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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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롤런드에게는 이렇다할 직업이 없다. 하는 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딱히 이거다, 라고 말할만한 게 없다. 시를 쓰지만 딱히 시로서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풀타임 직업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 7개월된 아들을 두고, 아내가 집을 나갔다. 싱글 대디가 된 그는 돈벌이가 여유로운 것도 아니라서 국가에 한부모 보조금을 신청해 타게 된다. 나는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그가 심히 걱정스럽다. 늘상 아이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돈은 어떻게 벌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아내는 이런 상황에서 집을 나갔단 말인가. 아내는 집을 나간 상황이 있겠지만, 아니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어린 아이를 두고 간단 말인가, 너무나 원망스럽다.


그리고 경찰이 찾아온다. 아내가 사라졌을 때 남편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게다가 형사는 그 집을 둘러보다가 시인이라는 롤런드가 써둔 시를 보게 된다. <나에게 평온이 필요할 때, 그녀는 죽어 있어야만 한다 p,44> 라고 적힌 글을 읽고, 형사는 그에 대한 의심을 풀 수가 없다. 아내가 자신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말라며 엽서를 보내와도, 형사는 그를 의심한다. 설사 아내는 안죽였어도, 당신은 과거에 다른 누군가를 죽인거 아니야?


그가 평온이 필요할 때 죽어 있어야 했던 여자는 그의 어릴 적 피아노 선생님이다. 기숙 학교에서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던 선생님. 그가 열네살일때 스물다섯이던 선생님. 그가 열한살일 때 이미 그를 만졌던 선생님. 세상에 미사일이 쏘아지고 그렇다면 그걸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죽는거 아니냐는 말을 친구들과 하다가, 그는 '나를 찾아오라'고 말했던 피아노 선생님을 삼년만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섹스를 하고 연인이 된다. 그러니까 남자 아이가 아직 열네살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섹스라는 단어를 쓰는게 아니라 강간이라는 단어를 써야하는데, 그런데 그들은 어쨌든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리고 서로에게 집착하며 섹스에 탐닉한다. 


어른인 선생님이 아이인 그를 처음 만진것부터 잘못되었지만, 그리고 그녀를 찾아온 사춘기의 소년을 몰아내지 않고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에게 사랑이라고 말하며 욕망을 채운것도 잘못되었지만, 그녀의 집착은 그를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했고, 나는 그 점에 더 분노했다. 그는 그녀가 정해주는 시간에 그녀에게로 가야했고 그리고 그녀 옆에서 섹스해야했고, 그리고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했다. 그가 학업에 집중할 수 없는건 뻔한 일이었으며 그는 결국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한다. 자신의 성적에 충격을 받은 그에게 학교 선생님들은 한 번 더 기회를 줘보기로 한다. 그는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과학 선생님에게 인상적인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에세이를 써서 에이플러스를 받기도했다. 그는 보기 드물게 똑똑한 학생이라고 선생님들은 생각했고, 그래서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보자고 학교장을 설득한 후다. 롤런드는 그에게 주어진 다시 한 번의 기회를 마땅히 기뻐하며 감사히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피아노 선생님은 그런 그를 말린다. 학교에 돌아가지 말라고 한다. 롤런드가 있어야 할 곳은 그녀의 침대라고 말한다. 심지어 열여섯이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곳에서 결혼하자고 그를 설득한다. 아니, 그래도 결혼은 좀 아니지 않나, 그렇게 롤런드는 그녀를 떠난다.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공부를 마친다면 좋았겠지만, 그러나 그는 학교에 돌아가지 않기를 선택하고, 그리고 돈을 번다. 그리고 자라고, 어른이 되고, 여자들을 만나고, 섹스를 좋아하고, 그러나 풀타임 직업을 갖지는 못한 채로 지금 한 아이의 아버지가, 싱글 대디가 된 것이다.


나는 롤리타를 생각했다. 험버트의 성적 노예가 된 롤리타. 롤리타 옆에는 롤리타를 지켜줄 어른이 없었고, 롤리타를 이용하는 의붓아버지 험버트가 있었다. 롤리타는 연극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롤리타에게 집착하고 롤리타와의 관계를 철저하게 숨겨야하는 험버트는, 롤리타가 즐거워하는 테니스도 못하게 하고 롤리타가 재능을 보이는 연극도 못하게 한다. 그렇게 롤리타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더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 롤리타에게 올 수 있었던 어떤 미래들을 차단한다. 롤리타가 험버트를 벗어나 도망을쳐도, 그녀에게 펼쳐진 미래는 또 그녀를 이용하려는 다른 남자의 기다림이었다. 


롤리타는 나보코프의 1955년 작품이다. 나보코프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언 매큐언의 레슨은 2022년 작품이다. 이언 매큐언 역시 마찬가지로 알고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그 아이의 미래를 어떤 식으로 방해하는지. 그러나 이 70년 사이에 세상은 변했다. 롤리타의 편이 되어준 사람은 없었지만, 그리고 롤리타가 쓰여졌던 당시 많은 평론가들의 험버트의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7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롤런드가 범죄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다. 가해자의 서사가 그 범죄에 변명이 되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내가 집을 나가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였던 롤런드는, 얼마후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을 가진 남자가 되었지만,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시를 가지고 다시 그를 찾아온 젊은 형사는 그에게 말한다.



"베인스 씨는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이건 범죄 문제예요." -p.481



롤런드의 삶은 순간순간 '그 때 그 일이 없었다면'을 생각하게 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은, 섹스에 집착하게 된 것은,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 것은, 어떤 일에도 제대로된 성과를 낸 적이 없는 것은, 그 때 그 일 때문이 아닐까. 악몽을 꿀 때면 피아노선생님이 나왔지만, 그러나 그는 싱글 대디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갔다. 아이는 자랐고 다른 여자들과 연인이 되기도 했다.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지만, 축하카드의 문구를 써준 걸로 돈을 여유롭게 가질 수도 있었다. 그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었지만, 그러나 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했을 때, 그리고 나도 그 당시 원했다고 얘기했을 때,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너는 고작 열네살이었다고. 롤런드는 롤리타와 달랐다. 롤런드는 세상이 그 일을 어떻게 보는지 알고 잇었고, 사실 그러나 나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나, 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그런 일이 자기 아들에게 일어나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도 안다. 어떤 것이 잘못이고 어떻게 잘못된건지 아는 일은 중심을 잡는데 필요하다. 롤런드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삶에 있어서 고난을 만나고 고통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러나 기쁨과 행복을 만난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을 이해하기도 한다. 어릴 때 그 일이 없었다면 그의 미래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펼쳐졌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게 지금 불행한 삶을  사는 걸 뜻하는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타인의 삶을 불행하다고 혹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남들이 그러듯이,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구나 그러하듯이,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된다. 아이가 있고 사랑하는 여자가 있고 부모를 떠나보내고 손주들을 만나게된다. 



롤런드의 이야기가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끝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롤런드가 만나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 롤런드는 통일전의 독일인과도 친구였고 지금은 정치적으로 꼴도 보기 싫은 정치인과 과거에 밴드를 같이하기도 했다. 그를 두고 떠난 아내는, 보잘것 없는 소설을 써서 그가 비웃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가 읽어도 크게 놀랄만한 대단한 소설가가 되어 노벨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노년이 되어 이제 자신의 삶을 백 장의 사진으로 정리하기 위해 천천히 준비하는 롤런드는, 망설이다가 그 백 장안에 피아노 선생님의 사진도 넣는다. 그의 인생에는 그 선생님이 있었다. 단순히 있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그녀의 존재가 거기, 그와 계속 있었다.



이 책이 의미를 가지는 건, 이 책이 단지 '아동 성폭행 피해자 롤런드'를 얘기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러나 롤런드라는 한 인간의 인생 전체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이 그의 인생 전체를 의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일은 있었고, 그 일은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그러나 그의 인생이 그것 만으로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역시, 그 사람들 고유의 인생을 살았다. 그의 인생은, 각자 고유한 인생을 살아갔던 사람들과의 총체적 합이다.


그의 아내 앨리스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은 아주 많이, 그 아내의 입장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어린 아이와 남편을 두고 떠나버린 여자. 자신이 침몰할까봐, 자신의 엄마가 글쓰기를 포기하고 침몰했던 것처럼, 자신도 침몰해서 계속 우울하게 인생을 살까봐 기꺼이 버리고 돌아선 여자. 그래서 그녀는 어떻게 되었는가. 정말로 대단한 작품을 써냈다. 대단한 작품을 써내고, 또 써냈다. 매몰차게 아이와 남편을 무시하면서 보란듯이 성공한 작가가 되었다. 롤런드는 수시로 얘기한다. 만약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집에, 그녀가 떠나지 않고 우리와 살았다면, 그랬다면 그런 작품을 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어떤 사람들은 부모의 역할도 해내면서 훌륭한 작품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그런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떠났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글에 대한 이야기. 작가는, 세상에 글을 써내는 사람은, 그 글에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에 대해 얼만큼의 이야기를 해야하는걸까. 글을 써서 발표하는 것에 있어서 윤리란 어떤 것일까. 



롤런드의 인생을 그리고 앨리스의 인생을 좋은 인생이었노라 그리고 나쁜 인생이었노라 다른 사람이 판단할 수는 없다. 누구나 죽음을 앞두고는 어떤 일을 후회하고 어떤 일에 있어서는 만족하는 것일테다. 어떤 비극이 나에게 있었고 또 어떤 후회가 나에게 남았어도 또 어떤 자랑스러움과 어떤 행복이 공존한다. 아이었을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어떤 실수를 하고 또 어떤 행복과 안정을 느끼기까지, 이언 매큐언은, 그 삶을 살아냈기 때문에 써낼 수 있었다. 늙어가는 부모 그리고 결국 부모를 떠나보내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내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지 않았다면 어떻게 써낼 수 있을까. 


롤런드에게 의붓형이 있었다는 것을, 노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언 매큐언에게도 있었던 일이다. 의붓형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된 일. 책 속의 롤런드가 그랬듯이 이언 매큐언도 기숙 학교를 다녔다. 그 기숙학교의 어떤 선생님은 실명으로 이 책 속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느 정도 이언 매큐언의 이야기이구나, 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었는데, 이언 매큐언은 감사의 말에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 학교에 미리엄 코넬 같은 피아노 선생님은 없었다. -p.688, <감사의 말> 중에서





스스로 만든 지옥은 흥미로운 구조물이다. 누구나 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만들게 되어 있다. 어떤 이들의 삶은 그런 지옥일 뿐이다. 성격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롤런드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자기 손으로 고문 기계를 만들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 P35

그의 오른쪼긍로 난 농로는 평평한 들판을 가로지른 후 크라우치하우스를 지나 워런 레인을 따라 오리 연못과 어워턴홀로 이어졌다. 앤 불린이 어릴 적에 그곳을 바문해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며, 나중에 헨리 8세가 그녀에게 구애하기 이해 그곳에 왔었다는 사실을 모든 학생이 알고 있었다. 앤 불린은 왕의 명령으로 런던탑에서 참수되기 전에 자신의 심장을 어워턴교회에 묻어달라고 간청했다. - P186

그는 일을 마친 후 침실에서 자신의 O레벨 시험(과거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보통 16세가 된 학생들이 치던 과목별 평가 시험) 결과가 은 갈색 봉투를 떨리는 손으로 뜯었다. 그느느 침대에 앉아 목록을 바라보며 특정한 한 글자가 다르게 보이도록 애썼다. 모두 열한 과목이었는데 단 한 과목도 통과하지 못했다. 모든 과목 옆에 ‘F‘가 찍힌 얄팍한 인쇄지는 그야말로 물리적 충격이었다. 영어마저도. 영어는 저능아만 낙제한다고 다들 말했다. 음악까지도. 그는 합격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 식스폼에 못 올라가고, 상급 영어와 프랑스어와 독일어도, 대학도 물건너간 일이었다. - P356

