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들을 읽힐 수 있을까?

이런 책들은... 아직 너무 힘들라나... -_-;;




 중학교 아이들은 읽을 책이 없다


 중학교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은 거의 없습니다. 동화책이나 동시집은 초등학교 아이들이나 보는 책 같아서 가까이하지 않을 테지요. 소설이나 시는 아직 어려울 테니 읽기 힘들고요. 문학이 아닌 책은 중학교 다닐 만한 나이인 아이들 눈높이에 너무 높거나 낮아서 알맞지 않기 일쑤입니다. 예술이나 문화나 사회나 과학이나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말 그대로 사이에 낀, 가운데에 찡겨 버린 어중간한 나이처럼 되고 마는 아이들, 열넷부터 열여섯입니다.

 생각해 보면, 중학교를 다닌다는 아이들한테는 소년소설도 즐기도록 하고 동시도 즐기도록 해 주어야 알맞습니다. 어린이문학이란 어린이만 즐기는 문학이 아니라 ‘어린이부터 모든 어른이 즐길 수 있는 문학’이건만, 이렇게 생각하거나 느끼는 분이 참 드뭅니다. 어쨌든, 동시도 그저 어린아이들만 읽는 문학이 아니라 낮은학년이 즐기는 동시와 높은학년과 열대여섯 아이들까지 두루 즐길 수 있는 문학이 따로 나뉘어 있어야 합니다. 문화나 예술이나 종교나 과학이나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책과 마찬가지로 ‘학교로 치면’ 중학교, 나이로 치면 열넷부터 열여섯 사이에 있을 아이들도 문학작품으로 문화와 예술과 종교와 과학과 철학을 맛볼 수 있도록 마음을 쓰고 책을 펴내야 좋습니다. 문학만이 아니라, 어느 만큼 전문성을 담아내는 책도 차근차근 맛볼 수 있도록 해 주면 더욱 좋고요.

 초등학교 다닐 때 배운 과목을 좀더 어렵게 배우는 단계가 중학교가 아니라면, 고등학교 때 배울 지식을 조금 쉽게 풀어서 배우는 단계가 중학교가 아니라면, 이때 아이들이 즐기고 반가이 맞이할 책을 출판사나 책방이나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기꺼이 알뜰하게 갖추어야 합니다. 초등학생도 사람이고 중학생도 사람이며 고등학생도 사람입니다. 어린이도서관이 있어야 하는 한편, 청소년도서관이 있어야 하고, 학문을 깊이 파고들 사람이 즐겨찾을 전문도서관이 있어야 하는 가운데, 늘 바쁘고 고된 일에 매여 있는 월급쟁이들이 마음 쉬며 찾아갈 쉼터 같은 도서관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도서관을 마련하자면, 무엇보다도 중학생이 즐길 책, 고등학생이 즐길 책, 여느 월급쟁이가 즐길 책을 차근차근 엮어낼 만한 문화와 터전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어린이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가운데에는, 제 또래보다 적잖이 앞서가는 책읽기를 하는 아이들, 그래서 열대여섯 살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을 즐기는 열두어 살짜리 아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 가운데에는, 또래들보다 조금 눈높이가 낮은 열서너 살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책을 즐길 수 있겠지요. 그래, 나이나 학년으로 치면 세 해이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아래로 두 해, 위로 두 해 해서 모두 일곱 해를 아우를 수 있는 눈길과 눈높이를 살피는 책을 도서관에서 갖추어야지 싶어요.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야기야 저뿐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며, 중학교 다니는 딸아들 둔 어버이라면 으레 느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도 몸소 느끼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머리’로는 알고 ‘입’으로는 말씀을 하시지만 실천을 못하는구나 싶어요. 몸으로는 못 옮기지 싶어요. 출판사에서 땀흘리고 힘들여서 중학교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책을 펴낸다고 해도, 잘 안 팔릴 뿐더러, 초등학교 높은학년이나 고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눈여겨보아 주지 않으니 버겁다고도 합니다. 더구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모든 ‘교양 책’을 버리고 참고서와 문제집만 달달달 외우도록 끄달리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 대학교 입시가 걸립니다. 중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 아이들은 입시에 억눌려서 책을 못 읽습니다. 책 읽을 틈이 없습니다. 교과서와 시험에 짓눌려서 마음이 답답하지요. 게다가 머리도 아파요. 아무리 좋은 책을 쥐어 준다 해도 그 책을 읽고 싶을까요? 아니, 읽을 겨를이 있을까요. 읽을 겨를을 내어주는 학교 교사가 있나요? 읽도록 마음써 주는 학부모가 있나요? 더구나 그런 책을 읽는다 해도 시험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학생 스스로 그 책을 아주 좋아해하지 않는다면 한두 권 읽다가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 스스로도 그렇지만, 학생들이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교사들이 이끌지도 않거나 못하곤 합니다. 교사들로서도 학생들이 시험점수 많이 내는 쪽을 더 좋아하잖아요. 학생들이 자기한테 좋은 책을 스스로 찾아서 읽도록 이끌자면, 교사들은 ‘교과서 진도 넘어가기’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마음이고 품이고 시간이고 돈이고 많이 들여야 합니다. 이런 데에 마음쓴다고 학교에서 돈이 나오지도 않고 사회에서 알아주지도 않겠지요. 더군다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밤 열 시나 열한 시까지 붙들어 매는 ‘거짓 자율학습’을 시켜야 하니, 몸이 지쳐서 제대로 된 배움을 나누는 데까지 마음을 기울이기 어렵구나 싶어요.

