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44. 이슬



  알지 못하니까 알지 못할 테고, 알 테니까 압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이 말 그대로인 줄 느끼기는 해도 ‘이렇게 느낀 내 마음대로 알아도 되나?’ 하고 망설였어요. 어릴적부터 둘레 어른이나 또래는 하나같이 ‘네가 느낀 대로 받아들이면 안 돼!’라든지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친 것이 아니면 다 틀려!’ 같은 말을 했을 뿐 아니라, 좀 배웠다는 이들은 ‘교과서는 거짓말투성이야, 이 책을 봐, 이 책에 내온 줄거리가 맞아!’ 같은 말을 보탰어요. 그러나 저는 학교뿐 아니라 이름높다는 분들이 쓴 책조차 교과서처럼 거짓말투성이, 아니 ‘그들한테는 참으로 보일는지 모르나, 나로서는 하나도 안 맞구나 싶은 이야기’로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릴적부터 맨눈으로 바람결과 깨비(귀신)을 볼 수 있었고, 맨귀로 풀이나 이슬이나 빗물이 들려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적은 교과서도 인문책도, 게다가 종교책조차 못 만났습니다. 이러다가 드문드문 멋진 길잡이를 만났지요. 저는 바람결을 맨눈으로 보지만, 어느 길잡이는 제가 미처 못 본 ‘물결’을 맨눈으로 보시고, ‘헤엄이가 바다에서 헤엄치는 결’도 마음이나 살갗으로 느끼셔요. 이때에 온몸이 찌릿찌릿하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내 눈은 미치지 않았구나’ 하고 깨닫고, ‘나는 내 눈을 사랑할 노릇이로구나’ 하고 여기기로 합니다. 저는 이슬방울 겉모습을 노래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분은 그런 겉모습을 노래하겠지요. 저는 이슬하고 나눈 말, 이슬이 들려준 노래를 노래하려 합니다.



이슬


해가 기울면 어느새

바람 한 줄기가 죽

돌고 감돌고 맴돌며

이슬을 뿌려


해가 뜰 즈음

풀밭이며 숲은 온통

새벽이슬로 반짝이는

그림판이 돼


풀도 꽃도 나무도

개미도 사마귀도 벌도

아침이슬 마시면서

새기운 내네


맨발로 풀이슬 느끼며

우리 밭에 선다

맨손으로 꽃이슬 맡으며

오늘을 연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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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먹고 자고 기다리고 5
미즈나기 토리 지음, 심이슬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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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5.23.

한달벌이란?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5》

 미즈나기 토리

 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3.30.



  고흥 보금숲에서 밤에 잠들면, 첫여름을 앞둔 늦봄에 구성지게 노래하는 뭇밤새와 뭇개구리가 맑밝게 소리를 베풉니다. 밤소리를 듣노라면, 그저 ‘소리’일 수 없다고, 새와 개구리와 바람이 들려주는 마음이 묻어난다고, 오롯이 ‘노래’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제 밤이 저물고 얼추 03시 30분부터 동이 희뿌윰히 트는데, 이즈음에는 뭇개구리 소리는 잦아들고 온갖 낮새가 하나둘 깨어나서 아침까지 신나게 소리를 베풉니다. 새벽소리와 아침소리를 듣노라면, ‘지저귄다’고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새가 운다’고도 말하기 어렵고, 언제나 ‘새노래’에 ‘새벽노래’로구나 싶습니다.


  어느 분이 “자연에 나쁜 디자인이 없다”고 말씀하는데, 이 말을 들으면서 아예 말이 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나쁜 디자인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다 다른 숨결이 다 다른 몸을 입고서 다 다르게 살기 때문입니다. 더 낫거나 좋은 모습(디자인)이기 때문에 살아남는 결이 아니라, 그저 다른 숨빛으로 살기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숲에는 ‘숲’이 있을 뿐, ‘디자인’이 없습니다. 숲에는 ‘숲’이 있게 마련이라, ‘좋거나 나쁜 디자인’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습니다.


