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22. 여덟 자리



  어제 서울로 가던 고흥시외버스는 0자리가 비었다. 오늘 고흥으로 돌아가는 서울시외버스는 여덟 자리가 빈다. 어제 서울서 장만한 책짐을 날개(택배)에 얹었다면 가벼웠을 테지만 지난밤에 심심했으리라. 지난밤을 심심하지 않게 보내면서 글쓰기는 조금 뒷전으로 밀렸는데, 그만큼 넉넉히 밤과 새벽을 누렸다.


  서울 가던 길에도 아무 데나 덥섭 앉으려는 아재가 있더니, 고흥 돌아가는 길에도 아무 데나 불쑥 앉으려는 아재가 있다. 버스일꾼은 “젊은 아가씨가 안 된다고 하네. 아저씨 탈락!” 하고 큰소리로 말한다. 맨뒷자리에 앉아서도 들린다.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책을 읽다가 내려놓는다. ‘아재 익살’이란 무엇일까? 아재는 철들 수 있을까? ‘책읽는 아재’는 너무 드물고, ‘배우는 아재’'는 더더욱 드물다. 그러나 아재들이 책을 안 읽더라도 구름을 올려다보기를 빈다. 아재들이 찬바람이(에어컨)를 몽땅 끄고서 바람을 마시다가 아이들한테 부채질을 해주기를 빈다. 아재들이 살림글을 쓰기를 빌고, 낫과 호미를 쥐고서 밭일을 하기를 빈다. 아재들이 통통 도마질을 하면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두바퀴를 달려서 저잣마실을 하기를 빈다.


  아재들이 앞치마를 두르고서 고무신을 꿰어야 온누리가 아늑하다. 거추장스러운 차림옷(양복)은 다 집어치우고서 민소매에 깡똥바지를 입으며 일하기를 빈다. 아재들이 ‘살림꾼’으로 거듭나야 서로 오붓하다. ‘머스마’는 ‘머슴’인 줄 알아볼 때에 모든 굴레가 풀리고 걷힌다.


  아재들아, ‘인문책’은 안 읽어도 되니, 그림책과 동화책을 읽자. 윌리엄 스타이그라는 미국사람은 예순 살을 훌쩍 넘고서야 그림책을 그렸는데 온누리 아이들이 사랑한다. 바바루 쿠니라는 미국사람은 할머니 이야기를 꾸준히 그렸는데 온누리 아이들이 참으로 사랑한다. 요새 나오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안 읽어도 된다. 2000년 언저리까지 나온 ‘오랜 아름그림책’과 ‘오랜 아름동화책’을 읽으면 된다. 권정생 동화책을 읽고, 린드그렌 동화책을 읽으면 된다. 엘사 베스코브 그림책을 읽고, 나카가와 치히로 그림책을 읽으면 된다. 헌책집에서만 만날 수 있는데, 《닉 아저씨의 뜨개질》 같은 그림책과 《말론 할머니》 같은 그림책을 품에 안는 아재가 늘어야, 누구보다 아재 그대들부터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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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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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19. 비내리는 멧밭



  마을에 멧밭이 있다. 할매할배는 차츰 나이가 들며 멧밭을 돌보거나 일구기 벅차다. 이 멧밭자리를 팔아주기 바라던 분(귀촌자)이 꽤 있었는데, 우리 마을 할매할배는 이분들한테는 안 팔고서 ‘태양광업자’한테 거의 넘겼다. 이제 조금 남은 멧밭 가운데 한쪽은 아직 곤드레밭이다. 새벽에 할배 일손을 도우러 갔다.


  저물어가는 여름이기에 새벽 다섯 시도 어둡다. 늦여름에 이르면 새벽 여섯 시도 어두울 테지. 비는 쉬다가도 내리고, 신나게 들이붓다가도 말갛게 쉰다.


