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프롬' 에게는 몸이 아픈 아내 '지나' 가 있다. 지나는 자신이 전보다 더 아파졌다며 새로운 의사를 찾아다니고, 그렇기에 집안일을 '전혀'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하녀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침울하고 불만에 가득찬 아내, 집안의 따뜻한 온기 따위는 관심이 없는 아내. 이선은 그런 아내 때문에 숨이 막히고 삶이 족쇄같이 느껴진다. 그런 그들 부부에게 아내의 먼 친척 '매티'가 찾아온다. 젊고 발랄한 그녀는 집안일에 서툰 대신 따뜻하고 감성적이다. 이선은 그녀에게 점점 끌리게 되고, 아내는 매티를 꼴도 보기가 싫어 내쫓으려고 한다. 이선은 그런 아내가 더 싫어지고, 그래서 아내를 떠날 결심을 한다.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삶의 희망을 이렇게 쉽게 상실하기에는 그는 너무 젊고, 강하고, 삶의 활력으로 넘쳤다. 그처럼 한이 많고 불만투성이인 여자 옆에서 평생을 낭비해야 할 것인가? 그에게도 한때는 여러 가지 포부가 있었지만 지나의 옹졸함과 무지 때문에 하나하나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얻은 게 무엇인가? 그녀는 결혼 때보다 백 배나 더 차갑고 불만이 많았다. 그녀에게 남은 낙이라곤 딱 하나,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쓸데없는 희생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건강한 본능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p.111)

 

 

 

 

 

 

 

 

 

 

 

 

 

 

 

 

 

 

그는 아내로부터 쫓겨난 매티와 함께 도망갈 생각을 한다. 매티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 자연을 소재삼아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매티를, 자신의 앞에서면 볼이 발개지는 수줍은 처녀를, 다정한 저녁식사를 위해 아내가 아끼는 그릇을 몰래 꺼내어 놓는 그녀를, 그는 보낼 수가 없다. 매티도 그를 떠날 수 없긴 마찬가지. 그의 옆에 머물고 싶다. 그가 아니면 아무도 그녀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질 않는다. 그는 그녀와 함께 도망치고 싶지만, 전재산을 아내에게 넘기고 도망치고 싶지만, 그 전재산이란 것이 언제 현금화 될지도 모르고 설사 현금화된다 한들 적은양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에겐 현금이 전혀 없다. 매티를 데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도 그에겐 그 차비조차 없다. 그래서 둘은,

 

동반자살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해야만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서로와 함께 하는게 아니라면 의미없다 여겨진다면, 그것 말고는 그들에게는 방법이 없는 것. 그래서 둘은, 나란히 썰매에 타고 저기 저 앞에 보이는 나무에 자신들이 탄 썰매를 박기로 한다. 그렇게 자살을 결심한다.

 

 

그리고 맞이하게 된 이들의 결말은, 아마도 결말이라고 쓰여지게 될 모든 것들 중 가장 슬픈 결말이 될 것 같다. 삶은 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게 결코 아니고, 사람의 삶과 죽음은 결심대로 되는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슬픈 결말을 그들은 맞이하고 만다.

 

 

가난한 자에게는 사랑도 사치이고 돌아오는 건 지독한 일상의 무한반복이다. 그보다 더 비극적인건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끔찍하게 여겨질 사람으로 변한다는 건, 아, 정말이지 슬프지 않은가. 사랑이 끔찍해지는 순간마다 또다른 새로운 사랑을 찾는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되질 못한다. 그 사랑도 결국은 변질될 것이기에. 이디스 워튼은, 이야기를 비극적으로 풀어나갔다. 책장을 덮고나면 후- 하고 한숨을 내쉬도록. 이선에게 건배를.

 

 

 

 

 

 

지난주 일요일이었나, 소파에 누워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우엇, 갑자기 다니엘 헤니가 나오는거다. 나는 벌떡 일어나 어머 웬일이야 웬일이야 했는데, 남동생은 곧 다니엘 헤니 나오는 영화가 개봉할거라 저런것 같다고 했다. 어머 그래? 최근에 증권회사 광고에서 너무 멋있어서 이욜~ 하고 다니엘 헤니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호라, 영화를 찍었단 말이야? 마침 친구랑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한터라, [엘리시움] 대신 [스파이]를 보자고 말했다.

 

그렇지만..............다니엘 헤니는 영화속에서 내 생각보다 별로였다. 무엇보다 앞머리를 내린건...초큼 찐따 같았어;; 그다지 멋있지 않았달까. 영화는 나름 괜찮게 보긴 했는데 다니엘 헤니에 대한 환상은 무너졌다. 역시 액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재이슨 스태덤 정도는 되어줘야.................

 

영화속에서 설경구가 다니엘 헤니를 화장실에서 맞닥뜨리고, 그 때 설경구가 소변을 보고 있는 헤니의 거기를(응?) 훔쳐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그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고, 상황실에서 그 장면을 보던 정부요원들은 그 크기에 다들 경악한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이 다 웃는데, 그보다 더 웃긴 장면은 내 옆에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나를 내 친구가 자꾸 쳐다봤던 것. 아니 이사람아, 영화를 보지 왜 나를 봐. 자꾸 웃는 나한테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어보는거다. 아놔...나 보지 말고 영화를 보란 말야, 이사람아!!!

 

 

그런데 그렇게 목숨 내놓고 일하는 사람의 연봉이 고작 6천이라니. 나는 그 연봉의 절반 밖에 못받지만 목숨을 내놓지 않아도 되는 바, 걍 이 일 하며 살아야겠다.

 

 

 

 

 

 

이 영화는 토요일, 대전에서 보았는데. 하아- 대전의 극장이 너무 열악해서 깜짝 놀랐다. 요금은 7천원이고 현금으로만 받았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3층에 자리한 극장에 올라가는 빌딩 계단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고 지저분했던 것. 내가 마치 싸구려 비디오방에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러 가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불순한 짓을 하러 가는 느낌을 주는 그런 극장이었달까. 이 영화가 대형개봉관에서 상영하지 않을거란 사실을 짐작했고, 그렇기에 상영해주는 극장이 대전에 있다는 게 무척 고마웠지만, 왜 이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낡고 초라해야 할까. 쩝... 자유석인것도, 입장료도, 좌석도 훌륭하진 않지만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하는데,  이 극장이 위치한 빌딩, 그 계단들이 좀 거시기하다.

