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지
박철 지음, 이명환 그림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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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9.4.

노래책시렁 509


《아무도 모르지》

 박철

 창비

 2024.5.10.



  얼핏 보면 덩굴풀이나 덩굴나무가 곧은나무하고 다투는 듯하지만, 어떤 풀과 나무도 다투는 일이 없습니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 곳에서 저마다 해를 바라보면서 자라며 얽히고 섞일 뿐입니다. 얼핏 보면 여러 새나 짐승이나 벌레가 서로 먹이를 놓고서 다투는 듯한데, 어느 목숨붙이도 먹이다툼을 안 한다고 해야 맞습니다. 온누리 뭇숨결은 함께 나누면서 같이 살아가거든요. 《아무도 모르지》를 읽으면, 사람처럼 다툰다고 여기는 들숲이라든지, 아이들이 다투는 듯한 모습이라든지, 이러면서도 들숲메에 안겨서 마음껏 놀기를 바라는 마음이 하나둘 흐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기를 잊어버리고서 위아래(신분·계급·권력)를 가른 뒤부터 다툼질이 생겼다고 보아야 옳다고 느껴요. 윗분이 있기에 아랫놈을 깔봅니다. 윗자리를 높이는 벼슬이 생기면서, 벼슬이며 종이(자격증·졸업장)가 없는 사람을 아랫놈으로 삼으면서 마구 굴리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바보스런 서울살이(도시문명)를 나무랄 줄 아는 눈일 노릇이되, 아이곁에서 이야기를 여밀 적에는 ‘숲살림’이 무엇인지 풀어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한테 ‘핀잔하기·타박하기’를 물려줄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한테 ‘살림하기·사랑하기’를 물려주면 됩니다. 함박비나 벼락비는 있되 ‘물폭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임자(주인)’를 따지는 쪽은 으레 서울사람과 땅지기(지주)일 뿐인 줄 제대로 짚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ㅍㄹㄴ


비하고 / 바람하고 다툰다 / 그래서 비바람 // 물하고 / 폭탄하고 뒹군다 / 그래서 물폭탄 (장마/13쪽)


누가 주인이냐고 / 나무와 흙은 / 다투지 않네 / 저 밤하늘과 별이 / 그러듯이 (서로서로/26쪽)


+


《아무도 모르지》(박철, 창비, 2024)


언제 다시 돌아오면 정식으로 사과해야지

→ 언제 다시 오면 제대로 빌어야지

→ 언제 돌아오면 깊이 뉘우쳐야지

12


물하고 폭탄하고 뒹군다 그래서 물폭탄

→ 물하고 벼락하고 뒹군다 그래서 물벼락

13


가로수가 처음으로 골목 안 구경을 했다

→ 길나무가 처음으로 골목 구경을 한다

14


몰래 의논을 했는데

→ 몰래 얘기를 했는데

→ 몰래 말했는데

17


누가 두고 갔나 궁금해지네

→ 누가 두고 갔나 궁금하네

38


유아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아기수레를 내려다본다

64


넓은 집으로 이사 간다아

→ 넓은 집으로 간다아

→ 넓은 집으로 옮겨간다아

67


뙤약볕 아래 두리번두리번 가느다란 눈이 두 배로 커집니다

→ 뙤약볕에 두리번두리번 가느다란 눈이 두 곱이 된다

→ 뙤약볕에 두리번두리번 가느다란 눈이 곱빼기로 크다

86


올해에는 무승부지만 내년에는 결판이 나겠지

→ 올해에는 비기지만 새해에는 끝이 나겠지

9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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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의 비밀 사계절 동시집 20
이안 지음, 심보영 그림 / 사계절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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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9.4.

노래책시렁 508


《기뻐의 비밀》

 이안 글

 심보영 그림

 사계절

 2022.4.20.



