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 머무르면서 1박 2일은 드레스덴에 가보기로 했다.
혼자 가는 것이니만큼 검색해가면서 기차표 예매앱도 설치하고 티켓 예매를 하면서 채경이한테 물어보고 그렇게 티켓 예매도 다 해두었다. 호텔 예약도 물론 해두었다. 호텔은 드레스덴 힐튼이었다. 다 힐튼으로 가는거야! 프라하 힐튼에서 프라하 중앙역까지 걸어서 답사를 가보자 싶어 가보았는데, 걷는거야 무리없이 걸을 수 있었지만 와- 기차역이 너무 큰거다! 게다가 플랫폼도 여러개이고.. 나는 과연 이걸 탈 수 있을까, 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침 08:28 열차였는데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최소한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플랫폼을 찾을 수 있겠지, 그러면 일곱시 반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혹시 모르니 일곱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나가자, 고 계획해두었다. 화장실 가느라 허둥대기 싫어 아침은 먹지 않은 채로 오전 일곱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내가 지금은 체크아웃을 하지만 내일 다시 체크인 할거거든, 내 수트케이스 좀 맡아줄래? 라고 호텔에 여행캐리어를 맡겨두었다. 그리고 길을 나섰다.
지도를 보고 중앙역에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한 번 가본 길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독일로 가는 기차를 타는 일이 긴장이 되었다. 내가 잘 탈 수 있을까? 중앙역 가보니 직원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지도 않던데, 죄다 승객들 뿐인것 같던데, 나는 플랫폼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너무너무 긴장이 되었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아직 내가 탈 열차의 플랫폼이 뜨질 않아 계속 기다려야했다. 아, 이렇게 안뜨면 일찍 온 의미가 없는데, 시간 얼마 안남기고 뜨면 나 플렛폼 못찾을지도 모르는데... 계속 이렇게 초조해하면서 너무 긴장을 해가지고 아 안되겠다 심호흡을 하자, 했다. 후- 하- 후- 하-
저쪽이 J 고 이쪽이 S 고.. 다 멀어 보이는데, 저 안으로 들어가면 직원이 있을까? 시간 맞춰 찾을 수 있을까? 열차를 놓치면 어떡하지? 그래도 너무 쫄지 말자. 세상에 돈만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어. 다음 열차를 타든가 너무 걱정되면 그냥 가지마, 막 이렇게 혼자 자기 위로도 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다 똭- J 도 S도 아닌 6 만 떴다. 앗! 그게 뜨자마자 몇몇 사람들이 움직이길래 옳지, 한 번 따라가보자 하고 따라가보았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가운데였는데 가다 보니 1, 2 .. 하고 숫자가 나왔다. 아, 이게 플랫폼인가 보구나. 나는 옆에 가는 외국인 여자에게 3 이라고 써있는 숫자를 가리키며, 저게 플랫폼 숫자니? 물었다. 그녀는 맞다고 대답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6번을 찾아 올라갔다.
그리고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갈 때쯤 열차가 들어왔다. 그런데 열차 번호가 보이지 않는다. 전광판에서 안내하는 것과 시간을 보면 이게 맞을텐데 싶어서 옆에 기다리던 남자에게 내 티켓을 보여주며 '이게 이 열차 맞니?" 물었다. 그는
"내 표가 니 표랑 똑같거든. 그래서 나는 이 열차가 맞기를 바라." 라고 말했다. 그래서 웃으면서 열차에 타려는데 그제야 열차 번호가 보였다. 나는 그에게 이 열차 맞아, 여기 열차번호 있어! 하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리를 찾아 앉았고, 잠시 후 승무원이 티켓 검사를 해 검사까지 마쳤다. 그제야 휴- 배가 고파왔고, 와, 탔다, 안놓치고 탔다! 하고 신이 났다!!
그리고 두시간을 달려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사실 드레스덴에 대해 아는 건 없었다. 언젠가 독일도 한 번 가봐야지 했지만 딱히 어떤 도시를 정해둔 건 아니었고, 프라하 간 김에 다른 유럽 갔다와야지, 했다가 드레스덴이 두시간이라길래 선택한거다. 많은 사람들이 오스트리아를 다녀오거나 옮겨가기도 하던데, 나는 오스트리아 보다는 독일이 더 끌렸다. 급하게 검색해보니 슈니첼이 독일 음식이더라. 가서 슈니첼 먹어야지, 하는 생각만 한 채 드레스덴으로 온거다.
내가 무얼 기대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아 이거엿구나, 내가 이걸 기대한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드레스덴이 바로 그랬다.
기차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간 순간, 와, 나는 여기가 너무 좋다! 너무 좋은데?! 갑자기 신이 났다. 신이 났다 신이 나~~
그래, 이럴 때가 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샀는데 타이틀 곡보다 다른 곡이 더 좋을 때.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집을 샀는데 표제작보다 다른 작품이 더 좋을 때.
나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가고 싶었는데, 암스테르담에 있다가 시간 내어 들린 로테르담이 훨씬, 훨씬 더 좋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로테르담이 너무 좋았다! 로테르담은 또 가고 싶다.
나는 이탈리아의 로마를 갔는데, 나폴리가 훨씬, 훨씬 더 좋았다! 나폴리는 또 가고 싶다.
몇해전에 며칠 들렀던 프라하가 아름다워서 다시 온것인데, 와, 프라하보다 드레스덴이 더 좋다. 로테르담도 중앙역에서 내려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와- 하고 가슴이 뻥 뚫린것 같았는데 드레스덴이 그랬다. 다낭을 갔을 때 다낭에 다시 안와도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고 이번에 프라하에 머물면서 프라하는 다시 오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드레스덴은 달랐다. 여기는 다시 오고 싶다.
검색해보니 프라하에 머무는 사람들이 드레스덴을 당일치기로 많이들 다녀오더라. 나는 1박을 했다. 그래도 하룻밤은 자고 와야지, 하고. 그런데 드레스덴에 도착하자마자 아아, 여기 당일치기가 아니라 1박 하기로 한 나 칭찬해, 그렇지만 1박이 아쉽다, 더 머물고 싶다 했다. 남은 프라하를 다 취소하고 드레스덴에 있고 싶어! 그렇지만 내 여행 캐리어는 프라하에 있지.....
그리고 나는 슈니첼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아직 열두시가 되기 전이어서인지 손님은 별로 없었고, 나는 야외 자리에 앉았다. 떠나기 전에 찾아본 날씨는 드레스덴에 비가 올거라고 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직원에게 슈니첼을 달라고 주문하니, "슈니첼은 점심 메뉴야. 지금은 아침 메뉴만 있어. 아직 열두시가 안되어서 30분은 더 기다려야 주문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러면 지금 음료를 먼저 주문하고 30분 후에 슈니첼을 주문할게" 말했다. 직원은 퍼펙트! 라고 말했다. 그리고 맥주를 고르면서, "나는 맥주를 잘 몰라. 너는 어떤 맥주를 추천하니?" 물었고 직원은 이건 가장 기본이고, 이건 흑맥주고, 이건 화이트 맥주인데, 이쪽은 좀 더 달아, 해서 에라 모르겠다 , 흑맥주를 주문했다. 낭만이 터지고 있었다.

