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 잠드는 게 너무 좋아서 9월이 온 걸 잊고 있었다.

아, 이렇게 또 9월이 와버렸네. ㅠㅠ

어제는 저녁에 동네 산책하고 있는데, 벌써 붕어빵이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 낮에는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아서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제 붕세권을 찾아다니는 계절이 오고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더위에 '헉헉' 하다가, 폭우에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다가, 이렇게 가을이 오고 있었네.

분명 가을을 기다렸는데, 또 스치듯 그렇게 빨리 지나가 버릴 것 같아서 벌써 아쉽다.



주변의 심란스러운 상황에 빠져 있느라, 여전히 책을 안 읽고 있었다.

여름에는 더워서, 한 가지 일을 마무리 하면 또 다른 일이 터지기도 하고,

심신이 피곤하니까 좀 누워 있느라, 긴 시간은 아니지만 가끔 육체 노동도 하느라.

좋은 말로는 병렬식 독서라고 하던데, 

책 한 권에 두세장씩 페이지를 넘기는 건 병렬독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좀 부끄럽잖아? ㅎㅎ

그래도 책을 계속 사는 건, 차분해지지 않는 마음을 달래주려는 약이라고 우겨본다.




하우스 메이드 3.

솔직히 3편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출간 소식을 듣고 좀 놀라긴 했는데,

자석에 끌려가듯 그래도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러다가 토지 같은 긴 이야기로 , 밀리의 황혼까지 계속되는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밀리와 엔조가 결혼을 했대. 아이도 두 명이나 있다네.

올해 말 영화로 개봉된다는 소식도 함께...




사랑의 가설,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이 두 권의 책은 알라딘 서재에서 언급되는 것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마치 이 공간의 필독서 같다. ^^

소개해 주는 알라디너님들의 글이 너무 재미 있어서,

아, 내가 아이돌이나 K팝은 잘 몰라도 이 책들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사랑의 가설> 읽어보고, 훅 빠져들면 <러브 온 더 브레인>까지 달려보겠다고 생각해 보는데, 올 해 안에 가능하겠지? 다행히 이 세 권 모두 도서관 비치 자료여서 시간 여유 두고 챙겨보겠다고, 불끈! 그러고 보니 로맨스 소설 읽은 지 너무 오래 됐다. 한 번씩 말랑말랑한 이야기 만나면서 가슴도 두근거려줘야지, 나 살아 있나? 확인하면서 말이다. ^^




아무튼 시리즈의 또 한 권, <아무튼, 맛집>

지금 내 몸뚱이가 만들어진 건, 그놈의 '맛집'이란 단어를 알게 되고 나서부터인데,

몰라도 좋을 것을 알게 된 것처럼 후회가 되기도 했다.

적당히 끼니만 때우면 되는 게 식사였는데, '맛있는' 게 이렇게 많았다니. 이제는 못 끊어. ㅠㅠ

맛집 투어를 주제로 전국을 다닐 수는 없지만(귀찮음 때문에라도 그렇게 못 하는),

죽을 때까지 이 동네의 맛집도 다 찾아다닐 수도 없겠지만,

맛있는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건 기분이 좋다. 히히.

사실, 세상 가장 최고의 맛집은 엄마가 해주는 밥이 차려진 곳인데 말이다.




이기호의 장편 소설을 그렇게 기다려왔는데, 아직 열 페이지도 넘기지 못했다.

집중하지 못해서 그런지 초반부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마치 숙제 하듯 읽어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그동안 만나온 이기호의 작품이 너무 좋아서다.

읽어야지. 가독성 좋은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보고 싶기도 하지만, 유머스러운 문장에도 녹아든 진지함이 그리워서다. 

늦어도 이번 주에는 이시봉의 우여곡절 여정에 동참해야겠다.





처음 방광염을 경험한 건 중학교 졸업 무렵이었다.

