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되지 않았지만 사직서를 냈다. 사직서를 낸 날, 펑펑 울었다. 이를 악물고 입술을 깨물었는데도 눈물이 흘렀다. 도망치듯 외근을 나갔는데, 택시 안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어깨를 들썩였고 흐느꼈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두 택시기사님 모두 내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왜 우냐고도, 무슨 일이냐고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목적지에 데려다주시곤 영수증을 발급해주는게 전부였다. 우느라 이유를 물었어도 말하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휴지는 좀 건네주셨다면 좋았을텐데. 급하게 나오느라 지갑과 핸드폰 밖에 들고 있질 않아 손으로 자꾸 눈물을 닦아야 했으니까.

 

그 날의 나는 엉망이었다.

 

사직서를 내고 펑펑 울고, 회사 근처에 맛집이라 소문난 레스토랑을 찾아가 스테이크를 먹었다. 먹기전에 식전주라고 화이트와인도 시키고 스테이크와 함께 먹기 위해서 레드 와인도 시켰다. 신용카드로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긁어대면서, 오늘의 나는 충분히 이런 대접을 받을만하다고, 나는 나를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에서 주는 압박이 쌓였고, 이제 결국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사직서를 냈지만, 그렇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대출금과 이자 그리고 할부금들은 어떡하나. 퇴직금으로 그 중 일부를 갚을 수 있겠지만, 앞으로는 어떡하나. 스테이크 먹고 싶으면, 술 마시고 싶으면, 책을 또 사고 싶으면 그러면 또 어떡하나. 아르바이트를 구하겠지만, 그걸로 이 모든 게 감당이 될까. 이렇게 그만두는 건 별로 좋을 게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감정이 이기고 하루는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이런 내게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들, 그들에게 나는 내 자신이 방황하는 늙은 영혼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올리브는 침대에 누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 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p.124)

 

 

 

엊그제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3층 직원들을 계단에서 만났다. 인사를 건네고 뭘 먹을거냐 묻는데,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던 신입직원이 과장님, 하고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그가 내게 꾸벅,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네, 라고 대답을 하며 조금 웃었다. 타부서의 대리 역시 과장님 뭐 드시러 가세요, 살갑게 묻는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이발했네요, 라고 말을 건넸다. 예뻐요, 라고. 그리고 몇몇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한 후 회사 건물내의 까페로 갔다. 그곳은 이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커피값을 30프로 할인해준다. 우리 커피나 한 잔씩 해요, 하고 까페로 들어갔는데 거기엔 타부서의 차장님과 부장님 그리고 다른 직원이 있었다. 인사를 하고 주문하기 위해 계산대 앞으로 가려는데, 차장님이 본인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내게 내미신다. 이걸로 해, 라고. 나는 냉큼 차장님의 손에서 카드를 낚아챘다. 네, 라고 대답하면서. 그렇게 커피를 시켰다. 잘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차장님께 카드를 돌려드렸다.

 

금요일 밤엔 전체 회식이 있었다. 아주 맛있는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내가 앉은 자리엔 다른 부서의 신입 사원이 있었다. 사실 나는 아직 그의 이름을 정확히 외우지 못했다. 고기를 먹으며 어, 술이 없나? 라고 할라 치면 그는 어느틈에 소주를 주문했다. 어느정도 술이 돌았을 때, 나는 한 임원의 좋지 못한 광경을 보고 신경이 쓰였다. 내 성격을 아는 다른 직원은 제발 보지 말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고 나는 온통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 더불어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그 때 내 앞에 앉았던 신입이 과장님 자리 바꿔드릴게요, 보지마세요, 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선 보이지만 그가 앉은 자리에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도 소리가 들릴 터. 나는 됐다고 말했지만, 이 모든 작은 일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끼리 2차를 갔다. 거기엔 나와 함께 오래전부터 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들 나에게 어떻게 버티느냐고 했고, 그 중에 한 명은 여기 입사해서 내가 우는 걸 처음 봤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또다시 울었다.  누군가는 내가 어떤 성격으로 어떤 것들을 힘들어하는 지 안다는 게 무척 감사했다. 작은 안부와 인사들이 소중했다. 며칠전에는 퇴근길을 동료와 함께 걸었다. 회사에서 양재역까지는 걸어서 십오분 이상이 걸린다. 천천히 걷는 그 길도 좋았다. 걷다보니 오른쪽에 갈비가게가 아주 많이 나왔다. 여기는 갈비촌인가봐, 하면서 걸었다. 집집마다 가르키며 우리 여기도 와보자, 여기도 와서 먹어보자, 했다. 동료는 내게 그만두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 양재동에 있는 맛있는 집 다 가보자고.

