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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기분 좋은 날 ㅣ 보리 어린이 10
한국글쓰기연구회 지음 / 보리 / 1999년 10월
평점 :
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7.24.
맑은책시렁 351
《아주 기분 좋은 날》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보리
1999.10.15.
1999년에 민소매에 깡똥바지 차림으로 펴냄터 일꾼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들 입으로는 ‘옷·얼굴·종이(졸업장·자격증)·쇠(자가용)·돈’을 안 본다고 읊지만, 정작 이 다섯 가지를 안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서울뿐 아니라 시골도 매한가지입니다. 이해에 태어난 《아주 기분 좋은 날》을 아주 신나게 알리고 팔았습니다. 엮음이보다 먼저 느낌글을 써서 띄우기도 했습니다. 파는이(영업자)는 책마다 어떤 줄거리와 삶이 흐르는지 읽는이(독자)한테 제대로 짚고 알리는 몫입니다. 예나 이제나 “책을 안 읽은 채” 마냥 “펴냄터 이름만 내세워서 파는 일꾼”이 수두룩합니다만, 저는 “스스로 안 읽은 책을 어떻게 파느냐?”고 여겼습니다.
어느새 아이어른 모두 입에 밴 ‘기분 좋은’이라는 일본말씨입니다. 우리는 이런 뜬금없는 말씨가 아니라, 신나면 ‘신나다’로, 즐거우면 ‘즐겁다’로, 실컷 하거나 먹으면 ‘실컷(싫도록)’이라고, 홀가분하면 ‘홀가분하다’로, 흐뭇하면 ‘흐뭇하다’로, 기쁘다면 ‘기쁘다’로 나타낸 삶입니다. 구태여 일본말씨 ‘기분 좋은’을 쓸 까닭도 뜻도 없으며, 아이가 이런 말씨에 잘못 길들거나 물들지 않도록 돌볼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기분 좋은 날》이라는 어린이 글모음은 “아주 신나는 날”이나 “아주 즐거운 날”이나 “아주 웃은 날”이나 “아주 춤춘 날”이나 “아주 노래한 날”이나 “아주 신바람날”처럼 책이름부터 바로잡아야 맞습니다. 그렇지만 예나 이제나 이 대목을 알아보거나 알아채려는 길잡이는 아주 드물어요. 그냥그냥 길든 대로 씁니다. 이냥저냥 물든 대로 아이들을 팽개칩니다.
책머리에 이오덕 님이 붙인 글을 되살펴 보아도, ‘우리(어른)’ 스스로 어른스럽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부터 ‘우리말’을 너무 모르고, 거의 안 쳐다보기 일쑤입니다.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쯤 이르기에 ‘우리말’을 안 배워도 되지 않습니다.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나 쉰 살쯤 먹기에 ‘우리말’을 새로 안 배워도 되지 않아요. 우리는 여든이나 두온(200) 살에 이르러도 언제나 새록새록 ‘우리말’을 가다듬고 익힐 노릇입니다.
모든 말이란, 우리 마음이자 삶이에요. 말을 어떻게 가누느냐 하는 일이란, 마음을 어떻게 가꾸면서 삶을 어떻게 짓느냐 하는 실마리입니다. 아무 낱말이나 쓰는 사람은 참말로 아무렇게나 일하더군요. 얼렁뚱땅 지나치려는 사람은 그야말로 얼렁뚱땅 넘기기 일쑤입니다.
막짓(갑질)이 안 사라지는 까닭을 알기는 쉽습니다. 우리는 이미 말부터 찌들고 주눅들 뿐 아니라, 억누르고 짓밟거든요. 어린이가 쓴 글에 ‘엄마께서’나 ‘선생님께서’처럼 틀린말씨가 끝없이 나옵니다. ‘-께’는 드높이는 말씨이기는 하되, 가까이에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한테는 아예 안 씁니다. ‘할아버지가’나 ‘아저씨가’처럼 써야 어린이 말씨입니다. 그저 ‘선생님이’나 ‘엄마가’처럼 써야 어린이 말결입니다.
어린이가 스스로 신명나는 춤사위를 누리면서 오늘을 살아가기를 바라요. 어린이가 구태여 ‘마침종이(졸업장)’를 따지 않아도 넉넉한 터전으로 가꾸기를 바라요. ‘종이 쥔 놈’이 아니라 ‘일하는 이웃’으로 지낼 노릇입니다. ‘돈 쥔 놈’이 아니라 ‘어깨동무하는 우리’로 어울릴 노릇입니다.
ㅍㄹㄴ
어른들의 글을 흉내내어 말재주를 부리고, 어려운 말을 쓰고, 머리로 글을 만들어 내려고 하여 어린이다운 글을 만나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른들이 잘못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마음, 어린이 세계는 어린이 스스로 지키고 키워 가는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6쪽/머리말 : 이오덕)
저 못생겼죠? 다음에 태어날 때는 예쁘게 태어나 예쁜 얼굴 여러분께 보여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내 소개-서울 영본 3년 조영진 1996.6.4./16쪽)
“엄마, 우리 새로운 피아노 선생님 너무 무서워.” “어어! 그럼 잘 됐다.” 그런 엄마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피아노 선생님-서울 상월 3년 이상윤 1996.2.28./23쪽)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느낌이 이상했고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고 헌 공책이 있는데 왜 새 공책을 쓰느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일기-부산 연지 3년 최승아 1990.10.10./29쪽)
선생님은 한참 화를 내시고 돈(이웃돕기 성금)을 내일 가져오라고 하시고는 넘어가셨다. 나는 그 때 가슴이 두근두근 콩콩 뛰었다. (거짓말-서울 영훈 3년 오상윤 1997.11.26./41쪽)
“28등이요.” 엄마께서는 반장이 돼 가지고 그게 무슨 꼴이냐면서 호통을 치셨지요. 그러면서 또 물으셨어요. “그럼 윤아는?” “4등이요.” “으이고, 그래도 윤아는 4등이라도 해서 다행이지.” (엄마,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마세요-경기 광명 연서 4년 이민경 1994.6.20./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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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업 : 강우균 김영철 이경님 최종규
- 상, 인표어린이도서관(재단법인 에스콰이아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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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기분 좋은 날》(한국글쓰기연구회, 보리, 1999)
어른들의 글을 흉내내어 말재주를 부리고, 어려운 말을 쓰고, 머리로 글을 만들어 내려고 하여 어린이다운 글을 만나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 어른 글을 흉내내어 말재주를 부리고, 어려운 말을 쓰고, 머리로 글을 만들어 내려고 하여 어린이다운 글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 어른이 쓴 글을 흉내내어 말재주를 부리고, 어려운 말을 쓰고, 머리로 글을 만들어 내려고 하여 어린이다운 글이 드뭅니다
《아주 기분 좋은 날》(한국글쓰기연구회, 보리, 1999) 6쪽
물론 이것은 어른들이 잘못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 다만 이는 어른이 잘못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우리가 잘못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6쪽
나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 나는 참 기뻤습니다
→ 나는 참 즐겁습니다
15쪽
느낌이 이상했고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 어쩐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 잘 모르겠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29쪽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고
→ 샘님은 나를 보고
2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