 

 

영화는 딱히 재미있진 않다. 뭐, 기억나는 장면이 없네;;

 

 

 

 

 

일주일만 잘 버텨내면 추석연휴라는 게 신나기는 한데, 추석 연휴가 끝나면 대체 뭘 기다리며 살아야 할까. 삶은 기다림의 연속인것 같다.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퇴근시간을 기다리고, 주말을 기다리고, 공휴일을 기다리고, 연휴를 기다리고..........얼마전에 이 비슷한 문장을 어느 책에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 암튼 그렇다는거다.

 

아, 그런데 문득 이선 프롬에게는 더이상 기다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기다릴 게 있는건 그나마 행복한 거라는 것도.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무얼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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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3-09-09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점심 고민 중..ㅎ

다락방 2013-09-11 13:3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오늘 점심은 무얼 드셨나요, 비연님? ㅎㅎ

자작나무 2013-09-09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과장님은 업무도 많은데 그 사이 독서를 많이 하시네요 항상 부럽습니다. 전 책을 한달에 한권도 못읽어요. 쓸데없는 일만 하느라 ...점심은 순대국 이겠죠?

다락방 2013-09-11 13:32   좋아요 0 | URL
가만있자, 어제 점심은 뭘 먹었더라...된장찌게였나....
여하튼 오늘 점심은 라면에 김밥이었습니다. 제가 매일 순대국만 먹는 건 아닙니다. ㅎ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13-09-0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아내를 독살하면 막장으로 가는 비상구가 열리겠죠.

2. 앞머리를 내리느냐, 앞머리를 밀어버리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는 사실.
(같이 영화 보러 가신 분의 시선의 의미가 궁금해지는군요....음..)

3. 양재 사거리 한정식집을 한 번 가보시라니까요..

다락방 2013-09-11 13:32   좋아요 0 | URL
1. 이것은 '이디스 워튼' 의 소설인겁니다. 막장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이디스 워튼 만세!! ㅎㅎ

2. 앞머리 있는 남자가 멋있기는 진짜 힘든일인 것 같아요. 뒤로 넘겨버리지 말입니다.
(같이 영화본 사람은 아마도 제가 음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메피님도 아시다시피 전 정말 그런 여자사람이 아닌데 말이지요.)

3. 저 어제 양재동 그 유명한 영동족발 다녀왔어요, 메피님. 맛있긴 했지만 많이 불친절해요.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 전 이제 안갈거에요, 거기 ㅠㅠ

마노아 2013-09-09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가 떠오르네요.
저도 주말에 스파이 봤어요. 헤니도 설경구도 액션은 좀 아니더라구요. 전 맷 데이먼 생각했어요. 역시 스파이는 본이 짱이야! 아님 007의 다니엘 크레이그~ 나이가 있어도 액션이 되는 배우는 따로 있다 싶어요. 제이슨이 그렇지요. ㅎㅎㅎ

2013-09-09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9-11 13:26   좋아요 0 | URL
전 액션엔 딱히 불만 없었는데 헤니가 생각보다 안멋져서...그리고 왜 거기를!! 모자이크 처리한 것인가(응?) 뭐 그런 생각들이 ㅋㅋㅋㅋㅋ 영화는 나름 갠춘했어요.

아니 그런데 마노아님, 이 책은 얇으니까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결말을 스포하지 않겠습니다!!
(약오르시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메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혜윰 2013-09-10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머리 내린 헤니는 상상만으로도 싫어요ㅠㅠ미스터 로빈일때 콩닥콩닥했는데 말이죠..

다락방 2013-09-11 13:25   좋아요 0 | URL
꺅 저도 미스터 로빈일 때 완전 사랑에 빠져가지고 저 남자 내 남자 할테닷. 했었는데 앞머리 내린 헤니는 진짜 쮠따 같네요. ㅎㅎㅎㅎㅎ

가연 2013-09-10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한 자에겐 사랑도 사치다ㅜㅜㅜ 어헝헝... 슬픈 이야기군요

다락방 2013-09-11 11:47   좋아요 0 | URL
네. 사랑하는 여자와 도망치고 싶어도 차비가 없는 슬픈 현실 ㅠㅠ
 

 

 

 

 

 

 

 

 

 

 

 

누군가 살았던 집에서 가재도구를 매각한다는 소식에 여자는 무언가 살만한 것이 있을까 하고 구경하러 간다. 웬만큼 쓸만한 물건들은 이미 다 가져갔구나, 내가 너무 늦었구나, 생각하던 찰나 그녀는 잠겨있는 궤짝 하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궤짝안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물건이 있다는 것에 이끌려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그 궤짝을 사가지고 나온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열쇠가 없는 궤짝을 열어달라고 부탁하고 궤짝은 남편에게 주고 그 안의 내용물은 남편이 알지 못하게 자신이 숨겨둔다. 그 내용물은 그 집에 살았던 남자가 과거에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낸 편지였음이 확인된다.

 

 

여자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편지를 하나씩 읽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그렇게 비싼 돈주고 사온거냐고 남편이 잔소리를 늘어놓고 참견할 게 뻔한지라 남편이 없는 틈을 타 읽는다. 그리고 서서히, 그 편지를 쓴 남자에게 빠져들어간다. 그녀의 일상에서 그 편지의 주인공, 게오르그를 생각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

 

 

차를 마시다가 문득 게오르그 생각이 났다. 정확히 말해 그의 자화상이 생각났다. 그래서 편지봉투를 죽 훑어보고는 편지를 순서대로 읽을 수 있도록 정리했다. 마지막 편지를 먼저 읽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대체 마그다라는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왜 답장을 하지 않았지? 그들의 이야기가 결국 어떻게 끝날지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순서대로 편지를 읽는 것이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일인 듯했다. 내용이 너무 감질나거나 긴장이 지나치면 결말부터 보고 싶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은 책이 아닌 것이다. 게오르그도 인생을 앞질러 살 수 없었듯이. (p.90)

 

 

 사실 여자의 인생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여자는 남들처럼 살았다. 결혼을 하고 집을 무리해서 장만해서 빚을 갚아야 하고, 영 자신에게 맞지 않는 시부모를 견뎌내야 하면서. 그러나 썩 좋았다고도 할 수 없다. 남편은 자꾸, 조금씩, 그녀의 숨통을 조인다. 어디서부터였는지 모르게 나는 책 속의 여자와 내가 아주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그녀의 남편을 견딜 수 없어졌다. 같이 사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남편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 보다 세상의 기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란 게 나로서는 끔찍하게 느껴져서.

