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처럼 받침이 없는 말 뒤에는 예요가 옵니다. 그러니까아! 응애예요! 가 맞는 말이 되겠습니다. 이에요는 받침이있는 말 뒤에 씁니다. 으아! 골이에요! 처럼 말이에요.
간혹 골이예요! 라고 쓰는 분이 계시기도 한데요. 예요는이에요가 줄어든 말이기 때문에 골이예요! 를 풀어서 쓰면골이이에요! 라는 이상한 형태가 되고야 맙니다. 이예요는없는 말이라 생각하시고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세요. 단,
"제 이름은 흥국이예요."는 허용합니다. 왜냐하면 ‘흥국+이예요‘가 아니라 ‘흥국이예요‘ 이기 때문입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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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 : 아름다움과 여성혐오 열다 페미니즘 총서 2
쉴라 제프리스 지음, 유혜담 옮김 / 열다북스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아주 오래전에 티비에서 <오프라 윈프리 쇼>를 보았다. 한 여성이 나와서 가슴 성형수술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가슴을 확대하는 수술을 해서 실리콘을 넣었는데, 그 후부터 엄청 우울했다는 거다. 기분이 쳐지고 너무 우울하고 어떻게도 회복이 안되고 그런데 건강상 이상은 없고 자살 충동이 일었다고. 오래전에 본거라 기억이 희미한데, 그러다 누군가가 '어쩌면 너 가슴에 실리콘을 넣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걸 뻬봐라' 라는 말을 듣고 다시 병원을 찾아가 가슴에 넣은 실리콘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몸 컨디션이 돌아왔고 우울증도 사라졌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도대체 왜그럴까 알 수 없어 답답했는데, 제거하고 나니 원인이 그것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거다. 가슴에 넣었던 실리콘을 제거한 지금은 살기가 훨씬 낫다고 했다. 이제 살만하다고.


아주 오래전이지만 이 영상을 보면서 사람 몸에 이물질이 끼어드는 건 그렇게나 나쁘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친구랑 얘기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쉴라 제프리스가 이에 대해 언급한 걸 읽는다.



여자들이 가슴 확대 수술을 받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기저에는 우울증이 있을 수 있다.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보형물 삽입 수술을 받은 여자들에게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자살률이 나타났다. 2003년 핀란드 연구에서는 이들의 자살률이 인구 전반과 비교할 때 3배 높았다. 2007년 미국 연구 역시 수술을 받은 여자가 수술을 받지 않은 경우에 비교해 자살 위험이 3배 높다는 결과를 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여자 수술자는 알코올 혹은 약물 사용으로 인한 사망 위험도 3배 높았다. 이들의 자살률이 왜 높은지는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여자들이 수술 전부터 이미 우울증을 겪고 있어 자살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하며, 이 경우 가슴 보형물 삽입은 우울증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p.347



쉴라 제프리스는 이 책 《코르셋》을 통해 가부장제와 포르노와 성매매가 여성들의 전반적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자신의 능력으로 온전하게 돈을 벌지 못했던 여자들은 돈 있는 남자들에게 선택 받아야 했고, 더 좋은 남자들에게 더 잘 선택받기 위해서 자신의 모습을 꾸며야 했다. 포르노를 즐겨 보면서 점점 더 포르노를 '살고' 싶었던 남자들은, 자신의 파트너에게 그걸 요구하고, 포르노 속 여자들처럼 꾸미는 것이 좋은 여자가 되는 길이라고 선전한다. 그렇게 미용업계와 패션업계는 여자를 종속적인 존재로 만들려고 했고, 그러나 그것이 굴욕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러나 이 꾸밈은 순전히 너네들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선택권이란 단어를 여자들에게 부여한다. 여자들은 그것이 마치 자신의 순수한 선택인것마냥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다. 이것은 순수하게 우리 자신의 의지야, 우리 자신의 선택이야! 이렇게 입는 건 우리가 좋아서야! 그렇게 활동하기에도 불편한 짧은 치마를, 가슴이 파인 옷을, 높은 힐을 선택한다. 


그러나 남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성매매가 없었다면, 포르노 영상이 없었다면, 우리의 의복과 화장은 어느만큼 달라졌을까. 패션업계와 광고업계에는 남성임을 인정받지 못해 위축되었던, 그래서 여성을 지나치게 혐오했던 자들이 침투해 여성혐오적인 의상들을 쏟아냈고, 그것은 아름다움이라 칭송 받는다. 여자들은 혐오의 대상인 동시에 학대당한다. 쉴라 제프리스가 이 책을 통해 한 얘기는 새로울 게 없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얘기이고 이미 거기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진작 깨달았던 이야기들이다.



내가 기뻐서? 내 선택, 내 자유라고?

만약 세상에 남자들이 없었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샬롯 퍼킨스 길먼'의 '허랜드'에 살았다면, 모든 주체가 여성이라면, 여성들이 정치를 하고 여성들이 돈을 벌고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하고, 여성들이 옷을 만든다면, 그래도 가슴 확대 수술을 하는 여자들이 있을까? 그래도 음모를 제거하는 여자들이 있을까? 마스카라를 칠하고 하이힐을 신고 짧은 치마를 입으면서 이렇게 입는건 내가 좋아서거든~ 하게 될까?



