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시, 올리브》를 읽는 일은 정말 즐겁다. 책의 내용들은 밝고 환한 내용이 아닌데, 이 소설을 읽는 일은 매우 즐겁다.

원서의 단편들을 한 편씩 친구들과 읽고 있는데, 좀 더 쉽게 읽고 잘 이해하기 위해 나는 그 전에 번역본을 한 번 다시 읽는다. 요즘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좀처럼 나질 않아 걸을 때 이북으로 듣는다. 올리브를 읽다 보면, 인간은 진짜 뭘까, 하는 생각을 수차례 하게 된다.


단편 <도움> 역시 다른 단편들만큼 너무 좋았다. 이북으로 들으면서 '버니'가 그 모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수잰'이 잘 자랐다고 했던 부분에서는  '이 부분은 꼭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수잰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바람을 피웠고 어머니를 학대했으며 어머니는 아들을 (아마도) 성적으로 학대했고, 아들, 즉 수잰의 남동생은 한 여자를 스물아홉번 찔러 살해했다. 그 가족들 사이에서 수잰은 꿋꿋이 버티며 어머니가 입원한 요양원을 찾고 감옥에 있는 남동생을 찾는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런 수잰에게는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고통과 괴로움에 더해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한 괴로움도 있다. 수잰은 자신의 심리 상담사와 2년간 불륜을 저질렀다. 바람을 피웠는데, 그 사실을 당연히 남편은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바람을 핀 사실이 너무 끔찍해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남편에게 말하고자 한다. 이 때 아버지의 변호사였던 '버니'는 뭐하러 남편에게 말하냐, 인간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네가 저지른 짓이니 너 혼자 비밀로 간직하며 책임지도록 해라, 고 조언한다. 수잰은 고통스러워 한다. 그게 맞는 것일까? 남편에게 말하면 이 부부관게는 끝나겠지만, 그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닐까? 무엇보다 수잰을 고통스럽게 하는 건 자신이 '아버지처럼'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는데, 내가 그런 아버지처럼 되었다는 것, 그것이 그녀를 고통속으로 내동댕이 친다.



"오, 버니. 아마 아버지는 바람을 피웠을 거예요. 열두 번은 피웠을지도 모르죠. 전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

"수잰." 버니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그가 종이 클립을 책상에 놓았다. "너는 네 아버지 같지 않아. 알겠니? 너는 언제나 너 자신이었어." -책 속에서



원서를 읽다가는 저 부분에서 울컥했다. 수잰은, 학대 가정 속에서 살아 남아 검사가 되고 자기 일을 해내고 자기 식구들과 함께 살았던 수잰은, 정신을 잃은 어머니를 병원에 보내고 남동생은 감옥에 보내고 아버지는 불에 타죽은 일을 경험한 수잰은, 그런데 그 안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륜과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걸 알았던 수잰은, 그 안에서 망가지는 게 아닌, 제대로 살고자 발버둥쳤다. 그런 그녀가 고통스러운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아버지처럼' '바람을 피우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였다. 아 수잰이여. 버니는 그녀를 위로하는데 나 역시 그녀의 등을 쓸어주고 싶었다. 학대와 폭력과 살인을 앞에 두고, 그러면서 바람을 피운 것에 대해 내가 아버지처럼 됐다고,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고 고통스러워하는 이 여인, 이 여인은 대체 뭘까. 누굴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더한 잘못들을 알고 보고 경험했으면서도 자신이 한 작은 잘못에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다니. 남편이 있는 채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건 물론 남편을 배신하는 행위이긴 하겠지만, 그러나 성적 학대 앞에서, 어머니의 몸이 곳곳에 멍들었던 일들을 목격하고서, 그러면서도 나는 바람을 피운 사람이야, 나는 망가졌어, 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니.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얼마만큼의 기준을 세우고 또 얼마만큼의 기대치를 갖고 있는걸까. 바람을 피운 사실보다, 바람을 피운 것이 아버지가 한 잘못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아서 고통스러워 하는 수잰을, 아, 어쩌면 좋을까.



버니는 수잰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들려주고 종교에 대한 수잰의 생각도 듣는다. 이 모든 대화들 속에서 버니는 수잰에게 너는 그런 가정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한다. 대화를 끝낸 후 버니는 '수잰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인간은 사소한 일로 무너질 수도 있지만 그러나 끝내 버텨낼 수도 있다. 그런 가정환경 속에서 수잰은, 버니의 말대로, 빠져나왔고, 자신이 생각하는 잘못에 대해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생각을 하고 굳건히 버텨갈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다시, 올리브》 안에 담겨 있다. 읽을 때마다 좋은 독서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다음편인 <햇빛>을 읽고 있는데 벌써부터 밑줄을 그어놓았다. 처음의 어떤 문장은 끝의 어떤 문장과 만난다는 것을, 나는 이미 번역본 이북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그 얘기는 내가 꼭 하고 싶다. 커밍 순...





어제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소규모 회식이 있었다. 그 멤버들 중에는 여신입직원과 남신입직원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깔깔대고 웃으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고 신났다. 저마다 할 말들이 넘쳐나서 재미있는 자리였다. 그러다 남신입직원이 그런 얘기를 했다. 어제 임원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고 우울해있는데 다코타부장님이 사무실로 들어서며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준 순간 마음이 너무 좋아지면서 스트레스가 사라졌다고,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꿈과 희망을 주는 다코타 부장님 되시겠다. 엣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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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5-07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리브 읽는 시간이 참 좋아요. 책이 좋은 책이어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두 번 읽어서 여러 면이 잘 보여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같이 읽기가 이렇게나 좋구나 싶어요. 여기저기 독서모임 유행이던데, 그래 흥해라~~ 독서모임이든 북클럽이든 흥해라~~~ 싶어요.
손 흔들며 안녕!하는 다코타부장님 매일 만나는 남신입직원 부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해줘요, 부럽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5-08 18:2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단발머리님. 어쩌면 책은 한 번 읽어서는 제대로 그 재미를 모르는건가 싶기도 했어요. 제가 총 세 번 읽게 되는 거잖아요. 처음에 번역본으로 한 번 읽었고 이번에 원서로 한 번 그리고 원서로 보기 전에 전자책으로 한 번 듣고. 이러다 보니 그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이고요 새삼 좋더라고요. 물론 같이 읽기 하면서 더 좋고요. 같이 읽기를 하다보니까, 내 친구들은 이 책의 어느 부분을 좋아할까? 이런거 생각하게 되어서 좋아요. 이 복잡한 마음을 친구들도 읽고 느끼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같이 읽기 만만세입니다. 같이 읽는 친구들이 책을 사랑하고 읽기와 쓰기를 사랑하는 친구들이라서 그 재미가 더한 것 같아요. 정말 좋아요!!

잠자냥 2021-05-07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코타 부장님께서 제게 안겨주신 올리브 책이 두 권인데 저도 빨랑 읽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ㅎㅎ

다락방 2021-05-08 18:22   좋아요 1 | URL
크- 잠자냥 님은 과연 올리브를 어떻게 읽으실지 너무 궁금합니다. 제가 잠자냥 님과 읽는 취향이랄까 이런게 대부분 비슷하다가도 똥 어떨 땐 확 달라지더라고요(예를 들면 [돌이킬 수 있는]의 감상 같은 거요). 그래서 좀 설렙니다. 잠자냥 님, 올리브를 어떻게 읽으실까.

제 경우에는 [올리브 키터리지] 좋아서 여러번 읽었는데 [다시, 올리브]는 더 좋더라고요!!!