  마을 할배는 참이라며 빵과 마실거리(요거트)를 건넨다. 나는 일할 적에는 안 먹는다. 주머니에 쑤셔넣고서 곤드레자루를 영차영차 여민다. 서울내기(도시인)는 곤드레가 어떻게 생긴 나물인 줄 알까? 곤드레나물이 밥자리에 오르기까지 시골 할매할배가 어떻게 땀흘리는지 알까. 젊다면 일흔두엇, 많다면 여든한 살 할매는 이 새벽에 곤드레를 벤다. 개구리·나비·나방·노린재·하늘소·거미 들이 바쁘다. 풀이웃한테는 집과 마을이 갑자기 사라지는 셈이다. 멧숲에서 꾀꼬리와 지빠귀가 운다. 날이 밝을 즈음에는 제비소리가 섞인다. 그리고 빗소리가 사이사이 적신다.


  자루를 묶고 여미며 아침이 환하다. 할매들은 할배 짐차를 타고서 아침 드시러 간다. 비가 함박으로 쏟아진다. 나는 반갑게 함박비를 맞으면서 밭일을 마무른다. 천천히 고샅을 걷는다.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빨래한다. 머리카락이 마를 때까지 책을 읽다가 믈까치와 직박구리가 후박알을 쪼는 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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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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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7.21. 마감



  달날에 서울 가는 버스를 미리 끊을 적에는 널널했다. 이른아침에 고흥읍에 나오니 자리가 꽉 찬다. 이다음에는 순천을 거칠까 하고도 문득 생각한다.


  논두렁을 걸어서 옆마을 07:40 시골버스를 탔다. 시골버스에서 노래를 두 자락 썼다. 서울버스에서는 무엇을 해볼까 하고 헤아려 본다. 차츰 구름이 걷히니 하늘바라기를 할 만하다. 손글씨로 낱말숲을 그릴 수 있다. 책을 읽거나 잘 수 있다. 다만 서울에 닿을 때까지는 내내 노래를 들으려 한다.


  고흥읍 버스나루 제비가 춤춘다. 서울버스를 기다리면서 날개춤을 지켜본다. 파란하늘이 드러나고 구름빛이 새하얗다. 새끼제비는 잘 날고, 어미제비는 신난다. 열두 마리가 모였다가 흩어지며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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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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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7.21. 서울은 책집



  전남 고흥에서 탄 08:30 시외버스는 12:46에 서울에 닿는다. 13:50 즈음에 노고산동 헌책집 〈숨어있는 책〉에 깃들고, 17:00에 책꾸러미를 등과 가슴에 이고 안으면서 비로소 밖으로 나온다. 19:00에 화곡동 마을책집 〈악어책방〉에서 ‘마음꽃쓰기’를 편다. 안 늦게 움직이자고 여기는데 느긋이 닿을 듯싶다.


  등에도 손에도 책짐이다. 서울버스를 타고서 움직이면 한가람다리에서 길이 막히기도 할 테고, 책읽기에 수월하지 않다. 큰덩이 책짐을 두기에 나은 전철을 탄다. 둘레에서는 손전화를 들여다볼 테고, 나는 책을 읽는다. 책짐이 넉넉하기에 묵직하면서 배부르다. 책짐을 이고 안으면서 걷기에 땀이 비오듯 흐른다. 어떤 길손은 ‘책벌레 땀냄새’가 싫어서 옆으로 비키고, 어떤 길손은 손전화에 사로잡혀서 ‘책벌레 땀냄새’가 나건 말건 꿋꿋하다. 전철은 찬바람이 몹시 세기에 책땀은 벌써 식는다.


  오늘밤은 이 책타래로 홀가분하겠지. 한밤과 새벽과 아침에 읽을 책이 한가득이요, 고흥오로 돌아갈 기나긴 시외버스에서 읽을 책도 수북수북하다.


  다른 분들이 책을 안 읽거나 그냥그냥 ‘잘팔린책(베스트셀러)’에 꽂혀도 된다. 내가 ‘온책’을 읽으면 되고, 내가 ‘숲책’과 ‘푸른책’을 읽으면서 하늘빛과 들빛과 숲빛과 살림빛과 시골빛과 살림빛과 아이돌봄빛과 걸음빛과 글빛과 하루빛을 노래하면 즐겁다. 숲을 이루는 모든 씨앗은 아주 조그마한 한 톨이다. 책씨 한 톨이 가만히 춤추며 다니면 반짝인다.


