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빛

47걸음



  2025년 5월부터 11월 사이에 고흥을 벗어나 부산에서 자그마치 47걸음에 이르는 이야기꽃을 지폈다. 참 용한 녀석이로구나 싶다. 이동안 모든 하루에 다 다르게 노래를 1∼4꼭지를 꼬박꼬박 썼다. 하루쓰기도 용케 끈덕지게 쓰고 또 썼다. 읽은 책도 산 책도 많은데, 부산 〈책과아이들〉 이웃님한테 드릴까 싶어서 “사라진 만화책”을 어젯밤 누리책집에서 실컷 산다. 책값을 적잖이 들였는데, 이야기꽃을 지피며 누리고 나눈 사랑을 헤아려 보면 30만 원쯤은 대수롭지 않다.


  어느 곳이나 보금자리를 이룬다. 그리운 님 마음속이란 가장 아늑한 데이지 싶다. 나는 두멧시골에서 살며 바깥일을 보느라 집에 세 사람을 놓고서 혼자 움직일 때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으로 이은 빛이야” 하고 속삭이고 되새긴다. 참으로 우리는 서로 빛인걸. 서로 빛인 줄 모른면 서로 빚이고 마는데, 아직 서로 빛 아닌 빚이라면, 나란히 손모아서 새날을 빚으려고 이슬과 눈물과 빗물을 흙(땅)에 담아서 가만히 비비고 빌면 된다.


  비기에 빚는다. 비우기에 비친다. 빈손에 빈몸에 빈마음이라서 빛이 스밀 틈이 있고, 빛씨가 스며들면 누구나 꿈을 그리고는 살며시 눈뜨는 새싹으로 비추면서 푸릇하다.


  바람과 비와 바다를 어떤 빛갈래로 그리려는가? 밭과 바탕과 밑동은 어떤 빛깔로 물들이려는가?


  시외버스 짐칸에 등짐과 책집을 다 둔다. 부산서 서울 가는 07:00 시외버스는 널널하다만, 나는 더 널널하게 가려고, 두 짐도 호젓이 쉬라고, 따로 자리를 잡고서 움직인다. 동트는 하늘을 보는데, 나도 내 옷도 내 책도 내 가방도 내 고무신도 내 붓과 종이도 노상 온곳을 함께 떠돌며 이 별을 굽이굽이 누비네. 눈부터 붙이고 나서 읽고 쓰자. 그동안 잘 읽고 썼으니, 이제부터 모두 또 새롭게 읽고 쓰자. 2025.11.2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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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읽을 하루



  “네가 추운 까닭은 하나야. 넌 추위만 쳐다보거든. 내가 즐거운 까닭은 하나야. 여름에는 햇볕이 기쁘고, 겨울에는 찬바람이 반갑단다.” 스스로 곱씹고 마음에 담는다. 아이하고 주고받고 이웃하고 얘기한다.


  엊저녁에 장만한 책꾸러미 가운데 시외버스에서 읽을 몇 가지를 추스른다. 긴긴 길에 천천히 읽고 되새긴다. 쉬고 읽고 자고 쓰고, 다시 쉬고 읽고 자고 쓴다.


  처음 태어난 책에는 처음 쥐고 살핀 옛사람 손길이 흐른다. 고이 이은 책에는 숱한 나날에 이르는 손끝이 어린다. 새로 태어나는 책에는 이제부터 나누고 싶은 숨결이 돋는다. 오래 흐른 책에는 너랑 내가 오늘 곰곰이 짚을 씨앗 한톨이 잠들어서 기다린다.


  읽는다. 쓴다. 쉰다. 잔다. 생각한다. 본다. 느낀다. 바라고 그린다. 이윽고 바람이 불고, 곧 해가 넘어가고 슬슬 별이 반짝인다. 하루는 언제나 새롭다. 쓰다듬고 덮는 모든 책이 고맙다. 2025.11.2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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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빛

창원에서



  어제 창원에 닿았고, 늦낮에 마산으로 건너왔다. 마창 둘만 더해도 무척 크다고 느낀다. 창원도 마산도 부산과 고흥 못잖게 폭하다. 안 춥고 안 언다. 그러나 이렇게 ‘겨울없는’ 곳에서 사는 분은 그저 춥다고 여긴다. “마음이 추우니 몸도 춥다고 느낍니다” 하고 여쭈면 다들 웃는다. 거짓말이 아니다. 마음이 추운 사람은 몸이 덩달아 춥다. 마음이 따뜻하기에 몸이 나란히 따뜻하다. 옷을 두툼히 입어서 나쁘지 않되, 옷에 앞서 마음부터 돌아볼 일이라고 느끼낟.