"넌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한 나이야."
"그래도 선생님을 만나러 갈 거예요. 전과 똑같을 거예요."
"난 네가 여기에 항상 있기를 원해."
"네."
"난 네가 학교를 떠나기를 원해. 네가 내 침대에 있기를 원해."
그는 공중전화 부스 문에 몸을 의지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 P361

"내가 이미 여러 번 부탁했잖아요. 아프다는 걸 당신도 알잖아요."
그러면 그는 심통을 부렸다. "다정하게 대해준 대가가 고작 이거야?"
그런 분위기에서 아버지는 부루퉁함과 격노의 조합을 능숙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술도 즉각 와인에서 맥주와 독주로 바꿔 교대로 마셨다. 로절린드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마친 뒤 곧장 침실로 가버렸고, 롤런드는 거실에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어색한 분위기를 의식하고 다른 화제로 넘어가고 싶을 때, 그리고 롤런드도 함께 넘어가주기를 바랄 때 늘 그러듯 이렇게 말했다. "신경쓰지 마라, 아들. 신경쓰지 마." - P371

그리고 올드타운을 지나 렉토리그로브를 따라 집을 향해 짧게 걸어가는 길에도 끔찍하고 부적절한 생각이 고개를 드렀다. 해방감. 그는 더 커진 하늘 아래 서 있었다. 넌 더이상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야. 넌 그저 아버지일 뿐이야. 이제 너와 네 무덤으로 가는 분명한 길 사이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아. 아닌 척하지 마-스픔만이 아니라 고양감도 온당한 감정이야. 그는 죽음에 관해서는 초심자였지만 처음 드는 감정을 의심할 줄은 알았다. - P420

그의 아버지에겐 친구가 없었다. 군대 동료, 장교클럽의 술친구는 상황에 의해 억지로 맺어진 관계였다. 그들은 수년 동안 그의 삶에 존재하지 않았다. 롤런드는 이제야 분명하게 알 것 같았다. 잔디깎이 사건은 작은 일례일 뿐이었다. 고립된 남자, 그는 동네 술집에서 편하게 어울리기엔 너무 독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고 남의 말에는 귀를 닫았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능은 높으나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매일 보는 신문 외에는 관심사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군대식 질서 의식과 시간 엄수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깊은 권태감을 가렸는데, 술이-적어도 그 자신에게는-모든 걸 견딜 만하게 해주었다. - P427

그는 걸음을 옮기며, 아이를 키우는 것 외엔 자기 삶의 모든 것이 비정형의 상태로 남아 있고 그걸 바꿀 방버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돈은 그를 구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다. 삼십년 전 비틀스에게 보내려고 쓰기 시작했던 곡은 어떻게 되었는가? 없었다. 그후로 무엇을 이루었는가?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다. 백만 번쯤 테니스공을 치고, 천 번쯤 <클라임 에브리 마운틴>을 연주한 것 말고는, 자신이 쓴 진지한 시들을 읽을 때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아버지는 한순간에 쓰러져 죽었다. 어머니는 정신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뇌 검사를 받아보면 확실해질 터였다. 부모의 운명은 그의 운명을 말해주었다. 그는 부모의 운명으로 자신의 삶을 판단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자기 나이 때 부모님이 어땠는지 또렷이 기억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육체적으로 쇠약해지고 병든 것 말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 P441

반면 앨리사는-그녀의 결단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느 바람 부는 화창한 평일 아침에 그녀는 작은 여행 가방을 꾸린 후 열쇠를 남기고 현관문을 나서며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때 그녀는 야망에 사로잡혀 그것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고통을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442

그는 잠들기 전에 귀사타브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을 30쪽 정도 읽었다. 청년 프레데렉 모로는 나이 많은 유부녀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어느 저녁 사교 모임에서 작별인사로 그의 손을 잡았고, 그 직후에 집으로 걸어가던 그는 퐁네프 다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황홀한 상태에서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가는 것 같은 영혼의 전율을 체험한다". 롤런드는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손을 잡다. 이 단계에서 둘 사이에 섹스의 가능성은 없었다. 그녀는 아마 그의 감정에 대해 전혀 모를 터였다. 롤런드의 문고본에 적힌 작품 소개에 따르면, 작가 플로베르 자신도 열네 살 때 스물여섯 살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 여자는 거의 반세기 동안, 여러 차례 공백기를 두고 그의 삶에 남았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갈렸다. - P453

"베인스 씨는 성폭력 피해자입니다. 이건 범죄 문제예요." - P481

"당신이 참아줄 수 있다면 하나 더 이야기하죠. 나는 당신이 다른 학교에 다녔는지, 지난 세월동안 뭘 하며 살았는지 몰라요. 하지만 당신이 프로 콘서트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았다는 건 알아요. 수년간 계속 찾아보고 알아봤으니까. 당신이 성공하면 내가 당신에게 끼친 피해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하지만 그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나 때문에 당신이 갖지 못한 것, 음악을 사랑하는 세상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너무 미안하게 생각해요. 당신에게 광기를 쏟아부은 것도." - P512

지금, 마침내 그가 갑작스러운 동작에 약간 현기증을 느끼며 일어섰을 때, 잔에는 위스키가 4분의 3이나 남아 있었다. 그의 뱃속에 들어가 수면을 망치느니 거기 있는 게 나았다. - P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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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5-12-0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롤런드의 아내가 훌륭한 소설을 썼다는 말을 들으니,
‘에밀‘을 쓴 루소가 떠오르는군요...

루소도 두가지 일을 병행하기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구요.

잘읽었는데 마음이 약간은 무겁습니다.

물론, 롤런드를 향한 마음은 한량이 없습니다!

추신ㅡ 그런데 말입니다.
˝자기 손으로 고문 기계를 만들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아무리 작가라지만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해낼 수 있는거지요?
하.... 저는 이런 참신하고도 독창적인 표현을 죽는 그날까지
해내지 못할겁니다 ㅠ



다락방 2025-12-09 17:2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차트랑 님. 자기 손으로 고문 기계를 만들고 그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겠는데, 그런데 그 표현을 왜 저는 못할까요? 그래서 작가는 작가이고 독자는 독자인가 봅니다.

두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누구나 그래야만 한다면 해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다른데 신경쓸 일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더 잘해낼 수 있겠지요. 왜, 여자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내와 엄마를 하면서 작가까지 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차트랑 2025-12-09 18:48   좋아요 1 | URL
일과를 마무리 하기 전에 한 말씀 드리고 갑니다.

다락방님께서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셔야합니다.

제가 죽어도 못할 일을
다락방님께서는 반드시 해내셔야하고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저의 믿음에 보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다락방님의 ‘Amor Fati‘ 입니다 !!!
설마 잊으시려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그럼, 저는 이만....




다락방 2025-12-10 00:57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차트랑 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자냥 2025-12-0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네 살이요?! 아니 저건 소아성애인데....-_- 저게 어떻게 사랑이라고.
아니 그리고 침대에서 깨워서 학교 보내도 모자랄 판에.... 아이고야.
여남이든 남녀든 여여든 남남이든 성인이 미성년자 성적으로 그루밍 착취하는 걸 사랑이라고 그리는 거 참 싫습니다....;;; (한쪽이 미성년자일 때 만났다가 성인이 되어 결혼하는 것도 전 그래서 좀 그렇더라고요.....)

아무튼 이 글 읽으면서 저도 <롤리타> 생각이 났는데(롤런드도 그래서 일부러 이름 비슷하게 지은 건가 싶기도...) 롤리타와 다른 결말이고 다른 결로 소설을 풀어나가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언 매큐언 저는 이상하게 손이 안 가는 작가라서 이 작품은 다락방 님 리뷰 읽은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이 작품 이언 매큐언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서 성착취 그 부분도 자기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다락방 2025-12-09 17:30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인물은 그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자기 변명이지만),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이 작품 속에서 미성년자와의 관계에 대해 피아노 선생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작품이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잠자냥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이 작품속 주인공의 이름이 ‘롤런드‘인 것은 롤리타를 생각해서 가져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롤리타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롤리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 저는 이언 매큐언도 롤리타를 생각하며 쓴 것 같다고 계속 생각했어요. 그러나 세월이 흐른만큼 뒷부분은 다르게 풀어내고요.

저도 이언 매큐언은 여러권 읽긴 했는데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하게 되진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신간이 나오면 또 관심을 갖게 되고 말이지요. 하여간 이 책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좋았습니다.

망고 2025-12-0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이 책 반정도 읽고 있기 때문에 다락방님 리뷰는 흐린눈으로 안본 듯 쓰윽 봤습니다ㅋㅋㅋㅋ저는 애초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는 걸 알았다면 시작 안 했을거 같아요ㅠㅠ 피아노 열심히 배우는 내용일거라 예상하고 재밌을거 같아서 나오자마자 샀건만...ㅠㅠ

잠자냥 2025-12-09 14:26   좋아요 0 | URL
망고 님이 읽는 부분은 침대에서 그러고 있느라 정작 피아노는 치지도 못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12-09 14:27   좋아요 0 | URL
열네살짜리랑...너무 싫었어요ㅠㅠ

잠자냥 2025-12-09 14:31   좋아요 0 | URL
아 전 요즘에 한국에서 교사가 18세 제자랑 숙박업소 전전... 심지어 한 살 아들 동반... 그 기사 보고 이거랑 겹쳐서 더 싫었............

잠자냥 2025-12-09 14:49   좋아요 0 | URL
망고 님에게 <아름다운 청춘 Lust Och Fagring Stor, All Things Fair>(1995)을 추천합니다. 🤣🤣

망고 2025-12-09 14:42   좋아요 0 | URL
와 이 영화 뭐에요!!! 이런 영화도 있었네요... 유럽은 이런쪽으로 좀 관대한가... 프랑스 대통령도 떠오르고 그러네요ㅠㅠ

잠자냥 2025-12-09 14:49   좋아요 0 | URL
근데 전 이 영화는 좋아해요. 소재는 좀 그렇지만 명작입니다..... (다락방은 이 영화 알 거 같은데....?)
이언 매큐언 <레슨>도 그럴 거 같습니다. 소재는 그렇지만 좋은 작품인 영화/소설이 아닐까.

망고 2025-12-09 15:19   좋아요 0 | URL
이 책도 소재가 그래서 제가 읽기 괴롭다는 것 뿐 문학적으로 괜찮은 작품인거 같아요 아직 다 안 읽었지만ㅎㅎㅎ 저 영화 잠자냥님이 좋아하는 영하라구요? 오호~ 한번 봐볼까

다락방 2025-12-09 17:34   좋아요 0 | URL
망고 님, 책은 걱정말고 끝까지 읽으셔도 되겠습니다. 끝으로 갈수록 좋아지고요, 마지막엔 아 별 다섯을 줄까도 살짝 망설이긴 했거든요. 어떤 부분들에서는 헉, 하고 놀라다가 뭐야, 작가가 나를 이렇게 만들기 있긔없긔?! 이러면서 읽기도 했습니다. 끝까지 읽으세요, 망고 님. 인간은 결국 다른 인간과 함께 살아가야하고, 그리고 모든 인간은 늙어가고 병들고 그리고 과거는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줍니다.


잠자냥 님/ 언급하신 영화는 제가 본 영화고요, 지금은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어렴풋하게, 소년이 선생님의 집에도 갔던, 그런데 선생님의 남편도 있었고 그 남편과도 친하게 지냈던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빠져나가기 힘들어했던 여자...도요.