쉴라 제프리스를 싫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해되는 책이면서(그럴 수밖에 없겠지!)

동시에 이 책 한 권 전체에 밑줄을 긋고 싶었다.





페미니즘 학계 및 운동은 성애화를 심각한 사회적 해악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여자 어린이가 성인 여자에게 강요되는 것보다도 심각한 겉치장을 하는 식으로 성애화 관습이 지배되는 건 포르노 산업의 영향이라고 본다. 이런 관습은 여자 어린이를 남자의 성욕 대상으로 밀어 넣으며, ‘조기 성애화‘라는 결과를 낳는다. 이 주장의 골자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일부 우려스러운 측면도 있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애화만 분리해 우려를 표시하는 건 성인 여자가 성애화될 경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 P42

포르노는 남자 청소년이 여자 청소년에게 하는 성적 행동과 요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포르노의 섹스 역학은 보통 성폭력의 역학을 그대로 반영"하는데도, 로프노는 이들에게 성을 배우는 교과서였다. - P46

여자들은 성적 대상화를 행하는 남자들의 가치관을 체화하게 된다. 캐서린 매키넌은 이 과정을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자기 물건화thingified‘라고 부른다. - P72

바트키는 남자들이 여자를 몰래 훔쳐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꼭 휘파람 소리를 내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여자들이 "자신이 ‘베이글‘이니 ‘꿀벅지‘니 하는 대상으로 비치고 있음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게 되고, 남자들의 시각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기"때문이다. 남자들의 이런 행동 통제로 "남성 감식안에 평가당해온 여자들은 자신을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잘 평가하는 법을 베우게 된다." 여자들은 그렇게 자기 자신의 몸에서 소외된다. - P72

(하킴의 책을 언급하며)일단 여자는 전통적으로 결혼 생활과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득이하게 미용 관습에 임했고 특히나 지난 100년간은 확실히 그래왔는데도, 경제·사회·정치적으로 전혀 우위에 서지 못했다. 미용 관습은 힘 가진 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힘없는 자의 유일한 기댈 곳이며, 남자는 전혀 미용 관습을 행할 필요가 없다. 하킴은 "모두"에게(그렇지만 결국은 여자에게) "평생 매력 자본을 개발하고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이는 1930년대에 유행했던 한 노래를 연상시킨다. 1933년 영화 「로마 스캔들Roman Scandals」의 반페미니즘적 주제곡인 「(사랑받고 싶다면)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해라」말이다. 하킴이 던지는 메시지도 대체로 비슷하다. 하킴이 보기에 "매력 자본은 연애 및 결혼 시장에 있어 여자의 으뜸 패다." - P83

본서가 출간된 후 10년 동안 학계 및 대중 페미니즘 내에서 환영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선택권‘에 집착하는 리버럴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 활발히 이루어진 것이다. 나타샤 월터부터도 『살아있는 인형: 성차별의 귀환 Living Dolls: The Return of Sexism」이라는 새로운 책을 내, "내가 완전히 잘못 생각했다고 인정하려 한다" 라며 이전에 선택론 편에 섰던 것을 반성한다. 월터는 새롭게 쓴 책에서 자신의 딸을 포함한 여자 어린이들이 극도로 성애화된 문화에서 자라나며 여자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을 우려한다. 그에 따르면, "이런 문화는 선택과 힘 키우기 같은 언어를 끌어들임으로써 그 선택권이 얼마나 제한된것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교묘히 감춘다." - P84

프랑스 페미니즘 학자 꼴레트 기요맹은 여자는 ‘다르다‘라는 문화적 관념이 왜 문제인지 설명한다. 기요맹에 따르면, 여자는 다르다는 말은 여자는 ‘무엇‘과는 다르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고, 그 ‘무엇‘은 남자가 되기 마련이다. 반면 남자는 그 무엇과도 다르지 않고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다르다는 관점에서 이해되는 건 여자뿐이다. - P94

미용 관습은 여자의 순종을 표시한다. 여기에서 순종은 여자에게 성적으로 복무할 의지, 심지어 성적 복무를 위해 노력을 들일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여자가 단순히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굴종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게 미용 관습이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여자가 구현해내야 하는 성적 차이difference 가 바로 굴종deference인 것이다. - P98

여자들이 시행하고, 남자들이 그렇게 좋아죽는 미용 관습이란 정치적 피지배 계층의 행위다. 남성 지배 아래의 사도마조히즘적 로맨스에서 성관계는 여자의 복종과 남자의 지배를 바탕으로 구성되며 여기서 누군가는 여자 역할을 해야만 한다. - P99

미용 관습이 즐겁다고 말하는 여자도 있다는 사실은 미용 관습이 여성 종속에 기여한다는 것과 상충하지 않는다. 여자가 악조건을 어떻게든 좋게 좋게 생각해보려는 것으로 보는 게 맞을 수 있다. (…) 유해 관습 개념은 성인 여자와 여아에게 해를 입히는 문화적 강요가 존재한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기에, 미용 행위가 여자의 행위 주체성이냐 종속 행위냐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서 유용한 도구가 되리라 생각한다. 유해하다고 판명된 관습에 있어서 ‘선택권‘은 변명이 될 수 없다. - P104

