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책을 사는 즐거움
- 헌책방 책값 느끼기


 책등이나 책 뒤쪽에 책값 딱지를 붙여놓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연필로 책값 숫자나 기호를 적어 놓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책값 딱지를 안 붙이고, 숫자나 기호도 안 적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책값 딱지를 붙이는 헌책방에서는, 책손이 책마다 매겨진 제값을 잘 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책값 딱지를 안 붙이는 헌책방에서는, 이 책이나 저 책이나 다 비슷비슷한 값인데 구태여 책값 딱지를 붙일 까닭이 없다고 느끼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아예 책꽂이마다 책값을 달리해서 꽂아 놓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헌책방을 열어 꾸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책값을 붙이는 방법이 저마다 다릅니다. 또한, 책값을 붙이는 방법만큼이나 책값 매기는 잣대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김남주 시인 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키 소설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학습지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마음을 더 두는 책에, 자기가 더 좋아하는 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깁니다. 장사하는 처지로 본다면, ‘내가 안 좋아해도 남이 좋아하는 책’이라면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들도 헌책방 임자가 ‘아는 책’이나 그렇지 ‘모르는 책’에 섣부른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조복성’이 누구인지 아는 헌책방 임자가 어디 있겠으며(책손조차도 거의 모릅니다만), ‘앨런 테인 더닝’이 누구인지 아는 헌책방 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도종환이든 조정래든, 헌책방 임자로서는 ‘헌책방에 들어오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하나를 지은 사람’일 뿐입니다. 책더미 사이에서 눈에 뜨여서 따로 빼낸 뒤 좀더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놓을 수 있지만, 그냥 책탑을 쌓아 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도종환 님 책이라면 시집 칸 한쪽에 그냥 꽂아 놓을 수 있고, 조정래 님 책이라면 소설책 두는 자리에 덩그러니 올려놓거나 쌓아 둘 수 있습니다. 새책 값으로 6000원이 붙은 도종환 님 시집을 헌책방에서 2000원에 팔면 알맞는 값일까요? 1000원이나 1500원에 팔면 싼값일까요? 3000원에 팔면 비싼값일까요? 새책 값으로 9000원이 붙은 조정래 님 산문모음을 헌책방에서 4000원에 팔면 알맞는 값일까요? 3000원만 받아야 알맞을 값일까요?

 그제 강우방 님 산문모음을 5000원 주고 한 권 샀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는 8000원을 받았을지 모르는 책이고, 어떤 헌책방에서는 3000원이나 4000원을 받았을지 모르는 책입니다. 이 책이 저한테 아주 쓸모있고 소중하다면 8000원이 아니라 1만 원을 불렀어도 조금도 비싸지 않다고, 참 싸다고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재미없거나 따분하거나 값어치없다고 느꼈다면, 3000원이 아닌 거저로 준다고 해도 짐스러워서 안 받겠지요.

 어느 헌책방이든 500원이나 1000원에 파는 책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500원이나 1000원이라는 아주 싼값에 살 수 있는 책은 ‘우리들이 얼마나 즐겁게 만나서 사 읽을 만한 책’이 될까요. ‘우리들이 반갑게 사 읽을 만한 책’이라면, 헌책방 임자가 책 값어치를 몰라서 대충 싸구려로 후려치며 내다 파는 책 사이에 더 많을까요, 아니면 헌책방 임자가 알뜰히 손질하고 책먼지를 깨끗이 닦아내어 얌전하게 책시렁에 꽂아 놓은 책 사이에 더 많을까요.

 헌책방을 찾든 새책방을 찾든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우리들이 읽을 만한 책은, 우리들이 치러야 할 만한 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갓 나온 최민식 님 사진책 《인간》(눈빛)은 6만 원 딱지가 붙었습니다. 이 사진책 《인간》은 6만 원이라는 값을 하기 때문에 6만 원이 붙습니다. 조지 레이코프라는 사람이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라는 책은 1만 원이라는 책값이 붙었습니다. 이 책은 1만 원이라는 값을 하기 때문에 1만 원이 붙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알맞은 책값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이 헌책방에 들어온다면, 책값이 헌책방마다 다릅니다. 먼저, 헌책방에 들어오는 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책이라 해도, ㄱ이라는 헌책방에는 1000원에 들어오고, ㄴ이라는 헌책방에는 500원에 들어오며, ㄷ이라는 헌책방에는 100원에 들어오고, ㄹ이라는 헌책방에는 50원에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ㄱ와 ㄴ은 책값이 어떻게 될까요. ㄷ과 ㄹ은 어떻지요? 1000원에 들어오는 책이라 해도, 들어오기 무섭게 팔린다면 책값은 한결 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즘 우리들이 얼마나 책을 즐겁게 사서 읽고 있는가요. ‘헌책방에 책이 들어오기 무섭게 팔리는’ 오늘날인지, 아무리 좋다고 하는 책도 ‘헌책방 책꽂이에 자꾸자꾸 쌓이기만 하는’ 오늘날인지.

