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 자기 돌봄 5
변택주 지음, 이승열 그림 / 원더박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푸른책 / 숲노래 청소년책 2025.5.20.

푸른책시렁 186


《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

 변택주 글

 이승열 그림

 원더박스

 2025.4.3.



  《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를 읽었습니다. 얼핏 여러 우리말을 보드라이 짚으려고 했구나 싶지만, 자꾸만 샛길로 빠지더군요. 왜 이렇게 샛길로 빠지는지 아리송하고 안타깝습니다. 다만, 하나는 아주 또렷합니다. 밑동과 뿌리를 짚지 않을 적에는 그만 겉모습에 사로잡힙니다. 속말과 속빛을 헤아리고 바라보려고 할 때라야 숨결과 숨빛을 품습니다.


  우리말을 우리말로 맞아들여서 배우고 익히려면 우리말을 살필 노릇입니다. 우리말을 우리말로 안 맞아들인다면, 엉뚱하게 여기저기 빠지거나 새면서 헤맵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를 쓰신 분이 부디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장만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언제나 수수하게 쓰는 가장 쉬운 낱말이 어떻게 태어나고 만나고 얽혀서 뜻과 결을 지피는지 짚을 때라야, 비로소 열세 살하고든 서른세 살하고든 예순 살하고든 마음을 가꾸는 말빛을 나눌 수 있습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에서 잘못 짚거나 샛길로 빠지거나 엉뚱하게 나아간 대목이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데, 다 짚거나 다룰 수는 없기에, 몇 가지만 짚어 놓습니다.


+


나는 동무가 동그라미나 동아리처럼 동그랗게 어우러진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받아들여. (40쪽)

→ 동그랗게 맺기에 ‘동그라미’에 ‘동아리’인데, 작을 적에 ‘동글다’이고, 클 적에 ‘둥글다’이다. ‘둥그러미’에 ‘둥지·둥우리’가 한동아리이다. 가볍게 돌고 또 돌아간다면, 넓게 펴듯 ‘둘러보’고 ‘두른’다. 가까운 사이에서는 ‘동무’를 이루고, 너른 사이로 ‘둘레’를 아우르니, 너랑 내가 먼저 ‘둘’이서 ‘두레’를 편다. 둘러볼 줄 안다면, 둘러싼다. 두르면서 때때로 에두르는 먼길을 나서기도 한다. 빙그르르 두르거나 돌면서 ‘모’ 하나 없이 일어서고 피어나고 깨어난다. 뾰족하니 ‘모’이지만, 그래서 ‘모시’가 ‘못’처럼 솟는데, 벼포기를 하나하나 ‘모(볏모)’로 심고, 이러한 모을 하나로 두려고 하니 ‘모으다(모이다)’라 한다. 모으면 가까이 있다. 모으려는 마음을 따뜻하게 여미는 사이로 지내기에 ‘동무’이기도 하다.

서로 동글동글 어울리면서 ‘도르리’와 ‘도리기’를 한다면, 함께 둥글동글 모으거나 모여서 일하는 ‘두레’를 하면서 살림살이를 차곡차곡 ‘둔(두다)’다. 도르리도 두레도 ‘돕는’ 길이다. 서로 도우면서 돌아볼 수 있으니, 돌보는 길과 보살피는 손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두런두런 수다를 한다. 돕는 손길과 돌보는 눈길은 천천히 돋는다. 잎이 돋듯 도드라진다. 즐겁게 주고받는 말이 돋보이듯 귀에 쏙쏙 들어온다. 모으고 무리지어 즐겁고 넉넉히 흐르는 결이기에 ‘물’이다. 동무란 그야말로 한마음에 한몸으로 함께 나아가려는 또래라고 여길 만하다.



