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증언 낮은산 키큰나무 24
김중미 지음 / 낮은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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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2.10.

다듬읽기 274


《너를 위한 증언》

 김중미

 낮은산

 2022.4.5.



  삶을 사랑으로 짓는 손길이기에 살림을 이룹니다. 하루하루 맞이하지만 사랑이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휩쓸리며 심부름에 얽매이니 살림과 등질 뿐 아니라 사랑을 모릅니다. 온누리 어디에서나 삶·살림·사랑을 품는 사람으로 서는 집이 있지만, 안타깝고 슬프게 삶·살림·사랑이 아니라 돈·힘·이름에 이끌리는 끄나풀과 놈팡이도 있습니다. 《너를 위한 증언》은 살림지기·사랑지기가 아닌 놈팡이·끄나풀이 휘두르는 주먹에 울고 아프고 죽은 가시내한테 맺힌 응어리하고 눈물을 담는 줄거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멍청한 주먹을 ‘남성가부장권력’이라고 일컫습니다. 넋을 잃은, 얼을 잊은, 빛을 등진, 씨앗을 팽개친 무리가 ‘고약한 꼰대(남성가부장권력)’일 텐데, 바로 모든 임금(왕·대통령·권력자)이 고약한 꼰대입니다.


  얼핏 보면 임금이란 놈팡이는 하나 아니냐고 여길 텐데, 피를 잇는 임금은 수두룩하고, 임금이 되려는 사내(왕자)도 수두룩합니다. 임금을 모시는 벼슬아치는 하나같이 사내(신하·사대부·귀족)이면서 수두룩합니다. 임금과 벼슬아치는 그들 돈·힘·이름을 움켜쥐려고 사람들을 억누르고 짓밟아서 싸울아비(군인)로 데려가고, 나라 곳곳에 나리(양반·지식인·공무원)를 두는데, 싸울아비하고 나리도 줄줄이 사내입니다. 몇몇 사내하고 얽힌 굴레가 아닌, 고린틀(봉건사회)이 고스란히 굴레입니다.


  굴레에 길들기에 돈벌이는 하되 살림은 안 짓거나 못 짓습니다. 굴레를 꿰는 허수아비에 끄나풀로 떡고물을 얻는 자리를 누리려고 하니, 사납짓이 오늘날까지 고스란합니다. 이른바 ‘이씨 조선 500해’가 끝장났어도,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났어도, ‘박·전·노·김 군사독재’를 끌어내렸어도, 왜 고약한 꼰대짓이 안 사라지는지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사회·국가·정부)라고 하는 꼴이 그대로 고약한 꼰대틀이거든요.


  《너를 위한 증언》은 줄거리를 펴려는 뜻은 나쁘지 않다고 느끼지만, 고약한 꼰대틀이 서슬퍼런 얼거리를 썩 못 읽거나 안 읽는 듯합니다. ‘모든 아버지’도 ‘몇몇 아버지’도 아닌, ‘모든 사내’도 ‘몇몇 사내’도 아닌 실타래입니다. 무엇보다도 무엇이 살림이고 사랑이고 삶이고 사람인지 밝힐 때라야, 응어리를 달래고 눈물을 씻고 생채기를 토닥이면서 일어설 수 있어요. 옳은길(정의)이라는 목소리를 내기에 새길이나 새글을 이루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옳은길’이되, 이 목소리에 ‘삶·살림·사랑·사람’이 없이 ‘미움씨·불씨·싫음씨’로 채운다면, 더구나 글결이 온통 ‘일본말씨 + 옮김말씨(일제강점기 군국주의 말씨·번역체)’라면, 겉훑기로 헤매다가 그치게 마련입니다.


ㅍㄹㄴ


《너를 위한 증언》(김중미, 낮은산, 2022)


나는 가출도 해본 적이 없어 아무리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 나는 집나간 적이 없어 아무리 속쓰리고 불나는 일이 있어도

→ 나는 뛰쳐나간 적이 없어 아무리 쓰리고 싫은 일이 있어도

11쪽


저어새가 가족 단위로 사는데 그 가족이 불가피하게 깨지면 남은 생을 외톨이로 산다고

→ 저어새는 한집을 이루는데 누가 죽으면 남은 삶을 외톨이로 산다고

→ 저어새는 둥지를 짓는데 한쪽이 먼저 가면 남은 삶은 외톨이라고

16쪽


잘 자게 되면 나갈게

→ 잘 자면 나갈게

17쪽


자궁과 난소를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 아기집과 알집을 크게 도려냈다

→ 아가집과 암씨집을 크게 잘라냈다

18쪽


하늘에 빛의 요술이 펼쳐진다

→ 하늘에 빛잔치가 열린다

→ 하늘에 빛이 반짝인다

→ 하늘이 빛꽃을 이룬다

19쪽


미투 얘기가 나오면

→ 같이 얘기가 나오면

→ 나도 얘기가 나오면

→ 함께 얘기가 나오면

23쪽


결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 결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지만

→ 결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모르지만

→ 결이가 하는 말을 영 못 알아듣지만

36쪽


새들처럼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떨까

→ 새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어떨까

→ 새처럼 하늘에서 땅을 보면 어떨까

40쪽


넌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넌 나란꽃을 어떻게 여겨?