  숲을 제대로 본다면, 나무 한 그루에 달린 잎이 모두 다르게 생겼고, 강아지풀조차 잎이 모두 다르고, 토끼풀도 다 다른 크기와 모습인 줄 알 테지요. 다 다르기에 어울리며 살아가는 숲(자연)일 뿐, 나쁘거나 좋은 모습(디자인)이란 처음부터 있을 까닭마저 없습니다. 이러한 결을 읽고서 마음에 새길 적에 비로소 사람 사이에서도 누구나 다르게 마련인 줄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이 잘못 여기는 대목 가운데 하나로, ‘흰사람(백인)’이기에 살갗이 희지는 않은데, 너무 모릅니다. 흰사람도 들숲에서 일하며 뛰놀 적에는 아이어른 모두 ‘구릿빛’이게 마련입니다. 흙사람도 들숲을 잊으면 허여멀건 살빛으로 바뀌고, 흙사람도 들숲메바다를 품으면서 뛰놀면 차츰 ‘까무잡잡’하게 바뀝니다.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5》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읽었습니다. 우리집 두 아이랑 함께 읽는 그림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길이 무엇인지 들려주는 줄거리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스스로 짓는 하루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마주하는 여러 사람이 저마다 어떻게 든든히 다리로 서서 즐겁게 손으로 빚고 엮고 가꾸고 짓는지 밝히는 알맹이입니다.


  ‘한달벌이’란 뭘까요? ‘한해벌이’란 무엇이지요?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돈을 벌거나 ‘돈벌자리’를 찾아야 하는가요? 이 나라는 총칼(전쟁무기·군수산업·자주국방)에 돈을 얼마나 쏟아붓는지요? 이 나라는 갖은 나루터(공항·항구·터미널)에 돈을 얼마나 들이붓는가요?


  오늘날 시골은 서울을 흉내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서울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서울에 있는 대로’ 흉내를 내요. 그런데 처음 몇 가지만 따라가거나 흉내를 낼 뿐, 서울에서 바꾸거나 고치거나 가꾸는 길은 좀처럼 안 따라가고 안 배우더군요. 이를테면, 이제 서울 곳곳에서는 ‘빛먼지(빛공해)’라 여겨서 밤에 길불을 줄이는데, 오히려 시골에서는 길불을 늘립니다. 서울에서는 아이들이 먹는 모둠밥(급식)을 ‘농약 없는 낟알과 푸성귀’로 바꾸어 가는데, 정작 시골에서는 ‘드론으로 농약 듬뿍 뿌리기’에 나랏돈을 어마어마하게 퍼붓습니다.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는 닷걸음을 지나서 엿걸음 이야기를 앞둡니다. 유난히 몸이 여리고 쉽게 앓는 아가씨가 맞닥뜨릴 고단한 삶길이지만, 고삭부리 아가씨를 둘러싼 마을사람과 일터사람이 한마음으로 조금씩 짐을 나눕니다. 저마다 짊을 수 있을 만큼 기쁘게 나눠받아요. 그리고 고삭부리 아가씨가 몸소 하려는 일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우리 터전은 무엇을 바라보는지 짚을 노릇입니다. 돈(경제성장)을 바라볼 적에는 고삭부리 아가씨나 ‘고삭부리 아가씨 둘레에서 일손을 거드는 사람’은 이바지를 못 하겠지요. 이와 달리, 돈이 아닌 ‘살림’을 헤아릴 적에는 나란히 서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모든 하루를 즐거운 어울림마당으로 누리고 나눌 만합니다.


  우리나라는 2025년 6월에 나라지기를 새로 뽑습니다만, 이날은 잔칫날이 아닌 싸움날 같습니다. 누가 나라지기로 뽑히든 반기고 기뻐하고 손뼉을 치면서 ‘높낮이 없는’ 틀을 세우도록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누가 뽑히거나 안 뽑히면 ‘일거리가 사라지거나 늘어난다’고 여기면서, 꼭 누가 뽑혀야 한다고 여기거나 누가 뽑히면 안 된다고 몰아세우면, 누구를 나라지기로 뽑더라도 끝없이 싸움판에 미움판에 불바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누구를 세우느냐’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무엇을 하느냐’여야지 싶습니다. 먼저 어린이를 앞자리에 세울 일입니다. 이다음으로 푸름이를 곁에 세울 일입니다. 이러고서 스무살과 서른살은 조금 뒷자리에 서고, 마흔살과 쉰살은 더 뒷자리에 서고, 예순살과 일흔살은 더더 뒷자리에 서면서, 온나라가 새길을 여는 슬기로운 숨빛을 이야기하고 나누고 펴면서 어울려야 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보금자리를 보셔요. 엄마 뜻대로만 이끌든 아빠 뜻대로만 이끌든, 어느 한 사람 목소리대로 이끌면 다 괴롭습니다. 엄마아빠가 한마음을 이루도록 끝없이 얘기할 노릇이고, 아이어른이 한몸으로 움직이도록 끝없이 얘기해야지요. 이제는 ‘멋대로(승자독식)’를 걷어치우고서, “내가 나라지기로 뽑히더라도, 벼슬자리(장관·기관장)는 서로 고르게 나누어서 일을 잘할 만한 사람으로 함께 뽑겠습니다” 하고 밝힐 뿐 아니라 지킬 수 있는 틀로 갈 일이라고 봅니다.