‘반기다’의 말뿌리인 ‘반-’에는 밝다는 뜻이 담겨 있어. (64쪽)

→ ‘반기다’는 ‘반갑다·반하다·반색’하고 나란하다. ‘반’은 ‘반반하다·반듯하다·바르다’로 잇고, 이 말씨는 ‘반짝·번쩍’을 지나서 ‘밝다·밤’하고 맞물린다. ‘바’는 ‘바다’처럼 ‘바닥’을 이루어 뭇숨결이 깨어나고 태어나고 자라나는 ‘바탕’이면서 ‘밭’을 나타낼 뿐 아니라, 뭇숨결이 살아가고 살림하고 사랑하는 ‘밭은’ 빛인 ‘바람’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바·밧줄’로 굵고 단단하게 잇는다. ‘받치’는 구실이요, 우리 몸에서 ‘발’과 같다고 할 만하다. 바다와 바람이 늘 새롭게 흐르면서 말밝은 숨빛을 나누듯, 우리는 ‘발’로 땅을 ‘밟’으면서 새길을 나아가기에 새롭게 알아보고 찾아보면서 배우고 익힐 수 있다.

하늘을 이루는 바람을 ‘바라보’는 사이에 ‘바라다’라고 하는 마음을 알아챈다. 바랄 줄 알기에, 바라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고 물어본다. 밤이란, 별이 밝게 돋아서 반짝반짝하는 때이면서, 바로 별을 우리 숨바탕으로 받아들여서 꿈을 그리는 때이다. 바다는 뭇숨결을 낳기도 하지만 받기도 한다. 바람은 뭇숨결을 살리는 들숨날숨이기도 하면서 모두 받는다. 받아들일 줄 알기에 밝다. 바탕과 밭을 가꾸면서 키울 줄 알기에 밝다.

밝은 길은 ‘붉’은 길하고 잇는다. 별은 그저 그대로 밝은데, 밤에 더 둘레를 잘 보고 싶어서 ‘불’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뜻하거나 포근하게 누리려고 ‘불·붉다’를 일으킨다면, 이 살림살이를 우리가 손수 가꾼 뒤에 이야기를 남기려고 ‘붓’을 쥔다. 붕긋하게 부푸는 결로 여미는 붓이다. 두툼하니 붕긋이라면, 도톰하니 봉긋이다. 봉긋봉긋 봉오리를 맺고, 커다란 모습으로 봉우리가 선다. 말없이 봉긋붕긋 부푸는 꽃과 멧갓마냥, 곁에서 말없이 밝게 빛나는 별처럼 어울리는 마음을 나누는 사이인 ‘벙어리’이다.



‘잘’은 10000이라기보다는 ‘온갖’이라는 뜻이어서, ‘잘몬’은 ‘온갖 것’을 일컫지. (52쪽)

→ 우리말 ‘온’은 ‘100’이고, 온을 곱으로 살피기에 ‘잘’이면서 ‘10000’이다. ‘온·100’은 한자로 ‘백(百)’일 텐데, ‘열’을 곱으로 살핀 값이자 길이면서, 드디어 이곳으로 ‘온(오다)’ 빛이고, 더도 덜도 없이 ‘오롯’이 이룬 결이다. 그래서 ‘온 = 다·모두·몽땅’을 가리키기도 한다. ‘가득’하게 있는 결인 ‘차다(참)’를 이룬 때가 ‘온’이다. ‘온갖 = 온 + 것(갖)’이다. ‘갖 = 것·가지’이고 ‘가지가지 = 것것’이다. 그래서 “온갖 = 온 것 + 모든 것(가지·갈래)”이다. 이러한 ‘온’이 깊고 넓게 잠들면서 새롭게 나아가려는 참빛으로 퍼지면서 ‘움·움트다’로 나아가고, 움이 트는 천천한 걸음이자 몸짓인 ‘움직이다’이다.

‘오·온·올’은 한묶음이다. 온을 이루어 참하고 가득하고 모두이기에 ‘옳다·올바르다·올곧다·올차다’이면서 하나씩 ‘올(오라기)’을 이루고, ‘알’이라는 모습으로 거듭나는 길목이기에 하나하나 다르게 참하고 가득하면서 모두인 숨결이다. ‘오·온·올’은 저절로 ‘우·움·울’로 이으면서 ‘우리·움·한울(한울타리)’로 뻗는다. 너랑 나를 어우르는 ‘우리’이기에 서로 참하면서 모든 숨빛인 사람으로 바라본다. 하늘(한울)이란 하나인 울타리이자, 서로 하나인 숨빛인 우리를 가리킨다.