 모든 책에는 그만한 값이 매겨집니다. 먼저, 책에 담긴 글-그림-사진을 풀어낸 글쓴이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다음으로, 책을 엮어낸 출판사 사람들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그리고, 책을 죽 늘어놓고 파는 책방 사람들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헌책방에 들어가는 책은, 먼저, 책을 내놓은 사람한테 물건값(책값)을 보상해 줍니다. 또는, 고물상이나 폐휴지수집상에서 책을 거두어들인 샛장수한테 물건값을 보상해 줍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들어온 헌책을 매만지고 손질해서 갖추어 놓는 헌책방 임자 품에 값을 매깁니다. 새책에는 새책에 걸맞는 값을 매기고, 헌책에는 헌책에 걸맞는 값을 매깁니다. 새책으로 사든 헌책으로 사든, 우리들 책손이 이 책 하나를 손에 쥐기까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 품과 보람을 몇 푼 책값에 매겨 놓습니다.

 책을 사는 일은, 책 하나에 담긴 줄거리를 받아들이거나 즐기는 일입니다. 또한, 책 하나 엮어내거나 파는 이들이 들인 땀방울에 보답을 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에는 되도록 ‘자기 돈을 써서 사서 읽어야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한테 재미나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슬기나 깨달음 들을 넉넉히 건네주는 책 하나를 써내고 엮어내고 팔아 준 이들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일이 ‘책 사기’거든요. 밥 한 그릇 받아먹으며 농사꾼들 땀방울을 고맙게 느끼는 한편 밥알 하나를 이룬 햇볕과 물과 흙과 바람 앞에 고마움을 느끼듯, 책 하나를 손에 쥐면서 이 책을 이루어 낸 모든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을 고맙게 느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책을 읽는 일 못지않게 책을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누군가 저한테 책을 거저로 선사해 준다면 참 반가운 노릇이기는 한데, 제 주머니돈을 털어서 책을 사는 일보다 기쁘지 못합니다. 어렵사리 모은 돈을 그러모아서 고마운 책 하나 사는 일이란, 좋은 줄거리를 받아먹는 일만큼이나 ‘나도 무언가 했구나’ 싶은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손수 책을 하나하나 사서 읽히는 어버이들을 볼 때면, 참 흐뭇하고 살갑다고 느낍니다. 저 아이들은 벌써부터 ‘책 사는 즐거움’을 느끼고 배우고 몸으로 익히니까요. (4340.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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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를 한다. 보일러를 돌려 따뜻한 물이 나오게 한 뒤, 먼저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다 감을 무렵 비로소 물이 조금 미지근해진다. 머리는 찬물로 감았다. 하지만 빨래를 할 때에는 제법 따순 물이 나온다. 어제부터 담가 둔 긴소매 웃옷 한 벌과 긴바지 한 벌을 빤다. 긴소매 웃옷은 보름 앞서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갈 때 입던 옷. 그때 땀에 흠뻑 젖어서 이제 빨아 입어야 했는데, 시골집은 물이 얼어서 빨래를 못한다. 빨래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번 서울 나들이에는 빨랫감을 입고 지고 하며 가지고 왔다. 그제는 시골집에서 입는 두툼한 겉옷 하나를 빨고 면티 하나와 수건도 하나 빨았다. 시골집에서는 난방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옷을 두툼하게 입는다.

 오늘 빤 빨래도 진작에 빨고 싶었지만 못 빨고 있던 옷들. 이제 면티 하나만 더 빨면 밀린 빨래는 다 하는 셈.

 문득 오랜만에 빨래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렇구나. 겨울이 되어 물이 얼어붙은 뒤로는 땀에 전 옷도 말려서 다시 입곤 했다. 이렇게 입으니 몸이 근질근질 자꾸 가려웠는데,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 땀이 줄줄 흐르면 가려움은 이내 사라지곤 했다.

 빨래도 오랜만, 머리감기도 오랜만. 한 번 말끔하게 빨고 씻으니 몸이 개운. 씻은 뒤 가뿐하다는 느낌이 이러했던가.