남자가 얻는 유익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여자가 미용 관습을 통해 남자를 ‘보완complement‘하는 존재인 동시에 ‘보상compliment‘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여자는 ‘이성‘이면서 종속된 성으로서 남자를 ‘보완‘한다. 또 남자의 성적 흥분을 위해 언제든 치장할 태세가 되어 있으므로 남자에게 ‘보상‘이 된다. 따라서 남자는 남성성을 확인받을 수 있는 데다가, 여자가 노력을 들였다는 데에서 우쭐함도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여자가 하이힐을 신기라도 하면 남자 자신의 기쁨을 위해 여자가 고통을 견딘다는 뿌듯함도 있다. 미용 관습을 거부하는 여자들은 남자를 보완하지도, 남자의 보상이 되지도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며 이런 저항은 지배성 계급의 일원들, 즉 남자들에게 깊은 반감을 살 수 있다. - P114

페미니스트를 못 생기고 다리털이 북슬북슬한 애들, 브라나 태우는 남자 못 만나본 애들이라고 부르곤 하는 것처럼 미용 관습 거부는 분노와 조롱을 부른다. 서구의 미용 관습은 일종의 도덕 같은 성질을 띤다. 미용 관습을 따르지 않는 여자들에게는 ‘자기 관리‘가 안 된다,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 어설프다는 말이 따라다니고, 이들은 사회 구조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진다. - P115

젠더를 바꾼다는 생각 자체가 여성성과 남성성의 필요를 강화해 젠더를 본질화한다. - P143

남자로 살아온 경험은 이런 남자들의 ‘여성적‘ 행동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남자로 살아온 경험이 이들을 ‘여성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 P146

남성 지배 아래 여자의 역할은 한 종류가 아니다. 여자는 가사 노동, 육아 노동, 감정 노동, 성적 복무뿐 아니라 남자를 흥분시키는 여성성 수행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남자에게 복무한다. 크로스드레서는 이 중 ‘여성성‘만을 취사선택하려 하며 여자의 기쁨을 위해서이기는 커녕 그 반대에 가깝다. 자기는 평소처럼 집안일을 하는 동안 남편들은 몇 시간을 들여 몸치장한다는 것이 아내들의 불평이다. 러드는 아내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해서 들려준다.

"남편은 여성적이고 아름다워지고 싶다면서, 내가 집 안을 청소하는 동안 거울 앞에서 치장하죠. 남편은 미스 아메리카처럼 꾸미고 침실 화장대에서 일어서는데 저는 세제 광고에 나오는 여자처럼 보여요." - P173

마돈나를 옹호하는 많은 수의 팬들은 마돈나가 ‘여창‘ 컨셉이라는 공격에 반발하지만, 파글리아는 마돈나는 ‘여창‘ 컨셉이 맞으며 그 컨셉이 마돈나에게 힘을 부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창‘이 남자를 지배한다는 게 파글리아의 시각이다. 국제적인 성 산업의 굴레에서 고통받으며, 상당수가 탈출하고 싶어도 탈출할 수 없는 수백만 명의 여자들에겐 듣도 보도 못한 얘기일 것이다. - P197

남자들의 여자의 털을 탐탁지 않아 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털은 여자를 어른으로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많은 남자는 여자가 사춘기를 거치기전인 것처럼 보였으면 하며, 이에 따라 털이 없는 쪽을 선호한다. 남자는 포르노를 보며 털 없는 여자를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여자친구의 털을 역겹거나 부담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훈련된다. - P203

(소음순 수술을 받은)론다라는 가명의 여자는 "매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자존감 때문이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수술을 받는 건 결국 남자들을 위해서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 P210

게이 남자가 취하게 되는 ‘여성성‘이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게이들이 개발해낸 복종적 행동 양태일 뿐이다. 남성 지배 아래 복종하는 길은 여성성 하나뿐이기에, 그 행동에 여성적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게이 남자는 ‘진짜‘ 남성 대비 열등한 위치를 받아들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나, 이런 여성성은 실제 여자의 삶과는 큰 관련이 없다. 나는 게이 디자이너들이 여자에게 투사하는 여성성이란 바로 게이가 이런 식으로 디자인한 여성성의 이미지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이들은 여성성만 투사하지 않는다. 자신한테 있는 여성성에 대한 혐오와 공포도 투사한다. 자라나면서 남성적이지 않다고 괴롭힘과 공격을 받는 과정에서 배운 혐오와 공포다. 여성성은 게이들이 높이 평가하고 아끼는 특성이 아니다. 게이에게 여성성은 남성적인 남자를 욕망한다는 이유로 쫓겨나 맞이한 성 위계의 밑바닥을 상징한다. - P233

알렉산더 맥퀸은 여기서 본인의 ‘패션‘과 포르노가 맺는 밀접한 연관 관계를 숨기지도 않고 내비치고 있다. 모우어는 한 모델이 관통당한 듯한 연출에는 반감을 느낀 듯하지만, 컬렉션 전반에는 만족을 표하고 있다. "한 모델이 투우사의 장대 두 개에 궤뚫린 듯한 옷을 입고 나오는 잔인한 장면이 하나 있긴 했지만, 맥퀸의 특징인 훌륭한 검은 팬츠슈트를 상당수 선보여 컬렉션 전반적으로는 실제 옷에 관심이 집중되기를 바란 맥퀸의 목표가 달성되었다." 이 의상이 강인하고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자를 쵸현한다는 맥퀸의 철학에 어떻게 들어맞는지는 모를 일이다. 장대 두 개에 궤뚫리면 죽어있기 바쁘지 성적으로 어떻게 할 생각을 하긴 힘들다. 맥퀸은 1996년부터 3년 연속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로 선정되었으며, 2001년에는 올해의 세계 디자이너로 뽑히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CBE)을 받기도 했다. - P239