ㅍㄹㄴ


‘드디어 손에 넣은 24시간을 날 위해 쓸 수 있는 기쁨.’ (27쪽)


“뭐, 처음엔 다들 가볍게 여겨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똑같이 그런 말을 해도 앞으로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난 지금 인간관계를 정비하는 시기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44쪽)


“저는 애들을 위해 일하고, 조만간 부모님 간병도 해야 할 텐데, 평생 일만 하면 내 인생은 언제 살지? 그런 생각이 들지 뭐예요.” (72쪽)


“게다가! 돈을 위해 무리하게 일했다가 몸이 망가져서 치료비에 돈을 쓰는 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요!” (73쪽)


“우리 집은 지금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많은 재료가 모여 완성된 우리 집만의 수제비 같잖아.” (114쪽)


“이렇게 타인의 컨디션을 배려하면서 요리하는 거 좋네요. 저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건 상상조차 안 돼서, 금방 몸에 탈이 나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거든요.” (141쪽)


“아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평소에 먹는 평범한 음식일 거예요.” (144쪽)


#しあわせは食べて?て待て

#水?トリ


+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5》(미즈나기 토리/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


잘 어울리네. 맛있어

→ 어울리네. 맛있어

→ 잘 했네. 맛있어

106쪽


지병을 앓으면서 혼자 사는 여직원이 있는데

→ 오래앓이로 혼자 사는 일순이가 있는데

110쪽


맛있게 잘 만들었네―

→ 맛있게 잘 했네!

124쪽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는 게 느껴졌어요

→ 깊이 걱정해 주신다고 느꼈어요

→ 무척 걱정해 주신다고 느꼈어요

137쪽


금방 몸에 탈이 나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거든요

→ 곧 몸이 말썽이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틈이 없거든요

→ 이내 몸이 아프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틈이 없거든요

141쪽


아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평소에 먹는 평범한 음식일 거예요

→ 아마 가장 맛있다면, 늘 먹는 수수한 밥이에요

→ 아마 늘 먹는 수수한 밥이 가장 맛있어요

14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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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마을에서 열다 (2025.4.30.)

― 인천 〈열다책방〉



  1991년 8월에 인천 중구 신흥동3가 작은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아버지만 “코딱지만 한 13평짜리”를 떠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여겼습니다. 어머니하고 언니하고 저는 마을과 이웃과 동무를 하루아침에 몽땅 잃어버려야 해서 새터로 가지 말자고 했으나, 아버지는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1:3’이어도 아버지 마음대로 인천 연수구 연수동 허허벌판 잿집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푸른배움터를 마친 첫 해인 1994년에는 하루 여덟 시간을 길에 쏟으면서 인천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사이를 오갔는데, 날마다 불수레(지옥철)를 치러야 했되, 날마다 길에서 책을 너덧 자락씩 읽었습니다. 인천 가는 길이 일찍 끊기면 밤새 인천까지 하염없이 걸으며 동트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1995년 4월 5일에 드디어 지긋지긋한 잿마을(아파트단지)에서 떠납니다. 어머니는 눈물로 말립니다. “꼭 집을 나가서 신문사지국에서 일해야 하니? 뭣 하러 힘들게 살려고 하니?” “날마다 여덟 시간을 길에서 보내면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몸이 지쳐요. 길에서 길삯을 너무 많이 써야 하니 살림에도 나쁘고요. 저는 힘들게 살 마음이 아니에요. 온하루를 배움길에 쏟으려고 할 뿐이에요.”


  2025년 4월 30일에 연수동을 걷습니다. 서른 해 사이에 하루쯤 이곳을 슥 지나친 적이 있지만, 제대로 걷기란 서른 해 만인 듯싶습니다. 논밭과 동산이던 마을은 감쪽같이 사라진 줄 아는데, 서른 해 사이에 길나무가 그럭저럭 자라기는 했고, 조금 큰 나무에 새가 내려앉아 노래를 베풀기도 합니다만, 끝없이 부릉거리는 너른길이 시끄럽고, 무엇보다도 하늘빛을 느긋이 헤아리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걷고 헤매다가 〈열다책방〉을 찾아냅니다. 찾아내고 보면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있지만, 서울내기(도시인)라면 어렵잖이 찾을 텐데, 이제 시골내기로 살림을 꾸리는 사람으로서는 모든 큰고장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떠돌기 일쑤입니다.