→ 넌 무지개사랑을 어떻게 봐?

44쪽


너희 언니가 레즈비언이라서 가족들이 장례식에 안 갔다는 거야?

→ 너희 언니가 한꽃이라서 집에서 죽음길에 안 갔다고?

→ 너희 언니가 나란꽃이라서 집에서 보냄길에 안 갔다고?

45쪽


쇼윈도 부부만 있는 게 아니라 쇼윈도 가족도 있어

→ 눈가림 갓벗만 있지 않고 눈가림 집안도 있어

→ 꽃밭 사이만 있지 않고 꽃밭 집안도 있어

→ 겉보기 단짝만 있지 않고 겉보기 집안도 있어

57쪽


자궁 안에서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 존재가 떠올랐다

→ 아기집에서 내내 알리던 아기가 떠오른다

→ 아가집에서 늘 말을 하던 숨결이 떠오른다

67쪽


M에게 느껴야 할 부채 의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 ㅁ한테 느껴야 할 빚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는데

→ ㅁ한테 무엇을 빚졌는지 돌아보는데

79쪽


그런 행동을 용납하고 변명해 준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컸어

→ 그런 짓을 받아들이고 감싼 사람이 몹시 미웠어

→ 그렇게 굴어도 봐주고 들어준 사람이 참 싫었어

→ 그 따위를 들어주고 밀어준 사람이 꼴보기싫었어

129쪽


열한 살 때부터였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

→ 열한 살 때부터 괴로웠습니다

→ 열한 살 때부터 고달팠습니다

→ 열한 살부터 아팠습니다

→ 열한 살부터 힘겨웠습니다

153쪽


스스로 나의 길을 만들어 갈 힘을 얻었습니다

→ 스스로 길을 걸어갈 힘을 냈습니다

→ 스스로 길을 내려고 일어섰습니다

→ 스스로 길을 찾으며 힘냈습니다

154쪽


나는 절대로 엄마아빠 같은 사람이 안 될 거라는 것이다

→ 나는 엄마아빠 같은 사람이 될 마음이 아예 없다

→ 나는 엄마아빠처럼 살 마음이 조금도 없다

→ 나는 엄마아빠처럼 살 바에야 죽으련다

23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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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재미 말고 - 솔직히 다 읽으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조경국 지음 / 유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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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2.9.

다듬읽기 285


《책, 읽는 재미 말고》

 조경국

 유유

 2025.12.4.



  누가 책을 ‘재미’로 읽는다고 한다면 ‘재주’를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재미·재주’는 나란합니다. ‘재다’로 뻗는 몸짓이면서 ‘재’로 마무르는 길이에요. 재미나 재주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재는(자랑하는·뻐기는) 굴레로 나아가느라, 재(잿길)를 넘느라 활활 타올라야 하기에, 그만 재(잿더미)로 되기 일쑤입니다.


  누구는 밥을 재미로 먹을는지 모르고, 말도 재미삼아 할는지 모르나, 옷도 재미나게 입을 수 있을 텐데, 저는 여태 밥도 말도 옷도 책도 재미로 한 적이 없습니다. 굶든 먹든 즐거울 노릇이고, 한 마디이건 열 마디이건 즐겁지 않다면 안 할 일이며, 남한테 자랑하듯(재듯) 걸칠 옷이 아니라 스스로 즐겁게 지어서 누릴 옷입니다.


  《책, 읽는 재미 말고》는 ‘책재미’를 찾는 여러 가지를 다루는구나 싶으면서도, 그만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에 가두느라 이리저리 맴돌다가 그친다고 느낍니다. 재미란, 책재미란, 글재미란, 참으로 안 나쁠 테지만, 언제나 굴레나 늪이게 마련입니다. 재미로 읽거나 따지려 할 적에는 겉을 훑다가 끝나요. 재미로 보거나 때우려 하기에 그만 삶이 아닌 재주를 펼 줄 알거나 부릴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기고 맙니다.


