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친구 덕분에 알게된 메뉴. fatboy brekky. 친구는 자신이 먹고 있는 걸 사진 찍어 보내주었는데 와 - 완전 내 스타일인거다. 완전완전완전완전 내 스타일. 이름에서 알려주듯, 뚱뚱한 소년의 아침 쯤이 될텐데, 아, 뭔가 독립하고 싶어진다. 독립하고나서 매일 아침을 저렇게 먹고 싶다. 그럼 완전 슈퍼 팻걸이 되겠지..괜찮아..저런 아침을 먹는거라면 기꺼이 이 비루한 육체쯤 버리겠어.. 돼지가 되고 행복을 찾겠어! >.<


구글에서 찾은 이미지들.








아-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저거 다 싹싹 비우고 다시 침대로 가 드러누워 잠들고 싶다.....네번째 사진은 너무 빈약하고, 세번째 사진은 좀 고급지네. 나는, 제일 첫번째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든다. 두번째도 좋고 말이지. 내 스타일이야 진짜 ♡



저런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남자 따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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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1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펫~ 걸 펫펫펫~ 걸 탐스럽다 ㅎㅎㅎ

저 콩 설탕 조림 좋아해요 ㅎㅎㅎ

다락방 2014-12-19 10:43   좋아요 0 | URL
전 스크램블 에그, 반숙 계란후라이, 고기....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버터랑 orz

비로그인 2014-12-19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남자고 음식은 음식인 것입니다 : D 미리 배제하진 마세요 ㅎㅎ 저희집에도 기꺼이 난 돼지야~말하며 아구아구 먹는 아이들이 ㅎㅎ

다락방 2014-12-19 10:43   좋아요 0 | URL
백키로 찍으면 남자랑 함께 사는 건 힘들것 같아서요 아른님 ㅋㅋㅋㅋㅋㅋㅋㅋ 한 방안에 있기 답답하고 귀찮아질 것 같아요. 꺼져버려라, 기분이 될듯.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백키로찍고 남자 몰아내느냐, 남자 차지하고 저 음식을 참느냐. 전 전자를 선택하는 여자사람인 겁니다!! >.<

세실 2014-12-1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지금 빵 먹고 싶어서 사러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말랑 말랑 구운 토스트에 잼이랑 버터 듬뿍 발라서 커피랑 먹고 싶어요.

다락방 2014-12-19 10:42   좋아요 0 | URL
아흑 저 너무 힘들어요 세실님. 저런 사진을 보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이 기분이라니. ㅠㅠ
세실님 빵 사오시거든 제게도 하나 보내주세요. 툭- 하고. 하앍-

Mephistopheles 2014-12-1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어제 과음으로 인해 이런 사진은 고통이라는....

다락방 2014-12-19 11:1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뭔가 약올리고 싶어지는 이 기분... ㅎㅎㅎㅎㅎ)

야클 2014-12-1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 정도면 도전해 볼만한 음식이네요.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물론 내가 다 만들어야 한다는게.... ㅠㅠ

다락방 2014-12-19 12:40   좋아요 0 | URL
저도 친구가 해준대요. 행복해요 ♡

moonnight 2014-12-19 17:12   좋아요 0 | URL
애처가 야클님 ㅎㅎ

moonnight 2014-12-19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어 보여요. +_+; 양은 좀 많긴 많겠^^;;;
저는 나이가 드니까 확실히 먹는 양이 똑같아도 살이 찌더라구요. 나날이 생애최고 몸무게를 경신하고 있는데 뭐 그러려니 하고 있다는 -_-;;;;;;;;;;

다락방 2014-12-23 14:20   좋아요 0 | URL
전 아침 식사도 헤비한게 좋아요. ㅋㅋㅋㅋ 양 많고 고칼로리 ㅋㅋㅋㅋㅋㅋㅋ인생 사는거 백년인데 백년동안 먹을 수 있는거 다 먹겠다!! 의 마음이랄까요. 아하하하하.
저도 생애최고 몸무개를 매일 갱신하다가 요즘엔 멈췄습니다. 어휴.... 힘들었어요......

서니데이 2014-12-19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만 봐도 맛있겠어요. 아침보다는 저녁에 먹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저녁 전이라서 그런지 오후에 보았을 때보다 더 맛있어보이나봐요. ^^

다락방 2014-12-23 14:20   좋아요 0 | URL
전 아침에 먹으면 더 좋을것 같아요. 저녁에 먹으면 술하고 먹으면 되고. 히히히히히

보물선 2014-12-19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아침을 차려주는 남자면요??

다락방 2014-12-23 14:20   좋아요 1 | URL
기꺼이 제가 돈을 벌어올 것입니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아버지가 당뇨 판정을 받으시고 나서 급격히 우울해지셨다. 당신은 술도 안하고 담배도 안하며 자주 등산으로 운동도 해주는 데 왜 대체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거냐며. 식구들 모두 같이 우울해했고, 또한 우울해하는 아버지를 어떻게든 달래주려 애썼다. 그러나 병원에 가 약을 받아오며 음식 조절까지 하시게 된 아버지는 기분이 나아지질 않으셨다. 여전히 예민하고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변해버리셨다. 이제 맛있는 걸 더이상 먹지 못하고 계속 약을 먹으며 살아야 하니, 이것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는 말씀도 곧잘 하신다. 마치 인생이 끝나버린 것 같은 기분도 더러 드시는 모양이다. 장염이라든가 감기등 금방 낫는 질병에도 사람은 쉬이 우울해지는데, 계속해서 치료를 요하고 관심을 요하는 병에 걸린다면 얼마나 더 우울할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뭐, 그에 대한 옆에서 보는 가족 혹은 '나'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어느날, 식도암 판정을 받는다. 게다가 이미 전이가 많이 된 상태라 항암치료를 하는데도 몸이 나아지질 않는다. 그는 이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토록 몸이 아프고 괴롭고 또 당신은 곧 죽을겁니다, 라는 선언을 마주한 뒤에 히친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절망하고 좌절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어떠한 위로에도 마음이 나아지질 않는 것. 줄리언 반스가 아내의 죽음 앞에 다른 사람들의 모든 반응들을 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했듯, 히친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히친스는, 자신이 가졌던 신념이나 사고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꼿꼿하다. 나는 히친스를 이 책,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처음 만나봤고, 그의 이름은 지나가다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그는 종교 혹은 신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거다. 