집안의 복잡한 일을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생각해서,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서 여행을 온건데, 새로운 일들이 자꾸 생겨서 나는 프라하에서도 그리고 드레스덴에서도 음식을 주문해두고 자꾸 통화를 해야 했다. 이사람과 통화하고 저 사람과 통화하고, 또 저 사람과... 하면서 스트레스가 또 막 올라왔다. 음식이 나오고나서도 얼마간 통화를 하다가, 모든 통화를 마치고 슈니첼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깐! 가운데 너, 엔초비니? 저...저....저리갓!!

슈니첼은 우리나라의 돈까스와 비슷한 음식인데 대체적으로 독일은 돼지를 튀기고 오스트리아는 소를 튀긴다고 한다. 그런데 이 레스토랑에서는 나에게 돼지가 있고 소가 있는데 뭐 먹을래? 묻길래 소로 선택했다. 일단 나온 그대로 레몬을 뿌려 먹어본 뒤에, 직원이 가져다준 후추를 뿌려 먹었는데, 와 후추를 뿌리니까 더 맛있다!!

슈니첼과 맥주가 맛있기도 했지만, 와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았다. 햇볕은 따뜻하게 내리쬐지 광장에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지지, 와, 내가 진짜 어디서든 멍때리는 걸 잘 못하는데, 그러니까 불멍.. 이런거 할 생각 1도 없는 사람인데, 항상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지금 여기서는 멍때리기가 저절로 되었다.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을 보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닌 채로, 나는 그저 음식을 먹다가 맥주를 마시다가 하염없이 그냥 길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 시간이 너무 좋아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아, 일어나기 싫다, 그냥 이대로 여기서 머물고 싶어. 나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좋다. 드레스덴에 이러려고 왔구나, 멍때리려고 왔어. 내 인생의 이 시점에서 여기가 나에게 필요한 곳이었어!
자, 그렇다면 디저트를 주문할까, 맥주를 하나 더 주문할까... 디저트를 잘 안먹는 나이기는 하지만 디저트를 이번 참에 달달하게 먹어볼까. 아니야 디저트 먹을거면 차라리 맥주가 낫지. 그런데 맥주는 방광.. 어쩔건데? 방광한테 빌어보자, 오늘만은 제발 참아달라고. 나는 맥주를 하나 더 주문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 식당에 머물렀다.
중간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는데 직원에게 나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가방을 이대로 두고 가도 괜찮을까? 물었더니, 직원은 그렇다면서 자기가 지켜보겠다고 했다. 나는 당케- 라고 말하고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기차안에서도 그렇고 그 전에도, 독일어를 조금 공부해볼라고 했지. 듀오링고야 도와줘! 하고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려고 했단 말이야. 그래서 할로, 당케 는 배웠는데 왜 다른 건 더 안나오고 아버지 어머니 여자형제 남자형제만 계속 나오냐고요... 레벨 5에서 6이 됐는데 왜 아직도 가족 얘기만 나와.. 하는수 없다, 할로 랑 당케만 하자. 사실 헤어질 때 인사도 나오긴 했는데 도저히 발음을 따라할 수가 없더라. '츄스' 라고 하는데 이게 쓰니까 츄스 지, 하여간 뭔가 따라할 수 없는 발음이었어. please 에 해당하는 bitte 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거만 따로 쓸 순 없잖아? 뭔가 완벽한 주문을 하고 써야 하는데 말야. 