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도 벌써 24일이고, 오늘 아침 나는 아이쿠, 그런데 이 책의 아주 조금 밖에 읽지 못하였으니 어쩐담, 완독을 위해서라면 이 책을 출근길에 함께 해야 한다! 하고 들고 왔고, 그러나 지하철안에서 이 책을 꺼내 읽으면서 후회를 이천번쯤 하였다. 정말 무거워서..진짜 무거워서...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 누가 날더러 이렇게 살라고 했나.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의 내 무릎 위 풍경..





내게는 좋아하는 작가가 몇 있다. 그 작가들의 책은 전부 다 읽고 싶고 차곡차곡 모으고 싶다. 그동안 이 서재를 방문했던 사람들이라면 아마 귀에 익숙한 이름들이겠지만, 줌파 라히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샤론 볼턴이 그렇다. 물론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라면 한나 아렌트에 대해 말하는 책들까지도 차곡차곡 모아볼 생각이다.


줌파 라히리의 단편집 《그저 좋은 사람》에는 <뭍에 오르다>라는 단편이 있다. '헤마'와 '코쉭'이 주인공인 단편인데, 헤마는 코쉭을 만나 사랑하지만, 이미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약혼한 상태이다. 코쉭은 왜 그 사람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약혼했냐고 묻고, 이 때 헤마는 대답한다.


 

"그러면 왜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그녀는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진실이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바로 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 《그저 좋은 사람》중 〈뭍에 오르다〉, 줌파 라히리, p.378

















나는 책 속 헤마와 꼭같은 이유로 결혼을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사회는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연애와 결혼을 강요하고, 그래야만 행복하다고 세뇌하고, 그래서 비연애나 비결혼인 상태의 사람에게 끊임없이 연애연애 결혼결혼 하게 만들므로(나는 너가 행복해지도록 연애했으면 좋겠어, 라는 십여년 전의 친구의 말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고 생각했다. 왜 연애 안하냐는, 왜 결혼 안하냐는, 결혼 언제 할거냐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더이상 그런 질문을 듣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서, 거기다 대고 늘 대꾸하는 일들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결심했었더랬다. 결국 그 관계는 결혼으로 이르지 못했고, 나는 상대에게 미안함만 가진채 끝내게 되었다. 일단 결혼을 해두면 세상이 내게 잔소리를 멈출 거라고 생각했고, 게다가 이 남자는 나를 좋아하니까 내가 살기에 나쁘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이 남자랑 결혼해 살면서 세상의 잔소리를 차단하고, 그리고 사랑은 내 마음대로 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가짐 이었으며, 그래서 동시에 상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 책 속 헤마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이 답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결혼은 답이 아니다.

















우리의 결혼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우리 둘 다 구원을 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둘 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서로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비행 공포》, 에리카 종, P110


'에리카 종'이 자신의 책 《비행공포》에서 만들어낸 '이사도라' 역시도 연애와 사랑이, 함께해줄 남자를 찾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끊임없는 시행착오속에, 자존감을 개박살 내가면서 사랑(남자)를 찾아 헤매인다. 그러나 그녀가 그 모든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깨달은 것은, 내 인생을 구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황당하게도 에이드리언이 내 영혼의 짝이라고 믿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그러나 나는 바로 그걸 원했다. 나를 완성시켜줄 남자를 원했다. 파파게노에 어울리는 파파게나. 그것이야말로 내 모든 망상 중 가장 심각한 망상이었다. 다른 사람은 결코 나를 완성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완성할 힘이 없을 때, 사랑을 찾는 건 자살 행위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기희생이 곧 사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비행 공포》, 에리카 종, P553



그러니까 나는, 로맨스는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로맨스는 답이 될 수 없다. 로맨스가 답이기를 기대하지만, 로맨스는 답이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로맨스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로맨스가 답인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세상은 로맨스가 답이라고 얘기해왔고, 그래서 실제로 로맨스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답이라니까 그 길로 뛰어드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제 읽은 책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서는 스물 한살에 이미 아빠가 다른 세 명의 사생아를 낳은 여자가 나온다.
















여자는 잘 살고 싶었고, 이 남자는 좋은 남자일 거라고, 다른 남자랑 다를 거라고 생각하며 섹스하지만, 그러나 그 남자는 다른 남자랑 다르지 않은 남자였다. 첫번째 아이를 아버지 없이 낳았을 때 그녀는 열여덟 살이었고, 그 때 그녀와 섹스한 남자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


첫째 아이 제이슨이 태어났다, 드와이트의 아이였고 사고였다, 그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고 잘 빼겠다고 했지만, 분명 제때 빼지 못했다(제때 빼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녀에게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p.284


다행히도 엄마와 언니가 아이를 같이 돌보아 주기 때문에 그녀는 마트 점원으로 계속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두번째 남자를 만난다. 나이트클럽에서였다. 그는 풋내기였고, 노골적으로 성기를 비벼대지도 않았고, 그녀를 위해 문도 열어주는 남자였으므로, 그녀에게 한시라도 빨리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다고 귓가에 속삭이는 남자였는데, 그러나 콘돔 없는 한 번의 섹스 후 그녀는 임신이 되었고,



그러나 둘의 관계가 가져다준 유일한 결과는 잰텔이었고 그녀는 아직 아버지를 만나보지도 못했다, 마크가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니

없는 번호였다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p.291



세번째 남자는 예전 같은 반 친구의 오빠였다. 직업이 체육선생이고, 자신이 두 아이의 엄마인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남자. 조용한 곳에서 식사하자며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남자, 결국 음식을 주문하기도 전에 사정해버린 남자. 그렇게 그녀는 또 임신했다.


그가 다음 주에 전화를 걸 거라고 반쯤은 기대했다, 잘 있었어? 너랑 정말 좋았다고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가버렸더라, 주말에 영화 보러 갈래?