독서괭 2021-05-07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왓 신입사원을 즐겁게 해주는 부장님이라니 듣도보도 못한 신인류네요! 다부장님 같은 분만 회사에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부럽다고 전해주세요 ㅋㅋ

다락방 2021-05-08 18:31   좋아요 0 | URL
제가 딱히 즐겁게 해준것 같진 않은데 그 직원이 저 때문에 좋았다고 하니 참 좋더라고요. 저는 존재만으로 기쁨이 되는 사람인가 봅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새파랑 2021-05-07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코타 부장님 밑에서 일하면 행복할거 같아요 ㅎㅎ

다락방 2021-05-08 18:31   좋아요 1 | URL
그랬으면 좋겠지만 설마 제 밑에서 일한다고 행복하겠습니까. 좋은 사람도 있고 또 아닌 사람도 있겠지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초딩 2021-06-04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얏호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상금 이야기한게 어제 같은데 벌써 또 5월의 당선작 발표네요 ㅎㅎㅎㅎ
좋은 밤 되세요~
(PC로 보니 옆에 달인이 번쩍 번쩍 하네요. 황금 오징어 편대처럼 ㅎㅎㅎ)

다락방 2021-06-07 07:36   좋아요 1 | URL
황금오징어편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축하 감사합니다, 초딩님!! 으흐흣.

새파랑 2021-06-0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부장님 축!하! 드립니다~~!!

다락방 2021-06-07 07:36   좋아요 1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새파랑 님!! >.<
 


엊그제는 다음날 쉬는 날이라고 좋아서 침대에 앉아 넷플릭스의 영화 한 편을 선택해 보았다. 자, 살랑살랑 봄바람도 불어오니 로맨스 한 번 보자. 나는 로맨스 영화를 너무 좋아해.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이 생겨나는 걸 보는게 너무 좋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갈등을 해소해가는 과정을 보는 것도 좋고. 굵직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이 작은 이야기들의 힘이 내게는 크게 느껴진다. 결국 인간이란 다른 존재를(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하면서밖에 살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닉'(데이먼 웨이언스 주니어)은 <러브 개런티드>라는 데이팅 앱을 유료로 사용하면서 천 번의 소개팅을 했다. 그 앱에서는 천 번을 만나면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 광고했단 말이다. 그런데 천 번의 데이트를 했지만 자기는 사랑을 찾지 못했고, 이에 이 앱을 만든 회사를 고소하기로 한다. 나름 거기서 승소해 나오는 이익은 물리센터에 기부할 예정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그 회사를 고소하기 위해 지역의 변호사 '수잔'(레이첼 리 쿡)을 찾아간다.


수잔은 어릴적부터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이었고 언제나 약자의 편이었다. 돈 없는 사람들에겐 비용을 받지 않고 상담도 해주고 변호도 해준다. 그러니 돈이 모일리가 있나. 아침부터 밤까지 일 생각 뿐이고 그래서 연애를 할 겨를도 없었다. 이 사건 자체는 자신이 맡고 싶어하지 않는 종류의 사건인데, 자신이 운영하는 법률회사가 너무 돈이 없어서 돈이 필요했다. 하는수없이 맡기로 한다.


그래서 닉과 수잔은 자주 만나야 했다. 재판 준비를 하기 위해 수잔은 닉과 데이트 했던 여자들을 다 찾아가보고 그가 제대로 데이트 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심지어 전여친까지도 만난다. 설정 자체가 참 너무 거시기하지만, 더 거시기한 건 그 모든 여자들의 대응이었다. 닉은, 한 번을 만나 데이트했던 여자들도 그리고 전여친 까지도, 흠잡을 데 없는 남성이었다. 세상에 그런 인간이 존재하기나 하나. 어떻게 천번 데이트 해도 천번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정하며 좋은 인상을 주는 사람이 존재한단 말인가. 어쨌든 이것은 로맨스 영화이고, 그러니 남주를 완벽하게 만들고자 하였을 것이고, 그래서 그래, 모두에게 젠틀한 남자를 만들어놓은 것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나는 엊그제 만난 친구의 말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수용의 폭이 넓다고 한다. 그래, 수용의 폭이 넓으니 이만큼은 수용하겠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다보니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그동안 천번의 데이트보다 이 변호사와의 식사와 대화가 훨씬 즐겁다. 그녀는 특별하다. 수잔 역시 닉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를 사랑하게 된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그들이 산책하며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이야기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걷는게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정한 이와 함께 걸으며 얘기하는 걸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한다. 걷는 것도 좋고 다정한 사람도 좋은데 다정한 사람과 함께 걷는다? 만세 만세 만만세다. 그 장면에서 나도 걸을거라고, 내일 산책할 거라고 생각했다.


자, 이제 갈등이 나온다. 데이트앱 회사는 수잔과 닉이 다정한 사진을 찍어두고 '니네 사이 너무 가까운 거 아니냐' 며 합의금 받기를 종용한다. 이에 수잔은 앞으로 2주 남은 재판 동안 이 재판에서 지는게 두려워, 닉과 거리를 두고자 한다. 우리 재판 준비에 열중해야 하니 만나지 말아요, 라고 하는거다. 그렇게 만나지 않고 멀리하면서 2주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들은 서로에 대한 그리움에 쌓인다. 그리고 재판 당일에 만나서는 어색하기 짝이 없고 서로를 냉정하게 대하며 재판에 들어가게 되는거다.


그렇게 재판이 거듭되고 이 사건은 커다란 데이팅앱 회사와 한 개인의 재판인지라 세상의 이목도 끌게 되는데, 그동안 만난 소개팅 여성들이 증인으로 나오고 또 전여친까지 나오면서 거의 이기는 재판에 가까웠다. 이겨야 한다. 이겨서 나오는 수익은 기부할거니까. 이겨야 해. 수잔은 최선을 다해 재판에 임하고, 마지막 증인은 바로 의뢰인인 닉이다. 닉은 증인으로 나와서 자기의 입장을 얘기해야 하는 그 재판의 마지막 순간!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아니 이놈이 돌았나...



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자기는 자기 변호사를 사랑한다고 갑자기 판사와 배심원들이 있는 법정에서 고백하는거다.


네?


아니, 자기 안의 사랑을 깨닫고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고백하는 거 좋단 말이다. 그래, 그러라고. 근데 아니 어째서 왜 때문에 법정에서 재판하다말고 그러는거야? 나 완전 돌아버리겠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이게 지금 사랑고백이라서 허용되는거야? 나는 수잔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본다. 수잔 입장에서는 열심히 했던 일이 중요한 순간에 틀어져버리는 게 아닌가. 그런데 수잔은 좋아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들의 사랑이 이뤄지는 걸 축복하며 환호하는 거다.



네??



아 졸라 빡치네 진짜. 아무리 로맨스 영화 사랑사랑 사랑 사랑이 이루어지는 게 최고라고 해도 미쳤냐? 이런 개같은 설정은 뭐야 대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일단 개념적으로 추상적으로 이런 일이 싫지만, '그러나 막상 내 앞에 닥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럴 경우 구체적 인물을 대입해보곤 한단 말이다. '나는 그런거 싫어' 혹은 '나는 그런거 좋아'라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다가도 거기에 구체적 인물을 대입하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나는 변호사인 수잔의 입장이 되고 닉에다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사람을 넣고서 이 상황을 그려보았다. 그럴 경우 나도 수잔처럼 아니, 나도 이사람 사랑하는데, 너무 좋으다, 하면서 거기서 키스할까?


답은 '아니다' 였다.

아니다.

아니다.

싫다.

너무 싫다.

내 일을 다 망쳐버린 놈이 되어서 있던 사랑이 식어버린다.



나는 너무 당황했을 것이고 좌절했을 것이다. 아니, 상황과 때를 가리지 못하는 남자였네.. 하면서 내 자신을 자책할 것 같다. 그에겐 말했을 것 같다.


