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매서 안 더워? - 마음의 국경을 허무는 따뜻한 이야기
박채란 지음, 이상권 그림 / 파란자전거 / 200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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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까매서 안 더워?
- 글 : 박채란 / 그림 : 이상권
- 펴낸곳 : 파란자전거(2007.8.1.)
- 책값 : 8500원


― 이주노동자 아이들도 웃고 싶다
: 《까매서 안 더워?》를 읽으며


 〈1〉 우리 삶을 바꾸지 않고서야



.. 국경 없는 마을.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불린다는 걸 안 건 몇 달 전 일이었다. 아마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이 한 동네에 모여 살아서 생긴 이름일 거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듣고 입을 삐죽였다. 마을에 국경이 없으면 뭐 해? 마음에 담을 쌓고 사는데 ..  〈11쪽〉


 우리 나라에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우리가 쓰는 수많은 물건을 더는 값싸게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마음이 좀더 값싼 물건으로 쏠린다지만, 우리가 써야 하는 물건은 ‘값만 싼’ 물건이 아니라 ‘자기한테 쓸모있는’ 물건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값이 싸다고 아무 물건이나 쉬 사들일 수 없는 노릇이고, 값이 비싸다고 하여 꼭 써야 할 물건을 안 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쓸 물건은 우리 손으로 장만해서 쓸 때가 가장 좋습니다. 우리 밥상에 차릴 먹을거리 또한 우리 손으로 우리 땅에 심고 가꾸고 거두어서 손질해서 올려야 가장 좋고요. 지금 우리들은 밥이고 옷이고 집이고 손수 마련하기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찾은 다음, 돈으로 모두 풀어내는 삶을 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물건을 안 사면, 장을 안 보면 옴짝달싹 못하겠지요. 마음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하거나 걱정할 수 있겠지만, 몸은 벌써부터 이주노동자가 헐값에 오랜 시간 일하지 않으면 우리 삶을 꾸릴 수 없게 매여 있는 셈입니다.


.. “내가 덥다는데 니가 무슨 참견이야? 넌 까매서 안 더운지 몰라도 난 더워! 그러니까 조용히 해!” 순식간에 동규의 얼굴이 굳었다. 정준이 얼굴도 굳었다. 자기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하지만 주워담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분위기가 싸해지고 한 시간 같은 일 분여가 지나갔다. 동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 난 좀 까매서 더위를 안 타나 보다. 그거 좋은 의견인데. 만물노트에 적어 놔야겠네. 까만 사람은 더위를 안 탄다. 좋았어!” 동규는 특유의 재치로 다시 상황을 수습했다 ..  〈106∼107쪽〉


 ‘국경 없는 마을’이 허울뿐인 ‘국경 없는’ 마을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눈길과 삶 어느 곳에서도 국경이 없는 마을이 되자면, 이주노동자를 마주하는 우리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주노동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앞서, 우리들은 우리 이웃을 깔보고 괴롭히고 못살게 굴고 등처먹었습니다. 돈이 없다고, 이름이 없다고, 힘이 없다고.

 못생긴 아이들은 손가락질을 받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늘 꾸지람입니다. 아파트 올려세우는 재개발을 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 삶터를 죄 쓸어내고 밀어내고 쫓아냅니다. 아파트 올려세운 뒤에는, 자기들 집값 올라가는 소리에 입이 찢어지고, 이웃사람들 주머니가 홀쭉해지는 소리에는 귀를 막습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영어 미친바람은 불지언정, 버마와 네팔과 스리랑카와 파키스탄과 몽골과 티벳과 카자흐스탄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문화와 삶을 고이 지키면서 한국땅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아 주는 따순 바람은 불지 못합니다.


