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이놈의 알라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빠서 요며칠 잘 못들어오다가 오늘 들어왔는데, 아니, 친애하는 어느 알라디너의 서재에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된 것.
















너무 좋다고 하셔서 읽어보고 싶은데, 원서로는 감히 도전을 못하겠는 거다. 제발 번역본 있어라, 있어라, 기도하면서 검색했는데, 네, 번역본이 있는겁니다. 나이쓰!
















좀 비싸지만 뭔가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장바구니에 쑝 담았는데, 이거 번역본 사면서 원본하고 한 줄씩 보면 세상 천재가 되어있지 않을까? 막 이런 생각이 들어서 원서도 걍 넣어버림.


그냥.. 원서 '모으는' 취미가 있는 사람입니다.




- 점심을 언제나, 늘 배불리 먹는다. 1인 2메뉴를 먹는 날도 적지 않다. 사실, 대부분이다.

지난주 금요일에는(목요일이었나..) 라볶이에 김치볶음밥을 시켜놓고 먹었다. 친구들한테 나 라볶이랑 김치볶음밥 먹어~ 라고 얘기하고 다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신입남직원1을 만났다.


회사에 얼마전에 신입 직원이 몇명 들어왔다.


신입여직원1, 2 신입남직원 1,2 이렇게 총 네 명인데, 신입여직원2 는 업무상 별로 마주칠 일이 없고 신입남직원2 도 그러한데 영 인사성이 없다. 그런데 신입여직원1과 신입남직원1은 인사도 잘하고 일도 막 열심히 하려고 해서 참 예뻐라 하는 직원이다. 특히 신입남직원1은 참 .. 여러가지로 괜찮단 말야? 왜냐하면 견과류가 들어간 맛있는 양갱을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게 아니고, 그 직원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딱 만난거다.



- 점심 먹었어요?

- 네

- 뭐 먹었어요?

- 칼국수 먹었습니다. 

- 아 거기 그 건물에 있는 거요?

- 네. 차장님도 드셨어요?

- 네 나는 지금 먹고 들어가는 길이에요.

- 뭐 드셨습니까?


여기서 나는 갈등한다. 왜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찰나의 시간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김치볶음밥과 라볶이를 먹었다고 할까, 하나만 말할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머리 터지게 고민하다가, 결국 대답한다.



- 김치볶음밥이요.

- 아 그러셨어요? 저 맛있는 식당 추천해주세요.

- 아, 네 생각해보고 추천해줄게요.


라고서 각자의 층에 내려 헤어졌는데, 그 뒤로 나는 내게 묻는다.


왜,왜,왜,왜,왜... 왜,왜,왜,왜,

어째서 두 메뉴 다 말하지 않고 하나만 말한거야? 왜?

동생들한테는 두 개 다 말하잖아. 그래서 언제나 여동생이 '우리 언니는 언제나 셋뜨셋뜨~' 하잖아.

친구들한테도 두 개 다 말하잖아.

그런데 왜,

왜 저 남직원에게는 하나만 말하는거야?

귀찮아서..두 개 다 뭐하러 말해, 번거롭잖아, 그거 어느천년에 말하고 있어?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거 순식간인데 언제 두 개 다 말해. 그러면 이상한데서 대화 끊겨. 오래 사회생활해본 팁이야. 대화 시간 조절로 인해 메뉴 하나 뺀거야.

정말? 진짜야?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 아, 오늘 부장으로 진급했다는 소식을 상사로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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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4-22 11:10   좋아요 0 | URL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가볍게 겉옷 하나 걸치고서 나오면 돼
너무 멀리 가지 않을게
그렇지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박보검이 부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4-22 11:14   좋아요 0 | URL
그 별, 뉴욕에서 더 잘 보일 거 같은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4-22 13:59   좋아요 0 | URL
뉴욕 가면 공부도 하고 술도 마시고 맨핫은도 걷고 별도 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4-22 14:08   좋아요 0 | URL
강의도 듣고 스터디도 하고 술도 마시고 서점도 놀러다니고 초고층빌딩 옥상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별도 보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4-22 14:11   좋아요 0 | URL
여러분!! 이것 보세요!!!
자고로 꿈이란 건 구체적으로 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호텔 이름이랑 거리 이름이랑 공원 이름이랑 서점 이름이랑 수영장 이름!!!
차분하게 차례차례 한 번 불러보세요!!!!!

