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 Yerong's Doodles 예롱쓰의 낙서만화
예롱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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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7.12.

“한국말 잘하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예롱

 뿌리와이파리

 2019.10.28.



  처음 보는 사람한테 “한국말 잘하네?” 하고 말을 찍 뱉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이 그이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으나 아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국말 잘하네?”를 가볍게 웃음말로 삼으면서 하하호호 떠드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이런 말을 이웃나라 사람한테 함부로 뱉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한테 마구 뱉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열 살 무렵부터 쉰 살에 이르도록 “한국말 잘하네?” 하고 뱉는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뱉는 이는 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어머, 한국사람이야? 한국사람 같지 않은데? 외국사람 아니야?” 하고 되묻기 일쑤입니다. 그야말로 스스로 얼굴에 쇠가죽이라도 뒤집어썼는지, 창피도 부끄럼도 모르는 말과 매무새예요.


  여태까지 누가 “한국말 잘하네?”를 읊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할매할배도 많지만, 아줌마 아저씨도 많고, 젊은 순이돌이도 많고, 어린이와 푸름이도 많습니다. 그냥 다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어떤 굴레나 틀에 길들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한국말 잘하네?”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읊습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이런 말만 읊을까요? 아닙니다. 이 터전과 마을과 푸른별과 들숲메를 바라보는 눈도 나란히 일그러지더군요. 들녘을 들녘으로 안 바라보고, 숲을 숲살림으로 안 느끼고, 멧자락을 멧빛으로 안 헤아리는 삶인 터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일그러진 말씨를 그냥그냥 읊는다고 느낍니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는 검은살갗인 짝지하고 지내는 동안 보고 듣고 겪고 치러야 한 숱한 이야기 가운데 몇 가지를 간추린 꾸러미입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2019년뿐 아니라, 지난 2009년이나 1999년에도, 또 2025년에도 아직 단단히 틀어박힌 굴레와 말뚝을 짚는다고 할 만합니다. 살짝 샛길로 빠진 줄거리가 더러 있되, 우리 스스로 눈에 들보를 쓴 얄궂은 모습과 민낯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바꾸고 가꾸자는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서울사람은 스스로 으뜸이자 첫째입니다. 서울밖은 언제나 버금이나 둘째일 뿐 아니라 밑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서울에서조차 높낮이가 있어요. 서울 어느 곳이 더 높거나 낮다고 여겨요.


  숲에는 아무런 높낮이가 없습니다. 바다와 하늘에는 아무런 높낮이가 없지요. 더 뛰어난 별이나 덜떨어지는 별은 없습니다. 서로 다르기에 나란한 별이자 숲이자 바다이자 하늘입니다. 서로 다르기에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울 삶과 사람 사이입니다. 이제 눈에서 들보를 치울 노릇입니다. 들보는 집에 놓아야지요. 들보를 집에 안 놓고서 눈에 두면 집도 와르르 무너집니다.


ㅍㄹㄴ


가나의 여러 가지 문화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Akan이 이름을 짓는 방식이었다. (119쪽)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내가 가진 틀부터 부숴야 될 것 같아. (190쪽)


“‘좋은 의도’로 하면 차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239쪽)


차별 자체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는 있어. 하지만 상대방이 겪었을 감정에 먼저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없는 걸까? (302쪽)


아무리 몇몇 교사들이 노력해도, 가정이나 사회에서 다시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321쪽)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며 경험하고 배웠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333쪽)


“내가 너한테 ‘영어 잘한다’고 평가할 필요가 없지.” … “그 사람이 한국인일 수도 있고, 한국어를 나보다 잘할 수도 있는데,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는 거니까.” (378, 379쪽)


+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예롱, 뿌리와이파리, 2019)


나만의 책이 아닌 너와 나의 책을 만들게 되어서 기뻐

→ 나만이 아닌 너와 내가 함께 책을 지어서 기뻐

→ 내 얘기만이 아닌 너와 내 얘기로 책을 묶어서 기뻐

5


뭐, 그거야 이해할 수 있다지만

→ 뭐, 그쯤이야 그렇다지만

→ 뭐, 그 일이야 끄덕이지만

17


흑인은 성기가 크다는 인종차별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 같아

→ 검으면 고추가 크다고 비웃는 굴레에서 비롯한 듯해

→ 검은이는 밑이 크다고 깔보는 버릇에서 비롯한 듯싶어

46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상대적 약자인 여성으로서, 인종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야

→ 삶터로나 몸으로나 여린 순이로서, 사람씨보다 아늑하느냐가 큰일이야

→ 마을에서나 몸으로나 작은 쪽인 순이로서, 갈래보다 든든하냐가 큰일이야

84


미의 기준이라는 실체도 없는 것을 왜 남들이 함부로 판단해?

