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했었다. 대학시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의 단편집 《렉싱턴의 유령》을 읽고 그에게 흠뻑 빠졌고, 그전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와 《양을 쫓는 모험》을 다시 읽으면서 그의 책들을 차례차례 읽으며 전작을 목표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의 소설은 별로지만 에세이는 좋다고 말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아주 좋아했다. 너무 좋아했다. 대학 졸업후에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걸으면서 읽다가 전봇대에 부딪히기도 했고, 몇년 후 생일에 한 친구가 《해변의 카프카》를 선물해줬을 때에는 '아이고 어째, 나 이미 읽었어' 했더랬다. 그의 단편집 《빵가게 재습격》은 친구를 만나러 가며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지하철 역에서 내리고 계단을 오르면서도 쿡쿡대고 웃느라 멈춰야 했다. 나는 그가 쓰는 문장들이 재미있었고 그의 농담이 내게는 아주 잘 통했다. 그의 에세이도 좋아하지만 나는 그의 소설을 정말 좋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소설들에서 좀 걸리적 거리는 부분들이 나타났(다기 보다는 내가 알아챘)고, '이건 왜그래?'같은 것들 때문에 유감스럽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그의 소설은 재미있다고 늘 생각해왔다. 크- 역시 재미있어. 나는 하루키의 소설이 재미있다. 여성의 외모 품평(미인이다, 미인인 편이라 할 수 있다, 미인은 아니었다, 추녀였다 등등)이 언제나 매번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동그란 젖가슴에 집착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의 이야기를 무엇보다 그의 유머섞인 문장들을 좋아하며 읽었단 말이다. 《버스데이 걸》같은 뭔가 기획상품스런 책에 실망해서 읽자마자 팔아버렸어도 그 책으로 페이퍼도 쓸만큼 생각할 것들이 있었고, 그러니까 하루키는 내게 딱히 실망이란 걸 주지는 않는 작가란 말이다. 《일큐팔사》의 아오마메를 나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아오마메가 고환 걷어차기를 강의할 때는 자지러지게 좋았더랬다. 왜 미성년자 여성과 종교지도자인 남자와의 섹스를 그렸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너무 읽기가 괴로웠지만, 나는 그의 소설을 재미없게 읽는 독자는 아니었다. 그러니 이렇게 신간이 나오자마자 피할 수 없다는 듯 덜컥 사버리고 덜컥 읽었겠지. 그런데,


이 신간이 재미없다. 앞에서부터 내리 두 편을 읽고 물음표 천개 되었다. 뭐지? 뭐지? 하면서 그러다가는 '내가 변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의 예의 그 유머있는 문장은 여전한데, 그런데 더이상 재미를 찾을 수 없게끔, 내가 변해버린건가? 아무튼 내리 두 편이 재미 없어서 당황해 책장을 덮었다가, 그래도 읽자 하고는 결국 다 읽었는데, 몇몇 문장들에서는 '아 역시 하루키야'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 이번 신간은 별로구나.. 했다.




좋아하는 작가가 동시대를 살아가며 계속해서 신간을 발표해준다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분명 기쁜 일이다. 나는 하루키가 사는 동안 내내 이렇게 신간을 발표해주었으면 좋겠고 내가 이 작품에 실망했다한들 다음에 나올 작품도 또 사서 읽어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에게 이제 소설의 소재는 과거로부터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생인데,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주요한 사건을 죄다 젊었을 때 경험하고 그로부터 이어지는 상념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 소설들을 채우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가져오는것이야 말로 소설가의 힘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경험을 했어도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 소설가의 재주일 것이고, 경험하지 않은 것도 경험한 것처럼 꾸며내는 것 역시도 능력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루키는 여전히 뛰어난 소설가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최근에 읽었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떠올리게 됐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1956년생이다. 하루키보다 일곱살 젊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신간 《다시, 올리브》에서 노년을 겪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을 그려낸다. 물론 올리브 역시도 사이사이 과거의 일들을 드러내고 추억하긴 하지만, 그러나 올리브는 지금 이 순간이 자꾸자꾸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하루하루 더 나이들어 간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그녀의 신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다치고 죽는다. 나의 경우에는 영원히 살고 싶다고 늘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늙어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지속하는지 어떻게 친구를 사귀는지 어떻게 서로를 위로하는지를 보는 것은 당연히 가슴에 와 닿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가 늙어간다는 것도 역시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올리브의 이야기가 더 좋았던건지도 모르겠다. 나이들어가는 작가가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이야기가 나는 무척 좋았던 거다. 아무도 경쟁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나 혼자 하루키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경쟁시켜버렸고, 고민의 여지없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실린 단편들 중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는 대학 시절 '찰리 파커가 살아서 보사노바를 연주했다'는 상상의 기사를 쓴 중년 남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그동안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하루키는 음악을 대단히 좋아하고 듣는 귀도 좋아서, 연주만 듣고서도 세션맨들을 알아맞히곤 한다. 오 이 연주는 누구네, 오 이 공연은 언젯적 어디 공연이네, 하는 것들을 다 아는 거다. 이 단편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에서도 자신이 상상한 밴드에서 자신이 상상한 연주자에게 그 자리를 주고 그 음악을 역시 상상으로 듣는데, 나는 하루키가 음악 얘기할 때마다 그가 소설을 써내는 것만큼이나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좋아하면 반복적으로 하기 마련이고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이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기 마련이지만, 아니 아무리 그래도 트럼펫은 누가 기타는 누가, 하는 것들을 대체 어떻게 소리만 듣고 알아맞힌단 말인가. 이건 반복해 들은 오랜 시간이 도와주긴 했지만 애초에 그런 감각을 타고난 게 아닌가 싶은 거다.


누구나 다 타고난 재능을 저마다 갖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재능이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 아닌가. 나는 하루키의 음악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도대체 내가 이렇게 가지고 태어난 감각은 뭐가 있는가 생각해보았다. 너무 좋아해서 오랜 시간을 들이고 오랜 시간을 들이다보니 남들보다 훨씬 잘하게 된 것, 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없다. 내가 남들보다 글을 더 열심히, 매일 쓴다고 해서 줌파 라히리 같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여성학 책을 아무리 읽고 공부한다고 해도 정희진 처럼 될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빵을 이제부터 열심히 굽는다한들 세계 제일의 파티쉐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먹방을 찍을만큼 많이 먹을 수 있나? 내가 아무리 열심히 운동한다고 해도 한혜진 처럼 될 수 있을까? 없다. 없어. 내가 지금 아무리 시간을 들여 노력한다해도 나는 그 어느 것에서도 누구보다 뛰어날 수가 없다. 나는 그래봤자 그냥 나다. 나야... 나는 그저 보통의 사람. 그래서 천재들을 보면 마냥 존경 존경.. 이렇게 되는 것이다. 천재들에게 감탄하는 그저 보통의 사람이여...




<사육제(Carnaval)>는 오십대의 하루키가 한 십년정도 그보다 젊은 여자를 우연히 만나면서 진행된다. 둘은 클래식 공연에 갔다가 자리를 함께 하게 되는데 알고보니 둘다 슈만의 '사육제'를 가장 최고로 꼽고 있다는 공통점을 찾게 된다.