다락방 2021-04-22 15:25   좋아요 1 | URL
센트럴파크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일광욕 하더라고요. 공원 내 바위 위에 비키니 입고 철푸덕 엎어져서 일광욕 하고 그러기도 하니까 공원이라면 우리가 센트럴파크를 가도 좋을것 같습니다! 으하하하. 저는 공원을 참 좋아라 합니다. 미술관도 막 다닐 거에요. 공부도 하고 교양도 쌓고 난리났네.
우리 열심히 공부합시다!! 우리는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4-22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우 승진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1식 3메뉴도 당당하게 시키시기를..... ^^

다락방 2021-04-22 10:36   좋아요 1 | URL
오늘 점심부터 메뉴 세개씩 시켜 먹을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일단 오늘 아침 책은 질렀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4-2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진 축하드립니다! 직역에 걸맞게 책도 더 많이 사시고 글도 더 많이 쓰시는 걸로 ㅋㅋ 위에 댓글들 재밌네요 ㅋㅋ

다락방 2021-04-22 13:51   좋아요 1 | URL
오늘 벌써 책을 사지 않았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겠습니다!! 꺅 >.<
감사해요!

syo 2021-04-2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부장님은 머리가 벗겨진다는 게 정설인데?

다락방 2021-04-22 20:47   좋아요 0 | URL
사실.. 좀 벗겨지기 시작한 것 같단 말야? 🤔

난티나무 2021-04-2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추카추카!! 빰빠라바암~~~~~~~!!!!!!!!

다락방 2021-04-24 23:08   좋아요 1 | URL
ㅋㅋ 감사합니다! 오래 근무했더니 차곡차곡 올라가긴 하네요. 훗.

psyche 2021-04-2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지다 다락방 부장님! 축하드려요!!!!!!!

다락방 2021-04-24 23:09   좋아요 0 | URL
제가 특별히 한 건 없고 그저 성실히 오래 근무한 것 뿐이라 멋진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ㅋㅋ 감사해요! 어휴 제 인생 어디로 흘러가려는 걸까요? 훗

감은빛 2021-04-25 0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승진 축하드립니다!

식당에서 나오는 공기밥 하나를 다 못 먹을만큼 식사량이 줄어버린 저는 세트로 드시는 다락방님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메뉴를 하나만 말씀하신 건 분명히 둘 다 말씀하시기 귀찮아서 그러셨겠죠. 이 바쁜 세상에서 어느 세월에 둘 다 말씀하시겠어요? 그러다 날 샙니다. 암요! 그렇고 말구요. ㅎㅎ

다락방 2021-04-27 07:33   좋아요 0 | URL
아이참, 감은빛님 양이 줄으셨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사실 저도 세트로 먹기는 하지만 젊은 시절에 비하면 양이 많이 줄기는 했어요. 이것이 바로 늙어가는 것인가 봅니다... ㅠㅠ

그래도 조금이나마 맛있는 거 먹으면서 삽시다, 감은빛 님! 맛있는 것 먹고 즐겁게요. 훗.

얄라알라 2021-04-25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진급 축하드립니다. 진급으로 무거워지는 통장잔고만큼이나 알라딘 지름 정신에도 불이 활활 붙으시면 어쩌죠?
그나저나 2메뉴를 순간 망설여서 50% 감하시다니, 다락방님 답지 않으셔요 ㅋㅋ
저도 1시간 넘게 걷고 1인 2메뉴 한 후에, 먹은 걸 반으로 줄여 말한 적 있는데^^:;;

다락방 2021-04-27 07:34   좋아요 0 | URL
진급으로 통장잔고가 아주 많이 무거워지는 건 아니고 초큼 무거워질 뿐이지만 지름 정신에는 불이 활활 붙을것 같네요. 어제도 바쁜 와중에 책을 주문했지 뭡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지름은 진급과 정비례인걸까요 책지름은 진급과 무관한걸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니까요, 저도 1메뉴만 말한 것이 저 답지 않아서 저에게 실망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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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의 첨단을걷는 여성의 코르셋은 내부 장기에 평균 21파운드에 달하는 무게의 압력을 가했고, 극단적인 경우에 그 무게가 88파운드에 이르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여기다 잘 차려입은 여성은 겨울에는 평균 37파운드의 외출복을 입었고, 그중 19파운드는 억지로 조인 허리에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더해 보라.) 꽉조이는 레이스가 미치는 단기적 영향은 호흡 곤란, 변비, 허약함, 극심한 소화불량 징후였다. 장기적 영향으로는 휘거나 부러진 갈비뼈, 간 이탈, 자궁 탈출증이 있었다. (어떤 경우는 코르셋의 압력 때문에 자궁이 점차적으로 압박을받아 질 밖으로 나오곤 했다.) - P165

