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보고서 - 내 안의 잠재력을 깨우는 천재들의 비밀코드
스콧 배리 카우프만.캐롤린 그레고어 지음, 안종희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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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의 서재를 통해 출판사 필름으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시절엔 대부분 자신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기를 기대하고 부모 역시 자신의 자녀가 평범하기보다는 영재이고 천재이기를 바라고는 한다. 그런 기대는 세상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천재나 위인들을 보며 이르는 동경에서 기인한다. 어떤 부모는 그런 이유로 자신의 자녀를 영재로 만들기 위해서 영재 교육 등 갖은 수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천재를 동경하고 천재가 되고자 만들고자 하는 시대라면 천재에 대한 이해와 그 구성 요소에 대한 파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천재에 관한 연구나 천재성의 요인이나 요소에 대한 이해를 우리는 충분히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러한 연구와 추구는 어느 시대에나 그랬겠지만 현대에 이르러 더 열성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천재보고서]라는 한국어 제목 마따나 천재의 구성 요소 중 창의성에 대한 깊은 천착이 담긴 저작이다.

 

저자는 남다른 창조성을 보이는 천재들의 비밀은 무언지 전문적인 연구들을 종합해 차분히 풀어나가고 있다. 창의적인 천재들이 보이는 특성을 심리학과 뇌과학을 들어 분석하고 그를 개인이 실천함으로써 개인의 내면에서 천재적인 창의성을 이끌어내도록 안배한 책이다.

 

본서의 [들어가며]에서는 천재들이 보이는 특성 중 다양한 요소를 색다른 방식으로 뒤섞어 드러내는, 이들의 특성을 주지시키며 천재적 창의성은 그저 하나의 요소만이 아니라 성격(인격, 개인이 갖는 속성)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서문만이 아니라 이 정의가 결국 창의성을 드러내는 천재에 대해 결론짓는 정의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자는 천재들이 보이는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진 양상인 미친 것 같기도 할 정도의 남다른 이들의 인간적 특성이 사실 반쯤 미치기도 해서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들은 정신 질환 척도에서 높은 점수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미친 것과는 다른 게 자아 강도 척도에서도 매우 높은 점수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자아 강도 척도란 심리적 안정성과 건강, 뛰어난 현실 감각, 개인적 적절성(삶의 도전과 책임을 충분히 감당할 정도로 유능하다고 느끼며 자신을 신뢰하는 감각이며 자존감과 자신감 형성에 기여)과 활력, 도덕적 관용, 인종적 편견의 부재, 정서적인 외향성과 자발성, 그리고 지성등을 나타내는 척도이다.

 

천재적 창의성을 가진 이들은 양가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 그간의 모든 관련 연구들을 종합해 내린 저자의 결론이기도 한데 대개의 천재는 외향성과 내향성, 개방성과 폐쇄성, 통합 수렴과 다각도의 독자성, 고립과 친화성 등등등 여러 방면에서 대립되는 성향을 모두 보인다는 것이다. 우울하면서 쾌활하고 이타적이면서 개인주의적이고 과묵하다가도 사교적이기도 한 양상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한다. 이 밖에도 여러 요소들의 대립쌍을 한 사람이 동시에 보이는 부분들을 많이 드러내는 것이 천재적 창의성을 보이는 이들의 특징이다.

 

정의하기 쉽지 않은 이런 천재들의 특징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저자는 상상 놀이에서 열정, 공상, 고독, 직관, 경험에 대한 개방성, 마음 챙김, 민감성, 역경을 유익한 기회로 바꾸기, 다르게 생각하기에 이르기까지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모두 각 분야의 전문 연구를 근거로 한 제시이다.

 

이 모든 장들은 각각의 심리학 연구들과 뇌과학 연구의 결과들을 총합해서 옮기며 창의적 천재성을 보이는 이들의 특성과 결부 지은 저자의 해설을 곁들인 것이다. 각 분야 천재들의 예시나 인터뷰가 담기기도 해 독서가 재미나고 쉽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천재성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삶을 살아가는 데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성찰하게 만들기도 한다. 천재를 바라보려는 시도가 나 자신과 나의 삶 그리고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여정을 새삼 돌아보게도 만드는 책이다.