단발머리 2025-12-0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리뷰 읽어보니 이 책, 두께만큼이나 넓은 책인 것 같습니다. 롤런드의 삶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아내가 훌륭한 작품을 써냈다고 하는데서 한편으로 시원하기도 하구요. 우치타 다쓰루라고 한국에 여러 책이 소개된 일본 작가가 있는데, 이혼하면서 8살인가 어린 딸을 자기가 키웠다고 하더라구요. 아이가 아빠랑 살겠다고 해서 ㅋㅋㅋㅋ도시락 싸주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뒷바라지. 그래서 육아 때문에 대학 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약간 독학식으로 공부했는데 나중에는 일가를 이뤘죠. 롤런드의 아내는 롤런드를 떠나서 성공할 수 있었을 거 같아요. 보통의 경우에 그런 경우 여자가 희생하니깐요. 근데 롤런드가 힘들기는 했겠네요. 그래서, 결론은. 피아노쌤은 나쁘다....로.

다락방 2025-12-10 01:04   좋아요 0 | URL
<반면 앨리사는-그녀의 결단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느 바람 부는 화창한 평일 아침에 그녀는 작은 여행 가방을 꾸린 후 열쇠를 남기고 현관문을 나서며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때 그녀는 야망에 사로잡혀 그것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고통을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442>

제가 위에 인용문도 삽입하긴 했는데요, 앨리사(롤런드의 아내) 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고통을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거죠. 저는 이게 되게 인상깊었어요. 사실 내 고통을 감내하는 건 할 수 있어도, 다른 이들에게도 고통을 준다고 하면 그건 꺼려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특히나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난다? 이건 보통의 마음먹기로 가능한게 아니잖아요. 그야말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걸 알면서, 그런데도 두 눈을 질끈 감은거잖아요. 이것에 대해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런데 너무나 훌륭한 작품을 써냈대요. 롤런드의 생각처럼, 남편과 아이를 두고 떠나지 않았다면, 아내와 엄마로 계속 머물렀다면, 그랬다면 정말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이 점에 대해서 되게 복잡했어요. 앨리스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더 써보고 싶었는데, 리뷰가 너무 길어지더라고요. 사실 되게 할 말이 많은 작품이거든요.

롤런드의 엄마 로절린드 얘기도 진짜 할 게 많아요. 중요한 건 스포일러가 될테니 더 말하진 않겠지만, 참전한 남편이 사망해서 재혼을 하고, 롤런드는 그 두번째 남편의 아들인데요, 이 남편이 폭력적이라서 아내를 때리거든요. 그러니까 이 엄마, 아내의 입장도 그리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들에게 계속해서 말하는 아버지도. 그리고 다시 앨리사 이야기로 돌아가면, 앨리사 어머니가 평생 ‘책을 썼어야 했는데 남자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이를 낳느라 그걸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것까지. 앨리사는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 자신은 엄마처럼 침몰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도 되게 복잡했어요. 만약 앨리사의 엄마가 침몰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앨리사는 어떤 삶을 살게 됐을까요?

피아노 선생님에 대해서라면, 정말이지, 과거는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단발머리 2025-12-10 21:08   좋아요 0 | URL
˝앨리사 어머니가 평생 ‘책을 썼어야 했는데 남자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이를 낳느라 그걸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것까지. 앨리사는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 자신은 엄마처럼 침몰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다락방님의 이 문장을 보니 여러가지 생각을 드네요. 제가 좋아하는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작가는 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려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파트타임으로 일했다고 하잖아요. 저자의 어머니가 미국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아주 유명한 교수였구요. 생후 한 달때부터 베이비시터의 손에서 자랐던 작가는 자신의 아이를 그렇게 둘 수 없었으니까요. 한 문단을 옮겨봅니다.


나는 나를 낯선 이의 손에 맡겨야 했던 부모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남의 손에 자란 내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는 말할 수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 중 한 분이 출장을 떠날 때마다 나는 원인 모를 고열에 시달렸다. 학교가 파한 후 빈집에 들어갈 때 귓가에 울리는 내 발자국 소리가 왠지 서글펐던 기억, 초등학교 학예회 때 꽉 찬 관중석 어디에도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주여 오소서」를 부를 때 느낀 외로움 등이 내가 치러야 했던 대가였다. 나는 연극이 끝난 후 무대 뒤에서 한 이웃 아주머니가 자기 자식에게 주려고 가져온 꽃다발에서 뽑아 낸 꽃 한 송이를 건네받은 적도 있었다. (238쪽)


전 이걸.... 퐁당퐁당이라고 봐요. 앨리사의 어머니가 앨리사처럼 자식(앨리사)을 버리고 떠나 책을 써서 성공했다면요. 제 생각에, 앨리사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평생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았던 앨리사는 자신의 자식에게는 그렇게 못 했을 거예요. 엄청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자식을 떠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꿈을 이뤘을수도 있구요.

성악가 조수미의 어머니가 밤마다 함께 걷는 산책길에서 그랬다죠.
˝너는 결혼하지 말고. 맘껏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되거라.
한 남자의 아내가 아닌 만인의 연인이 되어라.˝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가 우리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반추하는지가 중요하고요. 합리화하는 거라고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었던 순간을 인정하는 거요.

아........ 왜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 방에만 오면 말이 길어지는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나 좀 말려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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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일들은 늘 웨인과 함께 있을 때 일어났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날 오후가 그 모든 순간을 통틀어 최고였다. 우리에겐 돈이 있었다. 우리는 꾀죄죄하고 피곤했다. 평소 우리는 뭔가가 잘못되긴 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른 채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오늘은 일한 자들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일>, p.90


나는 사소한 질문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그 답을 얻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조금 더 생각해볼 예정인데, 그렇다해도 그 답을 얻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왜 인간은, 이쪽이 더 좋고, 옳고, 낫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저쪽을 선택하는가' 


이 질문을 계속 생각하고 있는 까닭은 이 책, 데니스 존슨의 [예수의 아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단편집이 실린 단편들 중 하나의 제목을 책의 제목으로 가져오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에 <예수의 아들>이란 제목을 가진 단편은 없다. '루 리드' 의 <헤로인> 이라는 노래 가사 중에 '그 황홀한 기운이 밀려들면 내가 예수의 아들이 된 기분이야' 라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책의 앞장에 가사가 실려있다.


내가 피하는 이야기가 있다. 알고서는 선택하지 않는 이야기. 약물중독과 알콜중독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읽으면 너무 괴로워지고 끝까지 읽어내기가 힘들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다 라는걸 알면 선택하지 않는 편이다. 이 책은 제일 처음 제목만 보고 오오, 예수의 아들이라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다, 라고 생각해서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었는데, 백자평에서 약물 중독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보았고, 그래서 망설였다. 하.. 싫은데 읽을까 말까 읽을까 말까. 그래도 예수의 아들이라는 제목에 혹해 읽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면 그만 읽자 싶었다. 그리고, 위의 인용한 부분의 <일> 을 읽게 되었고, 그 때부터 자꾸만 질문이 따라왔다. 왜, 이쪽이 더 좋은걸 알면서, 이쪽을 경험해봤으면서, 그런데 굳이 저쪽으로 가는가, 하는 질문이.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약물중독자들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자기 육체와 정신에 약을 넣어준다. 그러니 평범한 생활이 가능할 리가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이들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니, 당연하게도 약물중독자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약에 취한 채로 히치하이킹을 하고, 사고난 차량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를 데리고 나오고, 다른 사람의 집에 침입하고, 병원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 매순간 내게는 긴장이다. 저래가지고 운전자에게 해가 되진 않으려나, 저 아이는 데리고 나가서 어쩌겠다는건가, 저런 사람을 병원에서 일하게 해도 되나. 나는 자꾸만 걱정이 되고 두려워진다. 약 좀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내가 이래서 약물중독자가 나오는 책을 읽기가 싫다. 내가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도 두 장인가 읽다가 읽기를 포기했단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을 나는 처음부터 읽지 않았어야 했지만, 아아, 그런데 이게 뭘까. 이건 뭔가. 이게 문학이란 말이다. 너무나 문학, 그 자체인 것이다. 


다시 <일>로 돌아가서, 약물중독자인 인물들이 '노동'을 하고 땀을 흠뻑 흘린다. 폐가의 고물들을 다 수거해서 내다 파는일. 그 일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둘 다 땀을 흘렸고 땀구멍에서 술기운이 빠져나오면서 오래된 귤껍질 같은 냄새를 풍겼다'(p.83) 그래서 '"이렇게 일하니까 약 기운이 다 깨잖아요. 좀 더 쉽게 돈 버는 법은 없어요?"'('p.83) 라고도 말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을 하고, 그 날 약간의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술집에 가면서 그 순간을 좋은 순간으로 기억한다. 정말 좋은 일은 웨인과 함께 있을 때 일어난다고 생각했고, '평소 우리는 뭔가가 잘못되긴 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른 채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렸지만'(p.90), 그렇지만 일을 하고 땀흘리고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좋아하는 술집으로 와서 좋아하는 바텐더에게 술을 주문하고서는 '오늘은 일한 자들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p.90) 라고 하는거다. 그러니까,


그는 알고 있다. 

일한 자의 기분이 어떤건지 알고 있다. 

약기운이 빠져나갔을 때의 기분을 알고 있다. 그 감정을 알고, 그것을 '좋다'고 분명히 느끼는 사람이다. 일을 해서 땀을 내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좋아하는 술을 사 마시러 가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안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약을 한다. 그 좋았던 순간을 알면서도, 경험했으면서도 다시 약을 한다. 계속 약을 한다. 잘나가는 미식 축구선수를 결국 해파리처럼 흐느적 거리게 만드는 그 약을, 그래서 다시는 미식축구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약을 한다. 미식 축구선수는, 자신의 잘나가는 시절을 기억하겠지. 약을 끊으면, 다시 그 전과 꼭같아지지는 않더라도, 다시 인생에 다른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약에 취하지 않은 순간에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다짐할 것이다. '다시는 이 약을 하지 말아야지' 라고. 그런데 어김없이 약을 하고 또다시 흐느적거리면서, 이제는 아무 쓸모없어진 '전에는 잘나가는 미식축구 선수'가 된다. 이게 '중독'의, '약중독'의 무서운 점일 것이다. 알면서도,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손을 대게 만들어서, 저기, 저 너머에 분명 내가 알고 있는, 경험한 좋은 순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선택하게 만드는. 아마 그것-약-은 무척 힘이 센가보다. 내가 계속해서 던진 질문은, '이쪽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걸 알면서 왜 저쪽을 선택할까' 였다. 약의 중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알잖아요, 얼마나 좋앗는지 알잖아요, 그런데 왜, 라고 자꾸 물어보게 되는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답할 수 없는 어떤 깊은 독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약 중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질문을 반복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꼭 약중독이 아니어도, 우리는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이건 잘못된거야'를 알면서도 굳이 선택하는 그런  때 말이다. '이건 옳지 않아', '이걸 하면 후회할거야' 라면서도 굳이 그 나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갈 때가 있지 않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는 연인이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는 연인에게로 가는 경우들도 있지 않나. 이 관계는 나를 파괴한다, 는걸 알면서 굳이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게 되는 경우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걸 안하는게 좋아' 라는걸 알면서도 선택하는 지점들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지 않나. 그 질문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된거다. 


왜? 이게 더 낫다는 걸 알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선택하는거야?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거기엔 자신만의 고유한, 타인은 모르는 어떤 은밀한 부분이 포함된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에 문학의 의의가 있다. 사소한 질문을 던지는 일,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을 질문하는 일. 이게 문학이 하는 일이다. 이 사소한 질문을, 그러나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이 책이 던졌고, 나는 그 답을 찾으려고 내내 생각했지만,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초반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글을 이렇게 잘 쓰는데 왜 약물중독자 이야기를 한걸까' 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얼마나 오만한가. 책을 다 읽고나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약물중독자에 대해 얘기하면 왜 안된단 말인가'로 바뀌었다. 약에 중독된 사람의 뇌가 일정부분 망가진 것이라는 걸, 데니스 존슨은 '어떤 중요한 연결이 타 버려서 그런 거'(p.74)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건 그 사람이 특별하게 못나서가 아니다. 곧이어 '만약 내가 당신의 머리를 열고 뜨겁게 달군 쇠로 뇌를 헤집는다면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될지 모른다'(p.74) 고 경고하니까. 



