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위기 - 정치에서의 거짓말.시민불복종.폭력론 한길그레이트북스 117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다. 우리는 공화국에 산다. 그런가? 그렇다고 대답을 해야 한다. 공화국에서는 국민들은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하며, 자신의 정치적인 참여를 제약받지 않아야 한다. 표면상으로, 우리나라는 헌법이라는 권력 유지 체제를 지니고 있어서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공화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어 있고, 탈법에 범법까지 자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위임받은 권력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국민들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

 

그렇다고 폭력 상황으로 나아갔냐면 그것은 아닌데, 연일 폭력이라고는 학교폭력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정치권력이 붕괴되고 있는 지금, 학교폭력을 다루면서 정치권력의 붕괴를 희석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의 눈길이 가기도 한다.

 

이 때 아렌트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왔다.

 

"자신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가 반대하지 않을 때는 일단 자기가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아렌트가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말하고, 이를 집단적으로 말할 때 시민불복종이 된다고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은 우리가 동의한다고 여기고 자신들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 애쓸 것이다. 그러니 그건 내 양심에 맞지 않아 하고 속으로만 불평해서는 안되고, 이를 행위로 나타내야 한다. 이처럼 시민불복종은 결코 양심의 운동이 아니며,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행사하는 행위에서 나오는 권력이라고 한다.

 

그렇다. 양심이 아니라 행위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아니면 벌어졌던 수많은 행위들은 -촛불부터 희망버스, 희망비행기, 하다못해 삼보일배까지- 나 자신의 양심 선언이 아니라, 우리들의 시민불복종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한가지가 빠져 있단 생각이 든다.

 

그 무엇은, 이 생각들이 우리들의 양심에 의해서 행위한다가 아니라, 우리의 이런 행위들이 하나의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를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집단의 의견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행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행위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행위들은 단발성으로 끝나고, 결코 사회를 변혁시키지 못하게 된다. 아렌트의 시민불복종이란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면 그렇게 된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서는 이러한 변혁을 추동할 집단이 없다는 점과, 그리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젊은세대의 부족이 원인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이 책 마지막 부분에 실린 아렌트의 말

 

"대학은 젊은이들이 수년 동안 모든 사회적 집단과 사회적 의무에서 국외자의 입장에 서게, 즉 진실로 자유로울 수 있게 해줍니다."

 

이 말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민불복종이 사회변혁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학은 학생을 자유롭게 해주지 못하고, 학생을 자본의 틀에 얽매이게 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가장 자유로울 세대가 가장 자유롭지 못하다는 역설이 성립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권력의 누수가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체 권력은 형성되고 있지 않다. 준비된 집단이 없다는 말과도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흐른다면 이 사회는 어느 정권이든, 권력이 새는 상태로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으리라.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꿈꾼다면, 그것은 개인에게서가 아니라 집단에게서이다. 이를 명심한다면, 이 책의 1부에서처럼 정치권 자신도 자신들이 속고 있는 상황일테니, 우리가 현실을 바로 보는 태도를 지니고, 우리라는 집단의 의견을 형성해서 이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얼마나 좋은가? 이미 우리는 너무도 좋은 수단들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이 책, 특히 시민불복종 부분, 참조할 사항이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화국의 위기 - 정치에서의 거짓말.시민불복종.폭력론 한길그레이트북스 117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1년 10월
장바구니담기


사실적 진리에 대한 고의적 부정(거짓말 하는 능력)과 사실을 변화시키는 소질(행위하는 능력)은 서로 결부되어 있다. 이 둘은 동일한 근원에 의존한다. 그것은 상상력이다. -36쪽

진리는 비록 공적으로 명백히 드러나지는 않는다하더라도 모든 거짓에 대해 확고한 우선성을 갖고 있다.-66쪽

불복종 시민은 집단의 일원으로서만 기능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94쪽

불복종 시민들...공통 관심보다는 공통 의견을 함께 하는 조직적 소수자들이며, 또 다수에게 지지받는 정부 정책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부 정책에 반대 입장을 취하기로 한 결정을 따른다. 그들의 일치된 행동은 서로 간의 동의에서 생겨나며, 이러한 동의는 그들이 애초에 어떻게 합의하게 되었든 간에 그들의 의견에 대해 신뢰와 확신을 준다.-95쪽