어쨌거나 그 반년 동안, 우리는 틈나는 대로 열심히 <사육제>를 들었다. 물론 <사육제>만 들은 것은 아니고 때로는 모차르트도 듣고 브람스도 들었지만, 직접 만녀만 반드시 누군가의 <사육제>에 귀기울이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내가 서기를 맡아서 우리의 의견을 요약하고 기록했다. 그녀가 우리집에 온 적도 몇 번 있었지만, 내가 그녀의 집으로 가는 쪽이 훨씬 많았다. 그녀의 집은 도심에 있었고 우리집은 교외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이서 총 마흔두 장의 <사육제>를 듣고 난 후, 그녀는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의 연주(엔젤반)를 베스트로 꼽았고, 나의 베스트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연주(RCA반)였다. 우리는 한 장 한 장의 음반을 면밀히 채점했지만, 물론 그런 순위에 중요한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건 덤으로 따라오는 놀이 같은 것이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에 대해 주고받는 심도 있는 대화, 열의를 품을 수 있는 무언가를 거의 목적 없이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p.165-166)



위의 부분을 읽는데 자연스럽게 영화 《사이드웨이》가 떠올랐다. '마일스'는 와인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시음하러 다니고 수집을 한다. 자신의 절친이 결혼하기 전 함께 총각파티로 와이너리 여행을 하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마야'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는데, 마야와 그녀의 친구 그리고 마일스와 그의 친구가 한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와인을 마시면서 마야와 마일스 둘만 남아 와인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마일스가 와인을 좋아하고 수집한다는 얘기를 한 터다.


마야: 수집한 와인 중에 가장 좋은 와인이 뭐에요?

마일스: 61년산 슈발 블랑이요.

마야: 어떻게 그걸 안마시고 가지고 있을 수 있어요?

마일스: 특별한 순간에 마시고 싶어서요.

마야: 당신이 그걸 마시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에요.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장면인데, <사육제>에서 저 두 등장인물이 바로 이런 순간을 경험하는 거다.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 얘기를 하며 누구의 무슨 연주를 제일 좋아해? 물었더니 남자가 슈만의 사육제라 답하고 여자는 깜짝 놀라면서 자신도 그렇다고 말하고, 그렇게 그들은 와인 한병을 또 새로 비우면서 좋은 음악 친구가 되는 거다. 그 후에는 함께 슈만의 사육제 연주를 찾아 듣게 되고, 새로운 음반을 찾게 되면 함께 들어보자 서로에게 청하고 서로의 집을 오고가는 그런 사이가 되는 거다.



와,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이런 거 진짜 너무 좋다. 취미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서 나와 친한사람이라고 해서 나와 취미가 같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취미가 같은 사람과는 그 특유의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 이야기가 즐거워진다. 한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그 작가의 신간 소식을 서로 알려주고, 읽고나서 어땠는지 이야기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히 특별하고 또 아무나랑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걸 나눌 수 있다는 건 진짜 너무 좋다. 나에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준건 나의 오랜 친구였는데,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 그리고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흥분하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신간이 나온대! 라고 해봤자 '그게 누군데?' 할게 아닌가. 애초에 그 작가를 기다리는 이유에 대해 알지 못할텐데 올리브 키터리지라고 너무너무 좋은 작품이 있어, 라고 한들 우리의 대화는 그 뒤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알라딘을 좋아하는 건 그런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시 올리브가 나올 것이라거나 읽고 있다는 글을 쓰면, 그 책을 이미 읽었거나 읽을 사람들이 저마다 말을 거는 거다. 나는 그 이야기의 이 부분을 좋아해, 라던가 아아 그거 읽고 싶었는데 너는 벌써 시작했니? 하는 것들. 이런 거 진짜 너무 좋잖아. 흥분은 같이 해야 재미있지 혼자 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영화 《내 남자는 바람둥이(surburban girl)》를 보면, 이미 유명한 편집장인 오십대 남자가 훌륭한 편집자가 되고 싶은 편집 보조인을 집으로 불러서 '밀란 쿤데라랑 찍은 사진이야' 라며 자랑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자랑이 통하려면 상대가 밀란 쿤데라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 모르는 사람에게 밀란 쿤데라랑 사진을 찍은 적이 있지, 하면 그게 뭔데? 할 거 아녀... 그러면 자랑하려던 나의 흥은 짜게 식어버리지...



그런데 원제는 surburban girl 인데 왜때문에 내 남자는 바람둥이 같은 제목이 되었을까? 부끄럽기 짝이없다.. 내 남자는 바람둥이.. 웩 -




그나저나 푸코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육식의 성정치는 진짜 엄청 재미있을 거라고.... 휴...... 푸코 근데 언제 다 읽지? ㅜㅜ














오늘도 벌써 반나절이 지났다. 푸코 읽어야 하는데 자꾸 다른 책만 들춰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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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2-07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 이 책 사두고 아직 안 읽었는데. 그렇단 말이군요. ㅎㅎ 그나저나 <육식의 성정치> 엄청 재밌어요. 푸코 읽고 나서 읽으면 그 재미가 3배는 될 듯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2-07 14:42   좋아요 1 | URL
잠자냥 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하네요. 분량이 얼마 안돼서 금방 읽히더라고요. 그런데 예전만큼의 재미가 없었어요.

육식의 성정치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푸코가 지금 너무 재미없어서 진도도 안나가고, 이걸 다 읽고난 후에 읽는 육식의 성정치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 너무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잠자냥 님 말씀대로 3배는 족히 될 것 같아요!! >.<

단발머리 2020-12-07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 때 하루키를 알았지만 읽은 건 대학교 다닐 때인데, 딱 한 권 읽었거든요. 무슨 책인지는 아실거라 믿어요. 그래요, 그 책. 그리고, 아, 이 작가는 나와 젊음을 함께한다... 이렇게 말하고 더는 안 읽었어요. 그 때는 바빴고 또 바빴으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글의 첫문단이 너무너무 좋아요. 파랗게 젊은 20대의 다락방님과 하루키가 함께 했었네요. 나중에 실망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이런 작가를, 시간을 함께하는 작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정말 인생의 큰 축복인거 같아요.
육식의 성정치,가 재미있다고는 전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책은 엄청 흥미진진하지만 말이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2-08 08:20   좋아요 0 | URL
저는 <상실의 시대>가 하루키 첫 책이었는데요 처음 읽고서는 별 느낌 없었거든요. 좀 어쩌라고?의 느낌이었달까. 그 다음 <양을 쫓는 모험>을 읽었는데 뭔 소리야 싶었고요. 그러다 <렉싱턴의 유령>을 읽고 느낌표 천 개 되어서 다시 상실의 시대와 양을 쫓는 모험을 읽었답니다. 그 뒤로는 하루키가 너무 잘 읽히고 너무 좋고 아주 그냥 재미졌어요. 단편이든 장편이든 왜이렇게 웃기고 재미있는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 <렉싱턴의 유령>도 다시 읽어보려고 또 샀어요. 기존에 낡은 하루키 책을 다 팔아버렸었거든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사놓고 안읽은 책이 수두룩한데 재독하려고 또 사는 건 도대체 무슨 마음인건지.. 욕심이 똥구멍까지 차가지고..