그녀가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았고, 그녀에게 온 건 조던 뿐이었다. -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p.295




내가 결혼이 모든 걸 해결해 줄거라고 생각했던 헤마를, 구원은 결국 자기 몫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이사도라를, 번번이 기대했지만 번번이 아이 아빠이기를 포기한 남자들을 만났던 라티샤를 떠올린 건, 오늘 출근길에 무겁게 들고 읽었던 책,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매 맞는 여성들의 운동에서 한 작업의 상당 부분은 이런 치명적인 로맨스를 저지하는 것, 즉 정서적으로 상처받은 남성들이라는 유혹에 관해 여성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남성 폭력의 근원에 자리한 고통을 탐색하고자 시도하는 순간, 여성들은 다시 파괴적인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은 흔히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 - <생존의 이야기: 계급, 인종, 가정폭력>, p.223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에 노출된 숱한 여성들이 처음부터 '나는 폭력당할 것이다'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라티샤처럼 그의 '다른 남자랑은 달랐던' 부분들을 보게될 것이고, '이 남자는 달라'로 생각하며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로맨스는 폭력으로 이어지고 그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그 폭력 안에 침몰 되어 체념하게 된다. 또한, 그 폭력 후에 다정한 순간이 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고 견디기도 한다.



이들은 때로 학대를 견디면서 남성 권력의식을 회복할 남자의 권리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때로는 폭력이 분출한 뒤의 '허니문' 기간에 남자들에게 권리 주장을 하기도 한다. 내 환자 중 한 명은 이 동학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그이가 가끔 폭발하면 저는 참고 견뎌요.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화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저를 도와줘요. 자기가 한 번 발끈했으니 이제 빚을 진 셈이죠." - <생존의 이야기: 계급, 인종, 가정폭력>, p.223



자, 한 번 빚졌으니 이제 내 차례야, 라며 권리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관계를 감내한다는 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걸까. 폭력은 빚으로 퉁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견뎌내려면, 하루 또 하루 살아가려면 '빚을 졌으니 이제 내가 권리를 요구할 수 있지'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매 맞는 여성들의 운동에서 한 작업의 상당 부분은 이런 치명적인 로맨스를 저지하는 것' 이라고 했을 때, 바로 거기에 딱 맞는 책이 있다.
















나도 사두고 아직 읽진 않았지만, 일전에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의 이 책 내용에 관련한 테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하버드대를 졸업했고 뉴욕에서 직장을 다니던 젊은 시절, 자신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남자, 소울메이트라고 여겼던 남자로부터 여러번, 총으로 협박을 당했던 경험으로 강연을 시작한다.







남자의 여성폭력에 대해서라면, '토머스 J. 하빈'의 《비욘드 앵거》에 주옥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그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때리는 것은 결코 여자들의 잘못이 아니고 그 남자를 고치는 것도 여자들의 몫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남자들을 고치는 것은 그 남자들 자신의 몫이니 그를 떠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화가 난 남자들이 자기 삶에 존재하는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은 결국 그들 자신에게 고통과 슬픔, 죄책감을 가져다준다. 어머니부터 여자 형제, 여자 친구와 아내에 이르기까지 화가 난 남자들은 주로 여자들을 공격한다. 대체로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힘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렇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남자들은 제멋대로 세상을 휘둘러 왔다. 왜냐하면 남자가 여자보다 몸집이 크고 힘도 세서 여자를 강제로 복종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를 육체적으로 학대했을 뿐 아니라 정치, 종교 같은 모든 모든 권력 제도에도 성차별이 존재하도록 만들어놓았다.
화가 난 남자들 다수가 주로 여자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여자들이 남자의 행동을 참고 견딜 때가 많다는 데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여자들은 대체로 남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참고 인내하며 용서하는 경향이 있다.
-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104



일단 한 번이라도 폭력을 쓰게 되면 아주 획기적인 계기가 생겨 두 사람의 관계가 변하지 않는 한 언제라도 다시 폭력을 쓰게 된다. 과거의 폭력은 미래의 폭력을 예측하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변수이다. 더구나 거친 논쟁은 폭력을 부르는 전조이다. 만약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 자주 ‘한계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즉시 태도를 바꾸어야만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폭력을 쓰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122



삶을 통제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통제해야 한다. 늘 소파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운동을 하고 건강해져야 한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 우울증, 불안, 분노가 줄어든다. 자제력도 자존감도 높아진다. 신체가 건강해지면 정신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222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자기 통제의 문제이다. 특히 자제력의 문제이다. 여자를 때릴 때 자제력을 잃는 이유는 여자가 손쉬운 표적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조차 내팽개치고 덤비는 상황이 아니라면 남자는 절대로 상사나 경찰이나 자기보다 몸집이 큰 남자를 때리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위험한 상대여서 자기가 다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폭력은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는 시도이다. 남성은 여성을 통제하려고, 논쟁에서 이기려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폭력을 쓴다. 하지만 남자에게 그럴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권리와 기회를 누려야 하고, 남자처럼 폭력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한다. 논쟁을 끝내려고 폭력을 쓰는 것은 자제력이 없고, 자기에게 찬성하지 않는 사람을 공정하게 대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자기가 폭력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비욘드 앵거》, 토머스 J. 하빈, P237



그나저나 이 두껍고 무거운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제 고작 1/3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언제 다 읽나... 무겁다....... 무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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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4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1-03-2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떠나면 답일 그 간단한 문제를, 온세상이 로맨스를 하도 들입다 퍼먹이니까, 사는 건 또 힘들고 그르니까...

다락방 2021-03-26 12:21   좋아요 1 | URL
맞아. 연애가 또 재미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연애를 하면서 행복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나는 나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각자의 재미와 행복을 찾고 살아가자. 빠샤.

- 2021-03-2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맨스 유해해..

다락방 2021-03-26 12:21   좋아요 1 | URL
아 요즘 읽는 책들 때문에 로맨스 꼴도 보기 싫어졌다가 로맨스 소설(브리저튼) 읽으면서 아 재밌어.. 이러고 있어요. 인간 뭘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연애는 구경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1-03-26 17:30   좋아요 0 | URL
남연애의 스펙타클 구경🙄 ㅋㅋㅋㅋㅋ
 

우리 방식대로 한다.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P28

그녀도 학생회관 술집에 딱 한 번 가본 적 있다. 매일 밤 엄마들이 고함을 치며 욕조에 빠뜨리지 않는 탓에 학기가 지날수록 악취가 점점 심해지는 부류의 남자로 가득한 곳이런 부류의 남자는 강의실에서 왜 아무도 자기 옆에 앉으려 하지 않는지, 왜 아무도, 야, 너 냄새나, 라고 말하지 않는지 모르는까닭에 점점 기분 상한 표정만 짓는다.

