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지속력
골든타임 응급처치가 요구되는 외상과 감염질환 그리고 유전질환을 제외하고, 아픔을 일으키는 질환은 대부분 만성질환이다. 삶에서 몸과 마음의 균형이 오랜 기간 조금씩 무너졌다는 말이기도하다. 긴장의 축적이 삶에 깊고 무겁고 밀도 있게 쌓여 있다는 것이다. 수고가 많았다는 것이다. 결국 매일 나를 돌봐 주는 삶, 자기돌봄의 시작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현시점에서 의학은 만성질환의 증상을 완화하는 데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이와 병행하여 몸속 자기돌봄시스템을 회복시켜 주는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의학적 조치와 함께 각자가 해야할 일이 있다. 몸과 마음에 축적된 긴장을 매일 조금씩 이완하는것이다. 그 매일이 실천되면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회복의 단계로돌아서게 될 것이다.
누구나 타고난 몸속 자기돌봄시스템이 있다. 자기돌봄시스템은아픔을 돌아보고 건강을 지속가능하도록 해 주는 건강지속력을만들어 준다. 이 힘은 스스로를 매일 돌봐 줄 때만 발휘된다. - P29

아프도록 수고한 이들은 남다른 열정과 노력으로 달려오면서 오랜 기간 그 동력을 면역에너지에서 빼내어 써 왔다. 나이가 들어 면역이 약해진 것이 아니다. 면역을 위해 써야 하는 에너지를 일을 위해 쓴 것이다. 그것도 오랫동안. 그래서 만성적으로 면역이 약해져 있고, 그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그 수고의 시간이 지나고 아픔이 온 것은, 면역반응이 늦어지고 면역활동이 주춤해졌기때문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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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아이 - 임길택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남기고 간 시 보리 어린이 13
임길택 지음, 강재훈 사진 / 보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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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을, 우는 것들을 사랑하셨던 임길택 선생님이 소천하시기 며칠 전까지 쓰시던 아름다운 시들, 동시들. 어릴 적 방학 때면 가던 시골 풍경이 눈에 선하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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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헬스장에 가는 시시포스, 신도시에 사는 프시케

보행의 황금기를 만든 추동력은 차량으로 무장하지 않고,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겁내지 않고서 탁 트인 공간을 여행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도시와 시골이 전보다 안전해진 시대의 욕망이자 그 안전해진 세계를 간절하게 경험하고 싶어 하는 시대의 욕망이었다. 교외화는도시는 버리고 시골은 방치했다. 오늘날의 이른바 제2차 교외화(집에 지하벙커가 있는 고급주택 동네)는 그 격리 상태를 더욱 심화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보행자 공간이 사라짐으로써 육체와 공간의 관계에 - P409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지난 몇십 년간, 육체와 관련해 아주 이상한 일이일어나고 있다. - P410

일상 공간(출퇴근 길, 상점에 가는 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등)에서 육체를 동원하는 대신, 여가 공간(쇼핑몰, 공원, 헬스장 등)을 새로 마련한다.(목적지까지는 대개 자동차로 이동한다.) 유원지에서 자연 보호 구역까지온갖 공원들은 오랫동안 육체의 여가 공간으로 자리 잡아왔고, 20년 전부터는 헬스장이 마구잡이로 급증했다. 그런데 이런 헬스장에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점이 있다. 걷는 일이 지표종이라면, 헬스장은 몸을 쓰는 일의 멸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자연 보호 구역이다. 자연 보호구역이 서식지를 잃은 종을 보호하는 곳이라면, 헬스장(또는 가정용 운동기구)은 몸을 쓰는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들이 없어진 이후에 몸이 멸종하지 않게 도와주는 육체 보호 구역이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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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도시의 밤거리: 여자들, 성, 공공장소