"야, 지금 여기서 꼭 그렇게 해야해?" 라고.

왜 내 일 다 틀어지게 만들지? 아 빡쳐.....................후아.........................


나는 그와 사요나라, 세이 굿바이 한다. 내 일을 개판쳐놨어...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나를, 내 일을 존중한다면, 거기서 갑자기, 그렇게 나올 순 없는거지. 아니, 내가 아무리 너를 사랑했다한들, 나의 사랑은 나를 향해 더 크게 뻗어있고 또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사랑을 머리로 한다. 그 상황에서 나 이 재판 안해~ 왜냐면 이 데이팅앱에서 만난 여자는 아니지만 이 데이팅앱을 통해 사랑을 찾았기 때문이야~ 나는 내 변호사를 사랑해~ 해버리는 거 진짜 너무... 에휴..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랑고백하지 마라..특히나 나 일하고 있는데......... 조심해. 진짜 뭐야 빠가사리들이야 뭐야..... 다 큰 어른이 때와 장소도 구분 못하고 사랑고백이야.... 어우 싫어....... 끔찍하다 진짜루.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시, 올리브》중 단편 <햇빛>에는 병에 걸린 여성이 나온다.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면서 문병온 올리브 키터리지랑 대화를 나누는데, 자신이 떠나고난 후에 남편이 혼자 남는 걸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신디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 키터리지 선생님. 그이가 혼자 산다는 생각도 견딜 수 없어요. 못 견디겠어요. 정말로 못 견디겠어요. 그이는 그저…… 오, 혼자 두기엔 덩치만 큰 아기 같아요. 그래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요. -책 속에서



참.... 에휴...... 아들을 둘이나 둔 아버지인데 '혼자 두기엔 덩치만 큰 아기' 같다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지 않았나. 진짜. 어른이 되자, 어른이. 제대로 어른이 되자.



여동생이 만든 포도쨈 바른 토스트를 간식으로 먹고 있다. 안에 소박하게 치즈와 계란후라이가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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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06 1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게 읽었네요ㅋㅋㅋㅋㅋ특히 후아.....이런거 좋아요!ㅋㅋㅋㅋ음 그런데 이런 질문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그 남자가 만약에 제이슨 스타뎀인데도 다락방님 짜이찌엔 하실 거예요?너무궁금요!ㅋㅋ🙄😳

다락방 2021-05-06 10:47   좋아요 2 | URL
미미님 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페이퍼에도 썼듯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제이슨 스태덤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넣었는데도 세이 굿바이 였답니다? 답이 되셨을지요? ㅋㅋ

왜 그런거 있잖아요. 저마다 용납할 수 없는 성질의 것들. 저는 진짜 저기서 저런 행동이 너무 싫었어요. 여주인공은 좋아했고 이 영화 감상후기 찾아보다 보니 좋았다, 달달했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하는 것들도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저게 누군가에게는 스윗한 행동일 수도 있는것 같아요. 스윗하진 않아도 괜찮아 오케이가 될 수도 있을테고요. 근데 저는 진짜 너무 싫어요. 아오 너무 싫어요 진짜. ㅋㅋㅋㅋㅋ 저런 남자랑 연애하느니 혼자가 행복합니다. 그럼 이만.

새파랑 2021-05-06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같은 설정이라니 너무 웃겨요 😀 글만 보고도 영화가 그려지네요~~ 천번을 데이트 하고 사랑을 만났으니 고소를 취하 하는게 맞긴 한거네요 ㅋ

다락방 2021-05-06 17:14   좋아요 2 | URL
네. 그 앱을 통해 만난건 아니지만 그 앱 때문에 만나긴 한거니까 고소를 취하하는게 맞긴 합니다. ㅎㅎ
아오 근데 로맨스 좋아하는 저에게도 너무 심한 설정이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5-0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다 부장님, 포도쨈 바른 토스트까지는 소박한데요... 거기에 치즈와 계란후라이??? 응?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5-06 17:1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치즈... 체다치즈에요. 소박하지 않습니까? 계란 후라이 한개 라고요. 소박하지 않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5-06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악 백년의 사랑이라도 식을 것 같아요. 천년정도 되면 모를까.. ㅋㅋ

다락방 2021-05-07 07:59   좋아요 0 | URL
진짜 너무 싫어요. 짱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5-07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그게 사랑에 빠진 초기잖아요. 눈 돌아가면 저는 저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살짝 들거든요.
물론 정신차리고 나면 내가 미쳤지. 니가 미친놈이지 하면서 이불킥에 두고 두고 울분이 솟겠지만, 사랑에 빠진 초기는 이게 약간 정신병적인 상태라서 말이죠. ㅎㅎ

다락방 2021-05-07 08:02   좋아요 1 | URL
아, 저는요 바람돌이님. 그래서 제가 사랑을 머리로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사랑을 좀 생각하면서 한달까요? 소용돌이 치는 감정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고, 그래서 사실 연애는 소용돌이 치는 남자들을 기피하며 했던 경향이 있어요. 소용돌이 치게 만드는 남자는 저기에 두고 감정의 기복 별로 안가져오는 사람들과..
그래서 사실 정신병적인 상태의 사랑경험은 거의 없답니다. 뭐, 그게 자랑은 결코 아니지만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 안에 들어가있다면 저걸 좋아하고 예스 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저 안에 들어가기가 너무 싫어요. 으.. 너무 싫어요 진짜 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5-07 15: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악 저도 너무 싫어요!!!! 저래 놓고 막상 결혼하면 또 달라진답니다? 아이 하나 낳으면 완전 딴사람이랍니다? 세계 공통이랍니다?

다락방 2021-05-07 16:40   좋아요 1 | URL
맞죠! 진짜 있던 정도 다 떨어질 것 같아요. 다 큰 어른이 뭘 저렇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사랑고백인가 몰라요. 으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대신 깨달은 건 있었어요. 연습이 부족해서 생긴 빈틈은 그 원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것으로 메꿀 수 있다는 것. 우리가 구구단은 달달 외워도 인도 학생처럼 19단까지 외우진 못하지만, 곱하기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니 계산해보면 19 곱하기 19까지 써내려갈 수 있듯이요. 괴로울 때는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하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만, 그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잖아요. 어쩌면 K씨에게 AST 309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을 거예요.
이제 301은 굳이 듣지 않아도 되는 쉬운 과목이 됐겠네요.- P70



나는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내 젊은시절을 훅 내 인생에서 들어내도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십대 시절을 나는 '없는 시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 시절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지금과 완전히 다른 인생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 시절의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기 때문이고, 그 시절의 나는 그러나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없던 시절이라 나는 마치 십대에서 바로 삼십대가 된 것 같지만, 그 이십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없었던 이십대에 공부를 했다면 운동을 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대학이란 곳은 내게 배움의 장이 결코 아니었다. 내게 대학은 그저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었고, 나는 대학생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모범적인 대학생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일단 휴학하지 않고 다녀야 하는 곳이었고, 가까스로 학점을 따 졸업할 수 있었다. 학사경고 받았던 시간들이 있었고, 그걸로 딱히 크게 속상해하지도 않았다. 나는 여대를 다녔는데, 지금에서야 '내가 그 때 여성학 공부하기 얼마나 좋은 환경이었는가'를 실감한다. 아울러 다른 공부들도. 교수들이 있고 도서관이 있는 곳에서라면, 마음껏 공부를 하면서 교수님들한테 물을 수도 있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환경이었는가 말이다. 그때 외국어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나는, 대체 나는 그 때 뭘한건가.