→ 귀엽다는 눈금은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따져?

→ 멋있다는 잣대는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가름해?

→ 곱다는 길은 없는데 왜 남들이 함부로 다뤄?

96


완전 시혜적인 태도잖아요

→ 아주 베푸는 눈이잖아요

→ 그저 내주겠다잖아요

236


‘좋은 의도’로 하면 차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 ‘뜻이 좋으’면 따돌림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듯해요

→ ‘좋게좋게’ 하기에 빻지 않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어요

239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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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의 지구 침략 6
오가와 마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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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7.5.

이 별과 저 별


《외톨이의 지구 침략 6》

 오가와 마이코

 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2016.8.25.



  쳐들어간다거나 쳐들어온다고 여기지만, 막상 치거나 자르거나 벨 수 없습니다. 얼핏 보면 목이 날아가고 팔이 잘리는 듯하지만, 겉모습일 뿐입니다. 모든 풀과 나무는 아무리 잘리고 베여도 다시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냅니다. 벌레가 아무리 잎을 갉아도 새로 잎이 돋습니다.


  벌레가 먹어도 잎은 잎이요 풀은 풀입니다. 도끼로 베여도 나무는 나무입니다. 불타더라도 나무는 늘 나무예요. 들숨날숨을 잇는 몸을 입어도 사람이고, 들숨날숨을 멈추더라도 사람입니다.


  《외톨이의 지구 침략 6》을 곱씹습니다. 이 별로 찾아온 저 별 누구는 이 별을 빼앗으려는 마음입니다. 드디어 이 별을 빼앗을 수 있구나 하고 느끼던 날 아무래도 이 별을 빼앗지 못 합니다. 이 별로 쳐들어와야 할 ‘우리별 사람들’이 아무도 안 오거든요. 이미 우리별은 저 먼 별누리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다고 여깁니다. 틀리지는 않은 얼개이지만, 맞지 않기도 한 얼개입니다. 무엇이 태어나고 무엇으로 살아가고 무엇이 죽을까요? 이 실마리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삶도 죽음도 헛바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넋과 얼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몸을 헌옷처럼 내려놓고서 새옷처럼 갈아입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푸른별에 갇힌 굴레요, 곰곰이 보면 파란별에서 사랑을 빛내는 잔치입니다.


  이 별은 이곳에서 반짝입니다. 저 별은 저곳에서 눈부십니다. 낮에는 어느 별에서나 환하게 해를 품고서 활짝활짝 활갯짓을 폅니다. 밤에는 어느 별에서나 밝게 이웃별을 받아들이면서 방긋방긋 웃음꽃을 맞아들이는 꿈길로 나아갑니다.


  모든 주먹질과 죽임질이 덧없는 줄 알아볼 때라야 사람입니다. 주먹을 움켜쥐면서 윽박지르고 터뜨리는 동안에는 어느 누구도 사람이 아니요, 별사람도 아닌, 그저 죽음깨비입니다.


ㅍㄹㄴ


“어제랑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게 기분 나쁘다 싶어서.” “하항! 정에 얽매여서 금방 눈물을 보이는 사람한테는 듣고 싶지 않거든?” (30쪽)


“난 아직 오르베리오의 계약에 묶여 있어. 내 상태 같은 건 상관없이 그렇게 명령할 수 있을 텐…….” “무슨 소리야? 넌 내 친구잖아. 이렇게 무서워하는 친구한테 억지로 전투를 강요할 수 있겠냐고!” (117쪽)


‘무서워. 무섭다. 그치만, 리코도 언제나 이런 기분이었겠지.’ (131쪽)


“너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어? 그 사람들은 어디 있지? 가르쳐 줘! 다들 어디 있어? 난 언제까지 이 별에서 기다리면 되는 거야?” (141쪽)


“아무리 바보 취급을 당한다 해도 난 친구가 죽도록 내버려두는 짓은 못 해.” (164쪽)


#ひとりぼっちの地球侵略 #小川麻衣子


+


《외톨이의 지구 침략 6》(오가와 마이코/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2016)


밤하늘이 보인다. 저 반짝임 속에 고향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 밤하늘이 보인다. 저 별빛 사이에 우리별은 이미 있지 않다

→ 밤하늘이 보인다. 저렇게 반짝이지만 우리별은 이미 없다

18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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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은 3
아소 카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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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7.5.