 그래서 중학교 아이들이 좋은 책을 가까이하도록 하자면 무엇보다도 입시제도가 사라져야 합니다. 틀에 박힌 교과서 굴레도 가벼워져야 하며, 아이들한테 지나친 공부 짐을 주지 말아야 해요.

 아이들이 모두 회사원이 되어야 할까요. 큰회사에 들어가 연봉 1억씩 받는 월급쟁이가 되어야 할까요. 모두 영어를 잘해서 세계시민이 되어야 하는가요. 아이들 앞날은 영업사원뿐인가요. 아이들은 인터넷 다루는 일만 해야 하는지요. 아이들이 할 일은 ‘돈 많이 버는 일’, ‘일등이나 일류가 되는 일’, ‘이름을 날리는 일’, ‘권력을 붙잡는 일’뿐인가요.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입니다. 저마다 다른 것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 가운데 연예인이나 가수도 나와야겠지만 농사꾼과 노동자도 나와야 합니다. 아이들 가운데 교사도 나와야겠지만 청소부와 운전기사도 나와야 합니다. 아이들 가운데 공무원도 나와야겠지만 장사꾼이나 광부도 나와야지요. 고기잡이도,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책을 엮어내는 사람도 나와야 해요.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아이도 나와야 합니다. 노래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나와야 합니다. 같은 노동자 가운데에도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 쇠붙이를 다루는 노동자, 종이를 다루는 노동자, 전기를 다루는 노동자, 용접을 다루는 노동자, 페인트바르기를 다루는 노동자 …… 들도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된 어른이라면, 이렇게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르게 살아가며 일하고 어울릴 아이들임을 생각해서 아이들마다 ‘자기 됨됨이와 생각과 마음’을 알뜰하고 푸짐하고 너르게 가꾸고 추스르는 일을 학교와 집과 동네에서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좋습니다. 책은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자기 모습과 마음을 가꾸는 길잡이 가운데 하나로 곁에 둘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가운데 하나로 건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이 나라 중학교 아이들한테는 책도 없지만 삶도 없습니다. 자기 마음도 없고 꿈도 없습니다. 현실도 없고 이야기도 없고 동무도 없습니다. 뭐가 있습니까? 이것저것 많이 있는 것 같지요? 컴퓨터도 있고 손전화도 있고 이것저것 많이 가진 것 같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가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껍데기뿐이에요. 껍데기만 뒤집어쓰고 있어요. 바람만 불면 휙 날아가 버리고 마는 껍데기 말입니다.

 아이들한테는 껍데기가 아닌 속살을, 알맹이를, 튼튼한 기둥을 주어야 합니다. 어쩌면, 아이들 스스로 이런 속살과 알맹이와 기둥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끌고 살뜰하게 살아가도록 삶터만 마련해 주면 되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자기 삶을 마음껏 펼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어야 책은 책대로 즐기고 다른 것은 또 다른 것대로 제대로 즐길 수 있는지 모릅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뚫린 것 없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꾸려가기 어려운 세상이고 현실인 이 나라인 터라, 아이들한테 주어진 것은 거의 없고 아이들 스스로 즐길 만한 것도 참으로 드물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한테 책을 건네주고픈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이런 제 마음은 아이들이 ‘책만 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닙니다. ‘책도 보고 다른 것도 즐기면서’ 자기 삶을 아이들 마음대로 신나고 즐겁게 찾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디 아이들이 자유로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창 신나게 뛰어놀고 마음도 씩씩하게 가꿀 중학교 아이들, 열대여섯 살 이팔청춘 아이들 얼굴에 그늘지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싱그러운 꽃잎이 달릴, 고운 몽우리로 피어날 꽃다운 아이들한테 어른인 우리들이 무엇을 주고 있고 무엇을 숨기거나 없애고 있는지 살피며, 또렷이, 아주 똑똑히, 빈틈없이 샅샅이 살피면서 알아차리고 다독이면 좋겠습니다. (중학교) 아이들한테 책다운 책을 내어주고, 삶다운 삶을 꾸릴 수 있는 틈을 주면서. (4338.11.1.불./2007.9.26.물.고쳐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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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들 - 하종강이 만난 진짜 노동자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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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길에서 만난 사람들
- 글 : 하종강
- 펴낸곳 : 후마니타스(2007.2007.7.9.)
- 책값 : 12000원



 이 책 하나 22 ― 한가위에 선물할 책 하나
 : 하종강,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으며


 

 〈1〉 명절날 사람들



.. 그렇다. 사람은 ‘사상’이 아니라 ‘삶’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  (태준식 / 73쪽)


 엊저녁, 잠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 내린 다음, 이곳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에 들러 명절 인사를 드리고 책을 구경했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과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옆과 앞에 이주노동자 여럿이 앉습니다. 이들은 크고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한테도 우리처럼 한가위 명절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고향나라에 남기고 온 식구와 동무 들이 있을 테지요. 오로지 돈만 벌고자 온 한국땅이라고 하나, 나라밖까지 힘겨이 찾아온 이들한테 우리들이 내밀 손길은 ‘품삯 적은 일자리’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어느 회사이든, 회사 우두머리를 아버지로 여기고 일터를 집안처럼 생각하며 정성껏 연장을 돌보고 땀흘려 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몸을 아늑히 쉴 수 있도록, 명절날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마음풀이를 할 수 있도록, 말과 물이 선 땅에서 따돌림이나 푸대접을 받지 않도록 힘쓰는 일 또한 ‘아버지로 여겨질 회사 우두머리’가 할 일이요 우리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눈길을 둘 일이라고 느낍니다.