졸업하고 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럽고 지저분한 연애를 했고, 그것은 내 인생의 오점으로 남아있다. 그 연애는 나를 오래 질척이게 했지만, 그것은 상대에 대한 그리움에서 오는게 아닌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데에서 오는게 더 크다. 그때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어떤 것들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인데 그 때 너무 멀리 갔다. 지금 내 인생에 그 일이 있는게, 그 남자가 있는게 너무 싫다. 당시에 사랑이라 믿었고 사랑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사랑이 아닌 지저분한 것들만 가득차있고, 내 인생에 그 일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싫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 나는 이 일에 대해 말할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아무리 친하고 다정한 사이라도 이걸 말하는 순간 내게서 떠날 것만 같은 불안함이 내게는 있다. 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이었던 적이 있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식의 인생을, 시간을 살았던 적이 있다.


좋게 말하면 그 이십대의 시간들을, 허우적대고 방향을 잡지 못했던 시간들을 '방황'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내가 되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시간이라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없던 시절이라고 말하지만, 죽어있던 시간들이었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에 분명 나는 나였다. 많이 부족했고 모자랐고 또 싫었지만, 나는 그 당시에도 내 스스로에게 쪽팔리는 걸 견딜 수 없어했다. 그런데 내 스스로에게 쪽팔리는 걸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이십대 시절의 무수한 일들로 인해 알게 되었고, 그러므로 그 때는 괴로웠던 적이 많았다. 아 쪽팔려, 내가 왜 이랬을까, 하던 시간들이 그 때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쪽팔려하는 것을 못견딘다는 것을 알게 된거다. 그 때의 연애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연애였지만, 그러나 순간순간 자존감에 치명타를 입을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나는 또 참지 못하고 상대에게 말했다. 나는 그러므로 가장 못난 순간을 살았어도, 나였다. 너 왜 나를 이렇게 대해? 하는 것은 영락없는 나였지만 그럼에도 내가 확 끊어내지 못한 것은 아직 내가 되기 전의 나였다. 



왜 가장 좋았을 수 있었던 시간을, 가장 빛날 수 있었던 시간을, 왜 그 찬란할 수 있었던 시간을 나는 그토록이나 엉망으로 보낸걸까. 대체 나는 그 때 무얼했나. 그 시절이 내게 남긴건 뭐였나. 나는 그 시절의 나에 대해 수시로 생각하고 수시로 안타까워한다.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이 일이 내게 후회를 가져오지 않을까 수시로 질문하게 된 것은, 그러므로 그 시절에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그 시절은, 내 없던 시절은, 없던 시절이라는 인식으로 내 안에 박혀있다. 그러므로 없던 시절은 없지 않았다. 그리고 심채경의 저 구절을 읽게된 거다.



"괴로울 때는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하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만, 그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잖아요."



내 젊은시절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보고 있었을거라고, 심채경은 말한다. 대체 그게 무얼까. 저 문장 자체는 위로가 되지만 그런데 나한테 적용하면 딱 들어맞질 않는거다. 대체 내가 뭘했는데, 내가 어떤 면을 들여다봤다는 건가. 내가 그때 들여다본 '삶의 다른 면'은 무엇인가. 도통 모르겠는거다. 나는 그 시절에 아무것도 들여다보지 못한것 같은데. 그 시절의 나는 무얼 한게 없는데. 그 시절에 무언가 했다면 나는 달라졌을텐데. 더 나은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더 높은 연봉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학위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때 공부도 안했고 좋은 연애를 한것도 아니고 운동을 한것도 아니고 특별히 가족을 아낀 것도 아닌것 같은데. 대체 그 때 내게 무엇이 있었단 말인가. 심채경이 말한 대로 삶의 다른 면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그랬겠지. 그 젊은 시절이 아무것도 없다한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지 않겠는가. 무얼 봤는가. 나는 대체 무얼 봤단 말인가. 어떻게 인간이 못나질 수 있는지 실컷 경험한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들여다본것이란 말인가. 자존감을 박살내는 방법이라든가 끝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무엇일지 들여다본걸까. 이게 너무 괴롭다. 그래, 삶의 다른 면을 들여다봤겠지. 그런데 대체 내가 본게 뭐란 말인가.


나는 거기에 대해 답을 할 수가 없다. 들여다본게 없어. 나 역시 누군가 과거의 어느 한 시절을 더 잘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면 너는 그 때 다른 의미있는 걸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건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때 했을거라고 생각하니까. 그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니까. 니가 그 때 그 시절 술을 마시고 낭비했다면 그건 그것이 네 인생에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너는 무언가를 깨닫게 됐을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걸 나한테 적용하면 진짜 아무것도 없는 거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신이시여..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표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았다는 걸 떠올린다. 이를테면 뉴욕에 가겠다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겠다든가 하는 것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쭉 이어져오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됐던 과거 그 때에도 나는 내 주변인들에게 늘 부르짖었다. 나 뉴욕에 갈거야, 나 책을 낼거야, 라고. 그 시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았던 삶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긴 했다.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고 졸업후엔 내내 직장생활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삶의 다른 면을 들여다보지 않았노라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매일을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하며 살았다. 나는 없었던 때라고, 바닥으로 한없이 추락했었노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렇게까지 추락햇던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다른 면을 보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그게 너무 후회되는 지점이고, 그게 너무 아쉽지만, 그렇게 나빴을까? 음..


좀 많이 나빴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삼십대 이후부터는 나아졌다. 삼십대 이후 부터는 쪽팔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신경썼던 것 같다. 삼십대 이후 부터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삼십대 이후에는 좋은 연애도 했다. 이것들이 과거의 나를 상쇄시키진 못하지만 나는 좋았던 시절이 있었노라 회상할 수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삼십대의 어떤 시간들을 떠올리며 아 그 때 정말 좋았지, 그 때 정말 행복했어. 인생이 찬란했다, 한다. 가족이나 친구들을 비롯해 나랑 가까운 사람들은 나의 삼십대 시절들을 떠올리며 그 때 너 진짜 행복해 보였어, 너 진짜 좋아보였어 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 아름답고 찬란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은 내게 고스란히 남아있다. 여전히 어떤 시절을 떠올리고 괴로워하고 아파하지만 그래도 어떤 시절을 떠올리고 행복해하기도 하니 뭐, 나쁜 인생은 아닌것 같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 없던 시절들에 대해 잊을 순 없을 것 같다. 그 시간들을 보낸 건 분명 나였으니까. 내가 그때 왜그랬을까. 왜그렇게 어리석고 멍청했을까. 왜, 왜... 왜그렇게 한심했던거야, 대체 왜..



나는 삶의 다른면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분명 그랬다. 그 때는 그게 나였다. 내가 그런 나였던 게 좀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고 지금도 내내 가슴이 아픈채로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은 지금을 산다.