여성이 남성 세계의 정반대여야 한다는 요구는 여성이 사실상 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남자가 바쁘면 여자는 게으르고, 남자가 거칠면 여자는 상냥하고, 남자가 강하면 여자는 약하고, 남자가 이성적이면 여자는 비이성적이다 등등. 여성성이 남성성의 부정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는 필연적으로 죽어 가는 여성을 낭만화하고 일종의 가부장적 시간屍姦을 조장했다. 19세기에 이러한 경향은 명백해졌고 낭만적 정신의 이상理想은 죽음의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 허약한 병자, 아픈 여성을 치켜세웠다. - P166

이 "난소 심리학"에 따르면 여성의 전체 인격은 난소에 의해 지시를 받으며, 과민성에서 정신병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비정상성도 일정 부분 난소질환으로 귀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 블리스는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난소의영향력은 여성의 교활함과 내숭에서 잘 드러난다."라고 부적절한 악의를 담아 덧붙였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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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4-2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열심히 읽고 있다는 소식을 살포시 알려드려요. 쪽수는 2로 시작하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 굿모닝!!!

다락방 2021-04-21 12:46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저도 2로 시작하는 부분 읽고 있어요. 언제 다 읽나요? 저 빨리 읽고 요 네스뵈 읽고 싶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흑흑 ㅜㅜ

단발머리 2021-04-21 13:1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미안해요. 다시 보니 나 3 언저리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힘내서 열심히 읽어요! 🤗

다락방 2021-04-21 17:16   좋아요 1 | URL
뭐라고요? 3 이라고요????????????????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왜이렇게 멀리 가셨어요!! 하하하하하ㅏ하하핳하하하하하하하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시, 올리브》는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요즘 친구들과 원서 읽기 하느라 재독하고 있다. 원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서를 읽기 전에 번역본을 읽는건데, 다음주가 이 책의 네번째 단편 <엄마 없는 아이> 였다. 다음주에 원서 읽기 전, 번역본 읽어둬야지. 나는 어제 고메 짬뽕을 끓여먹고 걷기로 한 바, 이어폰을 꽂고 이북으로 '들었다'


이북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말 그대로 글자를 읽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내용에 감정이 실리거나 하지 않는 기계적 목소리가 그저 글을 읽어준다. <엄마 없는 아이>라는 단편을 이미 읽어본 적이 있어 내용을 알고 있고 처음 읽을 때도 되게 좋아했었는데, 이번에 이북으로 들으면서 걸을 때는, 별 내용도 아닌 것 같은데 핑 눈물이 돌아버렸다.


올리브가 앤에게 엄마의 안부를 물었는데 몇 개월전에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말할 때, 그 일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할 때, 올리브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했지만 여전히 힘들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핑 도는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 죽어서 그 존재가 내 옆에서 떠나버린다는 것이 갑자기 훅- 치고온 거다.



"엄마는 자신을 돌보는 분이 결코 아니었어요. 그러니 엄마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게 놀랄 일은 아니죠." 앤이 잠시 기다렸다가, 올리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저는 놀랐어요. 저는 지금도 놀라워요."

올리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히 그렇지." 잠시 뒤 올리브가 덧붙였다. "그런 일은 늘 놀라운 것 같아. 그런 감정이 몇 달 이어지는데, 결국 사라지긴 하더라. 하지만 무척 힘들어." -<엄마 없는 아이> 中




이 단편 전에 읽은 건 <청소> 였다. '케일리'라는 8학년 여자아이가 동네 노인 들의 집을 청소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 중 한 집에서 집주인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는 걸 들켜버리고 만다. 할아버지는 계속하라고 말했고, 케일리는 그 할아버지의 눈빛이 따스하고 자신에게 해를 입힐 것 같지 않아, 그 앞에서 가슴을 내보이고 만진다. 이 일로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돈을 준다.


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도대체 왜 이런 이야기를 쓴걸까를 이 책을 읽으면서 진짜 찢어지게 고민해야 했다. 머리가 찢어질 것 같았다. 이 이야기 자체가 나는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그 전에 썼던 《에이미와 이저벨》에서도 남자 성인 교사와 '사랑하는' 소녀 이야기를 그린 바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극도로 꺼려하는 이야기.


케일리가 그 할아버지 앞에서 가슴을 만지는 일이, 그것을 반복하는 일이, 케일리의 잘못은 아니다. 케일리는 세상에서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생각했던 아빠를 잃었고, 엄마는 아빠 만큼 자신을 사랑해주지도 않으며 자신의 슬픔 속에 침잠해 우울해하고 있다. 그나마 자신을 좀 예쁘게 여겨주던 '미스 미니'라는 늙은 여성은 요양원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그런 그녀가 의지할 데가 없고 사랑받지 못하며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따스하다는 느낌을 할아버지로부터 받는 거다. 그런 참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고자 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것, 자신에게 온 관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존재가 마땅히 취하는 행동이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도 그렇고,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에 그런 시간들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그래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성인이 되어 큰 트라우마를 만들기도 한다.