빛나는 두 얼굴


《와, 같은. 3》

 아소 카이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1.12.15.



  흔히들 ‘행운’이 찾아오기에 ‘행복’하다고 여기지만, 가시밭길을 그저 조용히 걸어가는 삶도 ‘기쁨’이자 ‘보람’입니다. 꽃밭을 가꾸면서 꽃내음을 맡으면서 언제나 고즈넉이 꽃빛을 품는 시골살림도 ‘즐거움’이자 ‘빛’입니다.


  얼핏 보면 돈을 아끼겠다면서 ‘에어컨’을 안 쓸 수 있지만, 이보다는 ‘에어컨’을 틀면 틀수록 몸이 망가지기 때문에, 여름에 기쁘게 땀을 흘리면서 스스로 몸을 돌보는 길을 나아갈 만합니다. 푸른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에어컨’을 쓴 지는 기껏 온해(100년)조차 안 되고, 쉰 해도 안 되며 서른 해가 될 동 말 동합니다.


  땀흘려 일하면서 몸을 튼튼히 돌보고, 느긋이 쉬면서 마음을 든든히 가꾸는 삶입니다. 땀과 삶과 하루를 글로 옮겨도 아름답고, 따로 글로 안 옮겨도 아름답습니다. 글로 태어나지 않은 아름다운 나날이 흐드러진 곳이 우리별이지 싶습니다.


  《와, 같은. 3》(아소 카이/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1)을 돌아봅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는 길이 어떻게 새길이면서 새살림이면서 새사랑으로 피어나는지 뒤늦게 알아보는 줄거리입니다. 내가 설마 이렇게 해낼 수 있을까 싶어서 걱정하고 두려웠지만, 막상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에, 오히려 언제나 아이한테서 배우는 나날을 들려주는 줄거리이기도 합니다.


  함께 듣고 같이 배우는 모든 하루가 빛납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자면 틀림없이 아이한테 온하루를 기울일 노릇인데, 이렇게 아이한테 들이는 온하루가 있기에, “늘 나를 나로서 바라보는 틈”을 누려요. 아이하고 눈을 마주하는 사이에 “언제나 나를 나로서 품는 손길”을 누리고요.


  아이는 어버이 얼굴을 보면서 빛납니다. 어버이는 아이 얼굴을 보면서 빛나요. 우리가 꼭 아기를 낳아야 하지는 않습니다. 몸으로 낳든, 이웃집 아기를 돌아보든, 모두 나란히 빛나는 숨결입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가 다 다르게 빛나는 사랑인 줄 알아보려고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으면 되어요. 내딛기에 배우고, 배우기에 익히고, 익히기에 나누고, 나누기에 사랑이 샘솟고, 사랑이 샘솟으니 이 삶을 언제나 노래합니다.


ㅍㄹㄴ


“나도 이 나이 먹도록 아직 잘 모르는 매너도 있거든. 하지만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 식사를 해야 하지. 기왕이면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좋지 않겠니? 젓가락질하는 법을 잊어버리면, 잘하는 사람을 흉내내면 돼.” (22쪽)


“어머니가 예쁜 옷을 입고 싶어하는 것처럼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아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전혀 안 입은 옷도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입혀 주세요. 아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크니까요. 아깝지 않습니까.” (45쪽)


“나도 젊고 돈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몰라서 쩔쩔맸을 거야.” “그런가.” “나이를 먹어도 전혀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54쪽)


‘아이란 굉장하구나. 그저 우는 줄만 알았는데, 갑자기 상을 준다.’ (120∼121쪽)


#のような #麻生海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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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달콤 & 짜릿 짜릿 9 삼양출판사 SC컬렉션
아마가쿠레 기도 글.그림, 노미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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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6.27.

그릇이 작으니 조금씩


《달콤 달콤 & 짜릿 짜릿 9》

 아마가쿠레 기도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8.7.30.