  글을 쓰는 재주는 없어도 될 뿐 아니라, 아예 없는 쪽이 낫습니다. 글재주나 말재주를 부리는 하루란 으레 겉모습과 겉치레로 흐르면서 속빛과 이야기하고 멀어요. 속으로 빛나는 이야기를 펴면서 이 삶을 즐겁게 누리려고 한다면, 재미와 재주를 모두 내려놓을 노릇입니다. 그래서 모든 ‘재미·재주’는 ‘잔재미·잔재주’로 기울다가, 어느새 쳇바퀴로 헤매는 얼개예요.


  좋은책과 나쁜책이 없기에 어느 책을 읽어도 즐겁지만, ‘책즐김(즐겁게 읽기)’이 아니라 ‘책재미’에 빠질 적에는 자꾸자꾸 ‘좋은책’을 좇느라 ‘좁은책’을 움켜쥐면서 못 벗어납니다. 좁게 읽어도 안 나쁩니다만, 좋아하는 대로만 해도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만, “타고난 재주”처럼 “타고난 재미”를 좇다 보면, 스스로 손빛을 가꾸는 손씨(솜씨)를 잊고 잃습니다. 천천히 오래오래 차근차근 하나하나 스스로 가꿀 적에 열 해이건 서른 해이건 쉰 해이건 느긋이 피어나는 살림길이 ‘손씨(솜씨)’입니다. 책을 손에 쥐고서 읽는다면, 책을 손수 보듬고 다듬는다면, 책손질을 스스로 하는 하루라면, ‘재미·재주’뿐 아니라 ‘잔재미·잔재주’를 모두 걷어내고서 ‘손씨·손길’과 ‘손빛·눈빛’으로 나아갈 노릇일 텐데 싶습니다.


ㅍㄹㄴ


《책, 읽는 재미 말고》(조경국, 유유, 2025)


향기만으로 사람들을 매혹하는 존재다

→ 냄새만으로 사로잡는다

→ 내음만으로 홀린다

→ 향긋하게 잡아끈다

→ 무척 향긋하다

9쪽


책에는 꼭 읽는 재미만 있는 건 아닌데, 다른 재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없나 궁금했다

→ 책은 꼭 읽는 재미만은 아닌데, 다르게 이야기하는 책은 없나 궁금했다

→ 책은 꼭 읽어야 재미나지 않은데, 다른 길을 들려주는 책은 없나 궁금했다

10쪽


이 책을 쓴 목적은 단 하나, 책방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책을 사게 만드는 것이다

→ 사람들이 책집으로 찾아가서 책을 사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 누구나 책집으로 마실하며 책을 사기를 꿈꾸며 이 글을 쓴다

12쪽


책이 가진 냄새야말로 기억을 소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 책냄새로 옛일을 훅 떠올린다

→ 책냄새로 지난일을 확 되새긴다

19쪽


낡은 헌책들에 비해 이제 막 서점에 진열된 새 책 냄새는

→ 헌책과 달리 이제 막 책집에 놓는 새책 냄새는

→ 오래책과 달리 막 책집에 들이는 새책 냄새는

23쪽


책등과 내지를 단단히 붙이기 위해 발랐을 접착제가

→ 책등과 속종이를 단단히 붙이려고 바른 풀이

→ 책등과 샛종이를 단단히 붙이는 풀이

24쪽


고향에 내려와 헌책방을 열겠다 마음먹은 이유는 중앙서점에서의 따뜻한 추억 때문이다

→ 옛고을로 와서 헌책집을 열겠다 마음먹는데 중앙서점에서 따뜻이 보낸 날 때문이다

→ 중앙서점을 따뜻이 누렸기에 옛마을로 돌아와 헌책집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32쪽


책갈피를 만든 건 서점만이 아니다

→ 책집만 책갈피를 내놓지 않았다

→ 책집만 책갈피를 마련하지 않았다

→ 책집만 책갈피를 꾸미지 않앗다

46쪽


헌책방에 손님으로 다니던 시절에는 사인본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가 없었다

→ 헌책집 손님이던 무렵에는 손글씨책에 매달렸다

→ 헌책집을 드나들던 때에는 손글책에 붙들렸다

58쪽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혼자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고

→ 사람과 어울린대서 싫진 않지만 혼자 있어도 싫지 않고

→ 누구와 어울리더라도 안 싫지만 혼자 있어도 안 힘들고

73쪽


타고난 성격 외에도 필사하는 습관이 자발적 폐관수련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 타고나기도 했고 베껴쓰기를 하면서 스스로 갈고닦을 만했다