 

 

 

광고가 나오는 동안 프랑크는 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했고,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그는 지극 정성으로 양파를 썰고, 마늘을 다지고, 적당한 분량의 소금과 후추와 양념을 뿌린 뒤 텔레비젼 앞에 있던 먹다 남은 흑맥주를 가져다가 부었다. 그가 다시 거실로 돌아왔을 때, 스니커즈 광고에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이 나왔다그걸 본 내가 우리도 할리 데이비슨을 한 대 사서 캐나다로 이민을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프랑크는 내가 달나라로 거주지를 옮기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날 빤히 쳐다보며 반문했다. "그럼 이 집은 어떡하고?" (pp.42-43)

 

 

 

스테이크를 굽고 옆에서 거들고 그 고기에 흑맥주를 뿌리는 일 등은 내가 언제고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물론 흑맥주를 뿌리는 거야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지만, 나는 꼭 이렇게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스테이크를 구워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깔깔대고 웃으며 먹는 바로 그런 장면. 그러나 이 책 속의 여자의 남편, 프랑크에게 그 장면은 '하루를 이렇게 마감해야 한다'는 정해진 공식 같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산다는 건 이런거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려면 이렇게 해야지, 하는. 할리 데이비슨을 사는 건 남편의 소망이었는데, 농담 대신 현실에 뿌리내리는 집에 대한 언급이라니. 밥맛이 떨어진다.

 

 

"왜 직접 빵을 굽지 않는 거냐? 애도 없잖아. 남는 게 시간밖에 더 있어‥‥." (p.83)

 

일요일이면 한 주는 시부모님이 한 주는 친정 부모님이 방문한다. 방문해서 어머니는 이런 잔소리들을 해대다 간다...여자는, 이 삶을 대체 어떻게 견뎌야 할까.

 

 

여자가 마치 나 같다고 느낀 장면은 바로 여기였다.

 

 

 

나는 책을 덮었다. 허공에서 곤충들이 윙윙거렸고, 방금 깎은 잔디 냄새가 싱그러웠다. 창공의 구름은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듯, 온몸으로 이상한 모양을 만들었다. 어딘가 아득한 곳에서 아직도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이따금씩 일렁거렸다. 또 다른 삶이, 정해진 삶 말고 또 다른 일탈의 삶이 공존하는 것은 아닐까. 바로 이 순간 전혀 다른 세상 어딘가에서 그 삶의 주인공도 지금의 나처럼 질문도 모르는 답을 얻기 위해 뚫어져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p.71)

 

 

 

어제 친구를 만나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친구는 자신의 연인을 미래에 두었었다 했고, 나는 여태 연애하면서 내 미래에 연인을 둔 적은 없었다고 했다. 미래를 그릴 때 그것은 항상 미지였고, 거기엔 다른 어떤 새로운 사람,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친구는 내가 너무 이상적이라 말했고 나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나의 마흔 다섯에 스무살 대학생이 있을지도 모르고, 나의 예순에 서른다섯의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무척 짜릿한데, 물론 이것이 그저 막연한, 소설속에서조차 일어나기 힘든 일임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러나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려우면서도 기대되는 게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사람일은 알 수 없다는 것.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삶이 거기 있을 수 있다는 것.

 

 

여자는 이제 편지의 주인공을 직접 찾아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그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알게 되고 그의 친구가 된다. 이제 그녀에게 남편보다 더 좋은 친구가 생겼다. 그녀를 이해해주고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 그녀는 이제 그를 만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게오르그, 그는 그러나 그녀에게 어떤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어줄 뿐이다. 그녀는 고민한다. 내가 계속, 여기에서, 지금처럼, 살 아 야 할 것 인 가.

 

 

 

어제. 친구와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늦은 밤. 방 안에 조용한 음악을 틀어두고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읽은 부분은 이 책의 뒷부분이었다. 그녀가 고민을 하고,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바로 그 지점들. 일상에 섞이려 해보지만 자꾸만 답답해지는 일들.

 

 

"나, 어디 여행을 좀 가고 싶어요, 여보."

프랑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차 가야지. 그래도 집이 정리되기 전까지는 어차피 정신이 없잖아."

"아니면 극장이나 영화관, 박물관이라도 좋아요."

창틀을 높이 쳐든 채 그가 나를 향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박물관? 거긴 이미 갔잖아?"

"초콜릿도 먹고 싶단 말예요." 내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프랑크가 창틀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건 다 사치야. 영화는 텔레비전에서도 하잖아. 초콜릿은 단 5분 만에 다 먹어치우고 영화는 3시간 있으면 끝나고 말지. 그것도 아주 지루한 작품에 한해서 말이야. 하지만 이 창틀은 우리의 남은 여생과 함께할 거야."