인생의 좋았던 순간을 알고 또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것도 데니스 존슨은 알고 있다. 좋았던 순간이 짧다는 것도 알고, 그리고 사랑은 금세 가버리는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게 사소한 질문을 던지고, 오래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리 극적이고 끔찍한 말을 생각해 내도 그녀는 기분이 누그러지거나, 맨 처음 나를 잘 모를 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더렵혀진 결혼>, p.120


좋았다.

그의 가슴에도 선량함이 있었다고 하면 당신은 믿겠는가? 그의 왼손은 그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몰랐다. 그건 그냥 어떤 중요한 연결이 타 버려서 그런 거였다. 만약 내가 당신의 머리를 열고 뜨겁게 달군 쇠로 뇌를 헤집는다면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될지 모른다. -<던던> - P74

"밖으로 나와." 웨인이 말했다.
그러자 사내가 대꾸했다. "여긴 학교가 아닌데."
"병신 같은 새끼, 웃기고 있네. 그게 대체 무슨 소린데?" 웨인이 말했다.
"밖으로 나가는 건 학교에서나 하던 짓이지. 여기서 붙자고."
"여기선 안 돼. 여자하고 애하고 개하고 장애인들이 있는 곳에선 싸울 수가 없어." 웨인이 말했다.
"씨발, 이 새끼 취했네." 사내가 말했다. -<일> - P88

정말 좋은 일들은 늘 웨인과 함께 있을 때 일어났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날 오후가 그 모든 순간을 통틀어 최고였다. 우리에겐 돈이 있었다. 우리는 꾀죄죄하고 피곤했다. 평소 우리는 뭔가가 잘못되긴 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른 채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오늘은 일한 자들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일> - P90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리 극적이고 끔찍한 말을 생각해 내도 그녀는 기분이 누그러지거나, 맨 처음 나를 잘 모를 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더렵혀진 결혼> - P120

우리는 대체로 정해진 일정을 따랐다.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텔레비전에서는 늘 똑같은 프로그램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 가짜 세계에서 나오는 ㄴ대화와 웃음이 없이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게 두려웠다. 그녀를 너무 많이 알고 싶지 않았고, 서로의 시선으로 정적을 메우고 싶지도 않았다. -<베벌리 요양 병원>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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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2-02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줄 알면서도 계속하는 건 중독입니다~!!

다락방 님과 저도 계속 술 마시는 그거...중독입니다~!!
저 얼마전에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갔는데... 거기 점원분이 제가 자주 맥주 사는 거 알고 말 자주 걸거든요? 그날은 제가 늘 사던 기린 맥주 4캔을 안 사고 산토리 4캔을 샀더니 그분이 “와 드디어 바뀌었다!”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 행사가 끝나서요.”(그때까지 기린 맥주 4캔 11,000원 행사). 그랬더니 “그럼 이거 맛있어요?” 그래서 “네 산토리가 일본 맥주 중엔 제일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행사 안 할 땐 그냥 이거 마셔요.” 그랬더니 이분이 뭐랬는 줄 아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문가가 맛있다면 맛있는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진짜 빵 터졌는데 알코올중독자라고 안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분 눈엔 전 이미 알코올중독자일걸요. ㅋㅋㅋㅋㅋ 그전엔 집사2랑 번갈아가면서 술 사오곤 했는데 집사2가 다친 후로는 매일 제가 가서 술사기 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술 전문가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아무튼 나쁜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건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이겠죠.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파괴하는 관계라는 거 뻔히 알면서도 거기에 기어코 들어가는 것도 결국엔 그 대상이 그만큼 좋아서겠지요. 제어가 안 될 정도로. 이거 다락방님이 잘 하는 거면서 왜 모르는 척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데니스 존스도 그렇고요. 사랑도 그렇고 그 좋았던 순간도 다 지나간다.......

다락방 2025-12-02 12:49   좋아요 1 | URL
도대체, 왜, 잠자냥 님은 마실 때마다 번번이 맥주를 사러 가는거죠? 걍 잔뜩 쟁여두면 되잖아요? 귀찮지 않습니까? 저는 한국에 있을 때도 쟁였지만 싱가폴 와서는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30개 박스를 사서 쟁이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잠자냥 님이 그렇게 번번이 가신 덕분에, 잠자냥 님이 잘 안하시는 ‘직원과 대화하기‘를.. 하게 되셨네요? 껄껄.

맞습니다. 나쁜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 중독이죠. 나쁜거 아는데, 저기 좋은게 있는데, 그런데 굳이 이 나쁜걸 택하는 그런 마음에는 분명, 이 나쁜 것 안에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 매력을, 그러니까 저버릴 수 없는가.. 라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상식적으로라면, 나쁜건 안하는게 맞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한단 말이죠.

하여간 좋은 책읽기였습니다. 특히 제가 본문에도 인용한, ‘맨 처음 나를 잘 모를 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이 문장 너무 주옥같지 않습니까? 맨 처음 나를 잘 모를 때 그랬던 것처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ㅋ ㅑ ~ 진짜 소주 땡기네요. 와인도 땡기고. 친구가 발베니 위스키도 주고 갔는데... (먼 산 보기)

잠자냥 2025-12-02 13:09   좋아요 1 | URL
그건 말이죠.. 집에 술을 사 두면 진짜 홀라당 며칠만에 다 먹어버려서... ㅠㅠ ㅋㅋㅋㅋ
맥주 박스째 사놨더니 이삼일만에 다 먹어버려서 이거 큰일이구나... 그랬습죠.
직원과의 대화는......... 제가 먼저 시도하진 않습니다만 먼저 말 거는 직원한테는 최소한 대답은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가게나 택시(?) 이런 데서 일하시는 분들이 먼저 저한테 말 잘 거는 편이에요. 지나가는 꼬마들도 말 잘 걸고 뭔가 대꾸해주게 생겼나 봅니다......... -_-

다락방 2025-12-02 13: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가만있고 싶지만 사람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12-03 16:50   좋아요 0 | URL
치명적인 매력 어쩔거야.. 인티제인데 너무 치명적이야..

잠자냥 2025-12-03 17:00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건 아니고…. 어린이랑 동물한테 어필하는 스타일입니다. 지나가던 개도 나 보면 멈춰 서서 쳐다 봄. 왜일까요? 내가 개처럼 생겼나? ㅋㅋㅋㅋㅋㅋ 먹을 거 주게 생겼나?! 🤣

독서괭 2025-12-03 17:25   좋아요 1 | URL
아니자나 모임 가서도 사람들이 자꾸 말 간다며요! 개가 쳐다보는 건.. 고양이인 줄 알고 쳐다보는 거 아닐까요? 개들에겐 육고.. 아니 7고의 냄새가 느껴질 듯 ㅋ

독서괭 2025-12-0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약물중독자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좋다고 하시다니! 정말 좋은 소설인가 봅니다.
우리 다 밀가루 끊고 간식 줄이면 건강 좋아지고 살도 빠지는 거 알잖아요.. 하지만 안 되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걸까요…

다락방 2025-12-04 00:00   좋아요 1 | URL
네, 독서괭 님. 읽기 전에는 고민했는데 읽고나니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책이었어요. 좋은 책이란 독자로 하여금 질문하게 하는 책이 아니던가요. 문장은 아름답고 어쩐지 다 읽고나면 이상하게 가슴이 계속 아픈, 그런 책입니다. 좋은 책이에요.
독서괭 님 댓글 읽고나니 정말 그러네요. 그러면 안되는줄 알면서 저도 자꾸 많이 먹죠... 그러면 돼지가 되는데 자꾸만 많이, 많이...

단발머리 2025-12-0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제가 꼭 읽어야할 것 같은 강한 압박감이 듭니다. 제목이 예수의 아들이라서요^^
약물 중독자에 대한 이야기라면 아무래도 무거울 것 같은데,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아주 대단하더라구요. 다락방님도 좋았다고 하셔서 기대가 되는데...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우울감 플러스 열패감의 향연일 거 같아요. 중독이란 무엇인가...

다락방 2025-12-04 00:03   좋아요 0 | URL
저도 약물중독에 대한 얘기라서 우울감과 열패감 때문에 읽고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그것과는 좀 달라요. 물론 당연히 밝고 긍정적인 느낌의 책은 아니지만, 뭐랄까요, 우울하고 열패감을 느끼고.. 와는 약간 다른 성질의 슬픔이 있어요. 바로 그 점에서 이 책이 문학이 해야 할 역할을 잘 해냈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아름답고 이상하게 슬픈 잔상이 남는 책이에요. 저도 제목의 예수의 아들 이라서 선택한건데, 읽기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아름답게 글을 쓰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어서, 우리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이상하게 계속 아련한 슬픔 같은게 남는 그런 책이에요.

중독이란 무엇인가..

책읽는나무 2025-12-04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물중독이란 말을 들으니 얼마 전에 읽었던 코펜하겐 3부작 자전소설이었던 토베 작가가 생각이 나네요. 그 작가도 훗날 약물중독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했고 결국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더군요.
읽고 나서 한동안 좀 우울했었어요. 왜 그토록 삶을 약물에 의존해 지탱해 갔었는지…
시대적 상황의 영향이 무척 컸겠지만 내내 안타까웠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도 이런 종류의 글들은 너무 어둡고 슬퍼 읽어나가기가 참 힘들단 걸 이제 깨달았어요.
그런데 다락방 님이 이 책 좋다고 하시니 좀 땡깁니다. 또 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책이로군요.^^

다락방 2025-12-04 20:47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약물중독 이야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알콜중독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문학을 통해 접하지 않는다면 또 전혀 모르고 살게 되는게 아닌가 싶고요.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이런 이야기를 쓰면 왜 안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여간 아름다운, 좋은 책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슬픈 책이었어요.
 
The Affair : (Jack Reacher 16) (Paperback)
Child, Lee / Bantam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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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서를 읽고 싶다고 생각한 건, 거슬러 올라가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때문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원서로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번역가가 옮긴이의 말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바꿨다고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 읽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렇게 읽어왔으므로 그 잘못된 이름으로 번역했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아주 기분이 나빴다. 만약 번역가가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일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원서와 주인공 이름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테니까. 이건 매우 불쾌한 경험이었고, 일어를 모르는 독자로서 좀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읽은 수많은 책에서 번역가들이 몰라서든, 혹은 알고 부러 그런것이든, 원서와 다른 오류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것. 억울하지 않으려면 내 스스로 원서를 읽을 수 있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원서를 읽는 일이 바로 될 리도 없었고 실행에 옮겨질 리도 없었다. 그건 상당한 공부가 필요한 일이고, 그래서 언제나 뒤로 미뤄졌다.