 

자녀를 위해 읽던가 자신을 위해 읽다가 보면 자신은 이미 천재였고 천재의 여정을 걷고 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착각을 가져다줄 수도 있는 저작이다. (자신)의 삶이 그려내어지는 책이라면 자연히 우리 모두가 창의성의 특성을 보일 삶을 살아왔고 그러므로 모두가 창조력을 보일 수 있다고 해도 거짓이 아니겠다는 감상이 든다.

 

우리는 이미 모두 천재다 그 천재성을 드러낼 날을 기다리는 중일 뿐이다이것이 이 천재보고서의 숨은 결론이 아닐까?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의 천재성을 자각하기 위해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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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2-07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이미 천재다. 그 천재성을 드러낼 날을 기다릴 뿐‘ 이라는 이하라님의 말씀에 무척 공감합니다.
저도 조건과 인연이 맞으면 언젠가는 적당한 시기에 드러남을 믿습니다.
다만 아직 때가 안 됐을 뿐... ㅎㅎ
좋은 리뷰 글 감사 합니다. _()_

이하라 2025-02-08 00:35   좋아요 1 | URL
인연이 닿는 시절에 진정한 자신과 조우하는 것이 인생인 듯합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도 자기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끔 성장하는 것이 천재성의 진정한 가치 같습니다.
리뷰 읽어주시고 반응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힐님^^

시냇물 2025-02-09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復本을 말씀하시는 분이 天才를 지향하시면 어디로 가시는거죠?

이하라 2025-02-09 08:30   좋아요 0 | URL
천재성이라는 건 자신의 천성을 모두 발현하는 경우를 말하기에 우리 모두가 천재이고 그 천재성을 드러내는 경우와 아직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인연이 닿으면 자신만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믿습니다.
 
니체 극장 - 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고명섭 지음 / 김영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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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관한 책은 대중서만 읽어보았다. 작년 2024년 상반기에 [마흔에 읽는 니체]는 읽고 나서 니체 철학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고 12월에 읽은 [예술이 묻고 니체가 답하다]는 읽고 나서 니체의 인생을 조금은 엿본 것 같은 감상이 들었다. 물론 이 두 권 모두 니체 철학에 대해 개념만을 짧게 전하는 책이라 아쉬움이 크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본서 [니체 극장]이라는 제목의 책을 알게 되었다.

 

본서는 니체의 철학과 인생을 연계해 접근 한 책으로 그의 저작들이 집필된 순서에 따라 연대기순으로 그의 일화들과 함께 그의 저작들을 돌아보는 책이다. 그의 정신세계를 조금은 엿볼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다. 책의 후반에는 하이데거, 들뢰즈 등 니체의 철학을 자기 나름의 척도를 지니고 해석해 간 철학자들이 언급되기도 하며 책의 말미에는 프로이트와 융이 니체 철학에서 받은 영향이 언급되기도 한다.

 