 

 

이런 모든일들이 나를 버티게 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이런 작은 기쁨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맛있는 음식점에 같이 가서 술을 마시자고 하는 동료를, 복도에서 마주치면 꾸벅, 인사해주는 후배들을, 까페에서 본인의 카드를 꺼내어주는 상사들을 내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토록 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나는 조금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사한 새로운 주소로 친구가 핸드로션을 보내왔다. 이사할 때 그리고 짐을 정리할 때 장갑을 끼지 않아 손이 엉망이 되었는데, 이 선물은 무척 감사했다. 다음날에는 옛날 주소로 보내졌던 선물이 새 주소로 다시 왔다. 우체국 택배 기사님께 이사했다고 말하니 새 주소로 보내주신 것. 도착한 선물을 뜯어보니, 오, 거기엔 내가 읽고 싶어서 사야지, 라고 생각했던 책이 들어 있었다. 이 책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아니 대체 어떻게 이게 여기에 들어있는걸까.

 

 

 

 

 

 

 

 

 

 

 

 

 

 

 

 

 

이런게 바로 기적이 아닐까.

 

 

몇 주간 책을 읽지 않는 일상을 보냈다. 책을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일상이었다. 아직 방황하는 마음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상속에서 나는 버틸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것 같다. 나는 그런걸 꽤 잘해내는 사람이니까. 금요일 회식의 내 앞자리 신입 직원이 자꾸 신경쓰인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된 직원인데(한달은 됐나?) 회식의 끝무렵, 그 테이블에 그와 내가 단 둘이 남아서 나는 그에게 하소연을 하고야 말았다. 맙소사. 얼마나 진상이었을까, 그 때의 나는. 대체 왜 하필 나를 모르는 사람을 붙들고 하소연 한걸까. 하아- 너무 진상같은 밤을 보낸것 같다. 뭔가 만회하기 위해 기프티콘으로 커피라도 한 잔 보낼까 했지만, 하하, 나는 아직 그의 이름도 외우질 못했고(--) 당연히 전화번호도 모른다. 게다가, 그게 더 진상의 끝으로 향하는 길일것 같아, 차라리 가만있는 쪽을 택해야겠다. 술은 정말 얌전히 마셔야 해. ㅠㅠ

 

 

 

 

『올리브 키터리지』에는 낭독하고 싶은 아주 많은 부분이 있다. 골라내는 게 무척 힘들었지만, 나는 이 부분을 골랐다.

 

 

 

 

 

중간에 잠깐 삑사리(?) 가 있지만, 후훗, 그냥 가기로 한다.

 

 

 

 

어제 토요일, 엄마랑 둘이 부엌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떡볶이와 파인애플을 안주 삼아 먹었다. 식탁을 치우고 내 방으로 돌아와 책을 좀 오랜만에 읽어보려는데, 아, 너무 졸린거다. 자야겠다 싶을 때, 남동생이 집에 돌아와서는 내 방에 들어왔다. 무한도전을 보면서 캔맥주(500m)를 하지 않겠느냐 묻는다. 그러고 싶은데 너무 졸려, 어떡하지, 고민하는 내게 남동생은 '우리가 이러는게 우리 삶의 깨알같은 재미지 않냐' 란다. 그래서 나는 벌떡 일어나 남동생의 방으로 갔다. 컴퓨터로 무한도전을 보면서 육계장을 안주 삼아 맥주를 한 캔씩 마셨다. 다 마시고 둘 다 꾸벅꾸벅 졸았다. 무한도전을 다 못보고 우리 이제 자자, 하고는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잤다.

 

 

 

우리 삶의 깨알같은 재미, 일상의 작은 기쁨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그러나, 일어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은 견딜만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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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8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8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4-28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3-04-2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 비밀 댓글들이.....^^ 족쇄를 하나 풀으셨네요...그런데 다른 하나의 족쇄가 채워질지도 모릅니다.

마노아 2013-04-29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폭풍같은 나날을 보냈군요. 오늘은 날씨가 꾸물거리며 하늘이 꼬물꼬물댑니다.
그래도 차분히 가라앉은 오늘의 날씨가 다락방님께는 기운을 북돋아 주었으면 해요.
잘 버텼어요. 잘 해냈어요. 그대로 회사에서 나와도, 그대로 회사를 계속 다녀도, 모두 다락방님을 응원해요.
곧 5월이에요. 우리 맛난 것 먹도록 해요. 다락방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어요. 우리 다락방님!

2013-04-29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3-04-2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힘드셨구나..토닥토닥!
부서를 옮겨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요?
나두 젊은 남자들 많은 곳에서 근무하고 싶어라.....여긴 제가 어린편이예요. ㅠㅠ

2013-04-29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3-04-2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많은 생각들이 난무하여 힘든 세월이셨을 듯....
회사를 그만두는 게, 그리고 그만둔 상태로 지내는 게 수월치는 않지만...
다락방님은 언제나처럼 다락방님이니까 잘 해내시리라 믿습니다~^^

비로그인 2013-04-2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예요... ㅠㅠ

우리 삶의 깨알같은 재미, 일상의 작은 기쁨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그러나, 일어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은 견딜만한 것이 된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요....... 힘내세요...다락방님 ..ㅠㅠ

치니 2013-04-2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선택했건, 선택한 다음에는 그 선택이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그렇게 믿는 게 좋단 말 어디선가 들은 거 같아요. 다락방 님이 그만두면 그 회사엔 엄청 큰 타격이겠으나! 다락방 님에겐 또 좋은 일이 기다렸을 거에요. 말씀하신 그대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삶의 깨알 재미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우린 잘 살 수 있을 거에요 ~ :)

마립간 2013-04-2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직할 때의 제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힘내시라는 말 밖에.