창틀을 황홀한 시선으로 애무하며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3시간, 아니 단 5분만이라도 행복해지고 싶다면 과연 그것이 정말 사치일까? (p.177)

 

 

 

 

어느 지점부터였는지 모르겠는데,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울고 싶어졌다. 이 세상의 모든게 그렇듯이 책을 만나는 것도 타이밍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제 친구와 공원의 벤치에 앉아 나누었던 대화들과 이 책의 내용이 내게 겹쳤다. 적어두고 부치지 못했던 편지도 떠올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감정들이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부터 자꾸 울적했다. 여전히 어젯밤처럼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와, 이 책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들은 읽으면서 완전히 흡수되는 듯한 느낌을 줬는데, 그러나 어느 문장에 밑줄을 그어야할 지는 알 수 없었다. 순간의 분위기가 압도한다는 게 이런걸까. 190페이지의 마지막 줄에서는 병신같은 오타라고 해야하나 미친 편집이라고 해야하나, 말도 안되는 부분이 나와서 갑자기 화가 빡- 났지만, 그러니까 뭐랄까, 이 책을 읽고나니, 이 책이 무거운 내용의 책이 아닌데도, 숙연히 자꾸 내 삶과 내 감정과 내것으로 하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되는거다. 어제, 친구가 마치 협박한 듯 물었던 물음도 자꾸 떠오른다. 나랑 친구하는게 좋으냐, 싫으냐 묻던. 대답을 강요하며 물었던 그 질문에 좋다고 웃으면서 말했던 것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자꾸 가슴속에 쌓이고있고, 이게 나를 답답하게 해서, 대체 9월달에 나에게 어떤 일이 있으려고 그러는걸까 살짝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참고로 이 책의 190페이지 마지막 줄은 이렇게 끝난다.

 

 

나탈리도 오늘만큼은 날 받아주었다. 글씨

 

 

그런데 191페이지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셋이서 다리가 아파올 때까지 그렇게 거리를 누볐다.

 

 

 

이게...뭐야? 나는 쪽수를 다시 확인했다. 혹시 쪽수가 뒤섞인건가 해서. 그렇지 않았다. 저기에 저 '글씨'란 단어가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푹푹 빠져들고 흠씬 흡수되어 버렸는데, 저 멍청한 편집은..뭐야.

 

 

배가 고파서 아까부터 아침을 먹고 싶었는데 이러고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맑고 밝은데 내 마음이 왜이럴까. 틀어둔 라디오에서는 시청자들의 사연이 모두 가을이라 싱숭생숭하다는 것들인데, 그렇다면 나도, 그저 가을을 타는걸까. 설사 그렇다면 그런채로 두어야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이럴 수 밖에 없다면 이렇게 계속 가자, 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선이라면, 최선으로 두는게 맞다, 고. 내가 내 감정에게 말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정에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한 두시간쯤, 멍하니 창밖을 보며 자꾸만 계속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싶다. 어떤 생각인지도 모르는채로.

 

 

어디에 살든 몇살이 되든 나를 사랑하는 게 눈에 보이고 나 역시 마음을 주고 싶은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그 가능성이 미래를 좀 더 밝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여자가 오래된 편지들을 읽다가 사랑을 만난것처럼, 어쩌면 사람은 각자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끔 설계되어 있는게 아닐까 싶다. 제 살길을 제가 스스로 찾아가는 것 같다.

 

 

배고프다. 아침을 먹자. 지금은 아침을 먹는 게 내가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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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핑키 2013-09-0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갑자기 이 책 읽고 싶어지는데요!! ㅋㅋ 그리고 저 남편은 정말 이렇게 잠깐 봤을뿐인데도; 저까지 숨막혀 죽을거 같아요 ㅠㅠㅠ 저 여잔 어떻게 하다가 저런 남자와 결혼을 했을까요? 그리고 저 글씨. 라는 글씨는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요? ㅎㅎㅎㅎ 일단, 아침 맛있게 드세요! 다락방님 ~!! ㅋㅋ

다락방 2013-09-11 11:33   좋아요 0 | URL
아무리 오랜시간 교제를 해도 상대에게서 언제나 내가 몰랐던 면, 혹은 내가 좀처럼 좋아할 수 없는 면을 발견하게 되는것 같아요.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걸 서로 어떻게 조율해나가느냐가 앞으로의 관계 유지의 관건인데, 어떤것들은 도무지 조율의 여지가 없는 것들도 있겠죠. 저도 저보다 주변사람을 더 의식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진 않아요. 어휴, 끔찍합니다.

저는 이제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숙취해소를 위해 라..면.. 을 먹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ㅋㅋ

Mephistopheles 2013-09-0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과 이상. 동전의 양면. 궤짝 속 편지는 이상에 불을 질렀군요...ㅋㅋㅋ

그나저나 아침 메뉴가 매우 궁금하군요.

다락방 2013-09-11 11:28   좋아요 0 | URL
제가 기차를 타야하는데 시간이 없지 뭡니까. 페이퍼 쓰느라 시간을 써버려가지고........신라면블랙에 뜨거운 물 부어서 후루룩 먹고 나갔습니다. 아 그런데 지금 비 오는데 라면 얘기하니까 라면 먹고 싶네요. ㅋㅋㅋㅋㅋ

비밀을품어요 2013-09-07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상하게도 다락방 님 글을 읽고 있으면
책을 읽고 싶은 건 둘째치고,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떤 마력 때문일까요 ㅠㅠ
일단은 책부터 읽는 것으로,
아침은 30여분의 행복한 사치이셨길!

다락방 2013-09-11 11:26   좋아요 0 | URL
이런 글이라뇨. 제 글에 뭐 별 게 있다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다다다다다다다다 키보드 쳤을 뿐인걸요. orz
마력 같은게 제게 있을 리 없고, 아마도 기억상실님이 재밌게 읽어주셨기에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핫;;

오늘 아침은 행복한 사치가 아니라 숙취에 시달리는 고통이었습니다. Orz

dreamout 2013-09-0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제가 있는 곳. 뒷산 나무들이 바람과 함께, 몹시도 흔들거리며 프랑스 영화의 배경음악같은 쓸쓸함을 불러 일으켰어요. 계절의 바뀜 자체는 이제 좀 지긋지긋한데 쓸쓸한 바람소리는 이상하게도 사람 미음을 흔들리게 하더군요. 풍소소혜...