(디자이너)뮈글러는 "나는 힘을 가진 여자만 좋아한다. 난 여자를 세상의 정상으로 올려놓는다."라면서 작업을 통해 여자에게 권력을 부여하려 한다고 말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맥퀸과 유사한 정서로 보인다. 그러나 도미나트릭스로 성매매 되는 여자가 실제 세상에서 권력을 쥐고 있다고 믿지 않고서야 인정하기 힘든 생각이다. 정말 권력을 쥐려는 여자들은 경제적 생존에 급급해 업소에서 남자의 체액을 받아내는 대신 언론계나 IT분야 가은 산업계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뮈글러는 자신의 모델들이 "자신의 외모와 인생을 완벽히 통제하는 정복자"라며 "자유롭고, 자신 넘치며, 상황을 즐긴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검은 라텍스 속에 갇혀 곤충 탈을 쓴 여자들은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 P243

성적 차이가 여자의 몸에 새겨져 있지 않다면(예를 들어 옷이 젠더화 되어 있지 안다면)남자들은 길거리나 직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성적 지위를 판명하기 힘들 것이다. 남자들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여자가 종속을 수행하는 데서 느끼는 성적 쾌락을 단념해야만 할 것이다. - P256

여자들은 화장하면 힘이 솟는 느낌이라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화장이라는 가면을 쓰지 않았을 때는 힘을 뺏기는 느낌이라는 뜻이 된다. - P272

(발 페티시스트) 로시는 ‘무성적 신발‘을 설명하며 철저한 증오심을 숨기지 않는데, ‘실용적인 신발‘에 대한 남성 지배 문화적 혐오가 여자를 보행 장애로 밀어넣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무성적 신발‘이란 "‘실용적‘인 신발, ‘컴포트 화‘, ‘기능성‘ 신발 등으로 알려져 있고, 업계 용어로는 ‘노처녀용 런닝화‘로 불린다"라는 게 로시의 묘사다. - P311

(로시의)이 책에서 ‘무성적 신발‘을 신은 인물로 거론된 건 엘리너 루스벨트 하나다. 미국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과 결혼했던 엘리너 루스벨트는 강력한 페미니스트로, 1948년 채택된 UN 세계인권선언에 여성 평등을 포함하는 등 여러 가지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다른 여자와 장기적인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편안함을 중요시해 기능성 신발 제작사에 특별 주문한 신발을 신었다. 루스벨트는 훌륭한 여성 롤모델이었고, 실용적인 신발을 아꼈던 건 그에게 본받을 만한 점 중 하나다. 할 일이 많았던 그는 고작 남자들에게 성적 흥분을 제공하는 데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 P313

로시는 하이힐로 인한 부상이 "현실적으로 여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기분 좋은 상처나 성관계 중 생긴 흉터에 가깝게 느껴질 것"이라고 한다. ‘여자들의 관점‘에서, 여자들이 남자들과 본인의 성적 만족을 위해 기꺼이 발 변형을 감수한다는 점을 알아내다니 실로 대단한 사나이가 아닐까 싶다. - P313

여성성기훼손처럼 아이들에게 시행되는 관습은 동의를 얻었다고 볼 수 없음이 분명하다. 6~7세 여자 어린이는 달리 갈 데도 없다. 신체 훼손을 강요하는 자들에게 의존해서 살아가야 한다. - P330

포르노 관습은 그 자체로도 성폭력을 구성한다. 모든 여자의 지위에 타격을 입히고, 여남 간 관계가 평등할 수 없도록 막는 것도 포르노의 또 다른 폐해다. 다시 미용 관습으로 돌아가자면 포르노 산업과 국제적인 성 산업 전반은 동시대 문화가 강요하는 여자의 얼굴, 가슴, 몸, 외음부, 복장, 신발의 조건을 규정한다. 이는 여자의 정신 및 육체 건강과 평등 가능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여성 평등을 중시하는 국가라면 여자를 상업적으러 성착취하는 포르노와 성매매 산업을 규제하고 철폐 노력을 펴기로 선택할 수 있다.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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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4-1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체에 밑줄!!! 동감입니다.

다락방 2021-04-13 17:04   좋아요 0 | URL
저에겐 쉴라 제프리스의 책이 두 권 더 있답니다? 후훗.
 

나의 조카 타미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학급에서 반장을 맡고 있는데 야무지기가 보통이 아니다. 책 읽기를 즐겨하고 유튭에서는 공부하는 영상을 찾아 즐겨본다.