케일리는 그 행동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또 아마 앞으로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이 이 일을 십년후 이십년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나는 계속 생각해야 했다. 괜찮을까. 그것을 '내가 원한 거니까'라고 말하게 될까.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을 '내가 그 때 왜그랬을까' 본인을 자책하며 지내지 않을까. 그 점이 내내 신경 쓰이는 거다.



그래서 나는 미성년들의 그런 지점을 노리고 접근하는 어른들이 찢어죽이고 싶을 만큼 싫다. 자신들이 한 것은 '서로 사랑한'것이며, 상대 미성년자도 '원했다'고 하는 그런 변명들이 정말 같잖다. 취약한 지점을 노려 공략하고서는 '걔도 원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어른답지 못하고 비열하기만 하다. 정말 찢어죽이고 싶다.



아주 복잡한 마음으로 읽어야하는 단편이었다. 내심 그러지말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공허한 케일리의 영혼이 느껴졌달까.



케일리에게는 '브렌다'라는 언니가 있다. 브렌다 언니는 케일리에게 '너는 우리랑 다르'다고, 그러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브렌다는 늘 섹스만 원하는 못생긴 남편 때문에 힘들어한다.



"우리 모두 너를 사랑해. 이제 잘 들어." 브렌다가 뜸을 들이며 비밀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내 동생, 너는 똑똑해. 그거 알고 있지? 나와 다른 자매들은 엄마를 닮았어." 그러고는 자신의 말이 진짜 비밀이라는 듯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갖다댔다. "하지만 너는 아빠를 닮았지. 그래서 똑똑해. 그러니 케일리, 내 동생, 학교에서 계속 잘하면 네 앞에 미래가 펼쳐질 거야. 진짜 미래."

"진짜 미래라니 무슨 뜻이야?"

"네가 의사나 간호사나 뭐 그런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야, 케일리."

"정말로?"

"정말로." 브렌다가 말했다. -<청소> 中




토요일에는 나의 여행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로 여행을 가지 못하고 있었고 만나는 것도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마음 먹고 호텔에서 하룻밤 자자, 한 터다. 일전에 삼성역에 있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업무차 들렀던 적이 있는데 그 크고 좋아보이는 호텔에 마음을 빼앗겨서 '여기서 한 번 자보겠다' 생각했었다. 친구에게 얘기하니 그러자고 하였고, 그래서 비싼돈을 주고 하룻밤을 예약한 거다.

우리는 오전에 만나 오전의 일정을 마치고 체크인을 하고 드러누웠다. 오전 일정이 우리에게 나름 빡세서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각자의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티비 채널을 돌리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 너무 좋다, 행복해를 연발했다. 이 시간이 필요했어. 집에 있으면 아무 일도 안해도 왜 이런 편안함과 느긋함이 없을까. 그렇게 우리는 채널을 돌리다가 수다를 떨었다.


텔레비전을 틀었을 때 1번 채널에서는 호텔 소개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걸 듣자마자 온 몸에 기쁨이 가득 스며들었다. 여행가서 티비를 틀면 어느 여행지든 가장 먼저 호텔 소개가 나오는데, 그 때 느꼈던 감정이 확 올라오는 거다. 아 너무 좋으네 너무 좋다. 여행온 것 같아!