다락방 2013-09-11 11:16   좋아요 0 | URL
여기는 지금 비가 계속 오고 있습니다, 드림아웃님.
어제도 오더니 오늘도 와요. 어제는 술을 마셨고 오늘은 숙취에 고생하며 다시는 평일에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부질없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아-

노란곰 2013-09-0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좋아서 댓글을 달지 않을수가 없네요~~~^o^ 저도 그 맘 알아요. 책이 너무 좋아서 울고 싶어싶어지는거.. 그런데 저 책을 읽으면 가을에 온 몸이 빠져들 것 같아 망설이게 되네요^^;; 저기 남편과 아내의 차이는 결국 속도의 문제인데.. 전 한번 뿐인 삶을 느리게 가고 싶어요, 그래서 (경제적 상황 무시하고)여행가려구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3-09-11 11:15   좋아요 0 | URL
남편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거든요. 그런데 상대의 취향에 대해서는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보여요. 그런 사람하고 오래도록 함께 하기는 어렵겠죠. 밑줄그을 부분이 확 있는 게 아닌데 책 내용이 전체적으로 저한테 흡수되는 기분이었어요. 저한테는 참 좋았습니다, 노란곰님. 헤헷

무해한모리군 2013-09-09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투땡투땡투. 막 눌러요 ㅎㅎㅎ

글씨 다음은 뭘까요? 궁금하네...

다락방 2013-09-11 11:14   좋아요 0 | URL
저건 도대체 왜 들어가게 된 오타인지 모르겠어요. 아놔...
아무쪼록 재미있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휘모리님.
:)
 

권선징악은 어릴적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실제의 삶에서는 늘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건 아니다. 게다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이리저리 얽혀있는지라 나에겐 나쁜 사람이 내 옆 사람에겐 구원의 상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그에게 벌을 주고 싶지만 다른이는 그에게 충성할지도 모를일이다. 또한 그 '나쁜'일 이라는게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뿐이지 않은가. '절대적으로 옳다'는게 가능할까. 우리는 '우리 기준에서 옳다'고 믿는걸 옳다고 말할 뿐이 아닌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고.

 

 

 

 

 

 

 

 

 

 

 

 

 

 

 

 

그는 자신 있는 거음걸이로 길을 가로질러 내가 있는 테이블로 걸어왔다. 걸어오는 동안 그는 줄곧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가 지나오는 길 위의 공기마저도 그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환히 열리는 것 같았다. 그 소년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미소 띤 얼굴로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마치 정복자 같은 당당한 태도에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소년이었다. (p.39)

 

 

이 책의 주인공 '에드워드'는 소심하고 사교성 없는 소년이다. 친구도 별로 없고 파티에서도 구석에 가만히 서 있는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의 앞에 니콜라가 나타난다. 잘생기고 사교성도 어마어마하고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모든 여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그런 소년. 그런 소년이 인기 없는 에드워드의 앞으로 걸어와 자신을 소개한다. 에드워드에겐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환상적인 일이다.

 

 

바로 그때부터 나는 니콜라의 의지에 복종하기 위해 나 자신의 내부를 텅 비우기 시작했고 내 자아와 욕망들을 포기했다. 그가 어디에 함께 가주기를 원하면 나는 당장 그의 시간에 내 스케쥴을 맞추었다. 그가 뭔가 부탁하면 나는 당장 그의 시간에 내 스케줄을 맞추었다. 그가 뭔가 부탁하면 무슨 일이든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었고, 그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자부심마저 느꼈다. 나는 그런 일종의 겸손한 자부심을 갖고 그의 온갖 변덕에 봉사했다. 나보다 훨씬 나은 누군가 니콜라의 관심을 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조바심마저 났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자기만의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나의 경우, 나 자신에게서 사랑할 만한 부분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가진 사랑을 그에게만 집중시켰다. 나는 기꺼의 그의 제단 앞에 나 자신을 바쳤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한 명의 노예를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닐까? (p.43)

 

 

에드워드는 자신과는 정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니콜라의 자발적 노예가 된다. 그의 옆에서 그를 더 빛나게 하는데 일조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은 잘못이지만,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노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이럴때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걸까. 누군가 내 위주로 살고자 노력하는데, 나로서는 그게 싫지 않아 내버려둔다면, 그런 나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을까.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그래서 매우 어렵다. 하나의 행동을 놓고 그 행동 하나만으로 틀렸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뒤의 사연들을 알고 나면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고 만다. 에드워드와 니콜라가 어른이 되어서 하는 일도, 그 관계도 마찬가지. 에드워드는 니콜라가 과거에 저지른 큰 잘못에 대해 알게되고, 이에 니콜라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그 복수는 성공한다. 그렇다면 니콜라는 악인이고 에드워드는 단지 복수를 한 사람일 뿐일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파멸로 이끌었다면, 그건 잘못이다. 그러나 그것이 '복수'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아 그럴수도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그런데 다시, 그 파멸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면 그 때도 복수 때문이니까 할 수 없어, 라고 넘길 수 있을까. 역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무릇 자기를 선인이라 일컫는 사람들이라면, 그를 '용서' 하지 그랬냐고 조언할 수 있을것이다. 그런데 그 용서라는 건 뭘까. 피해를 당한건 나인데 다른이들이 내게 용서를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용서라는 게,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일까. 용서는 최선일까?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아무것도 명확해지질 않았다. 나는 니콜라가 잘생기고 인기 있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시기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노예부리듯 하고 무시하는 것도 그의 성격에 형성 되었을 거다. 여기에 분명 니콜라의 잘못과 니콜라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이 있다. 에드워드도 마찬가지. 그가 그의 소심한 성격을, 부족한 사교성을 원망하며 찬란하게 빛나는 남자의 자발적 노예가 되고자 한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소심한 사람이라고 해서 꼭 누군가의 자발적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에드워드에게도 무조건 잘했다고 할 수 없다. 그 뒤에 벌어진 표절에 대한 일도 마찬가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기 때문에 상대의 가장 소중한 것을 몰락시키겠다는 생각 역시 이해할 수 있지만, 또 가혹하게도 느껴진다. 여기에 있어서도 내 판단은 보류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 에드워드가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일에 있어서도, 나쁜 일 때문에 만났다고 반드시 나쁜 사람들과는 얽히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주니,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선한 게 어디 있기나 한걸까.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꼭 벌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그렇다고 무조건 용서해주는 것이 옳을까. 아무런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차라리 매뉴얼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아주 디테일한 매뉴얼. 이건 잘못이고 이건 잘못이 아니다. 이 정도 잘못을 했다면 이정도 벌이 적당하다. 이정도 잘못이라면 이정도 용서가 적당하다. 실생활에 가능한 매뉴얼. 그렇다면 머릿속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텐데. 그저 매뉴얼을 쭉 펴놓고 목차를 보며, 가만있자, 얘가 이랬으니까 이 정도 벌을 주면 되겠구나, 하고. 뭐, 그래봤자 말도 안되는 생각인 것 같지만.