  《기뻐의 비밀》은 어린이한테 어떻게 읽힐 글일까 아리송합니다. 왜 어린이한테 “너랑 같이 있어 줄게 … 절대 네 곁을 떠나지 않아(10쪽)” 같은 말을 할까요? 우리가 어른이요 어버이라면, 아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깨기에 날개돋이에 둥지나기를 하도록 이끌고 북돋울 노릇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서는 날까지 지켜보고 돕기에 어른이거나 어버이입니다. 늘 품에 감싼다면 아이를 거꾸로 옥죄고 괴롭히는 짓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같이 있어 줄게 // 나만은 절대 네 곁을 떠나지 않아 (그림자 약속/10쪽)


  이른바 다름(다양성)이란 이름으로 ‘거미·개미’를 말장난하듯 엮어서 겉속이 다르다고 내세워야 하지 않습니다. ‘거미·개미’는 모두 ‘검다’라는 낱말을 밑동으로 삼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마주하는 거미나 개미는 으레 검은빛입니다. 안 검은 개미라서 ‘불개미(붉은개미)’에 ‘흰개미(하얀개미)’라고 따로 가리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될 뿐입니다. 굳이 허울·껍데기(대의명분)를 씌울 까닭이 없습니다.


거미로 살고 있지만 / 실은 나 개미야 (거미/14쪽)


  어떤 배추가 배추벌레·배추흰나비를 시샘할까요? 사람다운 빛을 잃은 서울살이를 왜 배추와 배추벌레·배추흰나비한테 빗대야 할까요? 사람다운 결을 잃어가는 서울사람 이야기를 하려면 그냥 ‘서울사람’을 들면 됩니다. 배추벌레가 배추흰나비로 깨어나야 비로소 장다리꽃(배추꽃)을 반기면서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배추흰나비는 멀리 날아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 / 작년처럼 자기만 혼자 / 팔랑! // 나비 되어 / 날아가기 / 없기다 (배추가 배추벌레에게/16쪽)


  노래지기(시인)한테 붓종이만 있으면 될까요? 터무니없습니다. 먼저 집에서 살림하고 일하는 손끝부터 있을 노릇입니다. 스스로 제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돌보는 손끝이어야, 이 손끝에서 노래가 피어나고 태어나고 깨어납니다. 먼먼 옛날부터 온누리 숱한 어버이(어머니·아버지)는 일하며 노래했고, 이 일노래(노동요)를 듣고 자라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뛰놀면서 소꿉노래에 놀이노래를 스스로 지었습니다. 노래지기라면, 호미와 부엌칼과 빗자루부터 쥐어야 할 노릇입니다. 그저 글만 쓰면 되지 않습니다.


시인에게는 연필과 수첩만 있으면 된대 / 그게 시인의 /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무기라는 거야 / 그 둘만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거지 / 아름답지 않니? (아홉 살 시인 선언/20쪽)


  ‘기쁘다’하고 ‘이쁘다’는 ‘-쁘-’라는 소리가 나란합니다. 그런데, ‘기쁘다’는 ‘깊다’라는 낱말을 밑동으로 태어난 낱말입니다. 깊이 스미거나 받아들일 만큼 빛나는 일을 맞이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기쁘다’입니다. ‘이쁘다’라면 ‘입다·잎’ 같은 낱말을 밑동으로 태어나지요. 옷을 입듯 물을 입듯 받아들이는 결이요, 해바람비를 받아들이는 잎과 같은 결인 마음을 나타내는 ‘이쁘다’입니다. 또한 ‘이쁘다·예쁘다’는 ‘어여쁘다’에서 비롯한 낱말이니, 뜻과 결이 확 다릅니다. 섣불리 말장난을 안 하기를 빕니다.


기뻐를 끊어 먹지 않도록 조심해 / 너도 알다시피, / 길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이잖아? (기뻐의 비밀/24쪽)


  나무하고 풀꽃을 제대로 안 바라보면, 마치 사람처럼 잘못 여기고 맙니다. 모과나무가 능금나무나 배나무나 감나무를 ‘생각’하면서 제 삶길을 잊을 까닭이 없습니다. 모과나무는 모과꽃을 피우고 모과잎을 내고 모과알이 굵는 길을 오롯이 헤아리기에 스스로 빛납니다. 능금나무는 능금꽃과 능금잎과 능금알에 온마음을 기울이면서 스스로 눈부십니다. 다 다른 나무는 저마다 다르게 스스로 품고 헤아리면서 자랍니다. 나무는 나무로 바라볼 노릇입니다. 엉뚱하게 뒤틀지 않기를 빕니다.