 비누를 골고루 문지른 뒤 북북 비벼서 빤다. 홍제동 얹혀지내는 집 뒷간은 크기가 작은데다가 세탁기까지 자리를 차지해서 퍽 비좁다. 그래도 몸을 비틀어 쭈그리고 앉은 채 빨래를 한다. 잿빛 땟물이 줄줄줄 흘러나온다. 물을 틀어 빨래를 헹구고, 다 헹군 뒤 뒤틀어 물을 짠다. 다 짠 뒤 탁탁탁 턴다. 빨래를 털 때 자잘하게 일어나는 김 같은 물방울들. 여름철에는 이 물방울이 팡팡 일어날 때 참 시원하다고 느꼈다. 겨울에는 조금 차갑다고 느끼는데, 따순 물로 빤 다음 터니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 빤 옷을 벽에 박힌 못에 건다. 다 마른 옷은 걷어서 갠다. 월요일쯤 충주로 돌아갈 텐데, 가는 길에 땀에 흠뻑 젖는 옷이 또 하나 생길 테지. 그 옷은 다음에 서울 나들이를 다시 할 때 또 입어야지. 그리고 서울에 와서 다시 빨래를 해야지. (4340.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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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바이크》라는 자전거 잡지가 있습니다. 이 잡지 2007년 2월호에 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지난달에 이곳 기자와 만나보기를 했고, 이때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제법 크게 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실렸을까 궁금해서 한 권 사려고 어제부터 동네책방을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못 샀습니다.

 먼저 홍제동. 이곳 홍제동에는 책방이 딱 한 군데 남았습니다. 큰길가에 있는데, 이곳에는 자전거 잡지를 안 다룹니다. 다만, 자동차 잡지는 다섯 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신촌에 하나 남은 홍익문고에 갔습니다. 이곳 또한 자전거 잡지를 아예 안 다룹니다. 다만, 이곳도 홍제동 책방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잡지를 여러 가지 다루고 있습니다. 홍대 전철역 지하에 있는 책방에도 가 볼까 하다가 또 실망할까 싶은 마음에, 여기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예전에 이곳에 갔을 때를 떠올려 보면, 그때에도 자전거 잡지는 구경을 못했습니다.

 내일은 어디를 가 보면 좋을는지. 불광동에 있는 불광문고에는 자전거 잡지를 다룰는지. 연신내에 있는 연신내문고는 다룰는지. 궁금한 한편, 걱정이 됩니다. 애써 먼길을 나섰는데, 가는 데마다 자전거 잡지를 안 다룬다면 어쩌지요?

 어쩔 수 없이 광화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나 반디앤루니스에 가야 할까요. 이렇게 큼직한 책방에만 자전거 잡지를 다룰까요? 이곳마저 자전거 잡지가 없지는 않겠지요?

 자전거 타는 사람이 나날이 늘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분들도 차츰 늘고 있습니다. 자전거 문화도 조금씩 퍼져 나갑니다. 그런데, 자전거 타는 분들 가운데 자전거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사람은 매우 적고, 가끔이나마 사서 보는 사람도 참 적다고 합니다(자전거 잡지 만드는 분 이야기를 들으니). 왜 그럴까요.

 괜히 저 혼자 마음이 무겁습니다. 슬픕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소주 두 병을 쓰게 마십니다. 주량은 소주 두 병 안팎인데, 두 병을 마셨어도 술이 안 오릅니다. 취하지 않습니다. 술을 더 마시고픈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더 마시지는 않고 뚝 끊습니다. 신촌에서 홍제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야 하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도 속은 활활 타오르고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얹혀지내는 홍제동 집으로 옵니다. 앞바퀴를 떼어 집으로 들어갑니다(자물쇠가 없어서 바퀴 한쪽을 떼어 집에 둡니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마실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술을 마신다고 마음이 나아질 듯하지는 않아서.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다가 새벽 네 시가 가까워서야 자리에 듭니다. 눈을 감습니다. 하지만 잠은 안 오고 자꾸자꾸 울컥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무엇이 있습니다. 아. 하. 후아. 한숨을 몇 번 내쉬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오늘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골라든 책 몇 권을 집어들고 옆방으로 가서 불을 켭니다. 책을 조금 뒤적이다가 노트북을 켭니다. 인터넷을 엽니다. 즐겨찾는 자전거 모임 게시판에 글을 하나 남깁니다. 책읽기 모임 게시판에도 글 하나 남깁니다. 그래도 어딘가 텅 빈 듯한 느낌.