.. 몽골의 아름다운 푸른 초원을. 그리고 그 초원 위에 자리잡은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를. 초원 위를 뛰노는 말을.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들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성완이의 가슴이 조금씩 열렸다. 그림이 다 완성되자 몽골의 너른 초원이 성완이의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사실 몽골에 있을 때 성완이가 살던 곳은 울란바토르였다. 그곳은 도시다. 성완이가 그린 푸른 초원은 성완이 자신도 두어 번밖에 가 보지 못한 할아버지 댁 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  〈67쪽〉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길은,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 입맛과 생각에 맞추는 길입니다. 한국 아이들 스스로 이주노동자 아이들을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 어른들이 한국 어른들과 가까워지는 길은, 이주노동자 어른들이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문화와 사회에 젖어들어 고개를 숙이는 길입니다. 한국 어른들 스스로 이주노동자인 어른들을 ‘내가 일했을 때와 똑같은 일삯을 받아야 하는 사람(동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코시안’이라는 말을 지어냅니다. ‘코리안 + 아시안’으로(88쪽). 미국말로 적으니 무언가 그럴듯하지만, ‘튀기’라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요. 더구나, 한국사람들은 모두 ‘아시아사람’이기도 한데, ‘코리안 + 아시안’이라는 말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우리 겨레는 ‘단일겨레’라고 하지만, 제 나라 말과 글을 업신여기고 미국 말과 글을 높이 우러르는 우리들이 어떻게 단일겨레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말과 글뿐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입고 쓰고 누리는 모든 삶과 문화는 미국이나 유럽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세계화’를 말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더 많이 가지거나 움켜쥔 이들이 살기 좋은 한국’을 바랄 뿐입니다.


 〈2〉 흔한 이야기로 머물고 마는구나


 《까매서 안 더워?》(파란자전거)는 짤막한 이야기 셋을 묶습니다. 경기도 안산, ‘국경 없는 마을’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또는 일어났던 이야기 셋입니다. ‘국경 없는 마을’이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이나 네덜란드쯤 되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라면, 《까매서 안 더워?》 같은 책은 나오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우리 삶만큼이나 비뚤어져 있는 생각을 건드리는 《까매서 안 더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누구나 누려야 할 사람권리를 짓밟히면서 어릴 적부터 아픔과 생채기만 가득 쌓이는 아이들 삶을 보여주는 《까매서 안 더워?》입니다. 우리 나라는 이주노동자를 옥죄는 나쁜 제도와 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까매서 안 더워?》는 또다른 모습으로 또다른 곳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눈에 뜨이리라 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똑같은 노동자이지만, 누구는 정규직으로 삼고 누구는 비정규직으로 삼으며 갈라놓습니다. 똑같은 노동자이지만, 누구는 낮은대접을 누구는 높은대접을 받습니다. 이제 교과서에는 ‘빈부차별과 계급차별이 없다’는 말은 안 실리겠지요? 돈있는 사람, 학식있는 사람, 힘있는 사람이 떵떵거리거나 우쭐거리는 우리 세상이니까요.

 그런데, 날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어린이책에서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이들한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일 수 있고, 아이들한테 굳이 아프거나 어두운 우리 사회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삶을 들여다보면, 아픔과 생채기와 어둠과 그늘이 참 짙습니다. 많이 누리는 집안에서는 많이 누리는 집안대로, 누릴 것이 없는 집안에서는 누릴 것 없는 집안대로 아이들은 골병을 앓아요.

 학교에서 싱그러운 배움을 하나하나 받아안으며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인가요? 장애아이는 제도권학교조차 ‘취학면제’ 딱지를 받으며 발도 디딜 수 없는 가운데, 참 사람됨을 익히도록 이끌기보다는 갖가지 지식조가리를 아이가 더 많이 머리속에 담는 데에 마음쓰는 우리 형편입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잘하는 아이대로, 못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대로 괴로운 교육 얼거리입니다. 이런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 딸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끼어들게 된 아이들 삶은 어떠할까요. 왜 우리 어린이문학가들은 이런 이야기를 문학으로 담아내어 펼치지 못할까요.

 《까매서 안 더워?》는 지금 아이들이 속깊이 헤아리며 자기 삶과 생각을 추스를 수 있도록 이끌어 갈 글감을 잘 짚어낸 대목에서 반갑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세 아이 이름을 ‘한국 아이 이름’으로 바꾸고, 그냥 한국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따돌림이나 괴로움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낼 때하고 무엇이 다를까요.