그래서 하루종일 할로, 당케.. 만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저녁은 한식을 먹기로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한식을 먹는 것이었다. 어제 먹으려고 프라하에서 한식집 찾아갔는데 한국인들이 너무 많이 줄 서있더라고요. 그냥 돌아서서 호텔로 돌아가다가 베트남 음식점 가서 카레 먹었다. 아무튼 이번에도 한식당 찾아가면서 아..30분 이상 걸어 가는건데 한국인들 줄 서 있으면 울어버릴거야, 생각하고 갔는데, 다행히 줄 서 있지도 않아 바로 앉았고, 참 이상하지, 한국인은 나밖에 없는 것 같더라. 죄다 외국인이었다. ㅋㅋㅋ 하여간 나는 김치찌개 시키면서 소주를 주문하려다가, 나 이제 돈도 못버는 백수인데 유럽 와서 소주는 사치야, 참아, 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런데 여기가 잔술..을 파는 겁니다. 네??

직원분께 한국분이세요 물으니 맞다고 하셔서 이거 한 잔을 말하나요? 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 그래서 한 잔을 주문했다. 짠-

와- 진짜 이게 얼마만의 한식이야. 김치찌개 내 소울푸드.
나는 일단 손수건을 옆에 꺼내두고 열심히 김치찌개를 먹기 시작했다. 소주 마시다가 김치찌개 먹다가 김치찌개 퍼서 밥에다 얹어가지고 스윽스윽 비벼 먹다가 하면 나는 이제 한 사람의 아저씨가 된다. 뒤통수로 흐르는 땀을 닦아가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소주가 다 떨어진겁니다. 좋았어, 나는 백수니까 더 먹지는 말고 딱 한 잔만 더 마시자!

하아- 김치찌개가 내 속을 어루만져준다. 소주 한 잔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줘. 행복하면 소주를 찾게 되는걸까, 소주를 마시니까 행복해지는 걸까?
한국인 직원분이 다른 손님들한테 주문받을 때 독일어 하시는데 와 너무 멋있었어! 어떤 사정으로 여기 와있는지 모르겠지만 독일어 공부 엄청 열심히 했나보다. 너무 근사해! 저는 할로 랑 당케 밖에 못해요 ㅠㅠ 언니 너무 멋져요!! 역시 외국어 잘하는 사람은 진짜 졸라 멋있는 것 같다. 짱이다.
밥과 찌개와 반찬과 소주를 남김없이 싹 비우고 이제 호텔로 돌아갈 시간.
한참을 걸어야 호텔이 나오는데 식당이 있던 곳은 주택가가 있는 곳이어서 호텔 주변과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천천히 보면서 걷는데, 와, 길 한가운데에 노점처럼 와인바가 쫘악 늘어서있고 사람들이 저마다 와인 한 잔씩 마시고 있다.




충동적으로 나도 마실까 하다가, 나는 걸어갈 길이 멀다, 그냥 가자, 하고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엘베강을 지나는데, 저녁 8시가 지났지만 아직 해가 지기 전, 여기는 도대체 뭘까. 중앙역에서 나오면 바로 현대적 도시가 펼쳐지는데, 얼마 안가 궁과, 교회와, 정원이 갑자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그리고 나는 엘베강 다리 위에 멈춰서서 한참을 또 그렇게나 서있었다. 여긴, 도대체 뭔지? 뭔데 나를 이렇게 멍때리게 하지?


난 여기의 뭐가 그렇게 좋은걸까?










너무 좋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좋다. 여기서라면 언제든 멍때릴 수 있을 것 같다.
드레스덴 또 오고 싶다.
다음에는 드레스덴에 오래 머무는 계획으로 와야겠다. 밥 먹으면서 멍때리고 맥주 마시면서 멍때리고 걷다가 멍때리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중앙역에서 나왔을 때의 그 현대적 느낌과, 예쁜 하늘과, 따뜻한 날씨와 어쩐지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탁 트임과 모든것들이 다 좋다. 다 좋다.
그나저나 다리 아프다 ㅠㅠ 얼른 자야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