별도 마찬가지다. 멀리 있으면 지구가 6개월에 한 번씩 오른쪽 왼쪽에서 본다고 해도 그 자리에 있는 것같지만, 가까이 있는 별은 위치가 달라 보인다. 반대로 말하자면 시차가 클수록 가까운 별이다. 지구가 일 년 동안 더큰 원을 그리며 돈다면 별의 연주시차는 더 클 것이다. 거리와 각도, 시차를 설명하기 위해 칠판에 옴싹 달라붙어서,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게 애쓰며 점 두 개를 칠판에 찍고는 돌아서서 이토록 흥미진진한 것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던 그 순간, 무미건조한 중년아저씨의 눈에서 반짝, 소년이 지나갔다. 술이나 산해진미도 아니고, 복권 당첨도 아닌데, 하다못해 아름다운 연주씨’를 만난 것도 아니고 그냥 연주시차. 지난 십몇 년 동안 한해에 예닐곱 반에서 똑같은 설명을 했을 텐데 어째서 연주시차 따위가 저 사람을 그리 즐겁게 하는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일 년 뒤, 나는 지구과학 경시대회에 나가서 어쭙잖은상을 탔다. - P11

일기 속에는 두려워하는 내가 있다. 졸업할 수는 있는 걸까 두려웠고, 졸업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려웠다. 어쩌면 졸업 후의 더 큰 두려움을 유예하기 위해 수료생의 고뇌에 천착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도중에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남은 채 버텨내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는 묵묵히 그 길을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다시 새로움을 향해 떠나야 할 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 - P31

별까지의 거리 구하는 공식이 (겉보기등급)-(절대등급)으로 시작하는데, 밝은 별이라 절대등급이 음수인 경우를 예제로 주었더니 마이너스가 두 개 연달아 나오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진지한 얼굴로 물어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360 보다 2가 편한 자연과학 전공자가 있었다. 0보다 작은 수를 쉽게 뺄 수 없는 학생과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못 차는 내가 무엇이 다른가,
같은 깨달음을 얻으며 한 주 한 주가 흘러갔다. - P39

지구도 한때는 황량한 곳이었다. 물도, 생명을 만드는 유기물질도 없이, 금속이 깊이 가라앉아 핵을 만들고, 그 위로 금속보다는 가벼운 암석의 맨틀이, 가장 표면에는 용암과 돌덩어리들이, 그리고 지구 밖우주에서 끊임없이 쏟아져내리는 유성 때문에 만들어진 운석구덩이만이 가득했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의도로 지구에서 생명이 시작된 건 아니다. 수분도 유기물질도 없는 메마른 흙으로는 아담도, 아담을 빚을 질퍽한 반죽도 만들 수 없다. 우주라는 거대한 자연의 순리였다. - P190

반사망원경에 푹 빠진 나머지 400여 개가 넘는 망원경을직접 만든 월리엄 허셜은 망원경 제작 말고도 많은 업적을역사에 남겼다. 그는 요즘 말로 ‘엄마 친구 아들‘이라 불릴만한데, 일단 삼십대 초반까지는 클래식 음악 연주자이자저명한 작곡가였다. 수많은 교향곡과 협주곡을 만들었고,
연주회를 열 정도로 이름난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다. 음악 이론을 파고들던 허셜은 수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더니 곧 스스로 망원경을 만드는 전문 기술자가 되었고, 그 망원경을 이용해 밤하늘의 별을 체계적으로 관측하기 시작했다. 눈으로 볼 때는 별 하나처럼 보이지만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면 쌍성인 별들을 수백 개나 발견해 목록으로 만들었고, 토성 너머의 또다른 행성, 천왕성을 발견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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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은. 지금을 산다.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1-05-09 17:57 
    관계에서 나는 거절 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거절 당할 수도 있는 존재다. 라는 것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난 좀 바보였다. 색맹은 테스트 하기 전 까지 자기가 색맹인지 모르는 것 처럼 나는 관계맹 비슷한 거였던 것 같다. 다른 관계가 가능할 거라는 것을 몰랐으므로 아주아주 밀착된(솔직한, 안불편한, 거리조절이 잘 안되는 가까운)관계만이 ‘진짜’관계라고 여겼다. (그런 관계들에 언제나 술이 함께였음은 최근에 뼈저리게 깨달아가고 있
 
 
잠자냥 2021-05-03 1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와 같은 책을 읽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당신은 다(코타)부장님~ 존경합니다. 딸랑딸랑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5-03 12:27   좋아요 2 | URL
아이참. 다코타 부장님이라니. 저는 정말로 다코타 존슨이 된 기분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코타 존슨도 과중한 업무로 빡쳐하면서 매일을 보내고 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05-03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시기를 벗어나야 보이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가장 아쉬웠던, 기회가 가장 많았지만 아무것도 못했던게 20살이랍니다.
어쩌면 제 인생의 최대?기회 였는데 주변에서 다 부러워했는데 엉뚱한데 정신이 팔려 아무것도 해놓은게 없이 낭비했지요. 아우..그런 일들로 오히려 뒤에 목표한 것들을 성취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해봅니다.더 절실해져서요!😊

다락방 2021-05-04 07:34   좋아요 1 | URL
누가 한 말이었지요?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 너무 아깝다고. 저도 지나고나서야 그 좋은 시절을 대체 왜 그렇게 보냈나 싶더라고요. 특히 공부에 대해서는 더 그래요. 어릴 적에 어른들이 ‘공부도 때가 있다, 열심히 해라‘할 때 그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 너무 큰 후회로 돌아오더라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좀 할걸.. 하고요. 제가 이런 안타까운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얘기를 해도 그 학생들 역시 제 말을 안듣겠지요. 하하하하.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돌이킬 순 없으니 저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열심히 살지 못했던 것, 나쁘게 살았던 것, 공부하지 않았던 것.. 이 모든 것들을 앞으로 남은 생에서 다 해나가야 할 것 같아요.
미미님, 절실하게 읽고 쓰고 공부합시다!

단발머리 2021-05-03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무슨 말인지 알것 같은 페이퍼에요. 저도 지금을 살고 싶은데 이 페이퍼 제목처럼 생각하는 시간들도 많고요. 그나저나 저는 이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천문학자의 글인데 그래서 지루함을 예상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용해주신 문단에서 묘한 끌림이 느껴지네요.

다락방 2021-05-04 07:36   좋아요 1 | URL
저는 무슨말인지 모르겠는 부분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요 ㅋㅋ 그치만 단발머리님은 우주에 대해 좀 아시니까 저보다 더 재미있게 읽으실 것 같아요. 진짜 어릴 때 공부를 해놨으면 이런 책도 더 재미있게 읽었을텐데. 지구과학도 물리도 화학도 못했던 저는 그저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래서 제가 평생 이과를, 공대생을 동경하나봐요. 아오 빡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님 읽으시면 엄청 풍성한 페이퍼가 나올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님, 십년후 이십년후에는 ‘그때 왜그랬을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 최선을 다해 이 시간들을 살아봅시다. 함께 다정하게요!

2021-05-05 0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6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1-05-0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지금을 산다 지금은 지금을 산다...😖 세상에.... 읽으면서 계속 감동이었는대, 마지막 문장이 완벽해서 더 치여버려따... 🥰

다락방 2021-05-08 18:32   좋아요 1 | URL
아이참 ㅋㅋㅋㅋ뭘 또 치이고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부끄럽게 ㅋㅋㅋㅋ

나 저녁으로 동치미냉면에 훈제오리 슬라이스 먹었어요. 배불러요. 그런데 좀 이따가 로제떡볶이 해서 와인 먹을 거에요. 꺅 >.<

- 2021-05-09 17:23   좋아요 0 | URL
제 치임을 글로 써버렸다. 정희진의 반열에 오른 다락방!!!

다락방 2021-05-09 17:32   좋아요 1 | URL
으응? 어디에 썼어요, 어디에??

- 2021-05-09 17:59   좋아요 0 | URL
트랙백 걸었어요 ㅋㅋㅋㅋㅋ 데헷!
 

가끔은 이상한 열망이 타오른다. 하등 쓸데없는 것을 갖고싶어지면 기어코 가져야만 하는 것이 무릇 인간된 도리 아닌가. 음.. 아니고요, 그것은 인간된 도리라기 보다는 나라는 한 개인의 특성 같은 것일테다. 그러니까 나는 책을 갖고 싶다. 
