셈으로 ‘10000’을 가리키는 ‘잘’은 한자로 ‘만(萬)’이다. ‘온’을 ‘온’으로 곱할 적에 태어나는 ‘잘’이니, 숱하게 많다는 결이다. ‘온’일 적에는 다 다른 알이 참을 이루는 결이라면, 온을 온으로 곱한 ‘잘’은 다 다른 알(씨알·씨앗)이 깨어나서 풀숲으로 우거져서 풀꽃나무를 비롯한 뭇숨결이 크게 어울리는 밑뜻을 나타낸다.

온은 오롯하면서 온통 온마음과 온몸으로 온숨을 이루는 결로 가면서 ‘옳다’나 ‘한울’로 잇는다면, ‘잘’은 숱하게 우거진 풀숲마냥 ‘잘하다’와 ‘잘못’으로 잇는다.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가없이, 그지없이, 스스로 제 숨빛을 드러낸다고 하는 ‘잘·잘하다’인데, 자칫 이러한 숨빛을 ‘자랑’하려고 들면 거꾸로 ‘자잘’하거나 ‘자그맣게(작게)’ 구른다. 숱하게 있는 빛이 너울너울 춤을 이룰 적에는 ‘잘하다’이지만, 숱하게 있는 빛을 앞세우거나 자랑하거나 뽐내려고 하니 ‘잘다·자잘하다·작다’로 여긴다. 자그맣게 길을 틀어도 ‘잔’으로 간다. ‘잔소리·잔챙이·잔말’이다. 풀숲을 이룬 ‘잘·잘하다’하고 등지거나 거꾸로 가려고 하니 ‘잘못(잘 + 못(모르다)’이다. 스스로 얼마나 깊고 너르면서 즐거운 숨빛인지 몰라보려고 하니 ‘잘못’을 일삼고 만다.

잘하는 길이란, 자랑이 아닌 물줄기처럼 흐르면서 ‘즐겁(즈믄·1000)’게 노래하는 길이다. 열·온을 거친 셈은 즈믄(1000)을 지나서 잘(10000)에 이른다. 너울너울 온누리 숨결이 하나로 새롭게 어울려서 피어나는 셈이다. 이러한 숨빛을 물줄기처럼 품어서 살찌운다고 여기니 ‘잣(잣나무)’이다. ‘잣 = 숲젖’이다. ‘잣다’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메마른 땅에 샘물을 길어올리는 몸짓에,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맨바닥에 새롭게 살림을 이루거나 일구는 몸짓을 나타낸다.



사랑은 아끼는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것이잖아. 그러니 설렐 때는 먼저 설레는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이며 어디서 온 것인지 짚어 봐야 해. 이 설렘이 그저 새롭고 고와서 끌리는 것인지 아끼려는 마음인지 요모조모 따져야 하지. (74쪽)

→ ‘사랑’과 ‘아끼다’는 다르다. ‘아끼다’는 ‘에끼다’ 쪽으로 바라볼 낱말이고, ‘안쓰럽다·안타깝다’하고 맞물려서 살피기도 한다. ‘사랑’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살리는(살림하는)’ 길을, 나랑 너 ‘사이’에서 ‘새롭’게 일구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새’를 ‘새삼’스레 알아보면서 곁에 둘 줄 아는 슬기롭고 철든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누구나 스스로 품는 빛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랑’은 ‘좋다’하고 아주 딴판일 뿐 아니라, ‘아끼다’하고 아주 다르다. 좋아하거나 아낄 적에는 ‘사랑’하고 그야말로 멀다. 좁히면서 조이다가 졸졸 좇으면서 조무래기로 뒹구느라 조바심을 내는 결이 ‘좋다’이다. 마음에 들려고 하는 길인 ‘좋다’는 그저 ‘좁’아서 ‘조인’다. 숨막히는 마음이 바로 ‘좋다·좋아하다’이다. ‘알다’로 가지 못 하는 채 자꾸자꾸 안쓰럽고 안타깝게 나아가려고 하니 ‘아끼’는 결로 맴돈다. 아끼기에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아끼다 보니 ‘앗긴’다. 오히려 ‘앗아’간다. 마음을 어떻게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씨앗(씨알)’로 가거나 ‘앗다·앗기다·빼앗다·빼앗기다’로 간다. 자꾸 아끼려 하기에 그만 서로 앗기고 앗는다. 아끼려는 손길을 내려놓고서 사랑으로 나아갈 적에 비로소 ‘씨앗·씨알’을 이룬다.