대학에 가면 로맨스가 있을 줄 알았다, 꼴사납게 생기지 않고 그녀보다 키가 큰, 그녀 수준에 맞는 멋진 남자(전제 조건이다)
토요일 저녁이면 서로 끌어안고 일요일 아침이면 둘이서 침대에서 느긋하게 빈둥거리며 그녀가 <뉴요커> <옵저버> <갈덤> <더 루트> <디 애틀랜틱> <더그리오> 의 글을 챙겨보는 동안 같이 음악을 들을 누군가 - P79

어쨌든 남자 헌팅 다니는 걸 포기하고 대학 스쿼드 회원들과 어울려 놀았다.
스크롤 - 좋아요- 채팅 - 초대 - 잠자리 세대의 일원으로 성인이 된 건불행한 일이다. 이 세대 남자들은 첫 번째(그리고 딱 한 번의) 데이트에서 상대가 성적 욕구에 따라 움직이길 기대하고, 음모는 제모하여 하나도 없으며, 인터넷 포르노영화 속 여자들이 하는 역겨운 짓을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하므로 - P81

버미는 오모페가 그렇게 빨리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옮겨가다니 놀라웠다 - P254

그런데 재미있게도 모건이 젠더인지 잔디인지 억지로 둘로 나누지 않는 머시기가 되었다고 한 뒤에도 고작 이름을 메건에서 모건으로 바꾸었을 뿐, 다른 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그 정도면 해티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적어도 그녀 이름을 레지널드나 윌리엄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건이 요구하는 대로 그녀 대신 그네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영합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모건은 여전히 똑같은 (남자) 모습이며, 행동도 여전히 똑같고(남자 같고), 모든 점에서 사실상 똑같았다(메건 그대로였다). - P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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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절반을 좀 넘겨 읽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보노라면 전부다 별 다섯을 줄 정도로 극찬하는데, 현재까지 나는 그정도는 아니다. 다 읽고나면 나 역시 기립박수를 치면서 역시 대단하다, 대단해 하게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문학에 기대하는 바를 이 책이 나에게 다 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나는 앤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을 떠올렸고-그러고보면 피로 물든 방은 정말 대단했어!-, 샤론 볼턴을 떠올렸고, 애나 번스를 떠올렸다.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너무나 의미있는 작품을 써냈지만, 그러니까 세상에 내가 원하는 그런 작품이 없으니 내가 쓰겠다, 하고는 써냈고 그것은 대단하지만, 내게 버나딘 에바리스토 의 이 책은 그러니까,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과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각 인물들의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읽는게 좀 힘들다. 그 여성들 모두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 자기가 살아가는 위치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유색인종이기 때문에' 당한 피해와 고통이 드러나 있어서. 강간은 물론이고 강간에 대해서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강간에 대해서 딸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누가 알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있고, 흑인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흑인들을 대표해서 더 열심히 더 잘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담감이 있고, 거리를 걸을 때면 쑥덕이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삶도 있다. 살면서 겪어 나가는 그 모든 고통 속에서-누군가는 너무 어릴 때 겪고 누군가는 결혼 후에 겪지만, 어쨌든 겪고야 만다- 그래도 살아가자고 몸부림치는 여성들이 가득한 가운데, 그 모두의 인생이 개개인별로 나를 후려치지만,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읽은 부분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었다.



조금 후라면 안그랬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어서 어리석은걸 뻔히 알면서도 남편을 응원하고 남편의 결정을 따라야했던 여자가 이제는 노년의 삶을 사는 과정이 나오는데, 그녀에게는 딸이 있고 손녀도 있다. 딸은 휴가철이면 엄마가 있는 곳에와 쉬면서 충전하는데, 딸이 결혼한다고 남편감을 데려왔을 때부터 여자는 사위에게 반했다. 내 딸은 운도 좋지, 어떻게 저런 남자를 찾았을까, 그러고보면 내 신랑이자 딸의 아버지와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지만, 무의식중에 그렇게 골랐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남편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성적 매력이 사위에게서 너무 뚝뚝 떨어진다. 게다가 제아내에게도 다정하니, 아아 내딸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사위를 좀 더 자주 보고 싶다, 사위가 나에게도 다정한 것 같다, 인사를 한다고 볼에 입을 맞출 때면 좀 오래 머무는 것 같은데, 그것은 내 착각인가? 혹시 사위도 날? 아아,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지, 그렇지만 만약에 사위가 나에게 섹스를 시도하면 나는 거절하지 않을거야, 하면서 욕망을 품고, 그런데 사위 역시 그런 장모를 눈치채고 그들의 비밀관계가 시작되는 거다. 오십대의 여자는 그렇게 딸의 남편과 육체적 관계를 맞으면서 아아, 이런 쾌락이 있어? 쾌락에 눈을 뜬다. 이 욕망과 이 쾌락을 자신의 남편에게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터라, 지금 느끼는 이것이 너무 좋고, 그래서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절할 수가 없고, 그렇게 일년여간 관계를 지속해오다가 갑자기 사위로부터 그 만남이 끊겼을 때 너무 서운하고,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도 사위를 보는 여자의 눈빛은 애틋하다.