그 후에는 영어 원서 읽기를 몇차례 시도했으나 번번이 포기했다. 시간이 너무 걸리는 일이었고, 원서 한 권 읽는 동안 번역서 열 권 읽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어 원서 읽기는 계속 마음에 남아, 몇해전에 친구들과 같이 읽기를 시도하면서, 비로소  몇 권의 원서를 완독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영어 원서 읽기를 시도했는데, 원서를 읽는 일은 뜻밖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외국어로 써진 책을 읽었다는 데에서 오는 기쁨이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번역서와 주는 감동이 달랐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다시, 올리브] 원서를 읽다가 눈물이 고였던 일을. 분명 번역서로 먼저 읽었고, 내가 울지 않았던 부분이었는데 말이다. 로맨스 소설을 읽다가도 그랬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면에서, 분명 번역서를 읽어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원서를 읽으면서는 감정이 격해졌다. 원서로 읽을 때는 번역서로 읽을 때랑 받게 되는 느낌이 달랐다. 샐리 루니의 소설 [노멀 피플]의 경우에는, 번역서로 읽을 때는 '좋지 않다' 고 생각했다가, 영어 원서로 읽으면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 되었다. 원서와 번역서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나의 말에 한 친구는 그게 이해가 안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같은 내용인데 그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냐고 했는데, 그런데 정말 그렇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가능하다면, 나는 세상의 모든 책은 원래 쓰여진 그 글자대로 읽어야 가장 좋을 것 같다. 물론, 이건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서 원서를 읽는 일은 계속 시도하게 되고 즐겁지만,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이번에 리 차일드의 [ The Affair] 을 읽으면서는 특히 그랬는데, 잭 리처가 군인 출신이고 펜타곤 얘기나 군대 얘기, 이번에는 여자 등장인물이 해군 출신이어서 해군 얘기까지 나오는 통에 모르는 단어가 정말이지 수두룩하게 나왔다. 이미 번역본을 읽었기 때문에 굳이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읽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특히 자주 나오는 단어들은 찾아서 책에 뜻을 적어두었다. 덕분에 외운 단어가 있다.


presumably 아마, 짐작건대 


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이 단어 정말 자주 나온다. 원서를 읽다 보면 작가가 정말 자주 쓰는 단어 한 두개쯤은 만나게 되는데,  리 차일드의 경우엔 presumably 가 그렇다. 브리저튼 시리즈 읽을 때는 그런 단어가 'grin' 이었다. 미소짓다, 라는 뜻. 브리저튼 시리즈는 로맨스 소설이라 주인공들이 자주 미소지었고, 잭 리처는 수사를 하고 응징을 하는 사람이라 추리를 하느라 짐작을 많이 했다. 짐작건대, 짐작건대. 



본격적인 책 얘기로 넘어가서,

잭 리처는 상사로부터 미시시피 주로 넘어가라는 지시를 받는다. 거기에 군부대가 있는데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그것이 군부대 소속한 자의 범죄인지 민간인의 범죄인지 밝혀내라는 것. 그렇게 잭 리처가 미시시피로 갔는데, 거기엔 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마을 보안관 '데버로'가 있고, 그녀는 해군 출신이라 금세 잭 리처의 정체를 밝혀낸다. 그들은 함께 수사해가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살인사건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살인사건이 더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지금 사건이 드러난 이유는 살해당한 여성이 백인이라서였다는 것도 짐작해낸다. 잭 리처는 군인 출신으로 이에 저에 떠딜 닙다니.. 나보다 더 대단한 역마살을 끌어안고 살고 있는데, 이번 책 [더 어페어] 에서 어떻게 군대에서 나오게 되었는지가 밝혀진다. 


잭 리처는 누누이 얘기하지만, 정의로운 주인공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않긔! 어떻게든 응징해버린다. 굳이 특별한 웨이트를 하지 않아도 근육질이며, 어마어마한 훈련이 누적되어 머릿속으로도 시간을 알 수 있는 사람인 잭 리처는, 특히나 여성과 약자를 보호하는데 더듬이가 발달되어 있다. 물론 육체적 능력도 발달되어 있다. 게다가 유머 감각도 있다. 나는 잭 리처의 그런 지점이 너무나 좋다. 제발 치약을 써가며 양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언제나 생각하지만, 치약 없이 양치한 후에 껌 씹는거... 그거 하지 말고, 치약 쓰라고. 그러나 가방 없이 떠도는 남자가 치약까지 가지고 다니기는 번거로울 것이다. 나름..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모텔은 어메니티를 안주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잭 리처는 잘 먹고 잘 마신다! 그는 식당에 가면 엄청난 양의 식사를 주문하고 또 커피도 엄청 마신다. 게다가 디저트도 잘 먹는다. 이번 책에서는 그 레스토랑의 맛있는 복숭아파이를 매일 먹었다. 나는 사람들이,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 먹는 걸 보는게 그렇게나 좋더라. 잭 리처는 잘 먹는 사람이다. 지금 쓰다가 생각난건데, 그러고보니 잭 리처는 술을 안마시네? 오 신기하다... 노알콜,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 to the 신!

그리고 잭 리처 이야기 속에서 당연히 잭 리처가 주인공이지만, 언제나 잭 리처에 버금가는 여성 인물이 나온다. 가끔 조연으로 등장하는 잭 리처의 옛 동료 '니글리'도 엄청나게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이고, 이번 편에서 데버로가 그랬으며, 다른 책에서도 FBI 나, 동료, 군인으로 능력 쩌는 여성들이 등장해 잭 리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수사를 하고 악을 응징한다. 리 차일드의 인터뷰를 보니 자기가 백인이고 남자로 태어난 것이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잇었는데, 사람은, 자기가 가진 생각이 은연중에 어떻게든 작품 속에 드러나는 법인것 같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재미와 상관없이, 그 안의 작가가 보여서 재수없어지기도 하는 것 같고. 리 차일드의 경우에는 하여간 아직까지는 참 마음에 든다.


이번 책에서도 악은 응징되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잘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죄를 지었지만 그 누구도 나를 처벌할 수 없지!라는 오만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번 책에서도 악은 오만했다. 악은 오만하고 겸손을 모른다. 결국 악이 응징되는 것도 그것이 오만해서이다. 그 오만함은 결국 자기에게 벌로 돌아온다. 죄지은 자여, 순서를 기다려라. 네 응징의 차례가 곧 돌아올 것이니.


모르는 단어가 수두룩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잭 리처를 영어로 읽는 기쁨은 매우 컸다. 심지어 책이 두껍기도 해서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덧붙이자면, 간혹 찾아본 단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에도 나와서 더 짜릿했다. 어떻게든 원서를 계속 읽고, 매번은 아니더라도 자주 나오는 단어 한두개쯤은 원서 한 권 읽기를 마칠 때쯤 기억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좋지 않은가. 공부하려고 읽는건 아니지만, 읽다 보면 공부가 되니 좋잖아? 그리고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원서를 읽는 즐거움은 번역서가 주는 즐거움과는 또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시도하게 될 것 같다. 바람이 있다면, 원서를 번역서 읽듯 좀 빨리 읽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원서 한 권 읽는데 두 달이 꼬박 걸려.. 에휴..


아무튼 즐거운 읽기였다. 리 차일드도 좋고 잭 리처도 좋고 원서 읽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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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5-11-29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박! 벌써 다 읽으셨군요! 영어 공부와 함께 영어책 읽기라니. 너무 좋은 조합! 저도 12월까지 부지런히 읽어볼게요. 이거 읽고 다시 자주 성취감을 주는 얇은 책으로 읽어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25-11-29 10:24   좋아요 1 | URL
네, 다음 책은 좀 가벼운 걸로 골라야겠어요. 너무 두껍고 모르는 단어도 많이 나와서 제 생각보다 더 힘든 책읽기 이긴 했습니다. 햇살과함께 님, 힘내세요. 뽜이팅!!

독서괭 2025-11-29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텔은 어메니티를 안 주나요? 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정말 리처는 술을 안 마시는군요! 아예 안 마시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거의 마시는 장면 못 본 것 같네요 (오호)
에쿠니 가오리 번역가 말은 좀 황당하네요. 아니 주인공 이름을 왜 바꿔..??

저도 얼마전 다 읽었는데요, 다음 책은 뭘로 할까요! ㅎㅎㅎ

다락방 2025-11-29 10:27   좋아요 3 | URL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일단 먼저 읽었는데 자기가 글자를 잘못 읽었단 사실을 소설의 끝에 가서야 알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자기에겐 그 이름이 각인되어 있어서 그 이름으로 쓰는게 낫겠다고 하더라고요.(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 그래서 그 당시 좀 이슈가 됐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 와 그건 좀 아니다, 하고 말이지요. 전 기분이 나빴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외국 영화 봐도 주인공들이 모텔 가면.. 어메니티 없었던 것 같지요? 미국 모텔 후진듯... 한국 모텔은 콘돔도 줄텐데요. 흥이다.

다음 책은 뭘로 할지 제가 좀 생각해보겠습니다. 여차하면 서점이라도 나갔다올 생각입니다. 머릿속에 한 두권 떠오르긴 하는데 좀 더 살펴볼게요. 늦어도 내일까지는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충! 성!

햇살과함께 2025-11-29 10:35   좋아요 2 | URL
괭님도 벌써 다 읽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요

독서괭 2025-11-29 11:15   좋아요 2 | URL
제가 하자 그래놓고 책 선정은 다락방님께 맡기고 있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ㅎㅎ 뭐든 좋지만 이번엔 좀 쉬운 걸로..?(찡긋)
햇살님 감사합니다!!(헷)

다락방 2025-11-29 13:02   좋아요 2 | URL
독서괭 님, 제가 두 권을 골랐는데요, 이중에서 독서괭 님이 마음에 드는걸 픽해주시면, 제가 공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미셸 자우너, [Crying in H Mart]

2. Emily Henry, [People we meet on vacation]

1번은 너무나 유명한 [H 마트에서 울다] 원작이고요, 영어가 다소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한국계 작가니까 더 쉽지 않을까요..
2번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로맨스 소설입니다. 저도 아직 한 번도 안 읽어본 작가입니다. 우리가 이쯤해서 로맨스 소설 한 번 읽어봐줘야 하지 않겠나 싶어 골랐습니다. 인용문 살짝 보니 대화체가 많은 것 같아 역시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두 권다 국내 번역본 있습니다. 두 권다 살펴보시고, 골라주시면, 제가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서괭 2025-11-29 13:58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찾아보니 로맨스소설 책은 넘나 두껍네요..? 우리 이번엔 조금 얇은 걸로 해요 ㅋㅋ 그리고 소설 연달아 읽었으니 이번엔 비문학으로..! H마트 궁금했던 책입니다. 콜~!!

다락방 2025-11-29 14:29   좋아요 3 | URL
좋았습니다, 내일 까지 공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꺄울 >.<

단발머리 2025-11-29 15:07   좋아요 2 | URL
이 결정 찬성일세!
만세만세 만만세!! 😘

다락방 2025-11-29 15:08   좋아요 2 | URL
오오, 단발머리 님도 찬성이시라니 너무나 다행이군요! 만세!!

햇살과함께 2025-11-29 16:42   좋아요 1 | URL
오 저도 번역본 읽은 H 마트에 한표!
잭 리처 빨리 읽어야겠군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5-11-2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연말까지 읽어야 겨우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아요ㅠㅠ 이제 26장까지 읽었네요ㅎㅎ 학업 와중에도 원서 완독을 하시다니 두배로 축하드립니다!

햇살과함께 2025-11-29 11:21   좋아요 0 | URL
저도요~ 전 이제 39장 ㅎㅎ

다락방 2025-11-29 13:02   좋아요 1 | URL
12월부터 새로운 책 들어갈테니 다들 부지런히 따라오세요. 고고씽!! 12월엔 좀 쉬운 책으로 골라보도록 하겠습니다. 빠샤!!

단발머리 2025-11-29 15:08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힘내세요~~!! 👏👏
햇살과함께님 마지막 스퍼트!! 🏃‍♀️🏃‍♀️

햇살과함께 2025-11-29 16:40   좋아요 1 | URL
마지막 스퍼트라기엔 아직 절반도 ㅠㅠ 힘내겠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5-11-2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영어의 그 문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 있잖아요. 분위기도 다르게 느껴지구요. 전 세계 초초초베셀 <트와일라잇>이 사실 미국 여고생의 감각적 문체인데 우리나라 번역에서는 참 점잖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샐리 루니는 반대죠. 전, 확실히 샐리 루니는 영어로 읽을 때 좋았어요. 고백하자면, 리처는 그 맛을 느끼기엔 좀 어렵고 길고....게다가 헤매고 그랬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읽어보고는 싶구요.

다락방님 리처 페이퍼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는데, 리처 읽기 마치셔서 제가 많이 아쉽다고 합니다. 수고많으셨어요!!