토요일에는 타미를 만났다. 타미가 잠실 교보문고를 가고싶다 해서 나와 둘이 가기로 했다. 나로서도 설레는 일이었다. 비록 타미가 가고 싶은 건 책 때문이 아니라 학용품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나는 이 아이와의 데이트를 몹시 기다려왔고 그래서 너무 기뻤다. 남동생 집에서 만난 터라 지하철 역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는데, 택시에 타고 나서는 나에게 '이모가 좋아하는 팝송 하나 알려줘, 나도 하나 알려줄게' 하면서 음악 앱에서 팝송을 찾아 작게 들려준다. 나는 아이참 뭘 알려줄까, 하다가 아아, 조카야, 늙은 이모는 일단 이걸 들려줄게, <you call it love>를 들려줬다. 전주가 좋은 노래인데 전주 왜이렇게 기냐고 하더니 노래가 나오니까 '어? 이거 들어봤어!' 하더라. 이모 목말라, 해서는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편의점에 들러 물을 한 병 샀다. 지하철 타기 전에 마시고 타자, 지하철 안에서는 마실 수 없어, 하고는 아이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2분후에 지하철이 들어온다 해서 저거 탈 수 있을까? 하고는 무사히 탔는데,


그 다음 2호선으로 갈아탈 건대입구 역에서 계단을 올라 열차 타는 곳으로 가보니 열차의 문이 열려 있었다. 출입문이 닫힐 거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그 다음 열차도 바로 올 거라고 되어있었기에 '다음거 타자' 라고 생각하긴 하였지만 열려있던 출입문이 좀처럼 닫히질 않아 '탈까?'하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야 말았고, 타미가 "이모, 타?" 하길래, 그래 타자, 하였는데 타미가 안전하게 타고 내가 들어가는 순간, 급하게 간다고 서둘렀는데도, 문이 닫힌다는 소리가 나왔고 나는 문에 끼어버렸다.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나는 금세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아이쿠, 하고는 몸을 뒤로 뺐을텐데, 지하철 안에 타미가 혼자 있었고, 타미의 폰은 공교롭게도 내게 있었다. 계속 아이가 들고 있었는데 중간에 뭣 때문에 이모 잠깐만 들어줘봐, 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거다. 내가 만약 몸을 뒤로 빼면, 내가 기어코 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나는 아이와 헤어질 것이었고, 아이는 폰도 없는채로 당황할 것이었다. 나는 놀랐고, 무서웠고,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두 팔로 출입문을 양쪽으로 밀어댔다. 아마도 기관사 님이 보았는지 문을 다시 열어주셨고, 그런 나를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가 지하철 안에서 아이쿠, 놀라셨고, 나는 문이 열려서 타미 옆에 갈 수 있었다. 아이는 내가 문에 끼어서 놀란 것 같았는데, 나는 문에 끼어서 놀란 게 아니라, 아이를 내 눈앞에서 놓칠까봐 놀랐다. 나는 열차 안에 타서는 아이를 잡고, 괜찮은데 너 놓칠까봐 너 잃어버릴까봐 겁났어, 했다. 그렇게 무사히 우리는 잠실에 도착했고 서점에 가 신나게 쇼핑을 했지만, 내 마음엔 죄책감이 가득했다. 내가 왜그랬을까, 다음 열차 기다릴걸, 거기서 아이 놓치면 어쩔 뻔했어, 핸드폰도 내게 있었는데, 그럼 어떡하라고, 하면서 내가 나를 자꾸 원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걸 아이 부모에게 말할 순 없었다. 너무 걱정할까봐. 그렇다고 혼자만 갖고 있을 수도 없었다.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고 무엇보다 너무 무서웠다.



집에 돌아왔고 여동생 가족은 돌아갔고, 나는 엄마한테 이 일을 말했다. 엄마는 나를 원망하지 않으셨는데 나는 자꾸 너무 무서웠다. 미쳤어, 왜그랬어, 다음 열차 타지, 그거 고작 몇 분 기다린다고, 하면서. 너무 괴로워서 잠을 자려고 해도 뒤척이게 되었고, 자다가도 깨서 자꾸 무서웠다. 미쳤어 진짜, 왜그랬어, 놓쳤으면 어쩔뻔했어.

너무 괴롭고 이 생각이 주말 내내 나를 지배해서, 나는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똑똑한 아이야, 어떻게든 나랑 혹은 제부모랑 연결되었을거야, 미아가 되진 않았을거야, 똑똑한 아이니까 해결 방법을 찾았을 거야, 라고. 내가 지나치게 걱정하는 거야, 너무 앞서서 걱정하는 거야, 결국 놓치지 않았잖아, 그러니 됐어, 라고 내가 나를 아무리 타일러도 그 무서움과 죄책감이 지워지질 않는다.

아이에게는 이 일이 어떻게 기억될까?


오늘 아침에도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걸으면서 내 한손으로 양쪽 가슴 위를 자꾸 쓰다듬었다. 괜찮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이제 그만 생각해도 된다고 내가 나에게 말했지만, 그러나 자꾸 그 말을 한다는 건 자꾸 그걸 생각한다는 거였다. 하아, 나 잊지 못할 상처가 하나 생긴 것 같다, 고 생각했다. 이거 어떻게 잊어, 자꾸 생각날 것 같아, 나 이제 어떡하지. 결국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게끔 내가 했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과 두려움이 나를 너무 괴롭게한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핸드폰이라도 아이 손에 쥐어줬어야 하는데, 대체 핸드폰까지 내가 다 가지고 왜 닫히려는 열차안에 타려고 한거야. 너무 무섭다. 시간이 지나면 이 일을 잊을 수 있게 될까? 나는 평생을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진 않을까?