제 생각에는요 단발머리님, 푸코를 읽고나면 그게 무슨 책이든 다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고 있지만 어쩐지 눈물이 납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빨리 육식의 성정치 읽고 싶어요. 이제 푸코 읽자고 안할거에요 ㅠㅠ

scott 2020-12-07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달리기를 그만두고 나서 구성이나 문장들이 엉성해졌어요.
보통 하루키 작품들은 담당 편집장들한테 넘기기 전에 와이프가 먼저 읽는데 와이프가 전과 달리 신랄하게 비평하지 않는것 같아요.
하루키 출판 담당자들은 하루키가 넘기는 원고를 두고 이래라 저래라 못한데요.
하루키 성향이 닥달하거나 날짜를 정해놓고 쪼임 당하거나 이건 아니다라는걸 받아들이지 못한데요.
아버지에 관한 에세이 쓸때도 역사적 사실관계 검토하고 아버지 군기록 조사하고 당시에 출간된 신문자료 철저하게 조사하는데만 3년이 걸렸는데 언제 하루키가 원고를 넘겨주나 오맹불망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올해 1월과 작년 12월에 도쿄에서 잼콘서트 재즈 라이브를 했었는데 관객들과 이야기하는 시간도 갖고 뭔가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데 전보다 활발하게 활동하더군요.
독자들에 반응(주로 사무실로 오는 팬들 편지나 한시적으로 이메일로 소통하며)을 느리지만 꼬박꼬박 챙겨 읽었었는데 몇년전에 어떤 팬이 하루키한테 다가와서 렉싱턴 유령 작품 이후는 별로라는 말에 충격 받았데요.
자신은 그이후로 점점 더 좋은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독자한테 그런 반응을 직접 들은게 충격이였나봐요.

이번 신간이 출간되기 전에 마이니치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소년 소녀라는 두단어만으로 수십편에 작품을 써낼수 있다고 하더군요.
기냥 하루키는 소년에서 성장이 멈춰버렸나봐요 ㅋㅋㅋ

다락방 2020-12-08 08:23   좋아요 0 | URL
저도 기존에 하루키 작품을 안읽은게 아니었는데도 <렉싱턴의 유령>을 읽고 하루키한테 빠졌거든요. 정확히는 그 단편집 안의 <일곱번째 남자>를 읽고 그랬지만요. 그래서 다시 읽었던 거 재독하면서 하루키 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저처럼 렉싱턴의 유령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많은가보군요! 너무 신기하네요. 저 렉싱턴의 유령 다시 읽으려고 다시 샀어요. 인생..독서란 무엇인가... 하하하하하.

그런데 말씀하신 인터뷰의 내용이 너무 소름돋네요. 소년 소녀 두 단어만으로 수십편의 작품을 써낼 수 있다니 ㅠㅠ 소년 소녀에서 왜 더 나아가지 않죠. 이번 단편집도 일흔 넘어 낸 단편집이면서 동그란 젖가슴 이런거 나와서 어휴, 이건 남자들 고질병인가 싶었거든요. 소년 소녀도 놓지 못하고 외모평가 놓지 못하고 동그란 젖가슴 놓지 못하고 ㅠㅠ

바람돌이 2020-12-07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코를 빨리 읽으세요. 다른데 눈 돌리지 마세요. ㅎㅎ
저는 안읽어요. 푸코를 읽으려면 2달은 걸릴 거 같아서.....

그나저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서 항상 궁금하더라구요. 전 사실 왜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에 자주 얘기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하루키 책을 몇 권 읽기는 했는데 재밌다는데는 동감해요. 근데 딱 거기까지 그냥 재밌긴 해요. 취향의 세계는 역시 너무나 넓어요. 그래도 오늘 올리브 키터리지는 다락방님덕분에 보게 된 책인데 아 진짜 좋아요. 좋아요 백만번!!! 지금 다시, 올리브 대기 중입니다. 올리브의 여운을 위해 잠시 다른 책 한권만 보고 다시, 올리브 보려구요.

다락방 2020-12-08 08:26   좋아요 0 | URL
푸코는.. 네, 푸코는요..... 계속 제 침대에 있어요. 얼마나 열심히 잘 있는지 몰라요. 볼 때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늘 다른 책을 꺼내들게 돼요. 푸코 어쩌죠? ㅠㅠ 울고싶다 ㅠㅠ 아니 저는 왜 푸코를 읽자고 했을까요? 제가 바보에요. 바보, 바보다!! ㅠㅠ

저는 대학때부터 하루키 읽었는데 하루키의 유머 코드가 저랑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도 재미있게 읽은게 아닐까 싶어요. 전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주인공들의 대화도 좋았고, 상실의 시대를 읽고서는 남들이 그랬듯이 위대한 개츠비를 따라 읽기도 했고요. 크-

올리브 키터리지 너무 좋죠? 저는 올리브 키터리지 너무 좋아서 다시 읽기도 했고 또 수시로 들춰보기도 하는데요, [다시, 올리브]가 더 좋아요! [다시, 올리브]도 다시 읽기 위해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른 작품들을 차례차례 다시 읽어볼 예정입니다. 아 진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너무 좋아요!

scott 2020-12-08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만세!ㅋ

다락방 2020-12-08 08:26   좋아요 0 | URL
올리브가 짱입니다!! ㅋ

고양이라디오 2023-05-0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일인칭 단수> 별로였군요ㅎ 전 <일인칭 단수> 보고 좋았고 깜짝 놀랐거든요. 기대이상이기도 했고 하루키 단편집 중 가장 좋다고 까지 생각했어요.

저도 <렉싱턴의 유령> 좋아합니다. 요즘 그 책이 다시 읽고 싶어요ㅎ

다락방 2023-05-04 14:56   좋아요 1 | URL
오래전에 쓴 글이라 댓글 달려 깜짝 놀랐네요. 그보다 더 놀란 건, 제가 이 책을 읽은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덕분에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또 리뷰 한 번 읽어보고 갑니다. ㅎㅎ

저는 렉싱턴의 유령을 읽었을 때가 진짜 하루키의 발견이었어요!!

고양이라디오 2023-05-04 17:40   좋아요 0 | URL
<렉싱턴의 유령> 다시 읽고 싶어서 검색해보다가 다락방님 리뷰가 보여서 읽었습니다ㅎ

저도 <렉싱턴의 유령>, <도쿄 기담집> 같이 읽고 하루키 단편의 매력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ㅎ 하루키 장편만 몇 편 읽다가 본격적으로 하루키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거 같기도 하고ㅎ 암튼 저도 하루키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엘레나 페란테'의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절반쯤 읽고 이제 나는 인정하려 한다. 나는 엘레나 페란테를 좋아하지 않는다. 국내 번역된 나폴리 시리즈 총 네 권과 나쁜 사랑 시리즈 총 세 권을 다 읽고 이 책을 읽는건데, 이제 나는 알겠다. 나는 엘레나 페란테를 좋아하지 않는다. 리베카 솔닛이 자신의 책에서 엘라네 페란테를 좋은 작가로 언급한적이 있던 걸 기억해서 그간 열심히 읽었는데, 난 엘레나 페란테가 안좋다. 이거 지금 절반쯤 읽으면서 신경이 너무 뾰족해진다. 난 엘레나 페란테가 별로고 이제 그만 읽어도 될 것 같다. 물론 그만 읽기엔 번역된 건(절판 빼고) 다 읽었지만..

인정한다, 나는 이 작가 별로다.

빨리 읽고 팔아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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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12-04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폴리 4부작 읽고, 읽자마자는 열광했다가, 급속도로 냉기가 돌더니 급기야 석달 열흘만에 딴 사람 줘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생각할 수록 시시하더라고요. 거 참 신기하더군요.

다락방 2020-12-04 14:21   좋아요 1 | URL
대단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읽다보면 신경질이 나요. 소설 읽으면서 신경질이 나는게 너무 싫어요 ㅠㅠ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공감할 수 있어야 되는데 엘레나 페란테 소설은 읽다보면 ‘아니, 왜 이러는거야?‘ 이렇게 자꾸 짜증만 나요. 아오...