그냥 개운하지 않은 어떤 느낌 정도로 여겼는데, 이게 병이라는 것을 병원에 다녀오고서야 알았다.

진료 받고 주사도 맞고 약도 먹고, 밤새도록 괴로워했던 게 언제였냐는 듯 개운해진 몸이 반가웠다.

아, 병이었구나. 그 후로도 가끔 몸이 피곤할 때나 기운이 없을 때 한 번씩 찾아오는 방광염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곤 했는데, 사실 병이라는 게 안 걸리면 가장 좋은 거 아니겠나. 그래도 내가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한 번씩 또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피하기 보다는 더 잘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작가가 경험한 방광염을 시작으로 펼쳐진 이야기는 우리 몸의 방광에 대해, 특히 여성의 방광에 대해 더 잘 알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나의 소중한 방광을 더 사랑하고 아껴주기 위하여...




샌디프 자우히르의 <내가 알던 사람>이 궁금했다.

오래 전부터 보관함에 담아 놓은 책을 펼쳐보려고 한다.

왜 우리는, 우리의 뇌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알츠하이머는 정말 몹쓸 병이기만 할까?

어느 정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지만, 감당이 안 되는 건 여전하다.

오죽했으면 치매에 걸리지 않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살까.

그만큼 우리 인생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병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가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를 돌보면서, 지켜보고 느끼고 확인하는 의학적 탐구이자,

죽음보다 무서운 병에 맞서는 여정이 들려온다. 피해갈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알츠하이머란 녀석.





주변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심란한 요즘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원래 끝이 있으니 새삼스러운 여정도 아니지만,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소식에 기분이 더 다운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마도, 계속되는 불안에 어떤 책을 펼쳐도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눈은 책 속 문장을 보고 있는데, 그 문장들이 머릿속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한 달도 남지 않은 명절이 벌써 부담스럽고,

누군가는 이번 추석을 지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더 심란해진다.

인간이기에 각자의 상황에 맞게 또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때로 누군가의 삶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너무 주관적인 시선일까.


가을이, 그래도 조금은 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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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1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리와 엔조가 결혼했군요. 전 2권에서 초반에 밀리가 다른 남자랑 사귀잖아요. 그래서 또 헤어지고 다른 남자랑 결혼하나라는 생각도 잠시 했는데 다행입니다. 저는 엔조 좋아요. ^^그리고 저는 저 로맨스 3권 중에 이제 사랑의 가설 하나 남았습니다. 이분 로맨스는 로맨스로 읽힙니다. ㅎㅎ

방광염은 저도 가끔 찾아오는 병인데 이게 약간 전조증상이 있지 않나요? 제 경우에는 그렇거든요. 미묘하게 느껴져요. 그럼 그 때는 저는 생수병을 들고 삽니다. 물 진짜 많이 먹어요. 그럼 왠만한 경우에는 오다 가더라구요.
어쨋든 우리 모두 건강해야 하는게 제일 중요한거 같아요. 부산은 아직 여름이지만 바람의 온도가 바뀌는건 느껴져요. 짧은 가을이 정말 좀 길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다락방 2025-09-1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밀리와 엔조가 결혼해서... 아이가 둘이라고요? 와.. 이 시리즈는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려는걸까요 .. ㅋㅋㅋㅋㅋ

얼른 사랑의 가설과 샐리 루니 읽으시고 감상 적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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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봉이라서 Dear 그림책
한지원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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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봉 못 봤어?”

거기 서랍 안에.”

없는데?”

다 떨어졌나? 그 많던 게.”