.. “80년대의 헌신성을 강조하며 열악한 노동조건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선배들에게는 뭐라고 대꾸할 수 있을까요?” 황씨의 대답은 뜻밖에 쉬웠다. “본인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잖아요. 지금은 더 많이 누리며 살고 있잖아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좋은 뜻으로 들어왔던 젊은 실무자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옳은 게 아니에요.” ..  (황정란 / 288쪽)


 느즈막이 인천으로 돌아와서 통닭집에 들릅니다. 통닭집엔 저희와 다른 손님 둘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른 손님 둘은 바로 옆에 저희가 있는데에도 소리높여 서로를 깎아내리고 욕까지 곁들이면서 싸웁니다. 계단에서 얼핏 마주쳤을 때, 저보다 대여섯 살쯤 어려 보이는 젊은 부부입니다. ‘집안일 도와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언제 아이하고 놀아 준 적이 있느냐’고, ‘너는 뭐가 잘났느냐’고 …… 거침없이 싸우는 둘이는 며칠 뒤 맞이할 한가위 명절을 어느 곳에서 어떻게 쇨까요.

 밤늦게까지 길거리장사 하는 분들이 보입니다. 이분들은 한가위 명절을 맞이한 그날에도 손수레를 끌고 이곳까지 나와서 장사를 할까요. 설이든 한가위이든 전철과 버스는 다닙니다. 집집마다 전기가 들어오고 물이 나옵니다. 손잡이를 딸깍 하면 가스가 나오고 단추 한 번 누르면 뜨신 물이 나옵니다. 24시간 편의점 불은 언제나 밝고 약국 불은 그예 들어올 생각을 안 합니다. 명절에는 쉬면서 피붙이와 옛동무를 만나야겠다는 사람도 많겠으나, 명절 대목을 놓칠 수 없다며 여느 때보다 더 늦게까지 일하는 분도 많겠지요.

 선물을 안고 들고 고마운 어른을 찾아뵙는 분도 많지만, 저처럼 벌이가 밑바닥인 사람들은 마음으로만 고마운 뜻을 보냅니다. 자가용에 선물보따리를 싣고 아이를 태우고 피붙이들을 한 사람씩 찾아뵙는 분도 많지만, 택배로 선물보따리를 보내는 분도 많습니다. 문득 궁금한 생각 하나. 우체국이나 택배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느 날에도 저녁 늦게까지 바삐 일하는데, 명절날에 ‘쉼표 찍는(비번)’ 사람이 있을는지.


.. “평범하고 조용하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던 소녀 김효선은 본래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고3이 되었을 때 “우리 나라에서 장애인은 의사가 된다 해도 환자를 직접 치료하기는 어렵고 연구직 의사로 일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을 듣고 좌절했다. ‘장애인을 돕는 의사가 되고 싶다’라는 어릴 적부터 가져 온 꿈을 포기하고 이과에서 문과로 전환하면서 특수교육학을 선택했다 ..  (김효선 / 130쪽)


 언제부터 명절날 고향을 찾아간다며 법석을 떨었을까요. 언제부터 우리들은 고향을 떠나 ‘고향 아닌 곳’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일자리를 얻으며 살게 되었을까요. 고향은 명절날 돌아가면 되는 곳일까요.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굴러갈 수 있다고 하는 요즘 세상인데에도, 꼭 서울이나 부산처럼 큰도시에만 다닥다닥 붙어서 살아야 하는가요.

 태어난 고향에서 일자리 마련하며 살 수는 없을까요. 자라난 고향에서 마을 문화와 삶터를 가꾸거나 돌보거나 추스르거나 다독이면서 이웃사촌을 이루어내며 살 수는 없을까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야 하며, 얼마나 좋은 일자리를 얻어야 하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만나야 하며, 얼마나 훌륭한 아파트를 마련해야 하며, 얼마나 신나는 놀이문화 시설 들을 누려야 하나요. 얼마나 빠르고 크고 멋져 보이는 자가용을 굴려야 하고, 얼마나 곱고 멋있는 옷을 입어야 하며, 얼마나 맛나고 기름진 밥을 먹어야 하나요.


 〈2〉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 “종교가 사회복지 차원에서 병원을 운영하려면 자선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마땅한 거야. 전쟁 직후 폐허에서는 교회가 학교나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 시대에 부응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돈 벌려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학교나 병원 사업이야. 더 이상 종교 주식회사가 되어서는 안 되지 …… 노동자들이 큰소리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다고 신부님들이 ‘우리도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의 가치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야. 성직자들조차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 천시 풍조에 물들어 있는 거지.” ..  (박순희 / 168쪽)


 오늘 저녁, 도서관 문을 닫고 나서 전철을 타고 일산으로 가 볼까 생각합니다. 이튿날 아침에는 전철을 타고 용인까지 간 다음, 두 다리로 걸어서 음성에 가 볼까 생각합니다. 음성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두 다리로 걸어 볼까 생각합니다.

 사람이 다니라고 놓은 길이었으니까요. 사람 다니라고 놓은 길에 자동차만 씽씽 달리고 있지만, 길에서, 또 길을 둘러싼 마을에서, 또 길을 옆으로 한 사람들 삶터와 자연 삶터에서 이 길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습니다. 이 한가위 명절에.