니체의 삶에 대해서는 이 책보다 [예술이 묻고 니체가 답하다]에서 더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많기는 한데, 본서의 경우 분량이 분량이다 보니 (깊이가 크게는 느껴지지 않으나) 니체 저작들이 저술되어 나아가며 니체의 철학이 형성되어 간다고 할까 변화되어 온 과정이 그려지기는 한다. 다만 다양한 철학서에서 주제로 삼기도 하는 니체 철학이기에 본서에서는 개념 파악 정도로 만족해야 할 수준으로 서술되어 있다고 생각되었다. 하이데거와 들뢰즈가 각기 니체 철학을 해석한 경우를 보며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무언지 이해될 지경으로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아전인수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구나 싶기도 했다. 니체 철학에 대한 해설서를 따로 읽는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해석이란 핑계와 함께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경우라면 원래 철학을 이해하겠다는 주제 의식으로는 원전을 읽는 게 낫지 해설서는 안 읽느니만 못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니체 철학은 낙타와 사자, 어린이로 니체가 분류한 의식 각성의 단계도 있겠고, 영원회귀 사상, 운명애(아모르 파티), 초인 사상과 권력의지(힘에의 의지) 등이 있겠으나 그의 생이 그려내는 주제로는 니힐리즘이 와닿았고 니체가 빠져있던 주제라면 영원회귀일 수도 있겠으나 본서를 통해서 가장 크게 와닿는 니체 철학의 근간은 초인 사상과 권력의지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자신을 귀족이라고 호도할 정도로 특권의식이랄까 기득권 의식이 강한 존재였다. 그는 노동자층을 노예로 보고 귀족이 노예를 부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며 노동자 계층이 다수라는 이유로 주도권을 가질 가능성이 있기에 민주주의에 적대감을 표하기도 하는 인간이었다. 그가 말하는 초인은 노예들의 희생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존재로 그와 같은 초인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노예 계층을 억압하고 착취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보던 것이 그의 사상이다. 그렇다고 이런 초인이나 귀족들의 존재 이유가 무슨 커다란 이상적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가 말하는 초인은 그저 지배하는 과정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도 장점도 보이지 않는다. 다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초인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언지 와닿지 않았다. 초인이 등장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희생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여정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너희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성장하도록 만들어 가는 여정이니 너희는 그저 죽은 듯이 사회적으로 희생하라는 것밖에는 그의 철학에서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희생을 통해 등장한 초인이 전하는 것이라고는 우월할 존재는 따로 있고 그런 존재를 위해 다수는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전할 메시지가 없다니 너무 황폐한 철학이지 않은가 싶다.

 

더 높이 더 멀리 보는 존재가 제시하는 것이 현실을 받아들여라 너보다 더 높은 존재를 위해 살다 죽어라라면 그런 주장을 하는 이가 과연 초인내지는 극복인이기는 한가 싶다. 영원회귀와 운명애도 우스운 게 그냥 진리니까 받아들이라는 건가 싶기도 하다. 자기 운명을 사랑할만 한 이라면 자연히 자기 운명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고통의 과정을 이기고 무언가 의미를 찾은 이라면 운명을 사랑하기도 하고 영원히 삶이 무한 반복되더라고 지겨운 것 말고는 거부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할만 하지 않고 고통뿐인 삶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괴로움 뿐인 삶을 순환한다 해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건 억지고 강요고 무식이고 폭력이 아닌가 싶다. 영원회귀도 운명애도 배부르던가 어느 정도 물적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철학일 뿐이다. 이런 철학들이 보편성을 갖자면 모두에게 물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와 권한을 충분히 부여하는 과정이 선제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낙타, 사자, 어린이로 성숙해 간다는 니체의 의식 각성 단계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수준인데 이 개념 때문에 내가 니체의 사고의 폭과 깊이가 단순하다고 받아들여지기도 했던 것 같다. 사람의 정신 또는 의식은 선형적으로 성숙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은 퇴보하기도 정체하기도 한다. 각 의식의 단계가 상징하는 바가 혼재하기도 하고 어느 시절에는 어린이였으나 다음 시절에는 오히려 사자도 아닌 낙타가 되기도 한다. 과거에서 미래로 직진하며 성장만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삶의 무게가 어떻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성장만이 아니라 퇴행도 하는 것이 인간의 의식이다. 성장만 하는 인생은 삶의 무게가 널널한 정도여야 가능할 것이다. 지워진 짐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감당하기 쉬운 정도여야 인간은 무리없이 저항없이 성장만 하지, 지나치게 무거운 짐일 때는 심지어 미치기까지 한다. 물론 니체처럼 병약하다는 것 말고는 별 무게 없는 이도 미치기는 하지만 말이다.