우리가 틀어둔 티비에서는 조인성과 차태현이 어느 시골(?)에 가서 슈퍼마켓 겸 식당을 하는 거였고 골퍼인 박인비가 남편,동생과 게스트로 출연해 있었다. 나는 그런 프로그램을 처음보았는데, 모든 영업을 마치고 그들 모두가 한 데 앉아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걸 보는게 너무 좋았다. 너무 행복해 보였다. 인간에겐 저런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친구와 이제 저녁 먹으러 나갈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소고기집에 들어갔다. 와인과 소주를 시켜두고 번갈아 마시면서(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밀렸던 이야기들과 좋았던 이야기들. 친구는 새삼 요즘 나에 대해, 우리에 대해 생각했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지낸지 이십년이 됐더라고, 하면서. 그 말을 듣는데 나는 우리가 여전히 존대를 하고 있다는 걸 떠올리며, 우리가 이렇게 사이좋게 계속 지낼 수 있는 건,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거봐, 이십년이 지나도록 우리가 존대말을 쓰는데, 어느 누구도 '말 놓아라'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지내잖아' 했더니 친구는 내게 '너는 처음부터 언니 동생하기 싫어하는 것 같았고 거리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 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둘이 실컷 먹고 마시고 걷다가 숙소로 돌아와 창원에 사는 나의 친구들과 줌으로 미팅을 가졌다. 우리 역시 만나지 못한 채로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있었는데, 다들 오랜만에 만나서 좋다고 실컷 수다를 떨면서 우리의 존재에 대해 감사해했다. 서로 좋았다 감사했다 말을 하면서 서로의 좋은 소식들에 진심으로 축하를 건넸다. 한 친구는 자신의 삶이 우리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뉘며, 우리를 만난 후로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고맙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밤이 깊었고 술도 줄어드는 가운데 졸음이 쏟아졌다. 나는 자기 직전 이런 톡을 동생들에게 보내둔 것을, 다음날 아침에 보았다.




자기 직전 내 인생 짱이라고, 술 취해 톡할 수 있다니. 정말 짱이지 않은가. 어떻게 내 인생 짱이라고 말할만한 친구들이 내게 있을까.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우리가 서로를 존중해 생기는 일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대화를 하는 삶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원서를 읽다 보면 영어 공부도 되겠지. 계속 계속 공부할거다. 여성주의도 영어도. 좀전에 정희진 책 리뷰에 썼듯이 내가 아무리 공부한다 해도 정희진처럼 되진 않겠지만, 분명 나는 작년의 그리고 3년전의 나와 다르다. 일년 뒤, 십년 뒤 돌이켜보았을 때 또 '이만큼 까지 왔구나' 하고 행복해할 수 있도록 지금 열심히 걸어야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절대 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내게는 인생의 목표이고 멈추고 싶은 생각이 지금은 전혀 없다. 그 과정에 좋은 친구들이 항상 도움을 주고 있어서, 힘이 되어주고 격려가 되어주고 있어서 인생이 개꿀인것 같다.


잘 살것이다.


사실 월요일이라 개우울..

아니, 출근은 언제나 우울..

그치만 힘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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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4-19 1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존대말을 쓰는 여행친구, 섣불리 언니 동생 하지 않는 거, 딱 이런 친구가 저도 있었으면 좋겠어요...이번 주도 화이팅!

다락방 2021-04-20 07:40   좋아요 0 | URL
저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자마자 서로의 나이를 묻고 호칭 정하고 이러는게 너무 싫어요, 블랑카님.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말 놓는 순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도 생기고요. 존대말로는 욕을 못하면서 반말을 하면 욕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거리를 두는 걸 친구들이 싫어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둬줘서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아요. 친구들 만세만세 만만세에요. 으흐흐흐흐.
블랑카님도 화이팅입니다!

바람돌이 2021-04-19 1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월요일이라 개우울, 내일부터 조금씩 우울강도 낮아짐요. 금요일 오후는 아 환상적인 기분.... ㅎㅎ
열심히 읽고 쓰고 심지어 영어공부하며 원서까지 읽는 다락방님을 응원합니다. ^^

다락방 2021-04-20 07:38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어제는 너무 우울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퇴근 후에 삼겹살에 소주 먹었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 핑계가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화요일이 왔고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살아보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 한 주 잘 보내봅시다, 바람돌이님!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3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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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편협하게 책을 읽는다. 자신이 가진 생각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그리고 자신의 신념으로 읽는 책은, 그 책 내용이 무엇이든 읽는 사람 마음대로(좋을대로) 해석하게 된다. 한 책 본문의 어느 한 구절을 놓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어떤 사람은 정 반대의 내용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되는데, 이는 우리가 편협하게 읽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겠지만.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중에 '편협하게 읽고'라는 말로 저자는 편협하게 책을 읽는구나,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편협하게 책을 읽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편협하다. 객관이란 말로 아무리 자기를 포장해봤자, 객관으로 포장한 주관적인 자기 자신을 품고 살아갈 뿐이다.