다락방 2025-11-29 22:55   좋아요 0 | URL
트와일라잇도 저 젊었을 적에 원서로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원서를 사뒀던 책입니다. 그런데 안읽고 팔아버렸지요. 나는 원서를 읽을 수 없는 사람.. 이라고 생각해서요. 하하하하하. 그러고보니 트와일라잇 한 번 읽어볼까 싶기도 한데, 흠, 그렇지만 뱀파이어, 늑대인간.. 나오니까 어렵지 않을까 싶고.. 하하하하하.
저도 잭 리처 원서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끝까지 책장을 넘기기는 했지만 과연 제가 ‘읽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미리 번역서를 읽지 않았다면 저는 내용파악이 불가했을 것 같아요. 어휴.. 영어의 길은 정말 멀어요.

리처 읽는 시간은 즐거웠어요. 워낙에 리처가 잘 먹고 유머감각도 있는 성인 남자라서 말이지요. 하고싶은 말이 많아지는 캐릭터이고 이야기였습니다. 후훗.

책읽는나무 2025-11-2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업과 병행하며 원서 읽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학업도중 단어를 만나는 짜릿함!
놀랍네요.
번역서와 원서의 다른 분위기와 다른 감동이라니…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자로서ㅋㅋㅋ
내년에는 영어 공부 좀 많이 해놓고 원서 읽기 도전해봐야겠어요.
아. 영어는 참 어려워요. 그래서 척척 읽으시는 여러분들이 참 부럽습니다.^^

다락방 2025-11-29 23:03   좋아요 1 | URL
읽었다고 말하기엔 아주 무리가 있습니다. 책장을 끝까지 넘기기는 했습니다만, 그 안에 쓰여진 영어로 내용파악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알아볼 수 있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래 이 쯤에 그런 이야기였지, 하고는 이미 읽었던 번역본을 떠올렸거든요. 다음에 잭 리처를 원서로 읽을 때 쯤이면 그냥 영어를 술술 읽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영어 공부 4개월 해보니까 말이죠, 영어공부는 4년을 해도 마스터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책나무 님, 공부해서 읽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읽으면서 공부한다고 생각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함께 읽으면서 공부하시죠!! 같이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게다가 다음 책은 [H마트에서 울다] 입니다. 번역본도 준비 되어 있으시잖아요? 번역본 옆에 놓고 읽으면 됩니다!!

척척 읽지 못합니다, 책나무 님. 이번 잭 리처는 특히 더 엉망진창이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트랑 2025-12-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작!!! 안타깝게도 제게는 권한이 없군요 ㅠ 무척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이름 없는 주드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6
토마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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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우선 이 책은 모두들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말로 시작하고 싶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책은 토머스 하디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준다.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압박을 그 누구보다 냉철하게 직시하고 있었음을 이 책에서 그대로 다 보여준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하디는 '수 브라이드헤드'를 만들었고, 물론 '아라벨라'도 만들었다.


이 책의 제목은 이름없는 '주드' 이고, 당연히 처음 시작부터 주드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드가 부모도 없는 가난한 환경에서 그렇게나 공부를 하고 싶어했지만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았고, 그래서 먹고 살기 힘든 와중에 혼자 독학하면서 그 삶을 이어가는 장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나도 대학에 가겠지, 하고 무모한 희망을 품는 주드의 젊은 생애. 그러나 주드는 '아라벨라'를 만난다. 그녀의 얼굴과 육체에 정신을 잃고 그는 '공부를 포기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들고 그녀와 결혼하면서 불행한 삶을 시작한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행복할 줄 알았으나 가난은 그들을 행복한 삶으로 가는걸 방해했고, 사랑은 곧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착각이었을지도. 주드는 아라벨라와 헤어지고 다시 공부를 하다가, 사촌여동생인 '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수 브라이드헤드는 역시 혼자였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여자였고 당당한 여자였다. 그녀 역시 주드를 사랑하지만 그건 '오빠'로서였고 처음부터 연애감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수와 주드는 몹시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영혼의 쌍둥이라고나 할까. 한예로, 주드는 어릴 적에 이웃집 농장에서 새들이 곡식을 쪼아먹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일을 했지만, '저 새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먹고 가렴' 해서 쫓겨난 일이 있다. 주드는 키우던 비둘기를 처분해야 했는데, 그 비둘기를 사간 사람이 분명 그걸 식용으로 팔거란 생각에 괴로워해서 돈을 받았으면서도 구매자 몰래 비둘기의 새장 문을 열어준다. 혼자서 열심히 살아가는 주드와 수였던 것이다. 주드는 그런 수를 사랑하지만 한 때 결혼한 적이 잇었던 자신의 처지와 또 사촌간이라는 것때문에 수와 결혼할 수가 없어 괴롭다. 한편 수는 자신에게 구애하는 스무살 이상의 '필롯슨'의 청혼을 받아들여 그의 아내가 되면서 동시에 그가 인수한 학교의 선생이 된다. 만약 수가 필롯슨과 결혼생활을 이어갔다면, 먹고살 걱정 없이 오히려 사회적 명성을 얻으면서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 속에 주드를 품은 채로 그러나 오빠로서 다정하게 지내면서 말이다. 그러나, 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고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수는 필롯슨을 선생으로서는 존경했고 친구로서도 좋아했지만 도저히 남편으로서 좋아지지가 않는다. 그의 손길이 닿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게다가 수는 자꾸만 주드가 그립다. 수는 이 삶을 이어갈 수가 없다. 필롯슨에게 날 보내줘, 난 너랑 못살겠어, 난 괴로워, 나는 주드에게 갈게, 만약 주드에게 가는게 싫다면 혼자여도 되니까 제발 날 보내줘, 나는 너를 친구로서 좋아하지만 너의 아내로 살 순 없어, 한다. 필롯슨은 수를 사랑했기 때문에 너무나 괴롭지만, 그러나 그게 진정으로 수가 원하는 거라면, 그것이 수가 행복한 길이라면, 그런데 내가 뭐하러 붙잡고 있어야 하는가 하고 그녀를 보내준다. 그렇게 수는 주드에게로 간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는 이런 상황을 용납할 수가 없다. 아내를 보내줬다고? 혼자라고? 그런 남자가 학교 선생을 해도 돼? 필롯슨은 그렇게 겨우 일궈둔 자신의 학교에서 쫓겨나고 가난해진다. 아내를 보낸 남자를 받아줄 학교가 더는 없어 일자리도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오래전에 일했던 동네로 가 간신히 작은 학교의 선생을 하며 근근이 먹고 살아야 한다. 필롯슨의 친구도 한사코 수를 잡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필롯슨은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비참해졌어도 자신의 생각과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자, 이제 둘이 그토록 원하는 함께하는 삶을 살게된 주드와 수는 행복해졌을까? 

수는 결혼식을 거부한다. 법적으로 결혼한 부부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주드도 수도 이미 한 번씩 결혼에 실패했었고, 그것이 법적인 제약이며 결혼과 동시에 부부가 묶인다는 것, 남편이 달라진다는 것, 구속력이 생긴다는 것 등등 굳이 그걸 해야할 이유가 무엇이냐 싶다. 그렇게 주드에게 끊임없이 설득해서 그들은 법적인 부부가 되지는 않는다. 오빠,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왜 그래야 해요? 우리만 사랑하며 살면 그만이지. 수의 말은 하나도 틀림이 없다. 수는 주드와 행복했고 누가봐도 그 둘이 서로를 보는 눈에서는 애정이 흘러내렸다. 저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그리고 그 자리를 놓친게 샘이 날 정도로 그들은 사랑했단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뭐야, 너는 정식 아내가 아닌거야? 그것을 사회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식 아내가 아닌데, 그런 부부에게 일자리를 줄 수는 없지, 정식 부부가 아닌데 어떻게 방을 줄 수 있겠어? 그렇게 손가락질 당하고 일자리도 없어져서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동해야 하는 삶을 주드와 수 부부가 산다. 수는 혼자서 충분히 공부를 많이 했고 똑똑하고 당당하고 당찬 여성이었다. 그런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주드의 전처로부터 보내진 아이를 사랑으로 양욱하고 또 자신들의 아이도 낳으면서 열심히 살았단 말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사회적 압박은 도무지 그칠줄 모른다. 그리고 그들에게 비극적 일이 일어난다. 


이 슬픔은 도저히 극복가능한 것이 아니다. 주드와 수는 한없이 무너진다. 주드는 신앙을 가진자였으나 신앙에 회의적이 된다. 그런 한편 수는 이 비극을 맞이하고 가슴아파하다가 기존의 자신의 성향을 완전히 다 버린다. 바꿔버린다. 다 내탓이다, 내가 신을 믿지 않아서다, 내가 신의 말을 듣지 않아서야, 라고 자책하는데,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이 사회적 관습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자책한다. 다 내 탓이야. 내가 필롯슨과 결혼을 유지해야 했어, 나는 그의 아내로 살아야했어. 그녀는 잘못된 관습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고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그렇게나 꼿꼿했는데, 비극앞에 무릎 꿇어버린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했어, 나도 남들처럼 결혼하고 그렇게 살아야 했어. 누군가의 아내로서, 그리고 법적 계약을 가진 부부로서 그렇게 살아야 했던거야. 그렇게 수는 다시 필롯슨에게 간다. 너의 아내로 살아갈게. 너와 부부가 될게. 수는 필롯슨의 자기 근처에만 와도 살 떨릴 정도로 싫지만, 그에게 이제 섹스도 허락한다. 싫은데, 그래야 하는거니까. 싫어서 안했더니 자기 앞에 고통과 비극이 찾아왔으니까. 그건 자기 잘못이니까. 남들 하는대로 해야 되는거였어.



내가 살고싶은대로 살아가는 걸, 세상이 그리고 사회가, 그리고 사람들이 못견뎌한다. 너도 이렇게 해야지, 너는 왜 다르게 살려고해? 사회에서 내동댕이 치려고 한다. 그 일은 결국 커다란 비극으로 그녀에게 돌아오고. 수가 '나는 그런 계약을 하고 싶지 않아' 라고 했더니 수의 전남편이 일자리를 잃고 현남편도 일자리를 잃고 자식들에게도 비극이 찾아온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겠다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혼하지 않고 그냥 사랑하면서 살겠다고 한게 그렇게 큰죄인가? 그렇게나 당당하고 똑똑하게 맞서왔던 수이지만, 결국 무너진다. 사회적 압박에 무릎끓는다. 그녀는 미쳐버린다. 그녀가 사회적 관습에 남들처럼 들어가게 된건, 그녀가 이제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제정신으로 살아가면 세상이 똘똘 뭉쳐서 그녀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로 살겠다는게 그게 잘못이라고 자꾸 사람들이 숙덕거린다. 



나는 이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해, 이건 옳지 않으니 하지 않을테야, 라던 수에게도 결혼은 비극이었지만, 그러나 그 사회적 계약을 누구보다 성실히 수행하려던 아라벨라에게도 이것은 압박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거라고 생각했던 아라벨라는 때가 되어 남편감을 찾아내고 결혼하지만, 결혼했더니 이게 영 맞지가않다. 남편이란 작자 꼴보기 싫고 하나도 행복하지 않아, 그를 내팽개치고 다른 남자랑 결혼했는데, 얼라리여 그 남자는 수틀리면 아라벨라를 팬다. 아 이 남자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아. 그러나 아라벨라는 능력있는 여성이었다. 놀기를 좋아하고 남자를 좋아하고 지금처럼 BAR에서 일하면서 사실 충분히 혼자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건 지금 여기에 사는 내 생각이고, 아라벨라는 남편이 죽자 다시 결혼을 생각하고 이제 혼자가 된 주드를 노린다. 그렇게 꾀를 부려서 가까스로 싫다는 주드를 다시 남편으로 삼았건만, 하, 이 남자가 결혼하자마자 시름시름 앓아눕는다. 하아, 나는 왜이렇게 재수가 없지, 병든 남편 수발이나 해야 하다니, 하면서 다음 남편감을 물색한다. 누구보다 결혼이란은 것을 받아들이고 하려고 했던 아라벨라이지만, 나는 아라벨라야말로 자신이 결혼에 맞지 않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앗는데, 아 나는 자꾸 불행하네? 남들 사는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이 커다란 사회적 압박은, 수를 망치고 아라벨라를 망쳤다. 



