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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의 비밀 ㅣ 사계절 동시집 20
이안 지음, 심보영 그림 / 사계절 / 2022년 4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9.4.
노래책시렁 508
《기뻐의 비밀》
이안 글
심보영 그림
사계절
2022.4.20.
《기뻐의 비밀》은 어린이한테 어떻게 읽힐 글일까 아리송합니다. 왜 어린이한테 “너랑 같이 있어 줄게 … 절대 네 곁을 떠나지 않아(10쪽)” 같은 말을 할까요? 우리가 어른이요 어버이라면, 아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깨기에 날개돋이에 둥지나기를 하도록 이끌고 북돋울 노릇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서는 날까지 지켜보고 돕기에 어른이거나 어버이입니다. 늘 품에 감싼다면 아이를 거꾸로 옥죄고 괴롭히는 짓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같이 있어 줄게 // 나만은 절대 네 곁을 떠나지 않아 (그림자 약속/10쪽)
이른바 다름(다양성)이란 이름으로 ‘거미·개미’를 말장난하듯 엮어서 겉속이 다르다고 내세워야 하지 않습니다. ‘거미·개미’는 모두 ‘검다’라는 낱말을 밑동으로 삼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마주하는 거미나 개미는 으레 검은빛입니다. 안 검은 개미라서 ‘불개미(붉은개미)’에 ‘흰개미(하얀개미)’라고 따로 가리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될 뿐입니다. 굳이 허울·껍데기(대의명분)를 씌울 까닭이 없습니다.
거미로 살고 있지만 / 실은 나 개미야 (거미/14쪽)
어떤 배추가 배추벌레·배추흰나비를 시샘할까요? 사람다운 빛을 잃은 서울살이를 왜 배추와 배추벌레·배추흰나비한테 빗대야 할까요? 사람다운 결을 잃어가는 서울사람 이야기를 하려면 그냥 ‘서울사람’을 들면 됩니다. 배추벌레가 배추흰나비로 깨어나야 비로소 장다리꽃(배추꽃)을 반기면서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배추흰나비는 멀리 날아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 / 작년처럼 자기만 혼자 / 팔랑! // 나비 되어 / 날아가기 / 없기다 (배추가 배추벌레에게/16쪽)
노래지기(시인)한테 붓종이만 있으면 될까요? 터무니없습니다. 먼저 집에서 살림하고 일하는 손끝부터 있을 노릇입니다. 스스로 제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돌보는 손끝이어야, 이 손끝에서 노래가 피어나고 태어나고 깨어납니다. 먼먼 옛날부터 온누리 숱한 어버이(어머니·아버지)는 일하며 노래했고, 이 일노래(노동요)를 듣고 자라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뛰놀면서 소꿉노래에 놀이노래를 스스로 지었습니다. 노래지기라면, 호미와 부엌칼과 빗자루부터 쥐어야 할 노릇입니다. 그저 글만 쓰면 되지 않습니다.
시인에게는 연필과 수첩만 있으면 된대 / 그게 시인의 /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무기라는 거야 / 그 둘만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거지 / 아름답지 않니? (아홉 살 시인 선언/20쪽)
‘기쁘다’하고 ‘이쁘다’는 ‘-쁘-’라는 소리가 나란합니다. 그런데, ‘기쁘다’는 ‘깊다’라는 낱말을 밑동으로 태어난 낱말입니다. 깊이 스미거나 받아들일 만큼 빛나는 일을 맞이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기쁘다’입니다. ‘이쁘다’라면 ‘입다·잎’ 같은 낱말을 밑동으로 태어나지요. 옷을 입듯 물을 입듯 받아들이는 결이요, 해바람비를 받아들이는 잎과 같은 결인 마음을 나타내는 ‘이쁘다’입니다. 또한 ‘이쁘다·예쁘다’는 ‘어여쁘다’에서 비롯한 낱말이니, 뜻과 결이 확 다릅니다. 섣불리 말장난을 안 하기를 빕니다.
기뻐를 끊어 먹지 않도록 조심해 / 너도 알다시피, / 길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이잖아? (기뻐의 비밀/24쪽)
나무하고 풀꽃을 제대로 안 바라보면, 마치 사람처럼 잘못 여기고 맙니다. 모과나무가 능금나무나 배나무나 감나무를 ‘생각’하면서 제 삶길을 잊을 까닭이 없습니다. 모과나무는 모과꽃을 피우고 모과잎을 내고 모과알이 굵는 길을 오롯이 헤아리기에 스스로 빛납니다. 능금나무는 능금꽃과 능금잎과 능금알에 온마음을 기울이면서 스스로 눈부십니다. 다 다른 나무는 저마다 다르게 스스로 품고 헤아리면서 자랍니다. 나무는 나무로 바라볼 노릇입니다. 엉뚱하게 뒤틀지 않기를 빕니다.