모과꽃들은 탐스런 사과를 생각하느라 / 가을까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과꽃도 모르고 모과꽃도 모르는/52쪽)


  쇳덩이(자동차)를 몰다가 나비를 치어죽인 일을 놓고서(75쪽), 이렇게 말바꾸기처럼 적어도 될까요? 숱한 사람들은 그저 빠르게 달리려고 하면서 나비뿐 아니라 벌과 새와 숲짐승과 풀벌레와 뱀과 개구리를 사납게 밟고서 멀쩡히 지나갑니다. 나비가 아닌 사람을 치었다면 얼른 멈출 테지요. 나비를 들이받아 죽이고서 나비가 무시무시하게 달려들어서 ‘받혀 죽었’다는 얼거리로 바꾸지 않아야 할 텐데요. 노래를 하려는 사람은 ‘붓종이’를 쥘 노릇입니다. 노래지기라는 자리에 서려는 사람이라면 빠른길(고속도로)을 부릉부릉 내달리는 손잡이(운전대)를 버려야 할 노릇입니다. 시골버스·시내버스·시외버스를 타거나 두다리로 천천히 걸으면서 온누리를 살펴볼 줄 아는 눈을 북돋울 적에 비로소 노래지기입니다.


나비가 시속 120킬로미터로 날아와 / 차 유리를 쿵! / 들이받고 죽었다 (고속도로/75쪽)


+


《기뻐의 비밀》(이안, 사계절, 2022)


너랑 같이 있어 줄게

→ 너랑 같이 있을게

→ 너랑 있을게

10쪽


정말 개미처럼 하고 다닌다고 놀리는 게 말이 되니

→ 아주 개미처럼 하고 다닌다고 놀리면 말이 되니

→ 꼭 개미처럼 하고 다닌다고 놀리면 되니

14쪽


그게 시인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무기라는 거야

→ 이 하나가 노래지기를 빛낸대

→ 오직 이렇게 노래를 한대

→ 오로지 붓종이로 노래한대

20쪽


기뻐 안에는 이뻐가 들어 있다

→ 기뻐에는 이뻐가 있다

→ 기뻐에 이뻐가 들어간다

24쪽


길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이잖아

→ 길다고 꼭 좋지만은 아니이잖아

→ 꼭 길어야 하지만은 아니이잖아

24쪽


이상한 날의 해바라기 그림

→ 어느 날 해바라기 그림

→ 낯선 날 해바라기 그림

35쪽


발음도 아주 조그매했지

→ 소리도 아주 조그맣지

→ 말빛도 아주 조그매

36쪽


바닥으로 뚝 떨어진 것 같아

→ 바닥으로 뚝 떨어진 듯해

39쪽


꽃에서 나는 종소리 듣고 싶어지게

→ 꽃한테서 쇠북소리 듣고 싶게

→ 꽃한테서 댕댕소리 듣고 싶게

45쪽


입학생 하나하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 병아리를 하나하나 꼬옥 안으셨다

→ 첫내기를 하나하나 꼬옥 안으셨다

51쪽


모과꽃들은 탐스런 사과를 생각하느라 가을까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 모과꽃은 소담스런 능금을 떠올리느라 가을까지 즐겁습니다

52쪽


그림자 새가 앉아 뾰뾰― 운다

→ 그림자새가 앉아 뾰뾰 운다

60쪽


풀숲에 놓아줄 때―

→ 풀숲에 놓을 때

→ 풀숲에 놓을 때!

63쪽


깜빡 잊었다는 게 이 이야기의 전부거든

→ 깜빡 잊었다는 이야기가 다거든

→ 깜빡 잊는다는 이야기이거든

→ 깜빡 잊었을 뿐이거든

→ 깜빡했다는 얘기이거든

→ 깜빡한 얘기이거든

71쪽


자기 그림자를 태우는 불의 춤을 보았니

→ 제 그림자를 태우는 불춤을 보았니

82쪽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 환하게 와 있었다

→ 반드시 오고야 말 기쁨이 환하게 온다

→ 반드시 기뻐야 할 내가 환하게 기쁘다

→ 나는 어느새 기쁘다

→ 나는 이제 기쁘다

89쪽


이 까만 분꽃 씨 속에는 들어 있다

→ 이 까만 가루꽃씨에 든다

→ 이 까만 가루꽃씨한테 있다

9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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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156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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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8.4.