 이주노동자 아이들이 자기들이 부딪히는 문제를 풀어갈 길은 자기 스스로 이를 앙다물고 너스레를 떨며 굽신거리는 길밖에 없을까요. 한 걸음 물러나는 사람이 이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한쪽 뺨을 맞은 예수님은 다른 뺨을 내민다고 하지만, 이주노동자 아이들은 하느님과 같은 참을성과 견뎌냄을 키우면서, 이 땅 한국 아이들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이 땅 한국에서 부모와 교사로 있는 사람들은 멀뚱멀뚱 있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술술 풀리게 될까요. 동화책 한 권에서 이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습니다만, 《까매서 안 더워?》에 실린 작품 셋을 마무르는 고빗사위가 같은 얼개로 되어 있는 대목은 아쉽습니다.

 책앞에 ‘이주노동자와 우리 사회’ 문제 이야기를 추천글과 글쓴이 말로 짤막하게 다루는데, 책뒤에 ‘이주노동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코시안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 곁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같은 이야기를 한두 쪽에 걸쳐서 실어 주면 어땠을까요.

 책 바깥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 책에는 차례가 안 붙었습니다. 그냥 죽 읽으면 되기는 하지만, ‘한 권짜리 통 이야기’가 아니라 ‘짧은 작품 셋을 따로 써서 엮은 이야기’라면, 차례를 달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본문 편집을 할 때, ‘좌우 정렬’이 아닌 ‘왼쪽 정렬’만 해서, 본문 오른쪽은 들쑥날쑥입니다. 오른쪽이 들쑥날쑥 되면 책을 읽기에 안 좋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읽을 책임을 헤아려야지요. 다음으로 빈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글씨를 조금 더 키우고 줄간격을 넓힌다든지, 한 쪽에 글자를 조금 더 넣는다든지, 그림을 키워서 한쪽 면이나 두 쪽을 통틀어서 넣든지, 쪽수를 줄이고 책 판을 줄여서 조촐하고 자그마한 판으로 엮든지 했다면 한결 나았을 텐데요. 금세 읽어낼 만큼 길이가 짧은 작품 셋을 모은 책을 억지로 120쪽까지 늘렸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습니다. 그래서 책값 8500원이 무척 비싸게 느껴집니다. 《까매서 안 더워?》에 담아서 들려주는 줄거리가 우리 땅에서 따돌려지고 뒤로 밀려나는 ‘아픈 사람들 자그마한 이야기’라 한다면, ‘책꼴과 책엮음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며 얌전하게 고개숙이는 작고 수수한 짜임새’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단순 오탈자가 아홉 군데 보입니다(46쪽, 52쪽, 62쪽, 64쪽, 65쪽, 70쪽, 72쪽, 74쪽, 99쪽). 국어연구원 맞춤법이나 교과서 맞춤법으로 더 꼼꼼히 살피자면, 바로잡거나 추슬러야 할 대목이 더 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한편, 글쓴이 박채란 님이 더욱 마음써야 할 글쓰기 문제가 있어요. ‘저녁 식사 시간’, ‘기분이 별로야?’, ‘허기가 밀려왔다’, ‘12일로 정해졌어요’, ‘말을 합쳐’, ‘패러디해서’, ‘과묵하게’, ‘친구들을 향해’, ‘멤버’, ‘티나의 잘못된 존대법’, ‘흰 피부의 아이들’ 같은 대목은 깨끗하고 손쉬운 우리 말로 다듬어 주면 좋겠습니다. ‘몽골말’이라고 했다가 ‘몽골어’로도 나오며 뒤죽박죽인 말씀씀이는 하나로 가다듬어야겠지요.