흔하디흔한 소모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도 다 있다는 그 매장에서 사서 온 면봉. 1천 개가 들어있는데, 1천 원이다. 한 개에 1원이라는 말인가. 요즘 세상에서 이런 가격이 또 어디 있을까 싶지만, ‘다 있는 매장이라 가능한 가격인가 생각하기로 한다. 어쨌든, 언젠 사다 두었는지 모르지만 계속 그 자리에 있으니 사용해왔을 거다. 최소 1년 이상은 충분히 사용할 양에 1천 원이라는 가격은 합리적인가 아닌가 계속 생각해봤는데,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용해야지. 일상의 필수품이 되어버렸으니, 가격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이 면봉이란 아이는 스스로 광부라고 말한다. 어둡고(콧구멍), 비좁은 동굴(귓구멍)에 들어가서, 누렇고 딱딱한 걸 캐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에이~지지~) 얼굴이 까매지도록 석탄을 캐기도 하고(눈화장 정리), 가끔은 피를 묻히기도 한다(립스틱 번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질문질~). 때로는 구급약 상자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지키기도 하고, 공구함의 보조 기구 역할을 할 때도 있다. 특히 쌓여가기 쉬운 틈새의 먼지를 쓱싹쓱싹 닦아내면서 꼼꼼함을 자랑하기도 한다(놓치지 않을 거예요~).




이런 거 기억하면 정말 옛날(?) 사람인데, 요즘 사람 중에 성냥 아는 사람 있을까? 십 대인 우리 조카들도 어렸을 때는 거의 몰랐던데, 최근에는 케이크 사면서 초를 같이 받을 때 긴 성냥을 주기도 하고, 언젠가는 상품 구매하면서 사은품으로 제작된 성냥을 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 예전에 그거 있었잖아. 팔각성냥. 그 팔각 통에 가득 담겨 있던 성냥이 굳이 불을 붙이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자꾸만 사라지는 이상한 일이 흔했다. 그 안에 담긴 성냥 꺼내서 사각으로 만든 도형 이동 퍼즐에 쓰기도 했는데, 성냥갑에서 나온 개수와 사용하고 다시 들어가는 개수가 꼭 달라진다. 어디로 탈출한 건지 증발한 건지. , 내가 성냥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자꾸 삼천포로 빠진다. 그때의 우리가 성냥갑으로 놀던 퍼즐에 지금은 면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거지. 성냥 길이의 거의 두 배에 가까워져서, 혹시나 이런 퍼즐을 하고 싶다면 자리를 넓게 펴야 할 것 같아.


생각보다 면봉이 하는 일이 참 많았다. 일상의 곳곳에 비치되어 손만 뻗으면 손에 닿을 정도로 흔하고 익숙한 자리에 있었다. 쓸모가 많아서 귀한 아이인데, 그 귀함을 모른 채로 가볍게 사용해온 건 아닌가 싶어서 미안해지기도 하더라. 밀도가 높았던 면봉의 집에서 면봉이 하나둘씩 탈출하면서 점점 그 대열이 흐트러진다. 반듯하게 세워져 있던 아이들이 가로로 세로로 대각선으로 그 자리를 이동하면서, 몇몇은 사라져서 안 보이기도 한다. 시절 인연처럼 그렇게 사라지는 건가 싶을 때, 한 친구가 다이어트에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거여. 면봉의 삶이 지겨워졌나? 새롭게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건가? 뭐지, 도대체?


가끔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지금도 수시로 그런 감정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나는 이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건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한 번씩 자기 검열 같은 시간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타인의 인생이 기준이 된 계산법은 항상 어긋났고, 나와 맞지 않았다. 기본적인 성향부터 살아온 환경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가치관의 기준까지 달랐다. 그러니 비교 대상부터 틀렸던 거다. 그냥 나 자신과 비교하는 나의 모습이 우선이어야 했다는 것을.