노래책시렁 507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장혜령

 문학동네

 2021.7.1.



  줄줄이 자리(계급)를 만들면, 첫째부터 둘째도 셋째도 막째도 모두 괴로울 뿐일 테지요. 나란히 누리는 자리를 마련하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막째도 없이 누구나 어울리며 즐겁습니다. 줄세우는 자리는 이른바 벼슬로 치닫고, 벼슬자리를 거머쥐려고 서로 다투고 치고받는 사이에 미움씨앗이 번지고 불길이 퍼져서 활활 몽땅 태웁니다. 어깨동무를 하는 나란한 자리에서는 서로 보금자리를 일구고, 일자리와 놀자리와 쉼자리를 느긋이 펴면서 바야흐로 숲이 깨어납니다.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를 곰곰이 읽었습니다. 워낙에 ‘벼슬’이나 ‘돈’은 처음부터 없던 부스러기인데, 이제는 벼슬도 돈도 종이(자격증·졸업장)도 마치 “없어서는 안 될 끈”으로 여기기 일쑤인 나날입니다. 글밭에서도 벼슬과 돈과 종이는 대수롭게 여긴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나라도 따분하고 글밭도 따분할 뿐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은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문학하는’ 몸짓과 ‘예술하는’ 손끝이 춤출 뿐입니다. 우리는 허울을 내려놓거나 벗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날개돋이를 할 수 있는가요? 벌레나 새만 껍데기를 벗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껍데기를 벗고서 맨몸으로 해바람비를 사랑으로 맞이할 적에 저절로 온노래가 깨어납니다.


ㅍㄹㄴ


내가 스물셋이었을 때, 남자는 서른둘이었다. 발을 심하게 다쳐 더이상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느꼈을 때, 그 사람을 만났다. (눈의 손등/12쪽)


검은 돌은 고요가 침묵과 다르다는 것을 비에게서 배웠다. 비는 부딪히면서 빛났고 부서지면서 끝없이 말하고 있었다. 비는 냇물이 되어 흘렀고, 흐르는 냇물은 거침이 없었고, 막힘이 없었으며, 자면서도 흘렀고, 흐르면서도 꿈꾸고 있었다. (검은 돌은 걷는다/23쪽)


사랑하는 곡예사 여인의 육체에서는 / 오직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 바람, 빛, 닿지 못할 먼바다 (어두운 숲의 서커스/90쪽)


사랑하지 않지. 텔레비전을 켜둔 모텔 방 / 침대 위에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는 당신은 / 내 허벅지에 다른 손을 뻗거나 / 목을 조르며 / 뒤를 파고들 뿐이지 (고해呱咳/93쪽)


+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장혜령, 문학동네, 2021)


그녀는 겹겹의 문(門)에 대해, 입구를 열면 다시 새로운 입구가 열리는 꽃의 내부에 대해 말했다

→ 그이는 겹겹길을, 길을 열면 다시 새길이 열리는 꽃속을 말했다

17쪽


그것은 기다린다. 공백. 포획하기 위해 기다린다

→ 기다린다. 빈. 붙잡으려고 기다린다

→ 기다린다. 가만. 잡으려고 기다린다

18쪽


누군가 오긴 올 거야

→ 누가 오긴 와

→ 누가 오긴 오지

21쪽


오래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이 쓰인 날로부터 내가 읽는 날까지

→ 오래된 책을 읽으면 책이 쓰인 날부터 내가 읽는 날까지

29쪽


저녁의 빛은 숲 그늘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만들었다

→ 저녁빛은 숲그늘에 다른 곳으로 잇는 길을 낸다

→ 저녁에 빛은 숲그늘에 다른 데로 길을 잇는다

38쪽


크고 붉은 동백의 곁이었다. 잎사귀 아래 둥근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 크고 붉은 동박 곁이다. 잎사귀 밑에 둥근 물방울이 맺힌다

43쪽


딸의 손은 / 없는 새의 등을 쓰다듬고

→ 딸은 / 없는 새등을 쓰다듬고

→ 딸은 / 없는 새를 쓰다듬고

50쪽


나의 비명에는 소리가 없었다

→ 나는 소리없이 외쳤다

→ 나는 말없이 외쳤다

65쪽


어둠 속이었다. 나는 이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나와 함께 숨쉬고 있다는 거북함 때문에 불을 켜려고

→ 어둡다. 어둔 이곳에서 뭐가 함께 숨쉬기에 거북해서 불을 켜려고

→ 어둡다. 어둔 곳에서 함께 숨쉬는 누가 거북해서 불을 켜려고

11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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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시인선 184
고명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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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8.4.