 

니체의 철학은 사실 유치해 보이는 면이 크고 그가 말하는 초인과 권력의지는 인간의 궁극과 본성의 일부를 이야기하는 면도 있지만, 그 초인이 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희생과 그런 희생을 통해 성장한 초인이 주장할 바를 생각해 보면 참 유치 찬란한 구조의 철학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유대 신앙과 기독교 구약 신앙에서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한다는 말이 결국 생육하고 번성하라지배하라뿐이었던 것을 보면 니체는 그런 서양의 전승을 그대로 답습했을 뿐이다. 그의 철학을 따라가면 초인은 대중을 위한 초인이 아니며 초인이 이야기할 것도 지배하고 피지배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 받아들이고 살아가라는 정도만이 될 뿐이다. 대중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할 뿐이고 지배자에게는 군림하라고 말할 뿐인 야훼의 선언과 무엇이 다른가?

 

니체는 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신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철학은 예수의 철학과 상충할 뿐 구약이나 유대의 철학과는 하등의 다른 부분이 없었다. 결국 그는 게으른 연설가일 뿐이다. 이게 내가 느낀 니체 철학에 대한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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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우리옷 한복 이야기 한복 이야기
글림자 지음 / 혜지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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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을 위해 읽기 시작한 일러스트 복식 책들 가운데 세 번째 도서다. [우리옷 한복 이야기] 시리즈를 보면서 같은 작가분의 [일본 복식 문화와 역사]와 비교하게 되다 보니 확실히 일본이 색감이 화려했고 조선이 색감 면에서는 제한이 많았구나 싶었다. 그래도 조선 이전편 보다는 조선시대편이 아무래도 훨씬 다채로운 감상이 일었다. 복식이 물론 다채롭기도 하지만 조선은 오방색 안에서 의복의 색을 제한을 두었다고 하니 그 내에서 색감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우선 남성의 복식 중 양반가의 도포와 같은 류의 옷들이 소창의, 중치막, 대창의, 장옷, 도포까지 이름이 다양한 것도 신기했다. 다 똑같아 보이는데 앞트임, 옆트임과 같은 사소한 차이로도 옷을 구분 짓는다는 게 신기했고 여성 복식의 변화는 그보다는 디자인의 체감 변화가 크게 느껴졌다. 기생은 천하다고 여겨지던 신분인데도 양반가의 의상보다도 제한이 없어 놀라웠다. 그리고 일꾼들의 복식에 현대로 치면 반팔 상의와 칠부바지가 등장해 진짜 신기했다. 일꾼들 복식이 그 하나만으로도 사극에서 보던 것보다는 자유로웠구나 싶기도 했다.

 

생각시란 말이 어린 궁녀를 가르킨다는 건 알았지만 어린 궁녀들이 새앙머리라는 머리 양쪽으로 땋은 머리를 했다는 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다. (생각시라는 말은 어린 궁녀들이 새앙머리를 한다고 해서 새앙각시라 불린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 어린이(미취학 아동 나이대)는 쌍계 또는 쌍상투라고 머리 양쪽에 두 개의 상투를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물론 본서에 등장하는 거의 전부의 내용이 낯선 것이었지만 조선시대에 새앙머리와 쌍계를 했다는 건 정말 인상적이다.

 

방한의 의도였지만 방한하려는 용도가 여성 복식의 아름다움을 자아낸 것도 같고, 통일이랄까 연대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조선 문화인데 지역에 따라 버선 곡선이 다르다거나 여성의 혼례복이 다른 건 신선하면서 아무리 막아도 개성을 아예 없앨 수는 없는 건가 싶기도 했다. 여성의 의상이 단연 아름다움이 두드러지겠으나 남성 의상도 나름의 다채롭고 그 나름의 미학이 있다는 게 더 다가온 사실이기도 하다.

 

모든 신분에서 멋과 아름다움이 드러나지만 왕비의 의상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저자가 간간히 언급하는 바에서 전대의 국가들의 문화와 외세 문화의 영향이 유래하면서도 독자적인 조선만의 남녀 의상으로 변모하며 정착되어 가는 과정이 느껴졌다.

