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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 Yerong's Doodles 예롱쓰의 낙서만화
예롱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10월
평점 :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7.12.
“한국말 잘하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예롱
뿌리와이파리
2019.10.28.
처음 보는 사람한테 “한국말 잘하네?” 하고 말을 찍 뱉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이 그이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으나 아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국말 잘하네?”를 가볍게 웃음말로 삼으면서 하하호호 떠드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이런 말을 이웃나라 사람한테 함부로 뱉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한테 마구 뱉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열 살 무렵부터 쉰 살에 이르도록 “한국말 잘하네?” 하고 뱉는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뱉는 이는 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어머, 한국사람이야? 한국사람 같지 않은데? 외국사람 아니야?” 하고 되묻기 일쑤입니다. 그야말로 스스로 얼굴에 쇠가죽이라도 뒤집어썼는지, 창피도 부끄럼도 모르는 말과 매무새예요.
여태까지 누가 “한국말 잘하네?”를 읊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할매할배도 많지만, 아줌마 아저씨도 많고, 젊은 순이돌이도 많고, 어린이와 푸름이도 많습니다. 그냥 다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어떤 굴레나 틀에 길들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한국말 잘하네?”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읊습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이런 말만 읊을까요? 아닙니다. 이 터전과 마을과 푸른별과 들숲메를 바라보는 눈도 나란히 일그러지더군요. 들녘을 들녘으로 안 바라보고, 숲을 숲살림으로 안 느끼고, 멧자락을 멧빛으로 안 헤아리는 삶인 터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일그러진 말씨를 그냥그냥 읊는다고 느낍니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는 검은살갗인 짝지하고 지내는 동안 보고 듣고 겪고 치러야 한 숱한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를 간추린 꾸러미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2019년뿐 아니라, 지난 2009년이나 1999년에도, 또 2025년에도 아직 단단히 틀어박힌 굴레와 말뚝을 짚는다고 할 만합니다. 살짝 샛길로 빠진 줄거리가 더러 있되, 우리 스스로 눈에 들보를 쓴 얄궂은 모습과 민낯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바꾸고 가꾸자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서울사람은 스스로 으뜸이자 첫째입니다. 서울밖은 언제나 버금이나 둘째일 뿐 아니라 밑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서울에서조차 높낮이가 있어요. 서울 어느 곳이 더 높거나 낮다고 여겨요.
숲에는 아무런 높낮이가 없습니다. 바다와 하늘에는 아무런 높낮이가 없지요. 더 뛰어난 별이나 덜떨어지는 별은 없습니다. 서로 다르기에 나란한 별이자 숲이자 바다이자 하늘입니다. 서로 다르기에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울 삶과 사람 사이입니다. 이제 눈에서 들보를 치울 노릇입니다. 들보는 집에 놓아야지요. 들보를 집에 안 놓고서 눈에 두면 집도 와르르 무너집니다.
ㅍㄹㄴ
가나의 여러 가지 문화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Akan이 이름을 짓는 방식이었다. (119쪽)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내가 가진 틀부터 부숴야 될 것 같아. (190쪽)
“‘좋은 의도’로 하면 차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239쪽)
차별 자체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는 있어. 하지만 상대방이 겪었을 감정에 먼저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없는 걸까? (302쪽)
아무리 몇몇 교사들이 노력해도, 가정이나 사회에서 다시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321쪽)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경험하고 배웠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333쪽)
“내가 너한테 ‘영어 잘한다’고 평가할 필요가 없지.” … “그 사람이 한국인일 수도 있고, 한국어를 나보다 잘할 수도 있는데,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는 거니까.” (378, 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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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예롱, 뿌리와이파리, 2019)
나만의 책이 아닌 너와 나의 책을 만들게 되어서 기뻐
→ 나만이 아닌 너와 내가 함께 책을 지어서 기뻐
→ 내 얘기만이 아닌 너와 내 얘기로 책을 묶어서 기뻐
5
뭐, 그거야 이해할 수 있다지만
→ 뭐, 그쯤이야 그렇다지만
→ 뭐, 그 일이야 끄덕이지만
17
흑인은 성기가 크다는 인종차별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 같아
→ 검으면 고추가 크다고 비웃는 굴레에서 비롯한 듯해
→ 검은이는 밑이 크다고 깔보는 버릇에서 비롯한 듯싶어
46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상대적 약자인 여성으로서, 인종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야
→ 삶터로나 몸으로나 여린 순이로서, 사람씨보다 아늑하느냐가 큰일이야
→ 마을에서나 몸으로나 작은 쪽인 순이로서, 갈래보다 든든하냐가 큰일이야
84
미의 기준이라는 실체도 없는 것을 왜 남들이 함부로 판단해?
→ 귀엽다는 눈금은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따져?
→ 멋있다는 잣대는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가름해?
→ 곱다는 길은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다뤄?
96
완전 시혜적인 태도잖아요
→ 아주 베푸는 눈이잖아요
→ 그저 내주겠다잖아요
236
‘좋은 의도’로 하면 차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 ‘뜻이 좋으’면 따돌림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듯해요
→ ‘좋게좋게’ 하기에 빻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어요
239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