자신의 병 앞에, 줄어드는 삶 앞에 그가 어떤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여전히 위트와 지성이 넘치는 글을 써낸다. 고통이 극심한날에는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그이지만, 이토록이나 날카롭고 유머 있는 글을 써내는 그라면, 그간 그가 어떤 이야기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를 이렇게 늦게 알게 된 것이 안타깝다.



그가 기독교 혹은 신에 대해 어디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말이나 글이 종교인들에게 커다란 빡침을 주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는 식도암을 판정받고 살아가던 어는 날, '신자들의 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게 된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말기 목구멍 암[throat cancer, 원문의 오류를 그대로 적음]에 걸린 것을 두고, 그가 목소리를 이용해서 신을 모독한 것에 대한 신의 복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또 누구일까? 무신론자들은 사실을 즐겨 무시한다. 그들은 마치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행동한다. 정말로 그런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몸의 여러 부위 중에서도 특히 신성모독을 할 때 사용했던 부위에 암이 생긴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그래, 계속 그렇게 믿어라, 무신론자들이여. 히친스는 지독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하찮은 존재로 시들어가다가 끔찍하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 뒤에 진짜 재미가 찾아온다. 그가 지옥불로 보내져 영원히 불에 타며 고통받을 테니 말이다. (p.32-33)



일단, 히친스와 별개로 내가 이 글을 읽고 생각한 건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죽음의 선고를 듣고 어떻게 악담을 퍼부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욕할지언정 그들이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않나? 내가 싫어했던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그것을 '잘됐다'라고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의 마음엔 이미 '악'이 있는 건 아닐까? 어쨌든, 히친스는 이런 게시물의 글을 읽고 이렇게 써낸다. 



경전과 종교의 가르침에는 수백 년 동안 이렇게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심보를 주류 신앙으로 만들어버린 구절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나와 관계된 일이 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런 주장의 뚜렷한 문제점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첫째, 고작 영장류인 주제에 신의 마음을 안다고 어찌 그리 확신할 수 있는가? 둘재, 위의 글을 쓴 익명의 필자는 아무 잘못도 없는 내 아이들이 자신의 글을 읽기를 바랄까? 아이들 역시 같은 신 때문에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말이다. 셋째, 이 글의 대상에게 벼락을 내리거나, 하여튼 그것과 비슷하게 경외감을 일으키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어떤가? 복수심에 찬 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 고작해야 내 나이와 예전의 '생활방식'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 암을 내려주는 것이라면 그의 무기고는 슬플 정도로 비어 있음이 분명하다. 넷째, 애당초 왜 암인가? 나이를 많이 먹으면 거의 모든 남자가 전립선암에 걸린다. 품위 있는 병은 아니어도 성자든 되인이든, 신자든 비신자든 상당히 공평하게 걸리는 병이기도 한다. 신이 각자에게 걸맞은 암을 내린다고 주장할 생각이라면, 백혈병에 걸리는 많은 아기들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할 것이다. 독실한 신자들도 젊은 나이에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반면 버트런드 러셀과 볼테르는 마지막까지 팔팔했다. 많은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독재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신벌은 끔찍할 정도로 임의적인 듯하다. 위에 인용한 글의 기독교인 필자에게 서둘러 장담하건대, 아직 암에 걸리지 않은 나의 목구멍은 내가 신성모독에 사용한 유일한 기관이 아니다. 그리고 설사 목숨보다 목소리를 먼저 잃는다 해도, 나는 적어도 어둠과 맞닥뜨려 '안녕'하고 인사를 건넬 때까지는 종교적 망상에 맞서 논박하는 글을 계속 쓸 것이다. (p.33-34)



물론 모든 종교인들이 그의 고통을 바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그의 쾌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한 지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내가 웃었던 이런 부분도 있다.



세속주의자 또는 무신론자인 수많은 친구들이 내게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이걸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네야." "자네 같은 사람 앞에서 암은 상대도 안 돼." "자네는 틀림없이 극복할 수 있어."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은 물론 좋은 날에도 이런 간곡한 말들은 살짝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이 모든 동지들을 실망시키는 꼴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또다른 세속적인 문제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병을 이겨낸 뒤에 신앙인들 쪽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자기네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어쩌지? 그것도 왠지 짜증스러울 것이다. (p.39-40)




나는 히친스를 좋아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에게서 러셀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러셀이 제일 멋진 줄 알았더니 이렇게 히친스 아저씨가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네. 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믿는 건 아니다. 대체적으로 나는 그게 뭐든, 믿는 사람에게는 보인다, 라고 믿는 쪽이다. 그러나 러셀과 히친스처럼 무신로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내가 더 많이 설득됨을 느낀다. 그들에게서 더 많은 타당함을 본다. '신이 없는' 혹은 있다면 그건 내가 생각하는 신적인 존재와는 그다지 없는 쪽이 더 신빙성 있게 느껴진달까. 