이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러니까 윤리적이지 못해서 인상적이라는 게 아니라, 왜 하필, 그러니까 생애 처음 느끼는 강한 성적 욕망이 왜 사위에게 발현됐을까. 여자가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 순간이라도 '나는 나중에 사위랑 섹스하는 장모 되어야지' 생각한 것도 아닐텐데, 그런데 왜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남자라는 종에 대한 성적 욕망이 찾아오고, 그리고 왜 그것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가. 왜 쾌락을 주는가. 그녀가 살면서 느끼는 커다란 성적 쾌락이, 하필 왜 사위로부터 와야 했을까. 타인이, 제삼자가 그녀와 사위를 손가락질하기는 너무 쉽지만, 그러나 누구보다 내적 갈등을 크게 느낀건 여자 본인일 것이다. 이런 일이 나에게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전혀 없을 일이라고, 나라면 안그랬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여자라고 그래야지 마음 먹고 저지른 일이 아니고 자기 삶에 그런 일이 찾아올줄도 몰랐는데. 나는 그 점이 너무 안타까운거다. 왜 하필이면, 아니 그러니까 차라리 그런 성적 매력 찾아오지나 말지, 그런 쾌락 모르고 살게 그냥 두지, 왜 그걸 하필이면 ... 자기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과 욕망을 오십대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을 때, 그런데 그 상대가 내가 욕망하면 안되는 상대일 때, 이 당사자에게 그 욕망은 해소해도 좋은 것인가 아닌가. 왜 누군가에게 성적 욕망과 쾌락은 적당한 때에 적당한 상대에게 찾아들지 않는가 말이다. 여자가 남편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다면 남편으로부터 성적 쾌락을 느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텐데, 차라리 옆집 남자에게 쾌락을 느꼈다면 그것도 이보단 나았을텐데. 하필이면 딸의 신랑으로부터 왜...왜 생애 처음 느끼는 강한 욕망과 쾌락이 왜 하필, 지금, 이 때에, 이 사람에게...........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딸은 엄마에게 말한다. 내 신랑은 바람을 피울 사람이 아니야, 그 점이 너무 마음에 들어. 아아, 듣고 있는 엄마의 마음....환장하겠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누구든, 뜨겁게 사랑하는 것도 경험하고 그래서 뜨겁게 아픈 것도 경험하는 것이 경험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뜨거운 욕망이나 쾌락은 더 말해 뭐해. 그것도 모르고 사는 것보다 알고 사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한평생 살아봤자 길어야 100년인데, 100년 살고 스러질 인생, 모든 경험을 해보고 죽는게 낫지 않나. 그러니 여자가 여자 인생에서 성적 욕망과 성적 쾌락을 (어쩌면)뒤늦게나마 알게 된 것은, 이 여자 인생을 더 풍요롭게 했을 거라고, 더 만족감을 줬을 거라고, 그걸 알 수 있다니 좋았어, 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여자들의 삶을 응원한다. 더 경험해, 더 봐, 더 느껴, 더 다녀, 더 공부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취하도록 해, 라고 박수를 쳐주고 싶은데, 그런데 하필 왜 그 사람과.. 라고 되어버리니까 머릿속 회로가 꼬여버리고, 그걸 딸이 알게 된다면 딸 대체 어쩌란 말인가 싶고 이 개새끼 왜 장모 혼자 있을 때 문은 두드려서..너도 알고 그랬겠지 장모가 너를 보는 눈빛을... 정말로 갈망하는 눈동자의 갈망은 상대에게 읽히는 것인가요?


헝그리 아이즈..





아아 나는 너무 미치겠는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인데. 그러나 무릇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다. 부조리하고 불완전하며 매우 복잡한 존재. 오늘 여기에서 누군가의 은인이기도 한 사람이 내일 저기에서 누군가의 쌍놈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존재가 바로 인간이 아닌가. 나는 여자가 나쁘다고 함부로 손가락질을 할 수가 없다. 나는? 나는? 나는 뭐 그리 언제나 도덕적인 선택만 하고 살았는가. 게다가 내가 설사 그렇다해도 '나라면 안그래, 나라면 그러지 않겠어' 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네가 아니고 너도 내가 아닌 것을... 나는 나일뿐이야......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복잡한 마음이 되어서 미춰버릴 것 같다.


나 복잡하지 않게, 내게 다가올 성적 매력 터지는 인간은 부디 나 내적 갈등 오지게 오게 하지 말고..... 욕망과 윤리 앞에 피터지게 싸우게 하지마. ㅠㅠ 나는 나와 싸우는 거 진짜 너무 싫다. 내 욕망에 굴복할까봐 나는 너무 무섭다. 그보다 더 무서운건 욕망에 굴복하지 말고 정신 차리라고 내가 나를 괴롭히면서 고지식하고 꼿꼿하게 혼자 우는 것. 그런 시간 너무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다 증맬루... 인간은 왜 고민없이 살 수 없나요?



아침부터 한껏 복잡해진 마음이 되어버렸다.. 월요일 아침........ 인생.........



아, 여기에 여러 여자들의 얘기가 나오니까 내가 오지랖 부리면서(나는 슈퍼 오지라퍼, 라임 좋군) 끼어들고 싶은게 한두번이 아닌데, 특히나 난 진짜 보란듯이 잘 살거라고 작정한 여자가 자꾸 콘돔 안끼는 남자들과의 일회성 섹스로 임신하는 거 보고 대환장 해버리는데 특히나 세번째 남자에 대해서 그 씨발놈 강간범이라고 너무 말해주고 싶은데 그걸 못하니까 대환장하겠는 부분인거다. 니가 지금 매력 느껴서 따라간 그 남자, 그 남자 예전에 미성년자 강간했던 새끼야, 너무 말해주고 싶어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지만 내 아이의 아빠가 전에 강간범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편이 나은걸까.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내 애인이 혹은 내 남편이 예전에(혹은 지금도) 강간범이라는 걸 모르는채로 살고 있는걸까.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 책 읽으면서 계속 오지라퍼 되고 싶어서 대환장한다. 사위랑 사랑했던 여자도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었겠지. 그걸 가슴속에 품고있기만 하는거, 답답하지 않았을까. 흑흑 ㅠㅠ




나도 그렇다. 나도. 나도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어떤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가슴 안에 한이 되어 맺혀있다. 한... 가라가라갇혀 확갇혀 내안에갇혀 확갇혀. 이런 얘기를 누구보다 잘 들어줄 친구가 지금 내곁에 없고, 편지라도 한 통 띄우고 싶어지지만-안녕 친구야, 잘 지내니? 우리가 베스트 프렌드로 지내던 때가 그립구나, 너에겐 찐친이 있니? 네가 찐친, 베프, 절친이었을 때가 무척 그리워, 그렇지만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어쩌면 실례가 될 것 같아 욕망을 억누른다...-사람은 참아야할 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하는 법.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간짜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간짜장 맛집이 회사근처에 있다.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다. 증맬루..