면봉도 꿈이 있었다. 오색찬란한 색을 칠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더 넓은 세상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내가 갖지 못한 타인의 재능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수시로 묻기도 했다. 처음에, 면봉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친구가 살아가는 모습에 놀라워하기도 했지만, 그 화려함 뒤로 친구의 진심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뭔가 크게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 변신에 성공한 그 친구가 자기와 비슷한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생의 얄궂음을 떠올린다. 여기서 뛰쳐나가면, 지금과 다른 것을 향해 가면 인생 항로 크게 달라질 것 같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더라 하는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다른 시도를 하지 말라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내 모습이 하찮거나 쓸모없지 않다는 것을 상기하며 살아가는 일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가끔 부러질 때도 있지만, 이게 끝이 아님을. 재밌고 설레는 일들이 생기는 게 우리 일상일 테니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일이 가치 있음을 시사하는 이야기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면봉이 주인공이 되어 이런 이야기가 탄생했는지 놀라우면서, 습관적으로 면봉을 사용하면서 겪었던 일상의 소박한 에피소드에 가치를 담아냈다. 한 개에 1원 취급받고, 함부로 쓰고 버려도 괜찮은 일회용품 같지만, 없으면 불편한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닌가. 앞으로 면봉 사러 가면 분명 지금과 다른 시선으로, 이 제품의 가치를 새롭게 느낄 것 같다.



* 이 책에 면봉을 표현한 즐겁고 유쾌한 그림이 많이 담겨 있다.

  그 그림을 다 옮기고 싶은데, 스포일러가 될 까봐 못 옮기는 게 아쉽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면봉의 궁금하다면 펼쳐 보기를. ^^



#면봉이라서 #한지원 #그림책 #사계절 #어린이책 #면봉의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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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속삭임 위픽
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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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 참 오랜만이다. 많은 사람이 아닌 척하며 살아가기 바쁜 시대에, ‘-하지 않아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것만 같다. 오늘도 나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지 못해서 한숨만 푹푹 쉬곤 했다. 반복되는 한숨 소리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안 그럼 병이 생긴다고 말했다. 안다. 그래도 그 말을 다 하고 살지 못해서 얻어지는 병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슴 속에 묻어두는 말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병으로 쌓여가는 것을 놓치고 있다가 항암 치료를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오늘의 나는 그랬다. 해야 할 말을 못 해서 끙끙 앓다가 돌아와서, 몸보다 마음이 지쳐 곯아떨어질 것 같은 날이다. 희한하게도 이 소설 속 네 명의 여성에게서, 오늘의 나를 보았고, 세상 어디선가 나와 같은 오늘을 보낸 사람들을 떠올렸다.


모아에게 퇴근길 1시간이 종일 일에 시달리던 회사에서의 시간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만원 지하철, 휴대폰이든 뭐든 큰 소리로 틀어놓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 때문에 말이다. 그걸 견디며 얼른 목적지에서 내리기만을 바랄 텐데, 그때 한 여성이 큰 소리로 동영상을 틀어놓고 보고 있는 아저씨에게 시끄럽다고 말한다.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낄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틀어놓지도 않았겠지. 민폐를 끼치면서도 오히려 큰 소리로 화를 내는 아저씨를 물리칠 방법은 없을까? 그때 모아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내는 여성을 모른 척하기 어려워서 모아도 한마디 거든다. 시끄럽다고. 이상하다. 혼자 옳은 말을 하면 잘 들어주지 않는 상대방도, 여러 명이 옳은 소리를 하니 찌그러진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참나. 모아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던 여성, ‘시내속삭이는 모임을 만들고, 두 번째 회원으로 모아를 가입시킨다. 이 모임은 무엇을 하는 건가? 비밀이든 아니든, ‘그것이 마치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여야 한다라는 게 이 모임의 취지다. 뭘 속삭여?