잠자냥 2020-12-04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홍보를 하는데도, 전 이 작가 책도 이상하게 손이 안 가더라고요.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았지만.... 이 포스팅을 참조하여 앞으로도 읽지 않겠습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0-12-04 15:08   좋아요 1 | URL
빨리 다 읽고 다른 책 읽고 싶어요. 아오 신경질 나. 작가는 비판을 위해 쓴건지 모르겠지만 모든 캐릭터가 다 짜증나요.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cott 2020-12-04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란테 작품속인물들 한대씩 때리고 싶어요 읽다보면 짜증 울회가 폭봘ㅋ

다락방 2020-12-04 15:20   좋아요 1 | URL
맞아요! 모든 캐릭터가 다 짜증나고 ‘얘 왜이래?‘ 이런 생각이 자꾸 들고 다 너무 바보같아요. 짜증나 ㅠㅠ 다 싫어요, 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blanca 2020-12-04 20:32   좋아요 0 | URL
ㅋㅋㅋ 묘하게 읽고 싶어지는 댓글이네요.

scott 2020-12-04 22:33   좋아요 1 | URL
근데요 다락방님, 전 hbo 시즌 1 봤어요.ㅋㅋ
흙내 나도록 가난하고 흙먼지 날릴정도로 서로 두들겨 때리고 뒹굴고
한국 케백수 아침드라마 시대극 보는 맛으로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0-12-05 10:2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한국 옛날 김수현 드라마 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2020-12-04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0-12-04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한 권도 안 읽었는데 그런 작가가 있죠. 그럴 수 있고요. 요새 저는 취향이 아니다 싶으면 조금 읽다 덮고 중고 시장에 내어놓으려고 해요. 예전에는 꾸역꾸역 읽었는데 이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다락방 2020-12-07 07:55   좋아요 0 | URL
저도 중간에 포기하는 책들을 가끔 만나곤 합니다. 이 책도 너무 짜증이 나서 중간에 포기할 뻔 하였으나, 이왕 엘레나 페란테의 국내 번역작을 다 읽어왔으니 일단 다 읽자, 하고 읽었어요. 끝까지 별로더라고요. 하하.

syo 2020-12-06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폴리 때 난리였잖아요... 난 아직 하나도 안 읽어서 언제 읽나 하고 있었는데 우오....

다락방 2020-12-07 07:54   좋아요 0 | URL
책장은 되게 빨리 넘어가는데요, 인물들이 하나같이 정이 안가요.. 현실적이고 사실적이고 인간 내면의 숱한 갈등이나 모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그래 인간이 다 이렇지 뭐, 라고 하면서도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짜증나는지 ㅋㅋㅋㅋㅋ 아무튼 다 읽었습니다. 만세!!
 

Eventually Jack got out a piece of paper and wrote in pen, Dear Olive Kitteridge, I have missed you, and if you would see fit to call me or email me or see me, I would like that very much. He signed it and stuck it into an envelope. He didn‘t lick it closed. He would decide in the morning whether to mail it or not. - P21

Two hours later, Jack checked his email, hoping his daughter might have written and hoping as well that Olive Kitteridge might have reappeared in his life.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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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얼 하고싶다는 목표가 몇 개 있었고 그리고 그 목표대로 대부분 이루면서 살아왔다. 내가 그 목표 하나만을 보고 그 방향으로 걸어갔기 때문이고 또 그 목표 자체가 그리 원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목표하는 것을 이루는 삶을 사노라면 그 충족감이 매우 커서,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하면서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된다. 언젠가 엄마는 내게 꿈을 크게 가지라 하셨는데, 엄마 그래서 이루지 못하면? 이라 되물었더니 '이룰 수 있는 꿈을 꿔야지' 하시는거다.


엄마, 꿈을 크게 가지라며?

꿈은 크게 가져야지!

너무 커서 이룰 수 없으면?

이룰 수 있는 꿈을 꿔야지.

꿈을 크게 가지라며?

크게 가져야지!

이룰 수 없으면 어떡해?

이룰 수 있는 꿈을 꿔야지.


를 무한반복하던 산책길이었다. 올림픽공원이었다. 이 날이었는지 다른 날이었는지, 언젠가는 엄마와 올림픽 공원을 산책하다가, 그러니까 이건 아주 오래전 얘기인데, '엄마, 나는 그 남자를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왜이렇게 잊을 수가 없지?' 했던 적이 있다. 그때 엄마가 내게 말했다.


"너 그 남자랑 뽀뽀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대꾸를 하지 못하고 그냥 터져서 웃기만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냐면 정말 뽀뽀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또 터지네.


아, 근데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꿈 → 엄마 → 산책 → 뽀뽀 또 이렇게 되어버렸네. 이긍..



삶에서 목표를 갖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것도. 목표를 두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노라면 삶의 모든 순간의 선택이 그 목표를 보고 달려가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이루어냈을 때는 내 안에 충족감이 또 한 칸 쌓이고. 그렇게 삶의 만족도는 높아지고 또 높아진다. 그렇게 오늘은 오늘의 목표를 이번 해엔 이번 해의 목표를 세우고 살아가는 일은 삶에 있어서 권장할 만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내 인생의 목표를 세웠을 때는 나에게 기한을 주진 않았더랬다. 나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이라 언제까지 무엇을 해야한다고 정해버리면 거기에 갇혀서 스트레스를 왕창 받기 때문이다. 대신 '살면서 이건 이루자'고 기한을 무한정 주는 편이다. 그 방향을 보고 가되 치열하지는 말자, 스트레스에 갇히지 말자, 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굵직하게 세워두었던 것들을-남들이 보면 작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비슷하게 이루면서 살아왔다. 이를테면 뉴욕에서 살겠다는 게 그중 하나였는데 여행을 세차례 다녀왔고 뉴욕에서 살 순 없겠다고 깨닫게 되었다. 내가 뉴욕에 처음 갔던 스물아홉에, 내 주변인들은 내게 '그렇게나 가고 싶다고 하더니 정말 다녀왔네' 라고 말을 했다. 완전히 꼭같은 방식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나는 삶에서 추구하는 것들을 이루면서 살아온거다.



내가 이 목표들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그 목표가 '나 혼자' 해낼 수 있었던 것들이었던 영향이 크다. 아니 그게 전부라고 봐도 된다. 만약 내 목표가 '내가' 하고자 하는게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을 이루는 것은 매우 힘들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된다. 그 누군가는 나와 완전히 같은 걸 바랄 확률이 매우 희박하므로.


'무라카미 류'의 《55세 헬로라이프》의 단편중에는 은퇴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여행하며 살기 위해 캠핑용 트럭을 구입하는 이야기가 있다. 읽은지 오래되어 기억은 희미하지만(독서공감에 이거 쓴것 같다), 남편은 그게 자신의 꿈이었던 만큼 아내도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갑자기 그런 제안을 받은 아내는 당황하고 기분 나빠한다. 자신은 자신의 삶이 있는데 갑자기 차를 타고 여행을 하자니...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고는 '아니, 이 좋은 걸, 내 꿈인데, 왜 안좋아하지?'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다.