잠실에서 돌아가는 길에는 버스를 탔다. 아이와 어쩌다가 스토커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모, 조심해. 스토커가 따라오지 않게 조심해야 해, 하더니 이모, 호신용품 하나 가지고 다니는 게 어때? 하더니 갑자기 폰을 꺼내 검색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는 유튭에서 검색을 한다. 일전에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우리들은 검색을 네이버로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로 검색한다는 말을 듣고 뭐라고? 어떻게 거기서 검색을 해? 하였는데, 이 아이가 유튭에다 호신용품 이라고 검색하고 있었고, 그러자 놀랍게도 호신용품 사용 후기 영상이 검색되었다. 자, 이모 이거 봐봐. 하면서 우리는 버스 안에서 영상을 보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게 그 짧은 영상을 보면서 "이모 호루라기는 있는데" 하였고, 아이는 여기서 하나 뭐 사서 가지고 다녀, 하였다. 응, 이거 첫번째 꺼 알아보고 사서 가지고 다녀야겠다, 라고 말했다.



아이는 플래너와 필통을 사고 싶어했는데 마음에 드는 필통이 없어 사지 못하고 플래너만 사가지고 왔다. 나는 얼마전에 받은 여우필통을 아이에게 줬다. 이거 써, 이모는 이거 너무 커서 못쓰겠어, 하고. 나도 마침 교보간 김에 작은 필통을 하나 사려고 했는데, 가장 저렴한게 5천원 이더라. 그 날 내가 주문한 책들도 왔고, 책 사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고 마치 재벌인양 돈 써버리는 나이지만, 어째서 필통에 5천원을 쓰지 못하겠는지, 결국 나도 필통을 사지 못하였고, 큰 여우 필통은 조카에게 줘버리고 나니 내게 필통이 없어. 안입는 옷을 잘라 요케요케 주머니 만들어 가지고 다닐까, 하다가 그냥 타이레놀 박스를 필통으로 대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요렇게 하면 가방 옆주머니에도 잘 들어가서 꺼내 쓰기 용이하다.



그래, 이번 삶에서 나의 필통은 너다!!




그리고 책들이 왔다. 커피도 왔는데 사진에선 빠졌네.




저거 한 손에 들고 사진 찍느라 손목 나가는 줄 알았네...





아이와 보낸 주말에 대해 생각했다. 이래저래 체력이 딸려서 아이들이 돌아가고난 뒤에는 젖은 휴지처럼 널브러져 있었지만, 토요일 밤에는 혼자서 술을 잔뜩 마셨지만, 아이를 잃을 뻔했다는 두려움과 아이가 너무나 좋은 친구라는 행복감이 번갈아 요동쳤다.



그동안 거리두기 때문에 아이들은 제삼촌의 아이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아가 조카가 백일이 된 기념으로 잠깐 얼굴이라도 보자 하여 삼촌집에서 만난건데, 첫째조카와 둘째조카는 이렇게 어린 아이를 제 친척으로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 마냥 신기해했고 아가 옆에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나는 너무 행복했다. 조카 하나하나 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이런 존재들이 내게 온게 마냥 좋기만한데, 그런데 이 아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보고 사랑스러워하고 웃는 걸 보니 막 행복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거다. 아, 너무 행복하네, 온 식구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순간에 대해 자꾸 얘기했다. 그러다가 두려움이 왈칵 차올라 괴로웠고 그러다가 사랑스러운 마음에 또 행복감이 차오르고. 나는 혼자서 지옥과 천국을 수시로 오갔다.



아이가 나와 서점에 가고 싶어하는 일, 플래너와 필통을 보면서 의견을 묻는 일들이 좋았다. 사고 싶었던 플래너에 영어 구절이 써져 있었는데 각자 다른 디자인, 다른 문구였다. 간단한 문장들이었는데, 아이는 내게 한 권을 들고 뜻을 물었다.


- 이모, 이거 무슨 뜻이야?

- 이크, 오늘이 시험 보는 날이었어?

- 이거는?

- 비온 뒤에 해가 뜬다

- 이거는?

- 책 안에서 네 호기심을 풀어낼 수 있다 (기억이 정확히 안남)


막 이런거 얘기하다가 그 중 한 권을 집더니, 결국은 아예 다른 디자인의 플래너를 선택했다.



아이와 함께 쇼핑을 하고, 아이가 호신용품을 검색해서 내게 보여주는 일들이 그 하루를 마무리 하는 내내 자꾸 떠올랐다. 나의 가장 어린 친구, 라고 그 날 내내 생각했다. 아이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친구들과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학교 급식 너무 맛있는데, 어느 날은 어떤 일 때문에 급식을 다 먹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이모, 이런 감정은 이상한 감정 아니야? 라며 어떤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 들려주었다. 나의 가장 어린 친구. 어떻게 나한테 이런 친구가 있을까.