 

본서는 도입부에서 소곳부터 의상을 착용하는 차례를 그림 하나하나를 통해 설명하기도 하는데 아름다운 그림체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조선 사람이 되어 한복을 소곳부터 하나하나 입어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목차를 검색해 보시면 알겠지만 이 책에서는 신분, 성별, 나이, 상황에 따른 거의 전 방면의 복식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사극과 역사 소설을 좀 더 재밌게 즐기시고 싶은 분도 창작에서 더 치밀한 묘사를 하고 싶은 분도 선택하기 좋은 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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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이전 우리옷 한복 이야기 한복 이야기
글림자 지음 / 혜지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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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로 보는 일본 복식 문화와 역사]를 보며 상당한 힐링 효과를 느껴 보았어서 저자의 전작들이 무척이나 탐이 났다. 그래서 저자의 전작들 가운데 무엇부터 볼까 하다가 [조선 이전 우리옷 한복 이야기][조선시대 우리옷 한복 이야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시대순으로 본서부터 보게 되었는데 읽고 보니 시대순보다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았겠구나 싶었다. 우리 전통 의상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다 보니 본서에 등장하는 옷의 부위별 명칭 등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을 마치며에서도 시대순보다는 조선시대부터 읽기를 추천하고 있고 온라인서점의 책 소개에서도 조선시대부터 추천하고 있던데 내가 주의를 못했던 것 같다. 다른 분들께서는 조선 이전보다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하시길 권해드린다. 복식에 대한 이해에서 그게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복식학을 전공했거나 한복에 대한 전문서에 대한 상식이 이미 있는 분들보다 처음 들어서는 초심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저자분이 이미 말씀했는데. 감상으로는 우리 복식에 대한 기본을 이해하기에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싶었다. 나부터가 우리 복식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바만으로도 상당히 흡족한 만족감을 느꼈다. 물론 난 복식에 대한 지식보다는 힐링 효과를 노렸지만 말이다. 다만 [일복 복식 문화와 역사]를 읽을 때는 일본 문화와 역사가 간략하게나마 전달되던 것에 비해 본서는 복식만 등장하다 보니 조금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아마 우리 선조들의 복식에 대한 책이다 보니 상식 차원에서의 역사 지식은 있을 거라 믿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복식을 언급하면서도 중국의 역사 흐름에 따른 복식과 일본의 복식, 베트남의 복식, 그리고 몽골의 복식도 간간히 등장하며 우리 복식이 이민족의 복식과 주고받은 영향을 살짝 언급하는 것도 재밌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중국의 한푸에서 받은 영향과 우리 복식은 원래 중국의 한푸보다 몽골의 복식인 델 양식에 가까웠다는 것 그리고 원나라 시기 몽골에 고려의 유행이 전해져 고려양이 원나라에 유행하기도 했다는 것도 새로웠다. 몽골의 공주들이 고려에 시집오면 공주, 장공주, 대장공주 등으로 불리웠는데 그들이 머리에 쓰던 몽골어로 복타크라고 하는 고고관이 조선시대로 넘어오며 족두리로 변해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는 것도 재밌게 다가왔다. 한푸는 허리띠를 하고 몽골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저고리 고름 같은 옷에 달린 띠나 단추로 옷을 여미는데 시대에 따라 우리 복식이 영향을 받는 바가 다를 때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옷을 왼쪽 여밈하는지 오른쪽 여밈하는지가 시대마다 외래 문화 유입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흥미로웠다.

 

무사들의 갑옷도 시대마다 달라지는 것이 대세가 되는 외래 문화에 따라 달라진 것이 신기했다. 갑주(갑옷과 투구)도 복식도 일본에 영향을 일방적으로 준 것만이 아니라 일본에서 역으로 유행이 전해진 때가 있었다는 점도 신선한 정보처럼 느껴졌다. 다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가야 시대 갑옷에 대한 정보가 등장하지 않아서 다른 부분에서도 넓거나 깊게 정보를 전하기보다 간략하게 상식선에서 소개한 것이겠구나 싶어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삼국시대는 의복 전통을 참고해 저술하려 했어도 남아있는 자료나 증거가 거의 없다 보니 저자가 종종 어느어느 유적과 유물을 참고해 추측했다며 제시하는데 그게 상당히 진솔하게 여겨졌다.