 

 

 

일전에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서 그런 대사가 나왔다. '저 아이가 뚱뚱해진다고 해서 내가 날씬해지는 건 아니다' 라는. 학교에서 인기있는 여자애를 뚱뚱하게 만들기 위해 주인공이 노력하는데, 그렇다고 그것이 자기가 날씬해지는 방법은 아니었던 것. '야광토끼'의 [Can't stop thinking about you]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라는. 내가 뭔가를 더 못하고,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하는 것이 다른 누구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쟤만 없었어도..' 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아닌 남을 원망한다. 이 책속의 에드워드도 마찬가지. 니콜라는 더이상 소설을 쓸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에드워드의 창작력이 솟아나진 않았다. 우리가 볼 수 있는건 타인이지만, 우리가 봐야만 하는 건 자신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오늘 출근길에 읽기 시작한 책이, 와, 너무 재미있어서!!! 좋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모를만큼. 잠깐만 얘기하자면, 오래된 궤짝이 나오고, 그 안에 오래된 편지들이 들어있고...........................희희희희희. 그 책이 너무 읽고 싶어서, 계속 읽고 싶어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 지금 당장 퇴근하고 싶다. 아니,

 

 

지금 당장 퇴사하고 싶다. 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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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3-09-06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너무 멋진데요.

사실, 니콜라 같은 사람이 되기는 싫지만, 조금 이해가 되기는 해요. '나를 필요로 한다는 자부심' 그런게 은근 무섭지요.
오래된 궤작과 오래된 편지 이야기 너무 궁금하기는 한데요, 그래도 퇴사는 안 됩니당!

잠깐, 자꾸 안 된다고 하면 아니되니, 안 돼요, 돼요, 돼요??

다락방 2013-09-06 16:32   좋아요 0 | URL
나 좋다는데, 자발적 노예가 되겠다는데 그걸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긴해요. 그치만 저는 자신의 모든 스케쥴을 저를 기준으로 맞춘다면, 그걸 제가 알게 되는 순간 부담감이 작렬해서 절교를 선언할 것 같아요. 어휴..전 부담을 주고 받는 관계를 정말 질색팔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빨리 퇴근해서 오래된 궤짝과 편지 이야기 읽고 싶어요!!

네꼬 2013-09-06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아악! 퇴사는 (아직) 하지 말고, 그 책이 뭔지 당장 밝히시오!


다락방 2013-09-06 16:32   좋아요 0 | URL
므흐흐흐흐흐흐흐 퇴근부터 하고, 다 읽은 뒤에 밝히겠소. 참으시오!

moonnight 2013-09-06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닛!!! 오래된 궤짝 속의 오래된 편지 이야기가 뭐예요 도대체. 궁금궁금궁금 +_+;;;;;;

다락방 2013-09-06 16:32   좋아요 0 | URL
다 읽고나면 페이퍼 한 방 쓰도록 하겠습니다. 움화화화화화화화화화핫

무해한모리군 2013-09-0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책 제목을 어서 밝혀주셔야 제가 지금 주문해서 주말에 읽을거 아닙니까??? 다락방님~~~~

저 책이 영화로도 있는거지요?
그런 메뉴얼을 만들려면 혹은 읽으려면 그것만해도 전 생애를 바쳐야겠다 그죠? ㅎ

다락방 2013-09-06 16:33   좋아요 0 | URL
네, 영화로도 있다고 했던 것 같아요.


오래된 편지의 제목은 다 읽고난 후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움화화핫. 이번 주말엔 사둔 책들 중 안읽은 다른 책을 읽으세요, 휘모리님!!

관찰자 2013-09-0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타인이지만, 우리가 봐야만 하는 건 자신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남네요.
아침부터.^^

다락방 2013-09-06 16:34   좋아요 0 | URL
선과 악을 옳고 그름을 분명히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인것 같아요. 그 기준 자체가 모호한 일이니까요. 다 읽고나니 좀 복잡했어요.

꺅 금요일입니다요~~

그렇게혜윰 2013-09-06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지 그리 오래된것도 아니고 흥미롭게 읽었던것같은데 다락방님글읽기전엔 내용 전~~~혀 생각안났다는ㅠㅠ 그나저나 궤짝편지책 정말 궁금해요!!

다락방 2013-09-09 13:10   좋아요 0 | URL
궤짝편지 이야기는 '카티 나우만'의 [오래된 편지] 였습니다. 바로 위에 페이퍼 써놓았고요. 제가 읽고난 감정은 엄청났는데 막상 글로는 잘 표현이 안되는 것 같아요. 흐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자,

 

나에겐 친하고 다정한 이성 친구가 있다. 그와 얘기하는 것은 내 일상의 큰 기쁨이고, 그래서 그를 잃고 싶지 않다. 소울 메이트라기엔 뭔가 거창하고 오글거리지만, 나는 앞으로의 삶에도 그가 내내 내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이 감정을 나는 사랑이라고도 생각한다. 우리 사이에 성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사실 그의 앞에서 성적으로 긴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도 나도,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에게 터치를, 혹은 접촉을 시도하진 않는다. 그런 사이로 우리는 대화한다. 우리의 전공에 관한 얘기를, 직장에 대한 얘기를, 친구에 대한 얘기를, 읽었던 책에 대한 얘기를. 우리는 제법 나이차이가 난다. 남들이 보면 친구란 말에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를, 그 정도의 나이 차이. 그러나 그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는 서로를 이해한다. 우리는 자주 만나는 건 아니지만, 만나기로 하면 설레이고 기쁘다. 만날 약속을 잡는 그 순간부터 행복해진다.