노래책시렁 506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고명재

 문학동네

 2022.12.15.



  글보람(문학상)을 누리고 싶다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글을 보낼 수 있습니다. 글빛을 살리고 싶다면, 이웃하고 글종이를 나누면서 하루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글보람에 얽매이기에 벼슬(대학교수)을 얻기 쉽습니다. 글빛을 사랑하기에 온누리 뭇사람과 뭇풀과 뭇나무와 뭇새를 이웃으로 삼으면서 오늘을 노래합니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먼저 읽고서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을 읽었습니다. 두 책을 나란히 읽어야 글쓴이가 왜 이런 글감을 잇는지 엿볼 만합니다. 또한 왜 ‘글쓰기’가 아닌 ‘글꾸밈’에 스스로 가두는지 들여다볼 수 있기도 합니다. 흔히들 ‘먹고살아야’ 하기에 이런 일과 저런 일을 한다고 여기지만, ‘일’하고 ‘먹고살기’는 다릅니다. ‘벌이(돈벌이)’를 바라보기에 ‘먹고살기’로 기울고, ‘일’을 마주하기에 ‘살림·하루·오늘·너나’라고 하는 길을 바라보면서 삶을 지어요. 돈벌이는 안 나쁘되, 언제나 우리 스스로 가둡니다. 일이란 좋음이나 나쁨이 아닌 오롯이 삶이면서 살림빛입니다. 바람이 일고 바다가 일듯, 쌀을 일어서 밥을 안칩니다. 스스로 일어서기에 새롭게 일어나고, 함께 일으키기에 나란히 피어납니다. ‘문학’이 아닌 ‘삶글·살림글·사랑글’이면 넉넉합니다.


ㅍㄹㄴ


가장 아름답게 무너질 벽을 상상하는 것 / 페이스트리란 / 구멍의 맛을 가늠하는 것 (페이스트리/32쪽)


노르웨이 북쪽의 푸른꼬리나방은 광석을 뜯어먹으며 성장하는데 산화구리철 때문에 날아간 궤적이 파랗게 반짝인다고 그건 신이 우주를 만든 이야기 같다 (어제도 쌀떡이 걸려 있었다/38쪽)


베란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펼쳐둔 금귤을 보는 게 좋다 / 귤 말고 금귤의 덩치가 좋다 / 금관악기에 매달리는 빛의 손자국이 좋다 (엄마가 잘 때 할머니가 비쳐서 좋다/54쪽)


+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고명재, 문학동네, 2022)


온 세상이 멸하고 다 무너져내려도

→ 온누리가 무너져내려도

→ 온누리가 망가져도

5쪽


연의 아름다움은 바람도 얼레도 꽁수도 아니고 높은 것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 아름다운 나래는 바람도 얼레도 꽁수도 아니고 높이 잇는다는 느낌

→ 아름다운 바람나래는 바람도 얼레도 꽁수도 아니고 높이 닿는다는 느낌

10쪽


찜통 속에 삼겹살을 넣고

→ 찜통에 세겹살을 넣고

11쪽


개화전선(開花前線)은 탄산처럼 북으로 넘치고

→ 꽃금은 보글보글 높이 넘치고

→ 꽃줄은 바글바글 높이 넘치고

19쪽


모래에 닿은 해변의 파도와 같다

→ 모래에 닿은 물결 같다

→ 모래에 닿은 바닷물 같다

→ 모래에 닿은 바닷방울 같다

29쪽


복수(腹水)를 안고 뒤뚱뒤뚱

→ 뱃물을 안고 뒤뚱뒤뚱

31쪽


그는 다한증 때문에 여름이면

→ 그는 땀앓이 때문에 여름이면

→ 그는 땀 때문에 여름이면

40쪽


나는 사람을 넘어 존재가 된다

→ 나는 사람을 넘어 내가 된다

→ 나는 사람을 넘어 빛이 된다

→ 나는 사람을 넘어 별이 된다

4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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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누스 푸디카 창비시선 410
박연준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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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7.25.