 내일은, 아니 밝아오는 오늘은 또 어디로 가면 좋을지. 헛걸음이 되더라도 불광문고에 가 볼는지. 싫어도 교보문고에 가 볼는지. 아니면 자전거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손수 찾아가서 그곳에서 사면 좋을는지. 아. 젊음과 문화가 넘친다고 하는 신촌과 홍대 둘레에서마저 자전거 잡지를 구경할 수 없다면, 어느 동네, 어느 마을, 어느 골목, 어느 곳에서 자전거 잡지를 구경할 수 있다는 말인지. 마른침만 꿀꺽꿀꺽 삼킵니다. 오늘 보름달이 떴는데, 달님을 보며 소원을 빌면 들어 줄까요. (4340.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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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2007-02-09 21:34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구입하시길 그리고 2월호 부터는 미국유명잡지 마운틴바이크액션지 제휴로 번역본이 실려 있습니다.
 

 

 딸꾹질이 나온다. 오랜만이다. 반갑구나. 딸꾹질이 멈추지 않으면 끅끅 하면서 다른 일을 하기 번거롭지만, 내가 아직 잘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 딸꾹질 나오는 일도 나쁘지 않다.

 배고프다. 지금은 새벽 네 시 삼십칠 분. 밤새 필름을 스캐너로 긁는 한편 글을 쓰고 있다. 어릴 적부터 밤을 새워 본 적은 딱 한 번도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거의 밤을 새울 뻔했으나 새벽 다섯 시에 깜빡 잠들어서 못 샌 적이 있고, 할머님 돌아가셨을 때는 새벽 여섯 시까지 허드렛일을 하다가 딱 십오 분을 잔 적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군대에 들어가 이등병 때 곧바로 뛴 겨울훈련 때 밤새워 18시간 행군을 한 적이 있고, 똘아이 중대장을 만나 36시간 동안 쉬지 못하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으며 얼차려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군대에서 두 번 밤샌 적이 있는 셈이로군. 이런 내가 지지난주에 한 번, 오늘 또 한 번 거의 밤샘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안 졸리다니. 참 놀라운 일이네. 하지만 배고프다. 밤새 깨어 있으니 배가 출출하다. 그래서 밥통에서 밥을 한 숟가락 퍼서 먹는다. 딱 한 숟가락만. 그리고는 한 시간쯤 다시 글을 쓰다가 다시 한 숟가락 먹고, 또 한 시간쯤 뒤 다시 한 숟가락을. 밥을 한 그릇 가득 채워 먹으면 배가 부를 테지만, 이렇게 배가 부르면 바로 졸음이 쏟아진다. 그런데, 어, 밥을 우물우물 씹고 있으니 딸꾹질이 멎네.

 어제 인터넷새책방 ‘알라딘’에서 편지가 왔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미안하다’면서 적립금 2000원을 보내 주었다는 줄거리를 담았다. 글쎄, 딱히 미안할 일이 있을까. 하지만 미안하다고 느꼈다면 고맙다. 얼굴 안 보고 인터넷으로만 돈을 주고받은 뒤 책을 보내는 마당에, 서로 믿을 수 있도록 하지 않은 잘못을 조금이나마 느꼈다면.

 노래 듣는 기계가 고장난 듯하다. 아니 맛이 갔나? 어제까지는 잘 돌아가더니 오늘은 영 삐리리하다. 테이프를 다 씹어먹을 듯 늘어진다. 기계가 퍽 오래되기는 했는데, 이렇게 삐리리하게 되다니. 심심하다. 그나마 혼자 지내는 시골집에 오직 하나 있는 말동무인데.

 새벽 두 시쯤 마당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구름이 퍽 많이 끼었다. 달이 잘 안 보였다. 조금 앞서 나와 보니 구름이 하늘을 온통 덮었다. 아침부터 눈이 내릴라나? 눈이 내린다면 제법 큰눈이 올 듯한데. 날이 좀 풀릴까 싶더니 다시 꽁꽁 얼어붙을지 모르겠다. 한 달 넘게 물을 못 쓰고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봄까지는 이대로 지내야겠구나. 날이 밝으면 윗마을로 부리나케 올라가 물 한 동이 떠올까? (4340.1.3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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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전민조 지음 / 눈빛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지난 2005년 5월, 전민조 선생 전시회를 보고 난 뒤 쓴 글입니다. 이래저래 검색을 해 보다가, 이 좋은 사진책 하나가 제대로 빛을 못 받고 있구나 싶어서, 예전에 써 두었던 소개글을 살짝 붙여 봅니다.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고, 우리 삶터를 살가이 돌아보는 눈길을 쓰다듬어 주는 사진이 묻혀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간직한 '섬' 사진
- 전민조 사진책 <섬>을 보다