  아침길을 나선다. 마산 시내버스는 칸 사이가 좀 좁다. 어제는 사납게 모는 버스일꾼만 만났고, 오늘은 느긋이 모는 버스일꾼을 만난다. 누구나 다르니, 저마다 다르게 살고 말하고 듣고 들려주고 보고 보여준다. 더 낫거나 더 나쁜 사람이 따로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누구를 마주하든 빙그레 웃으면 넉넉하다고 본다. 사납게 모는 사람한테도 웃고, 부드러이 웃는 사람한테도 웃으면 된다.


  고흥은 이제 살살 울긋불긋 물들려 한다면, 부산이며 창원에 마산은 샛노랗고 새빨갛다. 길에는 쇠(자동차)가 넘쳐서 시끄럽다만, 나는 길나무와 길풀을 바라보며 걷는다. 나무를 톡톡 토닥이고 들꽃을 살살 어루만지면 ‘길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 이따금 새 한두 마리씩 곁으로 날아와서 날아간다. 새한테 속삭인다. “우리 뒤꼍에도 감을 먹으려고 날마다 오는데, 네 동무가 우리집에서 함께 산단다.”


  오늘도 해가 밝다. 아침해를 머금으면 따뜻하다. 해는 아직 더 누워야 하고, 날마다 뉘엿뉘엿 슬그머니 쉬어간다. 이제 마산나루에 닿아서 종이를 끊는다. 어느새 칙칙폭폭 순천에 닿는다. 쓰던 글을 멈춘다. 고흥버스에서는 책읽기를 누려야지. 읍내에서 마을로 가는 시골버스에서는 하루글을 쓰자. 2025.11.14.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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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5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25-11-15 19:23   좋아요 0 | URL
굵고 짧게 창원과 마산을 돌았습니다.
마창진이 크고 사람이 많은 줄 알기는 했지만,
거의 열 해 만에 다시 찾아본 창원과 마산은
그대로 사람도 자동차도 많고,
이 책집에서 저 책집으로 옮기는 길이 으레 1시간쯤 걸리더군요 ^^;
즐겁게 누리고 고흥으로 돌아왔습니다.
 

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빛

이른버스



  마을앞을 지나는 첫 시골버스를 타면, 고흥읍으로 모여서 논밭일을 가려고 줄서는 베트남 이웃일꾼을 만난다. 으레 스무 사람쯤 줄서는데, 다들 첫 시골버스를 타고서 읍내에 모이고, 다시 다른 시골버스를 타고서 어느 논밭으로 간다.


  오늘은 셈겨룸(입시)을 치르는 날이라고 한다. 어제부터 마을알림으로 시끄럽다. 영어듣기평가를 할 적에는 모든 길을 막고서 시골버스도 안 다닌다고 한다. 문득 참 유난을 떤다고 느낀다. 이 나라에서 푸른씨를 쳐다보거나 헤아리는 때는 고작 셈겨룸에서 영어듣기평가로구나. 이때를 빼고서 한 해 가운데 하루조차도 푸른씨 목소리를 안 듣고서 그저 돌림질(학원뺑뺑이)에 가두는 수렁이니까.


  왜 여느때에는 어린씨랑 푸른씨 목소리를 안 들을까. “왜? 왜? 왜?” 하고 물으려다가 그만둔다. 곰곰이 보면, 나라지기도 나라일꾼(의원·공무원)도 어린이책이나 푸른책을 곁에 안 두기 일쑤이고, 아예 모르기도 한다. 그림책을 읽는 나라지기가 있는가? 아이를 낳지 않았어도 어린이책과 푸른책을 틈틈이 읽으면서 어린이와 푸름이하고 말을 섞는 나라일꾼은 몇이나 있는가.