  저는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자란 터라, ‘우리집 밭’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땅뙈기가 없더라도 모든 곳이 밭이더군요. 씨앗을 심어서 돌보는 자리라면 어느 빈터이건 꽃밭으로 바뀌고 풀밭으로 거듭나요. 여러 이웃이 골목과 마을에 아기자기하게 일구는 골목밭을 지켜보면서 마음밭이 있는 줄 느꼈습니다.


  이윽고 글밭이며 책밭이 있는 줄 알아차립니다. 우리가 보금자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터전은 살림밭을 지으며 스스로 즐거운 나날이로구나 싶더군요. 일하고 놀고 쉬고 어울리는 모든 곳은 그저 밭일 테니, 하루하루 이야기밭과 노래밭을 헤아려 본다면, 호미를 쥐지 않고도 언제 어디에서나 밭일을 하는 이 하루를 꽃피울 만하다고 느낍니다.


  《달콤 달콤 & 짜릿 짜릿》은 아이어른이 함께 ‘살림꾼’으로 한 발짝씩 떼면서 시나브로 ‘살림꽃’으로 깨어나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이를테면 아주 놀랍도록 훌륭한 ‘성평등 교과서’ 같은 그림꽃입니다. ‘집안일 못한다는 핑계’를 대는 아저씨한테 읽힐 훌륭한 그림꽃이요, 무엇보다도 ‘집’이란 어떤 곳인지 부드럽게 다루는 그림꽃입니다. 짝을 짓는 놀이인 ‘짝짓기(연애)’가 아니라, 살림을 짓는 하루인 ‘사랑’이 무엇인지 참하게 들려주는 그림꽃이고요.


  어릴적에 으레 “어머니를 거들”었지만, 어머니는 으레 말렸습니다. ‘(대학입시) 공부’를 해야지,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느라 품을 빼앗기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오늘날 우리나라는 아직 이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씁니다. 어린이는 ‘공부’를 하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어린이는 ‘어버이하고 보금자리를 이루’려고 태어납니다. 어린이는 푸름이로 나아가는 길목이 아닙니다. 어린이는 그저 어린이요, 푸름이는 그저 푸름이입니다. 저마다 제 나이에 익히고 배우면서 맞아들일 살림살이를 알아갈 나이입니다.


  혼자서 밥할 줄 모르는 12살이라면 참으로 불쌍합니다. 혼자서 빨래할 줄 모르는 15살이라면 참으로 딱합니다. 혼자서 비질과 걸레질을 할 줄 모르는 18살이라면 그야말로 안타깝습니다. 아기를 어떻게 안거나 얼러야 하는 줄 모르는 20살이라면, 그야말로 여태껏 뭘 하면서 왜 살았을까요?


  아기를 낳아 보아야 아기를 달래는 눈짓과 손짓과 몸짓을 알 수 있지 않습니다. 동생을 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럼없이 알아요. ‘우리집 동생’뿐 아니라 ‘이웃집 동생’을 나란히 눈여겨보면서 따스히 돌보는 매무새로 살아갈 노릇이고, ‘아기돌봄’은 어버이뿐 아니라 모든 어린이와 푸름이가 잘할 만한 작은 살림길입니다. 그저 어린이는 그릇이 작으니 조금 먹고 조금 거들 뿐입니다. 푸름이는 그릇이 조금 크니 조금 더 먹고 조금 더 거들 뿐입니다. 어른으로 설 적에는 그릇이 꽤 크게 마련이니 어린이나 푸름이보다 조금 많이 먹으면서 집살림을 도맡을 뿐입니다.


  밥 한 그릇을 달콤하게 나눕니다. 밥 두 그릇을 느긋하게 나눕니다. 밥 석 그릇을 신나게 나눕니다. 좋은 밥이나 맛난 밥이 아닌, 즐거우면서 수다꽃이 피어나는 밥그릇을 나눌 하루입니다.