<1> 고무신을 신은 사람들


1971년부터 1973년 사이에 서해안 백령도, 홍도, 소흑산도, 성남도, 진목도, 대마도, 소마도, 라매도, 조도, 관매도, 여서도, 우도, 연화도, 연대도, 수우도, 오륙도, 울릉도, 독도… 들을 두루 다닌 전민조 님 사진책이 나오고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에 있는 전시장에서 조촐한 강연자리도 있었습니다.

사진책은 진작에 눈빛 출판사 인터넷 누리집에서 소식을 들었고, 성균관대 앞 <풀무질>에서 책방 아저씨와 함께 구경했지만, 아직 사 놓지 않았습니다. 전민조 님 강연자리에서 말씀을 들은 뒤, 그날 그 자리에서 사면 책에 서명을 해 준다고 해서요.

사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맨 처음으로 우리를 반기는 사진은 어린 계집아이가 자기보다 어린 동생을 풀로 엮은 자리에 눕혀 놓고 재우는 모습입니다. 동생은 궁둥이가 트인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풀자리(짚이 귀하고 가난한 집에서는 들과 산에서 나는 풀을 베어다가 자리를 엮었다고 합니다) 옆에는 누나가 신는 듯한 검정 고무신과 어린 동생이 신는 듯한 꽃신이 흩어져 있습니다. 둘이 있는 풀자리 앞 돌담 위에는 까만 돼지가 둘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벽에 차례차례 걸린 사진을 봅니다. 하나같이 수수한 옷차림에 얼굴 까맣고 눈 맑은 사람들 모습입니다. 섬사람들 사진인 터라 사진이 찍힌 곳도 바다나 바닷가, 갯벌, 배 위나 배 둘레입니다. 섬에서는 텃밭 하나도 소중하기에 손바닥 만한 밭 하나도 일구려고 힘쓰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렇게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발을 보니, 거의 다 고무신을 신습니다. 맨발인 사람도 참 많습니다. 운동화나 구두를 신은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군요. 좀더 거슬러 올라간 옛날엔 고무신도 드물고 짚신이 훨씬 많았겠죠?

저는 지난해 가을부터 고무신을 신고 다닙니다. 처음에는 시골에서 일할 때만 신었는데 이제는 서울로 갈 때도 고무신을 신습니다. 한동안 고무신과 제 발이 맞지 않아 뒤꿈치가 긁히고 살갗이 벗겨졌지만, 이제는 하루 내내 고무신만 신고 다녀도 발이 긁히거나 아프거나 다치지 않습니다. 어느새 고무신과 제 발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2> 야윈 소를 먹이는 아이


사진책 <섬> 겉을 수놓은 사진은 바다가 보이는 섬 들판에서 풀을 먹이는 아이 모습입니다. 등에는 자기 키 만한 지게를 진 아이도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소는 눈이 퀭해 보이는데 등이 칼날처럼 곧습니다. 갈비뼈도 보입니다. 배가 홀쭉하군요. 섬사람들도 배불리(또는 마음껏 많이) 먹기 어려웠을 테니, 이 섬사람들이 기르던 소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러고 보니 사진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넘겨보았을 때 '살이 찐 사람'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모두들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합니다. 먹을거리가 많지는 않았어도 서로 나누며 살았기에 이렇게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해 보일까요? 다시 사진책을 넘기며 옷차림을 주욱 살피니 입성도 비슷합니다. 옷도 신도 몸도 비슷한 이들은 마찬가지로 비슷비슷한 집에서 비슷한 방에서 살아갑니다.

어린 계집아이가 홀로 툇마루에서 밥을 먹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숟가락도 한 손으로 꼬옥 쥐지 못하는 어린 아이인데, 살이 통통합니다. 그렇다고 살이 찐 몸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라면 으레 그러하듯 살짝 통통한 편입니다. 보리밥에 물만 반찬으로 먹는 아이인데도 몸이 이러하군요. 먹는 밥은 넉넉하지 못해도, 넉넉한 바다와 공기와 물과 바닷것이 있기 때문일까요?