이 모임의 세 번째 회원은 심판의 날을 외치며 예수를 부르짖는 수자였고, 네 번째 회원은 시내의 아파트 위층에 사는 두리였다. 이상하게 모이게 된 네 명의 여성은 각자 숨긴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았고, 이들이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은 뻔하다. 시내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더 예민하게, 모아는 소란을 참아내며 내일도 한 시간 동안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할 것이다. 수자는 더 시끄럽게 예수를 외치며 거리를 누빌 것이고, 두리는 썩고 쌓여가는 쓰레기를 가족 삼아 그 집에서 나오지 않은 채로 살아가겠지.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든지, 마치 말하면 안 될 것처럼 여기며 고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이거 말하면 부끄러울 거 같은데, 남들이 흉볼 거 같은데, 그랬던 마음을 정말 비밀을 털어놓듯 속삭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아니, 처음부터 별것 아닌 일이었을 텐데, 뭐가 어려워서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속삭이다 보니, 다른 사람이 그 이야기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듣고 나니, 그냥 쉽게 꺼내도 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네. 속삭이듯 말하니 중요한 일처럼 들리고, 그렇게 한번 말을 꺼내고 보니 속이 후련해지면서 아무렇지 않게 해도 되는 말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내 이야기를 꺼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누고, 이렇게 하는 말들이 소란스럽지만 중요한 속삭임으로 의미가 있다. 큰 소리로 외치며 따지지 않고, 조용히 들어주는 일. 간섭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키며 서로를 존중한다. 이게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늘 어렵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서 동시에 나의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거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속삭이는 일은 그 선을 지켰을 때 가능해진다. 모아의 말처럼, 속삭이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려면 말이다. 다 잘 될 거라고, 해피엔딩의 결말처럼 보이는 이 소설의 끝이 마냥 개운하진 않지만, 어차피 우리가 소설을 읽는 많은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러한 것일 테니 아주 이해 못할 결말도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속 상처도 치유되고 위로받기를, 삶의 긍정적인 자세를 배우고 싶은 바람으로 오늘도 한 페이지를 넘긴다.



#소란한속삭임 #마치큰비밀이라도되는양 #위즈덤하우스 #위픽 #예소연

#소설 #한국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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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와이프 스토리콜렉터 123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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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보텀. 작가 이름이 너무 익숙해서 내가 그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왔다는 착각을 했다. 작가 이름을 검색하고 출간작을 살펴보는데, 제목은 또 익숙한데 내용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더라. 알고 보니 나는 그의 작품을 딱 한 권 읽었던 거였다. 신간 카테고리에서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계속 봐서 그랬나 봐. 이제야 이 책의 주인공이자 시리즈로 계속되었던 조지프 올로클린을 처음 만났다.


그가 오늘을 사는 일은 녹록지 않다. (조지프)16개월 전에 아내를 수술 합병증으로 잃었다. 두 딸을 돌보는 싱글 대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3년째 그의 몸을 잠식하는 파킨슨병에 적응하는 힘든 시간인 것도 부족해서, 아내의 죽음은 그에게 상실감과 우울감을 선사했다. 그 자신을 추스르기도 모자랄 판에, 갑작스럽게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그의 일상은 또 한 번 무너져내린다. 팔순에 가까운 아버지가 생각하지도 못한 장소에서 둔기로 공격당해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왔다는 연락이었다. 한달음에 병원으로 간 그가 마주한 충격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 옆에 있던 의문의 여성 올리비아. 그녀는 자기가 아버지의 아내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고향 집에 계실 텐데? 올리비아는 그의 아버지와 거의 이십 년의 세월을 함께했다고 말한다. 조는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지만, 그녀의 말을 아주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 없이 누워서 혼수상태인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조는 이 상황을 해결해야만 했다. 이제 그는 자기가 몰랐던 아버지의 세월과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올리비아가 의심스러웠다. 젊은 여자가 돈이 많은 남자와 오랜 세월 불륜의 관계로 살면서 많은 것을 누리다가, 이제 뭔가 다른 목적이 생겨서 이 남자의 돈을 차지하려고 그런 건가 싶었다. 단순하게 이런 이유 말고는 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만 의심하기에는 자꾸 구멍이 생긴다. 그녀의 과거를 추적해도 의심은 쌓이지만, 그녀가 범인이라는 완벽한 증거도 없었다. 뒤이어 나타난 다른 인물들에게도 충분히 의심할 만한 이유는 있었지만, 그들을 범인이라고 단정할 자신이 없었다. 올리비아의 아들 유언은 정신질환자였고 폭력적이었지만, 그가 혼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변호사 부자(父子)가 아버지의 사회적 업무를 잘 알 것 같았는데, 그들에게서도 진실을 들을 수는 없었다. 아는 것을 말해주고, 어떤 부분은 모른다고 말하면서 진실에 닿을락 말락 하는 순간을 반복하곤 했다. 병원으로 찾아온 어머니에게 올리비아 이야기를 숨기려고 하지만, 어머니 역시 올리비아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조의 아버지는 두 여자 모두 사랑했다는 것 말고는 진실인 게 없었다.