ㅍㄹㄴ


“성가시네. 좋아하는 애랑 좋아하는 놀이를 하고 싶은 건데.” (13쪽)


“여자애랑은 안 논다느니, 창피하다느니, 그리고 어린이라서 안 된다느니, 자꾸 그래서 나 폭발할 거 같다구!” (18쪽)


“어른이 되는 건 귀찮지만, 머리를 쓰면 돼!” (24쪽)


“그리고 여러분, 여기에 남자 여자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는 없어요. 모처럼 같은 반이 됐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런 식으로 나누면 아깝잖아요.” (33쪽)


“아빠.” “응?” “매일 놀지 않아도 친구할 수 있어?” (91쪽)


‘이런 기회를 꼭 다시 만들어 가자. 아이들끼리 스스로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102쪽)


“츠무기는 점점 새로운 것을 향해 가고, 거기에 충격을 받은 게 아빠로서 그릇이 작은 걸까 싶어.” (151쪽)


#甘々と稲妻

#雨隠ギド 


+


《달콤 달콤 & 짜릿 짜릿 9》(아마가쿠레 기도/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8)


슬슬 가정의 맛이 그리운 거구나

→ 슬슬 살림맛이 그립구나

→ 슬슬 포근맛이 그립구나

→ 슬슬 따뜻맛이 그립구나

48쪽


그대로 식히면서 간이 배도록 하면 좋아요

→ 그대로 식히면서 간이 배면 돼요

130쪽


요즘 친구네 집에서 노는 주간이거든

→ 요즘 동무네에서 노는 즈음이거든

→ 요즘 동무 집에서 노는 때이거든

→ 요즘 동무네에서 노는 나날이거든

→ 요즘 동무 집에서 노는 철이거든

15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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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
코다마 하츠미 지음, 김수연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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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6.27.

외롭지 않아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

 코다마 하츠미

 김수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5.30.



  하찮은 책이건 대단한 책이건, 한 벌을 훑고서 ‘읽었다’고 여기는 마음이기에, 오늘날에는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책을 ‘알아보는’ 눈길은 드물다고 느낍니다. 온누리에 안 바쁜 사람은 아무도 없게 마련이라서, 어느 책이건 여러 벌 차근차근 되읽을 틈을 스스로 내지 않을 적에는, 어느 책이건 겉이며 속을 제대로 모르는 채 지나가기만 하겠지요.


  ‘읽기’란 스스로 이곳에 고이 있으면서, 나하고 너(나를 둘러싼 모든 숨결)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면서 이으려고 하는 몸짓이라고 봅니다. ‘읽다’란 ‘일다 + 익다’이기에, 마음에 일어나고 마음으로 익히는 ‘읽다’를 이루려면, 더 많은 책을 더 많이 눈으로만 훑을 적에는 ‘훑다’에서 그칠 테지요. 틈이 없이 밭아서 훑는 하루에서 그친다면, 스스로 이곳에 있으면서 물결을 일으키는 읽는 살림에는 못 닿는구나 싶어요.


  마음에 드는 몇 가지 책이나 글바치만 되읽을 적에는 으레 몇 가지 눈길에 고이거나 닫힌다고 느낍니다. 마음에 안 드는 모든 책이나 글바치도 언제나 나란히 되읽으면서 차분히 새길 적에는 스스로 새롭게 피어나는 눈길로 깨어난다고 느낍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읽눈(문해력)을 잃고 잊는 까닭이라면, 먼저 어른 자리에 있는 사람들부터 읽눈을 되찾을 일이라고 봅니다. 모든 책을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보고 돌아볼 적에, 모든 일과 이웃과 들숲메바다를 찬찬히 헤아리고 알아보고 품을 적에, 나부터 읽눈을 틔우고서 아이어른 모두 읽빛을 밝힐 테고요.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은 이제 더 살아갈 값어치가 없다고 느낀 나날에서 막바지 발버둥을 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둘레(사회)에 맞추어 그저 굽신굽신 고분고분 지내던 나날을 멈추고서, “나는 뭘 하려고 이곳에 태어났는가?” 하고 돌아보는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책이름은 ‘거꾸로’ 말하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싸울 값어치가 없는데 여태 싸워 온 줄 느끼고서, 이제부터는 그만 싸우고서 나답게 하루하루 살겠노라 외치는 셈입니다.


  싸우려고 들기에 밉놈을 세워야 합니다. 밉놈을 세워야 하니 마음에 사랑이 아닌 미움을 놓아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미움을 놓는 마음이기에, 스스로 무엇을 하는 길인지 어느새 잊어버립니다. 마음을 잊어버리니 살림도 숲도 마을도 죄 안 보이면서 무엇보다도 ‘나’를 바라보거나 품을 수 없습니다.