하루 2013-04-2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삶의 깨알같은 재미!

달사르 2013-04-2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토닥토닥..

버틴다, 라는 말에 공감이에요. 버티고 버티다가, 힘들면 한 번만 더 버텨보고, 그렇게 또 견뎌내고..
그럴 때 마주치는 소소한 깨알같은 기쁨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만 생각해보면,
그런 기쁨은 그렇게 버티고 난 이후에야 찾을 수 있을려나요? ^^

비 오는 날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로 들려주신 올리브 키터리지, 잘 들었어요. 고마워요.

blanca 2013-04-2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오늘 아침에 이 페이퍼 읽고 글을 남기려다 비가 너무 내리고...이렇게 날이 갠 것을 보고 댓글 남겨요.
다락방님을 오프로는 모르지만 분명 이 순간을 잘 넘기고 도약하리라는 것을 믿어요.
다락방님의 글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진부한 표현이지만 힘 내세요!

기억의집 2013-04-2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잘 다니시는 것으로 결론 난 거죠. 첫 문장 읽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회사 생활이란 게 더럽고 치사함도 덤으로 따라오는 거라....아니꼽더라도 다니는 거죠.
카드로 결제하라도 내미는 상사나 눈꼴시려운 장면 보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신입사원등
이런 사람들 어디 가서 만나겠어요.
물론 만날 수 있겠지만, 조직 생활은 사람 때문에 힘들고
또 사람때문에 견딜 수 있는 문화잖아요. 세실님 말씀대로 다른 부서로 이동 안 되나요?
더 이상 가슴철렁한 소리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소리요.
회사 떠난 자리에 가장 그리운 건 조직 생활 하는 동안 나를 지탱해 주었던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더라구요.
다락방님..... 홧팅~

네꼬 2013-04-2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나 깜놀했네. 남거나 떠나거나 다 잘할 거예요. 어디서든 반짝이는 걸 찾아내는, 어디서나 반짝이는 우리 다락님.

네꼬 2013-04-29 16:24   좋아요 0 | URL
나 써놓고 보니까 이 댓글 맘에 들어요. (뭐래.)

이매지 2013-04-29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길게 얘기하지 않을께요.


이진 2013-04-2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가슴이 철렁했다가 조금은 위로 올라왔어요.
시험이 코앞인데 직장의 신 보고 있어요. 김혜수의 연기를 보며 깔깔대다가도 어느 순간 엄숙해지곤 해요.
사람 관계, 인간 관계라는 것이 다 그렇게 엄숙한 자세로서 대해야 하는 걸 조금은 알아가는 거 같아요. (이 문장은 못 읽은 걸로 해줘요.)
계약직으로서 정유미와 김혜수가 받은 하대를 볼 때면 덩달아 마음이 아파서 엉엉 울고 싶었어요.
다락방님, 아무것도 모르는 저이지만, 어떻게든 위로가 된다면, 한 마디를 하고 싶어요.
파이팅, 힘내세요!

2013-04-30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3-05-0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다락방님 목소리를 완전 접수한 터라 이번엔 떨지 않고 잘 들었어요~귀에 쏙쏙~희~
건지도 듣고 싶고 당연히 새벽도 파도도 듣고 싶고 줌파 라히리도 듣고 싶고요^^
그리고 전 다락방님이 울 때 손수건을 건네주는 손이 되고 싶었어요
다음에 또 눈물이 솟구쳐 오를 때면 제 손을 기억해 주세요..
물론 그럴 일이 없다면 더 좋겠지만 말예요..ㅠㅠ


 
페피타 히메네스 대산세계문학총서 60
후안 발레라 지음, 박종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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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로서는 훌륭한 작품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내가 읽기에 이 책은 지.나.치.게. 착하다. `너무` 해피엔딩이라 초반의 흥미-성직자가 사랑에 빠진다구!!-를 뚝, 반감시켜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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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3-04-2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직자가 사랑에 빠져서 어떻게 됐는데요?

2013-04-25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작나무 2013-04-25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직자는 종종 사랑에 빠집니다. 사람이기 때문이죠.

다락방 2013-04-25 19:28   좋아요 0 | URL
성직자 뿐만 아니라 누구도 사랑에 빠지죠.

Mephistopheles 2013-04-2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나무 새 처럼 그 사랑이 평생 가는 건 아닌가 보네요.

다락방 2013-04-25 19:28   좋아요 0 | URL
아뇨, 그 사랑은 평생 가는데, 그냥 다들 너무 행복하고 잘 되서 말이지요. 킁킁.

자작나무 2013-04-26 08:55   좋아요 0 | URL
평생 가는 사랑과 다들 너무 행복하고 잘 되는 것은 누구나의 소망인데. 킁킁.
 