.. “지난해에 충북에서만 농가 부채 때문에 여섯 명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어. 농가 부채가 왜 생기는지 알아? 퇴비 공장 하나만 봐도 그래. 환경친화 사업이라고 정부에서 적극 권장하고 농민들은 전 재산 털고 담보 잡혀 가면서 거금을 융자받아 투자했지. 현실성 없어서 전부 다 망했어 …… 그렇게 되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보증 섰던 일가친척, 동네사람들이 모두 거대한 빚에 허덕이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야. 정부의 농업 정책 실패 때문에 생긴 농가 부채인데,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지 …… 그 와중에 농협은 고리대금업을 하고 …… 농협 이자가 12퍼센트야. 시중 이자보다 오히려 더 비싸. 이건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니라 완전히 장사꾼들을 위한 농협이야” ..  (안순애 / 38∼40쪽)


 자가용이든 버스든 택시든 기차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더 빨리 달리는 탈거리에 몸을 실으면, 씽씽 지나쳐 버리는 길가와 동네와 자연 삶터를 ‘구경거리’로만 느낄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자전거를 몰아야, 또 자전거를 느긋하게 몰아야, 또 자전거를 몰면서도 자주 쉬어 주어야 찻길과 찻길 옆 마을을 ‘구경거리 아닌 우리 삶터’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꾸욱꾸욱 땅을 밟고 걸을 수 있다면,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과 고개 숙여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길을 걸으며 먹다 남은 비닐봉지를 아무 곳에나 버릴 수 없겠지요.

 길에 ‘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람이, ‘내가 발딛고 사는 마을’ 문화를 무너뜨리는 짓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발딛고 사는 마을을 아주 작은 힘으로나마 알뜰히 가꾸고자 애쓰는 사람이 ‘내 이웃이 아파하거나 힘들어할 때’ 모르쇠로 지낼 수 있을까요. 내 이웃 아픔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 ‘세상이 어수선하고 법 아닌 법이 판칠 때’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지내면 되지 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 “휴게소에서 앞으로 몇 년쯤 더 일할 생각이냐” 하고 물었을 때, 이경순 씨는 “정년퇴직할 때까지요”라고 답한 뒤 야무지게 덧붙였다. “우리가 그런 곳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한 번 취업하면 퇴사하기 싫은 직장으로, 그런 평생직장으로 우리가 만들고 말 거예요.” ..  (이경순 / 87쪽)


 전철간에서 내 발을 밟고도 미안하다는 얼굴빛 없이 지나가고 마는 사람도 우리 ‘이웃’입니다. 자전거 탄 사람한테 욕지꺼리 내뱉고 위협운전하는 사람도 우리 이웃입니다. 돈 적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조촐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지내고 있는 터전에 포크레인 삽날을 밀어붙이며 ‘재개발-도시정화’를 하겠다는 공무원과 개발업자 사람과 시장과 군수 들도 우리 이웃입니다. 수십 수백만 신도를 거느리며 몸집이 커지기만 하는 교회 목사님도 우리 이웃입니다.

 열무 1500원어치를 사는데 떨이라고 하며 돈을 더 안 받고 1500원어치를 더 얹어 주는 저잣거리 아주머니도 우리 ‘이웃’입니다. 자전거 탄 사람이 앞에 있으면 살그머니 뒷등을 깜빡이면서 안전거리 마련하여 뒷차를 막아 주는 운전기사도 우리 이웃입니다. 아무 돈벌이가 되지 않아도 기꺼이 몸과 시간을 바쳐서 우리 삶터 구석구석 그늘진 곳까지 찾아와 땀흘리는 자원봉사 활동꾼도 우리 이웃입니다. 날마다 먼지 뒤집어쓰면서 헌책 하나 캐내어 꼼꼼히 손질한 다음 책시렁에 갖추어 놓으며 ‘좋은 책 알아볼 책손’을 기다리는 헌책방 일꾼도 우리 이웃입니다.


.. “피해자들은 평생 입 다물고 어둠 속에 숨어 울며 살았는데, 가해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고 잘살고 있는 거예요. 내가 살았던 이 더러운 세상을 내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발끈을 야물게 고쳐 매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  (박영란 / 59쪽)


 어젯밤 누군가 술 체한(‘술 취한’이 아닌 ‘술 체한’이라고 느낍니다. 술도 안 받으면서 꾸역꾸역 집어넣으니 몸이고 마음이고 온통 뒤틀려서 체하고 마는) 목소리로 고래고래 외치며 병을 집어던져 깨뜨리는 소리가 살림집까지 들려왔습니다. 아침에 길에 나가 보니 병조각이 그대로 있습니다. 술병 깨져 어지러진 이 골목길을 누가 치워야 할까요. 술병 집어던진 이는 자기가 한 짓을 떠올리고나 있을까요.


 〈3〉 우리들이 만나는 사람은


 한울노동문제연구소를 꾸리는 하종강 님은 대학교 강의도 나가지만, 무엇보다도 노동자들 삶이 한결 나아지기 바라는 마음으로 조각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며 사람을 만나면서 지냅니다. 쉴 틈이 있을까요? 글쎄, 쉴 틈이 있다기보다는, 당신 하는 일을 놀이처럼 느끼며 더 다부지게 뛰고 있지 싶은데.

 지난해부터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에다가 《철들지 않는다는 것》에다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내놓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 2006년 5월에 나왔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2007년 7월에 나왔으니 열넉 달 사이에 책 세 권입니다. 할 말이 많은 분일까요? 그동안 할 말을 가슴속에 묻어 두고 사셨던 분일까요?


.. 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조금이라도 진보적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태일기념관에 한번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태일 열사의 기념관을 그 모양으로밖에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진보운동의 수준이다. 그런 마당에 내가 낸 세금으로 박정희기념관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길을 걷다가도 가슴이 막힌다. 전태일기념관을 나라돈으로 번듯하게 지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  (156쪽)


 우리들이 들을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나눌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만날 사람은 누구이며, 날마다 부대끼거나 스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들일까요.