양심의 규칙...전적으로 부정적 방식을 취한다. 그것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지 않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말한다. 그것들은 행위를 취하기 위한 어떤 원리들을 밝혀주지 않으며, 어떠한 행위도 벗어나면 안되는 한계만 설정한다.-103쪽

양심의 규칙은 자아에 대한 관심에 달려 있다. 그것은 당신이 평생 지니고 살 수 없는 어떤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한다.
... 정치적, 법적 난점은 이중적이다. 첫째, 그것은 일반화될 수 없다. ... 두 번째 난점은 만약 양심이 세속적인 용어로 정리된다면, 양심은 인간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선천적인 능력을 소유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관심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무는 바로 이러한 관심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 '선한 인간'과 '좋은 시민'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105-105쪽

저잣거리에서 양심의 운명은 철학자가 추구하는 진리의 운명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의견이 되어 타인의 의견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의견의 강도는 양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 사람들의 수에 의존한다. -109쪽

시민불복종이 일어나는 것은 상당수의 시민들이 변화를 이루어낼 정상적 통로가 더이상 기능하지 못하고 불만이 더 이상 청취되지 않거나 처리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 또는 그와 반대로 정부가 그 적법성과 합헌성이 심각히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어떤 변화를 꾀하거나 정책에 착수하고 추진한다는 확신이 들 때이다. -116쪽

시민불복종은 현상에 대한 필요하고 바람직한 보존이나 회복을 지향할 수 있다. 이러한 어떠한 경우에도 시민불복종이 범죄적 불복종과 동등시될 수 없다.-117쪽

이의는 합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또한 자유 정부의 표지이다. 자신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가 반대하지 않을 때는 일단 자기가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132쪽

약속이란 인간적으로 가능한 정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게 하는 독특한 미래 규제방식이다.-137쪽

혁명사를 살펴본다면, 그 길을 이끈 사람은 억눌린 자들이나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은 억눌리거나 낮은 지위로 떨어지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것을 견디지 못한 자들입니다.-273쪽

혁명가들은 언제 권력이 거리에 있는지, 그리고 언제 그것을 집어들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275쪽

대학은 젊은이들이 수년 동안 모든 사회적 집단과 사회적 의무에서 국외자의 입장에 서게, 즉 진실로 자유로울 수 있게 해줍니다.-278쪽

자유는 항상 거부의 자유를 함축합니다.-29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의 조건 한길그레이트북스 11
한나 아렌트 지음 / 한길사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조건,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책이기도 하고, 인간의 삶을 조건지우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책이기도 하다.

 

유명한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노동, 작업,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세가지 조건이라고 한다. 여기에 사유니 관조니 하는 다른 요소들이 있기는 하지만, 활동적 삶이라고 하는 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서는 노동, 작업, 행위가 주요 요소로 나오고 있다.

 

노동은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에서, 필연성에서 도래하는데, 이는 우리에게 자유를 느낄 틈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한다. 여기에 자유가 개입할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노동은 순환적이다. 이는 자신의 후손들을 생산하는 데서, 즉 다산성으로 나타난다. 노동의 필연성이 다산성을 유발하고, 이 다산성이 인간의 조건을 형성한다.

 

그러나 죽음의 존재들은 불멸을 꿈꾸기도 한다. 아니 꿈꾼다. 의식이 있는 존재가 자신의 유한성을 깨달았을 때, 그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생각이 없는 존재, 즉 사물에 불과하다. 그러한 불멸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작업이다. 자신이 생산물을, 즉 노동에서처럼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지고 마는, 그래서 사라져서 순환성을 일으키는 노동 생산물이 아니라, 순환성을 깨는 불멸성을 지니는 대상을 창조하는 노력이 바로 작업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꿈꾸며 자신의 현존을 후대에게도 알리고 싶은 욕구가 바로 작업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과 작업은 결국 생산물에 관계하고, 이는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공론 영역, 즉, 공적인 영역이다. 이 공적 영역을 정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고, 정치 영역을 구성하는 인간의 조건이 바로 행위이다. 이 행위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던지는 용기가 필요하고, 이 용기는 바로 자유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또한 이 행위는 바로 나와 같은 남을 전제로 해야만 하기 때문에, 행위에 대한 용서와, 남을 의식한 약속 이행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고 한다.