  북새통인 길바닥이라면, 고즈넉한 책집입니다. 새터로 새길을 열면서 새빛을 들려주는 책집입니다. 책집으로 걸어오기까지 마주한 모든 복닥길은 사르르 녹아서 사라지고, 이곳에 깃든 푸른빛을 하나하나 짚습니다.


  책으로 열고, 이웃으로 열고, 이야기로 열고, 눈길로 열고, 손길을 모아서 살림길과 마을길을 여는 자리에는, 어느새 씨앗이 싹트고 자라고 꽃이 피고 지더니 열매를 맺는 여름이 오겠지요. 이곳에서 엽니다. 네가 열고 내가 엽니다. 우리가 나란히 열어요. 한 걸음씩 열고, 한 마디씩 열며, 한 줄씩 엽니다. 셈 ‘10’은 ‘열’이란 이름인데, 새자리로 열어가는 첫길이기 때문입니다.


ㅍㄹㄴ


《K-공대생 열다, 책방》(김은철, 오리너구리, 2024.4.24.)

《편지 쓰는 법》(문주희, 유유, 2022.10.4.)

《전쟁 이후의 목소리들》(손송이 엮음, 뜬구름, 2023.12.29.)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루이스 세풀베다/엄지영 옮김, 열린책들, 2025.1.10.)

#LuisSepulveda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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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한 달 뒤 (2025.4.28.)

― 서울 〈악어책방〉



  어쩐지 숨막히는 날에는, “여태 쓰던 낱말”을 내려놓고서, “내가 다섯 살일 적에 쓰던 낱말”을 떠올려 봅니다. 남(사회·정부·작가·기자)이 어떤 낱말을 쓰든 말든 안 쳐다볼 노릇입니다. ‘그들(남)’이 휘두르는 ‘힘말·이름말·돈말’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나로서 나답게 날갯짓을 펼 낱말을 살펴요.


  이른바 ‘자기·자신·자아’ 같은 한자말로는 ‘나’를 못 찾습니다. ‘나’부터 열어야, 나랑 마주하는 ‘너’를 보고, 나를 ‘낳’은 너(어버이)를 볼 수 있으며, ‘너머’라는 길을 헤아리면서 ‘넘실’거리며 ‘넘’으려는 빛을 봐요.


  그저 흔하고 수수해 보이는 작은 말씨 하나부터 새롭게 짚으려고 하기에 스스로 실타래를 풀어낼 길을 찾아요. 남들이 멋스럽게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낱말을 따라하거나 흉내내는 탓에 ‘나’를 ‘남’한테 맞추다가 넘어집니다. 남들이 아무리 훌륭하거나 대단해 보이더라도, 그저 수수하게 숲마냥 ‘나’를 마주하고 품으면서 달래기에, 내 손과 발과 눈과 몸으로 ‘낳’을 빛나는 씨앗 한 톨을 찾아요.


  오늘 서울로 달려온 김에 목동에 열었다는 〈사진서가〉를 들르려 했으나, 마침 달날에 쉽니다. 달날에 서울마실을 하면 끝내 못 갈 듯싶지만 다음을 그리면서 우장산역으로 달립니다. 참말로 땀내면서 신나게 달립니다. 〈악어책방〉에 허둥지둥 닿아서 함께 배우고 익히면서 같이 생각씨앗을 심는 저녁을 누립니다.


  ‘담배맛’이란 뭘까요? 담배를 태우기에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아요. 손수 담배씨를 심고서, 담뱃잎을 오래오래 말린 끝에, 다시 손수 담뱃잎을 재우고 다듬어서 돌돌 말아서 태우는 내음이어야 환해요. 가게에서 아무렇게나 사서 뻑뻑 피우다가 꽁초를 길바닥에 휙 집어던지는 길로는 마음을 다독일 수 없다고 느낍니다.


  바쁘다는 핑계입니다. 힘들다고 둘러댑니다. 그러나 숨을 쉬려고 해도 힘을 써야 하는걸요. 몸을 입고서 살아가는 모든 나날이 ‘힘쓰기’입니다. ‘힘을 들여’야 살아가니, 얼핏 보면 다 ‘힘들’게 마련인데, 힘을 들여서 ‘무엇’을 하려는지 바라볼 노릇이에요. 힘들여서 투정을 부리거나 투덜대려는지, 힘을 써서 꿈을 그리고 살림을 가꾸려는지, 힘들여서 싸우려는지, 심(힘)는 나로 서려는지 봐야지요.