계획적이고 고지식하고 꼿꼿한 사람이야. 융통성 따위가 너무 없지 ㅠㅠ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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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22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그 관계 헉! 했어요. 이 책에서 가장 쇼킹한 관계 중 하나. 애초부터 그 장모가 사위 보는 눈이 좀 끈적이는 것 같아서 어....어... 왜 이러지 싶었는데 기어이 그런 일이... ㅠㅠ 암튼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그만해 그 관계!‘ 하고 끼어들고 싶은 여자들 인생이 몇몇 있었어요. 특히 도미니크와 그 연인 관계. 가스라이팅에 데이트폭력에 하아..... 암튼 동성 사이에서도 이성애와 똑같이 데이트폭력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도 저는 괜찮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다락방 2021-03-22 09:4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잠자냥 님. 동성관계라고 해서 데이트 폭력이 없는 건 아닌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걸 보여준 것도 좋았어요. 그리고 그걸 눈치채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았고요. 게다가 그 과정에서 데이트폭력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도 알 수 있었어요.
저 장모와 사위 관계는 진짜 .. 저는 그렇게까지 될 줄 모르고 설마, 욕망하는군, 끈적거리는 군, 딸의 남편에게 왜 하필.. 했는데 사위가 찾아올 줄은.. 저건 진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뭔가 헉 스러운 관계인데 그렇다고 손가락질하는 게 답은 아닌 것 같고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ㅠㅠ

저는 사실 미성년자를 남자들이 강간하는 장면에서-그장면이 노골적으로 나온건 결코 아니지만- 그만읽고 싶어졌었어요 ㅠㅠ 너무 힘들어서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쓰면서 눈물나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그리고 그 주동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이 들어서도 다른 여자 꼬셔서 콘돔없이 섹스하며 지내는 거 보는 것도 너무 속이 터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렇지만 이게 바로 여자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었고 현실이기도 하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유부만두 2021-03-22 10:30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도미니크의 감금 시절 이야기에 엄청 슬프면서 또 납득되었어요. 앰마나 그 미국사람, 은 또 특별한 ‘여성‘이잖아요.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넓은 스펙트럼의 여성이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정세랑 생각이 조금 났어요?;;;;

다락방 2021-03-22 10:32   좋아요 0 | URL
같은책 읽었는제 유부만두님은 정세랑 생각하시고 저는 벨훅스와 록산 게이, 조남주 생각했네요. ㅎㅎ

잠자냥 2021-03-2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요즘 이런 글쓰기(?)라고 해야 하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처럼 여러 여자 인생 죽 나열해서 보여주는 게 저 외쿡에선 유행인지 최근 출간된 <밤불의 딸들>도 구성이 비슷해서 좀 깜놀했어요.

다락방 2021-03-22 09:45   좋아요 0 | URL
저는 여러 여자들의 인생 나열해서 보여주는게 개개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다르지만 또 비슷한 부분들도 있어서 82년생 김지영이 떠오르더라고요. 사실 저는 82년생 김지영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작품이 이 때에 써진 의미라는 건 분명히 존재하고, 아마도 그것이 베스트셀러로 만든거겠지요. 그런식으로 써내야만 전달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밤불의 딸들은 또 뭐지? 구경하러 가봐야겠어요. 산다는 건 아닙니다. 킁킁.

유부만두 2021-03-22 10:3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전 김지영은 너무 투박하게 엮었대서, 아니면 너무 공감할 게 뻔해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요.

다락방 2021-03-22 10:32   좋아요 0 | URL
김지영은 음, 저는 소설 너무 사랑하지만, 제가 사랑할 수 없는 소설이었어요. 이게 뭐가 소설이여, 르포구먼... 했달까요. 저는 이 책 역시 좀 르포 같은 느낌을 받아서 제가 문학에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좀 하게 되더라고요.

유부만두 2021-03-22 10:37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면이 있지요. 그런데 영문으론 좀 다른 느낌이 들 수도 있을지 몰라요. 행갈이나 의도적 소문자 사용, 챕터별 마침표는 하나만, 등으로 문장에 ‘리듬‘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연극대사 같기도, 시 같기도 했어요. 또 말의 화자가 왔다 갔다 하잖아요 (한 챕터 안에서도) 중간에 작가인지 무의식인지의 간섭 (어쩌면 독자 대신하는 오지라퍼?) 목소리도 있고요. 그래서 12이 아니라 그 곱절 만큼의 코러스 (애트우드의 오딧세우스 다시 쓴 소설에서도 강조한 열둘의 여성 코러스 개념) 같기도 했어요.

단발머리 2021-03-22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려고요. 저번주까지 저도 이 책이랑 같이 있었는데, 하루 연체하고 반납해버린 ㅠㅠㅠ
다락방님 리뷰 읽었더니 더 미룰 수가 없군요. 읽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쩝.

다락방 2021-03-22 10:11   좋아요 1 | URL
네네, 읽어보세요, 단발머리님. 읽고 나면 할 말도 많아질 것 같아요. 저는 뜬금없이 어째서인지 ‘피로 물든 방이 좋아!‘ 하였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아직도 절반이 남아 있어요. 다 읽고 나면 또 어떤 말들을 하고 싶어질지 모르겠어요.

유부만두 2021-03-22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저 이거 읽고 이어서 <피로 물든 방> 읽고 있어요.

다락방 2021-03-22 10:21   좋아요 0 | URL
아니, 이것은 무슨 우연의 일치란 말입니까! 피로 물든 방 읽고 어떤 느낌 받으실지 너무 궁금합니다. 후훗.

유부만두 2021-03-22 10:27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엄마의 ‘헝그리 아이즈‘에 헙,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정말 다양한 인물들, 여성들이 자기네 속내를 다 드러낸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며느리에게 주접떠는 시아버지 미러링일까, 생각도 들었고요. 흑인 여성 이야기에서 근친 범죄가 얼마나 흔한가요. 그리고 저도 그 슈퍼에서 일하는 싱글맘에게 이런 저런 참견 하면서 읽었어요. 끝까지 다 읽고나니 솔직한 인물들 이야기라기 보다는 작가의 손길이 많이 보였지만, 그리고 결국 다들 그럭저럭 성공했더라고요, 그러니 백인 문학 냄새도 나고... 이것도 백인문학 미러링일까요? ... 하지만 읽는 중엔 인물들에게 집중하면서 읽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계속 인종, 여성, 차별 주제에 고민하고요.