 명절날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한테 무엇이며, 한자리에 둘러앉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부모님하고, 딸아들하고, 사촌 오촌 육촌 칠촌 팔촌 들하고, 고향동무나 선후배하고, 우리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안부인사만 나누고 돌아서곤 합니까. 고향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로 나누십니까. 지금 우리들이 마음을 기울이거나 함께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어 머리를 맞대십니까.


.. 내가 전혀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활동가가 아니라, 망설이면서 노동운동에 끼어들었다가 그 경험을 평생 동안 짐으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활동 때문에 고통받으면서 열등감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우리의 활동 범위 밖에 있지만 여전히 역사의 주인인 사람들을 만나는 데는 실패했다. 어쩌다 어렵게 만나도 자신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많이 만나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가까운 동료나 친척에게조차 자신의 직업을 감추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차마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이댈 수가 없었다 ..  (337∼338쪽)


 하종강 님이 만나 도톰한 책 하나로 묶은 ‘우리 땅 노동자 이야기’들은, 한 분 한 분 곱씹고 되새겨 보면, 모두 우리 자신이요 이웃 이야기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우리 아이가, 우리 동무가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이니까요.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면서 우리 이웃입니다. 정규직으로 걱정없이 지내면서 연봉 1∼2억을 너끈히 받으면서 몇 억짜리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 또한 우리들이면서 우리 이웃입니다. 명절날 찾아뵐 분들한테 이 책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드릴까 합니다. (4340.9.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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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3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슴 아픈 동감입니다~~~~ 저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프레이야 2007-09-2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담아갑니다. 일깨워주시는 글 고맙습니다.
 



 어제 도서관을 찾아온 어느 분이 제게 묻습니다. 헌책방 가운데 책값 가장 싼 곳을 알려 달라고.

 “책값 싼 데 어디 있어요? 책값 싸다고 하면 탁 떠오르는 곳 있죠?” “무슨 책을 찾으시는데요?” “책값 가장 싼데요.” “글쎄, 책값이 싸다고 다 읽을 만한 책은 아닐 텐데요 …… 그러면 고물상에 가 보셔요.” “고물상에서도 책을 팔아요?” “헌책방 책이 고물상에서 많이 들어오니까요. 다만, 골라서 살 수는 없고 뭉텅이로 사야지요.” “고물상이 어디에 있나요? 인터넷에 ‘고물상’이라고 치면 나오나요?” “글쎄요, 저는 고물상에 가 보지 않아서,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4340.9.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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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책 좀 골라 주라.” “무슨 책?” “아이들 책.” “마, 아이들 책은 니가 공부해서 사 줘야지.” “내가 아이들 책을 어떻게 알아. 너가 많이 봤으니 좀 추천해 줘.” “어른인 네가 보는 책이라면 추천도 해 줄 수 있지만, 아이들이 보는 책은 추천해 주지 못하지.” “그냥, 아무 책이라도 추천해 줘.” “자식, 생각해 봐라. 너는 애인하고 어디 놀러갈 때 그냥 아무 데나 가냐. 또 애인한테 선물 사 줄 때 아무거나 사 주니.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려고 하는데 아무 책이나 사 줄 수 없지. 또 대충 추천하는 책을 사 줄 수도 없고. 애인한테 선물 사 주듯이, 네가 손수 공부해서 찾아서 사 줘야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책 사 주면 될까?” “네가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니? 그럴 바에야 그냥 돈으로 주는 게 나아.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참으로 아이들한테 좋은 책일까? 아이들 마음밭을 무너뜨리는 책이지는 않을까? 잘 생각해 봐. 그리고 네가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고 생각해 봐. 너는 네 아이한테 어떤 책을 사 읽힐 생각이니? 네가 먼저 살펴보고 좋은지 나쁜지를 가려낼 수 있은 다음, 네 아이한테 책을 읽혀야 하지 않겠어? 이 일이 쉽지 않겠지만, 아이를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대충 해서는 안 되겠지.”

 고등학교 적 동무가 제 일터인 도서관으로 찾아왔습니다. 선물할 어린이책을 사러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온 김에 저한테 ‘무슨 책을 골라 주면 좋을까 물어 보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제가 동무녀석한테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 책이 좋다고 할 책이든 안 좋다고 할 책이든 네 스스로 골라라’입니다. 어쩌면 동무녀석은, 대충 전집 한 가지라든지, 낱권책 몇 가지를 골라 줄 수 있겠지요. ‘요새 아이들이 많이 본다는 책’을 추천받아서 사 줄 수 있고요. 그러면 동무녀석이 사다 준 그 책을 받아드는 아이는 얼마나 좋아할까요. 얼마나 반길까요.