앰브로즈 비어스(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옮긴이)가 《악마의 사전Devil's Dictionary》에서 내놓은 '기도'의 정의와 정신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잘 알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지극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도:스스로 무가치하다고 고백하는 탄원자가 자신을 위해 자연의 법칙을 정지시켜달라고 탄원하는 것. (p.43-44)


여기에 대해 히친스는 성경을 인용함으로써 타당성을 더한다.



첫째, 기독교의 신은 전지전능하다. 둘째, 신도들은 그 신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필사적으로 필요로 한다. 기초적인 구절을 하나 인용하자면,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되어 있다. <신명기>32장 4절은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라"라고 선언한다. <이사야> 64장 8절은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하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신도들에게 절대적인 의존을 고집스레 요구해놓고, 그다음에는 진한 찬사와 감사를 바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기도를 이용해서 세상이 바로잡히기를 기원하거나 신에게 은총을 내려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은 사실상 심각한 신성모독을 저지르고 있는 것과 같다. 아니, 적어도 신을 한심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일개 인간이 신에게 충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애석하게도 종교에 부패라는 혐의를 추가로 덧붙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기도가 신자들에게 만족을 안겨주려고 의도딘 것이 아님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기도의 대가로 헌금을 받을 때마다 사실은 믿음에 대한 심각한 부정否定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 그들의 믿음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달라는 신자들의 요구가 아니라 신자들의 수동적인 수용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여러 분파들이 격렬한 싸움을 벌인 끝에 교회는 결국 '면죄부 판매'같은 악명 높은 행위들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런 지독한 신성모독이 그토록 화려하게 이윤을 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많은 훌륭한 바실리카와 예배당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p.46-47)



히친스는 저명한 인사답게 아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암에 대한 치료방법, 그에 해당하는 격려와 응원을 받게 된다. 알려지지 않은 약초와 치료법등이 그에게 마구 쏟아져들어오는 가운데-그 제안들 가운데는 '냉동인간'이 되는 방법도 있었다-, 그는 쓸만한 방법을 제안한 사람도 있음을 밝힌다.



이런 조언들과는 대조적으로, 샤이엔 족과 아라파호 족 인디언의 피가 섞인 내 친구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 중에 부족의 치료법에 의지했던 사람들이 모두 거의 순식간에 죽어버렸다면서 혹시 누가 미국 인디언 식 치료법을 제안하거든 "반대방향을 향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움직어야"한다고 친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개중에는 정말로 받아들여서 실천할 수 있는 조언도 있는 법이다. (p.51-52)



유머감각이 똑똑한 사람의 전유물인건 아니지만, 똑똑한 사람일수록 유머감각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나는 히친스를 보며 생각했다. 그는 날카롭고 지성적이며 유머스럽다. 또한, 느껴야 할 것을 제대로 느낄 수도 있는 사람이다. 생각과 느낌이 골고루 섞였을 때 사람은 최대한의 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의학문헌에서 성대 vocal cord 는 단순한 '주름'에 불과하다. 연골 한 조각이 제 쌍둥이를 향해 열심히 손을 내밀어서 마침내 닿는 것에 성공하면 음향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chord'(화음-옮긴이)라는 단어와 틀림없이 깊은 관계가 있을 것 같다.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음악을 만들어내고, 사랑을 이끌어내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군중을 연민으로 이끌거나 폭도들을 열정으로 이끄는, 공명의 떨림. 과거에 우리가 자랑하던 것처럼,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이 우리만은 아니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전히 즐거움과 오락을 위해 목소리를 통한 의사소통을 이용하고, 여기에 우리의 또다른 자랑거리인 이성과 유머를 결합시켜 고등한 혼합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물은 우리뿐이다. 이 능력을 잃는 것은 곧 많은 능력을 박탈당하는 것이고, 분명히 말하건대 작지 않은 죽음이다. (p.82-83)



시간이 흘렀고, 그는 점점 더 쇠약해졌다. 그리고 병실에 누워, 이제 요구사항을 말로 하는 대신 글로 적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는 아내에게 이런 메모를 전한다.



'니체, 멩켄, 체스터턴의 책. 그리고 아무 종이나...아마 낡은 여행가방에 있을 거야. 서랍도 봐! 협탁 등등. 위층과 아래층.' (p.137)



그는 결국 생을 다했고, 그의 아내는 그의 남편을 그리워하며 이 책을 마친다. 



남편의 완벽한 목소리가 그립다. 밤이든 낮이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남편이 잠에서 깼을 때 기쁜 듯이 가볍게 떨리던 목소리가 그립다. 신문에서 화가 나거나 즐거운 기사들을 내게 읽어주던, 그 나직한 '아침 목소리'. 그가 기사를 읽는 도중에 내가 끼어들면 그는 기쁘거나 짜증스러운(짜증을 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목소리를 냈다. 점심식사를 준비하면서 부엌에 있는 전화기를 통해 라디오방송에 출연할 때 재즈의 악절 같던 그 '전화 목소리'.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이하던, 높은 새소리 같은 목소리. 그리고 늦은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아주 작은 소리로 달래듯 조곤조곤 이야기하던 목소리. (p.139-140)