나는 포틀랜드에 가고 싶다. 이걸 이루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코로나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지만, 혹여 안정적인 시기가 온다면, 나는 비행기표를 사고 호텔을 알아보고 시간을 내어 훌쩍 포틀랜드로 날아가면 된다. 포틀랜드에 호텔을 잡아두고 여유롭게 눈을 떠서 아침에 20분간 요가를 하고 슬렁슬렁 한가하게 도시를 산책하고 싶다. 관광지를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호텔 주변을 슬렁슬렁 다니다가 까페에 들어가서 차도 마시고, 맛있는 밥을 사먹고, 책을 읽고, 공원 벤치에 앉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것은 나에게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니다. 시기를 알 수 없을 뿐,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얼마전에 포틀랜드를 티비에서 보고 아 좋다, 역시 가고 싶어, 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특정인을 생각했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죽는날까지 그 사람이랑 포틀랜드에 함께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건 이룰 수 없는 일이겠지' 라고 그 불가능을 점쳤다. 이 점에 있어서는 불가능이 구십구프로였다. 그 상대와 나의 사이가 이제 친근하지 않을 뿐더러, 그 사람이 포틀랜드에 가고 싶어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으니까. 설사 친근하고 포틀랜드에 가고 싶다고 해도 우리는 시간을 맞춰야 하고, 가서 보내는 일정 자체도 우리의 뜻이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크다. 결정적으로 나는 포틀랜드에 가고 싶지만 당신도 가고 싶은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거다.


모든 목표가 이렇겠구나, 생각했다. 모든 목표에 누군가를 끼워넣는다면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나 혼자만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 상대와 의논해서 우리의 욕망을, 시기를, 에너지를 맞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 목표가 공간 자체를 타국으로 이동하는 것이라면 더 그렇다. 내가 베트남에 가 장기체류 하고 싶다고 하면 그것이 나 혼자뿐일 때는, 여러가지 준비과정을 거치고 고된 시간이 분명 따라오겠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당신과 함께 베트남에 가고 싶다' 라고 하면 어려움은 배가 될 것이다. 결정적으로 '나는 베트남에서 살기 싫은데?' 라고 하면 나는 상대에게 결코 강요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모든 목표가 이렇겠구나, 이루고 싶다면 나는 그 모든 것을 '혼자'로 방향 설정해야 해. 혼자로 제한해야 이룰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신과 함께 포틀랜드에 가는게, 당신과 함께 베트남에서 사는 게, 당신과 함께 오로라를 보는게 이번 생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겠지만, 그러나 내가 포틀랜드에 가고 내가 베트남에 살고 내가 오로라를 보러 가는 것은 어떻게든 이번 생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일 것이다.



내가 그 모든 것을 혼자 꾸는 꿈이라 해서 삶이 슬프다거나 불행하다거나 하지는 않다. 나는 삶은 기쁨들로 가득 채워져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왜 이 긴 글을 썼냐면, 그건 루시 바턴 때문이다.



















루시 바턴은 맹장을 떼어내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는데 원인 모를 합병증으로 입원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남편은 병원을 싫어해 아내가 입원한 병원을 자주 찾지 않고, 여섯살 다섯살 딸 아이는 '아이는 없는 지인'이 돌보아주고 있다. 어릴 때 무척 가난하게 살아서 친구들로부터 냄새 난다는 놀림을 받았고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는지도 잘 알 수 없었던 루시는, 입원해있는 동안 문병온 어머니와 과거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자신의 친구들도 떠올리면서 그 시간을 보낸다. 자신을 진찰해주는 담당의에게 사랑을 느끼고(이건 올리브 키터리지도 그랬는데!), 퇴원해 집에 가서 아이들을 보고 싶은 그리움에 가득차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계획한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서, '아이는 없는 지인'은 루시가 입원한 사이에 루시의 남편과 사랑에 빠진다. 결국 루시는 남편과 이혼하고 남편도 루시도 재혼을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특유의 조용한 감정으로 독백되는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너무 좋다. 나는 몇해전에 이 책을 이미 읽었는데도 다시 읽으면서 어느 부분은 아 맞아 그랬었지 했고 대부분의 내용에서는 아니, 이런 내용이? 하며 새로워했다. 어차피 책을 읽어도 다 기억하지 못할거라면 책은 왜 읽는담? 회의도 했다.


다시 읽기 위해 이 책을 꺼냈는데 포스트잇 북마크가 붙여져있지 않아 아, 인상적 구절이 없었나? 했는데, 읽다보니 내가 책장 모서리를 접어 두었더라. 아 이거 읽을때는 포스트잇 꺼내기가 귀찮았구나, 했다.


그렇게 다시 읽는 책에서는 접혀 있지 않은 부분의 책장을 접어야 했다. 바로 이 부분이었다.

가족들과 야구장에 갔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루시 바턴이다.



야구장! 내가 야구장을 보고 감탄했던 게 기억나고, 선수들이 안타를 치고 달리던 게 기억나고, 관리인들이 밖으로 나와 흙을 판판하게 고르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가장 생생한 기억은 해가 지면서 햇빛이 근처 빌딩들, 브롱크스 지역의 빌딩들에 가 닿던 장면이다. 그렇게 햇빛이 그 빌딩들을 비추고 나면, 이어 여기저기 도시의 불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내 앞에 그 세상이 돌연 펼쳐진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p.203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내내 좋다고 생각했지만, 위의 부분을 읽으면서는 가슴 가득 행복이 폭발할 것 같았다. 저 때 루시가 느꼈던 행복은 옆에 있는 누군가가 준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루시 혼자서만 오롯이 느낀 것이었다. 해가 지는 풍경, 빌딩들에 빛이 가 닿던 장면들은 온전히 그 순간 루시만의 몫이었다. 그리고 도시의 불빛들이 켜지는 걸 목격하는 그 길지 않은 순간, 그 아름다운 광경을 몸소 느끼는 것은, 루시니까 가능했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루시였다. 이 장면에서 마치 내가 루시가 된것마냥 지는 햇빛과, 도시의 불빛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자 내 가슴 가득 뻐근함이 밀려드는 거다. 너무 좋았다. 정말이지 너무 좋아서, 저 부분만 읽고 또 읽었다. 아니 바보처럼, 왜 처음 읽을 때 여기를 접어두지 않았어? 책을 꼭 끌어안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고보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이런 작가였다. 맞아, 이런 작가였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포착해낼 수 있는 그런 작가였다. 지는 해를, 도시의 불빛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순간을 잡아내는, 그런 작가였어. 나는 이 장면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장면을 나 역시 언제고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일어나기 싫다고 혼자 속으로 징징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길을 나서면서 새벽이 아침으로 바뀌는 풍경을 나는 몹시 좋아하지 않았던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 싫지만 이런 거 보는 거 너무 좋아, 여름이 좋지만 겨울에는 같은 시간에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지, 하면서 나는 행복해하는 거다.

루시가 야구장에서 만난 풍경에서 느끼는 그 감정이 그래서 나는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너무 좋았다. 이런 건 내가 느끼는 꼭 그만큼의 크기를 누군가 동시에 함께 느끼는 것이 쉽지 않다. 불가능하지 않지만 쉽지 않다.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작은 행복들이 누군가와 함께 이루어내고 만들어가고 경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은 혼자일 때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행복의 크기를 느낀 사람과는 좀 특별한 관계가 되는게 아닐까.