이게 무슨... 조의 아버지는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욕하고 있었는데,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사람, 모든 상황을 의심하면서 읽고 있는데, 한 번씩 브레이크가 걸린 듯이 조의 아버지를 바라보게 된다. 조의 아버지는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젊고 기대하는 게 많았던 청년 시절, 유능한 의사로 알려진 중년의 시간, 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면서도 그의 명성은 자자했던 세월. 조는 이 사건을 추적하면서 동시에 틈틈이 기억 속 그의 아버지를 소환한다. 그의 아버지는 너무 단단하기도 했고, 그의 예상 밖에서 허물어지기도 했다. 잊고 지냈던 기억의 조각들을 지금 눈앞에 누워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 덮어 씌워놓고 보니,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더 알 수 없게 됐다. 가장 가까운 사이, 가장 상처가 된 사이. 그게 가족이란 건가.


분명한 사실은 누군가 그의 아버지를 공격했고 범인이 노린 게 있다는 건데, 그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의 아버지의 인생을,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거슬러 확인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지만,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은 앞으로 조가 살아갈 시간에 어떤 삶의 방식을 만들어주지는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많은 인물이 감춰두고 있던,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 앞에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만 남았다. 신처럼 완벽해 보였던 그의 아버지 역시 실수하며 살아가는 한낱 인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게, 모든 상황이 끝난 후 그가 느낀 전부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가 아버지의 진실을 찾고자 애쓰는 과정과 조가 자기 가족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의미 있어 보였다. 그는 자기가 부모에게 속한 가족도 지켜야 하고, 자기가 가장으로 이끌어가는 가족도 지켜야 하는 현실 앞에서 생각이 많아지곤 했다. 깨지지 않게 잘 보호해야 하고, 때로는 상실을 같이 견뎌야 하고, 가끔은 닫고 지내고 싶은 마음 너머를 살펴보기도 해야 하는, 그런데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계속 같이 나아가야 하는 관계. 간단해 보이지만 매우 복잡해 보이는 그물 같은 엮어 있는 관계가 가족이 아닐까.


추리소설 같은 느낌보다는, 한 가족의 내면 깊숙한 곳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느낌이 크다.



#디아더와이프 #마이클로보텀 #북로드 #스토리콜렉터 #소설 #해외소설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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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의 파수꾼
도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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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패러디한 코미디인가 싶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 웃음 코드를 장착한 추리소설일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래도 그렇지, 마늘밭이라니. 제목만 봐도 여전히 웃음이 났는데, 막상 읽기 시작한 소설은 웃음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추리소설 작가 유민은 톱스타 차이한과 연인 관계다. 물론 이 둘의 관계는 공개되지 않았다. 가끔 이한이 변장술에 가까운 차림새를 하고 유민을 만나러 오기도 한다. 그런 이한의 상황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유민은 그의 일상이 피곤하다는 걸 알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의 기운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의 과거가 현재의 그를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연인 관계를 유지해온 사이여서 알고 있는 이한의 과거, 그가 개명까지 했지만,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의 삶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한의 유민을 향한 사랑은 늘 한결같았고, 그가 늘 괜찮다고 하는 말을 믿고 싶었다.