  서울 신촌나루부터 우장산나루로 움직이는데, 아직 북새통(출퇴근시간)은 아니지만, 이동안 타고내리는 손님이 참 많다. 더 느긋이 걷자. 더 천천히 기스락으로 비키고 물러서서 걷자. 엊그제 시골마을 이웃 할배네 곤드레 멧밭에서 일손을 거들며 등허리랑 팔다리가 결렸는데, 책집을 이고 안고서 걸으니 찌뿌둥한 몸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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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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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7.20. “혼자 했다”는 마음



  이른바 ‘종편’이라고 하는, ㅈㅈㄷ(조중동)이 꾸리는 곳 가운데 하나인 ‘채널A’라고 있다. 이곳에서 여러 해째 〈티처스〉라는 풀그림을 내보낸다. 밑동은 ‘성적을 부탁해!’이고, ‘일타강사 여러 사람’이 ‘수학·영어 점수’를 높이는 길을 잡아 주는 듯하지만, 정작 이 풀그림을 들여다보면, 아이들 ‘입시점수 잡아주기’는 거의 핑계나 허울 같고, 1시간 10분에 걸친 줄거리는 거의 모두 ‘아이랑 이야기하기’이다.


  우리집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하루조차 나가지 않았고, 열여덟 살과 열다섯 살에 이르도록 시골집에서 조용히 함께 지내면서 같이 배우고 나누는 살림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이런 두 아이하고 꼬박꼬박 〈티처스〉를 함께 지켜본다. 왜 그러한가 하면, ‘한집안을 이루는 아이어른’이 서로 어떤 사이로 지내면서 서로 어울리고 스스로 길을 찾는 나날을 지을 노릇인가 하는 대목을 생각하는 즐거운 밑거름으로 삼을 만하거든.


  지난 2025년 7월 13일에는 ‘아이를 의사로 만들려고 용쓰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고작 열다섯(중2)인 아이는 ‘10년치 생활계획표’에 따라서 ‘하루하루 타임라인을 끊는 굴레’를 꽤나 오래 이었더라. 지난 2015년에 나온 프랑스 만화영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아이하고 똑같다. ‘의사 되기’만 바라보며 ‘10년치 생활계획표’를 짜준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여러모로 대단하기는 하되, 이런 틀대로 아이가 푸른날을 보낸다면, 푸른날에 떠올릴 삶은 하나도 없다.


  오늘날 한국·일본 적잖은 어린이와 푸름이는 ‘오늘’이라는 ‘삶’이 없이 ‘대학교’만 바라보는 굴레에 밀려가는 물결이다. 일본은 한국만큼 밀려가지는 않는다고 느낀다만, 아이들 삶에 ‘놀이’하고 ‘노래’가 송두리째 빠졌다. 더욱이 푸른날 가운데 열일곱∼열아홉 살에는 어떤 놀이도 노래도 곁에 두면 안 된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놀이와 노래는 누구나 스스로 찾아서 짓는 삶이다. 게임이나 레크리에이션이나 대중가요나 락이나 여러 ‘음반’은 ‘놀이·노래’가 아니다. 스스로 지어서 누려야 놀이에, 스스로 지어서 불러야 노래이다. 그런데 오늘날 숱한 아이들은 ‘놀이·노래’가 송두리째 없다. 둘레에 다른 어른이나 또래가 없이 호젓하게 놀고 노래할 틈이 없더라.


  다만, 아이들이 ‘놀이·노래’를 누리는 바탕이 꼭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집안을 사랑으로 돌보고 가꾸는 곳에서 ‘놀이·노래’를 스스로 지어서 누린다. 어린날뿐 아니라 푸른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놀이·노래’를 까맣게 잊고서 ‘대학입시 수험공부’에 얽매이더라도,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치우는 어버이가 있어야 한다. 엄마아빠가 밥이며 옷이며 집이며 다 갖추어서 베풀어 주는 터전이기에 ‘놀이·노래’이건 ‘대학입시 수험공부’이건 할 수 있다.


