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도, 궂은 날도 모여 인생이 꽃 피리 - 마음에 쓰는 에세이 필사 노트
오유선 지음 / 베이직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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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재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 보면 맑은 날도, 궂은 날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져 왔고 그러한 과정들이 삶이라는 꽃을 피워 왔다는 생각을 확인하게 되면 맑은 날과 궂은 날이라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희노애락의 존재는 우리를 더욱 나, 우리 답게 하는 조건이 된다고 본다.

불교에서는 그러한 것들을 108번뇌로 지칭하기도 하지만 인생과 삶을 열어가는 조건들로의 그 것들은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들이기도 하다.

아직은 어리고, 젊은 이들에게는 이 책이 주는 감흥이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가 말하듯 중년을 위한 위로와 힐링의 에세이 필사 노트이니 만큼 인생을 느끼고 새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성찰의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맑은 날도, 궂은 날도 모여 인생이 꽃피리" 는 인생의 다양한 시기와 감정을 방송작가 오유선이 중년들을 위해 위로와 힐링의 감성을 담아 전하는 에세이 필사노트로 볼 수 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볼 수 있는 나, 우리 자신의 모습, 시련과 변화의 순간을 부정적이기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더구나 그러한 메시지를 필사를 통해 더욱 단단한 나,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자 하는 의미를 십분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혹자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맑은 날만을 원한다는...그러나 그렇게 맑은 날만 계속 된다면 온 세상이 사막이 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질 뿐이다.

궂은 날도 존재해야 비로소 자연의 생명들이 싹을 티우고 성장과 꽃을 피우는 과정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맑은 날과 궂은 날은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서 우리 인생에서의 즐거움과 슬픔이 공존하듯 삶에 대한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삶은 누구에게나, 인생이라는 시간을 선물했고 우리의 인생은 맑은 날도, 궂은 날도 존재하는 시간들로 이뤄져 있어 각자가 느끼는 바에 따른 인생사를 얻게 된다.

힘든 시기를 겪는 누구나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따뜻한 위로와 자기 성찰이라는 시간을 통해 극복해 내게 된다면 우리는 주체적인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저자는 인생 후반으로 건너 온 우리를 위해 52편의 따듯한 에세이로 봄마중을 하듯 반겨준다.

흔히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춥고 힘든 겨울을 눈녹듯이 사르르 벗겨 내 우리 삶과 인생의 겨울도 봄기운이 다가오듯 그렇게 따듯함으로 가득차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기에 기다린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젊은 청년도 아닌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이들이라면 세상이라는 춥고 힘겨운 시기를 스스로의 위로와 힐링으로의 문장들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주체적인 삶, 인생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어 줄 필요성이 있다.

그러함은 문학의 절실한 목표요 작가들의 생존을 위한 어젠다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저자는 눈으로 읽은 문장이 아닌 손으로, 마음으로 읽고 쓰는 문장들을 제공한다.

필사를 하는 동안에는 문장에 몰입, 자신의 인생과 비교해 가며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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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언스 웰레스트는 죽지 않아
니콜라스 볼링 지음, 조경실 옮김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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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무지를 깨닫고 현명한 나, 우리로의 삶을 살아간다.

무지스러움이란 아는 것이 없고 미련하며 어리석은 듯 보이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과거의 우리 삶은 그러한 경향을 쉬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었다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부활주의'를 생각해 보면 죽은 사람의 시체를 통해 부활을 꿈꾸는 등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에 빠져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바라보지 못하는 등의 일은 우리 역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과학혁명은 우리에게 부활주의를 대해듯 한 무지를 일깨우는 일들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무덤을 파는 소년, 무덤을 찾는 소녀와 그를 둘러싼 비밀을 지닌 인물들의 시신과 생명,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구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오비디언스 웰레스트는 죽지 않아" 는 과학 혁명을 맞이 하는 19세기, 교회 뒷 묘지에서 시신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 두 소년과 소녀는 그들을 둘러 싼 인물들이 비밀을 감추고 있음을 느끼게 되며 생명 창조 혹은 연장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음을 통해 생명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드러내는 책이다.

1832년, 19세기는 고딕적 요소가 물씬 풍기는 시대이기에 소설의 분위는 고딕적 분위기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의식에 대한 이해를 현시대의 우리가 이해하는데는 의아함을 갖게 하는 일도 있다.

과학의 발전이 이뤄지는 부흥기라는 시점을 생각하면 우리를 둘러 싼 일상의 일들이 과학과 마법적 상황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인간의 생명과 창조에 대한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무덤을 파는 소년 네드와 과학을 신봉하며 주체적인 의식을 가진 비드의 시선으로 교차된 일들이 진행된다.

아마도 아이들의 시선이라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아이들이기에 어른들이 느끼지 못하는 감수성 높은 점이나 인물간의 심리를 간파하는 일은 더 나은 느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네드와 비드의 묘지옆 로맨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는 러브스토리라는 느낌보다 살짝 가미한 미스터리한 소설로 이해될 듯 하다.