그런데 저 <피로 물든 방> 표제작 딱 하나 읽었는데요, 생각과는 다르게 찐하고 ‘변주‘의 부분이 많지 않아서 역시 기대와 예상은 빗나가는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유부만두 2021-03-22 10:25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여성의 이야기, 다시 쓰기, 뭐 이런 연상이 되었었나봐요.

다락방 2021-03-22 10:44   좋아요 1 | URL
저는 장모와 사위는 미러링 보다는 억눌린 욕망이 터져나온 걸로 읽긴 했는데요, 여전히 마음은 복잡합니다. 안그랬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하면서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뭐라 할 수 있을것인가 싶기도 하고.. 어휴 너무 복잡합니다 ㅠㅠ
인간도 복잡하고 인생도 복잡하고..

저는 <피로 물든 방>이 너무 좋았어요. 뭐랄까, 나를 구하러 오는 게 ‘말 탄 기사‘가 아니라는 데에서 너무 짜릿함이 확 와버리고 오히려 왕자보다 더 현실성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모른 채로 읽었다가 그런 결말을 마주치고 전율을 느꼈었어요.

바람돌이 2021-03-23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해외 토픽성 기사에 나왔었는데 똑같네요. 딸이 아기 낳으러 간 사이에 불륜 관계이던 장모와 사위가 도망갔대요. 친정아버지는 딸 아기 낳는거 태우고 병원에 있었고요. 딸과 아빠 뻥찜. 현실에서는 실제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나봐요. ^^ 아 그런데 이렇게 주변의 너무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하는 관계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다락방 2021-03-23 07:57   좋아요 0 | URL
저 진짜 저들의 관계를 책으로 읽는데 뭐라고 해야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당황스런 관계였어요. 그러면 안돼, 라고 하면서도 또 안되는거 뻔히 본인들도 알텐데 그러면서도 좋으니까 그랬겠지, 하다가 딸이 알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 싶다가, 와 너무 생각이 복잡해지더라고요. 사실 책속에서 장모와 사위가 막 제가 생각한것처럼 내적갈등 터지게 한 건 아닌것 같지만, 저는 저런 상황이 되면 내적갈등 오지게 오고 힘들어할 것이므로 역시 인간은 혼자인것이다..의 마인드로 살아가야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1-03-2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쓰신 제목처럼 정말 인간도 인생도 복잡하네요. ㅠㅠ

다락방 2021-03-30 17:4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감은빛님..

감은빛님 몸은 좀 많이 회복되셨나요? 운동 열심히 하세요!!
 
신계숙의 일단 하는 인생 - 요리도 인생도 하다 보니 되더라
신계숙 지음 / EBS BOOKS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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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러나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신계숙의 지금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있는 삶을 신계숙이 보여주고 있다.
직업,인기,실력,친구를 모두 가진 혼자서 당당한 비혼주의자 신계숙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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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에는 꿈을 꾸었다. 오랜만에 어마어마한 야한 꿈을 꾸었는데, 그러니까 꿈 속에서 나는 그의(?) 집에 가서 엎어치고 메치고 뒹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오래오래 침대에서 뒹굴었다면 좋았겠지만 나에게는 다른 일정이란 것이 있었고 그래서 그의 집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옷을 차려입고 나의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거울을 보았는데 나의 양쪽 콧구멍 속에 아주 커다란 코딱지들이 가득했다. 너무 가득해서 그냥 바깥에서도 다 보이는 정도였다. 와, 아니 이거 뭐야. 이 거대한 코딱지들이 내 코 안에 있었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거지? 아니 저 사람은 이걸 왜 나한테 말해주지도 않았지? 분명 이거 봤을텐데 말야. 아니.... 이걸 보면서도 나랑 물고 빨고 했다니, 헐, 이건 설마... 찐사랑?


나는 그렇게 꿈속에서 진실한 사랑, 찐사랑, 트루 럽을 경험하고 깼다.

















영국 여자 '애나'는 미국의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미국 남자 '제이콥'을 만나 연애하고 사랑하게 된다. 한창 사랑사랑하다가 영국 여자 애나는 비자 기간이 만료되어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렇게 돌아가야 할 날을 앞두고 그들은 헤어지기 싫어 너무 아쉬워한다.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되지만 그만큼의 시간조차도 떨어지는 걸 상상할 수가 없는 거다. 안되겠어, 도무지 떨어져서 못있겠어, 그냥 너랑 있을래, 해가지고는 비자 기한을 너며서도 사랑사랑 연애연애하면서 스윗스윗한 날들을 보내고,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낸 후에, 영국가서 할 일하고 다시 올게, 그 때 만나 하고는 간단 말야?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오려고 공항에 도착해서 제이콥에게 '공항에 도착했어 빨리와!' 했는데, 그러나 미국 공항에서는 애나에게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다. 안돼, 너 지난번에도 비자에 문제 있었는데 너를 어떻게 들여보내주니 안돼. 저기요, 이번 한 번만 들여보내 주세요, 남자친구  여기 있어요, 와있다고요, 하는데도 안돼, 해서 그녀는 결국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그렇게 공항에 꽃다발 들고 찾아온 제이콥과 만나지도 못하게 된다.


애나는 영국에서 제이콥은 미국에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원거리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원거리 연애는 결코 쉽지가 않다. 각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 돈을 벌고 있는데 한쪽이 전화하면 다른 한쪽이 전화를 받을 수 없고 다른 한쪽이 전화를 하면 또 이쪽이 너무 바쁘다. 이들이 서로에게 서로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사이에 그들은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돈을 벌고 친구를 사귀고 순간순간을 보내며 일상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그래서 보고 싶다. 연락이 닿고 애나가 제이콥에게 여기로 와줘, 하였고, 그렇게 제이콥은 시간을 내어 슝- 영국으로 날아간다. 오랜만에 애나를 보았다는 기쁨도 잠시, 애나의 친구들의 모임에 함께 갔는데, 애나에게는 이미 영국에서의 새로운 일상과 관계가 자리잡혀 있다. 내가 없는 사이 애나에게는 새로운 삶이 형성되었구나, 라는 서운함이 생긴다. 


