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첫겨울비 시골버스



  서울은 으레 ‘버스파업·철도파업’ 같은 이름이 오르내린다. 시골하고는 아주 머나먼 이야기이다. 시골에는 파업을 할 기차나 전철이 없다. 그렇다고 시골지기가 “봄여름에 씨앗을 안 심겠노라” 하고 나서지 않는다. 버스·전철이야 안 다닌들, 전기랑 물은 좀 안 쓴들, 학교나 급식이 멈춘들, 우리가 죽을 일이 없다만, 그저 좀 늦거나 더디거나 돌아가야 할 뿐이지만, 시골지기가 씨앗을 안 심으면 이 나라는 몽땅 죽는다.


  그나마 시골에는 시골버스가 있고, ‘시골버스 회사’는 나라와 고을(지자체)한테서 이바지돈(보조금)을 오지게 받는 줄 안다. 시골버스가 파업을 한다는 소리는 들은 바 없다. 돈을 참으로 오지게 잘 버는걸. 쉼날도 길다. 다만 시골버스는 “돈을 그렇게 잘 받는데, 와야 할 때에 슬그머니 거르거나 늦기” 일쑤이다. 충북 음성과 전남 고흥 두 고을에서 시골버스를 탄 지 스무 해가 넘는데, 말없이 안 오느라 그날 일이 어긋나기 일쑤였고, 택시삯을 오지게 썼다.


  2025년 12월 11일, 옆마을인 봉서마을 앞을 지나가는 06:40 첫 시골버스를 기다리는데 안 온다. 또 말없이 건너뛴다. 서울에서 “두 시간에 하나 있는 버스”가 말없이 안 들어온다면 어떤 말밥에 오를까? 그렇게 “파업 아닌 태업”을 하는 버스회사는 멀쩡해도 될까?


  지난날에는 버스를 개인사업자로 내주었다면, 이제 버스는 ‘공무원’으로 바꾸어야지 싶다. ‘개인 버스회사’한테 이바지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 ‘버스기사’를 공무원으로 두고서, 제때 제대로 일하는 틀을 세워야 할 노릇이다. 이 작은 나라에서는 벼슬아치(대통령·장관·의원·공무원·군수) 모두 버스와 전철과 자전거와 두다리로만 일터를 오가는 틀(법)을 세워야 할 노릇이다. 이른바 “공직자 대중교통 출퇴근 의무화법”이 서야 할 테지.


  새벽에 첫겨울비를 맞으며 논두렁을 걸어서 옆마을로 갔다. 50분을 기다려서 07:18에 다음버스를 탔다. 고작 50분만 기다려도 다음버스를 옆마을에서 탈 수 있으니 군수님한테 고맙다고 절해야 할까? 그런데 이 버스는 우리 마을 앞도 지나가니까, 50분을 안 기다리고서, 첫겨울비를 안 맞고서, 논둑길을 한참 걸을 까닭이 없이, 그냥 우리 마을 앞에서 멀쩡히 탈 수 있었다. 먼길을 나서는 시골사람은 다들 큰길 이웃마을까지 이른새벽에 걸어가서 첫 시골버스를 기다린다. 2025.12.1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272 : 정리되 시구(詩句) 속


정리되지 않은 시구(詩句) 속을 헤맬 때도

→ 글월을 못 추스르고 헤맬 때도

→ 노래를 못 가다듬고 헤맬 때도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배영옥, 문학동네, 2019) 34쪽


글을 쓰기는 하는데 못 추스를 수 있습니다. 노래를 쓰다가 도무지 가다듬지 못 하면서 헤매기도 합니다. 다듬지 못 해도 되고, 갈무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느긋이 바라보면 어느새 풀어요. 하루아침이 아니라, 한 달이고 여러 해이고 차분히 지켜보고 기다리면 한 올 두 올 여미고 챙길 만합니다. ㅍㄹㄴ