베트남에서 말레이시아 난민 수용소를 거쳐 캐나다에 정착한 킴 투이의 자전적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책이 좋아서 베트남어로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베트남에서 캐나다로 간 작가라니까, 나는 당연히 처음 쓰여진 언어가 베트남어일 거라고 생각한 거다. 나는 언젠가 베트남에 가 살아보고 싶고, 그래서 공부하지 않았지만 베트남어 교재도 사두었으니, 소설책으로 베트남어를 배울 수 있다면 또 좋은 기회가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킴 투이의 이 소설 [루]는 분량도 적고 문장도 짧게 끝난다. 베트남어를 배우기에 되게 맞춤할 것 같은 거다. 베트남 태생의 여성작가의 소설로 베트남어를 공부한다니, 너무 짜릿하지 않은가. 읽으면서 '다 읽고 베트남어 판으로 사야지 후훗' 하였고, 그렇게 오늘 아침 일어나 이 책의 남은 분량을 다 읽었는데, 아아, 그제야 나는 알게 된다. 이 책의 원어는 베트남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라는 것을. 킴 투이는 이 책을 프랑스어로 썼다. 원서는 불어로 되어있는 것이다. 아아.


그러나 이 책은 인기가 많아서 세계 여러나라에 번역되어 있다고 하니 베트남어로도 번역되어 있겠지. 그렇다면 그렇게 사도 뭐 괜찮을거야. 애초에 베트남어로 쓰여진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뭐 어때. 그런데, 베트남어 책은 어떻게 산담?


나는 알라딘에 킴 투이의 루 를 넣고 검색해봤다. 베트남어는 검색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마존으로 가 역시 킴 투이의 루를 넣고 검색해봤다. 아니, 세상에. 이 책이 인터내셔널한 베스트셀러임은 부인할 수가 없구나. 영어, 불어, 스페인어, 터키어, 중국어, 불가리아어, 페르시아어 다 번역되어 있고 구매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단 하나, 베트남어가 없어. 야!!


니네 나한테 왜이래?


하는수 없이 이베이로 가 검색했다. 역시 베트남어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쩌나?



베트남에 가야한다. 베트남에 가서 서점에 들러 사야 한다. 베트남 태생의 작가이고 세계적인 작가이니 베트남 서점에는 분명 이 책이 베트남어 번역으로 있을 것이다.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베트남에 갔을 때 큰 서점에 들렀던 적이 있던가. 기억을 돌리고 돌려본다. 내가 뉴욕에서는 서점에 간 적이 여러번이지. 가만 있자, 아시아 어디 쇼핑몰의 그 큰 서점, 거기는... 태국이었던가? 마캌오에서도 서점은 갔었고. 하노이..하노이에서 서점은? 아무리 아무리 기억을 해보려고 해도 큰 대형서점에 간 기억이 없다. 롯데백화점 안에 서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 컸던가? 아니, 거기 말레이시아 서점인가? 아아 모르겠다. 하노이에서 서점에 가서 어떤 것들을 봤는지, 내가 서점을 갔었는지, 큰 서점이 있었는지가 기억나질 않아. 그래서 나는 하노이 서점으로 검색해보았는데, 이미 하노이에서 큰 서점에 들렀던 블로거들이 사진을 찍어 올려두었고 아아, 내 마음은 이미 하노이에 가있다. 하노이야... 



하노이로 말할 것 같으면 나에게는 정말이지 너무나 특별한 장소이고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곳이라서, 내가 결국 어떻게든 몇 개월이나마 살아보고 싶은 곳이면서 동시에 수시로 들르고 싶은 곳이다. 몇해전에는 너무 가고 싶어서 금요일 퇴근하고 바로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고 새벽에 하노이에 떨어져서 몇시간 잔 뒤에 토요일을 온전히 하노이에서 보내고 일요일 점심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 적도 있다. 그렇게 훌쩍 떠나고 싶은 곳이 하노이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정말 쓸데없는데 돈과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보이겠지만, 나는 진짜로 내가 원해서, 그렇게 훌쩍, 킴 투이의 베트남어로 쓰여진 소설책을 사기 위해 하노이로 날아갈 의지가 있다. 그러고 싶다. 하노이에 훌쩍 가서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사들고 올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너무나 흥분되고 짜릿해진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갈 수가 없어 ㅠㅠ 

코로나 뭐야 진짜 ㅠㅠ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

왜 이렇게 욕망에 후달리게 만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 킴 투이의 루 베트남어로 갖고 싶어. 막상 가지게 되면 한 장도 펼쳐보지 못하고 역시나 베트남어 글자 하나 익히지 못할 확률이 매우 크지만, 그래도 갖고 싶어. 갖고 싶다고 생각한 이상 가져야겠어. 그런데 어떻게 가질 수 있는거야? 엉엉 ㅠㅠ 베트남어로 쓰여진 루 를 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거야. 나 베트남 가서 책 한 권 사오는거 할 수 있어. 나 그거 좋아. 괜찮아. 나 그거 돈 아깝다고, 시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행할 수 있어.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해. 엉엉. 그러면 나는 이거 언제 가질 수 있어? 가질 때까지 나는 계속 생각하게 될텐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엉엉. 킴 투이 루 갖고 싶어. 엉엉. 



근데 이 책 베트남어로 구할 수 있나 검색해보다가 와, 표지가 다 너무 예뻐서 깜짝 놀랐다. 여러분, 표지 한 번 보고 가자, 킴 투이의 소설들.



































매일 아침 외할아버지의 집 앞에 서 있던 여자가 있었다. 날품팔이꾼이던 그녀는 매일 아침 그 자리에 서서 자기에게 일거리를 주는 남자를 기다렸다. 그리고 매일 아침 외할아버지의 정원사가 바나나 잎에 싼 찰밥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녀는 파라고무나무 농장으로 향하는 트럭 짐칸에 서서 할아버지의 정원사가 부겐빌레아 정원으로 머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느 날 아침 늘 흙길을 건너 아침을 가져다주더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도 …… 또 다음 날도 …… 어느 날 저녁 그녀는 내 어머니를 찾아와 물음표가 가득 그려진 쪽지 한 장을 건넸다. 아무 내용도 없이 물음표들뿐이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인부들을 태우고 떠나는 트럭에서 그 여인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고무나무 농장에도 부겐빌레아 정원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의 정원사가 결혼을 원했지만 그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떠난 것이다. 정원사의 부모가 외할아버지를 찾아와 아들을 다른 도시로 보내달라고 청했고 할아버지가 그 청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아무도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녀가 사랑하던 정원사는 편지 한 장 남기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준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했고, 남자들과 함께 일하러 다니는, 피부가 햇볕에 심하게 그을린 여자였기 때문이다. -p.104-105



그리고 킴 투이의 다른 소설들. 이 아니라 한 권 밖에 없구나.




















어제 친구들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와중에 친구 한 명이 내게 '너를 만나면 나는 좀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아' 라는 말을 해주었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러다보면 그들중 누군가는 특별한 방식으로 특별한 말들을 내게 던지곤 한다. 더 선명해지는 것 같은 그 느낌은 도대체 어떤건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친구에게 그것은 긍정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그렇게 말한 뒤에 '그래서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라고 덧붙였다. 나는 발그레져서 웃었다. 누군가에게 어떤 좋은 느낌을 준다는 것,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된다는 건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친구는 글로만 나를 보았을 때도 내가 좋았다고 했지만 만나고 나서는 더 좋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졌는데 만나고나서 그 호감이 더 커졌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도 또 상대에게도 모두 좋은 일일 것이다. 애정을 표현하면서 사는 일은 분명 인생을 좀 더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얼마전에는 어떤 이로부터 비밀댓글이 달렸다. 내 음식 페이퍼를 좋아한다는 거였다. 역경을 헤치고(응?) 기어코 해내는 글을 읽는게 너무 좋다는 거였다. 아니.. 너무 좋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는 그냥 나로서 존재하고 나로서 글을 쓸 뿐인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여기 이렇게 있는 나로부터 좋은 점들을 막 끄집어내서 좋아해준다. 인생은 진짜 졸라 살아볼만한 거야...



