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숲노래 노래꽃 ― 61. 늑대



  늑대라고 하는 이웃은 사납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어느 눈으로 보면 이렇게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늑대 눈으로 사람을 보면 어떠할까요? 사람이야말로 더없이 사납거나 거칠거나 모질거나 괘씸하거나 무시무시하거나 끔찍하거나 지저분하거나 터무니없을 수 있어요. 늑대가 사람을 보기에는 이처럼 여길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사람은 ‘먹이’로 삼을 뜻도 아닌 그저 ‘재미’로 온갖 짐승을 마구 잡아서 죽입니다. 사람은 ‘보금자리’로 꾸밀 뜻이 아닌 그저 ‘돈벌이’를 노리면서 숲을 마구 허물거나 망가뜨립니다. 사람이 이룬 나라는 저마다 평화를 외치면서도 군대하고 전쟁무기를 어마어마하게 갖추어서 으르렁거려요. 평화를 바란다면서 왜 군대하고 전쟁무기에 그토록 돈을 엄청나게 쏟아부을까요? 과학자는 왜 이렇게도 군사무기를 새로 만드는 데에 온힘을 쏟을까요? 이제 늑대를 오롯이 늑대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바라요. 스스로 늑대 눈으로 보고, 스스로 늑대 발로 달리고, 스스로 늑대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늑대 털로 느끼고, 스스로 늑대 입으로 노래하고, 스스로 늑대 숨결로 별빛을 읽는 길을 헤아리기를 바랍니다. 이 별을 이룬 여러 이웃 가운데 하나인 늑대를 참말로 이웃으로서 마주해 봐요. 이 마음을 고스란히 사람살이에 맞물려 놓고서, 사람인 이웃을 상냥하고 아름답게 마주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어 봐요. 우리들 사람은 이 별에서 즐겁게 배우고 새롭게 익혀서 곱게 나누는 보람을 노래하려고 살아가지 싶습니다.



늑대


있는 힘껏 들을 달려

바람을 즐기거든

귀 쫑긋 숲을 갈라

잎새 스치는 느낌 누리거든


달빛보다는 별빛을 봐

작은 꽃빛을 눈여겨보고

들풀에 어린 이슬을 읽고

안개에 서린 물방울을 느껴


아이가 태어나면

씩씩하되 상냥한 마음을

당차되 부드러운 걸음을

밝으며 꿰뚫는 눈망울을


여기에다가

서로 돌볼 줄 아는 숨짓을

놀이로 가르치고서

들녘사랑을 물려주지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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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60. 플라타너스



  우리 곁에 서는 나무가 숱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온 터전에는 언제나 뭇나무가 우거졌습니다. 나무가 없이는 숨쉬지 못 하고, 나무가 없이는 집짓지 못 하고, 나무가 없이는 살림이며 세간을 마련하지 못 하고, 나무가 없이는 들숲메가 메마르기에, 사람뿐 아니라 뭇숨결은 살아가지 못 합니다. 이 별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나무는 다 다른 땅과 하늘과 날과 철에 따라서 그야말로 다르게 싹트고 자라고 뻗습니다. 사람은 다 다른 나무를 다 다르게 마주하고 품으면서 “사람도 서로 다르면서 나란한 숨빛”인 줄 배웁니다. 풀 한 포기도 서로 다르고, 나무 한 그루도 서로 달라요. 더구나 까마득하게 솟거나 커다랗게 서는 나무라지만 나무씨 한 톨은 매우 작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씨앗·열매를 보면서 ‘방울나무’로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줄기빛·줄기무늬를 보면서 ‘버즘나무’로 이름을 붙이기도 한 ‘플라타너스(platanus)’입니다. 여름바람을 잎빛으로 시원하게 달래는 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푸른들에 파란하늘 같은 바람을 일으키는 나무라면, 여름뿐 아니라 봄가을에도 푸른숨을 내놓아 이바지하고, 겨울에도 푸른빛을 베풀며 이바지합니다. 그냥 부는 바람은 없어요. 모래벌에서는 메마르고 뜨겁게 훅훅 부는 바람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닷방울 기운을 품는 바람입니다. 나무 곁에서는 나무가 다독이면서 어루만지는 바람입니다. 풀밭에서는 작은 풀꽃이 북돋우는 바람입니다. 방울처럼 밝게 노래하는 바람 한 줄기를 헤아리면서 큰나무 굵은줄기를 쓰다듬습니다.