정리(整理) : 1.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 ≒ 교칙(校飭) 2.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함 3.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음 4.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지 아니하고 끝냄 5. 은행과의 거래 내역을 통장에 기록으로 나타냄

시구(詩句) : [문학] 시의 구절 ≒ 시구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269 : 필자 필사 -겨지


필자는 없고 필사만 남겨지리라

→ 글님은 없고 글씨만 남기리라

→ 글보는 없고 글월만 남으리라

→ 글꾼은 없고 글만 남으리라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배영옥, 문학동네, 2019) 12쪽


글을 쓰는 사람은 ‘글꾼’이고 ‘글님·글쟁이·글바치·글보·글지기’입니다. 글로 적으니 ‘글’이고 ‘글씨·글발·글월’입니다. 우리는 글을 ‘글’이라 하면 됩니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필(筆)’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ㅍㄹㄴ


필자(筆者) : 글을 쓴 사람. 또는 쓰고 있거나 쓸 사람

필사(筆寫) : 베끼어 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594 : 결론 -게 한 일등공신


그런 결론에 이르게 한 일등공신은 책이다

→ 그런 끝은 책 때문에 맺었다

→ 책이 있어 그처럼 마무리했다

→ 책을 읽었기에 그렇게 여겼다

→ 책을 알았기에 그처럼 생각했다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윤성근, 산지니, 2018) 9쪽


‘공신·개국공신’은 중국말씨라면 ‘일등공신’은 일본말씨입니다. “그런 결론에 + 이르게 한”은 옮김말씨예요. 이 보기글은 “책이 있어 + 그처럼 + 마무리했다”라든지 “책을 읽었기에 + 그렇게 + 여겼다”로 고쳐쓸 만합니다. 차분히 읽고 새기며 끝을 맺습니다. 찬찬히 살피고 돌아보며 생각을 짓습니다. ㅍㄹㄴ


결론(結論) : 1. 말이나 글의 끝을 맺는 부분 ≒ 결어·맺음말 2.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림. 또는 그 판단 3. [철학] 추론에서 일정한 명제를 전제로 하여 이끌어 낸 판단

일등(一等) : 으뜸가는 등급 ≒ 두등

공신(功臣) : 나라를 위하여 특별한 공을 세운 신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593 : 농업 위주의 공동체 위기 처하게 된


농업 위주의 삶을 꾸려 나가던 공동체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 흙을 가꾸며 꾸려 나가던 마을은 고비를 맞이한다

→ 흙살림 시골마을은 벼랑길에 선다

《열세 살 여공의 삶》(신순애, 한겨레출판, 2014) 49쪽


흙을 가꾸며 삶과 살림을 꾸리는 시골은 일찌감치 무너지고 흔들립니다. 흙을 등진 채 돈을 버는 곳은 어느덧 크고작은 고장조차 기우뚱하면서 서울로 쏠립니다. 이곳도 저곳도 고비입니다. 시골이건 서울이건 벼랑길에 벼랑끝입니다. 이제는 돈벌기 아닌 살림짓기로 거듭나야 할 철이지 싶습니다. 흙빛을 사랑하고 풀빛을 품으면서 파란하늘과 밤별을 안는 터전으로 나아갈 일입니다. ㅍㄹㄴ


농업(農業) : 땅을 이용하여 인간 생활에 필요한 식물을 가꾸거나, 유용한 동물을 기르거나 하는 산업. 또는 그런 직업. 특히 농경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넓은 뜻으로는 낙농업과 임업 따위도 포함한다 ≒ 경업·농산업·전업

위주(爲主) : 으뜸으로 삼음

공동체(共同體) : 1. [사회 일반]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하는 집단 2. [사회 일반] 인간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본질 의사에 의하여 결합된 유기적 통일체로서의 사회 = 공동 사회

위기(危機) : 위험한 고비나 시기

처하다(處-) : 1. 어떤 형편이나 처지에 놓이다 2. 어떤 책벌이나 형벌에 놓이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