자, 나는 이제 조카들을 보러 가기 위해 준비하겠다. 빠샤.






아버지는 혹시라도 공산주의자들이나 해적들에게 잡힐 경우 청산가리 알약으로 가족 전부를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영원히 잠들게 할 계획을 세웠다.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다. 어째서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어째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서 미리 앗아가려고 했는지. - P18

사람들은 자꾸 잊어버리지만, 남편들과 아들들이 등에 무기를 지고 다니는 동안 여인들이 베트남을 짊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자꾸 그 여인들을 잊는 것은, 그녀들이 원뿔형 모자를 쓴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묵묵히 해가 질 때까지 버텼고, 그런 뒤에는 정신을 잃다시피 잠에 빠졌다. 잠이 밀려오는 동안에도 어디선가 산산조각이 나 있을 아들의 몸을, 혹은 난파선처럼 강 위를 떠다닐 남편의 몸을 떠올렸다. - P63

나도 골목길로 달려 나가 이웃 아이들과 돌차기 놀이를 하고 싶었다. 나는 쇠창살이 달린 창문 앞이나 발코니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우리 집은 2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이고 그 벽 위에는 감히 넘어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유리 조각들까지 박혀 있었다. 창문 앞에서 혹은 발코니에서 바라보노라면, 벽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지 반대로 우리가 삶에 다가갈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는지 헷갈렸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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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5-01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랫동안 어떤 분을 글로만 만나고 글로만 좋아하다가 실제로 그 분을 만났는데 만나고 나니 훨씬 더 좋았던...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 날, 그 해 최고로 더웠던 그 여름날이 생각나네요. 호호. 예쁜 조카들과 좋은 시간 보내고 오시어요^^

다락방 2021-05-03 12:18   좋아요 1 | URL
예쁜 조카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고 왔어요. 첫째랑은 같이 팔뚝살 빼는 운동을 따라했고 ㅋㅋㅋㅋㅋㅋㅋ 둘째랑은 축구게임기를 했답니다. 조카들 너무 사랑스러워요!

저 역시도 좋은 분을 오프에서 만나고 더 좋아진 경험이 있답니다. 그리고 내내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고요. 그 분 생각을 할 때면 내가 참 복이 많구나, 싶어요.
:)

붕붕툐툐 2021-05-0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부장님의 스케일은 정말 최고십니다! 제가 하노이에 반짝 방문을 했다면 그것은 책이 아니라 반미 때문이었을텐데.. 존경합니다. 다부장님!

다락방 2021-05-03 12:19   좋아요 1 | URL
저는 하노이에 갈 때마다 반미를 사먹곤 하지요. 물론 쌀국수 쌀국수 쌀국수 사이에 반미를 넣는 것이긴 합니다만. 반미 너무 좋아합니다. 흑흑.
그렇지만 이번엔 책 한권을 사겠다는 이유로 가고 싶어요. 언제쯤 갈 수 있을까요, 툐툐님? ㅠㅠ
툐툐님, 우리 세월 좋아지면 하노이에서 만나요! 하노이에서 만나서 함께 반미도 먹고 수다도 떨고 술잔도 부딪치도록 합시다!

붕붕툐툐 2021-05-04 16:20   좋아요 0 | URL
앗! 다부장님의 초청 너무 영광입니당! 저야 당장 따라가죠!! 하노이를 다부장님의 도시로 기억하겠습니다!ㅎㅎ

2021-05-01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3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5-02 0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노이가 그렇게 좋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도 가보겠습니다. 코로나 끝나면.... ^^
어떤 작가의 책이 좋다고 꼭 그 언어로 된 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데, 다부장님은 역시 남다르고 훌륭한 취미를 가지셧습니다. 저는 여행갔다가 서점에 가면 주로 화집이나 사진집 종류로 한두권씩 사오는데 돌아와서는 다시는 안본다는 단점이 있더라구요.

다락방 2021-05-03 12:24   좋아요 1 | URL
저는 하노이가 왜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쌀국수도 좋고 날씨도 좋아요. 가면 정말 특별하게 하는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저 쌀국수 먹고 그저 걸어요. 그게 다인데, 그게 그렇게나 좋습니다, 바람돌이님. 저는 하노이를 그냥 사랑하는 것 같아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저 하노이 그 자체를 사랑하는데, 그것이 어쩌면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남다르고 훌륭한 취미를 가졌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냐하면 그 작가의 원서를 갖고 싶단 생각을 제가 평소에 하진 않기 때문이죠. 베트남이라서 그랬습니다, 베트남이라서! ㅋㅋㅋㅋㅋ

저는 마카오 갔다가 오르한 파묵의 책을 포르투갈어로 사왔는데 그게 책장에 꽂혀있고 대체 그걸 왜 샀는지 모르겠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수이 2021-05-02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남 후 좀 더 선명해진다는 말을 한 친구의 마음을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제 가늠으로는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이 친구를 만나니 나는 무엇을 하고싶고 어떤 길을 걷고싶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싶다는 구체적인 방향성. 하나밖에 없는 인생이니까 가급적 아름답고 밝고 경쾌하게 살고싶을 거 같은데 살다보면 또 길을 잃고 헤매게 되고 그러니까 근데 락방님은 강인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그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역할을 하는듯 싶어요. 음식 페이퍼에 댓글 단 그분 말씀대로 ‘역경을 헤치고 기어코 해내는’ 그런 에너지.

저도 다락방님 만나면서 그런 걸 느껴서 친구 말 이해할듯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 썬데이😊

다락방 2021-05-03 12:26   좋아요 1 | URL
자꾸 물으면 되는것 같아요, 자꾸 물으면요. 나 자신에게 자꾸 물으면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자꾸 묻고, 순간의 감정들을 캐치하는 능력들도 필요할 것 같아요. 아 이 순간이좋다, 이건 싫다 할 때마다 그걸 좀 들여다보면 그러면 방향은 점점 더 선명해지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누군가 에너지를 나누어준다고 해서 모두가 그걸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걸 받고자 하는 사람들일 때, 받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그래서 액션을 취할 때, 바로 남이 주는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에너지를 나눠준다고 생각했다면 수연님은 그 에너지를 이미 받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든, 결국은 자신이 하는 거니까요. 수연님은 잘 하고 계신겁니다. 설사 제가 아니었다해도 누군가 나누어준다면 받아낼 분이시고요.

:)
 

며칠전에 퇴근후 남동생 집에 가 실컷 아가 조카를 안아주고 남동생과 소곤소곤 술을 마셨더랬다. 남동생은 아이가 태어나고나서 술을 안마시고 지내고 있다가 아주 오랜만에 술을 마신 거였다. 기분이 좋았는지 취하지도 않고 우리는 계속 마셨는데, 대화중에 WWE 레슬링 선수 '숀 마이클스'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남동생과 나는 모두 그 선수를 좋아했었다. 이제 그 선수의 경기를 볼 수 없다는게 서운하다는 얘기도 했고, 그러다가 내가 '자서전 나오면 읽어보고 싶어' 했더니, 남동생은 '나왔어!' 하는게 아닌가. 뭐라고? 검색해보니 이미 몇 년전에 자서전이 나왔는데 번역본이 없는 거였다.



















페이퍼백, 하드커퍼, 오디오북.. 난리가 났네.