 

나와 남이 관계를 맺어가는 공간에서는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용서와 믿음이 필수적이라고 하는데, 이를 행하는 공간이 바로 정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물학적인 삶을 유지하는 공간이 아닌, 실존적인 삶을 영위하게 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략 정리를 하면 노동과 작업은 개인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이를 사적 영역이라고 하자. 행위는 공적 영역, 요즘 말로 하면 사회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태어남이라는 기적을 지닌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요소로 노동과 작업을 지니고 있다면, 같은 기적을 지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간적 삶을 유지하는 요소에는 행위가 있다.

 

이러한 행위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노동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는 사태가 지금의 현실이고, 우리는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유의 힘을 필요로 한다. 노동이 행위를 전복시키고, 노동행위만이 전면에 나서게 된 이유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있지만, 이에 몰입하다보면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자유를 상실하고, 필연성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바로 이 현실을 직시할 정신의 힘, 아렌트가 나중에 전개하고자 했던 사유, 의지, 판단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인간의 활동적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므로, 노동, 작업 ,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쉽지 않은 책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잘 이해했는지 알 수 없는 책이다. 많은 부분이 그리스 철학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근대 철학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핵심을 잘 잡아내기 힘들다. 철학적 소양이 부족한 나에게는 말이다.

 

다만, 그냥 내 맘대로 이해하고, 이를 내 삶에 적용시켜야지 하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고 나간 책인데...

 

과연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일까...지금, 우리 시대에 어떤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인간적인 삶을 향유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의 조건 한길그레이트북스 11
한나 아렌트 지음 / 한길사 / 1996년 8월
구판절판


지구는 가장 핵심적인 인간 조건이다.-50쪽

말의 적실성이 위태로운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문제들은 당연히 정치적이 된다. 왜냐하면 말은 인간을 정치적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52쪽

활동적 삶이라는 용어로 나는 인간의 세 가지 근본활동을 나타내고자 한다. 노동, 작업, 행위가 그것이다.
... 노동은 인간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 작업은 인간실존의 비자연적인 것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 작업은 자연적 환경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인공적' 세계의 사물들을 제공해준다. ... 작업의 인간조건은 세속성, 다시 말해 대상성과 객관성에 대한 인간 실존의 의존성이다.
...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유일한 활동이다. 행위의 근본조건은 다원성으로서 인간조건, 즉 보편적 인간이 아닌 복수의 인간들이 지구상에 살며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상응한다. ... 다원성은 모든 정치적 삶의 '필요조건'일 뿐만 아니라, '가능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절대적 조건이다. -55-56쪽

인간조건은 지상의 삶을 영위하는데 인간에게 주어진 제반조건 그 이상을, 즉 인간적 제약성 자체를 의미한다.
... 인간의 삶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은 무엇이든 인간의 실존조건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이것이 바로 인간은 무엇을 하든 언제나 조건지어진 존재라고 하는 이유이다.-57-58쪽

행위만이 인간의 배타적 특권이다. ... 행위만이 오로지 '타인의 지속적인 현존'을 자신의 전제조건으로 삼는다.-74쪽

대부분의 정치적 행위는 그것이 폭력의 영역 밖에서 아루어지는 한, 말을 통해 실행되며 또 더 나아가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발견하는 것이 행위라는 점이다. 말로 하지 않는 것은 단지 폭력이다. ... 정치적이라는 것, 즉 폴리스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힘과 폭력이 아니라 말과 설득을 통하여 모든 것을 결정함을 의미한다.-78쪽