 

 

"내가 몇 살인지 알아요, 헤더?"

나는 그를 쳐다봤다.

"부친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어요."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난 당신과 얘기하는 것이 좋아요." 그는 마치 내 말을 듣지 못한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게 다예요. 나는 우리의 대화가 즐거워요. 당신 역시 즐거워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뭐가 문제죠?"

"문제는 그러니까, 우린 언제 다시 보죠?"

로버트가 주머니 속에서 꺼낸 열쇠고리에서 열쇠를 하나 빼낸 다음 내게 주며 말했다. "당신이 좋을 때." 그는 미소를 지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p.105)

 

 

문제는, 우리가 우리 사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 관계가 바깥으로 드러나는 게 조금 겁나는지, 누구에게도 우리 사이에 대해 말하지를 못한다. 그건 훌쩍 나이차이가 나서일 수도 있고, 우리가 남자와 여자라는 이성간 이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혹은 우리는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세상에서 우리 마음속의 서로에 대한 사랑을 눈치채고 값싸게 만들어버리는 게 두려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저 지금처럼, 우리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장 좋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내게, 연인이 생긴다. 누가 봐도 적절한 애인, 옆에 두며 내 애인이라고 말하기에 거리낌 없을 남자. 적당한 직업, 적당한 나이, 누가봐도 어울리며 빈번하게 섹스도 나눌 수 있는 남자. 그와 결혼한다면 앞으로의 삶이 크게 어려움 없이 진행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물론, 나의 연인에게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나의 이성친구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나는 연인을 만나 사랑을 속삭이면서, 그 날들중에 가끔은 뚝 떼어내 나의 이성친구에게 달려간다. 애인과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애인과 나눌 수 없는 둘 만의 분위기들을 즐긴다. 이 분위기, 이 순간, 이 공기는 이 이성친구와만 가능하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이 이성친구와 함께 있는 모습을 애인에게

 

 

들.킨.다.

 

 

말 그대로 '들킨다'. 나는 그에게 이성친구의 존재를 말한 적이 없으며, 그에게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지금 내가 여기 있을 줄을 몰랐으니, 들켜버리고 만다. 게다가 나의 애인은 이성친구와 과거에 어떤 시간을 보냈든 상관하지 않을테니 앞으로는 만나지 않기를 종용한다. 그는 안돼. 나는 나의 애인과 사랑하며 살고 싶고, 결혼을 약속 했고, 그 결혼을 하고 싶기 때문에 이성친구 만나는 것을 그만둔다. 그러나, 연락만은 끊을 수 없다. 애인 몰래, 그와 연락하며 지낸다. 애인과 결혼을 하며 지내는 동안 가끔 그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중요한 나의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가 생각하기론,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할 수 있는 나의 일부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p.129)

 

 

 

여기까지는 이 책에 실린 단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다. 이 단편집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단편. 읽으면서 마치 줌파 라히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줬던 단편. 게다가 129페이지의 인용문은 기가 막히다.

 

연인은 어떤 존재일까. 연인은 섹스를 나누고 영혼의 교감을 하는 사이일까. 그렇다면 연인 이외에 영혼의 교감을 하는 사이가 한 명 더 있다면, 그게 안 되는 걸까? 물론 숱한 이성친구들이 내 연인의 눈에 싫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유독 신경쓰이는 한 명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유독 신경 쓰이는 한 명에 대해서는, 내 마음이 다른 이성친구에게 가 있는 것과는 '다른'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라는 인간은 복잡한 사람이고, 이런 내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 맞는, 완벽하게 일치하는 타인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헤더가 말한대로, 연인이 내 일부를, 일부라기엔 좀 많은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고 해도, 그가 채워줄 수 없는 다른 일부를 다른 누군가가 채워줄 수도 있다. 나로서는, 그런 사람의 손을 놓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연인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걸까?

 

그는 네가 채워주지 못하는 나의 다른 일부를 채워줘. 그러니 그의 존재를 인정해줘.

 

이 말이, 나의 연인에게, '물론 인정해줄게' 라는 대답을 유도할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라면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입장이 바뀌어, 내 연인이 자신의 다른 소울메이트(오글거리는 표현이긴 하지만)를 인정해달라고 하면, 나는 기꺼이 인정해줄 수 있을까. 사실 나로서는, 나 역시 인정받고 싶으니 상대에 대해 인정해주긴 하겠지만, 잘 모르겠다. 내가 쿨할 수 있을지. 설사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한다해도, 내 연인이 나의 '쿨함'을 오히려 더 기분 나빠하진 않을까.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의 일부를 채워주는 다른 중요한 존재에 대해서는, 나를 사랑한다 말하고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연인에게 비밀로 간직하는 것이 더 나을것이다. 어쩌면 이 사람에게는 다른 친밀한 존재가 있겠지, 라는 가능성을 열어둔다한들, 그 상대가 누구인지까지 말하는 것은 좋지 않은것 같다. 아는 순간, 그 사람을 신경쓰게 될테니까. 그런데 이 친밀함을 나누는게, 상대에게 일종의 배신인걸까? 그런걸까? 나는 이 친구를 연인보다 먼저 알았는데? 연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는 아주 잘 지냈는데?

 

 

 

우리 모두에겐 이사람 말고도 '다른' 존재가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존재에 대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고 반대로 꼭꼭 숨겨두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럴 때 비밀은 생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이 숨기고 싶은 이성친구 라고 한들, 그게 비밀이라는 데 뭘 어쩔 수 있을까. 다만 이해받고 싶은데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꼭꼭 숨겨두는 것을, 그걸 어쩔 수 있을까.