그녀와 같이 걸었던 병사에게는 용의도, 체포도, 수사도 없었다. 그어떤 형법적 조치도 없었다. 남자들이 길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곤란에 빠지는 경우는 여자에 비하면 적었다. 여자들이 걸어 나갈 자유라는 너무도 단순한 자유를 넘보았다는 이유로 형벌에 처해지거나 위험에 처하는경우가 비일비재했던 배경에는 여자들의 성을 통제하는 것을 중시하는사회가 여자의 보행, 아니 여자 그 자체를 필연적으로 성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 성적이지 않을 때가 없는 존재로 해석해온 정황이 있다. 이 책에서 더듬어본 보행의 역사를 통틀어 주요 인물은 (소요철학자든 플라뇌르든 등산가든) 모두 남자들이었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볼 차례다.
실비아 플래스(Sylvia Plath)가 그 이유를 일기에 적은 것도 열아홉살 때였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내 끔찍한 비극이다. 길에서 일하는사람들, 선원들과 병사들, 술집 단골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데, 익명의 존재가 되고 싶은데, 경청하고 싶은데, 기록하고 싶은데, 다 망했다. 내가 어린 여자라서. 수컷으로부터 습격당하거나 구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암컷이라서.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 남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데, 그렇게 궁금해하면 유혹한다고 오해받는다. 모든 사람과 최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좋을까. 노천에서 자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서부로 여행을 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밤에 마음껏 걸어 다녀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플래스가 남자들을 궁금해한 이유는 남자들에 대해 알아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막 자기의 인생을 시작한 이 어린 여자는 자기보다 자유로운 남자들의 삶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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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도 1월과 마찬가지로 과거가 현재에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었다.

13장 큰길의 시민들: 축제, 행진, 혁명

11월 2일에 ‘망자의 날(Dia de Los Muertos)‘ 기념행사가 열린 곳은 미션 지구 24번가였다. 그해에도 역시 아즈텍 댄서들이 앞가리개와 발목딸랑이와 4피트 길이의 깃털로 차려입고, 맨발로 빙빙 맴을 돌고 쿵쿵 발을구르며 퍼레이드의 선두를 이끌었다. 과달루페의 성모를 앉힌 제단과 아즈텍 신을 앉힌 제단을 짊어진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화장지를 둘둘감은 거대한 십자가를 등에 진 사람들, 얼굴을 해골처럼 칠한 사람들, 불을 손에 든 사람들이 또 그 뒤를 따랐다. 전부 해서 1000명쯤 되는 것같았다. 대형 퍼레이드와는 달리 이런 행사는 거의 모두가 참여자다. - P347

자기 도시를 능숙하게 자기 영토(상징적 영토이자 실질적 영토)로 삼을수 있는 시민들, 자기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 다니는 데 익숙한 시민들이라야 반란을 도모할 수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는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적 권리로서 출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와함께 "사람들이 평화롭게 한 장소에 모일 권리가 보장돼 있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다른 권리들에 대한 침해는 쉽게 인지되는 반면, 자동차 위주의 도시설계, 보행 환경 악화 등 집회 가능성을 차단하는 요소들은 인과관계를 추적하기도 어렵고 시민권의 사안으로떠오르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공공장소가 없어진다면 결국은 공공성도 없어진다. 개인이 시민, 즉 동료 시민들과 함께 경험하고 함께 행동에 나서는 존재가 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시민이 되려면 모르는 이들과 함께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토대는 모르는 이들에 대한 신뢰이잖은가. 공공장소란 바로 모르는 이들과 차별 없이 함께하는 장소다. 공공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현실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공동체적 행사들을 통해서다. - P351

11월 4일, 100만 명이 동베를린의 알렉산더 광장에 모여 깃발과 현수막과 포스터를 흔들었다.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한 친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유는 장벽이무너졌다는 오보가 퍼졌기 때문이라고 말해줬다.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든 탓에 장벽이 정말로 무너지게 됐고, 겁을 먹은 국경수비대는 사람들이 장벽을 넘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벽의 붕괴가 진실이 된 것은 그것을 진실로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인원이장벽 앞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두 발이 쓴 역사였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은 혁명의 해에 일어난 가장 근사한혁명이자 혁명의 해를 마감하는 혁명이었다. (루마니아의 크리스마스 혁명은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그 마법의 해 1989년의 1월,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이 1968년 ‘프라하의 봄‘ 혁명의 압살에 대한 항의 표시로프라하의 심장 바츨라프 광장에서 분신자살한 학생의 20주기 추모 행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1989년 11월 17일은 나치 점령기에 나치에게 살해당한 또 한 명의 체코인 학생 열사의 추모일이었는데, 이날의추모 행렬은 1월 추모 행사 때보다 훨씬 큰 규모였고 훨씬 대담했다. 카렐대학교에서 출발해서 해 질 녘에 공식 일정을 마친 대열은 촛불을 켜고꽃을 꺼낸 다음 행진을 이어나갔다.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반정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11월도 1월과 마찬가지로 과거가 현재에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었다. 바츨라프 광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시위대를 포위하고 곤봉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우르르 옆길로 도망쳤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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