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 무섭다 해도 제 자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네. 제 오른눈은용이 되고 왼눈은 호랑이가 되고 혓바닥 밑에는 도끼를 감춰두었고팔목을 굽히면 활이 되네. 처음 생각은 천진난만한 젖먹이 같다가도조금만 비뚤어지면 오랑캐가 되고 마는 것일세. 만약 경계하지 않으면 제가 저를 씹어 먹고 긁어 먹고 찔러 죽이고 쳐 죽일 것일세. 그래서 성인이 제 욕심을 절제해서 예절을 따르게 하고 간사한 생각을 막아서 진실한 마음으로 일관하게 한 것이니, 이렇듯 성인은 스스로를두려워하지 않은 적이 없다네." - P79
옛날 헝가가 밤에 검술을 토론할 적에는 개섭이 골을 내며 눈을 흘겼지만, 고점리가 현악기를 타는 데 이르러서는 사람이 있는 것도 상관없이 서로 붙들고 울었다. 즐거움이 지극하였던 것이나 다시 뒤이어 우는것은 무슨 까닭인가? 속마음에 감격해서 까닭 없이 슬퍼진 것이다. 비록 본인에게 묻는다고 하더라도 그들 자신도 역시 무슨 마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문장의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것이야 어찌 칼쓰는 사람의 기교에 견주겠는가? 우상은 그 아니 불우한 사람이었던가? 어째서 그의 말에는 그다지도슬픔이 많은가? - P113
글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일 뿐이다. 제목을 놓고 붓을 잡은 다음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고, 억지로 고전의 사연을 찾으며, 뜻을 근엄하게 꾸미고, 글자마다 장중하게 만드는 것은 마치 화가를 불러서 초상을 그릴적에 용모를 고치고 나앉는 것과 같다. 눈동자는 구르지 않고 옷의 주름은 죄다 다려 입어서 보통 때의 모습과 다르다 보니 아무리 훌륭한 화가인들 그의 참모습을 그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 짓는 사람인들 무엇이 다르랴? - P132
복희씨가 글을 보는 데는 우러러 하늘을 고찰하고 굽어 땅을 살폈다고 했는데, 공자가 그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가만히 있을 때면 글을완상한다고 했네. 완상한다는 말이 어찌 눈으로 보아서만 살핀다는뜻이겠는가? 입으로 맛을 보면 맛을 알게 되고, 귀로 들으면 소리를알게 되고, 마음으로 헤아려 보면 정신을 알게 되는 것일세.이제 자네가 창에 구멍을 뚫고 방 안을 한꺼번에 훑어보며 유리알로 빛을 받아서 마음속에 깨달은 바가 있다고 하세나. 그렇다고 해도방과 창이 비어 있지 않으면 밝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유리알이 투명하게 비어 있지 않으면 정기를 모을 수 없는 법.무릇 뜻을 환하게 하는 길은 나를 비워 남을 받아들이고, 마음을맑게 해서 사사로운 생각이 없는 데 있다네. 이것이 바로 완상한다는뜻이겠네." - P170
도로 네 눈을 감아라자기 본바탕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야 어찌 문장만이겠습니까? 각양각색의 일이 다 그렇습니다.서화담이 길에 나갔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우는 아이를 만나서 물었습니다."너 왜 우느냐?"아이가 대답했습니다."제가 다섯 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것이 지금 이십 년째입니다. 아침나절에 집을 나왔다가 갑자기 눈이 떠져서 천지 만물을 환하게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아라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골목은 여러갈래요 대문도 저마다 비슷비슷해서 우리 집이 어딘지 통 알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웁니다."선생이 말하였습니다. - P192
"집을 잘 찾아가도록 내 네게 일러 주마.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집으로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그러자, 아이는 전처럼 눈을 감고 지팡이를 뚜닥거리며 발길 가는 대로 이내 제집을 찾아갔답니다.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빛과 형체가 뒤죽박죽되고 슬픔과 기쁨이 혼란스럽게 작용하는 까닭입니다. 이것을 망상이라고 합니다. 지팡이를뚜닥거리며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분수를 지키는 이치요, 집으로 돌아가는 증거입니다. - P193
이 책이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이유가 궁금하여 도서관 예약 후 몇 달 만에 읽었다. 읽었지만 여전히 왜 역주행 중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차라리 작가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이라면 이해가 될지도.인생을 주체적인 마인드로 살고자하는 안진진이지만 그래봤자 이 남자 아니면 저 남자,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가 선택의 후보이며 다른 선택의 여지를 고려하지도 못하는데 요즘 사람들에게 먹힌단 말인가. 아니면 예전 사람들이 다시 읽는 것인가. 왜지? 인생에 대한 아포리즘적 문장들 때문인가?극단적으로 대립적인 두 인물들 - 이모와 엄마, 이모부와 아버지, 사촌들과 남동생, 나영규와 김장우 - 의 상황과 성격 간의 간극을 통해 안진진이 처한 현실과 선택을 보여준다. 나는 안진진의 선택이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 지극한 현실주의자로서 솔직히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 아닌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 버전으로 말한다면 결혼은 A와 연애는 B와.책을 읽으며 나의 엄마와 이모들의 삶도 오버랩되었다. 서열에 따라 순번대로 던져진 무작위적인 주사위의 결과로 인해 달라지는 그 이후 인생의 경로들. 이것이 모순인가. 이것이 슬프게도 현실이겠지.
어느 쪽이 류가 바라는 일일까를 한동안 고민하다가, 둘 중어느 쪽도 류가 자신에게 바라는 건 딱히 없을 것 같다는생각이 들어서였다. 류의 유지를 받들어, 같은 생각은 해본적 없었고 애당초 유지라는 게 있지도 않았으며 방역업을시작한 뒤로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 아닌 현재멈춤형이었다. 그녀는 앞날에 대해 어떤 기대도 소망도 없었으며 그저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눈을 떴기 때문에 연장을 잡았다. 그것으로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에 논거를 깔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더오래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일찍 죽기 위해 몸을 아무렇게나 던지지도 않았다. 오로지 맥박이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는 그것은 훌륭하게 부속이 조합된 기계의 속성이었다. 류를 가끔 떠올렸고 그가 생전에 주의를 준 사항들에 자주 이끌렸지만, 제 몸처럼 부리던 연장으로 인해 손바닥에 잡힌 굳은살과도 같은 감각 외에는, 류를 생각하면서 온몸이 뻐근하게 달뜨고 아파오는 일이 더 이상 없었다.그녀는,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 P255
매운맛 읽고 순한맛 읽으면 순한맛이 재미없어질까 하여 순한맛부터 읽었지만, 결론적으로 어떤 맛일 먼저 읽든 상관없을 듯하다. 표지가 가장 강렬하다는 리뷰도 있던데(도서관 대출 책은 표지가 없어서 실물을 보진 못했다), 기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순하지 않나요.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은 성혜령 작가와 성해나 작가가 함께 있어서 읽었는데, 순한맛의 원픽은 이주혜 작가고, 매운맛의 원픽은 성혜령 작가다. 역시 사람이 가장 무섭다. 조심해, 한 여름에도 서리가 내릴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