이 책은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중 세번째 책이며 가장 최근 나온 책이다. 1,2 에 해당하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 쓴다》도 모두 읽었는데, 나는 이 세번째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1,2 를 읽고서는 '이 책으로 정희진을 시작한다면 정희진에게 빠질 확률이 높지 않겠다' 싶었던 거다. 그동안 내내 좋았던 정희진에 대해 좀 갸웃하게 되는 면이 있었는데, 이 세번째 책에서는 '역시 정희진이야!' 하며 기립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정희진이 생각하는 바, 느끼는 바, 그리고 말하는 바가 내 모든 것과 일치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였고, '이건 나랑 다른데' 하였고, '그건 틀린 것 같은데'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의 능력은 바로 그런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나랑 다른 생각을 가졌다 해도, 설사 내가 보기에는 '틀렸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풀어낸다 해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싶어서 계속 읽게 하는 것. 정희진은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매우 훌륭한 글쟁이이다. 내가 정희진을 처음 알게 되고 강연을 듣게 되었을 때 떨리던 느낌, 사고를 확장시키던 느낌, 매번, 볼 때마다 그 전보다 더 놀라움을 주던 그 느낌,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있지, 하는 바로 그 느낌이 이 책 안에 그대로 다 있다. 정희진은 '치열하게' 쓴다고 표현했지만, 내 보기에 정희진은 읽는 것 역시 치열하게 읽는 것 같다. 이토록 치열하게 읽는데 편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희진의 글 읽기는 온 몸을 던지는 글읽기이고 그런 글이 편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온 몸을 던져 읽고 쓰는 글은 당연히 깊을 수 밖에 없다. 이토록 깊게 읽고 깊게 쓰는 깊은 사람. 이번 책에서 나는 정희진이 진짜 너무 좋고 감탄이 나왔다.



어쩌면 이 책에서 '몸'에 대해 말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몸, 늙어가며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몸에 대한 이야기들은 읽을 때마다 마치 내것인듯 읽히고 그렇게 한 권 한 권, 정희진이 언급한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언젠가 정희진은 강연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은 모두 책으로부터 얻는다고 했는데, 그 강연을 들을 당시만 해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지식을 어떻게 책으로부터 얻나' 의심했건만, 이렇게 정희진의 서평을 읽노라면, 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희진에겐 그게 가능하다 싶다. 비판적인 책읽기가 가능한 사람인데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본인이 가진 지식도 많아야 하고, 그리고 그 지식은 그 전의 독서에서 또 그 전의 독서에서 가능해진다. 내가 아는 책에 대한 이야기들도 더러 나오지만, 내가 모르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수두룩한데, 도대체 정희진은 이런 책들을-어떤 책들은 내가 그 책의 존재도 몰랐다- 언제 읽고 이렇게 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나 싶다. 모든 글들이 좋았지만 특히나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글은 더 좋았다. 정희진이 가능한 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본다는 것이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한다는 것이다.


군'위안부'제도는 그것이 군대 성매매든 성폭력이든 일본군과 사랑을 했든 억압과 죽음의 희생자였던 간에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이다. 폭력인가 매매인가라는 부질없는 논쟁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는 알선업자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다. '군대가 강제로 끌고 간 소녀'와 '알선업자 근처의 잠재적 매춘 여성들'의 구분. 《제국의 위안부》논쟁도 여기서 출발했다. -p.168



한글을 알면서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이정도면 그래도 좀 읽었다고 볼 수있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는데, 정희진의 책을 읽을 때면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건가 싶다. 내가 아무리 읽어도 정희진보다 적게 읽고, 단순히 적게 읽는 문제가 아니라 나는 정희진처럼 깊은 사유로 나를 끌고 가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리 읽어도 늘 부족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늘 내 생각은 짧기만 하구나. 그렇게 열심히 읽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고 갈 길이 먼 사람이구나. 이렇게 저 앞에서 나를 끌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아무리 읽는다해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어림도 없는 것 같다. 여성주의 책을 읽을 때마다 버릇처럼 '아무리 읽어도 정희진처럼 될 순 없겠지' 하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몇 장 넘기지도 않고 역시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한꼭지 한꼭지 읽어갈 때마다, 아아, 깊다, 깊어. 나는 멀었다, 안되겠다, 이번 생에서는 곤란하다... 생각하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하루종일 책에 파묻혀 산다고 해도 나는 정희진처럼 될 순 없는 것 같다. 깊고도 깊은 사람.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정희진처럼 될 수 없기 때문에 책읽기를 멈춰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니, 그렇지 않다. 더 읽자, 더 읽자, 더 읽어야 한다. 더 읽고 더 생각해야한다. 나야말로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쓰는 일을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읽고 쓴다고 해서 정희진처럼 될 순 없겠지만 따라가기 위해서는 노력해야지. 따라가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면 내가 정희진이 서있는 곳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어쨌든 지금 이 자리에서 그쪽으로 조금 더 가까워져 있지 않겠는가.