어릴 때부터 베스트 프렌드, 단짝 친구라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단짝 친구로 생각한다고 해서 네가 나를 단짝 친구로 생각할 거라는 확신이 내겐 없었고, 그래서 '네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야?' 라고 물으면 답을 하는게 그렇게나 어려웠더랬다. 어릴 적에, 나는 그것이 서로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그렇다면 일치할 것인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고, 그것은 내게 베프라는 것에 대해 늘 의심하게 만들었다. 얘는 나의 베프인가? 그냥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낼 뿐인 친구라고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얘는 나의 절친일까? 그냥 요즘 자주 만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로 고민하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어른이 되고 나서는 베프라는 개념에 대해 집착하지 않게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인 것이고 결국은 외로운 존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는 오늘 좋았다가 내일 나빠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 네가 나를 좋아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내가 베프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를 베프라고 생각할 거라고 확신한 적이 없는 채로 살았다가, 어느 연애에서는 그걸 확신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 이 연애에 있어서 나는 이 사람의 연인이며 동시에 가장 좋은 친구가 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던 적이, 내게 있었다. 나에게도 역시 그 사람이 가장 좋은 친구였다. 그 때만큼은 만약 누군가 내게 '네 가장 좋은 친구가 누구냐, 네 베프가 누구냐, 네 절친이 누구냐' 묻는다면, 고민 없이 그 사람을 얘기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나눴지만 동시에 우정도 나누고 있다고, 그 당시에 생각했다. 내가 말하는 일들을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내가 어떤 일에 대해 얘기하면 그걸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공감해주는 일을 그 친구가 했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어떤 일에 대해 그리고 어떤 감정에 대해 말한다면, 그 사람이 가장 잘 들어주고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와 헤어진 건 연인과의 헤어짐이고 이별이라 힘들었지만, 가장 좋은 친구를 잃었다는 것 때문에 슬픔이 더 컸다. 지금도 여전히, 어떤 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제일 잘 들어줄텐데'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그렇게 또 나는 베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절친이나 찐친에 대해 답할 수 없는 채로, 그러나 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 좋은 친구들이 많고, 내가 굳이 내 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내 옆에 있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며 그런 대로 지내고 있는데,



조카는, 나의 가장 어린 친구라는 생각이 지난 주말에 들었던 거다. 나랑 대화를 나누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같이 쇼핑을 하고 호신용품을 검색해주는, 나의 가장 어린 친구. 내가 너를 잃을 뻔 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아찔하다. 네가 어리기 때문에 더 그래. 네가 어리니까 이모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이모가 부주의했어. 앞으로 살면서 이런 일들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일게.



어떻게 이런 복이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런 존재들이 내게 있을까. 나는 아마도 전생에 지구를 구한 게 아닐까. 나라를 구한 정도로는 얻을 수 없는 큰 복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큰 복이 되어주어야 할텐데. 어깨가 참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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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4-12 10: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과 비슷한 상황에서 아직 자기 핸드폰 없는 아이를 잃어버렸던 사람은 그 날의 공포와 안도가 동시에 떠오르네요. 전 돌아보니 아이가 없었더랬습니다. 두 군데 사무소 문을 미친듯 열어젖히고 역마다 방송하고 ㅠㅠㅠㅠ
아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같이 있지요.
쿵쾅거리는 마음 조금 진정되셨기를 바래요. 저도 오래가더이다...... 토닥토닥!!!

다락방 2021-04-12 11:53   좋아요 2 | URL
아이고 단발머리님 ㅠㅠ 정말 무섭고 암담하셨겠어요. 그리고 지금 같이 있다니 너무 다행이고요. 시간이 한참 지나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할 것 같아요. 휴..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일인것 같아요. 주의를 기울이고 기울여도 늘 모자란 것 같고 부족한 것 같고 그렇습니다. 잘하려고 애쓰고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앗차 하는 순간에 두려움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안도할 수 있어서 그래서 이렇게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단발머리님. ㅠㅠ

새파랑 2021-04-12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필통은 타이레놀로 되는군요 ㅎㅎ 마음을 터놓을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건 정말 행복인것 같아요. 멋진 조카 친구가 있으신게 부럽습니다^^

다락방 2021-04-12 11:53   좋아요 2 | URL
필통 사는 돈 왜이렇게 아까운지 못사겠어요. 제가 1,500원 정도면 살 생각 있었는데요 5천원은 너무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21-04-12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부럽다...타미가....타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페이퍼네요.

다락방 2021-04-13 09:03   좋아요 1 | URL
흑... 저는 못난 이모일 뿐인걸요. 흑흑 ㅠㅠ
그렇지만 말씀 감사드려요 ㅠㅠㅠ

psyche 2021-04-13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미에 대한 다락방님의 사랑이 막 느껴져요. 그런 사랑을 주는 다락방님도 사랑스럽고 그런 사랑을 받는 타미도 부러워요!