태어난 몸으로만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다. 사람은 몸빛이나 살빛이나 뼈로 가리키지 않는다. 삶과 살림과 사이와 새와 생각을 스스로 품어서 씨앗으로 심고 가꾸어서 싹을 틔우고 숲을 푸르게 이루는 길을 걸어갈 적에 바야흐로 ‘사람’이면서 ‘사랑’을 깨닫는다. 알을 깨서 달려가야 깨닫듯, 스스로 이 삶을 살림으로 일구어 내면서 서로서로 나눌 줄 아는 생각을 씨앗으로 일구면서 펼치기에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집을 짓는다고 하지 않고 ‘빚는다’, ‘다듬는다’라고 하던 건축가 김중업은 (98쪽)

→ ‘지’어서 이루고 누리는 곳이라서 ‘집’이다. ‘집’은 ‘짓다’로 나타낸다. ‘빚다’는 물(빗물)과 가루를 고르게 섞어서 손으로 비비면서 이룰 적에 쓰는 낱말이다. ‘다듬다’는 ‘가다듬다·쓰다듬다·비다듬다·보듬다’로 엿보듯, 이미 이룬 살림을 다시 만지면서 곱게 여미는 자리에 쓴다.

우리말이 태어난 뿌리를 살펴야 우리말을 제대로 쓰는 길을 읽고 펴지 않을까? 왜 뜬금없이 아무 낱말이나 아무 곳에 끼워맞추려고 할까? 오직 흙과 물로 반죽을 해서 올리는 집을 세우려 한다면, 그때에는 ‘빚다’를 써도 되겠지.



‘없다’는 어디서 왔을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있다’에서 왔어. (106쪽)

→ ‘없다’라는 낱말은 ‘어’를 바탕으로 ‘ㅄ’을 헤아려야 알 수 있다. ‘있다’라는 낱말은 ‘이’를 바탕으로 ‘ㅆ’를 살펴야 알 수 있다.

우리말 ‘있다’는 ‘이(니)·이다·잇다·일다·익다·임(님)·입·입다’ 같은 낱말하고 나란히 살핀다. 이곳이기에 ‘있’이고, 일어나거나 일으키기에 ‘있’고, 여기 있는 나(삶)라서 ‘이’요, 두 곳을 맞물리기에 ‘잇’이며, 있는 숨이기에 ‘임(님)’이고, 이곳에 있어서 몸을 ‘입’는다.

‘없다 = 어 + ㅄ’이라는 얼개요, ‘어’는 ‘얼·어리다·얼다·엎다·얼핏·엄(움)·어디·어느(언)’ 같은 낱말하고 나란히 살핀다. 넋도 얼도 맨눈으로는 못 본다다고 여긴다. 눈으로는 못 보기에 얼핏 없는 듯하지만, 참으로는 있다. 어느 곳에 얼핏 어리듯 있다고 여기지만, 정작 몸(모습)은 안 보이게 마련이다. 얼면(얼어붙으면) 예전 몸이나 모습이나 빛이 사라진다. 엎으니 이곳에서 사라지거나 떠난다. 우듬지마냥 높이(엄지) 있으면 우리가 못 본다고 여기는 곳이다. 움이 트기 앞서까지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고 여겨서 ‘없’다고 본다. 콕 짚을 수 없기에 ‘어디·어느’이다.