우리는 죽음 앞에 숙연해지지만, 누군가 함께 했던 기억을 안고 사는 그 그리움 앞에도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목소리가 아주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한 사람에 대해, 그가 가진 목소리는 그의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지만,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의 기분과 상태, 감정 같은 것들. 실제로 얼마전에도 나는 '그렇지 않은 척' 전화를 받으려고 했지만 상대로부터 '왜 심란하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니'라고 해봤자 다 들키고 말았다. 목소리는 내가 내 상태를 말로 꺼내기 전부터 내 상태를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남편의 완벽한 목소리가 그립다, 라는 문장에서 '완벽하'다는 것은 그의 목소리가 정말 '완벽'에 가까운 목소리여서가 아니다. 그가 그였기 때문에 그 목소리가 완벽했던 것.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 는 문장 자체로 그의 죽음이 확 느껴진다. 그것이 현실이 된다. 그 그리움 앞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함께 살았고, 숱한 목소리들을 서로에게 들려주고 들었으며, 거기에는 수많은 상황들이 놓여있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 민낯을 마주하듯,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잠에 취한 목소리를 그들은 서로에게 들려주고 들었을 것이다. 잠들기 전에 귓가에 속삭이던 나지막한 목소리 같은 것들도,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한 음의 고저로, '우리만이' 알 수 있는 톤으로 들려주고 들었을 것이다. 이제 한 쪽이 생을 다했고, 그러므로 아직 생을 살고 있는 이쪽은 그 목소리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단, 죽음만이 둘을 갈라놓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세상에 둘 다 발 붙이고 굳건히 살아있다해도, 내가 당신의 목소리를 또 당신이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날이 언젠가 올런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내내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에 대한 많은 것을 그리워할 것이고, 특히 목소리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레이든 카터'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의 서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올봄 로스앤젤레스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 에밀 허시라는 젊은 배우가 잔뜩 흥분해서 다가왔다. 내가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히친스의 자서전 《히치-22Hitch-22》를 읽었고, 그가 쓴 키신저 책에 푹 빠져 있다면서 히친스의 글처럼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글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p.7)



나는 '에밀 허시'라는 배우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바, 당장 스맛폰으로 그를 검색해보았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보니 내가 본 영화가 없더라. 그러나 보지도 않은 채, 나는 이 에밀 허시라는 배우를 아주 높이 사기로 했다. 히친스를 읽고 히친스의 글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 배우라니. 이 얼마나 근사한가! 나는 이제야 고작 히친스의 책을 한 권 읽었을 뿐이지만, 히친스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 책 한권을 읽고, 나는 고작 이만큼만 읽고, 히친스를 그리워한다. 그의 신랄한 비판과 유머감각에 즐겁게 책을 읽어가다 결국 숙연해지고 말게 한 히친스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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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신나지?
    from 마지막 키스 2016-02-02 16:01 
    아하하하. 이 책 재미있다. 처음부터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내가 성경을 이미 읽어본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지만, 어릴적에 교회 다니면서 잠깐 들었던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다. 또한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도 이미 아는 이야기들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유명한 성경속 이야기들에 대해 주제 사라마구는 '깐다'. 성경과 여호와에 대한 이 신랄한 비판에 어쩐지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랄까.'도킨스'의 책, [만들어
 
 
레와 2014-12-1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어볼게요!

다락방 2014-12-19 08:42   좋아요 0 | URL
네, 러셀만큼 좋더라고요.

2014-12-18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9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4-12-1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 글을 읽으니, 저도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좋아할 수 밖에 없네요!
앞서 글을 쓸 당시 다락방님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책, 좋은 작가를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4-12-19 08:44   좋아요 1 | URL
그치요, 감은빛님? 저 지성과 위트 덕에 저는 히친스 아저씨에게 푹 빠졌습니다.
다른 책들도 찾아서 천천히 읽어봐야겠어요. 분명 러셀 만큼이나 근사한 아저씨입니다.
감은빛님도 얼른 읽어보시고 리뷰 적어주세요! 히히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8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흥미로운 글을 쓰는 작가네요. 덕분에 저도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죽음 앞에서 위트를 잃지 않는 사람이라니. 그런 면에선 진정한 신앙인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ㅎㅎ
전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히친스의 글에 동의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신앙이 종교가 될 때 그 역시 틀에 박힌 제도가 되어 버리니까요.

다락방 2014-12-19 08:47   좋아요 0 | URL
네, 그간 모르고 살았던 게 속상할 만큼 흥미로운 글을 쓰는 분이시더라고요. 저 분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어릴적에 교회를 아주 성실히 다니는 아이었는데, 제가 신앙으로 다닌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그래야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주변 어른들이 다 절실한 신앙인들 이었거든요). 굉장히 열심히 다니고 전도를 하고 했는데, 그때의 기억으로 제가 더 종교에 대해 회의적이 된 건 아닌가 싶어요. 그 일들이 제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뭐, 이제와 어쩔 수는 없지만요. 전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아서요. 좋은 기억이라곤 일절 없어서 그 시절을 쑥 내 인생에서 빼내고 싶은데, 그러나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된 거겠죠.

수이 2014-12-1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습니다. 다락방님 블로그 오면 이것도 읽고싶고 저것도 읽고싶고_ 아주 난처해져요. 제 독서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말이죠;;

다락방 2014-12-23 14:29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얇아서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야나님. 한 번 읽어보세요. 히친스 아저씨 정말 근사해요!
>.<

moonnight 2014-12-19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에서 책에 대한 소개를 읽고 솔깃했었어요. 무신론자로서. ^^ 보관함에 잠들어 있는 책을 이제는 깨워야 할 때가 온 듯 싶네요. 다락방님 덕분입니다. 고마워요. ^^

다락방 2014-12-23 14:29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읽고 또 글 써주세요. 문나잇님 글 읽고 싶어요!!
 

돌겠다..

















이 두 책을 읽었고, 읽으면서는 각각의 권에 대한 페이퍼나 리뷰등의 글을 쓰고자 마음 먹었는데 어휴- 마음이 막 너무 거시기해져서 도무지 쓰지를 못하겠네. 히친스 아저씨한테 반했고, 그걸 꼭 표현해야 겠는데, 지금은 마음이 너무 울렁거려서 못쓰겠다 ㅠㅠ 


나는 내 삶에서 '이성과 함께 알콩달콩 사는 것'을 배제해놓고 있는데- 그것은 자의적 선택이었고, 이제는 상대를 위해서도 그게 낫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훅- '60년간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보노라니 무슨, 가슴속에 말뚝 박힌 것 같은 기분이다. 