여러가지로 지쳐있지만 지친 틈에서도 나는 이렇게 아침 풍경을 감상하고 커피를 내린다. 가방에는 초콜렛도 있었다. 커피와 초콜렛을 함께 먹으니 좋았다. 토요일에는 점심 저녁으로 무얼 먹을지 이미 다 정해두었다. 일요일 점심도. 그렇게 작은 목표들을 세우고 또 이루어내면서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 여동생은 이런 내게 먹는 것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계획이 철저한 사람이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동생의 말은 틀림이 없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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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2-0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남자랑 뽀뽀했군요? 얼레리꼴레리~~~~~ ㅋㅋㅋㅋ
엄마 귀여우세요. ㅋㅋㅋㅋㅋㅋ
먹는 거에 계획적인 것 저랑 비슷하네요. ㅎㅎㅎㅎ 회사 올 때 가방에 먹는 거 잔뜩 있는 것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틀랜드에서 포스팅하는 다락방 님 글 몇년 뒤에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다락방 2020-12-03 10:3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댓글 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남자랑 뽀뽀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남자...지금은 다른 여자랑 뽀뽀할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고있지만 눈물이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엄마가 아주 냉철하게 분석하셨습니다. 뽀뽀를 짐작하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얼레리꼴레리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제가 엄청 계획적인 사람이더라고요? 물론 먹을 거에 특히 더 그러하긴 합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시일내에는 불가하겠지만 언젠가는 꼭 포틀랜드 가서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포틀랜드의 아름다운 풍경을 찍어서 올릴거에요. 그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히히히히히히히히히

로제트50 2020-12-0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며가며 거리 풍경 즐기는 것도, 가방에 먹는 거 챙기는 것도
저와 공통점이네요^____^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올리브 키터리지>만 읽었는데, 다락방님 포스팅 보고, 더 챙겼답니다^^*
포틀랜드는 저도 관심있는 지역이랍니다*^^*

다락방 2020-12-03 13:17   좋아요 1 | URL
오오! 가방에 먹을 거 챙기는 분이 많으시군요!
저는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에요. 에휴.. 그렇지만 이렇게 공통점이 있으시다니 기쁩니다! ㅋㅋ

최근에 나온 신간 <다시, 올리브>가 참 좋았는데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전작을 다 읽어보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차근차근 전부 읽어볼 작정이에요. 로제트님도 다른 책으로 또 만나보세요. 루시 바턴도 너무 좋아요!!

언젠가는 포틀랜드에 갈 수 있겠죠?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ㅠㅠ

2020-12-03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3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3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3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0-12-03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을 수 없는 뽀뽀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멋지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12-04 10:41   좋아요 0 | URL
음, 잊을 수 없는 뽀뽀가 아니라 잊을 수 없는 남자랑 뽀뽀를 했던건데, 생각해보니 그것은 결국 잊을 수 없는 뽀뽀와 별로 다를 바 없지 않나 싶고, 네, 뭐, 그렇습니다. 누구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뽀뽀 몇 개쯤은 가지고 있잖아요? ( ˝)

han22598 2020-12-04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몇년째 벼르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포틀랜드인데. 전 Powell‘s City of Books 책방 가보고 싶거든요. 그러고 Crater Lake National Park로 향하는 여행경로는 머리속에 있는데.....저는 언제나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ㅎㅎ

다락방 2020-12-04 10:41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포틀랜드에서 뭐가 유명한지 몰라요. 그런데 사진으로 본 포틀랜드의 풍경이 너무 좋아서 며칠 머무르고 싶더라고요. 저도 현재로는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우리 꼭 가보도록 합시다, 한님!!

scott 2020-12-04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아주 중요해요
모든일에 계획을 갖춰야 하지만 특히 먹는것!(인생에 가장 큰 즐거움 ㅎㅎ)


포틀랜드 넘나 살기 좋고 유명하다고 사람들 마구 마구 몰려와서 샌프 만큼 그지, 도둑으로 넘쳐나지만 사람들 겁주고 위협하지는 않음 ㅋㅋ

지금은 많이 문을 닫고 커피샵 앤티크샵(관광객위주)들이 늘어났지만 이곳 원래 북샵으로 아주 아주 유명하고 주인장이 지역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굿즈 다양하게 팔고
무엇보다도 농구로 유명하고
백인들이 거의 80퍼센트인데 인종 차별 없고
여름에 지인짜 덥고
자연환경은 정말 정말 훌륭, 세상에 모든 종류에 폭포는 이곳에 전부 모아놓은것 처럼 황홀 특히 눈에 뒤덮힌

양조장이 유럽 보다 더 다양하고 값도 저렴해서 맥주맛 최고!!
하지만 와인이 더 저렴하고 맛도 기절할정도로 ㅋㅋㅋ

의외로 캘리나 시애틀 보다 오레곤 주가 살기 좋아요(이곳은 코로나 광풍도 비켜 갈정도로 다른주 처럼 확진자 수만명은 아님)

다락방 2020-12-07 08:05   좋아요 0 | URL
아 포틀랜드가 살기 좋기로 유명한 곳이군요. 제가 그간 사진으로 보아왔던 포틀랜드는 굉장히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곳이었거든요. 마침 친구가 시애틀에 살아서 포틀랜드로 오면 만나자, 했었는데 상황이 이래가지고 언제쯤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랑이 한 일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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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아버지는 넘어서고 뛰어넘었지만, 그래서 그렇게 했지만, 그래서 그렇게 하고도 현재를 살고 인간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그 일을 당한, 아마도 아버지처럼 넘어서고 뛰어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을 형과 형의 어머니인 하갈은 어땠을까? 그들 안의 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 파괴되고 훼손되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 <허기와 탐식>, p.149



성경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사람도, 창세기의 유명한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신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일. 아브라함은 신의 말을 충실히 따르며 그의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고자 한다. 아직 어린 소년인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끄는대로 졸졸 따라가서는 하나님에게 바쳐질 제물이 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칼을 든 그 때, 신은 다급하게 아브라함에게 멈추라 말한다. 네 마음을 알았으니 지금 하는 행동을 그만두고, 저기 내가 놓아둔 숫양을 제물로 바치라는 거다. 이에 이삭은 제물로 바쳐지지 않을 수 있었다. 죽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교회를 아주 오랜 시간 다녔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래서 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어떻게 제대로 되는지도 역시 모른다. 그러나 신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일, 아브라함이 정말로 그렇게 하려고 했던 일에 대해서는 안다. 교회를 다닌 시간이 길다면 길었지만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가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신은 왜 그랬는가. 신은 왜 아브라함의 믿음 혹은 사랑을 시험하려 들었는가. 신이란 절대적 존재가 아니던가. 굳이 인간의 사랑을 혹은 믿음을 시험해야만 했는가. 그거 너무 부족함이 드러나는 일 아닌가. 게다가 그 시험을 어째서, 아들을 바치는 걸로 하라는건가. 결국 신의 뜻대로 아들을 바치려고 한 아브라함은 신에게 그 사랑을 인정받고 복된 인생을 사는건가? 이게, 기독교인들에게는, 믿음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신은 내게 네 사랑을 보여다오, 했고 아브라함은 네 그러겠습니다, 했는데, 왜 죽을 위험에 처하는 건 이삭인가. 신과 아브라함이 서로의 사랑을 이제 확인했기 때문에 이삭은 오, 베리 굿, 할 수 있게 되었는가? 이승우는, 이 상황에서의 이삭의 입장이 되어본다. 이삭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말한다. 그는 수차례 묻는다. 신이 그만두라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 정말 내 배를 갈랐을까? 이게 어린 이삭에게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수 있을까? 신에게 믿음을 증명하게 위해 나를 죽이려고 한 나의 아버지를, 이삭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를 아버지로, 신에게 충심한 아버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삭은 신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의 신에 대한 사랑을 이해한다. 안다. 그래, 그것이 사랑이 한 일이구나, 깨닫고 또 깨닫는다. 그러나 그 이해는 너무나 처절하다. 이해가 돼서 하는 이해가 아니라, 자신이 살려면 그것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어린 이삭이, 그리고 성인이 된 이삭이 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정말이지 처절한 데가 있다. 그가 아무리 사랑해서 그래, 신은 아버지를 사랑했어, 아버지도 신을 사랑했지, 계속 되뇌이고 되뇌어도, 거기에는 자연스러운 이해나 용납이 아닌 처절함이 있는 거다. 내 아버지인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해하지 않으면, 그러면 나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하는 처절함.