  오늘 자리를 마치면 “한 달 뒤”에 새로 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쪽글을 쓰고서, 쪽종이 한켠에 “한 달 뒤”라고 적어 놓습니다. 한 달 사이에 ‘새노래’를 쓰기로 합니다. 새노래란, 새로운 노래이자, 멧새가 들려주는 노래이자, 사이를 잇는 노래입니다. 함께 낱말책을 새롭게 쓰고, 같이 말빛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서로 이야기로 생각꽃을 지피는 즐거운 자리를 이룰 수 있어요.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진주 글·가희 사진, 핑거, 2024.9.12.첫/2025.3.20.3벌)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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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걷거나 뛰거나 (2025.3.26.)

― 서울 〈콕콕콕〉



  아침에 일찍 길손집을 나서며 〈콕콕콕〉 쪽으로 걸어갑니다. 마침 책집 언저리에서 하루를 묵었어요. 그런데 아침부터 길바닥을 갈아엎으면서 시끄럽습니다. 멀쩡한 길바닥을 왜 그냥 안 둘까요? 삽질하는 일자리는 멈추고서, 살림하는 일거리로 바꿀 노릇입니다. 살림이 없는 삽질은 나라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입니다.


  갈수록 어린이와 푸름이가 글을 잘 읽지 못 하고 쓰지도 못 한다고 여기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어른 탓입니다. 스스로 어른이라 밝히는 분들부터 말을 쉽게 안 쓸 뿐 아니라, 낡은 일본말씨와 중국말씨를 붙잡고, 어설피 옮김말씨를 흉내내고, 잘팔릴 글쓰기를 따라하려고 합니다. 말글이 아닌 ‘국어시험’에 목을 매고, 글쓰기 아닌 맞춤길·띄어쓰기·서울말에 옭매이고, 스스로 새말을 안 지으며, 우리말로 노래하는 뿌리를 잊었고, 생각과 마음을 고스란히 말로 옮기던 길을 등져요. 더구나 서울바라기가 너무 깊은 나머지 고을말과 살림말과 숲말을 다 잊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나누는 소리”인 ‘말’이 무엇인지부터 못 배울 뿐 아니라, 집과 마을에서 “마음을 나누는 말”인 ‘이야기’를 함께하는 이웃도 어른도 동무도 동생도 언니도 사라져 버린 채, 놀지 못 하고 노래를 안 부르고 맙니다. 남이 불러 주어야 노래이지 않아요. 꽃(아이돌)을 따라하면 흉내일 뿐입니다.


  배우고 익히는 길이 아닌 욱여넣기만 시키거나 밀어붙이려고 하면, 어린이와 푸름이뿐 아니라, 어른도 글을 못 쓰고 말을 못 합니다. 마음을 나누는 소리인 말이라면, 살림을 스스로 지으면서 스스럼없이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숲빛으로 일구는 하루를 참하게 담아요. 살림을 되찾아야 말글을 되찾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미는 그림책을 돌아봅니다. 이켠에서는 이쁘장하거나 귀여운 그림이 너울거립니다. 저켠에서는 어린이 아닌 어른끼리 마음씻이를 하는 붓끝이 춤춥니다. 그켠에서는 서울에서 ‘집과 배움터(학교·학원) 사이’만 맴돌면서 옳은길만 가르치려는 줄거리가 물결칩니다. 엘사 베스코브 님처럼 숲빛으로 사랑을 들려주는 어른스러운 붓끝을 그릴 수 없을까요? 윌리엄 스타이그 님처럼 어린이 손을 맞잡고서 함께 놀고 노래하고 춤사위로 하루를 사랑하는 붓끝을 쥘 수 없나요? 바바라 쿠니 님처럼 이야기 씨앗 한 톨을 심는 포근한 눈빛을 펼 수 없나요? 완다 가그 님처럼 모든 응어리와 생채기와 싸움을 햇볕이라는 숨결로 녹일 수 없는지요?


  쇳덩이(자동차)를 몰면서 굳이 빵빵거리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이들은 으레 “아이와 어른이 호젓이 거닐 골목”으로 굳이 들어서더군요. 거님길에서 두바퀴(자전거·오토바이)를 마구 달리는 사람도 많아요. 다들 사람빛을 잊고 잃습니다.


ㅍㄹㄴ


《목화씨》(조혜란, 글로연, 2024.11.9.)

《꽃에 미친 김군》(김동성, 보림, 2025.1.7.)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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