앞으로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절대 이 두 책을 같은 시기에 읽지 말라는 팁을 꼭 드리고 싶다. 후폭풍이 너무 세다. 


각각의 책에 대한 글은 이 마음이 좀 진정이 되면 쓰는걸로.



아..기운없어..


고기 먹으러 가야겠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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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17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천국엔 히친스가 없어서 안가기로 했어요. 히친스히친스히친스

다락방 2014-12-17 15:40   좋아요 0 | URL
아 히친스 너무 좋아요. 휘모리님 덕에 히친스를 처음으로 읽어봤어요. 러셀한테 반했는데 히친스도 러셀 만큼 좋아요. 멋져.. ㅠㅠ 고인이 됐다니 슬퍼요 ㅠㅠ

다락방 2014-12-1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힝- 마음이 너무 힘들어 ㅠㅠ

라파엘 2014-12-17 16:13   좋아요 0 | URL
토닥토닥 ㅠㅠ

다락방 2014-12-17 16:19   좋아요 0 | URL
ㅠㅠㅠ

Mephistopheles 2014-12-17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성과 함께 알콩달콩 사는 것`을 배제....정말요,,,????

다락방 2014-12-17 16:20   좋아요 0 | URL
네? ( ˝)

Mephistopheles 2014-12-17 16:36   좋아요 0 | URL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라는 사실은.........으흠..

다락방 2014-12-17 17:15   좋아요 0 | URL
네? ( ˝)

Mephistopheles 2014-12-17 17:18   좋아요 0 | URL
아..네...!

blanca 2014-12-17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빨랑 써줘용.

다락방 2014-12-17 17:30   좋아요 1 | URL
블랑카님, 저 두 책 모두 블랑카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전 저 두 권에 별 다섯씩 줍니다. ㅎㅎ
네, 마음을 좀 잠재우고 쓸게요. 지금은 너무 아파요 ㅠㅠ

감은빛 2014-12-17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승전 고기~~ ㅎㅎ
어떤 책일지 다락방님이 어떤 기분이신지 무지 궁금하네요 ^^

다락방 2014-12-18 09:02   좋아요 0 | URL
오늘은 적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실 그 감정일 때 바로 적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쵸?

감은빛님, 안녕?

그렇게혜윰 2014-12-1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이 다섯개! 좋소이다!문제는 7세 남아의 취향엔 어떻겠소??

다락방 2014-12-18 09:18   좋아요 0 | URL
제가 아이들의 눈높이를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혜윰님. 그치만, 이 책이 그렇게혜윰 님께는 좋을것 같습니다. 이 책은 `제게` 좋은 책이었으니까요. 전 이 책을 조카가 아니라 여동생 읽으라고 주려고요.

에르고숨 2014-12-17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장바구니로- `쓰지 못한` 리뷰에 미리 막 감동;; 다락방 님 고기 많이 드시고 멋진 글발 날려주세요!

다락방 2014-12-18 09:18   좋아요 0 | URL
고기를 어제 먹지 않았으므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늘 멋진 글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래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화가 나는 건 당연해! 마음과 생각이 크는 책 1
미셸린느 먼디 지음, R. W. 앨리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에 적힌 대로 이 책이 `슬기로운`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바에 좀 못미치는 것 같은데..그래도 어쨌든 조카에게 주기로 한다.
더 슬기로웠으면 좋겠는데..이건 딱히 슬기롭지 않아.
더 슬기로울 수 없나요?
좀 더 지혜로울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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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구랑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애인(혹은 남편)이 바람을 핀다면 나는 그와 헤어질 것인가, 하는. 그때 나는 뭐, 나 모르는 데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상관없다, 의 마인드였지만 여기에 구체적 인물을 대입시키면 대답이 달라진다고 말했었다. 그저 막연히 나를 사귀면서도 다른 사람을 또 사귄다면, 뭐 순간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할거라 여겼는데, 여기에 그당시 내가 좋아하던 남자를 대입해버리니 대답이 달라지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랑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 여자를 만나길 기대하며, 눈을 마주치고 함께 웃고 섹스를 하고 다음날 아침 민낯을 마주하는 걸 생각하니, 정말 돌아버리겠는거다. 이미 다른 여자한테 그런 마음을 품은 남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다시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못하겠는 거다. 그래서 그전까지의 개념적인 대답으로는 '그러든 말든 괜찮다' 였다가 구체적 인물을 대입해보고 '아니 나는 그 사람을 떠날 것이다' 로 바뀌었다, 는 대화를 친구랑 했었던 거다.


일전에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고 나서도 그랬다. 영화 속에서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 젊음을 포기하는 장면을 보고, 저건 너무나 모성을 강요한 영화잖아, 뻔한 결말이야, 했었더랬다. 왜? 나는 젊음이 좋으니까, 젊음을 포기할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젊음을 움켜 쥐고 싶을 테니까. 그러나 그 뻔한 결말에 구체적 인물을 대입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만약 내 젊음을 반환하고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 라면, 이를테면 조카나 여동생 남동생 이라면, 그렇다면 나 역시 영화속 할머니와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은 거다. 이렇듯 개념적인 것에 구체적 인물을 대입하면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내 사고방식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 '토머스 캐스카트'의 《누구를 구할 것인가?》에서 바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면, 답도 내려주지 않는 이 책이 뭔가 다르게 느껴지거나 하진 않겠지만, 저 구체적 대입에 있어서만큼은 무릎을 탁, 쳤다. 나는 '절대'를 말하는 사람 앞에서 '구체적 인물'을 대입해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당신의 대답이 달라질 거라고. 이 대입은 공감능력과도 연결되어 질텐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개인의 능력일런지도 모르겠다.