사실 이한은 아역 연기자로 시작해 상당히 촉망받는 배우였다. 그러다 그의 큰아버지 장수혁이 연쇄살인마로 드러나고, 이한의 아버지 장기혁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연쇄살인마 장수혁을 잡으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장기혁이 실종되면서 거액의 돈이 같이 사라졌고, 그게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 돈의 행방이 장수혁에게 갔을 거로 추측하기에 이른다. 며칠 후 장기혁의 시신이 발견되고 장수혁은 다리에 총을 맞고 도주한다. 13년이 흘렀지만, 장수혁은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분명 그가 죽었을 거로 여겼고, 살인마의 실종 혹은 사망으로 더는 연쇄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한은 그의 가족사, 살인마 장수혁, 살인마에게 돈을 대준 아버지 장기혁 때문에 한동안 배우로 일하지 못했다.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과거를 지웠고, 이름까지 바꾸며 과거를 끊어내려고 했다. 그렇게 현재에 이르러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식에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살인마 장수혁, 그가 다시 나타났다.


사건은 유민의 시골 생활에서 시작되었다. 글도 잘 써지지 않으니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방치된 시골집으로 간 유민. 아버지는 할머니의 마늘밭을 정리하면서 지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써지지 않는 글을 생각하며 머리 아픈 것보다, 아무 생각 없이 풀이 자란 밭을 정리하는 게 낫겠다 싶었던 유민은 마늘밭의 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때, 풀이 엄청나게 자라있던 다른 부분과 다르게 사람 손이 닿았던 흔적이 있는 마늘밭의 한 구석을 발견하는데, 거기에 돈뭉치가 있었다. 그리고 살인마 장수혁과 마주치고 육탄전을 벌인다. 곧 마을은 마늘밭의 사건으로 소란스러워지고, 연인인 이한에게 말도 안 하고 내려와 있던 유민은 그때야 이한과 통화하면서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한다. 바로 유민에게 내려온 이한은 당분간 유민과 같이 지내기로 하는데, 유민은 이한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제 점점 수상한 사람들은 늘어난다. 연인인 이한과 과거의 모든 상황을 아는 신 경장도 다 사실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히 이한은 경찰이 장수혁을 잡기 전에 자기가 꼭 대면하고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왜 우리 아버지를 죽였냐고 따져 묻기라고 할 건가. 아니면 두 형제 사이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자기 인생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고 다시 나타난 거냐고 원망이라고 하려고 그런가. 어쨌든, 유민의 마늘밭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만의 생각과 목적으로 이 상황을 위태롭게 건너가고 있었다. 각자가 아는 진실과 위선은 뒤로한 채, 현재의 목적에 집중하기 시작하는데, 누가 하는 말이 100% 진실에 가까운지 궁금하긴 했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흐름으로 소설의 결말까지 닿게 되는데, 마지막에 다다를 때 나는 유민의 선택이 조금 의외였다. 모든 진실을 다 알고서 어떤 선택을 할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읽었다. 이걸 사랑이라고 앞세워서 판단해야 하는 건지, 정의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건지 어렵더라. 사랑이라고 해서 우리 주변의 모든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 핑계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미스터리 로맨스라는 소개에 솔깃하긴 했는데, 딱히 긴장감이 높지도 않았다. 사랑이 중심이 되어 달콤한 분위기를 느끼기에도 좀 부족했다. 서로 사랑한 이들이 선택한 결말이라는 것 정도, 우리는 사랑으로 상대방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남아 있다. 그냥 딱 거기까지



#마늘밭의파수꾼 #도직 #해피북스투유 #소설 #추리소설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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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fox 2025-09-02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저도 제목을 보고 패러디물인가? 하였는데 어떤 내용인지 잘 알 수 있는 리뷰였네요.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어요^^. 행복한 한주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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