그렇게 제물로 바쳐질뻔한 데에서 살아나고 나서야, 그는 그제야 자신의 어린 시절 집에서 내쫓겼던 하갈과 그의 이복 형인 이스마엘을 떠올린다. 아,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 아버지로부터 내쫓겼다고 했지, 버려졌지. 내가 제물로 바쳐지기 전에 이미 내쫓긴 그들이 있었지, 그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는 그제야 비로소 그동안 없는듯 생각해왔던 존재를, 보이지 않았던 존재를 소환해낸다. 그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그랬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전, 자신이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을 어린 아들과 함께 내쫓았다. 아브라함 부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아브라함의 아내는 자신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던 하갈에게 네가 대신 아이를 낳아다오, 하고는 바라고 명령하였는데, 막상 아이를 낳고나자 그녀를 내친다. 그렇게 자신이 임신해서 이삭까지 낳고 나자 더이상 하갈을 두고볼 수 없어 아브라함에게 계속 저들은 내쫓으라 말한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하갈은 어린 아들과 함께 내쫓긴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걷고 또 걷다가 무너지기 직전, 신이시여 저를 데려가시되 제 아들은 살려주세요, 기도하다가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그녀는 우물을 발견해 아이와 함께 터를 이루고 살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하갈은 신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자신을 내쫓은 아브라함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자신의 아들과 무사히 살 수 있게 되었으므로 신의 보살핌을 감사히 여길 수 있게 되었을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살아가는 내내 숱하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저 어린 아이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원망하는 일이 없었을까?



재차 언급하자면 나는 성경을 읽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승우가 여기에서 풀어낸 이야기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성경의 내용인줄은 모른다. 어느만큼을 이승우가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들어낸건지도 역시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승우가 이 책에서 서영채의 해설대로, 제물로 바쳐질뻔한 이삭과 내쫓긴 하갈에게 목소리를 주었다는 것은 알겠다. 신과 아브라함의 사랑 때문에 그들이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는 것을 알겠다. 이삭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처절한지도 알겠다. 그런 틈틈이 나는 계속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을 겪어도 어째서 이런 일은 반복되는가? 이삭은 자신의 쌍둥이 아들을 차별한다. 자신의 맏아들이 사냥해온 음식을 맛있게 먹고 축복하고자 한다. 그에게 둘째 아들은 딱히 사랑의 대상이 아닌데, 이에 이삭의 아내는 둘째 아들에게 더 큰 애정을 쏟는다. 사람은 이렇게나 불완전하고 사랑은 이렇게나 균형을 잡지 못한다. 그런데 이게 어디 인간만의 일이던가.


신은? 신은 어떤데? 신은 공평한 사랑을 사랑답게 했는가? 애시당초 신이 시험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어째서 시험하는가, 왜? 너무 못나지 않았나, 사랑을 시험하는 일은. 아브라함이니까 이삭을 데리고 산으로 갔지, 나였으면 안갔을 것이다. 신이든 인간이든 내 사랑을 시험하려 했다면, 게다가 그 시험이 '날 사랑한다면 만원만 줘' 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면, 아이고야, 당신 사랑 안하고 말지 그걸 시험이라고 하고 있다니, 맙소사, 내가 도대체 어떤 존재를 사랑한거야? 하고 그 사랑을 내던질 것이다. 아마, 그래서 내가 지금은 더이상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들마다의 글쓰기 성향이겠지만, 어떤 작가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자신이 경험한 일중에서 자신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에 대해 천착할 수밖에 없는 것같다. 아니, 무릇 인간이란 다 그렇겠지. 그런 면에서 이승우가 창세기에서, 그것도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가져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은 지나치게 당연해 보인다. 이승우의 책을 읽다보면 이승우는 끊임없이 온전하지도 다정하지도 못했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까. 감히 짐작건대, 종교학을 공부했던 이승우가 결국 소설가가 되어서 이런 소설을 써내는 것은, 작가 자신이 천착하는 일이 내면에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는 일은 처음에 내면의 약함으로 시작했을 것 같다. 그것이 자기를 잡고 놓아주지 않아 들여다봐야 되는데, 계속 들여다보게 되니까 그것을 풀어내야 했고, 그렇게 그것이 글로 표현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글로 계속 표현하다보니 결국은 그 내면이 단단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게 풀어준 창세기 이야기가 좋고 고맙다.



창세기의 이야기들로 풀어낸 다섯편의 단편이 이 책 안에 있고, 각 단편을 시작하기에 앞서 창세기의 성경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이승우가 인용한 성경은 <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되어 있던데, 이승우 책을 읽으면 언제나 그렇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도 성경을 읽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이번엔 한 번 읽어볼까, 하고 현대인의 성경을 검색해 장바구니에 넣는다. 적어도 창세기 부분만큼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승우의 소설을 읽은 후에 성경을 읽는 것이 성경을 읽는 바른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승우가 출애굽기도 레위기도 시편까지도 다 써줬으면 좋겠다. 책장에 차곡차곡 이승우가 써낸 성경모티브 책들을 꽂아두고 싶다. 창세기를 출애굽기를 시편을, 신약성서 까지도, 이승우의 글로 만나고 싶다. 간절히 그러고 싶다.






그들은 그들이 하려고 하는 악한 짓에 대한 의식이 없었고, 롯은 그 사실을 지적했다. 롯이 의도한 것은 구별하는 것이었다. 악과 악이 아닌 것,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나누는 것이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섬세해지는 것이었다. 잠든 그들의 윤리적 감각을 깨우는 것이었다. 윤리적 감각은 무분별,무차별의 함몰 상태를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똑바른지 휘어졌는지, 명중했는지 빗나갔는지, 선 안에 있는지 선 밖에 있는지 묻고 따지는 것에서 비롯한다. 롯은 몰려온 소돔 사람들에게 그것을 요구했다. 무엇이 악한 짓인지 아닌지, 선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구별해내라. 차이를 찾아내라. - P25

롯은 그 도시에 매혹되어 이십 년 넘게 그곳에 살았지만 아직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 도시 사람들이 그를 향해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라고 비난한 이유이다. - P32

갑자기 눈이 어두워져 앞을 볼 수 없게 된 무리는 대문을 찾을 수 없었다. 볼 수 있을 때는 바로 앞에 있던 대문이 볼 수 없게 되자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되었다. 대문은 멀어지고 급기야 사라졌다. 사라졌으므로 그들은 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때리며 엉겨붙어 난장판을 벌였다. 누가 때리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든 때렸다. 대문이 부서질 때 그들이 대문 안의 나그네들에게 하려고 했던 일을 대문 밖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행했다. - P40

그들에게는 두 가지 임무가 주어져 있다. 그들은 소돔을 멸망시켜야 하고, 동시에 멸망하는 그 도시에서 롯의 가족을 구해내야 한다. 그들 가족을 구해내기 전에는 도시를 멸망시킬 수 없다. 멸망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 두 가지 임무는 실은 한 가지 사건의 양면이다. 물에 잠긴 곳에서만 물에서 건져지는 사람이 생기는 이치이다. 물에 빠지지 않은 사람을 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 P52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내보일 수 없고 있으면서 없는 것처럼 감출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잠깐 위장할 수는 있지만 오래 속일 수 없고, 한때 감출 수는 있지만 결국 드러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아들을 향한 눈빛과 미소와 말투를 통해 그는 늦게 얻은 외아들에 대한 속깊은 사랑을 어쩔 수 없이 자주 노출했다. 그녀를 대하는 눈빛과 미소와 말투에서 언뜻언뜻 느껴졌던 것이 아들을 보는 눈빛과 미소와 말투에서는 자주자주 느껴졌다. 그것은 그녀의 은밀한 기쁨이었다. - P61