‘어렴풋’하듯 ‘어스름’이 깔린다. 이제 ‘어둡’다. 어둠이라는 ‘밤’은 해가 물러나고서 별이 돋는 때인데, 하늘에 별빛이 있지만 ‘없다(어둠)’로 여긴다. 까맣게 덮는 빛살처럼 ‘어둡다’는 ‘모르다(앎이라는 빛이 없다)’를 나타낸다. 앎이라는 빛이 없는 ‘어둡다·모르다’이기에 ‘어리다’라고도 한다. 언뜻 얼핏 보일 듯하지만 없기에 ‘어리다 ㄱ’이라면, 아직 알지 않는 빛이라서 ‘어리다 ㄴ’이다. 우리 숨결을 이루는 빛살인 ‘얼’이란 어렴풋하게 느끼면서도 막상 보아내지 못하는 결이다.



‘한’에는 ‘환하다’와 ‘크다’가 담겼어 (120쪽)

→ 하늘을 날려면 홀가분할 노릇이다. 홀로 가볍게 몸마음을 다스리기에 하늘을 난다. 내가 나로서 나답게 낳는 빛이 있기에 ‘날개(나래)’를 달 수 있으니, 이러한 날개를 크고 시원하게 열어젖힐 적에 ‘활개’라 한다. 활짝 펴는 날개인 ‘활개’이다. ‘환하다’는 ‘활개’를 치듯 ‘활짝’ 열어젖히거나 펼쳐놓으면서 시원하게 틔우고 품으려는 결이다.

하늘이란 ‘한울’이요, “하나인 울(우리·울타리)”이다. ‘울’은 ‘우리’를 줄인 낱말이면서, “너랑 나를 아우르는 빛”인 ‘울·우리 ㄱ’에다가, “모두 크게 덩이를 이루어 한 곳에 놓는 빛”인 ‘울·우리 ㄴ’으로 있다. 울타리는 덩이를 이루어 한 곳에 놓는 빛을 감싸는 결이라서, 비도 바람도 작은짐승도 벌레도 새도 가볍게(홀가분하게) 드나든다. 너랑 나를 아우르는 ‘우리’도 둘 사이가 넉넉하기에 서로 어떤 마음과 말이든 신나게(실컷) 드나든다.

“하나인 우리”인 ‘하늘’이니 그저 ‘하나(1·일·一)’이면서 “하나인 나”이기도 하다. 셈으로 가리키는 ‘하나’는 “하나·하늘인 나”를 줄인 얼거리이다. 곧, 하늘은 “또다른 나”이면서 “또다른 너”이다. 우리가 모두 서로 다르면서 같은 하늘이면서 ‘나’라는 뜻을 품은 낱말인 ‘하늘·한울’이다. 가두려는(가두리) 굴레가 아니라, 틔우고 열면서 드나드는 바람빛과 파란하늘을 이루니 ‘크댜’고 할 테고, 덩치나 몸만 클 뿐 아니라, 마음과 숨도 나란히 ‘큰다(자란다)’.

예부터 ‘한길 = 큰길’이라 했고, ‘한껏 = 큰껏(크게)’을 가리킨다. 키우는(크게 하는) 결이고, ‘키우’는 길이란 ‘키(키잡이·뱃키)’를 잡으면서 ‘길’을 찾는 숨결이 자란다(큰다)는 뜻이자, 키워서 키잡이로 설 적에 우리 길이(몸길이)가 반듯하게 서는 ‘키’를 얻는다.

셈을 보면 ‘하나·열·온·즈믄·골·잘·울’로 나아가는데, 이러한 셈에서 처음이 ‘한’이고 끝이 ‘울’이라서, 마침내 우리말에서 셈을 하나하나 짚을 적에는 ‘나(하나)’가 ‘나(한울)’로 돌아가는 실타래와 수수께끼를 넌지시 들려주고 품는다.