여튼 이렇게 나온걸 알고 좋긴했지만 번역본이 없다니 낭패네, 번역되어야 읽지, 하면서 내가 남동생에게 '원서 사주면 너 못읽지?' 했더니 '못읽긴 왜 못읽어' 하는거다. 야, 가능하겠어?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그래서 내가 '그러면 사줄까?' 했더니, '사줘' 하는거다. 이 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심? 진심! 진짜? 진짜! 너 읽을 수 있어? 읽어보지, 뭐! 이래가지고 충동적으로 그 밤에 주문을 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문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러고 알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랬는데, 어제 출고되었다는 문자가 와서 남동생과 공유했다. 그러자 남동생이 말했다.


"술김에 산 책이 드디어 오는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니까 나로 말하자면 술김에 원서 사는 사람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물론 내가 읽을 건 아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책 '사는 것'에 진심인 사람, 나야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완전 잊고있다가 어제 문자 보고서 '아 맞다 이거 주문했지!' 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오랜만에 혼자가 되는 날이었다. 나는 며칠전부터 혼자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설렜다. 마침 와인도 선물 받았어. 완전 꺄울이다.

내가 혼자가 되면 되게 행복해한다는 걸 알고 있는 동생들은 어제 톡을 보내왔는데 남동생은 '벌써부터 오늘 저녁 안주를 생각중이겠군' 하길래, '장난하냐? 안주 선정 며칠전에 다 끝냈고 준비도 완료됐다' 하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집에 가기만 하면 되지롱~ 나는 안주에 진심인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순만 어제 점심시간에 샀다. 금세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미리 준비할 수가 없어서 기억하고 있다가 점심 먹고 마트 가서 사고 회사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퇴근 전에 꺼내 가져가서는 휘리리릭~ 나는 안주를 준비했다.



내가 준비한 건 슬라이스 훈제 오리였다. 훈제 오리 좋아하는데 구워먹기 번거로워서 혼술 안주로는 얇게 슬라이스된 오리가 딱이다. 구워먹으면 더 맛있긴 하지만 전자렌지 1분 완성 되어버려. 쌈무와 무순과 양파를 준비해서 샤라라랑 차려내고~





이것만으로는 어쩐지 허전하지, 후훗. 냉장고에 항상 준비되어 있는 또띠아로 피자를 만들자. 내게는 올리브도, 피자치즈도, 스파게티 소스도 있다! 햄 대신 슬라이스 훈제 오리를 올려버렸! 루꼴라 대신 무순을 올려버렸!! 나는 요리의 신, 요리의 천재!





그렇게 차려낸 한상이다.




아 너무 좋아.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티비 앞에 앉아서 채널을 돌리는데 또 마침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시즌2를 보여주는거라. 세상에.. 아니 이게 무슨 꿀맞춤이야.. 으하하하하.

신계숙 교수님 제주도 가셨네요. 빵 드시고 요리 하시고 너무 좋네요. 음화화핫.

이번 제주도에 신화의 멤버 김동완과 함께였는데, 신계숙 은 김동완에게 '해보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것이 있느냐' 물었고, 이에 김동완은, '있다, 결혼이다' 라고 답했다. 연애를 하고 두번 실패해보니 이제 겁나서 더 하게 되지 않더라는 거였다. 신계숙은 이에 두 번 실패했으니 세번째는 성공이지 않겠냐. 엉덩이를 들고 문을 열고 나가서 해라, 라고 조언해줬다.


김동완에게 그게 결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각자 다른 것일 수 있을테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 그게 무엇이든 신계숙의 조언은 통할 것이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라, 문을 열고 나가라, 하라.





넷플에서 이런 영화가 있다고 알려줘서 춤 영화니까 닥치고 봤는데, 그동안 봤던 춤 영화 중에서 가장 매력없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스토리는 전형적이다. 발레 유망주가 발레 오디션을 앞두고 힙합에 빠지게 되고 힙합을 추면서 자신이 날아오르는 것을 느껴서 발레를 포기하고 이 과정에서 아빠랑 갈등을 겪고 그리고 힙합 오디션을 보러 간다는 내용. 근데 여자주인공도 남자주인공도 너무 매력이 없어... 신기하게 매력이 없다.


요즘은 매력에 대해서 생각한다. 일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외모가 출중하고 성격이 밝고 그러니까 딱히 흠잡을 데가 없어도 매력이 없는 건 어째서인가. 매력이란 대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생각해보는데 이것은 그저 개인과 개인의 합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흠잡을 데 하나 없는데 이상하게 매력없네' 하는 경우가 생겨버려. 인간은 개개인이 다 다른 존재이다 보니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누군가는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누군가는 싫어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를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나의 안티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를 매력적이라 생각하지만 또 누군가는 와 무매력이다.. 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 어쨌든 영화속 주인공들 너무나 매력 없어서, 춤 영화면 일단 춤을 잘 추는 것만으로 매력포텐 팡팡 터지는데 그것이 안된다니 참으로 신기하다 생각했다. 나는 다코타 존슨이 좋아. 날 닮은 다코타 존슨.


(죄송합니다..)



요 며칠은 포기에 대해 생각했다. 포기할거야, 포기할거다, 라고.

어제 친구는 나의 고민에 '그냥 해, 질러버려' 했다. 신계숙 교수의 조언과 일치하는 조언을 해준 셈. 늘 나는 생각이 많다는게, 복잡하다는 게 친구의 말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걍 해버렷, 이라고 했는데. 나는 왜 그럴 수 없는가. 무엇이 나를 막는가. 만약 앞으로 가지 못하면 포기해야 하는데 왜 포기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고 속만 끓이나...



강수지의 노래나 듣자.

강수지 노래 가사 중에 '세월이 지나면 그때서야 알거야, 얼마나 내가 소중했는지, 그리고 나로 인해 행복했음을' 이란 부분이 나오는데, 마침 어제 본 티비에서도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줄 알았다'는 구절이 나오더라.


바보야,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줄 알면 안돼. 꽃이 한창 피었을 때 지금이 봄이로구나, 하고 봄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야 하는거다. 알간?


이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이 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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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4-30 1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코타) 부장님 ㅋㅋㅋㅋㅋ 아 진짜 부장님 캐릭터 너무 재미난 거 아닙니까?
다(코타) 부장님은 술 마시다가 술김에 레슬링 선수 관련 원서 사는 사람
다(코타) 부장님은 점심 시간에 안주 사다가 회사 냉장고에 쟁여놨다가 퇴근하는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다(코타) 부장님의 이 매력을 아는 사람이랑 연애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4-30 10:41   좋아요 3 | URL
정말이지 매력 철철 넘치는 캐릭터 아닙니까? ㅋㅋ 안주에 진심인 사람, 책 구매에 진심인 사람, 무엇보다 충동적이면서 계획적인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애 너무 피곤하고 지겨워서 내팽개쳤었는데 요즘엔 흐음, 다시 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긴 합니다. 봐서, 하게 되면 해야겠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제가 뭐 한다는 건 아니고, 뭐 그렇다는 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한 손으로 계란 까는 사람이랑 연애하고 싶습니다. 전완근과 등근육과 피땀눈물.....

그럼 이만.

blanca 2021-04-30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질러버려, 이게 뭘까...음....ㅋㅋ 사랑이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하고 가요.

2021-04-30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30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3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4-3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의 신, 요리의 천재 인정입니다~ 저희집 루꼴라가 좀 더 자라면 피자 위에 사뿐히 올려드리겠습니다~🙆

다락방 2021-05-03 12:28   좋아요 1 | URL
무순을 처음 올려봤는데 나름 괜찮았습니다. 그렇지만 루꼴라라면 더 좋겠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루꼴라를 키우고 계신다니 아아 툐툐님 넘나 멋지십니다!! ㅠㅠ

2021-05-01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1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1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