다락방 2021-04-13 14:47   좋아요 1 | URL
프시케님, 타미도 그렇고 조카2도, 아가 조카도 다 너무 사랑스러워요. 너무 사랑해요. 이런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고마운 존재들이에요. 흑흑 ㅠㅠ

난티나무 2021-04-13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쩜, 너무 부러운 다락방님과 작은 친구님!!!!! 저는 조카들 늠 멀어 같이 사는 아이들과 친구하고(해야) 싶은데 왤케 어렵나요. 흑흑.
조카와 다닐 때를 대비해서 지하철에서 헤어지게 될 때, 길에서 헤어지게 될 때를 시뮬레이션 해보시고 약속을 해두시면 어떨까요. 저도 아이들 어릴 때부터 혹 엄마 아빠를 잃어버렸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늘 말했거든요. 한국 지하철도 시뮬 했었어요.^^

다락방 2021-04-13 17:25   좋아요 1 | URL
난티나무님 저도 그 생각했어요.
시뮬레이션이요. 다음에 조카 만나면, 만약 우리가 지하철에서 헤어지게 되면 이렇게 하자, 이걸 지켜라, 라고 꼭 말해둬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라요. 다시 생각해도 너무 아찔하고요 제가 너무 바보같아서 미치겠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꼭 약속을 해두도록 할게요. 감사해요!! ㅠㅠ

나와같다면 2021-04-13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미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하고. 스스로 해결해 나갈 힘을 가지고 있을거예요.

그 기억으로 부터 자유로워지시기를 ..

다락방 2021-04-14 07:59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자꾸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 아이는 강하고 지혜롭다,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요.

말씀 감사해요, 나와같다면 님.
:)

붕붕툐툐 2021-04-23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글을 왜 뒤늦게 읽었을까요? 지금은 좀 괜찮아지셨나요? 다락방님은 가족들에게 속 마음 표현을 잘 하시는 거 같아서-글에서는 물론이구요!-그게 참 멋있고 부러워요!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일을 하는 방식,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의 자세들은 요가를 할 때 여실히 드러난다. 내가 억지힘을 써서라도 완성도를 높이려 한다는 것 말고 또 깨달은 것은 약하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작은 힘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데 센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힘을 잘 쓰지 못했다.
나는 강해지고 싶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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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날 막을 수 없어!! 크릉-

기분 너무 꿀꿀한데 책 열한권이나 와도 나아지질 않는구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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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4-09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 저거는 중고책인가요? 유독 낡아 보이네요.

다락방 2021-04-09 15:12   좋아요 1 | URL
이중에서 아홉권이 중고책인데 [남자] 상태 ‘상‘이라고 해서 산건데 너무 낡아서 종이 커버는 아예 버렸어요. ㅠㅠ 너무해요 힝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21-04-09 15:14   좋아요 2 | URL
가끔 <상>이라고 해놓고 <하>가 올때도 있어요.... ㅠㅠ
암튼 전 <중>도 좋은데 제발 중고책에 자기 이름 쓰지 말았으면.. 특히 책 위나, 아래, 옆에 매직으로...

다락방 2021-04-09 15:15   좋아요 1 | URL
이거 책 대여점에서 대여하던 책인것 같아요. 말다했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21-04-09 15:22   좋아요 1 | URL
헉-스. 전 출판사 도장 찍힌 책 받은 적 있어요. 알라딘에서는 출판사에서 증정한 책 안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책이 온 것인지...? (문제의 책은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현대문학 도장이 쾅- 찍혀있었다능. 그래서 그 책은 다 읽고 팔지도 못하고 갖고 있다능. 굳이 갖고 있고 싶진 않은데...음 ㅋㅋㅋㅋ)

다락방 2021-04-09 15:28   좋아요 4 | URL
저는 나중에 밑줄긋거나 낡은 책들은 개인 판매로 100원-1,000 원에 내놓으려고요. 그냥 준다고 생각하면서요. 택배비만 상대가 부담하게끔요.

아 낡은 책 와서 너무 짜증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른 읽고 팔아버려야지 진짜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언제 읽게 될까요? 저 지금 적립금 2만원 들어와서 7만원어치 책 사려고 장바구니 요케요케 넣었다 뺐다 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4-09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탑이 너무 멋지네요^^ 다 어려워 보입니다 ㅎㅎ 전 예전에 중고로 ‘상‘ ‘하‘권 샀는데, 종이커버만 ‘상‘ ‘하‘권이고 실제 책은 둘다 상권이었다는...

다락방 2021-04-09 17:22   좋아요 2 | URL
아니 무슨 그런 일이 다있죠? 너무 당황하셨겠어요 ㅠㅠ

요 네스뵈 책들은 책장 술렁술렁 넘어가는 재미진 책들입니다. 으하하핫. 독서가 잘 안될때 다시 열심히 읽을 수 있는 책들이죠. 히히.

얄라알라 2021-04-09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못생긴 여자의.역사 몇년전 리뷰쓰려고 읽고 사진만 찍어두었는데 다락방님 덕분에 다시 찾아보고싶어지네요. 꿀꿀 기분 휙 날리시고 빠샤!아싸!하시어요^^

다락방 2021-04-09 17:22   좋아요 2 | URL
전 이렇게 잔뜩 사두고 또 언제 읽게될지 모르겠어요. 에휴..
그러면서 방금전 75,000원어치의 책을 샀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붕붕툐툐 2021-04-0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20권이 왔음 다락방님 기분이 좀 나아졌으려나. 또 책을 사셨다니 곧 좋아지실 거라 믿슙니다!!ㅎㅎ

다락방 2021-04-12 08:58   좋아요 1 | URL
어휴 이제 진짜 책 그만사야지, 너무 안읽고 사기만 해서 책이 너무 쌓였어요. 주말에 책장과 책상에 막 쌓인 책들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지더라고요. 이제 백권 읽은 후에 사야겠어요. 어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