주드도 수가 살았던, 아라벨라가 살았던 이 시대의 피해자이다. 왜냐하면 가난했으니까. 죽는날까지 자신이 이루지 못한 대학으로의 꿈을 품고 살아가야 했던 그가, 대학에서의 축제를 비 맞으면서도 구경했던 그가, 그렇다면 이 사회의 피해자이기만 햇을까? 아니, 그는 남성이라는 성별로서 사회가 여성에게 압박을 가한 그 시대의 마찬가지 가해자이기도 하다. 함께 살지만 육체적 관계는 하고 싶지 않았던 수에게, 주드는 은근한 압박을 가한다. 비가 오던 늦은밤 주드의 집을 찾아와 호텔까지 데려다달라던 전(前)아내 '아라벨라'를 늦은밤 위험하니 그걸 어떻게 거절하냐 며 가지 말라는 수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하는거다. 그러면서 '너는 어차피 나한테 네 육체를 주지도 않잖아' 라고 하는거다. 냉정하게 따지면 내 아내는 아라벨라 아니야? 라면서. 그날밤 수는 주드를 거기에 보내고 싶지 않아서, 아라벨라를 데려다주는 걸 막고 싶어서, 알았어 너랑 잘게, 잘게, 하는거다. 그랬더니 비오는 늦은 밤 위험해서 아라벨라 데려다주겠다던 주드가 갑자기 돌변해서 '그녀는 혼자 가라지' 하며 문 걸어잠그고 아라벨라가 가든 말든 신경 안쓰는거다. 이제 수랑 잘 수 있으니까! 하- 수랑 섹스할 수 있으면 밤길 갑자기 안전해지는 부분이냐..수랑 섹스를 하지 않으면 밤길은 위험해지고? 물론, 그것은 주드 개인의 문제라고만은 볼 수 없다. 가난은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불행한 삶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러나 여자에게 그 불행은 더 컸다. 


그리고 하디는 이 모든 것을 보는 사람이었다.

사회적 압박이 사람을 어떻게 미치게 하는지, 사람들은 자신과 같아지라고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압박하는지 말이다. '난 그렇게 살기 싫다니까?' 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기어코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버리고 마는 사회를 하디는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뒷표지에 보면 '로렌스'가 쓴 평을 볼 수 있다.



수는 우리 문명이 빚어낸 최상의 산물로, 그녀는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D.H.로렌스 



책을 읽기 전에는 왜 '주드'를 읽는데 '수' 얘기를 했을까, 생각하게 되지만, 책을 다 읽고나면 이것은 사회의 압박에 저항하려고 했던, 그러나 끝내 무릎꿇고야 말았던 수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네가 이래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이러고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끊임없는 압박속에 수는 결국 무릎 꿇는다. 무릎 꿇기까지 그녀에게 가해진 고통과 괴로움을 보노라면, 혹여라도 수처럼 생각햇던 사람들이 '아니야, 남들처럼 살아야해, 안그러면 저렇게 돼' 하지 않았겠는가. 사회적 압박이, 관습이, 그러니까 정상가족에 대한 판타지와 가부장제가 그토록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방법일 것이다. 끊임없이 압박하고 괴롭히기. '그녀의 말이 맞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괴롭히기. 


하디가 이걸 보여줬다, 사회적 압박이, 특히 똑똑하고 당당한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압박이 어떠했는지를, 그런 여성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하디가 너무나 잘 보여줬다. 감탄이 나오는 책이다. 하디가 정말 대단했구나. 


모두에게 읽기를 권한다.




 "뭔가 알 수 없는 외부적인 존재가 우리에게 말을 해요. '너희들 하지 말지어다!' 라고요. 처음에는 '너희들 배우지 말지어다! 라고 하더니 그다음에는 '너희들 일하지 말지어다!'라고 하고, 지금 와서는 '너희들 사랑하지 말지어다!'라고 해요." -P.253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는 주드가 질투를 느끼는 경우 금세 알아차렸다. 사실 지금처럼 두 사람의 생활과 직접 관계가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경우에도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밖으로는 표현되지 않은 제2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두 사람 사이의 상호교감이 그만큼 완전했기 때문이었다. - P17

내가 내 마음속의 충동에 얼마나 끌려다니는지를 오빠에게 말하면 오빠는 충격을 받을 거예요. 쓸 수도 없는 매력을 타고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느끼는 내 마음을 오빠가 안다면 놀랄 거라고요.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은 여인의 마음은 때로는 채울 수가 없어요. - P19

그는 편지를 부활절 전야에 띄웠다.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그것으로 최종적인 듯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들의 결정 외에 또 다른 힘과 법칙이 작용했다. - P25

"여자가 결혼 초기에 싫어하는 것은 오륙 년 지나면 무관심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다 털어버린다고 했어요. 그러나 그 말은 시간이 지나면 나무 다리나 팔에 불편 없이 익숙해지기 때문에 사지를 절단하는게 아무 고통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 P34

이상한 것은 그의 첫 번째 소원-학문적 숙달을 향한-이 한 여자에 의하여 제지되었는데, 그의 두 번째 염원-사도(使徒)가 되려는- 도 또한 여자에 의하여 제지됭었다는 사실이다. "이건," 그가 중얼거렸다. "여자의 잘못인가? 아니면 사물의 인위적인 체제 때문인가? 그래서 정상적인 성적 충동이 무서운 집안의 올가미로 변해서 발전을 원하는 사람들을 붙잡는 것인가?" - P43

"하지만 우린 어떻게 하지? 수, 잘 알겠지만, 사랑해요."
"그 사실은 충분히 알아요. 하지만 난 지금 살고 있는것처럼 낮에만 만나면서 연인으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러는 쪽이 훨씬 더 달콤해요, 적어도 여자에게는요. 그쪽이 남자에 대해 더 확실한 감정을 가질 수 있어요. 따라서 우린 지금처럼 남의 이목에 특별히 신경을 더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 P115

"난 오빠가 생각하는 만큼 예외적인 여자는 아니에요. 결혼을 좋아하는 여자는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 수가 적어요. 여자가 결혼을 하는 이유는 결혼이 주는 위엄 때문이고, 때때로 사회적 이점이 따르기 때문이죠. 난 위엄과 이점은 없어도 살아요." - P117

"어디로 가죠?" 시간 아범이 궁금해하면서 말했다.
"우린 가는 것을 알려서는 안 된다. 아무도 우리가 간 곳을 찾지 못하게……. 우린 알프레드스턴으로 가서는 안된다. 맬체스터도 안 되고 새스턴도 안 되며 또 그라이스트민스터도 안 되지. 이런 곳을 빼고는 우린 어디로 가도 좋단다."
"왜 그런 곳은 안 되지요, 아버지?"
"그건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구름 때문이란다. 비록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더라도!‘ 비록 ‘우리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더라도.‘" - P202

"글쎄, 나는 좋아하오. 이건 어쩔 수가 없소. 난 그곳을 사랑하오. 그곳은 나 같은 사람을 모두 미워하는 줄 알고 있소. 소위 말하는 독학자를 말이오. 그곳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지식을 경멸해요. 그런 것에 대한 존경심을 제일 먼저 보여줘야 할 텐데 말이오. 크라이스트민스터는 우리의 라틴어에서 잘못된 음절의 장단과 발음을 비웃어요. 가엾은 친구, 도움이 필요한데요 하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오! ……그러나 나에게 그곳은 내 어린 시절의 꿈 때문에 우주의 중심이 되었으며, 그것은 누구도 바꿔놓을 수가 없어요. 곧 크라이스트민스터는 깨어나겠지요. 그리고 관대해지겠지요. 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요! …… 거기로 돌아가서 살고 싶소. 거기서 죽고 싶소! 이삼 주일 뒤면 나는 거기로 갈 수 있겠지요. 그땐 6월이 되는데, 어느 특정한 날 거기 가 있고 싶소."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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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0-15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2025-10-15 15:51   좋아요 0 | URL
저는 ‘하디 ‘하면 테스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아닙니다. ‘하디‘ 하면 ‘주드‘인 것입니다!!

잠자냥 2025-10-15 16:12   좋아요 0 | URL
나도 빨랑 읽어야지........=3

다락방 2025-10-15 16:32   좋아요 1 | URL
얼른 읽고 리뷰 써주세요!! 저 잠자냥 님의 리뷰도 무척이나 읽고 싶어요!!

단발머리 2025-10-15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디의 작품으로 이걸 딱 픽해 주시니 저도 읽어야겠네요. 아, 2권짜리라서 🙄

다락방 2025-10-16 13:38   좋아요 1 | URL
두 권짜리지만 책장 잘 넘어가고 각 권이 두껍지는 않습니다!! 가보시죠!! ㅎㅎ

독서괭 2025-10-18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나 강추하시니 꼭 읽어야겠군요…

다락방 2025-10-18 14:57   좋아요 1 | URL
꼭 읽어보십시오!!
 
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은 생각하는 방식도 다를까?
케일럽 에버렛 지음, 노승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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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왜이렇게 재미있는걸까. 

음, 어쩌면 재미있는 건 언어가 아니라 언어에 대한 말과 글인걸까. 언어에 대한 연구인걸까. 

이 책을 읽는 일이 정말 짜릿했다. 이런 구절을 보자.


어쨌거나 해당 환경에 사는 민족이 특정한 종류의 냄새를 한 번도 접하지 않는다면 그 냄새를 일컫는 낱말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낱말은 의사소통 면에서 쓸모없을 것이다. -p.174


언어들이 번역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떤 단어들은 없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러나 번역 가능하지 않은가,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한 번도 접하지 않았던 냄새'에 대한 언어가, 그 지역에 있을 리가 없지, 하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정말 재미있는거다. 왜냐하면, '한 번도 접하지 않았던 냄새'를 가진 그 지역에서 계속 쭉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존재하지 않은 냄새에 대해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고, 그리고 그 언어에 대해서도 알게 될 확률이 적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단어에 대해 모른다는 것 자체도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계속 그곳에서 살아간다면 의사소통 면에서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그게 그곳의 삶이니까! 그러나 다른 지역의 사람을 만나 그 언어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면,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지?' 하게될테고, 그렇다면 그 냄새를 한 번 맡아보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면 그 냄새를 찾아갈 것이고, 그 냄새를 맡으면, 아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다, 그것을 가리키는 언어는 이것이다, 하게될 것이다. 그동안 몰랐던 것의 냄새와 언어를 모두 습득하게 되는거다. 이게 순서는 바뀌어도 상관없다. 만약 다른 지역에 가서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냄새를 맡아보게 된다면, '이게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야?' 하게 될테고, 이 때 다른 사람은 그 사람에게 이건 무슨 냄새야, 라면서 그 단어를 말해주지 않겠는가. 그렇게 언어와 세계가 동시에 확장되는데, 언어의 확장은 세계의 확장을 불러오고 세계의 확장은 언어의 확장을 불러온다는 사실이 진짜 너무나 재미있지 않은가 말이다.


요가에는 '아르다 찬드라 아사나' 라는게 있다. '아사나'는 영어의 pose 로 우리말로는 '자세'라고 한다. '아르다'는 '절반'의 뜻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아르다 찬드라 아사나'는 'half moon pose' 이며 '반달자세'이다. 이 단어를 한 번 듣고 기억하고 나면, 그 후에 나오는 아사나들에서 일단 '아사나'를 알것이고, '아르다'가 나오면 아, 반이라는 뜻이구나 하고 응용이 가능해질것이다. 아니,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언어가 재미있는건가? 언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재미있는것인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지구상에 누군가는 언어에 대해 연구한다는 사실이 무척 좋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들을 연구하고 그것을 글로 써내는 일을 누군가가 해서, 내가 지금 이곳에서 글로 읽고 있다는 사실, 그러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 이런 일이 몹시 즐겁다.