지금보다 더 편협하게 읽고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쓰겠다.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것은 서른 살에 여성학과 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였고 그 뒤로 20여 년이 흘렀다. 여성 단체에상근한 기간까지 포함하면 20여 년 넘게 이 분야에서 지낸 셈이다. 그런데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275쪽) 의미에서도 아니고, 타인의 시선 때문에 숨기려는 것도 아니다. 나의 착한 여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아버지 콤플렉스는 거의 중독에 가까우며 매일 이 문제와 사투를 벌이며 분열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페미니즘을 열심히 공부한다. 내가 아는 한 페미니즘은 인류가 만들어낸 그 어떤 지식보다 수월(秀越)하다. 정치적, 이론적, 학문적으로 다른 어떤 언설보다 세련되고 앞서 있으며 상상력조차 뛰어넘는 참신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던지는 사상 체계다. 지식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행위라면, 또 지식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지식이 사유 능력을 의미한다면 최소한 페미니즘을 따라올 지식은 없다. - P146

이유는 간단하다. 페미니즘은 지난 모든 언어에 대한 의문과 개입에서 시작됐으며, 이 과정에서 저절로 기존의 지식을 조감(overview)하는 능력을 지닐 수밖에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다(多)학제적이기 때문에지식 전반에 걸쳐 박식하고, 다른 분야와 연결되어 폭발적인 재해석과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 P146

리영희는 30대 후반 약 2년간 원고지 4천 장이 넘는 논문 30여편을 집필한다. 모두 매우 빼어난 글들이다. 놀랍고 존경스럽지만 지금 우리도 이렇게 생산성 있는 인간을 따라 배워야 할까?
물론 그는 충분히 성찰적인 남성이지만, 그의 위대함은 성별화된 공사 영역 분리로 인해 보살핌 노동에서 면제된 남성 특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결혼하지 않았어야 가능한 업적이 남성은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P180

저자는 "당시 매춘 여성이 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딸들의 어두운 숙명이었으며, 누군가 그만두어도 같은 길로 굴러떨어지는 딸들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문제를 (여성이 아니라) ‘인민‘의 고통이라는 차원에서본다. 그러나 오히려 성매매의 근본 원인은 왜 프롤레타리아 남성들은 가난하다고 해서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팔지 않는지, 그리고 왜 남성의 성은 국가의 통제 대상이 되지 않는지를 질문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성을 파는 여성, 성을 팔아야 하는 여성의 존재는 바로 여성이 ‘인민‘의 범주에 들지 못해서 발생한이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매춘 여성의 빈곤이 인민 빈곤의 여성 버전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빈곤과 노동(시장)의 젠더화된 구성을 추적하는 데 있다. - P232

또한 저자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 억압의 최대 책임자가 국가혹은 자본주의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을 구매하고, 여성의 성적 접대를 당연시하고, 성산업을 운영하고, 여성을 강간하고, 피임 없이 성관계를하여 낙태하게 하고, 노동 시장과 가정에서 여성을 구타하는 개별 남성의 책임과 행위성을 거세하는 행위이다. 섹슈얼리티와재생산을 둘러싼 여성의 고통은, 남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남성연대체인 국가와 자본의 후원을 받아 가족과 애인과 동료 등등여성과 사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개별 남성이 저지르는 행위의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이라는 여성주의 슬로건의 기본 의미이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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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9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허탈감과 욕심 그리고 몸에 대한 글 감상까지.. 리뷰 너무 좋아요x100
정희진을 읽고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은 알라딘 만만세야 ㅜㅜ!!!

다락방 2021-04-19 09:12   좋아요 3 | URL
이번 책은 특히 더 좋더라고요. 나도 몰랐는데 내가 몸 이야기를 좋아하나 싶어서 사둔 몸 책들을 읽어야겠다 생각했고 안산 몸책들을 사야겠다 결심했어요. (그거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희진을 읽고 이야기나눌 수 있어서 나도 좋아요, 쟝님! 꺄울 >.<

단발머리 2021-04-19 09:26   좋아요 3 | URL
너무너무 좋은 글에 알라딘 만만세 댓글까지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입니다!!!
나는 어제 정희진쌤 생각을 하다하다 누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막 성대모사를 했어요. 많이 보고 싶고 그래서요 ㅠㅠ

우리 오래오래 같이 정희진을 읽읍시다!

수이 2021-04-19 09:46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있고 쟝쟝님 있고 단발머리님 있는 이곳이 무릉도원이로구나!!! 정희진샘 성대모사 어디에서 합니까? 줌입니까? 클하입니까? 예약시간 알려주소서

- 2021-04-19 16:39   좋아요 2 | URL
저두.. 몸에 대한 이야기과 글들이 요즘 그렇게 좋더라고요. 아직은 운동에세이 ㅋㅋㅋ 가 제일 재밌지만, 조만간 몸 책들로 또 분야를 넓혀가 봅시다!! (사야돼!! 사야지 읽어!!)
이 무릉도원에서 너무 똑똑해질까봐 걱정이야 정말...