사무실이 이사를 했다. 나는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사정상 내가 속한 부서는 가장 마지막에 짐을 싸게 되었다. 포장이사에서 갖다 준 박스를 쌓아두고 짐을 싸려는데, 타부서1 과 타부서2 그리고 타부서3 에서 젊은 남자직원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내가 박스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잽싸게 박스를 만들어주었고, 이 박스를 저쪽에 쌓아두라고 하면 냉큼 그렇게 했다. 무거운 짐은 당연히 그들이 포장했고, 내가 박스에 뭐라고 표기를 해달라 하면 역시 그렇게 했다. 눈을 돌리면 그곳이 어디든 젊은 남자 직원들이 있었다. 나보다 키도 훌쩍 크고 힘도 더 센 직원들. 이사를 가야하고 짐을 싸야하고 다시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고 그곳에서 짐을 정리해야 하는 일들은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이 젊은 직원들과 함께 웃으며서 짐을 싸다니, 육체 노동을 하다니,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 나란 인간은 정말이지 어쩔 수 없구나, 하고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 한 명을 만나 연인이 되는 것보다는 이렇게 젊고 근사한 남자들이 떼를지어 몰려있는 공간에서 더 행복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정말로, 거짓없이 남자들을 좋아하는 구나. 아, 이런 깨달음이라니! 그러다가 한 직원이 이삿짐센터 직원들로부터 새로운 걸 보고 배워왔다며 박스 두 개를 연결해 붙인다. 깊어진 박스에는 우산도 무리없이 넣을 수가 있다. 여기엔 다 넣을수가 있어요, 그가 말했다. 이것도 들어갈까요? 물으니 다 들어가요, 한다. 이건요? 물으니 안들어가는거 없어요, 한다. 이 말에 조금 웃으려는 찰나, 내 뒤에 있던 다른 직원이 이어 말했다.

 

과장님도 들어가겠는데요?

 

아- 나는 이런식의 농담이 너무 좋아. 미치겠어. 씐나!! 역시 세상은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아름다워. 그래야 살맛이 나!!

 

 

그러나 이렇게 신나는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이삿짐을 싣고 새로운 사무실로 옮겨 짐을 푸는 과정에서 이제 나의 육체는 힘이 들기 시작했다. 다리가 부서질 것 같고 목소리가 잠긴다. 늦은밤까지 일해도 짐을 다 풀지 못한다. 또한, 아직 싣고 오지 못한 짐들도 있다. 다음날도 오전 일찍 예전 사무실로 가서 다른 남자직원과 둘이 짐 나가는 걸 확인한다. 힘들다.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하면서도 어제 늦게까지 짐을 풀고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한다. 점심과 저녁은 물론 양껏 맛있는 걸로 잘 먹고, 또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바닥을 쓸고 닦는다. 몸이 부서질 것 같다. 저녁을 삼겹살로 먹으면서 소주와 맥주를 마신터다. 집으로 돌아가는 늦은 길, 택시를 타고 간다. 집 앞에 내려 편의점에 들렀다. 캔맥주를 몇 개 샀다. 집으로 돌아와 자정을 넘긴 시간, 눈이 마구 감기고 피곤에 쩔었지만 나는 맥주캔을 딴다. 밥과 김치찌개를 그릇에 담는다. 꼭 먹고 자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점심 무렵 일어나 밥을 먹고 또다시 침대에 널브러졌다. 오후에 겨우 침대에서 빠져나와서는 시장에 가 떡볶이를 샀다. 막걸리도 샀다.

 

 

 

 

 

 

며칠간 통 신문도 보질 못했다. 그래도 토요일자 신문은 놓칠 수가 없지. 커피를 내려 내 방으로 가져와 토요일자 신문을 펼친다. 거기서 흥미로운 책을 만나게 된다.

 

 

 

 

 

 

 

 

 

 

 

 

 

신문에 실린 이 책 속의 사진은 두 컷이었다.

 

 

 

 

 

 

첫번째 사진의 제목은 [유쾌한 모녀의 산책] 이고, 두번째 사진의 제목은 [사랑은 어떤 환경도 이긴다] 이다. 이 책을 넘기노라면 어쩐지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지하철역, 횡단보도, 술집, 도서관, 사무실, 욕실 등 우리 주위의 공간에서 최고 무용수들이 춤추는 순간들을 포착해서 삶의 진정한 모습들을 담아낸 사진집이다. 작가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진 사진들을 엮어 2012년에 출간한 이 사진집은 곧바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고, 반스 앤드 노블에서 선정한 ‘그해 최고의 책’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용수들의 홍보용 사진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곧 열정으로 가득한 세상을 반영하는 예술로 발전했다. 사진작가가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사진들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의 언론과 블로그에 소개되었고, 이 사진들을 묶은 사진집은 출간되자마자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어판에서는 옮긴이 겸 카피라이터가 사진의 원제목을 한국인의 정서에 맞도록 새롭게 붙여 완성도를 높였다. Dreaming, Loving, Playing, Exploring, Grieving, Working, Living 등 일상을 구성하는 7가지 키워드로 분류된 사진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하고 우리의 무뎌진 가슴을 뛰게 할 것이다.

 

펼친 부분 접기 ▲

 

그리고 내가 힘들고 바빴던 지난 며칠, 심규선의 새앨범도 나왔다.