 

 

 

처음 친구에게 이 책,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추천받고 읽기 시작하면서는, 흐음, 그렇게 좋지는 않은걸, 하고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고, 아, 이래서 친구가 읽어보라고 한거구나, 싶었다. 줌파 라히리를 만난 느낌이지만, 그보다는 약간 서투른 느낌. 모든 단편들에 대해서 좋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인간 개개인의 비밀을 엿보고 거기에 공감하는 것이 의미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주어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다른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존재에 대해, 앤드루 포터는 이미 알고 있다며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려주는 느낌이랄까.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책장 한 켠에 이 책의 자리를 만들어줄 것이고, 간혹 헤더가 자신의 다른 일부를 만나는 순간을 뒤적여 보게 될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존재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덧. 이 책은 물리학 이론서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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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9-04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오늘 아침 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뭡니까 이 소설은....위장을 소주로 세척하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ㅠ..ㅠ

다락방 2013-09-04 13:14   좋아요 1 | URL
어휴..그거 엄청나죠. 책장마다 절절하고. 속이 쓰리죠. ㅠㅠ

Mephistopheles 2013-09-04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하곤 달리 제목이....너무너무너무너무 거창하군요....

다락방 2013-09-05 16:35   좋아요 1 | URL
다른 얘긴데, 저 지금 읽는 책 제목이 생각이 안나요. 제목이 외워지질 않네요. 다섯 글자인데 말입니다..쩝..

Mephistopheles 2013-09-06 13:18   좋아요 1 | URL
책 제목에 고기가 않들어가는군요.

다락방 2013-09-06 16: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편집된 죽음이 책 제목이었습니다. 고기랑 전혀 상관없죠. ㅋㅋㅋㅋㅋ

테레사 2013-09-04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이 이론서인줄 알고 클릭했다가 소설이란 걸 알고, 놀랐죠. 제목을 다르게 지었다면, 좀더 많이 팔렸을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첫 작품도 뭔가 아릿하지 않던가요?

다락방 2013-09-05 16:36   좋아요 1 | URL
첫 작품은 앗, 하긴 했지만 음 약간 작위적이란 느낌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 단편집을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는걸, 했는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 좋더라고요.

비로그인 2013-09-05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정적으로 외칩니다, 이해가 돼요!

다락방 2013-09-05 16:46   좋아요 1 | URL
열정적으로 외치시는 게 여기까지 아주 잘 들립니닷!! ㅎㅎ

하루 2013-09-06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멋지죠? :)

다락방 2013-09-15 22:55   좋아요 1 | URL
이 책이 전체적으로 멋지진 않은데 이 단편이 근사해요!

[그장소] 2017-02-25 0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독점을 ㅡ사랑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한건 ..누구고 언제였을까요?대체~~ ^^
 
행복한 나날
로랑 그라프 지음, 양영란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7월
품절


내가 이들에게서 좋아하는 점은 본질을 중요시하고 근본적으로 정직하다는 점이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이들로 하여금 거짓말할 필요도, 숨기고 꾸밀 필요도 없는 진실한 사람으로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73쪽

나는 늘 벤치를 좋아했다. 벤치는 은퇴의 상징이며, 세상과의 거리감, 평화스러운 가장자리의 상징이다. 벤치는 바깥세상을 관찰하는 특혜 받은 자리이며, 피난처이고, 멈춰 설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벤치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멋진 벤치도 있고 얄궂은 벤치도 있다. 벤치는 그 놓인 자리만으로도 많은 것을 상징한다.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은 더 이상 현실 세계에 속하지 않거나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다. 이 단순한 좌석 하나가 그에게 시인의 자격을 부여하기도 하고 시야를 넓혀주기도 한다. 폭풍우나 소요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건 바로 벤치이다. -88-89쪽

오늘 나는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미레이유라는 여자를 통해, 하긴 그녀가 나한테 자기 곁에 있어도 좋다고 승낙을 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서서히 진행되어 마침내 그 궁극적인 종착역에 이르게 되는 죽음의 전 과정에 동반하기로 결심했다. 그러한 행동, 그 같은 선택을 결심하게 한 것은 공포나 불안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과 분노의 감정이었다. -93쪽

죽음이 임박해오면 그때까지 사용해오던 가면이 부서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는다. 백 퍼센트 솔직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체득한 온갖 계략과 거짓말로 무장한 채 마지막 순간까지 싸울 것이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인간은 점점 밝혀지는 진실에 대항해서 어리석기만 한 체면을 세우려고 전전긍긍할 것이다. 인간은 진실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진실에 복종하기보다 그럴 듯한 외관을 유지한 채 죽는 편을 택하리라.-105-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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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9-0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엔 벤치에 앉아서 술마시거나 노는거 참 좋아했는데
요샌 웬만한 곳은 노숙자들 눕지 못하게 벤치 중간에 '턱'같은걸 만들어 놔서 영.......

다락방 2013-09-04 11:34   좋아요 0 | URL
벤치에 앉아서 캔맥주를 마시는 건 진짜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 같아요. 물론 캔맥주를 마시노라면 근처에 화장실은 필수겠지만. 킁킁.

Mephistopheles 2013-09-0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치는 딱딱해서 잘 배겨요...그래서 영...

아무개 2013-09-03 16:18   좋아요 0 | URL
메피님 우리는 이미 장착된 질 좋은 쿠션이 있잖아요 뭘~^^

Mephistopheles 2013-09-03 19:08   좋아요 0 | URL
제 나이 돼봐요...쿠션이 좋은 들 딱딱한데 앉으면 뼈가 저립니다.

다락방 2013-09-04 11:34   좋아요 0 | URL
배기기 전에는 일어나줘야죠.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3-09-0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도 벤치 좋아하세요?

근래에 사건사고가 너무 많아서 피난처같은 벤치에 앉아있고 싶은 심정이네요.
나에게도 벤치가 필요해요. 벤치가...

다락방 2013-09-04 11:35   좋아요 0 | URL
벤치는 이상하게 여유의 상징으로 느껴져요. 다 괜찮아지고 뒤로 물러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혼자 앉는 벤치도 둘이 앉는 벤치도 좋은것 같아요. 단발머리님도 벤치 좋아하시는군요.

제 경우엔 사건사고보다도 과중한 업무로 인해 여유가 없는지라 벤치에 앉을 여유가 필요하네요. ㅠㅠ

다락방 2013-09-03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요!!

2013-09-03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9-04 11:42   좋아요 0 | URL
우앙 고맙습니다~ 므흐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