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44. 이슬



  알지 못하니까 알지 못할 테고, 알 테니까 압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이 말 그대로인 줄 느끼기는 해도 ‘이렇게 느낀 내 마음대로 알아도 되나?’ 하고 망설였어요. 어릴적부터 둘레 어른이나 또래는 하나같이 ‘네가 느낀 대로 받아들이면 안 돼!’라든지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친 것이 아니면 다 틀려!’ 같은 말을 했을 뿐 아니라, 좀 배웠다는 이들은 ‘교과서는 거짓말투성이야, 이 책을 봐, 이 책에 내온 줄거리가 맞아!’ 같은 말을 보탰어요. 그러나 저는 학교뿐 아니라 이름높다는 분들이 쓴 책조차 교과서처럼 거짓말투성이, 아니 ‘그들한테는 참으로 보일는지 모르나, 나로서는 하나도 안 맞구나 싶은 이야기’로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릴적부터 맨눈으로 바람결과 깨비(귀신)을 볼 수 있었고, 맨귀로 풀이나 이슬이나 빗물이 들려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적은 교과서도 인문책도, 게다가 종교책조차 못 만났습니다. 이러다가 드문드문 멋진 길잡이를 만났지요. 저는 바람결을 맨눈으로 보지만, 어느 길잡이는 제가 미처 못 본 ‘물결’을 맨눈으로 보시고, ‘헤엄이가 바다에서 헤엄치는 결’도 마음이나 살갗으로 느끼셔요. 이때에 온몸이 찌릿찌릿하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내 눈은 미치지 않았구나’ 하고 깨닫고, ‘나는 내 눈을 사랑할 노릇이로구나’ 하고 여기기로 합니다. 저는 이슬방울 겉모습을 노래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분은 그런 겉모습을 노래하겠지요. 저는 이슬하고 나눈 말, 이슬이 들려준 노래를 노래하려 합니다.



이슬


해가 기울면 어느새

바람 한 줄기가 죽

돌고 감돌고 맴돌며

이슬을 뿌려


해가 뜰 즈음

풀밭이며 숲은 온통

새벽이슬로 반짝이는

그림판이 돼


풀도 꽃도 나무도

개미도 사마귀도 벌도

아침이슬 마시면서

새기운 내네


맨발로 풀이슬 느끼며

우리 밭에 선다

맨손으로 꽃이슬 맡으며

오늘을 연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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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책집노래 . 최교수네 헌책방 (서울 외대앞) 2023.2.8.



“그래, 곧 군대 간다고?

 젊어서 군대에도 가 보면

 힘들겠지만 배울 일도 많아.

 잘 다녀오게.”


“어디 보자, 뭐 하나 줄까.

 어디에 있든 ‘나’를 알아야 해.

 톨스토이 《인생독본》을 아나?

 내가 아끼며 읽던 책이지.”


“잘 살아서 돌아오고,

 앞으로도 힘써 배우시게.

 등불이 있으면 꺼지지 않아.

 책은 마음에 등불이지.”


“한참 예전에나 교수였지.

 이젠 그냥 할아버지야.

 젊은이들 보려고 열고서 담배 피지.”

 이제는 포근히 쉬시겠지요.


ㅅㄴㄹ


아마 2001년 겨울과 2002년 봄 사이에 책집을 닫았고, 사진은 2001년 봄에 비로소 찍고서 건네드릴 수 있었다. 사진을 건네드리고 나서는 책집을 연 모습을 거의 못 보았다. 하늘에서 포근히 쉬시겠지. 이 노래에 적은 이야기는 1995년 11월에 나눈 말을 옮겼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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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책집노래 . 문화당서점 (서울 연신내) 2023.2.8.



“배추지짐을 모르시는가?

 우리 고장에서는 다들 먹는데.

 허허, 책만 읽느라 모르는구만.

 책은 안 달아나니 이리 오소.”


“책읽는 사람은 존일한다고,

 세상을 좋이 바꾸느라 바쁘다고,

 그래서 조용히 기다리는데,

 십 년 넘게 외상값을 안 갚네.”


“내가 헌책을 만집니다만,

 값어치가 있으니 헌책을 찾지 않겠소?

 이 낡은것한테서 배운다면,

 낡은것 만지는 사람한테서도 배울 만하지 않소?”


“책은 뭐 맨날 읽으실 텐데,

 책 좀 그만 보고,

 이바구 좀 들려줘 봅소.”

알라딘중고샵 열자 책아재는 떠났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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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책집노래 . 스테레오북스 (부산) 2024.4.4.



냉이꽃은 괭이밥꽃보다 작고

봄까지꽃은 씀바귀꽃보다 작고

겨울바람 씻어낸 들꽃은

나즈막이 노래하며 핀다


오동나무는 넓적하게 잎 내고

후박나무는 한결같이 잎 나고

봄볕으로 물드는 나무는

풀개구리 불러들여 논다


맨발로 노는 아이는

늘 들꽃하고 동무한다

맨손으로 일하는 어른은

언제나 나무랑 이웃한다


눈을 감고서 별빛을 들어

눈을 뜨고서 빗소리 읽어

함께 어울려 밤노래 나눠

새로 일어나 햇살을 반겨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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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책집노래 . 취미는 독서 (순천) 2024.4.2.



뭘 하고 싶냐고 물으면

온누리 모든 별에 가서

다 다른 숲에 깃들어

푸른노래 부르기


오늘 뭘 하냐고 물으면

봄맞이새 곁으로 가서

봄맞이꽃 들여다보고

해바라기 누리기


마음에 담아서 달랜다

마음을 찾아서 챙긴다

마음으로 세워 이끈다

마음이 흘러서 나눈다


나는 읽기를 즐겨

바람과 바다와 밤을 읽어

너는 쓰기를 즐기지?

생각과 얘기와 꿈을 쓰네


ㅅㄴㄹ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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