→ 타고난 마음에다가 옮겨쓰기를 하며 몸소 벼릴 수 있었다

→ 타고난 데다가 꾸준히 받아쓰기를 하며 섶쓸개를 했다

73쪽


서점에서 예쁘게 포장된 블라인드 북을 사면, 포장지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 책싸개를 한다

→ 책집에서 예쁘게 꾸린 두근책을 사면, 겉종이를 책싸개로 살려쓴다

→ 책집에서 예쁘게 싼 수수께끼책을 사면, 겉종이를 책싸개로 되쓴다

90쪽


서점원들이 무거운 재단 가위를 들고 무림고수가 초식을 펼치듯

→ 책집일꾼이 무거운 가위를 들고서 품새를 펼치는 멋잡이처럼

→ 책집일꾼이 무거운 가위로 솜씨있게

→ 책집일꾼이 무거운 가위로 척척

91쪽


상주 작가로 활동해서 몇 년 만에 진주에서 다시 만나 회포를 풀기도 했다

→ 깃새지기로 지내서 몇 해 만에 진주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다

→ 깃새글꽃이어서 몇 해 만에 진주에서 다시 만나 얘기도 했다

94쪽


이 책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매물이 사라졌다

→ 이 책은 누리집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 이 책은 누리가게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114쪽


그 책들도 이제 절판되어 구하기가 어렵다

→ 그 책도 이제 사라져 찾기가 어렵다

142쪽


훌륭한 서평이 되려면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 느낌글을 잘 쓰려면 몇 가지를 짚어야 한다

→ 책얘기를 잘 쓰려면 몇 가지를 알아야 한다

145쪽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배로 넓어지는 걸 경험할 수 있다

→ 글쓴이와 글을 곱으로 헤아린다고 느낄 수 있다

→ 지은이와 글을 담뿍 살필 수 있다고 느낄 만하다

166쪽


재판을 찍을 때 수정하겠다고, 잘못을 알려주셔서 감사하다 공손히 말씀드렸다

→ 다시찍을 때 고치겠다고, 잘못을 알려주셔서 고맙다고 얌전히 여쭈었다

→ 새로찍을 때 바로잡겠다고, 잘못을 알려주셔서 고맙다고 곱게 여쭈었다

192쪽


훼손되어서 고칠 수 없거나 손을 본다 해도 그 정성과 노력에 비해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엔 어쩔 수 없이 포기하지만

→ 망가져서 고칠 수 없거나 손을 본다 해도 땀방울을 살릴 만한 책값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지만

218쪽


책을 수리할 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 책은 차분히 손질해야 한다

→ 책은 느긋이 손봐야 한다

→ 책은 천천히 깁어야 한다

219쪽


혹 부스에서 아는 분을 만난들 편히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웠다

→ 어느 칸에서 아는 분을 만난들 느긋이 이야기하기도 어려웠다

→ 어느 곳에서 아는 분을 만난들 가볍게 말을 나누기도 어려웠다

242쪽


이리저리 지인들을 찾아 동가식서가숙하며 서울살이를 하던 시절이었다

→ 이리저리 동무를 찾아다니며 서울살이를 하던 무렵이다

→ 이리저리 이웃을 찾아 바람처럼 서울에서 살던 때이다 

258쪽


완전한 착각이었다. 누구나 가졌을 책방지기에 대한 로망은 1년 차에 바로 깨졌다

→ 깨끗이 틀렸다. 책집지기라는 달콤한 꿈은 첫해에 바로 깨진다

→ 아주 헛짚었다. 책집지기라는 멋진 꿈은 처음부터 바로 깨진다

263쪽


13년 차인 지금까지도 솔직히 뾰족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 열세 해째인 오늘도 뾰족히 길을 찾지는 못한다

→ 올해로 열세 해인데 딱히 길을 찾지는 못한다

26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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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 나의 작은 날들에게
류예지 지음 / 꿈꾸는인생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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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8.

다듬읽기 279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류예지

 꿈꾸는인생

 2022.3.7.