자, 일단 이 책의 소재가 되는 '전차 사건'에 대해 옮겨보겠다.



어제 클리블랜드의 커닝햄 지방검사(샌프란시스코)가 2012년 10월에 체스터 '쳇' 팔리(샌프란시스코)가 전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과 관련하여 대배심이 대프니 존스(오클랜드)를 기소했다고 발표했다(미국 사법제도에서 대배심은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소배심은 유무죄 여부를 결정한다-옮긴이).

대프니 존스는 선로 전환기 손잡이를 당겨 폭주 전차의 경로를 지선으로 바꾸는 "뛰어난 순발력과 용기를 발휘한"공로로 12월에 시장에게 상을 받은 바 있다. 전차가 본선本線으로 계속 달렸다면 다섯 명을 치어 사망케 했겠지만, 존스 덕분에 지선에 서 있던 쳇 팔리만이 목숨을 잃었다. 커닝햄 검사는 다섯 명 대신 팔리가 죽는 것이 낫다는 존스의 판단에 대해 대배심이 "존스 양은 신처럼 행동할 권리가 없다"라는 올바른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p.15-16)



이 책은 이 일에 대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하고 또 그렇게 끝난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그 말이 이해가 되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또 그 말도 이해되는 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건 퍽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중 내 관심을 끌었던 건 책 속의 '스텔라'의 대답이었다. 



(니체의 '선과 악'에 대해 언급하다가) 저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회가 더 도움을 베풀어야 할 것 같아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사람이나 나이들었거나 허약하거나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그리고 니체의 철학을 나치가 악용했다는 것도 알아요. 그럼에도 니체의 말에는 일말의 진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습게 들리겠지만 티 파티(미국의 보수 단체-옮긴이)보다는 <오프라 윈프리 쇼>나 <닥터 필>같은 토크쇼에 가까운 것 같네요. 예, 알아요, 하하, 그래도 끝까지 들어주세요. 남의 밑씻개가 되지 않는 건-특히 우리 같은 여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뺨을 돌려 댔어요(니체의 선과 악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서, 누가 한쪽 뺨을 대리면 다른 뺨도 돌려대는 것을 선하다고 생각해요' 라고p.96 언급한 바 있다) . 니체의 말이 맞아요. 그건 '좋은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건강하지 않은 거였죠! 우리에게도, 우리의 딸에게도 건강하지 않다고요.

그렇다면 이게 선로에 묶인 사람과는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손잡이를 당겨서 전차가 자신을 치게 하는 건, 안 그러면 다섯 명이 죽더라도 자연적이지 않고 건강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어요(그녀는 지금 이타주의로 혼자 있는게 자신이었어도 다섯명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마브 라는 남자에 대해 반박하는 중이다). 전차가 저 말고 생판 모르는 사람을 치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예요. 참, 전차가 우리 아이나 남편이나 엄마나 심지어 이웃을 치게 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건 자연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가족과 친구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기 때문에, 낯선 사람 다섯 명을 구하려고 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건강하지 않게 느껴져요. (p.99-100)




내게 인상깊었던 부분은, 정확히는 스텔라의 이 대답이라기 보다는, 스텔라의 대답을 분석한 '세라'의 말이라고 해야 옳겠다.



남녀가 서로 다른 윤리적 결정을 내린다는 연구 결과를 읽은 적이 있어요. 여자는 도덕적 딜레마에 맞닥뜨렸을 때 여기에 어떤 인간관계가 결부되어 있는지를 먼저 따진대요. 이 방법 말고 저 방법을 선택했을 때, 저 방법 말고 이 방법을 선택했을 때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고민한다는 거죠. 그런데 남자는 같은 딜레마를 추상적 사안으로 바라본다고 하네요. 무엇이 정의로운가? 무엇이 공평한가? 누구의 권리가 침해되었는가? 이런 식으로요.


마브와 스텔라의 얘기를 들으면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한 것은 문제를 서로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브는 대체로 자신이 전차에 치일 의향이 없으면 전차가 쳇 팔리를 치도록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마브는 다섯 명을 죽게 내버려두는 것과 손잡이를 당겨서 전차가 친척이나 친구나 자녀를 치도록 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아니라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선로 위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다르게 판단했을 거예요.) 하지만 선로에 누가 있는지, 그가 나와 어떤 관계인지 - 그리고 내 행동에 따라 그 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스텔라에게서 눈에 띄는 점은 지선에 누가 있는지, 그 사람이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거예요. 자녀, 남편, 엄마, 이웃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잖아요.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요.

두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전혀 다른 행동을 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마브는 실제 상황에서 정말로 자신을 희생할지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요점은 여자는 남자에 비해 문제를 추상적 도덕성의 사안으로 바라보려는 생각을 덜 한다는 거예요. 남자는 문제를 (구성 요소를 넣고 뺄 수 있는) 일종의 수학 문제로 보려는 반면에 여자는 (실제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이야기로 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p.105-107)



나는 구체적 인물을 대입했을 때 대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학처럼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남자들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들을 개념적으로 접근하고 추상적으로 대답하는 것보다는 구체적 인물을 대입하고 그 사람이 되어보고 그 상황에 있다고 가정해보는 것이 문제 해결에 좀 더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내가 '특별히 남자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아니다. 감정에 흔들리는 게 여자의 전유물이고 이성으로 판단하는 게 남성의 전유물이 아닌것처럼.

실제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장미와 주목》에서는 감정에 이끌리는 걸 혐오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화자인 '휴 노리스'의 형수가 바로 그녀인데, 그녀는 시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감정에 빠지는 걸 질색 하니까요, 언제나." 