주된 내용은 시신을 활용한 과학과 마법의 미스테리한 탐구에 있다 할 것이다.

생명에 대한 과학적 서사를 말한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와 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생명에 대한 창조나 연장에 대한 생명의 본질을 탐한 인간의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눈에 띤다.

네드와 함께 사는 파리인 모스카, 양 쪽눈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할아버지 등에 대해서는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이 파리를 길들여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두 눈이 각기 다르게 움직이는 모습도 가능한 모습이라 생각할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저자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그 나름의 각기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는 현실의 나, 우리 역시 그러함을 인정해야 함을 일깨워 주며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란 두 아이에게 더 몰입하게 되는 배경적 정황으로 이해하게 된다.

사라졌던 시체들이 돌아 온다는 어쩌면 사라짐도 문제지만 돌아 온 시체들이 있다는 사실도 끔직하다.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지만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의미인건 아니라고 본다.

죽은자들에게 대한 윤리적 가치도 존재한다. 

고기를 파는 아줌마 말처럼 사람이나 말처럼 죽은건 매 한가지지만 허락도 없이 시신을 꺼내 연구용이나 부활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등의 문제는 다르게 생각해야 할 생명에 대한 본질적인 윤리의 문제임을 확인시켜 준다.

오비디언스 웰레스트는 소녀 비드의 가문이며 죽지 않은 이유에 대해 숨겨진 어떤 비밀이 존재할지 따라 읽는 가운데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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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아이즈 - Dark Eyes
고동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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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눈은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며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인상적인 존재감을 확인하게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시각적이라는 표현은 눈으로 확인 가능한 대상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인식을 뜻하지만 언제나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본다는 행위의 불확실성은 극한적으로 갈 수록 심해 지지만 꼭 그것이 아니어도 모호한 경우의 상황들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일상적 생활과 다양한 상황들의 연속적인 삶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예술적 감각이나 능력이라는 대상도 시각적인 부분에 의한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들이 나와 타자를 경계짖는 기준이 된다면 우리가 창조하는 예술작품에 대한 주도적 권리는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하는 어둠, 상징적 소재를 시각의 전환으로, 예술과 타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미스터리하게 소개 하는 책을 만나 읽어 본다.



이 책 "다크 아이즈" 는 인간이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방식에 따라 예술의 탄생과 의미를 갖는다는 다소 불편한 인식에 기인해 한 작가의 심리적, 내면적 공포감과 자기 정체성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해 내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시각에 의존해 모든것들을 인지, 인식해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갖는다.

물론 시각만이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멀쩡했던 사람의 갑자기 시력을 잃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없는 일도 아니라는 점은 소설의 주인공 한나의 상황을 이해, 수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빛을 잃고 소리를 얻은 한나, 빛의 세계가 지고 소리의 세계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면 아마도 무척이나 불편하고 두려운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경험하는 한나에게 새로운 감각에 대한 욕망에 몰입하는 모습들이 마치 우리의 욕망을 투사하는 것처럼 느껴 지기도 한다.

한나가 시력을 잃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은 샴쌍둥이를 등장시켜 자신과 해든의 정체성에 대한 모호함을 자극시킨다.

그러한 정체성의 혼란과 창작품 공모에 대한 이변은 한나와 해든의 관계뿐 아니라 그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서사를 제공한다.

같이 보아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인간인데, 거꾸로 다른 시각을 가진이들이 같은 작품을 쓰는 경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지만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바라보는 사람의 수 많큼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의 다변화는 의혹과 불안을 안고라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이 작품은 보통의 미스터리 작품이 갖는 특성들에서 비켜나 있는 작품이다.

잔혹한 범죄와 그에 따른 모호함으로 대변되는 서사를 기대했다면 아마도 저자의 작품에 실망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 서사로의 맥락을 따르지 않더라도 훌륭한 미스터리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저자의 이 작품은 인간의 심리적, 내면적 성향이 예술적 욕망의 사안과 겹쳐 모호한 경계와 불편한 자기 정체성을 파헤치는 서사는 우리의 자기 정체성에 관여하는 기제나 조건들을 새롭게 인식, 수용해야 하는 난제를 낳는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정체성 파악도 그렇고 예술적 감각 또한 만만한 대상은 아니지만 예술인으로의 정체성의 확인이 시각이 아닌 새로운 감각이 되어야 한다면 다크 아이즈는 상징성 높은 미스터리 작품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읽음에 혼란스러움을 해결하기 위한 앞장으로의 넘김이 많아 재독의 느낌이 확연히 묻어난다

할 수록 다른 느낌이 나는 책, 다독을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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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머리 앤 1 (일본어 + 한국어) 손끝으로 채우는 일본어 필사 시리즈 4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오다윤 옮김 / 세나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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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명작들이 있다.

문학작품으로 성공한 빨간머리 앤의 이야기는 비단 책으로만이 아닌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작품 속 앤은 사고뭉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다 일까?