너무 힘들면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 만날까? 라는 제안에 제이콥은 화를 낸다. 너 그러고 싶어? 그래서 그래? 아니라면 왜 그런 말을 해? 왜 그런 생각을 해? 아니야, 그런거 아니야, 그들은 며칠간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결국 그들은 자신이 일상을 사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연애를 한다. 사람은 외롭게는 살 수 없는 동물이구나,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먼 곳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구나. 저기에 저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내 안에 품고 있으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고 일상을 함께 보내고 섹스할 수 있는 거구나. 인간, 약한 존재야. 외로운 거 못견디는구나, 했는데,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그들에게는 서로가 아주 강한 존재로 가슴 안에 있다.


나무를 생각했다. 거대한 나무.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존재는 내 안에서 나무가 되어 자라는 것 같다.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거대한 나무기둥이 위로 올라가고 그 위에 잔가지들이 하나씩 하나씩 생겨 여러개를 이루고 그렇게 나무를 이루어서 그 사람이 내 안에 자리잡다가, 그 사랑이 끝나면 나무가 뽑혀 버리는 거다. 


아주 오래전에 예능에서 한 남자 연예인이 남자는 바람피워도 되지만 여자는 안되는 이유가 뭐냐면, 남자는 그저 몸만 주는 거지만, 여자는 마음을 줘야 몸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때 게스트들을 비롯하여 어린 나 역시도 오 그런거구나, 그래서 여자 바람이 더 무서운 거구나, 했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그 말이 얼마나 개소리인줄 알게 되었다. 남자라서 되고 여자라서 안되고 하는게 아니라, 사람은 저마다 다른 존재라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으며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인데, 그걸 여자라서 안되고 남자라서 된다고 퉁칠 수는 없는거다. 그저 여자의 바람을 막기 위한 거대한 메세지를 던지는 것일 뿐. 태양이 노래합니다. 나는 바람 펴도 너는 절대 피지마~

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다른 사랑을 만났을 때, 어떤 사람은 내 안에 자리 잡았던 큰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있다. 뿌리째 뽑는 과정은 아프고 그래서 울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뽑아내고 그 자리에 다시 또 새로운 나무를 심어 뿌리내리게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사람1, 사람2, 사람3을 만나 사랑하는 과정은 나무1, 나무2, 나무3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거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나의 나무를 심고 뿌리내리면, 그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는 일 자체를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안에 자란 이 나무를 나는 그대로 두겠다고, 나는 결코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 커다란 나무 옆에 작게 또다른 뿌리를 내리게 하는 수도 있다. 사람1, 사람2, 사람3을 만나도 사람1을 만났을 때 심어두었던 거대한 나무1이 뿌리를 내리고 잔가지까지 숱하게 뻗어나가게 두었으므로, 나무2는 옆에서 아무리 자라려고 해도 차마 제대로 자라나지를 못하는 거다. 햇빛도 못받고 뿌리 내릴 공간도 없다.


애나와 제이콥은 이렇게 큰 나무를 심어두고 뽑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안에 큰 축을 이루고 있어서 다른 것들이 들어와서도 그 나무를 뽑아낼 수가 없다. 제이콥은 다른 여자를 만나 사귀고 그 나무에 열심히 물을 줘보지만, 그 나무는 큰 나무 앞에 맥을 못춘다. 오랜만에 온 문자 메세지에 제이콥은 현재의 애인과 이별을 하고 다시 또, 애나에게로 간다. 애나는 그둘에게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일단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려 부부가 되고, 그렇게 미국으로 함께 가면 된다는 것. 그래서 제이콥과 애나는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부부가 되었다. 기뻤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6개월간 영국에서 부부로 살아야했고, 그들은 워낙에 뜨거웠던 사랑을 불태우면서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그리고 시간이 되어 미국으로 가기 위해 자기들이 위장 결혼이 아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이임을 판사 앞에 증명하려 한다. 이거봐, 우리가 이미 제출한 서류로도 알 수 있지만, 내가 제이콥 만났을 때부터 썼던 일기가 있어, 이걸 읽어보면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을거야. 판사는 너네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 너희들의 결혼이 진짜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너 전에 비자기한을 안지켰던 거, 이거 때문에 너네 결혼에 대해 내가 수락할 수가 없네, 비자 문제 먼저 해결이 되어야 할 것 같아, 라고 해서 그들이 미국으로 가는 길은 또 막힌다. 그렇게 거절 앞에 그들은 예전의 행복한 연인이 아니다. 짜증이 난다. 신경질이 난다. 화가 난다. 자꾸 신경질이 나서 서로에게 다정하게 대할 수가 없다. 이게 뭐야, 그들은 헤어진다. 제이콥은 다시 미국으로 가고 애나는 영국에서 살면서 커리어를 충실히 쌓는다. 그들은 이제 서로에게 거의 연락도 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삶을 산다. 각자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 애나는 부편집장으로 승진도 했다. 동거남으로부터 축하도 받았다. 동거남이 바라는대로 삶의 방식과 습관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동거남이 청혼하는 순간, 애나는 그것을 수락할 수 없다. 아무리 자라게 두려고 해도 큰 나무가 버티고 서있는 이상 새로 심은 나무는 자랄 수가 없다.



그참에 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비자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기쁜가? 아닌가? 애나는 이 사실을 제이콥에게 알린다. 제이콥 역시도 동거중이었는데, 하아- 동거녀와 이별을 하고 제이콥과 애나는 이제 미국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그들은 재회했고, 애나는 드디어, 미국의 제이콥의 집으로 들어온다. 그렇다면, 그들은 ... 그후에 영원히 행복했습니다, 가 될까? 그렇게 크게 버티던 나무는 여전히 건재할까? 오랜 시간 자꾸만 작은 나무들이 자라려고 하는 걸 보면서 큰 나무가 상하지는 않았을까? 그들은, 이제 행복할까? 이것이 해피엔딩일까? 