 “아이들 책은 함부로 추천해 줄 수가 없어. 선물을 받을 아이는 몇 살이니?” “초등학교 5학년쯤.” “음, 초등학교 5학년이라. 그래, 아이들한테 책을 추천해 주기 어려운 건, 같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해도 눈높이나 지식이 달라. 어느 아이는 책을 좀더 많이 읽었을 테고 어떤 아이는 아직 책을 잘 못 읽을 수 있지. 아이마다 취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잖아. 이쪽에 있는 책들은 모두 그림책인데, 어떤 책은 지식 소양을 길러 주는 책이고, 어떤 책은 생태ㆍ환경을 이야기감으로 삼은 책이야. 그 아이한테는 동화책이 알맞을 수 있는데, 어느 동화책은 철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기도 하고 어느 동화책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담지. 책마다 성격이 다르고 갈래가 다르기 때문에, 그 아이한테 맞춰서 그 아이를 잘 생각하면서 골라야 한다고. 그러니 아이들 책은 아무나 추천해 줄 수 없고, 아이들 부모가 손수 공부해서 하나씩 사 줘야 해.” (4340.9.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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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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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 글ㆍ그림 : 이세 히데코
- 옮긴이 : 김정화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7.9.10.)
- 책값 : 1만 원



― ‘버려진 책’이 가꾸어 준 내 삶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덮으면서


 

 〈1〉 내가 좋아하는 책


 지난 월요일, ‘신구문화사’ 손바닥책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의 전도자 6인》(1976)을 서울 돈암동 헌책방에서 찾았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찾고 있던 책을 이제야 만납니다. 진작 판이 끊어진 책이기 때문에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이런 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웬만한 책은 다 갖추었다는 국립중앙도서관에도 《기독교의 전도자 6인》은 없습니다.

 지난 화요일, 라디오 역사를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주는 《a pictorial history of RADIO》(Citadel press,1956)를 서울 홍제동 헌책방에서 보았습니다. 나라밖에서 라디오가 처음 만들어지고 방송이 퍼지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우리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만, 나라밖이든 나라안이든, 라디오라는 물건이 만들어지고 라디오 방송이 우리 삶으로 파고든 이야기를 살필 수 있는 책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교보문고에서 이런 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국립중앙도서관에 이런 책이 있을까요.
 

― 아저씨가 만들어 주신 책은 두 번 다시 뜯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식물학 연구자가 되었다. (56쪽)


 지난달, 《토트 티아메르-청소년의 순결》(가톨릭출판사,1963)이라는 책을 서울 연세대 앞 헌책방에서 장만하여 읽고 있습니다. 책도 묵었고 줄거리도 묵었지만, 처음 나온 지 마흔 해가 지난 이즈막에 읽어도 고개를 끄덕거릴 대목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산시선》을 읽어도, 《목민심서》를 읽어도 그렇습니다. 《북학의》나 《을병연행록》을 읽어도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파브르 곤충기》뿐 아니라 《파브르 식물기》도, 시튼이 쓴 동물 이야기도 세월이 묵을수록 빛을 더해 간다고 느낍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이나 《모래 군의 열두 달》 또한 앞으로 쉰 해나 백 해가 지난다 하더라도 책상맡에 놓고 짬짬이 다시 돌아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소피의 나무들”. 책 제목을 새롭게 붙였네! 아카시아 그림은 표지로 다시 태어났고, 내 이름이 그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53쪽)


 지금은 책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저입니다. 책을 엮고 책을 쓰는 일을 하는 한편, 책을 가꾸고 지키는 도서관 일을 합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헌책방을 하나둘 찾아다니면서 만나는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조차 없는 책이 제법 되고, 앞으로 세월이 좀더 지나면 ‘헌책방에서마저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책’도 꽤 되겠지요. 이런 책들을 돈 값어치로 셈한다면 ‘값나가느니 값 안 나가느니’ 할 수 있겠지만, 책을 장만할 때 돈이 들어간다뿐, 책을 읽을 때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가 꾸리는 도서관에 와서 책을 구경하거나 읽는 분들한테도 돈이 들어가지 않겠지요.

 1979년 4월에 나온 잡지 《현존》 100호를 돈으로 따져야 할까요.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포토그라피》라는 사진잡지를, 《사진문화》라는 사진잡지를 돈셈으로 헤아려야 할까요. 종로서적이 무너지면서 함께 사라진 책들 가운데 하나인 《인권운동》이라는 조그마한 책을 값나가는 보기드문 책으로 쳐야 할까요. 삼성출판사에서 1970년대에 손바닥책으로 엮어낸 ‘한국문학전집’을 돈값에 따라 바라보아야 할까요.


― 책에는 귀중한 지식과 이야기와 인생과 역사가 빼곡히 들어 있단다. 이것들을 잊지 않도록 미래로 전해 주는 것이 바로 를리외르의 일이란다 ……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아.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45쪽)


 ‘우라느스키’라는 분이 쓴 《무신론자의 바이블》(정음문화사,1984)을 읽으니,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 병을 고치는 것도, 노후의 생활도 자기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해 나가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신체 장애자의 경우도, 힘껏 공부해서 가능한 한 자기의 힘으로 살아야 하리라. 사는 권리란, 자기 자신의 의사와 능력으로 사는 권리이며, 타인에게 의뢰하며 사는 권리가 아니다.(142쪽)”라는 대목이 보입니다.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다가, 문득 ‘우라느스키’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여 인터넷 찾아보기를 해 봅니다. 하지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책에도 소개가 없고, 인터넷에서도 이이 발자취를 살필 수 없습니다.