  여름에는 햇볕자리에 서야 안 덥습니다. 겨울에는 찬바람을 쐬어야 안 춥습니다. 가시밭길은 노래하며 걸으려고 눈앞에 나타납니다. 꽃길은 다같이 뛰놀려고 함께 짓습니다. 더위를 타는 사람은 햇볕자리에 안 서기 일쑤이더군요. 추위를 타는 사람은 찬바람을 참으로 안 쐬느라 몸이 기우뚱합니다. 누구나 가시밭길이며 자갈밭길을 차근차근 나아가기에 깨어납니다. 나 혼자 가면 될 꽃길이 아니라, 누구나 거닐 꽃길이니, 온누리가 꽃길에 숲길에 들길에 멧길에 바닷길에 바람길에 별길일 노릇입니다.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는 시골에서 나고자랐으나 일찌감치 시골을 박차고 서울(도시)로 떠난 발자국을 담으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틀림없이 글감은 ‘예전 시골’이되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골’이며 ‘서울살이(도시생활)이 좋다’는 얼거리입니다. 누구나 시골을 싫어할 만하고, 서울을 좋아할 만하며, 변변한 가게 하나 없는 시골을 따분하다고 여길 만합니다. 이러다 보니 경상도에서 나고자라건 강원도에서 나고자라건 전라도에서 나고자라건, 요즈음 글바치는 하나같이 ‘서울내기 일본옮김말씨’예요. 예부터 시골에서 나고자란 누구나 모든 살림뿐 아니라 말과 마음도 손수 가꾸고 돌보고 지으면서 ‘나답게’라는 길을 지었습니다. 비록 시골과 동떨어진 오늘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멋부리는 겉글이 아닌, 마음밝히는 속글로 가다듬을 수 있기를 빕니다. 멋내는 옷과 밥과 집이 나쁘지는 않지만, 멋이란 언제나 남눈에 얽매입니다. 수수한 옷과 밥과 집이란 언제나 스스로 돌보는 ‘나답게’입니다. 말길과 글길은 ‘멋내기’가 아닌 ‘나답게’여야 어울리겠지요.


ㅍㄹㄴ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류예지, 꿈꾸는인생, 2022)


촌 동네의 생활을 하품이 날정도로 지루해하는 동안 준비 없어 어른의 길목에 들어섰다

→ 시골살이는 하품이 날 만큼 따분했고 어느새 어른이란 길목에 들어선다

→ 하품이 날 만큼 심심한 시골에서 살다가 문득 어른이란 길목이다

→ 하품이 나도록 지겨운 시골에서 보내다가 덜컥 어른이란 길목이다

4쪽


철새의 삶을 살게 되면서

→ 철새살이를 하면서

→ 철새처럼 살면서

→ 철새마냥 살면서

4쪽


파편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결국 사라져 버릴 날들에

→ 조각조각 흩어지다 끝내 사라질 날에

→ 조각이 나다가 마침내 사라질 날에

6쪽


나의 지난날들이 나에게 그러했듯 당신의 지난날들이 당신에게 보낸 신호에

→ 나는 지난날 나한테 했듯 너는 지난날 네가 보낸 말에

→ 내가 지난날 나한테 했든 네가 지난날 너한테 한 말에

7쪽


동네 초입에 자리한

→ 마을 앞에 자리한

→ 마을 앞

→ 마을 어귀

15쪽


누군가는 제 아빠의 목마를 타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 누구는 아빠 목말을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 누구는 아빠 무등을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15쪽


이후 일가친척 어르신이 집을 방문하는 날, 사람들이 한데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불편함으로 각인되었다

→ 이제 피붙이 어르신이 집을 찾는 날,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거북하다

→ 곧이어 한집안 어르신이 찾아오는 날, 한데 모여 밥을 먹는 자리는 껄끄럽다

23쪽


새하얀 피부를 가진 탓에 종종 뺨 위의 주근깨가 도드라져 보였다

→ 새하얀 살결이라서 뺨에 난 주근깨가 곧잘 도드라진다

→ 살빛이 하얀 탓에 주근깨가 도드라지기도 한다

→ 하얀살이라서 주근깨가 돋보이기 일쑤이다

30쪽


묵직한 동체(動體)가 가한 충격

→ 묵직한 몸이 부딪혀

→ 묵직히 움직이며 때려

35쪽


안온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이한 상흔을 남긴

→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뒤틀린 자국을 남긴

→ 오붓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바보처럼 흉을 남긴

→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려고, 뒤엉킨 멍울을 남긴

77쪽


우리는 사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우리는 모래언덕으로 걸어간다

→ 우리는 모래뫼로 걸어간다

86쪽


별다른 공통점 없는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 가는 일이 조금 피로하게 여겨지기도 해서였다

→ 딱히 닿지도 않는 말을 이어가는 일이 조금 지치기도 했다

→ 썩 뜻이 같지도 않는데 얘기하자니 조금 힘들기도 했다

→ 그리 안 어울리는 얘기를 잇자니 조금 버겁기도 했다

97쪽


엄마는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 엄마는 딱히 대꾸도 없이

→ 엄마는 군말도 없이

→ 엄마는 긴말도 없이

→ 엄마는 뭐라 하지 않고

→ 엄마는 따지지도 않고

103쪽


오늘 퇴근길 귀찮아지게 생겼네

→ 오늘 마치며 귀찮겠네

→ 오늘 집에 가며 귀찮겠네

121쪽


친구 A의 간곡한 호소가, 각자의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만 죽어라 쳐다보던 친구 B와 나를 단합시켰다

