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는 일엔 어느새 무덤덤해졌다. 정작 견디기 어려운 건 수술을 받은 친구들이 이십대로 돌아가는 바람에 혼자가 되고 만 외로움이었다. 인간은 이제 노화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 깊게 파인 주름, 드문드문 검버섯이 올라온 피부, 굽은 등허리 같은 것들을 본 적이 없다. 만약 노인이 길거리를 지나다닌다면 동물원우리를 탈출한 원숭이와 다름없는 볼거리가 될 것이다.
수술을 받지 못한 노인들은 선글라스를 쓰거나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최대한 얼굴을 가린 채 해가 지고 난 뒤 돌아다니는 쪽을 택했다. 사람들의 혐오스런 눈빛을 견딜 자신이 없는 것이다. 다들 젊음을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실은 죽기 전에 모두 노인이 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셈이다. - P8

나는 노인들이 왜 젊어져야 하는지 묻고싶었다. 또 저기 수술실 침대에 누운 젊은이가 왜 자기 건강을 해쳐야만 생존이 가능한 건지도 알고 싶었다.
우리는 왜 늙어서는 안 될까? 길거리에 늙은이들이 돌아다니도록 왜 그냥 놔두지 않는가? 피부가 늘어지는게 흉하다면 아기에게 근육이 없는 것 또한 괴이해 보여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전염되지도 않는 검버섯을 누구를 위해 제거해야 하느냔 말이다. 나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미치광이 취급만 받을 뿐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 P22

나이 든다는 것은 축복이다. 노인은 자기가 산 생만큼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 피부가 거칠어지고 시력이 나빠지고 이가 빠지는 일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기 위한준비 과정일 뿐 이겨내야 할 질병이 아니다. 노화를 혐오하게 만들어 젊음을 팔게 하는 호르몬 체인징 수술은의학계에 돈만 벌어다 줄 뿐 인류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도움은 커녕 제 삶을 살아야 할 젊은이들의 생을 통째로 앗아가는, 이기적이고 콧대 높은 의학기술의 몹쓸 진보다. 호르몬 체인징 수술로 인해 나는어머니를 잃었다. - P146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5-04-29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6쪽 인용문 때문에 이 책 궁금해지네요ㅠㅠ 저도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25-04-29 12:42   좋아요 1 | URL
책은 얇고 금세 읽힙니다. 저는 [서브스턴스] 생각난다는 추천에 읽었는데, 음 그거랑은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는 혐오를 소재로 계급과 빈곤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여겨집니다.

관찰자 2025-04-2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Y존 필러‘와 맞닿아 있네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대학생 때 봤던 <섹스 앤더 시티>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항상 연하만 만났던 사만다가 자신의 음부의 털을 염색하는 일화가 있었는데, 그때는 저게 뭘까, 유행인가? 아니면 왁싱처럼 개인의 기호에 따라 염색을 하는건가 싶었거든요. 근데 그 에피소드의 후반에서 나오듯이 흰색 음모를 염색하는 거여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요? 생각해보면 머리카락이 희어지면 몸에 있는 다른 부위의 털도 희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나이 들어 감에 따라 몸도 변한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주 이야기 되어 졌으면 좋겠어요.

다락방 2025-04-29 12:44   좋아요 1 | URL
세상이 변하면 나 혼자 꼿꼿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자식은 과열교육에 합류하도록 두지 않아, 라고 해도 막상 학교 보내고 여기저기서 학원들 보내는 걸 보면 우리 아이만 뒤쳐질까봐 보내게 되잖아요. 이 책에서도 초반에 나오는데, 노화는 자연스러운것이라 받아들이려고 하고, 오히려 호르몬 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인물 조차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호르몬 치료를 하고 거리에 노인이 없어지니 어쩔 수 없이 나도 해야겠다, 하고 하게 되거든요. 와이존 필러도 맥이 다른듯 하면서도 당연히 비슷한데, 그렇게 하는 것이 너의 질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그것은 너의 파트너에게 더 큰 만족을 줄것이다, 라는 몇 번에 걸친 세뇌가 결국 병원으로 이끈게 아닐까 합니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면서요. 휴 세상 살기 진짜 너무 빡세지 않나요 ㅠㅠ
 

나는 겁쟁이가 아니었지만, 머리를 팔러 다니는 불그스름한 낯빛의 이 악한에 대해서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무지는 두려움의 아버지다. 이 낯선 자 때문에 완전히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나로서는, 솔직히 말해 그가 한밤중에 내 방에 몰래 잠입한 악마만큼이나 무서웠다. 실은 그가너무 무서워서, 그에게 그냥 말을 걸어 그의 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요구할 정도의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 P71

이보다 더 의미로 가득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설교단이야말로 이땅에서 가장 선두에 자리한 것이며, 나머지 모든 것은 그 뒤를 따르니 말이다. 설교단이 세상을 이끌어나간다. 하느님의 성마른 노여움이 제일 먼저 발견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니, 뱃머리는 최초의 맹공을 견뎌내야만 한다. 순풍이나 역풍의 신에게 부디 순풍을 보내달라고 처음으로 기원하는 곳도 바로 그곳이다. 그렇다, 세상은 출항한 배와 같고, 그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설교단이 바로 그 배의 뱃머리다. - P99