 1960∼70년대에 우리 나라에 곧잘 소개된 ‘무샤고오지 사네아쓰’라는 일본 철학가 발자취 또한 인터넷 찾아보기로는 알아낼 수 없습니다. 1961년에 번역된 《젊은 날의 철학》(백문사)을 읽으면, “좋은 문학에 접하면 자기를 살리는 방법, 어떻게 하면 자기 완성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인간의 사는 목표를 볼 수 있게 된다.(29쪽)”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1961년에 이이 철학책 묶음이 손바닥책으로 여섯 권 나왔습니다만, 마흔 해 남짓 지난 오늘에 와서는 책은커녕 발자국조차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 “책이 이리 되도록 많이도 봤구나.  좋아, 어떻게든 해 보자꾸나.” “전 나무가 좋아요. 이 책엔 나무에 대한 건 뭐든 다 나와 있어요.” (24쪽)


 사람들이 저한테 “헌책방이 뭐 그리 좋아요?” 하고 묻거나 “헌책방에서 무슨 책을 볼 수 있나요?” 하고 묻거나 “헌책방에서 만난 보물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면, 제 책상맡에 있는 책을 휘 둘러보다가 요즈막에 장만한 책을 집어서 보여줍니다. “지금은 비록 판이 끊어진 책이거나, 출판사가 문을 닫아서 사라진 책입니다만, 세월이 흘러도 우리한테 즐거움을 안겨 주는 책이에요. 오히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빛이 나는 책이에요. 세상흐름을 잽싸게 옮겨타며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얻으려 하지 않은 책이라면, 지금은 새책방 진열대에서 밀려나 자취를 감추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헌책방에서 다시 빛을 보기 마련이에요. 저는 헌책을 보거나 새책을 보지 않고 그냥 ‘책’만 보고 있어요. 헌책방에서는 베스트셀러니 스테디셀러니 하는 이름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 책을 살필 수 있어 좋아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크게 칭찬을 하거나 북돋워 주네 하는 이름에 따라 책을 고르지 않을 수 있어 좋아요. 그 어느 평론가나 책소개꾼들도 알아채지 못한 책이라 하겠지요. 누구보다도 샛장수 아저씨들이 고물상에서 건져낸 책이고, 헌책방 일꾼이 솎아낸 책이에요.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그래서 헌책방 일꾼은 허파가 안 좋답니다. 어쨌든, 이분들은 책에 담긴 줄거리는 모르실 수 있으나, 누군가한테 꼭 쓸모가 있구나 느껴서 하나둘 그러모은답니다. 저는 이렇게 솎여진 책에서 제 삶을 가꿀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책을 가만히 살피면서 즐겨요. 더구나 주머니가 후줄근한 날에도 돈 몇 천 원이면 마음을 살찌우는 책 하나를 고맙게 얻을 수 있으니 좋지요. 책에 낀 먼지는 걸레를 깨끗하게 빨아서 박박 문지르거나 살살 쓰다듬으며 닦으니 더 좋아요. 깨끗한 책을 싫어하지 않아요. 조금 지저분해진 책을 깨끗하게 추슬러 주면서 겉보기를 넘어서는 속살을 읽을 수 있으니 사람을 보는 눈매에서도 겉보다는 속을 더 살필 수 있게 되잖아요.”


― 책방에는 새로 나온 식물도감이 잔뜩 있었다. “그렇지만 난, 내 책을 고치고 싶어.” (8쪽)


 누군가 묻습니다. “어릴 적부터 책 많이 보셨겠네요?” 싱긋 웃으며 대꾸합니다. “아니요. 어릴 적에 책이 어디 있어요. 다만,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여서 ‘교사용 문제집’은 잔뜩 얻어와서 숙제라며 안겨 주셨어요. 그 문제집 푸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푼 적은 거의 없어요. 밖에 나가 동무들하고 놀기 바빴는걸요. 그래도 교사 집안이라고, 또 형이 어릴 때에 똑똑해서 책을 읽힌다고 딱따구리 무슨 전집이 하나 있었고, 삼국지하고 한국역사 전집 들이 몇 가지 있었어요. 월부책장사한테 산 책일 테지요. 때때로 이 책들을 조금 들춰보기는 했지만, 형하고 저하고 가장 많이 본 책은 클로버문고 같은 만화책이었고(어머니 몰래 사서 모았습니다), 《소년중앙》이었어요. 《보물섬》은 돈이 없어서 빌려서 보았어요. 《소년중앙》에는 만들기 별책부록이 많아서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 꼬박꼬박 사서 보았지요. 몰래 모은 이 만화들을 어머니께서 동네 쓰레기통에 죄 갖다 버리셔서 하나도 안 남았지만요. 그러니까,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교 논술시험을 준비해야 하던 그때까지는 책하고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좋아요.”

 
 〈2〉 책은 나한테 무엇이 되었는가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에 나오는 ‘소피’는 를리외르 아저씨를 만난 덕분에 식물학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를리외르 아저씨 같은 사람도 없었고, 소피처럼 두툼한 식물도감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떠올릴 수 있던 어릴 적 제 책이라면, 어머니가 몇 차례 갖다 버리셨어도 다시 사고 또 다시 사서 갖추었던 《번데기 야구단》(까치) 같은 만화책입니다.

 글쎄, 뒤늦게 책을 깨닫고 지금은 책과 함께 살아가는 제가 된 바탕이 있다면, 아무래도 ‘책을 버리신 어머니’ 덕분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어머니로서는 ‘공부에 도움이 안 될 만화책’이어서 버리셨겠지요. 형과 저한테는 둘도 없는 보물이었을 테지만. 어머니가 책을 버리신 덕분에, ‘한 번 버려지면 다시 찾을 길이 없는 책’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때 그 만화책들이 버려지지 않았다면, 클로버문고뿐 아니라 수많은 1970∼80년대 만화책들이 잘 간직된 채로 부천만화박물관이라든지 어디엔가 바침책으로 드릴 수 있었겠지요. 또는 제가 인천에 연 도서관 책꽂이 한쪽을 아름답게 채우거나요.