플라타너스 (방울나무·버즘나무)


처음은 누구나 씨앗으로

첫길은 언제나 뿌리부터

첫눈은 살그머니 하늘로

이제부터 바람을 머금고


껑충껑충 큰나무 보면서

높이높이 하얀별 보다가

줄기가 굵고 가지를 내어

잎을 활짝 벌린다


조금씩 자라는 동안

줄기껍질을 벗어

꽃지고 맺는 열매는

동그랗게 알알이


단열매나 아름꽃 아니나

푸른잎으로 물결 이루어

바닷소리를 고루 퍼뜨려

한여름을 파랗게 식힌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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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9. 가을



  어릴적부터 “너나 잘해!” 같은 말을 곧잘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동무나 언니나 어른한테 조그마한 귀띔이나 도움말을 들려주려는 뜻이었지만, 몸도 자그맣고 힘없이 고삭부리로 지내는 꼬마가 들려주는 말은 썩 안 반가울 만했구나 싶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분들이 먼저 저한테 귀띔이나 도움말을 바라지 않았는데 먼저 불쑥 알려주니까 싫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저를 찾아와서 여쭙기에 찬찬히 짚어서 알려줄 적에도 거북한 낯빛인 분이 제법 있습니다. 이런 나날을 누리면서 조용히 헤아립니다. 아무래도 제 말씨가 그리 상냥하지 않구나 싶으면서, 누구누구를 돕거나 이끌 수 없는 노릇이겠네 싶어요.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길을 찾아서 스스로 부딪히고 스스로 깨달으면서 스스로 어깨를 활짝 펼 뿐이네 싶습니다. “너나 잘하셔!”나 “너나 똑바로 해!” 하고 쏘아붙이던 분들은 그분들 말씨야말로 쏘아붙이는 화살인 줄 모르리라 봅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 새삼스레 생각해요. 저는 이 가을을 새로우며 싱그이 맞이하고 싶다고, “네, 저는 저부터 잘할게요. 가을이에요!” 하고 속삭이면서 제가 걸어갈 길을 바라보려 합니다. 한여름에는 한여름대로 불볕을 마음껏 누렸어요. 한가을에는 한가을대로 열매를 실컷 누리면 되겠지요? 한겨울에는 한겨울대로 함박눈을 푸짐히 누리고, 한봄에는 한봄대로 새잎잔치를 골고루 누리려 합니다.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기에 맨몸으로 이 비를 맞으면서 시원히 걷습니다. 가을밤에 가을별이 초롱초롱 뜨기에 온몸으로 별빛을 머금습니다.



가을


우리 집 초피잎은

가을이면 샛노랗지

후박잎 동박잎은

갈겨울 모두 짙푸르고


푸른 모과알 유자알

차츰 노르스름 바뀌면

풀노래 조용조용 사위고

바람소리 조금씩 깊어가


쑥꽃 조롱조롱

억새씨앗 하늘하늘

이제 들숲은 누릇누릇

곧 별밤빛은 반짝초롱


고구마를 찔까

감자밥을 할까

갈잎배를 엮어

냇물에 띄울까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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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58. 이름없는



  “이름없는 풀”은 없습니다. “이름모를 풀”도 없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한테 다 다르게 이름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살림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스스로 마주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마음을 담아서 붙인 이름이 있어요. 오랜 옛날부터 들숲메바다를 품고서 살림을 지은 사람들이 몸소 바라보고 느끼고 살핀 마음으로 붙인 이름이 있습니다. 한자말로 하자면 ‘무명화·무명초’는 없어요. 우리가 스스로 이름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기에 “아직 이름을 모르는 풀꽃나무”라고 해야 맞습니다. “아직 이름을 묻지 않았기에 이름을 알 길이 없는 풀꽃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숱한 사람들한테 저마다 이름이 있어요. “이름없는 사람”이나 “이름모를 사람”은 없어요. 언제나 우리가 스스로 물어볼 노릇입니다. 늘 우리가 몸소 다가설 일입니다. 지켜보거나 들여다보면서 눈길과 눈길이 만나요. 두 눈길이 닿으면서 숨결이 이어요. 숨결이 잇는 사이에 따사롭고 너그럽게 바람이 일어요. 한 발 가까이 다가갑니다. 풀꽃 곁에 쪼그려앉습니다. 나무줄기를 어루만지다가 뺨을 댑니다. 팔을 뻗어서 팔등에 나비를 앉힙니다. 걷다가 멈춰서 풀벌레가 베푸는 노랫가락에 귀를 기울입니다. 서로 가까이 있기에 숨소리를 읽습니다. 서로 멀리 있어도 숨꽃을 헤아립니다. 내가 너한테 이르고, 네가 나한테 이릅니다. 마음을 얹은 소리인 말로 이르고, 사뿐사뿐 즐겁게 내딛는 발걸음으로 오늘 이곳에 이릅니다. 둘이 나란히 이르니 비로소 ‘이름’이 깨어나고 태어나고 피어나고 솟아납니다.