노래책시렁 505


《베누스 푸디카》

 박연준

 창비

 2017.6.19.



  남들이 안 쓰거나 모를 만한 어려운 낱말을 골라서 슬쩍 넣어야 ‘글’이라고 여기는 분이 꽤 있습니다. 워낙 중국글을 받아들이던 지난날부터 ‘글’이란 “어렵게 꼬아서 아무도 못 읽도록 감춘 그들잔치”이곤 했습니다. 중국글만 ‘글’로 삼던 그들(남성가부장권력·마초)은 아예 중국글을 ‘수글’이라는 이름으로 자랑했습니다. 훈민정음이 태어났어도 훈민정음은 ‘암글’일 뿐이요, 순이(여성)는 수글(중국글)이 아닌 암글(훈민정음)만 익히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베누스 푸디카》를 읽는 내내 우리는 아직 지난날 ‘그들잔치’를 고스란히 이으면서 글담을 쌓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저 삶을 노래하면 될 텐데, 자꾸 어려운 중국글이나 일본글이나 영어를 끼워넣어야 하나요? 그대로 살림을 노래하면 넉넉할 텐데, 구태여 먼나라 그들잔치를 채워야 하는가요? 발을 바로 이 땅바닥에 붙일 적에 삶이 태어나고, 이 삶을 그리는 말이 깨어납니다. 수글도 암글도 모르는 채, 종이에 붓에 먹에 벼루도 까맣게 모르는 채, 그렇지만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볼 줄 알던 지난날 수수한 흙지기 숨결을 가만히 살리는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오늘사람’을 찾지 말아야 하려나 궁금합니다. 말을 잊거나 등진 곳에는 노래가 없이 ‘틀’만 있습니다.


ㅍㄹㄴ


곧, 곧, 들릴 것 같은데 / 회색이 될 것 같은데 / 다하기 전에는 움직일 수도 없는데 // 붉은 궤적을 따라 신경이 쏟아지고 / 주황, 아니면 빨강이겠구나 너는 / 막돼먹은 바람처럼 달렸겠구나. (침대/16쪽)


아홉번 죽은 별들만 아름답다는데 대관절 / 아름답게 죽은 별이란 게 무슨 소용일까? / 살아나면 어쩌지 / 이 많은 생의 궁극들, / 피어나면 어쩌지 (아홉번 죽은 별들만 아름답다/37쪽)


꿈속에서 아버지가 군대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 그럼 우린 어떻게 살아? //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하고 /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흠향歆饗/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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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누스 푸디카》(박연준, 창비, 2017)


그게 내 일곱살 때 음부 모양

→ 내 일곱살 샅

→ 내 일곱살 밑

10쪽


버드나무 아래서 기다래지는 생각

→ 버드나무 밑에서 길어가는 생각

→ 버드나무 곁에서 긴긴 생각

14쪽


허방과 실패로부터 도망가는 지네의 붉은 등

→ 허방과 쓴맛을 달아나는 붉은등 지네

14쪽


허밍으로 비밀을 발설하는 무희들

→ 콧노래로 속내를 들려주는 춤아씨

→ 입술노래로 숨은말 하는 나풀꽃

22쪽


먹이를 발견한 짐승이 세상을 압인(壓印)하는 동작으로

→ 먹이를 찾은 짐승이 둘레를 찍어누르듯이

→ 먹이를 본 짐승이 온누리를 내리누르듯이

28쪽


밤의 이적수(耳赤手)로 죽음에 성공한 귀신들

→ 밤이 살려서 죽어버린 깨비

→ 밤이 도와서 죽은 도깨비

37쪽


여기가 백회(百會)인가, 무구한 풀들이 모여 기도하는 백회인가

→ 여기가 온빛인가, 고운 풀이 모여 비는 온빛인가

→ 여기가 빛인가, 깨끗한 풀이 모여 비손하는 빛인가

46쪽


시작도, 선언도, 기억도 없이 깊어진 것들

→ 처음도, 말도, 생각도 없이 깊어간 길

50쪽


봄의 식물들은 기다리는 게 일이다. 자기 순서를

→ 봄풀은 제자리를 기다린다

→ 봄꽃은 제때롤 기다린다

13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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