다락방 2021-04-20 07:37   좋아요 2 | URL
여러분, 우리 실컷 얘기하고 실컷 똑똑해집시다. 더 읽고 더 쓰고 더 똑똑해지자. 알라딘을 여성주의로 지배하자! 크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04-19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플에 여러분들이 계셔서 넘넘 좋으네요♡ 이런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시작할껄. 제 주변엔 정희진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책 사주고 홍보?도 해야 하는 상황인데..여긴 여성학 파라다이스~♡
오늘도 내일도 편협하게 읽어요!🤭

다락방 2021-04-20 07:37   좋아요 1 | URL
크-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기쁨이지요. 모두와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회사에만 와도 책 얘기 할 사람 1도 없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알라딘을 하던 사람들은 계속 알라딘을 하는가 봅니다. 이렇게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말예요. 샤라라랑~

바람돌이 2021-04-19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사실 저 이 책 안읽으려고 했거든요. 말씀하신대로 앞의 시리즈 글들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니 좋았지만 그래도 다른 책 - 페미니즘의 도전 같은 책에 비해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요. 이 시리즈는 그냥 끝내자 했는데 다락방님이 이런 리뷰를 써 주시면 생각을 바꿔서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막막 솟아납니다. ^^

- 2021-04-19 16:37   좋아요 2 | URL
저도 같은 생각이예요! 앞의 1~2권 읽고 아쉬웠었는 데 이번 책은 페미니즘의 도전 혹은 정희진처럼 읽기 읽었을 때만큼 읽는데 희열이 느껴졌었어요. 바람돌이님 꼭 읽으세요~~!!

다락방 2021-04-20 07:36   좋아요 1 | URL
맞아요, 바람돌이님. 시리즈 1,2 권이 부족했죠. 그래서 저도 ‘팔아버릴까‘도 생각하다가 ‘다음 시리즈 사지 말까‘도 생각했다가 읽었는데 제일 좋더라고요. 3권을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바람돌이님!! 저는 3권 읽고 나니까 정희진 처럼 읽기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후훗.

나탈리 2021-04-19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정희진씨 책 장바구니에만 넣어두고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 리뷰보는 순간 읽고싶어졌네요 ㅎㅎㅎ 이런 리뷰를 쓸 수 있는 다락방님이신데, 정희진씨만큼 깊게 독서하고계신다는게 충분히 전달되네요!:)

다락방 2021-04-20 07:35   좋아요 1 | URL
아이참 나탈리님 감사합니다!
아마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저를 움직였기 때문에 제게 좋게 읽힌 거겠지요. 이 시리즈 1,2권은 그간 정희진 의 책들에 비하면 별로였거든요. 그런데 이 세번째는 참 좋더라고요. 나탈리 님은 읽으시면 어떤 감상을 갖게 되실지 궁금합니다. :)

초딩 2021-05-0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쩍 축하하고 갑니다 ㅎㅎㅎ 이달의 당선작.
행복한 주말 되세요~

다락방 2021-05-08 19:26   좋아요 1 | URL
하핫 축하 감사합니다. 3만원으로 올라서 너무 좋네요. 히히

초딩 2021-05-08 19:32   좋아요 0 | URL
으하하 넵!!!!! 삼만원 :-)
 

....

(작가 남정현의 단편 소설)〈분지>는 내용이 간단하지만 다른 반미 문학 전반의 골격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미군정 시기 남자 주인공이 어머니와 여동생이 미군에게 성폭력을 당하자 복수하기 위해 주한 미군의 부인을 성폭행한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요지는 1) 국가주의에 기초한 한국과 미국의 이항 대립 논리, 2) 한국 사회의 모든 ‘악‘은 외세에서 기인한다는 외세 환원론, 3) 여성에 대한 폭력이 ‘외세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장이다. 이 세 가지는 지금도 한국 사회에 작동하는 구조이자 남성 중심적 문화의 핵심이며 분지의 현재성이다. 이후 <분지>는 한국 사회에서 ‘민중 문학‘, ‘실천 문학‘, ‘저항 문학‘, ‘민족 문학의 역사를정초했다는 평가와 격찬을 받았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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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 2021-04-19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메이징..🙄😒

다락방 2021-04-19 09:12   좋아요 0 | URL
저는 뒷목 잡았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