(‥‥‥)


"감정이 내 의지나 이성을 밀어내고 앞자리를 차지한다는 느낌을 참을 수 없거든요. 난 행동을 제어할 수 있고 어느 정도는 사고도 통제할 수 있어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질 못해요. ‥‥‥내게 굴욕감을 준다고요." (p.173)



책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휴 노리스의 좋은 말벗이 되고 사람에 대한 대단한 통찰력을 보여주는데, 그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정에 이끌리는 걸 이성에 이끌리는 것보다 더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부터도 그랬고. 그러나 이성적 판단을 하기에 앞서 그보다 먼저 이끌리는 것이 감정이라고, 누군가의 글에서 봤는데..아무개님의 [바른 마음]에 대한 페이퍼였나..여튼. 나는 최근까지 내가 감정이 앞서는 사람인 것이 좀 속상했더랬다. 휴 노리스의 형수처럼 혐오하는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을 보면 마냥 끌리는 걸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이제는 감정에 이끌리는 것이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추상적으로 개념적으로 내놓는 답보다 좀 더 현실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도 감정이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감정적 인간인 것이 전혀 굴욕스럽지 않다. 내 자존심은 나를 용납한다. 내가 내 자존심을 용납하듯이.







크- 

그러나 그런 한편 나는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

아무리 필립 클로델을 사랑한다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그의 모든 작품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이 재미가 없어...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건지 내게 전달이 잘 안돼...

애정하는 작가에 나는 기꺼이 '필립 클로델'의 이름을 적어넣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모든 작품을 사랑하는 건 아니다. 나는 당당하게 그 앞에서 그건 별로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칼같은 여자...인 것이다. 나는 이 책 읽기를 포기한다.

나는 얼음나라 공주..인 것이다. (응?)






- 아침엔 친구로부터 '캬라멜 마끼아또' 기프티콘을 받았다. 안그래도 출근길에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 집에서 텀블러를 챙겨왔는데, 아니 이게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신나서 원래 5번 출구로 나가 2,900원짜리 아메리카노 마시려던 걸 포기하고 8번 출구로 나가 스벅에 가서 기프티콘을 내밀었다. 씐나! 출근길에 마시라며 보내주는 센스! 우히히히히 우걀걀걀걀 그리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회사까지 걷는다. 에피톤 앨범을 한데 모아 재생목록을 만들었는데, 요즘엔 거기서 랜덤으로 듣고 있다. 마침 어제 듣다 말았던 '꿈에 네가 보인다' 가 나오는데, 이게 끝나고 뭐가 나올까 두근두근 하는데, 꺅 >.< '눈을 뜨면' 이 나오는 게 아닌가! 아 좋아 ㅠㅠㅠㅠㅠㅠㅠ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러면서 생각했다. 8번출구로 나오면 나는, 대체적으로 행복하구나, 하고. 8번 출구로 나와서 걷는 길은 그러고보면, 계속 행복함을 느끼게 해줬던 것 같다. 물론 8번 출구로 나간 것은 오늘, 커피를 준 친구 덕분이고, 커피를 바로 지금 마시겠다는 나의 의지 덕분이었다. 또한, 에피톤 재생목록을 랜덤으로 듣기로 한 것도 나의 의지였고. 그러니 이 행복은 내가 만들어낸 것.




- 아침에 ㅊ님의 트윗에서 '행여나 지각할까 쫄깃한 출근길' 이란 글을 보았는데, 하아- '쫄깃한' 이란 단어를 보자 그냥 막 좋았다. 두근두근. 일전에 T 님이 내게 멘사에 대한 페티쉬가 있다고 했고 며칠전엔 B 가 내게 손에 대한 페티쉬가 있다고 했는데, 아, 나는 뭐 이렇게 늙어갈 수록 페티쉬가 늘어나. 나는 '쫄깃한' 이란 단어에 페티쉬가 있는 것 같다고, 오늘 아침 생각했다. 실제로 쫄깃한 그 무엇 보다는 '쫄깃한' 이란 단어와, 말. 나란 인간, 변태 인간...




- 어제 남동생과 대화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 나는 무지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모든 걸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가 **라면 진짜 정 떨어질 것 같아. 나는 그 사랑을 포기할거란 생각이 들어. 더이상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그러고보면 나는 사랑을 머리로 하나봐, 라고. 가슴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무엇이든,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나는 못그러겠더란 말이지, 그건 안돼. 그러자 남동생은 '그건 나도 그럴 것 같은데?' 라고 했다. 나는 사랑을 머리로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안되는 기준 같은게 있는 건 좀 괜찮은 것 같다. 






이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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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어...일하기.....

무해한모리군 2014-12-16 10:50   좋아요 0 | URL
ME TOO

다락방 2014-12-16 10:57   좋아요 0 | URL
하지말까요... -0-

무해한모리군 2014-12-16 11:2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얘기를 하자면 저는 조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다락방 2014-12-16 11:31   좋아요 0 | URL
아..조퇴라니..Orz

조퇴하는 만큼 푹 쉬세요, 휘모리님. 허리 빨리 나아야지요. 얼른 가요, 얼른, 얼른!

무해한모리군 2014-12-1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루만 먼저 향수에 대한 얘기를 다락방님께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ㅎㅎㅎㅎ

다락방 2014-12-16 10:5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는 궁금해서 사서 읽었을 거에요. 이건 포기! 이긍..