  요즈음 온나라(한국) 어린이·푸름이를 돌아보면, 손수 밥을 지을 줄 아는 아이를 거의 못 본다. 전기밥솥으로도 못 짓기 일쑤이다. 설거지를 할 줄 안다든지, 빨래나 걸레질이나 비질을 아는 아이도 그야말로 드물다. 시골에서 나고자란 아이들조차 나락이며 나락꽃을 모르고, 모내기를 언제 하는 지도 모르고, 낫과 호미가 무언지 모르고, 숱한 아이들이 길바닥에 그냥 쓰레기를 버리고, 시골버스에서 그냥 손전화를 시끄럽게 켜서 떠들고 그렇다. 아니,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태우러 오는 쇳덩이(자가용)에 몸을 실으면 그만이다.


  아이어른이라는 사이는 그냥 만나는 둘일 수 없다. 둘이 서로 꿈으로 그려서 비로소 만나고 한집안을 이룬다. ‘나’를 보면 ‘아이’가 보이고, ‘아이’를 보면 ‘나’를 알 수 있다. 둘은 늘 함께 흐른다. 그러니까, 아이가 스스로 길찾기를 할 수 있는 바탕이라면, 집안일을 맡아서 하는 어버이가 꼭 있어야 한다. 집에서 든든히 지키고 살피고 돌보는 어버이라는 어른이 있는 줄 알기에, 아이들은 느긋이 바깥누리에서 스스로 나아가고 싶은 길을 헤아릴 수 있다.


  우리가 어버이요 어른이라면, 아이를 북돋울(응원) 일이 딱히 없다고 느낀다. 어버이요 어른이기에, 아이 곁에서 늘 새롭고 즐거운 ‘스승’이다. 스승이라는 사람은 그저 스스로 하고 몸소 보이는 자리일 뿐, 이래라저래라 시키지 않는 몫이다. 어버이는 가끔 아이한테 잔소리를 할 수 있되, 늘 ‘곁스승’으로서 온삶으로 온길을 보여주게 마련이다.


  스스로 해내는 또다른 빛이기를 바라기에 아이를 낳아서 돌본다. 언제나 이뿐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아이가 스스로 해내기까지 보금자리에서 온갖 살림살이를 일구고 지은 어버이가 있게 마련이다. 또한, 우리가 사람으로서 살아가자면, 사람 곁에 들숲메바다와 해바람비와 풀꽃나무가 나란히 있다. 누구나 ‘혼자·스스로’ 하되, 언제나 ‘같이·함께’ 하기에 다 다르게 빛나는 삶이자 살림이다.


  “혼자 했다”는 마음인 아이들이 꽤나 많더라. 그런데 이 아이들이 ㅅㄱㅇ이건 ‘in 서울’이건 어느 곳에 붙는다고 할 적에 “혼자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대학입시에 목을 매달 적에 누가 밥을 해줬는가? 누가 빨래를 해줬는가? 누가 아이들 터전을 쓸고닦고 정갈하게 치웠는가? 누가 아이들을 집과 배움터 사이로 실어날라 주었는가? 그리고 날마다 숨을 쉬는데, ‘숨’이란 무엇인가?


  혼자 해내거나 혼자서 이루는 일은 아예 없다. 우리가 글을 쓸 적조차, 훈민정음을 만든 임금이 있었고, 훈민정음을 가다듬어서 한글로 바꾼 주시경 님이 있었고, 이 한글을 지킨 수수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마음을 담는 말인데, ‘우리말’은 ‘서울 표준말’이 아닌, 먼먼 옛날부터 손수 밥옷집을 지으면서 아이를 돌본 수수한 시골사람이 지은 ‘사투리’가 밑동이다. 매듭은 우리 손으로 짓되, 우리가 혼자 매듭을 짓기까지 곁에서 함께 잇고 흐른 숱한 숨결을 바라볼 노릇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함께 걸어가면서 빛나고, 같이 나아가면서 즐겁고, 나란히 이야기하면서 새롭다. 함께 노래한다. 같이 논다. 나란히 춤춘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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