 좋은 글감을 흔한 이야기에 머물게 한 대목이 아쉽지만, 다음 작품을 기다려 봅니다. 별 다섯 만점에서 셋을 주겠습니다. (4340.8.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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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디 워〉


 어떤 분들은 《미국의 송어낚시》(중앙일보사)라는 소설이 훌륭하다고 합니다. 하도 그런 말이 많아서 저도 한 번 사서 읽어 봅니다. 흐흠,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참 지루합니다. 책장이 잘 안 넘어갑니다. 그예 읽다가 읽다가 지쳐서 읽기를 그만두고 책꽂이에 꽂아 둡니다.

 몇 해 앞서부터 《파브르 식물기》(두레)를 야금야금 읽습니다. 한꺼번에 다 읽기에는 아쉬워서. 성철 큰스님 말씀모음(장경각)을 지난주부터 한 권씩 사서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거의 눈길을 안 둔 책이었는데, 예전에 눈길을 두며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속뜻을 잘 읽어냈을까 싶군요. 이제 와서 읽으니 딱 좋습니다.

 며칠 앞서 《안톤 카이투스의 모험》(내일을여는책)을 다 읽었습니다. 책을 덮으며 후유 한숨이 나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헤아리는 마음이 바다처럼 깊고 너를 때라야 비로소 이만한 작품을 온몸으로 써낼 수 있네요. 일본 교사가 쓴 《교실 일기》(양철북)를 읽으며, 야누쉬 코르착 같은 사람은 나라마다 겨레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아이들과 부대끼고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나라에는 어떤 야누쉬 코르착이 있을까요.

 정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한테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 같은 책이 피와 살이 될 수 있을까요. 그저 그런 책이 될는지, 아니면 썩 읽고 싶은 마음이 안 들 책일는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한 표 권리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최선도 차선도’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한 표 권리는 ‘차선이 아닌 대통령이 되어야 할 만한 진짜 대통령감’한테 쓰고 싶습니다. 죽는표가 어디 있습니까.

 《슈베르트》(신구문화사)를 읽으면서 올해 제 나이 서른셋이란 얼마나 많은 나이냐고, 지금 나는 얼마나 내 하고픈 일을 하며 살고 있느냐고 묻게 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행복한만화가게)를 읽는 동안 ‘똑똑하고 용기 없기’보다는 ‘똑똑하지 않더라도 용기 있게’ 사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 되묻습니다.

 《광고와 사진 이야기》(눈빛)를 읽으며, 이만한 줄거리로도 사진 이야기를 써내는 세상이라면, 나도 사진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쓸 수 있겠네 하고 주먹을 불끈 쥡니다. 《곤혹한 비평》(작가들)을 읽는 내내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이 이 책을 써낸 사람 이름을 알까? 김현, 김우창, 김윤식, 김병익 같은 사람들 비평은 읽어도 이 책을 써낸 사람 비평을 읽으려 할까?’ 하는 물음표가 그치지 않습니다.

 《슬픈 미나마타》(달팽이)를 읽으며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눈물이 핑 돕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미나마타’ 역사를 숨기려 한다는군요.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에도 ‘온산병’이라는 공해병이 있습니다만, ‘온산병’이 무엇인지 ‘온산’이 어디에 붙은 마을인지 아는 분이 몇이나 될는지.

 영화 〈디 워〉를 보았습니다. 보름쯤 되었지 싶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참 좋았습니다. 재미있어서 웃기도 하고 엉성해서 웃기도 했습니다. 후줄근한 연기와 짜임새없다고 느껴지는 줄거리였지만, ‘더 깊이 무엇인가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재미나게 영화 하나 보며 즐겁게 살자’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디 워〉는 〈디 워〉였고, 〈티라노의 발톱〉은 〈티라노의 발톱〉이었으며, 〈우뢰매〉는 〈우뢰매〉였습니다.