  혼자 걸어가면 외롭다고 여기면서 길들이려는 나라(사회·정부)입니다. 함께 걸어가도록 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길들이려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함께걷기’를 하자면 ‘혼자걷기’를 하는 사람이 다 다르게 만나야 할 뿐입니다. 그저 발걸음을 똑같이 맞춘대서 함께걷기이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걸을 뿐 아니라, 이리로 걷거나 저리로 걸으면서 홀가분하게 춤출 수 있어야 함께걷기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즐겁기에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외로워도 혼자 걸어가지 않아요. 나는 나로서 숨을 쉬고, 나는 나대로 둘레를 보고, 나는 나답게 눈을 뜹니다. 나는 바로 ‘나’라고 하는 ‘하나’부터 알아보아야, ‘너’라고 하는 ‘다른 하나’을 알아차립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혼자·홀·홑)인 줄 받아들일 적에, 하늘도 물도 바다도 숲도 그저 오롯이 하나인 줄 깨닫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으레 바쁘다고 외치면서 책도 글도 못 읽습니다. 책을 사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책 한 자락을 느긋이 다섯 벌이고 열 벌이고 되읽을 줄 알아야 비로소 책읽기입니다. 보임꽃(영화)도 한 벌 슥 보고 끝난다면 “아예 안 봤다”고 해야 맞습니다. 책이건 보임꽃이건 다섯 벌이며 열 벌이며 꾸준히 다시 짚으면서 차근차근 짚어 나가야 비로소 ‘읽다’라고 여깁니다. 우리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할 적에 한 마디만 들려주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나요? 때로는 한 마디로 넉넉하겠으나, ‘이야기’란 “끝없이 주고받는 말”입니다. 물이 흐르면서 싱그러이 잇듯, 말도 끝없이 흐르면서 맑게 이을 적에 이야기인 터라, 책읽기이건 삶읽기이건 구태여 싸울 까닭이 없이 살림하는 손길로 지을 적에 제대로 깨어납니다.


ㅍㄹㄴ


“전 남친 때려눕히고 돈 돌려받아서 돌아온 날 바로 이사하고 싶어졌거든.” (9쪽)


‘하지만 이렇게 그 누구에게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시간낭비는 처음 해 봤어. 나쁘지 않은데―!” (35쪽)


“그게 재밌어.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배우들의 손때 묻은 연기, 더는 내 것이 아닌 대사.” (60쪽)


“부모님이 널 사랑으로 키워 주셔서, 동그랗고 예쁜 그릇이 된 거지. 자기 스스로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라고 생각해 봐. 힘은 경험으로 보충할 수 있어. 하지만 그릇은 부모에게서만 받을 수 있다고.” (117쪽)


“그래도 옛날에 들었던 그 말이 다시 깨달음을 줬어. 결산을 계속해 나간다면 분명 이런 일이 여러 번 생길 거야. 인간은 한쪽 면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내 인생에 가치가 있었는지 알려면 매사의 표면만을 더듬어서는 안 돼.” (175쪽)


“내 의지를 관철하는 일은 곧 고독을 마주보는 일이구나.” (194쪽)


#この世は戰う價値がある

#こだまはつみ


+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코다마 하츠미/김수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


그 누구에게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시간낭비는 처음 해 봤어. 나쁘지 않은데―!

→ 그 누구도 돕지 않으며 헤프게 처음 지내 봤어. 나쁘지 않은데!

→ 처음으로 누구도 안 살피고서 부질없이 지냈어. 나쁘지 않은데!

→ 처음으로 아무도 안 보면서 헛되게 놀아 봤어. 나쁘지 않은데!

35쪽


인간의 방정식을 모으는 중이지

→ 사람이란 실타래를 모으지

→ 사람이란 수수께끼를 모으지

64쪽


성인군자라는 요란한 말도 왠지 진실감이 느껴져

→ 꽃어른이라고 떠드는데 왠지 참말 같아

→ 온꽃이라고 하는데 왠지 거짓없다고 느껴

141쪽


그래도 옛날에 들었던 그 말이 다시 깨달음을 줬어

→ 그래도 옛날에 들은 그 말이 다시 깨우쳐 줬어

→ 그래도 옛날에 들은 그 말로 다시 깨달았어

175쪽


결산을 계속해 나간다면 분명 이런 일이 여러 번 생길 거야

→ 꾸준히 되짚어 나간다면 아마 이런 일이 여럿 생겨

→ 그대로 되살펴 나간다면 또 이런 일이 여럿 생길 테야

175쪽


인간은 한쪽 면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 사람은 한쪽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 누구나 한쪽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17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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