 

 

 

 

 

 

 

 

 

 

 

아, 기대돼.

 

 

접힌 부분 펼치기 ▼
  • 1-1. 사과꽃
  • 1-2. 그런 계절
  • 1-3. 실편백나무
  • 1-4. 5월의 당신은
  • 1-5. 담담하게
  • 1-6. 그런 계절 (Inst.)
  • 1-7. [Bonus Track] 오스카 (CD Only)
  • 1-8. [Bonus Track]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 (Early Demo Ver.) (CD Only)

 

펼친 부분 접기 ▲

 

 

조금전에야, 내 방 한구석에 처박힌 알라딘 택배박스를 풀었다. 거기에는 내가 주문했던 책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간 택배를 열 힘조차 없었다. 지난 며칠, 나는 그간 누군가에게 선물했거나 중고샵에 팔았던 책들중 몇 권을 다시 샀다. 그렇게 내게 배달된 책들중에는 '에이미 벤더'의 『레몬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이 있었다. 이건, 그 기념.

 

 

 

 

오글오글 ㅋㅋㅋㅋㅋ 팟캐스트로 책을 읽어주겠다는 야심찬 계획하에 마이크를 사 두었지만 한 번도 써먹질 못했다. 컴맹에 기계치인 내게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youtube 에 동영상을 찍어올리는 일. 하핫. 내가 사 둔 마이크는 썩고있다..

 

 

저 위에 춤 추는 책도, 심규선의 앨범도, 짐이 다 정리되는대로 그래서 내가 여유를 찾는대로 주문해야겠다. 아, 지금은 너무 힘들어. 다시 기절할거야.

 

 

그리고 지난 며칠, 내가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때, 나는 내내 라디를 들었다.

 

 

 

 

 

 

 

 

 

 

 

 

 

 

 

 

 

나는 이제 지하철을 타면 강남역이 아니라 양재역에서 내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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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4-26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그러니까 기억나지도 않는 예전에 다락방님 목소리 듣고싶다고 했을때 생각나요(저 그런적 있지 않았어요? 있었던 것 같아요, 상상속으로 그랫거나!). 그때는 몇 년 후에 소원이 이뤄질줄 몰랐.. 그러니까 그 이후에 제가 프레이야님 목소리 듣고 싶다고 한 것도 기억나요! 내친김에 다들 사진이랑 목소리 올려주는 코너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ㅎㅎ

음, 다락방님 목소리 기억속에서 상상한 거랑 많이 달라요. 글 보고 있으면 목소리나 말투 그런 게 막 상상되지 않아요? 일상에서 서울억양 들을 일이, 보험가입전화나 카드회사전화밖에 없는 저로서는 어쩌면 아무의 목소리도 상상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위에 네꼬님이 다르다고 하시긴 하지만, 제가 녹음해서 제 목소리 들어보면 저는 엄청 징징대고 튀는 억양과 말투로 말한다는 걸 깨달아요. 그러니까 녹음해서 들으면 자기 목소리가 다르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여튼 소원, 몇 년만에 이뤄주셔서 고마워요! (이런 인사 뭐지..푸핫핫)

내일은 다른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행복한 오후!!

다락방 2013-05-05 22:58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아이리시스님 특유의 밝음이 이 댓글에서 팡팡 넘치네요.

네, 목소리가 제가 생각하는 거랑 달라요. 그러니까 저는 제가 지적이고 차분하고 섹시한 목소리일거라고(응?) 나름 생각했는데, 녹음해서 듣는 제 목소리는 제가 상상하던 것과 아주 다르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그래서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여하튼 자기 목소리를 이렇게 자기가 듣는 건 되게 오글거리는 짓인것 같아요, 저에게는 말이지요. 하핫.


어떻게, 일주일이 넘게 지났는데 다른 소원은 이뤄졌나요, 아이리시스님?

매일매일 하나의 소원이 이뤄지며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 모래요정 바람돌이 생각나네요. 하루에 하나씩 소원을 들어주는!!

현짱 2013-04-30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글 잘쓰시네요.
남녀가 함께하는 세상... 좋네요. ㅎㅎ
책에대한 리뷰보다 지난 며칠에 대한 리뷰가 더 좋았던 1인. :D

다락방 2013-05-05 22:58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좋게 읽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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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처음, 밀크셰이크

어제 늦은 밤, 월플라워 OST 시디를 틀어두고 2번 트랙을 듣는데 너무 신났다. 영화속에서 샘과 패트릭이 거실춤 추던 장면이 생각나서.






으아악 너무 좋아. 완전 사랑스러워. 중간에 저 광고 없는 영상을 찾고 싶었는데 못찾고 ㅠㅠ 이 영상을 보노라니, 이 영화 DVD 살까 싶어진다. 아 너무 좋아. 흑흑. ㅠㅠ













이 영화 참 좋아요. 정말 좋습니다. 진짜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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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4-17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사실 좀 된 영화인데 말이죠...그래도 헤리포터의 주연배우들이
다른 영화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대견해 보입니다.

다니엘 레드클리프는 연극 에쿠우스에서 꽤 파격적으로 나와주고(다벗고)
루퍼드 그린트의 2006년작 "드라이빙 레슨"에서도 잘 해주고요...