→ 동무 ㄱ이 애타게 바라자, 다들 일터에 앉아 그림판만 죽어라 쳐다보던 동무 ㄴ과 나를 묶었다

→ 동무 ㄱ이 빌고 빌자, 저마다 일터에 앉아 그림판만 죽어라 쳐다보던 동무 ㄴ과 내가 뭉쳤다

128쪽


처음 맛본 어죽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맛의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 처음 고깃밈을 맛보며 맛결을 새삼스레 일깨웠다

→ 처음 고깃보미를 맛보며 맛빛을 새롭게 일깨웠다

129쪽


참새과 텃새의 종류인 딱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참새갈래 텃새인 딱새인 줄 알아냈다

151쪽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 장마를 알리는 장대비가 온다

→ 장마를 알리며 굵게 비가 쏟아진다

159쪽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여름끝을 알리는 비가 내린다

→ 비가 내리며 여름끝을 알린다

→ 비가 내리며 여름이 끝난다

17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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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상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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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3.

다듬읽기 283


《눈물 상자》

 한강

 봄로야 그림

 문학동네

 2008.5.22.



  꿈과 길이란 늘 스스로 빚고 짓고 가꾸면서 일으킬 테니, 어느새 천천히 이루는 하루라고 느낍니다. 어른이 되어도 아이로 자라던 나날은 몸마음에 나란하고, 어릴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모든 하루는 새롭게 어울려서 흘러가는구나 싶습니다.


  꿈을 그리는 글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이와 달리 ‘꿈시늉’을 하거나 ‘눈물짜기’나 ‘웃음짜기’를 하는 글은 여러모로 허울스럽습니다. 굳이 시늉글을 쓰거나 ‘짜내기글’을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멋부리려고 쓰는 글이라면 덧없습니다. 목소리만 높이려는 글이라면 부질없습니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할머니가 있어서, 스웨덴 어린이한테 이야기꽃을 듬뿍 베풀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원수라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한나라(한국) 어린이한테 이야기밭을 넓게 베풀었습니다. 스웨덴 할머니도 어리거나 젊을 적에는 꽤 철없이 굴고 놀았습니다만,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천천히 철들며 사랑을 지피는 길을 느껴서 글을 일구었습니다. 한나라 할아버지도 어리거나 젊을 적에는 참 철없이 굴고 바보글(친일시)도 썼습니다만, 1945년을 맞이한 뒤 크게 뉘우치고서 1980년에 숨을 거두기까지 군사독재자하고 맞서서 어린이를 지키는 보금자리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아이를 안 낳고 안 돌본 분은 이원수 할배가 쓴 〈햇볕〉이라는 노래를 거의 모릅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았어도 〈햇볕〉이나 〈겨울 물오리〉를 모르는 분도 수두룩합니다. 이원수 할배는 ‘뉘우침글(참회록)’을 글꽃(동시·동화)으로 지폈습니다. 이이가 온삶이 뉘우침글이었기에 〈햇볕〉이나 〈겨울 물오리〉 같은 노래뿐 아니라 〈불새의 춤〉 같은 어마어마한 글까지 써낼 수 있었습니다. 〈불새의 춤〉은 전태일 님이 온몸을 불살라 박정희한테 맞선 지 석 달이 채 안 되어 선보인 글인데, 이 나라는 1987년까지 ‘빨간글’이라고 여겨 아무도 못 읽게 막은 바 있습니다.


  《눈물 상자》를 읽고서 한숨이 나왔고, 여러 달 한숨을 가다듬었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글이라는데 왜 이다지도 일본말씨에 옮김말씨가 춤추어야 할까요? 왜 ‘무늬한글’을 써야 할까요? 우리는 한글을 이렇게 미워해도 될까요? 우리는 한글과 한말과 한빛과 한넋과 한얼을 이렇게 싫어하고 내치고 짓밟고 따돌리고 들볶아도 될까요?


  아무나 철들지 않으나, 누구나 철들 수 있습니다. 아무나 글을 쓰면 안 되지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어마어마하고 엄청나게 사랑이라는 빛을 베풀 줄 아는 엄마요 어머니에 한어미(할머니)이기에 어질면서 얼찬이로 어울리며 서게 마련입니다. 엄마와 어머니와 한어미는 엄지(으뜸)이기도 합니다.