거기서 그친다면 아마도 빨간머리 앤은 명작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빨간머리 앤은 오늘의 우리의 삶과 같은 동질적 삶을 통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극복해내고 따뜻함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으로 더욱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그런 명작을 필사한다? 필사도 모자라 외국어인 일본어로 필사를 한다면 모르는 이들은 시간낭비라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아는 이들은 이러한 기회가 배움에 있어 절호의 기회가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손끝으로 채우는 일본어 필사 시리즈 빨간 머리 앤 1" 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작은 섬의 초록지붕 교회에 입양된 앤의 좌충우돌 소동을 일으키는 삶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그녀의 진심 어린 마음과 따듯한 우정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오랜 세월 우리의 관심속에 사랑을 받아 온 작품이다.

책 만 읽었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앤은 다양한 형태의 버전이 존재함을 검색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빨간머리 앤의 성공으로 앤의 처녀시절을 다룬 '에이번리의 앤', 대학생 시절을 다룬 '레드먼드의 앤', 고등학교 교장 시절을 다룬 '윈디 윌로우스의 앤', 앤의 신혼 초기 시절을 다룬 '앤의 꿈의 집' 등 앤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들이 출시되었고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앤은 사고뭉치와도 같지만 엉뚱한 면이 많고 그러한 앤의 마음은 오롯이 사람에게 향해 있다는 따스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러하기에 앤의 상처받은 아이에서 강인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한글 작품으로의 빨간머리 앤도 재미있지만 일본어로 된 빨간머리 앤은 또 어떻게 우리의 것과 다르게 표현하고 사용할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도 된다.

그러한 궁금증을 필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 일거다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일본어 원문을 한 글자씩 따라 쓰며 표현과 문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 책은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다.



필사와 일본어 원문에 대한 학습 효과를 누릴 수 있으려면 실질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주인공 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를 우리 역시 눈으로가 아닌 마음으로 읽고 그녀의 감정과 생각을 일본어로 느껴보는 경험을 얻어야 한다.

즉 앤의 눈으로 세상을 느껴보고 경험해 보라는 저자의 주문은 이 책이 주는 최고의 효과를 느끼게 해 줄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을 사는 나, 우리의 모습에서 앤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까?

외롭고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는 나, 우리를 벗어나 초록지붕이 갖는 의미를 읽어내 따듯한 인간의 품이 그리운 사회, 조직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앤을 읽고 쓰며 든 생각이다.

명작이 달리 명작일까 싶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느끼고 실천할 수 있게 해주기에 명작이라 지칭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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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이누준 지음, 이은혜 옮김 / 알토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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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꼭 한 번 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이러한 바램은 과연 달성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한 바램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으로 더욱 더 간절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음 먹기에 따라 언제라도 볼 수 있지만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 혹은 가족이나 친구 등 우리가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간절함이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간절하면 이루어 진다는 말이 생긴것을 보면 인간의 간절함은 하늘도 기적이란 것으로 들어주는가 보다.

실제 사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에 우리에게도 간절함은 누군가를 꼭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 하는가 하면 그럴수 없다면 평상시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는 삶으로 만들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구름한 점 없고 노을이 지면 노을기차가 만날 사람을 데려다 준다는 기대만발한 소설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무인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는 정말, 꼭 한번 만이라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람들 일테지만 대부분 가족이거나 부모, 형제, 자매, 또는 친구 등 우리와 삶을 함께 하다 죽음을 맞아 하늘로 떠난 이들, 떠난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남은 사람들에게 삶은 고통이자 풀리지 않는 의문투성이의 시간들을 보내야 하는 과정으로 점철된다.

그런 나, 우리에게 소설 속 주인공 들이 갖는 꼭 한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함이 담긴 마음으로 빌어 노을이 지는 무인 역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내용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현실 세상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은 해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오랜 시간을 살아보면 기적이라는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나, 우리에게 그러한 기적은 신뢰도가 낮은 측면의 기회일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상호적 상관관계로 이뤄져 있지만 인간의 삶 보다는 죽음이 그러한 관계의 단절과 그 관계에서 남은 이들의 고통을 더 크게 느끼게 하고 부각시키는 경우들이 많다.

더구나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우리의 상실감과 고통은 배가 되리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정말 만약 소설처럼 노을 기차가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사람을 한 번만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면 과연 나,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싶어할까?

우리를 떠난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정말 만나고 싶은 이들은 나, 우리의 마음 속에 고통으로 자리하는 이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살면서도 온전한 삶이 아닌 마치 나사가 하나 빠진듯한 허전한 느낌으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일들이 바로 그러한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본래 우리는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나,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존재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이타주의적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계기이지만 그러한 존재의 부재가 가져오는 일은 나,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갑자기 나, 우리를 떠난 그들에게, 안녕이라는 최소한의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떠난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하고 싶고 듣고 싶을것인가 궁금하기도 하다.

소설은 그러한 우리 삶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통해 우리의 사랑과 그들이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은 이들을 소환해 보편적 일상의 흐름으로 귀속시켜 우리를 평상시의 관계 속으로 회귀토록 해 준다.

무인역에서 날, 우리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을 만나러 올 그들에게는 행복한 죽음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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