다락방 2013-04-18 11:43   좋아요 0 | URL
작년에 나온 영화던데...우리나라는 올 해 개봉했고요. 주인공 세 명이 너무너무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모두가 한결같이 캐릭터가 대박 사랑스러어요. 흑흑.

참고로 전, 해리포터 시리즈를 하나도 읽지도, 보지도 않았습니다. 영화와 책 모두. ㅎㅎ

단발머리 2013-04-17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다락방님 이 앞 페이퍼 보고야 알았네요.

<케빈> 때문에 봐야겠는데요. 케빈.....
아.... 내가 좋아했던 그 ..... 그..... 케빈이 ....

이렇게 잘 컸구나!!!

와앗!!!! 엠마 왓슨.... 춤.... 춤............

다락방 2013-04-18 11:43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혹시 케빈..을 헷갈리는 건 아니신가요? 케빈은 열세살의 케빈이 아니라 케빈에 대하여의 케빈..인데 말이지요. 쿨럭.

저 엠마 왓슨 춤 영상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봤네요. 희희.

단발머리 2013-04-18 16:11   좋아요 1 | URL
나 어쩔~~~~~~~~ 엉엉....

자작나무 2013-04-1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에서 계속 상영중이로군요 봐야겠습니다

다락방 2013-04-18 11:44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정말 올해 손에 꼽을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자작나무 2013-04-19 09:55   좋아요 0 | URL
전 이 영화를 보면 슬플 것 같아요
전 감수성이 30대 후반이거든요
그래도 봐야겠어요 다락방님이 좋아하는 영화니까

야클 2013-04-1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락방님의 감수성은 20대 초반이시군요. ^^




외모처럼.....

다락방 2013-04-18 13:19   좋아요 1 | URL
어머! 야클님도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몰라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작나무 2013-04-2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글씨 없는 Come on Eileen 영상이예요
서반아어 자막이 있지만...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LJdfnEAS5Y0
 
그런 이야기엔 나도 울어.

"괜찮아?"

"어‥‥"

"목마르니?"

"어‥‥"

"뭐 마시고 싶어?"

"밀크셰이크."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어.

"뿅 갔군."

"찰리, 배고프니?"

"어‥‥"

"뭐 먹을래?"

"밀크셰이크."

내 대답이 전혀 웃기지 않는 것이었다면 그애들이 그토록 왁자지껄하게 웃지는 않았겠지? 그때 샘이 내 손을 잡아끌며 일으켜 세웠는데 방바닥이 어질어질하더라.

"가자. 밀크셰이크 만들어줄게." (p.66)



















찰리는 파티에 갔다가 밥이 건넨 브라우니를 먹는다. 그런데 그 브라우니에는 대마초가 들어있었다. 찰리는 당연히 뿅가고 사람들은 찰리앞에 모여서는 그런 찰리를 보고 웃는다. 이에 샘은 밥에게 화를 내며, 찰리가 먹고 싶다는 밀크셰이크를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무척 좋았는데, 그건 샘이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큰 통을 꺼내고 뚜껑을 열어 아이스크림주걱으로 크게 덩어리로 퍼서는 믹서기에 넣고 우유를 붓고 믹서를 돌리는 장면이 바로 눈앞에서 보여졌기 때문이다. 밀크셰이크의 맛이 입 안 가득 퍼지는 느낌. 그보다는 그 달콤한 것을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들어주는 바로 그 느낌이 생생히 전해진다고 해야할까.



샘은 나를 부엌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불을 켰어. 이럴 수가! 불빛이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밝은 거야. 마치 낮에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왔을 때, 내리죄고 있는 눈부신 해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지. 샘은 아이스크림과 우유 그리고 믹서를 찾아냈고, 내가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모퉁이를 돌아가라고 햇어. (p.67)



찰리는 샘을 좋아한다. 그런 샘이 찰리를 위해 밀크셰이크를 만들어줬다. 그 맛은 어땠을까?



내가 먹어본 것 중에서 제일 맛있는 밀크셰이크였어. 너무 맛있어서 겁이 날 정도였다니까. (p.68)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 [라스트 나이트] 에서, 여자의 남편은 여자와 자신을 위해 달걀 요리를 한다. 늦은 밤, 아내와의 사이에 흐르는 서먹하고 어색하고 나쁜 기운을 떨쳐버리기 위해 그는 프라이팬을 꺼내고 달걀을 깨뜨리고 우유를 넣고 마구 휘젓는다. 그렇게 접시에 그 따뜻한 달걀 요리를 담고 오렌지쥬스를 따라준다. 그들은 그 요리를 나눠 먹으면서 대화를 시도한다. 


