더 깊어진다. 출발을 앞두고 저자는 돌돌 말아둔 침낭을 꾹꾹 눌러 배낭에 넣고 슬리핑 패드를 겹겹이 접어 단단히 묶으며 출발 준비를 한다. 손에 익지 않은 동작에 스스로도 불안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마음으로 신발끈을 다시 조여 매며 출발선에 선다. 완벽하지 않은 준비, 예측할 수 없는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시작을 감행해야 하는 현실을 담은 이 장면은 사막 한복판의 특별한 레이스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삶의 출발점과도 닮아 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완전한 확신을 갖기는 어렵다. 조건이 갖춰지기를 기다리다 보면 정작 출발선에 서지 못하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이 여정은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어야 하며, 때로는 그 ‘불완전함을 견디며 나아가는 용기’가야말로 삶에서 가장 필요한 태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마라톤 완주보다 더 큰 의미를 전하고, 우리 각자의 현실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저자에게 있어 85등이라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끝까지 부상 없이 완주하는 것이 목표였고, 그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걸어갔다. 자신을 믿는 마음과 단순하고도 분명한 한 걸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여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막을 걸어 결승선을 통과했고 그 과정이 전하는 울림은 단순한 성취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삶의 진정한 의미와 성장은 남과의 경쟁이나 순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며 자기만의 속도로 꾸준히 걸어가는 과정에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고비 사막이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저자는 예상치 못한 고비를 하나하나 극복해나가며 내면의 단단함을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리듬을 지켜나가는 자세가 결국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태도임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책은 완벽한 준비가 아니어도 괜찮고, 빠르지 않아도 멈추지 않으면 된다고 말한다. 꾸준히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자유라는 결승선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금 인생이라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묵직한 용기와 희망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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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의 바다 - 백은별 소설
백은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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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백은별 작가의 신작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체로 청소년기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적 이슈를 함께 담아내고 있다. 초능력을 지닌 소녀 윤슬과 평범한 소년 바다의 사랑이라는 판타지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청춘의 아픔, 그리고 희망을 진솔하게 담아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좋아해”라는 짧은 고백으로 시작된다. 감정적으로는 평범하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한 문장이지만 곧이어 드러나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감성적인 회상과 달리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사고와 무거운 죄책감으로 전환되며 독자를 단숨에 몰입하게 만든다. 처음엔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되새기는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과거의 감정이 따뜻할수록 현재의 상황은 더욱 냉혹하게 대비된다. 초여름 밤의 풋풋한 설렘에서 병상에 누운 상대를 바라보는 공포감과 죄책감까지. 이 책의 짧은 도입만으로도 감정의 급격한 진폭을 보여준다. 주인공 윤슬은 그렇게 과거의 아름다움을 붙잡은 채 현재의 무력함과 마주하고 있다. "내 시간은 움직이지 않았다"는 문장은 단순한 표현이지만 정지된 감정과 흐르지 않는 일상, 그리고 죄책감에 대한 감정을 더욱 공감하게 만든다. 단순한 로맨스의 틀을 빌리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주제는 훨씬 더 복합적인 듯하다. 과연 이들에겐 어떤 이야기가 있는 걸까? 첫 장면부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주인공 윤슬은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진 고등학생 1학년이다. 어느 날 방치된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2학년 선배 바다는 바이올린 연주에 능하지만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조용한 학생이다. 윤슬은 그와 처음 나눈 대화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멈추게 되고 그날 이후 매일같이 도서관을 찾으며 그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선배, 우리 이름부터가 운명 같지 않아요?”라는 윤슬의 말에 “애냐. 운명 같은 걸 믿게.”라고 말한다. 이처럼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자연스럽고 섬세한 대사들이 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을 잘 드러내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윤슬의 적극적인 감정 표현과 바다의 점진적인 변화는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배경을 지녔음에도 점차 서로의 세계에 스며들어 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 서사를 넘어 초능력자를 배척하는 사회와 개인의 정체성, 책임, 선택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일 년 전, 강력한 초능력자의 출현 이후 사회는 초능력자를 공공의 위협으로 간주하게 된다. 초능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누구든지 연구소로 끌려가 실험과 고문 끝에 생명을 잃게 되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혐오로 초능력자를 배척한다. 윤슬은 시간을 멈추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악용 가능성이 높은 이 능력은 사회에서 특히 위험하게 여겨진다. 그런 윤슬의 비밀을 알게 된 바다는 고민에 빠진다. 그는 초능력자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연구원을 부모로 두고 있으며, 과거에도 부모의 일로 인해 소중한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다. 윤슬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순간 바다는 혼란스러웠고,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과연 바다는 윤슬을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바다와 윤슬,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들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초능력을 이유로 차별받는 소녀와 그녀를 지키려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다름’을 향한 사회의 배제와 두려움을 직시하게 만든다.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감정과 관계 속에서의 갈등, 그리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두 인물은 서로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외면받는 존재로 머무르지 않기 위해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들의 선택은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 속에서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말은 모든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채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일부에게는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청소년 작가이기 때문에 미숙한 결말을 썼다기 보다 청소년 작가이기에 오히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함께 고민하고자 하는 태도를 담은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완벽한 결론 대신 성장과 이해,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는 세상에 대한 물음을 남긴다. 그래서 오히려 독특한 결말이 더 긴 여운을 남기며 우리에게 더 깊은 고민을 이끌어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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