고깃배가 가득가득 넘쳐서 돌아왔습니다. 어른들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잡은 고기들을 부려 놓습니다. 그 옆에 발가벗은 사내아이도 일손을 거듭니다. 이어지는 사진에서도 발가벗은 아이가 나옵니다. 반바지만 입은 아이하고 갯벌에서 놀다가 사진 한 장 찍혔습니다. 반은 발가벗은 채로 엄마가 일하는 시늉을 하는 아이도 보입니다. 어머니처럼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싶은지 텅 빈 바소쿠리를 이고 엄마 앞에서 길을 이끕니다. 그 뒤로는 엄마가 있고, 그 뒤로는 어린 누나가 머리에 짐을 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뭍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섬 안에서 맴돌지만, 이 섬에서도 저희들끼리 즐겁고 놀고 즐겁게 어울리며 즐겁게 일을 합니다(그렇지만 늘 '즐겁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바쁠 때면 그지없이 고단하고 고달픈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제 밥값을 할 만한 나이가 되었다고 할 때면 어김없이 자기 몸에 맞는 지게를 지고 땔감이고 풀베기고 무엇이고 해야 할 테니까요). 요새로 치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만한 나이에도 어른과 함께 일을 하고, 마땅히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 삶터를 오롯이 들여다보기


전민조 님이 담은 '섬 사진'에 드러나는 모습은 섬사람들 삶만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 삶입니다. 뭍이건 섬이건 가릴 것 없이 보통으로 우리가 살아온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들, 보통으로 살아온 사람은 우리 자신이 살아온 자취를 남기지 못합니다. 남길 틈도 없고, 남길 만한 장비(사진기, 필름 따위)도 없습니다. 어쩌면 전민조 님처럼 사진기자가 되어 전국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영영 잃어버리거나 잊혀진 모습이 되었을 '우리들 삶터 사진'이에요.

사진책 <섬>은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빛이 바래는 한편, 도시사람들 구경거리와 놀이터로 무너져 버린 섬 모습을 아직은 깨끗한 채로 있을 때를 비추어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고이 남은 몇 안 되는 소중한 발자취이자 생활문화 역사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섬사람들 삶으로 좀더 깊숙하게 들어가지 못했다는 대목. 전시회 사진과 사진책 사진에는 미처 들어가지 못했는지 모르겠는데, 섬사람들 살림살이, 집안 구석구석,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고된 일을 하는 모습이 좀더 낱낱이 드러나지 못했다는 대목이 아쉽습니다. 일하는 어른들 모습도 좀 멀찍이 떨어져서 살펴본 구경꾼 눈이라는 대목도 보입니다.

그러나 전민조 님을 다른 구경꾼하고 똑같이 여길 수 없습니다. 지금은 잠깐 들렀다 가지만 앞으로 다시 찾아올 뭍손님입니다. 섬에서 섬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은 아니지만, 살갑게 찾아와 부드럽게 손을 맞잡고 한 밥상에서 보리밥을 나눠 먹는 고맙고 반가운 뭍손님입니다. 섬에서만 사느라 뭍 소식을 모르고 뭍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들한테 뭍 소식과 뭍 세상을 차근차근 일러 주는 이야깃손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섬 소식과 섬 세상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 주는 사랑손님이 되기도 할 테고요.


.. 수평선을 바라보며 염소와 송아지를 모는 귀여운 아이들, 물동
이와 땔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소녀들과 아낙네들의 표정은 너
무나 평화로웠다 .. <전민조 님 말>



강연자리에서 전민조 님은 "어린이를 천사로 봤어요. 꾸밈이 없어요. 그런데 세상에 훌륭한 사람들은 꾸밈이 많아요. 각색이 되고 조작이 되고… 어린이들이 어른한테 표정을 꾸미고 해서 만들 수 없잖아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섬사람들 얼굴에서 느낀 평화로움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지 싶습니다. 남 앞에서 꾸미거나 가릴 것이 없이 착하게 사는 모습, 서로 살가운 이웃으로 여기며 길손한테도 밥상 하나 차려 주는 마음씀, 이런 평화로움이겠지요.

그런데 1970년대 첫머리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두루 평화로움을 잃었습니다. 이 '평화로움을 잃음'은 바로 오래된 봉건통치 사회를 거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몇몇 독재정권까지 이어오는 동안 짓밟히고 짓눌리고 시달리느라 마음이 다치고 곪고 병들어 버린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생겨 버린 사회이자 삶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세상이 팍팍하고 사람들 마음씀도 거칠어질 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전민조 님이 찾아다닌 섬에서 만난 사람들한테서 느낀 수수함과 살가움은 사진마다 고이 남고 아름답게 이어질 수 있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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