나는 그 장면이 무척 좋았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을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 지독하게 낭만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따뜻하기도 하고. 나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서 같은 상황이 온다면 사발면에 물이나 부어주겠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 요리 한 두가지쯤은 배워둬야 하는게 아닐까 싶어졌다. 영화 월플라워 에서도 마찬가지, 샘이 만들어주는 밀크셰이크는 맛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사먹어 보지 못했던 밀크셰이크를 사먹고 싶어졌다. 만들어 먹어볼까, 도 생각했지만 그러려면 아이스크림도 사야하고..그냥 한 잔 사먹는게 간단하겠다 싶어져서, 어제 백화점에 들른터에 지하에 있는 버거킹에 들렀다. 스타벅스에서는 밀크셰이크를 본 기억이 없어서 버거킹에 갔는데, 버거킹에도 밀크셰이크는 없었다. 아주 오래전에 여동생이 먹고 싶다고 해서 롯데리아에 들어가 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서 스맛폰에 대고 롯데리아 밀크셰이크 라고 검색해봤다. 딸기 셰이크와 초코 셰이크까지 있더라. 나는 롯데리아로 향했다. 그리고 밀크셰이크를 주문했다. 바닐라 맛이었다. 그리고는 자리를 잡고 앉아 창 밖을 보며 밀크셰이크를 먹었다. 기념 사진도 한 장 찍어두었다. 그런데 별로, 맛이 없었다. 굉장히 저렴한..맛이라고 해야하나. 쩝.. 나중에 한 번 만들어 먹어 봐야겠다. 아이스크림이랑 우유만 넣고 갈면 되는거겠지?




영화도 책만큼 좋았다. 아주 잘 만들어졌다. 나는 눈물을 닦기도 했다. 해리 포터를 본 적은 없지만, '엠마 왓슨'은 해리포터로부터 제대로 빠져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리 역의 소년도 매우매우 만족스러웠고. 무엇보다 '에즈라 밀러'는 대단한 발견이었다. 나는 이 배우가 [케빈에 대하여]에 나온 그 '케빈' 이란걸 알고 있엇는데, [월플라워]에서의 패트릭 역을 무척 잘 해줬고, 이 배우는 신기한게, 케빈 역시 잘 해낼 것 같은거다. 무슨 역을 맡겨도 다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만큼 아주 강한 개성을 가진 배우같았다. 무엇보다 웃는 모습이 너무 해맑아서 나도 같이 웃고 싶다. 영화속에서 간혹 패트릭이 활짝 웃는 장면이 있는데, 그럴 때 에즈라 밀러는 정말이지, 온 얼굴이 웃는다. 마주 웃어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주 매력적인 배우다, 아주.



극중에서 찰리와 사귀는 메리 엘리자베스가, '세상에 마초들이 가득한데 네가 내 남친이 되다니!' 하고 감탄하는 장면이 있다. 확실히 찰리는 마초와는 전혀 다르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마초도 나쁘지 않지만(응?) 메리 엘리자베스의 감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제는 [백년의 유산] 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이정진이 자신의 약혼식에 가서 파혼을 선언했다. 그의 약혼녀(가 되기로 했던 여자)는 그것을 다른 여자인 유진이 그의 앞에 자꾸 왔다갔다거려서라고 생각하고,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엄마와 오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파혼을 당한 이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죄다 남 탓이라고 생각한 것. 유진이 회사를 옮기면, 자신이 집을 나오면, 그렇다면 그가 자신을 봐줄까? 그 날 저녁, 이정진은 그녀를 불러낸다. 그녀는 그에게 도대체 왜 파혼하는거냐며 이유를 묻는다. 우리 엄마 때문이냐, 오빠 때문이냐, 자기가 유진을 모함했기 때문이냐, 하면서. 그러나 이정진은 그녀에게 솔직히 말한다. 너에게 마음이 가질 않는다고. 그리고는 이내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너가 궁금하지 않아.

너를 알고 싶지 않아.



아, 진짜 완전 가슴에 바람이 휙- 분다. 갑자기 나는 오래전의 드라마인 [내 이름은 김삼순]을 떠올렸다. 삼식이(현빈)가 삼순(김선아)에게 이것저것 묻자 삼순이가 삼식이에게 그랬다. 그런거 묻는거, 그거 관심이라고. 관심이 없다면 그런거 묻지 말라고. 이 말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어제는 갑자기 훅- 왔다. 궁금하지 않고, 알고 싶지 않다고 하니, 상황이 종료된 게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게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 대체 어떻게 억지로 궁금해하고 억지로 알고 싶어한단 말인가.




그러고보니 내가 상대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궁금한 마음에 끊임없이 질문했던 건, 이제 아주 오래전의 일이구나. 그 때는 왜 그렇게 궁금한게 많았을까? 왜그렇게 알고 싶은게 많았을까? 내가 한 만큼의 질문을 그도 내게 똑같이 돌려줬는데, 왜 한 쪽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한 쪽은 아니라고 했을까? 어느 한 쪽은 분명 머저리..인걸까?