영화의 아주 많은 부분을 나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에 사는 남자와 영국에 사는 여자가 사랑하면, 그들의 연애는 이벤트가 된다. 그들이 매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에 일상은 다른 사람들과의 몫이다. 오랜만에 만난 제이콥이 아무리 애나를 사랑해도 애나의 일상으로 자신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직장에 가고 퇴근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잠자리에 드는 그 모든 순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실체는 없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연애를 하면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줄, 일상을 나눠줄 누군가를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원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애를 이벤트처럼 하고 싶은게 아니라, 일상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이벤트가 의미있는 것은 어쩌다 특별한 순간에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특별한 이벤트는 특별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므로, 연애가 이벤트가 되는 순간 일상이 공허해진다. 그래서 자꾸만 일상을 나누는 사람에게로 몸과 마음이 기울게 되는 것일테다. 그러나 제이콥과 애나는 이미 크게 자라게 둔 나무를 제 마음안에 그대로 두었으므로, 일상으로 만든 연애에 온 몸과 마음을 다 쏟을 수가 없었다. 기쁜 순간에 그리고 고독한 순간에 자꾸 서로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연애가 이벤트로 지속될 수 있으려면, 연애가 이벤트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이벤트 오케이지만 당신은 이벤트인 연애를 못견디겠으면, 그 연애는 지속될 수가 없다.

미국에서 영국으로 날아가는 것, 영국에서 미국으로 날아가는 것, 그것은 낭만적이고 열정이 필요한 일이다.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쏟아붓는 일은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살기는 힘든 법이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의 삶을 살면서, 여기에서 사랑하고 여기에서 쉬고 싶어한다. 어쩔 수 없다. 미국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날아가는 것이 괜찮은 사람은, 별로 없다.



고현정과 조인성이 나왔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에서는 조인성이 슬로베니아에 있었다. 조인성과 고현정은 화상통화로 늘 서로에게 안부를 전했고 그리워만 했다. 그러다 어느날, 고현정은 문득 깨닫는다. 어? 열네시간이면 갈 수 있는데, 내가 왜 못가고 있지? 그렇게 열네시간을 날아 조인성에게로 간다. 열네시간을 비워도 되는 삶이 고현정에게는 가능했다. 고현정은 프리랜서였으니 자신이 어느만큼의 시간을 빼고 날아갔다와도 자신이 조율해서 그 다음 업무들을 해나가면 되었다. 열네시간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체력과 비행기값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마음을 먹어야 그 행동이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이 마음을 먹어야, 계획을 짜야, 달력을 보고 계획을 세워야 가능해지는 것이라면, 그 사랑을 대체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사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답답한 지점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의 사랑이 너무 강렬해서 아아 안되겠어, 비자 기간이고 뭐고 너랑 함께 있을래, 하고 순간의 기쁨을 선택했더니 어떻게 됐다? 그 다음에 만남이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빌어도 우리 서로 사랑해 해봤자 비자 기한 못지킨 사람 되어 비자가 나오지 않는, 입국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 되었잖아. 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나로서는 정말이지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인거다. 지켜, 룰을 지켜라. 룰을 지켰다면 너네 사랑은 그 다음부터 순조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그렇게 만든게 누구다? 너네들이다. 내가 안갈래, 해도 너는 나에게 아니야, 이번에 네가 가야 우리가 그 다음에 또 잘 만나지, 하면서 보냈어야지. 나 안갈래, 아이참, 그래? 이러면서 물고 빨면 어떻게 된다? 그 다음 물고빨고가 안찾아온다, 이 밥통들아..... 아 너무 답답하기 짝이 없어. 왜 룰을 안지키지요? 룰 안지키고 왜 힘들어하지요? 그것은 너네 행동의 결과이다. 감당해라.  우리가 보는 방향이 한 방향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일치했다면 좋았을텐데. 일치하지도 않고 같은 방향을 보지도 않은 채로, 나는 나무만 키워댔고 그 나무를 뽑아내지도 못해서, 그래서 슬픈 한 마리의 사슴이 되어 이에저에 떠딜 닢다이.... (응?)




오늘 설거지를 하기 전에 친구들이 오픈해둔 클럽하우스에 들어갔다. 클럽하우스에 처음 들어가봤는데, 오, 이거 좋다. 그러니까 내가 산책할 때 라디오나 음악 대신 틀어두면 좋을 것 같다. 친구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거 들으면 좋을 것 같아! 문자로 나누는 대화와도 다르고 영상통화와도 다르고, 전화통화와도 좀 다른 느낌이었다. 연애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수단이 될 것 같았다. 그냥 틀어두고 각자의 삶을 산다면, 애나와 제이콥도 다른 나무를 심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다음에 내가 연애를 하게 된다면(응?) 콧구멍 청소도 열심히 하고(응?) 클럽하우스도 같이 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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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21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제목을 ‘거대 코딱지 여인’으로 명명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21 19:47   좋아요 0 | URL
코딱지로 찐사랑을 지우는 잔인한 댓글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3-21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연애를 하게 된다면”!!!!!!!!!!!!

다락방 2021-03-21 19:47   좋아요 0 | URL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클럽하우스 뭔가 연애에 맞춤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syo 2021-03-21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쪼록 코딱지로 찐사랑 확인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말도록 합시다.
그리고 세상에 진기한 사람 많아서, 코딱지는 한 바가지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지만 인중에는 잔털만 나도 진저리 치는 인간도 있을 수 있어서, 찐사랑은 그런 식으로 확인할 수가 없어 ㅋㅋㅋ

다락방 2021-03-21 19:49   좋아요 0 | URL
찐사랑은 확인해봐야지 마음 먹는다고 확인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 무의식중에 깨닫게 되는거지. 꿈속의 다락방은 코딱지가 있는 것도 몰랐단 말야. 그런데 코딱지에도 불구하고 39금 찍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꿈의 2탄을 꾸게 된다면 찐사랑인지 아닌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3-21 19:51   좋아요 0 | URL
알고보니 꿈속의 다락방한테 코딱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 남자가 39금을 찍은 거고, 코딱지가 없었다면 39금도 없었다 치면, 그런 남자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찐사랑 아닌가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21 19:58   좋아요 0 | URL
음..................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은 안하고 39금만 즐기다가 헤어지는 걸로 합시다. 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3-21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딱지가 찐사랑의 증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식탁에서 밥먹다가 뀌는 방귀, 같이 피자 먹고 콜라먹다가 나오는 트림... 하 그냥 짜증날뿐 견딜 뿐... 찐사랑은 안되던데요. ㅎㅎ

다락방 2021-03-22 08:35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의 댓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사랑하는 사이라도 방귀, 트림.. 다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아야할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인생은 어차피 혼자 가는 것...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울면서 눈물을 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