ㅍㄹㄴ


《생각이 깊어지는 열세 살 우리말 공부》(변택주, 원더박스, 2025)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생 때와 배움이 달라져요

→ 푸름이가 되면 어린이 때와 다르게 배워요

→ 푸름이는 어린이하고 다르게 배워요

4


내가 쓰는 말이 내 삶을 빚어 나가눈구나 하고 알게 되어 참된 말을 가려 쓰려고 하게 될 거예요

→ 내가 쓰는 말대로 삶을 빚어 나가는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말을 참되게 가릴 수 있어요

5


높임말을 쓰면 거리감이 느껴지고 낮춤말은 가깝지만 거칠게 느껴져요

→ 높임말을 쓰면 멀다고 느끼고, 낮춤말은 가깝지만 거칠다고 느껴요

→ 높임말은 멀다고 느끼고, 낮춤말은 가깝지만 거칠다고 느껴요

6


겹겹이 정이 든 우리 삶결은

→ 겹겹이 빛이 든 우리 삶결은

→ 겹겹이 살가운 우리 삶결은

→ 겹겹이 따뜻한 우리 삶결은

14


축구장 크기 다섯 개만 한 솔숲을 만들어 낸 것과 같은 힘을 냈대

→ 공놀이터 다섯 곳만 한 솔숲을 가꾼 셈이었대

→ 너른터 다섯 곳만 한 솔숲을 일군 셈이래

16


곰곰이 오래 궁리한 끝에 네가 만나게 될 말이 궁금하다

→ 곰곰이 오래 헤아린 끝에 네가 만날 말이 궁금하다

→ 곰곰이 오래 짚은 끝에 네가 만날 말이 궁금하다

→ 곰곰이 오래 찾아본 끝에 네가 만날 말이 궁금하다

37


사전에 풀어져 있어

→ 낱말책에 풀었어

→ 낱말책에 풀이해

→ 말책에 풀이를 해

42


얇은 냄비보다는 두꺼운 무쇠솥이 되었으면 해

→ 얇은 솥보다는 두꺼운 무쇠솥이 되기를 바라

→ 얇은 솥보다는 두꺼운 무쇠솥이기를 바라

9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엄마와 딸
정호선 글.그림 / 창비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5.20.

그림책시렁 1581


《우리는 엄마와 딸》

 정호선

 창비

 2014.7.31.



  아이를 돌보면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가 제법 있으나, 아이를 돌보면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는 거의 못 봅니다. 없지는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고 하겠지요. “아이곁에서 살림을 지으면서 꿈길을 그리는 어머니”를 들려주는 그림책이 태어날 수 있기에 ‘즐겁게 노래하는’ 줄거리를 포근히 심는다면, “아이곁에서 사랑을 가꾸면서 살림길을 펴는 아버지”를 들려주는 그림책도 이제부터 선보인다면 ‘기쁘게 춤추는’ 줄거리를 따뜻이 심을 만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엄마와 딸》은 여러모로 잘 빚었다고 느낍니다. 다만, 서울에서 떠날 마음은 없어 보이는 엄마와 딸이요, 서울에서 어떻게든 일자리와 배움터를 이어가야 한다고 여기는 뜻이 짙습니다. 서울살이가 나쁠 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만, “서울에서 더 바쁘게 뛰어다니고 돈벌고 가게마실을 하는 틀”만 다루는 데에서 그친다면, 오히려 “서울로 안 가면 안 되겠네” 하는 마음을 심는 셈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엄마와 딸” 이야기를 그리는 동안 “엄마로서 마음을 달래고, 딸아이를 다독이는 손”을 나눌 수 있습니다만, 거꾸로 “아빠는 아무 일을 안 해도 되나? 아빠는 살림을 등져도 되나?” 하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아빠는 뭘 해야 아빠답고 어버이다우면서 어른다운”지 함께 그려낼 때에, 비로소 엄마살림도 기지개를 켜고, 아빠도 스스로 바꾸는 틈을 낼 수 있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5.19. 해를 바라보며



  부산마실을 하면서 깃새글꽃(상주작가) 한해살림을 보내기로 하니, 뜻밖에도 책집마실을 할 틈이 밭고, 책을 사읽을 겨를뿐 아니라, 겨우겨우 조금 산 책을 들출 짬마저 거의 없다. 하루일을 마치면 드러누워서 곯아떨어지기 바쁜 사흘이었다.