신은, 너의 아들, 너의 사랑하는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는 걸 보니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이제 확실히 알겠다, 라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에게 한 말을 나도 듣는다. 이 말은 놀랍다. 그분이 요구하셨으니 그분이 마련하실테지, 하고 한 아버지의 말만큼이나 놀랍다. 신은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마음보다 더 간절하고 절실한 것은 없다. 시험이라는 비순수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사랑보다 더 순수하고 큰 사랑은 없다. 비순수를 통해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종류의 순수가 있다. 사랑이야말로 그러하다. 심지어 순수한 사랑일수록 그 표현이 더 순수하지 않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순수하지 않은 것들이 순수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동원된다. - P114

사람에게는 균형을 잡는 재주가 없고 사랑에게는 균형에 대한 감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균형을 잡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 P128

위장에 빈 공간이 없는데도 여전히 음식을 갈구한다면 이 갈구는 어떤 공간을 채우기 위한 갈구인가. 위장은 꽉 찼는데 어디가 비어 있어서 어디를 채우려고 음식을 탐하는가. 탐식하는 자는 대답하지 못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가 비어 있는지 안다면 그곳을 채울 것이다. 그러나 어디가 비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가 비어 있는지 모르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음식을 찾고 부르고 음식에 손을 대고 이미 꽉 차 있는 위장 속으로 집어넣는다. - P137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가 주인인 세계, 집에 있는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 속해 있는 세계였다. 아들인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를 사랑했고, 그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 사랑이 ‘속해 있는 것‘을향한 지배의 방법이라는 사실이 어렴풋이 깨달아지자 견딜 수 없었다. 집은 사랑이 없는 곳이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굴레인 곳이어서 돌아갈 수 없는 곳, 달아나야 하는 곳이 되었다. 그는 집을 튼튼하게 하는 효율적인 재료의 역할을 하는 사랑을 털어내기 위해 떠돌이가 되었다. - P146

쫓아낸 아버지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신의 뜻을 앞세웠을 것이다. 최선을 넘어서는 최선, 법과 도리를 뛰어넘는 신의 섭리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그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들을만큼 들어 알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삭은 회의했다. - P148

신과 아버지는 넘어서고 뛰어넘었지만, 그래서 그렇게 했지만, 그래서 그렇게 하고도 현재를 살고 인간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그 일을 당한, 아마도 아버지처럼 넘어서고 뛰어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을 형과 형의 어머니인 하갈은 어땠을까? 그들 안의 인간은 어떻게 되었을까? 파괴되고 훼손되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 P149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맛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이 먹는 사람은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 맛을 모르는 사람이 먹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맛을 모르는 사람만이 탐식할 수 있다. - P151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항상 다른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다른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부르는 일은 뜻밖에 흔하다. - P166

그녀가 미래를 기다렸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녀는 기다리는 일을 했다.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나서서 맞아야 하는 것임을 그녀는 어렴풋이 의식했다. 기다림이 바람이고 참여, 즉 매우 적극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바라지도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기다리는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녀는 서서히 알게 되었다. - P180

그런데 이승우는 그런 이삭에게 입을 달아주었다. 그 입은 구양에 없는 입이다. 그뿐 아니다. 이삭보다 먼저 하갈에게 입을 달아주었다. 입이 생긴 자들은 묻는다. 하갈도 이삭도 묻고 또 묻는다. 당신은 내게 왜 이러는가. -해설, 서영채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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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2-02 1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삭을 매개로 한 아브라함에 대한 시험은 그 대상이 사실 아브라함과 이삭, 두 사람이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백살에 낳았고, 나무짐을 지고 따라갈 정도라면 적어도 열넷 혹은 열다섯 정도 아니었을까요.
삼일 길 이후에 아버지와 둘만 산 속으로 걸어들어가며 이삭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제단에 자신을 누이고 칼을 드는 아버지를 보았으니 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었겠죠. 물리적으로 아버지를 물리칠 수 있었을텐데 이삭이 그대로 누워있는 모습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말씀하시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삭에게는 아버지를 뿌리칠 수 있는 적당하고 이성적인 이유가 열 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아버지의 칼을, 정확히는 하나님의 지시를 기다린건 아니었을까요.

백살에 낳은 아들을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들었던 경우라면 저는.... 부모된 입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아브라함도 이삭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백살에 낳게 하신 아들이라면 죽어도 살리실 것이다. 죽어도 다시 살 것이다. 그게 바로 귀한 자식을 제단에 올리는 심정일거라 추측합니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괜히 길어졌네요. 저도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20-12-03 08:00   좋아요 0 | URL
리뷰에도 썼지만 일단 노파심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저는 성경을 읽은 게 아니라 이 소설을 읽은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니 혹시 어떤 오해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소설을 읽고 리뷰를 쓴 제탓입니다. 그렇지만,

단발머리님의 댓글은 이승우가 소설에서 쓴 말과 완전히 같아요! 이삭의 입장에서도 그것이 아버지와 자신에 대한 시험임을 알고 있어요, 아버지 역시 괴로웠을 것임을,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는 신의 말씀을 듣고 아버지가 탈진해버렸음을 보고 그 마음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거든요. 성경을 읽고 이승우가 쓴것을 단발머리님도 바로 그대로 짐작하셨네요. 저는 더더욱이 창세기가 궁금해집니다. 어서 성경을 사서 창세기 도전할까, 하고 있는데, 마침 어제 친구가 ‘너 나랑 성경 읽어볼래?‘ 해서 그러자고 했어요. 물론 성경을 산 뒤에요.. ㅋㅋㅋㅋ

이삭은 신의 시험이 아버지와 저를 향한 것이었음을 알고 실제로 아들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마도 아버지의 안도가 제것보다 컸으리라고도 짐작합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과 믿음에서 온 것이라는 것도 알고요. 귀한 자식을 제단에 올리라고 한 신, 귀한 자식을 제단에 올려야만 했던 아버지의 입장까지 이삭은 다 짐작하고 이해합니다. 정말 단발머리님의 이 댓글이 그대로 다 소설에 있어요. 다만, 이 댓글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이삭은 이 책에서 이삭의 입장으로 말하고 있는 거지요. 저는 그 부분도 성경에 나온건지 궁금해요. 이삭은 그 날의 트라우마로 식탐이 생겼거든요. 이것이 이승우의 짐작인지 실제 그러한지 성경을 읽어봐야 알 것 같아요.

저는 이 책을 읽고난 후 단발머리님의 감상이 너무 궁금합니다. 성경을 이미 읽으신 분이고 또 부모의 입장도 자식의 입장도 되어보신 분이잖아요. 저랑은 완전히 다른 감상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자, 오늘도 우리 독서 화이팅!!

syo 2020-12-03 22:19   좋아요 0 | URL
멋있어!! 두분 다!! 와아아!!

다락방 2020-12-04 10:42   좋아요 0 | URL
엣헴- 우리가 좀 그렇죠? (으쓱)

scott 2020-12-04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고 댓글 두세번 읽고 나니 책한권 다 읽은것 같아요 ㅎㅎㅎ

다락방님 이승우 작가님 찐 사랑팬 ♥

다락방 2020-12-07 07:56   좋아요 0 | URL
ㅎㅎ 이승우 작가는 진짜 너무 좋아요. 글을 읽는 맛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