 하지만, 형과 제가 없는 용돈을 10원짜리 하나까지 아끼며 사서 모았던 책이 버려졌기 때문에, 그것도 여러 차례 버려졌기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나이부터 다닌 헌책방에서 만난 책들을 좀더 애틋하게 돌보거나 바라볼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나는 헌책방에서 내 마음을 살찌울 책을 찾아서 읽으려 한다’는 매무새를, ‘내가 헌책방에서 만나는 이 책들을 이제부터는 하나도 버려지지 않게 잘 간직해서 내 딸아들, 또는 내 딸아들이 낳아 기를 딸아들과 그 뒤 사람들한테까지도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는 꿈을 가슴 한켠에 새길 수 있었지 싶어요.

 《월간 목회》 1978년 5월호 별책부록으로 나온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글쓴이는 이원수 님. 이 조그맣고 낡아빠진 책에 실린 이원수 님 동화는 ‘깨끗하고 반듯하고 큼직한 판에 글씨도 큰 새로 나오는 책’에 모두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1978년 어느 잡지 별책부록으로 당신 동화를 한데 그러모아 펴낸 이원수 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이 〈아버지와 아들〉이 좋습니다. 이원수 님은 머리말에 “나는 얘기를 하고 싶었읍니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내 마음속에 그냥 가두어 두고는 배길 수 없어 글로 쓴 것이 나의 동화들입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한참 암과 싸우며 시름시름 앓고 있던 이원수 님은, 아픔을 온몸으로 삭여내며 원고지를 꾹꾹 눌러 쓰셨습니다.

 동화 줄거리만 헤아리자면 요새 나오는 판으로 읽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저는 동화 줄거리만 얻고자 책을 읽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 묵은 책으로 굳이 찾아서 읽을 때에는, 이런 책들이 처음 나오던 때 느낌을 함께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헤아려 볼 수 있어요. 그때 이 책이 책방에 깔리며, 또 그때 사람들 손에 쥐어지면서 어떻게 다가갔는가를 가만히 톺아볼 수 있습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보물이 아닙니다. 늘 옆에 있는 고마운 지기처럼 살가운 동무입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오래되어 값나가는 보물이 아닙니다. 한결같이 고운 속살을 내보이면서 마음빛이 바래지 않도록 어깨동무를 해 주는 맑은 벗입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남 앞에서 뽐낼 만한 장서가 아닙니다. 오래도록 제 삶을 밝히고 가꾸어 주는 가운데, 제가 숨을 거두고 사라진 뒤에는 또다른 누군가한테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훌륭한 이슬떨이입니다.


 〈3〉 티끌 같은 아쉬움


 그림책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읽으면서, 또 보면서, 또 곰곰이 되새기면서 제 책삶을 하나하나 되짚습니다. 좋은 이야기와 생각을 두루 얻는 한편으로, 몇 군데 아쉽습니다. 무엇보다도 옮김말. 아이들이 볼 그림책인 만큼, 옮긴이는 아이들 말씨와 눈높이를 조금 더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오래오래 책과 가까이하기 바라는 마음이라면, 이런 책에 담기는 말과 글은 좀더 추스르거나 다독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눈에 뜨이는 아쉬운 글월을 몇 가지 뽑아서, 딱 한 가지로만 손질해 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한 가지로만 손질했지만, 저마다 다 다른 말씨를 살리면서 손질하여 다시 쓰면 더 좋겠습니다.


 ┌ 나무에 대한 건 뭐든 다 나와 있어요
 └→ 나무 이야기는 뭐든 다 나와 있어요

 ┌ 이 표지는 제 몫은 다한 것 같으니
 └→ 이 껍데기는 제몫은 다한 것 같으니

 ┌ 이 기계로 크기를 맞추는 거야
 └→ 이 기계로 크기를 맞춘단다

 ┌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빠뜨리셨어요
 └→ 그림이 있는 종이를 빠뜨리셨어요

 ┌ 아까 그림 속의 그 사람이야
 └→ 아까 그림에 그려진 그 사람이야

 ┌ 실의 당김도, 가죽의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선택도
 └→ 실 당김도, 가죽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고르기도

 ┌ 아버지 손은 마법의 손이에요
 └→ 아버지 손은 마법 손이에요



 “두 번 다시 뜯어지지 않는” “나만의 책”을 품에 안게 해 준 를리외르 아저씨는, 아이한테 책을 가꾸고 돌보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어린아이 스스로 살갗으로 느끼도록 이끌어 줍니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보던 책 줄거리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고, 또 알기 어렵겠지만, 당신이 손질하는 책을 보는 사람이 그 책을 아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읽어내면서 단단하게 굳어진 당신 손으로 책에 새 숨결을 불어넣었지요. 아이는 이 숨결을 느끼면서 자기가 아끼는 것은 책이 아니라 책에 담은 이야기임을 차츰 깨닫습니다. 부드러운 그림결로 두 사람 삶을 차분히 담아낸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이기에 여러모로 돋보입니다. 하지만, 책날개를 두 가지나 붙여서 만들어야 했을까 싶어 아쉽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 값으로 1만 원이나 붙게 한 만듦새는, 이 그림책을 그려낸 사람 마음까지 속깊이 헤아리지는 못한 듯합니다.

 찬찬히 적었어야 할 옮김 말투와 함께 ‘지나친 꾸밈새가 되어 버린 책날개나 만듦새’를 되짚거나 다스릴 수 있다면,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라는 그림책은 더 많은 아이들한테 살뜰한 벗으로, 또 지기로, 또 길동무로, 또 이웃 아주머니나 할아버지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0.9.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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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2007-10-05 11:49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 번역문장으로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내용에 마구 공감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