오늘은 피츠제럴드의 겨울 꿈을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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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e on eileen wallflower
    from 마지막 키스 2013-04-17 09:27 
    어제 늦은 밤, 월플라워 OST 시디를 틀어두고 2번 트랙을 듣는데 너무 신났다. 영화속에서 샘과 패트릭이 거실춤 추던 장면이 생각나서.으아악 너무 좋아. 완전 사랑스러워. 중간에 저 광고 없는 영상을 찾고 싶었는데 못찾고 ㅠㅠ 이 영상을 보노라니, 이 영화 DVD 살까 싶어진다. 아 너무 좋아. 흑흑. ㅠㅠ 이 영화 참 좋아요. 정말 좋습니다. 진짜요. ㅠㅠ
 
 
자작나무 2013-04-1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나는 너를 궁금해해 나는 너를 알고 싶어
2. 너는 나를 궁금해해 너는 나를 알고 싶어해
3. 나는 너가 궁금하지 않아 너를 알고싶지 않아
4. 너는 나를 궁금해하지 않아해 너는 나를 알고싶지 않아해

-1.2.3.4는 항상 어긋납니다.그것이 인생.

다락방 2013-04-18 11:37   좋아요 0 | URL
간혹 어긋나지 않을 때도 있죠. 그것 또한 인생이고요.

마노아 2013-04-1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크 쉐이크 내가 만들어 주고 싶어요. 그러나 나도 롯데리아 밀크쉐이크 밖에는 먹어본 적이 없어요.
영화 속에서 아이스크림에 우유만 넣고 믹서로 돌리던데, 저는 거기에 뭐가 더 들어가야 되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때 떠오른 게 사이다였는데, 사이다가 정말 들어가는지는 몰라요...;;;;;;

다락방 2013-04-18 11:38   좋아요 0 | URL
음..사이다 들어가면 별로 안좋을것 같아요. 나중에라도 내가 혹시 해 보면 말해줄게요. 맛이 어떠했는지. ㅋㅋ 언제든 한 번 해보고, 그리고 가장 잘 하는 음식으로 밀크셰이크라고 답하겠어요!! 불끈!! ㅎㅎㅎㅎㅎ

레와 2013-04-16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한 연인]에서도 케이트가 팅커를 위해 달걀 요리를 해주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장면도 따뜻하고 좋았는데..
달걀 후라이 넣은 샌드위치 먹고 싶다.ㅎㅎㅎㅎ


사랑이 어느 한쪽의 노력으로 되는거라면, .....

다락방 2013-04-18 11:39   좋아요 0 | URL
맞어, 맞어, 우아한 연인에서도 그랬어!! 아웅 너무 좋아. 그 날 팅커랑 케이트랑 키스도 하잖아. 흑흑. 아우 ㅠㅠㅠㅠㅠㅠㅠㅠㅠ역시 달걀은 키스를 부르는 음식인가..(응?)

난 햄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고 싶어요. ㅎㅎ

아무개 2013-04-1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도 밀크쉐이크는 롯데리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어본듯 하네요...


급 질문이요. 다락방 님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할일은 어떻게 결정해요?
뭐든 해보고 나서 후회한다? 아님 후회할짓은 안한다? 아님 그때그때 달라요?? @..@

다락방 2013-04-18 11:40   좋아요 0 | URL
아니, 아무개님. 왜 아무개님으로 닉네임을 바꾸셨나요?

저는 대부분 하고 후회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안하고 후회하면 후회가 곱이 되는것 같아서요. 여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젠 안 그러려고 하는데..성격은..어디 가지 않으니까 또 어떨지... 가장 적절한 답은 '그때그때 달라요' 가 되긴 하겠지요. 왜요, 아무개님? 이런 질문은 왜 하신 거에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지금 아무개님에겐??

단발머리 2013-04-17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크쉐이크는 수제가 맛있지만, 굳이 말씀드리고 싶네요.

롯데리아 보다는 맥도날드가 맛있습니다요~~~

다락방 2013-04-18 11:40   좋아요 0 | URL
오오 맥도날드에 밀크쉐이크가 있다는거죠. 오케바리 접수. 거기서도 한 번 먹어보겠어요. 빠샤!

비로그인 2013-04-17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닐라 아이스크림 푹 떠서
우유50ml, 발렌타인1티스푼, 설탕 듬뿍 넣은 고농축 커피 50ml 넣고
만들어 볼려구요~ㅎ~
에즈라 밀러, 시티 아일랜드에서도 귀여웠어요 : )

다락방 2013-04-18 11:41   좋아요 0 | URL
오, 굉장히 근사해 보이는 레시피네요?? 설탕..은 좀 빼도 될것 같아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있으니까. 아, 그전에 일단 아른님의 평 부터 들어보고. 만들어보고 맛 보신 뒤에 꼭 알려주세요! 약속~

관찰자 2013-04-18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선 가게에 무려 '밀크쉐이크' 메뉴를 추가했다니까요?
가게에 이번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기계를 들여놨는데,
오, 이 페이퍼 보니까 '어라, 아이스크림 뒀다 뭐해? 밀크쉐이크나 만들어야지!' 했다니까요?

밀크쉐이크가 여름 대박 상품이 되거든,
그것은 순전히 <월플라워> 때문.
이 아니고, 히히.
다락방님 때문이에요.^^

다락방 2013-05-24 13:05   좋아요 1 | URL
관찰자님, 밀크셰이크는 판매하고 계신가요, 지금?
대박 상품이 되어서 매출이 뻥뻥 터져야 될텐데요. 므흐흐흐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