그래서 2분 약간 넘기는 영상을 또 찍어보았다. ㅋㅋ 나 이제 구독자 27명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s://youtube.com/shorts/tl11OHx4LtY?si=gv8cd8qTofB9QUPS

10여 년 전 [행동과학과 뇌과학]에 발표된 또 한 편의 저명 논문에서 심리학자 조지프 헨릭Joseph Henrich, 스티븐 하이네Steven Heine, 아라 노렌자안Ara Norenzayan은 인ㄷ간 인지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서 중요한 대목을 꼬집었다. 그것은 교육 수준이 높고 산업화되고 부유하고 민주적인 서구 사회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and democratic. WEIRD(이하 위어드‘) 구성원에 대한 연구가 거의 모든 지식의 토대라는 점이다. 이 사회들은 지금 존재하거나 지금껏 존재한 적 있는 수많은 인간 사회와 비교할 때 정말로 기이하다 weird. 헨릭과 동료들은 "아동을 비롯한 위어드 사회 구성원들은 인류를 일반화하고자 할 때 가장 대표성이 낮은 인구지반에 속한다"라고 주장했다. - P14

어쨌거나 과거, 현재, 미래는 막연한 개념이다. 몸을 둘러싼 물리적 공간을 지각하는 구체적 방식으로는 시간을 지각할 수 없다. 물리적 주변에 있는 물체는 손을 뻗어 만질 수 있지만 과거는 그런 식으로 다시 방문하거나 그 존재를 입증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결코 미래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현재는 포착되지 않는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찰나는 인식하는 그 순간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 P30

시제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는 시제가 네 개 이상인 언어가 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아마존 언어인 야과어Yagua로, 시제가 무려 여덟 개다. 다섯 가지 시제가 과거를 촘촘하게 나눈다. ‘먼 과거‘를 가리키는 시제가 있는가 하면, 한 달 전과 한 해 전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 일주일 전과 한 달 전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 일주일 전쯤에 일어난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 어제나 화자가 말하는 그날 일어난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도 있다. 현재 시제도 있는데, 지금 막 일어날 참인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와 더 먼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을 가리키는 시제가 따로 있다. - P37

카리티아나족도 상당수가 이중 언어 구사자로, 포르투갈어에 유창하다. 경제적 헤게모니를 쥔 주변 단일어 집단과 교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집단이 모어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이중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 P40

오스트레일리아늬 언어를 연구하는 한 언어학자는 시간을 구별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이 방법은 시간의 이동을 표현할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처럼 사람의 몸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우리의 원래 방법은 ‘자기중심‘ 모형이라고 불린다. 시간 ‘이동‘의 공간 정위spatial orientation(위치와 방향을 파악하는 것-옮긴이)를 해석하는 사람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 진행의 모형이 반드시 자기중심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 중심 모형도 있다. 이것은 자연의 지형지물을 근거로 삼는다. - P45

우리는 끊임없이 시간을 공간적 대상으로 지칭한다. - P49

시간을 이렇게 공강적으로 해석하는 데는 두 가지 주된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시간이 본질적으로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손에 잡히는 것에 빗대어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공간에 놓인 물체는 구체적이고 손에 잡힌다. 그러니 과거 사건과 미래 사건을 우리가 접하는 각각의 물체로 생각하는 게 유리하다. - P50

우리가 뒤로 걸으도 미래의 ‘위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 P51

우리에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많은 것들이 실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지도 모른다. - P65

아동은 언어를 습득하는 동안 상호작용에서 이름표가 어떻게 쓰이는지 깨달으며 그 상호작용으로부터 의미를 구성해낸다. 자라면서 낱말의 핵심 개념이 주변의 산악 지형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는 첼탈어 학습자가 ‘ta alan‘과 ‘ta ajk‘ 같은 이름표에 의해 지칭되는 개념을 점차 익혀야 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영어를 구사하는 아동은 자라면서 ‘왼쪽‘, ‘오른쪽‘, ‘산‘을 뜻하는 개념을 익히게 된다. - P99

흥미롭게도 언어들은 문화적으로 두드러지는 개념을 담을 때 서로 다른 체언뿐 아니라 서로 다른 용언을 쓸 수도 있다. 엘레드네어 동사 ‘paa‘는 ‘평평한 표면에서 걷는다‘라는 뜻이다. 이런 동사는 영어를 비롯한 대부분의(어쩌면 모든) 언어에 딱 떨어지는 번역어가 없다. - P102

당신의 언어가 언덕과 산, 또는 ‘왼쪽‘과 ‘오른쪽‘을 번번이 구분하도록 강제한다면 이 대상의 구분은 당신의 머릿속에 새겨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당신의 인지 습관에도 통밯될 것이다. - P106

당신이 상상하다시피 브라질 아마존 도시에 사는 원주민의 삶은 난관으로 가득하다. 전 세계 여느 소규모 인구집단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이 속한 포괄적 문화의 일부 사람들로부터 극심한 편견에 시달린다. 카리티아나족은 ‘인디오indios‘(인도 사람)로 불리는데, 이것은 콜럼버스가 자신이 실제로는 신대륙에 상륙했는데도 인도에 상륙한 줄 착각하고서 붙인 이름이다. 이 사람들은 그의 우연한 ‘발견‘에 앞서 2만 년 넘도록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 P112

‘자국민‘ 대 ‘외국인‘, ‘pyeso‘ 대 ‘opok‘등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 용어들은 폭넓은 효과를 발휘하며 결코 사소한 이름표가 아니다. 자신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가는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P113

카리티아나족은 브라질 문화와 일상적으로 교류해야 한다. 관광객들에게 공예품을 팔아 소득을 보충하려면 포르투갈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류는 그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아마존을 비롯하여 많은 언어가 절멸 위험을 겪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 P113

사람들은 타인을 언어적 관점에서 자기 문화(또는 외모를 근거로 삼았을 때 자신이 속하는 집단)의 구성원으로나 외국인으로 범주화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 언어는 문화들 사이에 존재하는 막강한 사회적 구분을 일관되게 반영하고 강화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는가는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그 사람들이 음식 범주에 속하는지도 좌우한다. - P115

어쨌거나 해당 환경에 사는 민족이 특정한 종류의 냄새를 한 번도 접하지 않는다면 그 냄새를 일컫는 낱말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낱말은 의사소통 면에서 쓸모없을 것이다. - P174

세리어의 경우 수렵채집인으로서 자란 나이 든 구사자들은 특정 냄새를 묘사하라는 주문에 특정 용어를 쓸 가능성이 크다. 이에 반해 한때 세리족 일상생활에서 접하던 꽃과 식물에 덜 친숙한 젊은 구사자들은 그 냄새 용어들을 쓸 가능성이 낮다. 이 모든 관찰은 생활양식이 사람들의 냄새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경험이 대화에서의 냄새 개념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발상에 부합한다. - P177

일반적으로 낱말은 자주 쓰일수록 짧아진다. - P201

"상관관계는 인과 관계가 아니다"라는 격언은 누구나 잘 알지만 종종 상관관계는 다른 방법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인과적 연관성의 방향을 가리킨다. 그 연관성이 간접적일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익사유른 두 현상의 증가를 유도하는 간접적 관계를 통해 상관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란 더위다.) - - P222

가능한 무작위 행동 변이들 중에서 특정 행동이 선택되는 것은 문화가 특정한 틈새와 난관에 적응하면서 진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결정적으로 선택은 사람들이 왜 자신의 행동이 그런 식으로 진화하는지 깨닫지 못하더라도 일어난다. 내가 이 장과 그 밖의 연구에서 몇몇 현대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주장한 것은 인간 행동에서 적응 과정이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역에 언어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언어의 일부 특징은 인간 행동의 여느 측면처럼 특정 환경에서 조금 더 알맞다는 이유로 확률론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선택될 수 있다. 성공적 적응은 별개지만 서로 연관된 압력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다. 이를테면 특정 유형의 소리는 특정 환경에서 발음하는데 노력이 덜 들 수 있으며 특정 유형의 낱말은 특정 환경에서 소통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 P224

언어학자 크리스천 벤츠Christian Bentz가 이끄는 연구진은 이 주제에 대한 논문에서 언어 변화를 어떻게 모델링해야 하는지 논의하다가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언어 다양성을 이해하려면 물리적, 생태적, 사회적 요인이 전 세계 다양한 환경에서 언어 사용자에게 가하는 압력을 모델링해야만 한다." - P225

우리의 언어 지각은 고막을 때린 뒤 달팽이관과 일련의 신경을 거쳐 뇌로 전달되는 소리 주파수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언어 지각은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대뇌피질에서 통ㅇ합하는 총체적 과정이다. 이것은 문화를 막론하고 참이며 인류가 아프리카에서만 살던 시절 이우로 언어 지각의 뚜렷한 특징이었다. 어쨌거나 대면 상호 작용은 언어의 기본 형식이므로 인간이 타인의 얼굴에 주목하는 것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5장에서 보았듯 입술이 만들어내는 유형의 소리에 의존하는 정도는 언어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는 일부 언어의 구사자들이 타인의 입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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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10-11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어란 참 신기하죠. 그래서 모국어의 한계를 뛰어넘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아무리 외국어를 능숙하게 해도, 사고 자체는 모국어를 기반으로 형성되니까.. 그래서 저는, 영어를 모국어로 삼을 게 아니라면 어린 시절 모국어를 더 정확히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영어유치원을 안 보냈습니다 ㅋㅋ

단발머리 2025-10-13 09:03   좋아요 1 | URL
제가 할 말 여기에 다 써 두신 분 ㅋㅋㅋㅋㅋ 독서괭님!! 그래서 저도 영유 안 보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10-13 16:09   좋아요 1 | URL
저도 독서괭 님과 똑같이 생각합니다. 일단 모국어로 생각을 정리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어 익히기는 그 다음이고요.
처음 모국어를 알게 되는 것도 되게 재미있는거잖아요. 글자를 읽을 줄 알게 되면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 책을 스스로 읽을 수 있잖아요. 저는 조카들 어릴 적에 책을 읽어주면서 ‘너네가 글을 읽을줄 알게 되면, 너네 스스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영어를 할 수 있게 되면 읽을 수 있는게 더 많아지겟지?‘ 라고 말하지만 조카들 귀에 닿지 않습니다. 이젠 꼰대의 잔소리.. 흠흠.

햇살과함께 2025-10-12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소리 너무 좋아요~~

다락방 2025-10-13 16:09   좋아요 1 | URL
앗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10-13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서 아직도 영상 보다는 활자가 좋기는 한데.... 눈이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 들어 더 그러네요. 책 보면 좀 피곤해지고 ㅋㅋㅋ 어두운 곳에서는 훨씬 더 빨리 눈이 피곤해요. 언어가 정말 좋다, 인간이 언어의 동물이여서 좋다~~ 이런 말 쓰려했는데, 여기에서 노안 걱정만 잔뜩ㅋㅋㅋㅋㅋㅋㅋ

115쪽의 이야기는 노아 트레버의 <태어난 게 범죄/Born a Crime> 생각나게 해요. 아프리카 특정 부족을 만났을 때, 말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억양으로 말할 수 있었던 노아가 누렸던 삶의 즐거움, 그리고 어느 누구와도 쉽게 동화될 수 있었던 지점... 그런 것들이요^^

다락방 2025-10-13 16:11   좋아요 0 | URL
저도 눈이 점점 더 침침해져서 미치겠어요. 일전에는 칠판의 글씨가 안보여서 아주 낭패스러웠어요. 그 땐 유독 눈이 건조했던건지 인공눈물 자주 넣어주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눈이 잘 안보여서 큰일입니다. 저는 활자가 압도적으로 좋은데 이 눈이 점점 더 안좋아지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에요. 내 눈아, 건강하자! ㅠㅠ

저도 노아책 읽었는데 왜 그부분은 잘 기억이 안나죠? ㅋㅋㅋㅋㅋ 아 언어에 대한 읽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 언어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