  조선 오백 해 내내 ‘암클’이라는 이름을 받은 우리글입니다. ‘수클’이라는 중국글(한문)을 붙잡은 꼰대와 힘꾼(권력자)은 조선이 무너진 뒤에는 곧장 일본말씨로 갈아탔고, 1945년 뒤에는 영어로 갈아탔습니다. 일본말씨랑 옮김말씨는 바로 ‘조선 오백 해 가부장권력자 + 일본부역자·조선총독부 + 군사독재자 꼰대말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벨글꽃을 받은 분이라면, 이제는 “어진 어른으로 어울리는” 숨빛으로 철들려고 마음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여태까지 쓴 모든 부끄러운 일본말씨랑 옮김말씨를 말끔하게 우리말씨로 가다듬어서 새로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강 씨가 쓴 글을 읽을 적마다 이 무늬한글이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ㅍㄹㄴ


《눈물 상자》(한강, 문학동네, 2008)


어느 마을에 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 어느 마을에 아이가 있다

→ 어느 마을에 사는 아이가 있다

5쪽


아이에게 특별한 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아이가 남다른 줄 알아차린다

→ 아이가 다른 줄 알아본다

5쪽


누군가가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거나

→ 누가 제 장난감을 빼앗거나

→ 남이 제 장난감을 빼앗거나

6쪽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걸 보고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 갓 돋아난 푸른잎이 햇빛에 반짝이자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 갓 돋아난 잎이 햇빛에 반짝이니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6쪽


아빠는 울고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화를 냈다

→ 아빠는 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버럭댄다

→ 아빠는 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발칵댄다

8쪽


커다란 검은색 가방을 들고 있었다

→ 크고 검은 가방을 들었다

9쪽


꾸벅 목례만 남기고 돌아섰다

→ 꾸벅하고서 돌아선다

→ 목절을 하고서 돌아선다

9쪽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 눈시울이 뜨겁다고 느낀다

→ 눈시울이 뜨겁다

11쪽


무엇인가가 아저씨의 외투 속 가슴께에서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 아저씨 겉옷 가슴께에서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뭐가 보인다

→ 아저씨 겉옷 가슴께에서 뭐가 동그랗게 부풀어오른다

11쪽


아이는 문득 자기가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그 파란 시간이라는 걸 깨닫고는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 아이는 문득 하루 가운데 파란때를 가장 좋아하는 줄 깨닫고는 멍한 얼굴이다

→ 아이는 문득 하루에서 파란무렵을 가장 좋아하는 줄 깨닫고는 멍하다

13쪽


이것들을 모두 수집하는 데 무려 이십 년이 걸렸단다

→ 이 모두를 모으는 데 스무 해나 걸렸단다

→ 이렇게 모두 모으느라 꼭 스무 해 걸렸단다

14쪽


자신이 우는 이유가 순수함이나 아름다움보다는 막막함에 가깝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 맑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먹먹하기 때문에 우는 줄 알기 때문이다

→ 깨끗하거나 아름답다기보다는 갑갑해서 우는 줄 알기 때문이다

24쪽


한없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 그냥 부끄럽다

→ 그저 부끄럽다

→ 너무 부끄럽다

24쪽


순수한 눈물에 대해서 더 얘기해주세요

→ 맑은 눈물을 더 들려주셔요

→ 깨끗한 눈물을 더 얘기해 주셔요

24쪽


담요 속에 얼굴을 묻고

→ 담요에 얼굴을 묻고

36쪽


눈물들을 모두 삼킨 뒤

→ 눈물을 모두 삼킨 뒤

45쪽


울음이 격해지자

→ 흐느끼자

→ 몹시 울자

45쪽


투명하고 미묘한 빛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 물방울 같고 고운 빛이 햇빛에 반짝인다

→ 맑고 눈부신 빛이 해를 받아 반짝인다

6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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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
유모토 가즈미 지음, 사카이 고마코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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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 느낌글을 쓰기도 했는데,

옮김말씨만 따로 짚으면서

다시 글을 추슬러 본다.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0.

다듬읽기 281


《살아있다는 것》

 유모토 가즈미 글

 사카이 고마코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2025.1.20.