 영화 〈디 워〉를 보고 싶으면 보고, 보고 싶지 않으면 안 보면 되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좋았다면 그 좋은 마음을 잘 간직하고, 보고 난 느낌이 영 꽝이었다면 아쉬움과 모자람을 잘 곰삭이면 될 텐데. 하지만 어떤 책을 주머니돈 털어서 사서 읽었는데, 글쓴이 생각이나 책 짜임새가 참 후줄하고 형편없었을 때에는, 남들이 이런 책을 사서 보느라 헛돈과 헛시간 날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비판 어린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한편, 내가 느끼기에 후줄근하고 형편없는 책이라 해도, 이 책 하나를 보며 가슴이 벅차거나 따스해지는 분도 있겠지요. 심형래 감독은 다음에 어떤 영화를 찍고 우리 앞에 찾아올까요. (4340.8.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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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피가 자꾸 난다. 잠을 못 잤나? 고된 일을 했나? 글쎄, 마감글을 하나 써야 하는데, 썩 내키지 않는 책을 소개하는 글을 억지로 써야 하다 보니 머리가 찌뿌둥하다. 하루하루 먹고살 걱정을 하노라니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골치가 아프다. 줏대를 지키면서 살기란 보통 일이 아니구나. 줏대보다도 마음을 먼저, 몸을 먼저 지켜야겠다. 마음과 몸이 무너진 다음에 줏대를 지켜 보아야 어디에 쓸까. (4340.8.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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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켁.. 대한서림 찍은 사진이 없네요.. ㅠ.ㅠ 대한서림 옆 동인서관 깃든 건물 옆 전당포 찍은 사진만 있구... 이따가 대한서림 나가서 건물 사진 좀 찍어 놓아야겠군요. 에궁....)


 책으로 보는 눈 10 : 동네 책방이 된 대한서림

 도서관 자료를 갈무리하다가, 제가 고등학교 때 챙겨 놓았던 ‘도서상품권 홍보책자’ 하나를 보았습니다. 1991년에 인천에서도 도서상품권을 쓸 수 있게 되었다면서, 인천에서 가장 컸‘던’ 새책방 〈대한서림〉에서 내놓은 책자입니다. 책자 사이에는 “대한서림 창립 36주년 기념 특별회원을 모집합니다”라는 말을 큼직하게 적어 놓은 안내글도 있습니다. 이 안내글이 1991년 것이니, 책방 〈대한서림〉은 어느덧 52해라는 세월을 인천에서 책을 나누어 왔다는 소리가 됩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걸어서 동네 나들이를 하노라면 학교 앞을 으레 지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초중고등학교 앞을, 또는 대학교 앞을 지나가면서, 학교 앞 문방구와 가게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간판이며 유리문이며 진열장이며 예전 것 그대로 간직하며 꾸려 가는 곳이 많은 가운데, 지난날 흔히 찾아볼 수 있던 동네 책방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도 꿋꿋하게 책살림 꾸리는 곳이 제법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인천에도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새끼가게가 어김없이 들어온 탓에 중간 크기 책방과 작은 책방은 씨가 마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대한서림〉에 가서 《김교신 전집》 가운데 4권 하나를 산 다음, 나머지 책을 주문해 놓았습니다. 고른 책을 들고 돌아나오며, 〈대한서림〉 건너편에 있는 〈동인서관〉 안쪽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주안 나들이를 할 때 스치고 지나가는 〈시민서림〉과 〈동아서림〉을 헤아려 봅니다. 모두들 인천에서는 내로라 할 만큼 컸‘던’ 곳이었는데, 어느덧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와 견주어 ‘작은 책방’, 말 그대로 동네 책방이 되었구나 싶습니다.

 그래, 이렇게 동네 책방이 되고 만 〈대한서림〉을 찾아가느니 넓고 시원하고 책 가짓수도 훨씬 많다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로 가는 분들이 늘겠지요. 마일리지도 알뜰히 쌓이고 책 보는 재미도 있으시겠지요. 그러면, 우리가 ‘큰’ 책방에 가서 구경하거나 골라드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셈틀로 손가락만 또닥거리며 인터넷책방으로 주문하여 집에서 읽는 책은 ‘무슨 이야기를 담은’ 책일까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잡지를, 《산에서 살다》나 《야생초 편지》 같은 책을, 《서준식의 옥중서한》이나 《즐거운 불편》 같은 책을, 《스핑크스의 코》나 《수달 타카의 일생》 같은 책을, 《오카방고의 숲속학교》나 《우리 옆의 약자》 같은 책을 ‘큰’ 책방이나 ‘인터넷’책방에서 사들이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가 책으로 읽어서 얻는 ‘좋다는 이야기’와 ‘훌륭한 깜냥’과 ‘살뜰한 슬기’를 머리속에 가두어 두는 지식으로만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나요.