라파엘 2014-12-1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읽어보고 싶은 책이 또 생겼네요. 공감이란 것에 대해서 요새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거든요.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14-12-16 15:25   좋아요 1 | URL
혹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보셨다면 이 책이 뭐 더 특별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재미있게 읽긴 했어요. 워낙에 생각해보는 걸 좋아해서요. :)

뽈따구 2014-12-1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소설책을 굳이 구해서 읽지는 않아서,
서평 책으로 ˝향기˝가 올라왔을 때 쿨하게 넘겼는데,
필립 클로델을 좋아라하며 ˝향기˝를 구입하는 ˝다락방˝님을 보면서
`나도 신청할 걸 그랬나?` 하고 살풋 후회했는데
˝향기˝ 재미없다니 왠지 다행스럽네요.
재밌다고 올리셨으면 계속 후회했을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4-12-16 15:26   좋아요 0 | URL
필립 클로델의 [향기]는 소설책은 아니고요 산문집이에요. 저는 대체적으로 산문집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는 편이긴 한데 `필립 클로델`이란 이름만 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한 거지요. 그렇지만 .. 정말 재미가 없... ㅠㅠ

향기 대신 다른책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뽈따구님! ㅎㅎㅎ

아무개 2014-12-1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내가 너를 사랑하니 나의 모든 것을 받아 들여라!` 라는 것은 굉장히 유아적인 사랑이라고 합디다.
그 반대도 다르지 않을꺼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꼭 그렇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사람이 하면 싫은 행동도 `그 사람`이니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정도가 뭐...

2.<누구를 구할것인가> 왠지 제목만으로 짜증이나서...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게 만드는 선택지를 주는게 너무 싫어요.
그게 삶의 `부조리` 이겠지만....싫어 힝~

3.<바른마음>은 두껍긴 해도 어렵지 않아서
저도 충분히 읽을만 했어요.
다락님도 도전해보심이 ^0^

다락방 2014-12-16 15:31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은 댓글을 `에미`같이 달아요. 번호 붙여서 ^^ 그래서 아무개님이 번호 붙인 댓글 읽을 때마다 에미 생각나요. 나의 에미. 난 레오가 더 좋지만. 근데 레오 밉기도 하고...미아랑 섹스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삼천포로 가는 날 말려줘요! ㅠㅠ)

1. 별 생각 없다가 최근의 뉴스들을 보고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만약 저렇게 한다면`을 대입해보고 나니,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별 도리없이 돌아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제가 용납할 수 있는 범위 라는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용납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다는 거,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실제로 며칠 전에는 누군가에게 물어봤어요. `너 혹시 **냐...` 라고. 아니, 라는 만족스런 답변을 얻었습니다. 아닌 줄 알았지만 그래도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더라고요. 우히히히

2. 아무개님이 저 제목을 짜증낼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오히려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기는 힘든 거군요. 갈 길이 멀어...전 좋았어요. 전 막 책 읽다가 혹은 누군가의 얘기 듣다가 생각해보는 게 너무 좋아요. 만약 나라면? 만약 당신이라면? 내가 뭔가 잘못 생각했나? 이러면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게 너무 즐거워요! >.<

3. 바른마음은...비싸서..패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몽테뉴의 수상록도 사놓고 회사에 처박아 두고 있어놔서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샀냐 ㅠㅠ)

moonnight 2014-12-1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구체적인 누군가를 대입했을 때 맘이 확 바뀔 때가 있죠. (불현듯 어떤 생각이 ㅠ_ㅠ;;)
지금 더 드롭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다음 책을 못 정해서 우왕좌왕 하다가 창비세계문학을 잡았는데, 다락방님 글을 읽으니 <장미와 주목>을 읽고 싶어졌어요. ^^

다락방 2014-12-16 16:41   좋아요 0 | URL
문나잇 님도 장미와 주목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아 빨리 또 책사고 싶어요. 더 드롭...저 오늘 산 책 아직 배달도 안됐는데..내일 배달 될텐데 벌써부터 또 사고 싶어지는 이 미치고 조급한 마음... ㅠㅠ

2014-12-16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7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4-12-17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새로운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인용하신 저 책의 내용은 정말 궁금하네요.
5명대 1명이라.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아마 큰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였을텐데,
문득 아내가 물었어요.
만약 바다에 자기와 아기가 빠졌다면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아! 난 이런 류의 질문을 무척 싫어하는데, 그때 좀 고민을 했죠.
처음엔 당연히 아기를 먼저 구할 거라고 말하려다가,
마음을 바꿔 아내를 먼저 구할 거라고 말했죠.
지금 나에게는 자기가 그만큼 더 소중하다고 말이죠.
아내는 내 어깨를 쎄게 때리고는 무조건 아기를 먼저 구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어요.

과연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요?
아니 어떤 선택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궁금해지는 아침이네요.

다락방 2014-12-17 09:3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의 댓글을 읽고 저도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만, 어쨌든 어떤 선택이든 하긴 해야 둘 중 하나라도 구할 수 있다는 결론은 변함없네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둘 다 잃게 될테니까요. 그렇다면 그 `하나`는 어떻게 선택해야 하느냐 하면...하아- 역시 감은빛님, 생각하기 싫은 질문이에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생각하기 싫은` 이라고 써놓고 나니 생각이 나서요.
저는 앞으로 조카가 살아가면서 어떤 위험이 닥치진 않을까 생각하다가 되게 힘들어지곤 해요.
되게 심하게 힘들 때는, `그런 고통-조카가 다치거나 상처받거나 힘들어하는 걸 보는 것-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나의 죽음`이 아닌가 싶어지기도 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막을 수 없을테니,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건 내가 없어져 버리는 거라는.
`생각하기 싫은 선택`에 대한 댓글을 읽고 나니, 그때의 기억이 나네요.
한참 우울하던 때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다시 힘들어질라고 해요.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다면 딱히 새로울 건 없거든요. 그런데도 여전히 답을 내릴 수 없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운 것 같아요.

좋은 아침 보내고 계십니까, 감은빛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