  문득 돌아본다. 나는 우리 보금숲에서 일할 적에는 고단하거나 힘들 적마다 집안일을 하며 쉬었고, 아이들하고 배우며 나누는 말마디가 새롭게 북돋았다. 숨돌리려고 두바퀴(자전거)를 몰거나 시골버스를 타고서 저잣마실도 하고 나래터를 다녀오기도 한다. 이와 달리 깃새글꽃으로 지내자니 집안일도 두바퀴도 누릴 수 없네. 그나마 해바라기를 하며 기운을 차린다.


  부산서 고흥 돌아가는 길은 얼추 8시간이다. 이동안 하루글도 쓰지만, 책을 일곱 자락 읽었다. 나는 길바닥이 책숲(도서관)이다. 길에서 읽고 길에서 쓴다. 걸으며 해를 바라보고 새를 돌아보고 나무를 살펴보고 바람을 헤아리면서, 내가 나답게 사랑하는 길을 익힌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5.19. 조잘거리는



  즐겁게 나누는 말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살린다. 주절주절 떠드는 말이라면, 스스로 주접을 떨면서 뒹군다. 새롭게 배우는 말이라면, 조그마한 말씨 한 톨을 조촐히 살린다. 그저 익숙한 대로 되풀이하는 말은, 좁쌀마냥 조그맣게 구는 조바심으로 갇힌다. 넌 어떻게 말하니? 난 어떻게 들을까? 우린 어떻게 주고받으면서 함께 피어날까?


  부산에서 사흘을 보낸다. 깃새글꽃(상주작가) 첫길을 폈다. 이제 고흥 보금숲으로 돌아가서 곁님과 아이들하고 생각과 마음을 돌아보는 자리를 누려야지. 나는 배우려고 가르친다. 나는 익히면서 살림한다. 나는 짓고 쓰고 나누면서 노래한다. 나는 들려주면서 듣고, 나는 사랑하면서 너하고 마주본다.


  남 뒷말을 버스와 전철과 길에서 조잘거리는 사람이 많다. 스스로 갉는 사람들은 아무도 안 웃고 안 운다. 나무에 앉거나 바람을 타면서 조잘거리는 새는 언제나 푸른말을 들려주고 가르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5.11. 물밑에서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우리는 우리말을 참으로 모르면서도 멀쩡하게 말을 주고받습니다. 이를테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처럼 첫머리를 여는 노래가 있는데, 그야말로 틀린말입니다. “그늘 아래”란 ‘땅속’입니다. 삽을 들고서 파야 하는 땅속이 “그늘 아래”입니다. “자, 나무 아래를 파 보시게.” 하고 말합니다.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을 누리려면 “나무 밑”에 설 노릇이고, “나무 곁”에 있어야 합니다. ‘밑’하고 ‘아래’를 제대로 가릴 줄 모른다면, 참말로 우리말을 모르는 셈입니다.


  낱말책을 엮거나 짓는 사람은 늘 물밑에서 일합니다. 물밑인걸요. 낱말책이 이따금 불티나게 팔릴 수 있습니다만, 어쩐지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려고 하는 이웃님이 아직 드문 듯싶습니다. 어린배움터와 푸른배움터와 열린배움터 모두, 언제나 말글을 다루면서 가르치고 배우기는 하는데, 정작 제대로 엮은 낱말책을 곁에 두면서 배움길과 익힘길을 다스리지는 않는군요.


  이리하여 낱말지기는 더더욱 물밑에서 일합니다. 울밑에 선 봉숭아처럼, 밤새 일하느라 시커먼 눈밑처럼, 그저 물밑에서 조용히 일하고, 바다밑에서 가만히 바다노래를 들으면서 일합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