 서울에서 지낼 때 자주 찾아가던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에서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를 사서 읽었습니다. 며칠 앞서 《슬픈 미나마타》를 주문해 놓았습니다. 대학로 인문사회과학책방 〈이음아트〉를 찾아가서 《소금꽃나무》를 사서 읽고 있으며, 《일중독 벗어나기》와 《누나의 오월》도 감칠맛나게 읽고 있습니다. (4340.7.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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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핫... 앞서 올린 묶음글 제목을 고치다 보니까, 애써 써 놓고 안 올려놓은 글이 있었네요.

^^;;; 바보팅이....






 책으로 보는 눈 5 : 책 한 권을 한 해 동안


 아침에 뒷간에서 똥을 누며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다빈치,2001)라는 책을 읽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사랑을 받는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나온 지 여섯 해가 지난 지금 읽어도 마음에 와닿는 줄거리가 많습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가운데 한 사람인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부족 토박이인 안토니오 할아버지한테 여러 가지 옛이야기와 세상이야기를 듣고는 자기가 느끼고 깨달은 생각을 붙여서 엮어낸 책입니다.

 어젯밤 잠들기 앞서는 《새만금은 갯벌이다》(한얼미디어,2006)라는 책을 잠깐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읽기보다는 작은제목을 보며 눈길이 가는 꼭지부터 먼저 읽어 나가고 있습니다. 구경꾼이 아닌 이웃으로서, 또 바로 자기 자신이 새만금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또 지금 이 나라에서는 어디에 발붙이고 있어도 새만금 사람들처럼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자기 삶터에서 쫓겨나고 있음을 깨달으며 펼쳐 내려가는 이야기책입니다.

 그젯밤 잠들기 앞서는 《우리 청춘의 조선》(사계절,1988)이라는 묵은 책(판이 끊어졌음)을 졸린 눈 비벼가며 읽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조선에 군복무하러 들어온 일본 젊은이가 한국땅에서 따순 사람들 마음을 느끼고 노동자가 되어 밥벌이를 하는 동안 자연스레 노동운동에 몸담게 된 이야기를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읽으면서 때때로 눈물이 맺힙니다.

 조금 앞서 낮밥을 반 그릇 먹었습니다. 반 그릇으로도 얼추 배가 든든해지며 졸음이 쏟아집니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도서관 갈무리를 하고 글쓰고 걸레 빨고 하다 보니 고단합니다. 잠깐 드러누워 허리를 펴 주어야겠네요. 그래도 눈에 힘을 조금 더 주고 책 한 줄이라도 읽을 생각입니다. 음,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 《김광식의 민주기행, 김광식의 아시아기행》(삶이보이는창,2004)을 읽어 볼까. 《슈베르트》(신구문화사,1977)를 읽어 볼까. 《무식하면 용감하다》(행복한만화가게,2006)를 읽을까. 웬만한 책들은 몇 시간 바짝 숨을 모아서 읽어제끼기보다는, 적어도 한두 달, 으레 서너 달, 거의 대여섯 달에 걸쳐서 조금씩 맛보면서 읽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다 읽어 버리면 ‘읽기는 빨리 읽어도, 잊기도 금세 잊구나’ 싶거든요. ‘읽기는 더디게 읽어도, 오래오래 마음에 남아 제 앞길을 밝혀 주는’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 겹치기가 되어도 열 쪽이나 스무 쪽, 때로는 대여섯 쪽만 읽은 뒤 책을 덮곤 합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 하나 진도를 한 해에 걸쳐서 나가듯, 책 한 권 읽을 때에도 거의 한 해라는 시간을 헤아리며 읽어 버릇하고 있습니다. (4340.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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