모과꽃들은 탐스런 사과를 생각하느라 / 가을까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과꽃도 모르고 모과꽃도 모르는/52쪽)
쇳덩이(자동차)를 몰다가 나비를 치어죽인 일을 놓고서(75쪽), 이렇게 말바꾸기처럼 적어도 될까요? 숱한 사람들은 그저 빠르게 달리려고 하면서 나비뿐 아니라 벌과 새와 숲짐승과 풀벌레와 뱀과 개구리를 사납게 밟고서 멀쩡히 지나갑니다. 나비가 아닌 사람을 치었다면 얼른 멈출 테지요. 나비를 들이받아 죽이고서 나비가 무시무시하게 달려들어서 ‘받혀 죽었’다는 얼거리로 바꾸지 않아야 할 텐데요. 노래를 하려는 사람은 ‘붓종이’를 쥘 노릇입니다. 노래지기라는 자리에 서려는 사람이라면 빠른길(고속도로)을 부릉부릉 내달리는 손잡이(운전대)를 버려야 할 노릇입니다. 시골버스·시내버스·시외버스를 타거나 두다리로 천천히 걸으면서 온누리를 살펴볼 줄 아는 눈을 북돋울 적에 비로소 노래지기입니다.
나비가 시속 120킬로미터로 날아와 / 차 유리를 쿵! / 들이받고 죽었다 (고속도로/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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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의 비밀》(이안, 사계절, 2022)
너랑 같이 있어 줄게
→ 너랑 같이 있을게
→ 너랑 있을게
10쪽
정말 개미처럼 하고 다닌다고 놀리는 게 말이 되니
→ 아주 개미처럼 하고 다닌다고 놀리면 말이 되니
→ 꼭 개미처럼 하고 다닌다고 놀리면 되니
14쪽
그게 시인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무기라는 거야
→ 이 하나가 노래지기를 빛낸대
→ 오직 이렇게 노래를 한대
→ 오로지 붓종이로 노래한대
20쪽
기뻐 안에는 이뻐가 들어 있다
→ 기뻐에는 이뻐가 있다
→ 기뻐에 이뻐가 들어간다
24쪽
길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이잖아
→ 길다고 꼭 좋지만은 아니이잖아
→ 꼭 길어야 하지만은 아니이잖아
24쪽
이상한 날의 해바라기 그림
→ 어느 날 해바라기 그림
→ 낯선 날 해바라기 그림
35쪽
발음도 아주 조그매했지
→ 소리도 아주 조그맣지
→ 말빛도 아주 조그매
36쪽
바닥으로 뚝 떨어진 것 같아
→ 바닥으로 뚝 떨어진 듯해
39쪽
꽃에서 나는 종소리 듣고 싶어지게
→ 꽃한테서 쇠북소리 듣고 싶게
→ 꽃한테서 댕댕소리 듣고 싶게
45쪽
입학생 하나하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 병아리를 하나하나 꼬옥 안으셨다
→ 첫내기를 하나하나 꼬옥 안으셨다
51쪽
모과꽃들은 탐스런 사과를 생각하느라 가을까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 모과꽃은 소담스런 능금을 떠올리느라 가을까지 즐겁습니다
52쪽
그림자 새가 앉아 뾰뾰― 운다
→ 그림자새가 앉아 뾰뾰 운다
60쪽
풀숲에 놓아줄 때―
→ 풀숲에 놓을 때
→ 풀숲에 놓을 때!
63쪽
깜빡 잊었다는 게 이 이야기의 전부거든
→ 깜빡 잊었다는 이야기가 다거든
→ 깜빡 잊는다는 이야기이거든
→ 깜빡 잊었을 뿐이거든
→ 깜빡했다는 얘기이거든
→ 깜빡한 얘기이거든
71쪽
자기 그림자를 태우는 불의 춤을 보았니
→ 제 그림자를 태우는 불춤을 보았니
82쪽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 환하게 와 있었다
→ 반드시 오고야 말 기쁨이 환하게 온다
→ 반드시 기뻐야 할 내가 환하게 기쁘다
→ 나는 어느새 기쁘다
→ 나는 이제 기쁘다
89쪽
이 까만 분꽃 씨 속에는 들어 있다
→ 이 까만 가루꽃씨에 든다
→ 이 까만 가루꽃씨한테 있다
9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