 

삼국시대만이 아니라 발해든 고려든 당시 복식을 현대에 그 당시 그대로 구현해낼 수는 없지 않겠나. 자료만으로 구현하기에는 남아있을 유물이 거의 없을 시절들이니 말이다.

 

그림을 통한 힐링을 많이 기대했는데 고대라 색감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지 않아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고대의 복식들을 대하며 상상하고 마음으로 그려보며 상당히 자유로운 느낌도 들었다. 이러다 일러스트 복식 책들에 덕후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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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 이주민, 차별, 인종주의
손인서 지음 / 돌베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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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에 끌린 이유는 이전부터 난민 문제에 대한 관심이 깊었고 다문화 가정에 정부가 부여하는 특혜로 원거주민들이 받는 역차별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본 저서는 이러한 문제들에서 이주민이 받는 불평등과 차별만을 강조하는 것 같기에 사유의 균형을 찾기 위해 읽게 되었다.

 

책의 저자 소개를 보면 무엇보다 주목되던 것은 이민자와 성소수자 등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이들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을 연구하고 가르친다는 대목이었다. 저서를 읽으며 외국인 가사 노동자가 겪는 불이익을 이야기하며 외국인 가사 노동자가 육아만이 아니라 장보기, 요리, 설거지, 빨래등 가사노동 전반을 부담하며 그런 가정에서 남자는 그저 돈만 벌어 올뿐 가사를 분담하지 않는다는 저자 나름의 비판을 보며 이 저자가 과연 남자인지 여자인지 궁금해 인터넷 검색까지 해보았다. 외국인이라 분류되어서 그렇지 가사 노동자라고 하면 당연히 가사를 전담하는 업무이고 저자가 지적한 가사 노동자의 노동 부분을 한국에서는 가사’, ‘가사 노동이라는 말로 정의할 것이다. ‘가사 노동자가사를 돌본다고 차별이고 돈 들여서 가사 노동자를 고용한 남자가 가사 분담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오묘한 서술을 보며 참 놀랍다는 감상도 들었다.

 

저자는 자신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고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듯하고 그런 견지에서 사회를 보며 대부분의 경우를 차별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대목들의 차별이 존재하고 그런 부분들은 개선되어 나가야 하는 것이 사실이겠으나 본서에서는 차별과 불평등에만 주목하여 균형을 잃은 듯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이나 불이익들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겠으나 한국의 청소년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집단 폭행한 사건이나 회사에서 얼어죽은 노동자의 사건에서 책임을 개인이나 회사에 묻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로 돌린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성폭행한 사건을 두고 모든 남자가 쓰레기니까 모든 남자가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며 참회해야 할 문제다라고 해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보인다. 제도적으로 외국인이 불이익을 당하는 대목들은 제도 개선을 하면 될 문제일 것이지만 외국인을 차별하는 개인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자체가 문제라는 논리는 그러한 시각 자체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는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에 주목하도록 하면서 그러한 문제는 인종주의 차원의 문제이고 다양한 외국인을 외국인이라는 하나의 인종으로 구분짓기에 그렇다며 이러한 차별적인 인종화를 인종 기획이라고 한다고 사회학적 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런 인종 기획에도 백인과 비백인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가 있다며 대중의 시선을 인종에 맞추려 하지만 여기에서 시각은 백인과 비백인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출신 국가의 계층에 따른 차별이 사람들이 인식하기에 더 선명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외국 어느 나라에서든 이러한 차별은 존재할 텐데 이것이 인종 문제인 지역도 있지만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이방의 존재에 대한 불신과 경계라는 측면에서 더 경향성을 띠지 않는가 싶다. 지역감정으로 보면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간다거나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에 가서 느끼는 외로움과 차별이 인종 문제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인종 문제가 아니라 이방인에 대해 배척하고 경계하는 인간의 본능 차원의 문제이지 않은가.