이름없는


“이름이 뭐니?” 하고 물으면

“글쎄, 네가 생각해 봐.”

“이름을 알려줘.” 하고 되물으면

“네가 생각하는 대로 불러.”


“이름없는 꽃이 어디 있니?” 하면

“그러니까 네가 지어 주렴.”

“내가 아무렇게나 지어도 돼?” 하니

“아니, 사랑으로 지어 줘.”


“널 가리키는 이름 있잖아?” 하니

“난 네가 지을 이름이 궁금해.”

“난 이름 잘 못 짓는데.” 하니까

“그냥 마음으로 보고 느껴 봐.”


“그냥 알려주면 안 되니?” 하는 말에

“그저 네 눈빛으로 품으면,

  네가 늘 즐겁게 만나고 싶으면,

  그 생각대로 이름이 피어나.”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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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씁니다 ― 57. 모르는책



  누구나 읽고 쓰는 오늘날입니다. 글을 읽기도 하지만, 마음을 읽기도 합니다. 책을 펴거나 쓰기도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짓기도 합니다. 서로 눈빛을 읽기도 하고, 가만히 하늘과 바다와 들숲을 읽기도 하지요. 책은 꾸준히 새로 태어나되 막상 책을 곁에 두는 사람은 줄어든다고 하지만, 여러모로 보면 ‘종이꾸러미’도 책이요, 이야기꾸러미와 살림꾸러미와 씨앗꾸러미도 책입니다. 씨앗 한 톨로도 오롯이 책이요, 이슬과 빗물 한 방울도 새삼스레 책이에요. 다른 누가 “이슬이란 무엇인가?” 하고 찾아나서면서 밝힌 꾸러미를 읽을 수 있고, 우리 스스로 “이슬은 언제 어떻게 맺어서 어느 목숨붙이한테 이바지하면서 철마다 새로운가?” 하고 지켜보면서 알아낼 수 있습니다. 날씨알림을 듣고서 날씨를 어림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바람결과 구름결과 별빛을 헤아리면서 날씨를 읽고 새겨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숲이 고스란히 책숲(도서관)이라고 느껴요. 들녘이 언제나 들숲(생활박물관)이로구나 싶어요. 바다가 언제나 바다숲(해양박물관)일 테지요. 어느 날 문득 ‘모르는책’이라는 낱말을 손바닥에 얹어 보았습니다. 굳이 한 낱말로 ‘모르는책·눈익은책·익숙한책’처럼 엮으면서 ‘배우는책·때우는책’에 ‘익히는책·첫걸음책’처럼 글결을 맞추어 봅니다. 모르기에 읽고서 배웁니다. 이제 조금 알아보기에 아직 모르는 길을 찾아나섭니다. 모르는 줄 알기에 다시 읽고, 가만히 눈을 틔우면서 새록새록 눈길을 열고 싶어서 끝없이 읽고 돌아봅니다.


ㅍㄹㄴ


모르는책


너는 으레

‘모르는책’은 안 들추고

‘눈익은책’에 손을 뻗네

이렇게 책이 수북한데


나는 줄곧

‘익숙한책’은 지나치고

‘처음인책’을 들여다봐

이처럼 책이 더미인데


너는 자꾸

‘배우는책’은 치워 놓고

‘때우는책’을 옆에 둔다

온삶이 배움날인데


나는 새삼

‘익히는책’을 또 읽는다

‘첫걸음책’은 늘 설레니

다시금 보고서 살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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