  오늘은 지난해보다 덜 얼었지 싶다. 어쩐지 올해 이맘때 하늘은 예전보다 미움과 걱정이 한풀 꺾였구나 싶다. 우리 마음은 늘 날씨로 모여서 드러난다. 포근히 사랑하는 마음이면 다 푼다. 매섭게 노려보거나 겨냥하거나 손가락질하면 온누리가 들썩들썩 아프다. 나는 열한달 열셋쨋날인 오늘도 맨발고무신이다. 아직 긴바지를 입을 만큼 바람이 안 차고, 버선을 꿸 만큼 길이 얼지 않았다. 누구나 스스로 따스하게 마음을 다스리면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어도 안 추울 만하다.


  천천히 걷히는 구름을 바라보며 걷는다. 순천을 거쳐서 돌고돌아 창원으로 나아간다. 흔들대는 버스에서 글을 쓴다. 책을 셋 챙긴다. 창원대학교에서 이야기를 펴는 하루이다. 이야기꽃을 마치면 창원책집이며 마산책집에 들러서 긴저녁과 긴밤을 책노래로 누리려고 한다.


  뿌우웅 하면서 칙폭이가 들어온다. 이제 자리에 앉으면 눈을 조금 붙여야겠다. 아무쪼록 온누리가 어린씨를 첫째로 마주하고서, 푸른씨를 나란히 바라보려는 마음이기를 빈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어린씨랑 푸른씨 곁에 있어야 참하고 착하게 모두 바꾸고 가꾸고 일군다. 어느 길이든 너랑 내가 함께 낸다. 함께 걷고 함께 쉬고 함께 노래하는 길이다. 2025.11.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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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라는 날



  큰아이랑 저잣마실을 나왔다. 혼자 들 짐을 둘이 든다. 예전에는 아이들 살림까지 모두 혼자 들었고, 이런 몸에 아이를 안거나 업었다. 때로는 두 아이를 두 어깨에 나란히 안는다든지, 한 아이는 업고 다른 아이는 앞으로 안으면서 다녔다. 아이들은 열두어 살 무렵부터 저희 짐을 조금씩 혼자 끝까지 다 들었고, 열너덧 살을 지나자 저희 짐에다가 다른 짐을 하나둘 맡는다. 요즈음은 큰아이가 저잣짐을 조금만 나눠들어도 홀가분하다. 나는 무거울 일이 없고, 힘들 일마저 없다. 슬금슬금 느긋느긋 걷는다.


  언제나 하나이다. 즐겁게 지켜보고 기쁘게 땀흘리면서 새롭게 사랑을 그리면서 걷는다. 등짐도 앞짐도 어깨짐도 손짐도 이 아이들하고 곁님이랑 누릴 오늘빛이라고 여긴다. 등으로는 업고 가슴으로는 안는 두 아이 무게란, 두 아이가 어버이한테 베푸는 숨빛이라고 느낀다. 어릴적을 떠올리면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무거운 짐을 들어 달라고 시켜서 미안해.” 하셨고, 나는 “이렇게 무거운 짐을 어머니 혼자 들고서 집까지 오신다면 저야말로 부끄러워요.” 하고 여쭈었다. 어머니하고 다니는 저잣마실은 오래오래 걷고 묵직묵직 나르는 머슴길인데, 등판이 땀으로 홀랑 젖을 만큼 힘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동무하고 뛰놀아도 땀은 똑같이 나는걸.


  고흥군은 오늘부터 유자잔치를 하나 보다. 그곳은 쇠(자동차)를 몰아야 갈 수 있지. 두멧시골에서는 그런 곳에 갈 일이나 갈 까닭이 없다. 서울서 여러 노래꾼을 목돈 쥐어주고서 고흥까기 모셔오는 먹자판에 노닥판인데, 이런 데는 ‘잔치’가 아닌 ‘돈수렁’ 같다. 지지난해에는 서울에서 노래꾼 하나를 부를 적에 ‘10분에 500만 원’부터 여쭈어야 했다는데, 올해는 얼마쯤 쏟아부으려나? 왁자지껄 큰잔치에 벼슬꾼이 우르르 줄서서 찰칵찰칵 찍어서 남기는 자리는 이제 끝낼 노릇이다. 이 시골자락 어린이랑 푸름이가 한복판에 서서 즐기고 나누는 어울림판으로 거듭날 노릇이라고 본다.


  오늘이라는 날에도 거닐며 읽고 쓴다. 두런두런 얘기한다. 집으로 돌아갈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또 읽고 쓴다. 해가 기운다. 바람소리가 깊다. 멧노랑(산국) 늦가을빛을 헤아린다. 2025.11.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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