 

그리고 본서에서는 외국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는 명백히 보여주면서 대한민국의 외국인 우호 정책은 외국인을 착취하고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 외국인 취업자가 취업 기간 2년이 되어 체류 연장 허가를 받고 그 이후에도 한 직장에서 직장 생활이 3년이 되어야 특혜가 주어지는 제도를 차별과 불평등이라 들며 이걸 회사가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용하기 좋은 제도라고 매도하는 저자의 견해에도 다소 거부감이 커졌다. 그럼 이직이 자유로워 계속 이직만을 하면 회사가 감당하는 고용 불안정성은 어떡하라는 것이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국인이 그렇다고 그런 제도로 특혜를 받느냐 하면 비정규직으로 언제 회사에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 주어지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저자가 비판하는 게 사무직 근로자가 아니라 육체 노동자를 말하는 것이라는 데 방점이 있겠다. 노동자 중 이직하고 싶다고 맘대로 이직하면서 지내는 내국인 노동자가 몇이나 되나 고용이 해제되어 다른 직장을 찾는 것이지. 또 외국인에게 임금이 차등 지급된다고 차별이라고 하는데 해당 국가의 임금과 (저자가 비판하는) 현재 한국에서의 임금 차이가 크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한국까지 와서 노동을 하는 것이고 회사로서도 임금의 격차가 있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아닌가. 가사 노동 임금을 예로 들어도 한국인들이 적정선이라는 임금으로 내외국인에게 다 통일한다면 애초에 외국인이 고용될 여지는 줄어들 것이다. 내외국인의 임금 격차는 차별만이 아니라 암묵적인 적정 합의가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외국인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고 그 가운데서도 진짜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만을 들어 그들이 겪는 차별과 불이익을 통해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주제로 삼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외국인이 받는 불이익도 분명 있겠으나 실제 이주민들에게 그런 불이익과 불평등만이 있는지 저자의 주장과는 다른 예를 들어보아야 할 것 같다. 한해 외국인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것은 조 단위이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저자가 한국에서 차별받는 대표적인 외국인이라 예를 들고 있는 중국인들이다. 심지어 한국 요양원 혜택까지 중국인이 대거 수혜를 입고 있다. 더욱이 외국인 투표권도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모든 제도는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주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과연 한국인이 이런 혜택을 받는 나라에만 그런 특혜가 적용되는지 더 세심히 살펴야 될 문제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에게도 복권 당첨시 당첨금을 수령하게 한다. 최근 40억 원을 수령해 간 태국인까지 몇 해 걸러 한 번씩 외국인 수령자 소식을 보게 된다. 과연 우리가 그 나라에서 복권 당첨시 수령할 수 있는 국가의 국민에게만 혜택을 주는지 묻고 싶다. 게다가 불법 체류자들까지 한국에서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에 대한 교육, 의료, 양육에서 혜택을 주는 나라가 한국이다. 해당 아이가 자라면 국적 취득도 용이하고 말이다. (언제부턴가 역대 정부들은 인구감소를 이주민 수용으로 타계하려 하고 있는데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대대적으로 상용화되고 대중화되며 다수의 인구가 초대량 실업자가 될 것은 자명하다. 이런 시기에 무책임한 이주민 수용 정책은 이후 사회의 거대한 부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책의 감상에서 벗어난 부분이니 다시 돌아가자면) 외국인이 받는 차별과 불이익을 개선하면서 제도적인 불균형이랄까 병폐는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내국인에게는 11주택을 강제하고 법적 차별을 주면서 외국인에게는 제한을 두지 않아 중국인 건물주들이 대거 증가했고 제주도는 중국인들 점유지가 되다시피 한 것이 미디어를 통해서도 접하는 현실이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개선해야 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과제겠지만 무엇보다 내국인이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데 더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와 정부는 외국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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