"아니, 지금 저 인간이 대체 뭐라고 떠드는 거야." 펠레그가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넣은 채 선실을 당당히 가로지르며 외쳤다. "다들 저인간이 하는 말 좀 들어보라고. 한번 생각해봐! 당장이라도 배가 가라앉을지 모르는 판에 ‘죽음‘과 ‘심판‘이라고? 응? 돛대 세 개가 전부 뱃전을 처박아 계속해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대고, 앞뒤 좌우 할 것 없이 사방에서 파도가 우리를 덮쳐오는데, 그 와중에 ‘죽음‘과 ‘심판‘을 생각한다고? 헛소리! 그럴 때 ‘죽음‘에 대해 생각할 여유 따윈 없어. 에이해브 선장과 내가 생각했던 건 바로 ‘목숨‘이야. 어떻게 하면 선원들을 모두 살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임시 돛대를 세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항구로 갈 수 있을지, 그런 게 내가 생각했던거야." - P186

만일 내가 나자신에게 완전히 솔직했더라면, 배가 망망대해로 나가자마자 철저한 독재자로 변할 사람을 단 한 번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이렇게 긴 항해에 나선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의심이 들더라도, 그 문제에 이미 관여하고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조차 그 의심을감추려고 저도 모르게 애쓰곤 하는 법이다. 나의 경우가 딱 그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P196

피쿼드호의 나머지 선원들에 대해서는, 오늘날 미국의 포경업계에 평선원으로 고용된 수천 명의 사람들 중 미국 태생은 둘 중 하나도 채 되지 않는 반면, 간부 선원들은 거의 다 미국인이라는 사실만 말해두도록 하자.
이 점에서 미국 포경업계는 미국의 육군과 해군과 상선, 미국의 운하와 철도 건설을 위해 고용된 토목 기술자들의 경우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모든 경우에서 미국 토박이들은 관대하게 머리를 제공하고, 나머지 나라 사람들은 아낌없이 근육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 P2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부분의 사람은 만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잊힌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은 공백이 길어질수록 더욱 신비로워진다. - P30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5-04-0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칠봉아!!!!!!!!!!!!!

다락방 2025-04-03 14:14   좋아요 1 | URL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기 있긔없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 평균율에 대한 강의를 들었을 때 수민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평균율은 순정률을 보완하기 위한 계책이다. 순정률은 각각의 화음이 절대적인, 변치 않는 비율을 갖는다는 생각에 기초하여 만든 방식이다. 이 순정률을 대입해 징검다리식으로 음을 조율하다보면 열한 개의 소리는 완벽할지 몰라도 마지막 음은 귀에 듣기 거북할 만큼 본래 소리에서 크게 어긋나게 된다. 이 결함을 모든 건반에 조금씩 떠안겨 일반인의 귀에는 어긋남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절충하는 방식이 바로 평균율이다. 열두 개의 건반이 결함을 조금씩 나눠 가졌기 때문에 각각의 화음은 순정률만큼 완벽하진 않지만, 모든 음이 무난히 좋게 들린다.
수민은 원장의 설명이 이솝의 교훈적인 우화 같다고 생각했다. ‘고통의 분담‘이니 ‘다수의 행복‘이니 하는 문구가떠오르기도 했다. 음악은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수민에게는 왠지 김빠지는 사실이었다. - P1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는 한 줄로 늘어선 자작나무들, 움직임이 없는 노란색과초록색 잎사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하얀 나무껍질을 바라보았다. ‘죽다니, 내일 내가 죽임을 당하다니, 내가 존재하지않게 되다니...... 이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되다니.‘ 그는 이 삶 속에 자신이 없는 것을 생생히 그려 보았다. 그러자 빛과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이 자작나무들, 이 뭉게구름, 이 모닥불 연기,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앞에서 느닷없이 변하여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무언가로 보였다. 싸늘한기운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헛간 밖으로 나가서 이리저리 거닐기 시작했다. - P403

게다가 마리야 공작 영애를 더욱 두렵게 한 것은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 이후(심지어 그 이전부터, 그녀가 무언가를 기다리며 아버지 곁에 남았을 때부터가 아닐까?) 그녀 안에 잠들어 있던, 스스로도 잊고 있던 모든 개인적인 갈망과 희망이 그녀 안에서눈을 떴다는 점이다. 수년 동안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
즉 아버지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생각, 심지어 어쩌면 사랑과 가정의 행복을 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악마의 유혹처럼 끊임없이 그녀의 상상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리 떨치려 해도 그 일 이후 이제는 자기 인생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이 머리에 떠올랐다. 악마의 유혹이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도 그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것에 저항할 유일한 무기가 기도라는 것을 알았기에 기도를 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기도하는 자세로 서서 이콘을 바라보며 기도문을 낭송했지만 도저히 기도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순간 다른 세계가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느꼈다. 고단하고도 자유로운 활동이 있는 세속적인 세계, 자신이 이제까지 갇혀 있었고 기도가 최고의 위안이던 정신적인 세계와 정반대인 세계였다. 그녀는 기도할 수 없었고 울 수도 없었다. 세속의 고민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 P273

75) 포킨은 예카테리나 대제의 정부가 되어 권력을 손에 쥐었다. 예카체리나 대제의 애정이 시들해진 뒤에는 자신이 직접 젊은 귀족들을 골라 대제와이어 줌으로써 권력을 이어 갔다고 한다. 노공작의 회상 장면은 그가 젊은 시절에 예카테리나 대제의 정부였음을 암시한다. - P223

스스로에게는 자기 의지에 따른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각행동도 역사적인 의미에서 보면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모든 과정과 연관되어 있고 태초 이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 P21

나폴레옹이 권력에 집착해서, 알렉산드르가 단호해서, 영국의 정책이 교활해서, 올렌부르크 대공이 모욕을 당해서 수백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죽이고 괴롭혔다는것은 우리로서 납득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 살인과 폭력이라는 사실 자체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어째서 대공이 받은 모욕 때문에 수천 명이 유럽의 다른 쪽 끝에서 쳐들어와 스몰렌스크현과 모스크바현 사람들을 죽이거나 유린하고 그들 자신도 죽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 P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