  요즈음 어린배움터에서 길잡이(교사)는 ‘게이트키퍼’ 노릇까지 맡는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문지기’일 텐데, ‘자살예방 교육’을 따로 해야 한다더군요. 불늪(입시지옥) 탓에 숱한 푸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 아니라, 목숨을 건사하더라도 몸마음이 곯거나 다치거나 망가지기 일쑤입니다. 진작부터 어린씨한테도 불늪바람이 불었습니다만, 나라에서 고작 하는 짓이 ‘게이트키퍼·자살예방’이라니 바보스럽습니다. 허울만 번드레하게 씌운들 안 달라지거든요. 불늪부터 없앨 노릇이고, 온통 서울로 쏠린 얼뜬 얼개를 갈아엎을 일입니다. ‘불늪 + 서울바라기’를 그대로 둔 채 쳇바퀴를 돌린들, 어린씨와 푸른씨뿐 아니라 어른씨도 나란히 고달프고 지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橋の上で”를 옮긴 그림책입니다. “다리에 서서” 새로 흘러갈 앞길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곰곰이 어떤 ‘다리’로 이을는지 생각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우리말 ‘다리’는 몸과 발을 잇는 곳이면서, 이곳과 저곳을 잇는 길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냇물이나 멧골 사이를 지나려고 놓는 길다란 자리도 ‘다리’로 나타내요. 다가서려는 다리요, 다가오는 다리이며, 다다르면서 닿는 다리입니다. 이곳(나)하고 저곳(너)을 잇는 다리이기에, 두 길을 오가는 마음이 만나서 ‘사람’으로서 ‘사랑’을 바라보는 틈을 낼 수 있습니다. 일본 그림책에 흐르는 이런 밑뜻을 헤아리면서 한글로 옮겨야 비로소 ‘삶’을 풀어낼 텐데, 낱말뜻도 낱말결도 그다지 살피지 못 한 옮김말씨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다리 위”나 “풀 위”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고 있다”나 ‘것’이나 “-게 되다”나 ‘-ㅁ’ 같은 군더더기 옮김말씨는 다 털어내야지요.


ㅍㄹㄴ


#湯本香樹實 #酒井駒子 #橋の上で


《살아있다는 것》(유모토 가즈미·사카이 고마코/김숙 옮김, 북뱅크, 2025)


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던 날

→ 다리에서 냇물을 내려다보던 어느 날

→ 다리에 서서 냇물을 내려다보던 날

2쪽


스웨터는 낡고 보풀이 일어서 몇 년인지 몇십 년인지 오래 갈아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

→ 털옷은 낡고 보풀이 일어서 몇 해나 몇 열 해나 오래 안 갈아입은 듯했어

→ 윗옷은 낡고 보풀이 일어서 아주 오래 안 갈아입었구나 싶었어

6쪽


그냥 보고 있었어요

→ 그냥 봐요

8쪽


그냥 있는 거예요

→ 그냥 있어요

8쪽


사실은 생각하고 있었어

→ 그러나 생각해 보았어

10쪽


그저 묵묵히 강물이 늘 같은 곳에서 하얗게 물결치는 걸 내려다보고 있었어

→ 그저 말없이 냇물이 늘 같은 곳에서 하얗게 물결치는 빛을 내려다봐

→ 그저 조용히 냇물이 늘 같은 곳에서 물결치는 하얀빛을 내려다봐

19쪽


어서 어딘가로 가 주면 좋을 텐데

→ 어서 어디로 가기를 바라

→ 어서 좀 가기를 바라

19쪽


그 물은 어두운 땅 밑 수로를 통해 너한테로 오고 있지

→ 물은 어두운 땅밑에서 흐르며 너한테 오지

→ 물은 어두운 땅밑길을 거쳐서 너한테 오지

20쪽


아까보다 더 커진 것 같았어

→ 아까보다 더 큰 듯해

34쪽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 누구하고 눈이 마주친 듯해서 아리송했어

→ 누구랑 눈이 마주친 듯싶어 놀랐어

36쪽


그 다리를 지나지 않게 되었고

→ 그 다리를 지나지 않고

39쪽


아스라한 반짝임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 아스라이 반짝이다 차츰 다가와

→ 아스라이 반짝이며 조금씩 가까워

43쪽


솟아 나오는 물의 작은 파문까지

→ 솟아나오는 작은 물결까지

43쪽


물 주변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있지

→ 물가에는 반드시 누가 있지

44쪽


모두 제각각 생각을 하면서 풀 위에 앉아 있거나 뒹굴거나 하고 있어

→ 모두 생각을 하면서 풀밭에 앉거나 뒹굴어

→ 저마다 생각을 하면서 풀밭에 앉거나 뒹굴어

44쪽


내가 거기 있는 것을 보고는 미소 지으며

→ 내가 거기 있는 줄 보고는 웃음지으며

→ 내가 거기 있으니 웃으며

45쪽


그때 만약 강에 뛰어들었다면 전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지

→ 그때 냇물에 뛰어들었다면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이지

→ 그때 냇물에 뛰어들었다면 아무도 만날 수 없었지

4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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