단순한 삶의 필연성을 지배하고 노동과 생산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자신의 생존에 대해 모든 피조물이 갖는 내적 충동을 극복하는 정도에 이르러서 더이상 생물학적 과정에 매여 있지 않게 되었을 때, 이를 '좋은 삶'이라 부를 수 있다.-89쪽

공동세계의 조건에서 실재성을 보증하는 것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본성'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과 관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언제나 같은 대상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 공동세계의 파괴는 대개 한 대상이 인간의 다원성 속에서도 자신의 동일성을 드러내고 유지할 수 있는 다영성이 파괴됨으로써 실행된다. ... 공동세계는 오직 이 세계의 관점들의 다양성 속에서만 실존한다.-111-112쪽

사적 영역과 공론 영역의 구별이 필연성과 자유, 무상성과 영속성, 수치와 명예의 대립과 일치하더라고... 두 영역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한편으로는 숨겨져야 할 것이 존재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공적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127쪽

제작인은 군주이자 지배자이다. ... 제작인은 장차의 생산물의 이미지를 가지고 혼자서 자유롭게 생산할 수 있고, 다시금 자신의 손으로 만든 작품에 홀로 맞서서 자유롭게 파괴할 수 있다.-202쪽

가치는 사물이 사적 영역에서는 결코 소유할 수 없지만 그것이 공적으로 나타나는 순간 자동적으로 획득하는 질이다.-223쪽

말과 행위의 기본 조건인 인간의 다원성은 동등성과 차이성이라는 이중의 성격을 지닌다.-235쪽

말과 행위로서 우리는 인간세계에 참여한다. 이 참여는 제2의 탄생과 비숫하다. ... 이 참여는 우리가 결합하기를 원하는 타인의 현존에 의해 자극받는다. -237쪽

사람들은 행위하고 말하면서 자신을 보여주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인격적 정체성을 드러내며 인간 세계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다.-239쪽

제작은 세상에 둘러싸여, 세상과 끊임없이 접촉하면서 이루어진다. 행위와 말은 타인의 행위 및 말의 그물망에 둘러싸여 그것과 끊임없이 접촉하면서 이루어진다.-249쪽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곳에서, 말이 공허하지 않고 행위가 야만적이지 않은 곳에서, 말이 의도를 숨기지 않고 행위가 실재를 현시하는 곳에서, 권력은 실현된다. 그리고 행위가 관계를 침해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립하고 새로운 실재들을 창조하는 곳에서만 권력은 실현된다. 행위하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잠재적 현상 공간인 공론 영역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권력'이다.-262쪽

행위의 불행은 모두 인간조건인 다원성에서 발생한다. 다원성은 공론 영역인 현상의 공간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러므로 다원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공론 영역 자체를 제거하려는 시도와 같다.-284쪽

자신이 무엇을 행했는가를 알지 못하고, 알 수 있다 할지라도 행한 것을 되돌릴 수 없는 무능력인 환원불가능성의 곤경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은 용서하는 능력이다. ... 미래의 불확실성인 예측불가능의 치유책은 약속을 하고 또 그 약속을 지키는 인간의 능력에 내재해 있다. 이 두 능력 가운데 하나인 용서하는 능력이 ... 과거의 행위를 구제한다는 점에서 이 두 능력은 동질적이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능력은 미래라는 불확실성의 바다에 안전한 섬을 세우게 한다.-301쪽

예측불가능성은 '인간 마음의 어두움', 즉 오늘의 이 사람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에서 발생하며, 동시에 모든 사람이 동일한 행위능력을 가지는 동등한 사람의 공동체 내부에서는 행위의 결과들을 예견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에서 비롯된다. ... 약속의 능력은 인간사의 이러한 이중적 어둠을 극복하는 기능을 한다. -309쪽

활동적 삶은 자신의 유일한 준거점인 삶에 구속되어 있다는 오로지 이 이유 때문에 인간과 자연의 노동하는 신진대사인 삶 자체는 능동적으로 될 수 있고 자신의 완전한 다산성을 펼쳐보일 수 있다.-389쪽

사유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가능하며 또 실제로 이루어진다.-39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시와 불교 살림지식총서 256
오세영 지음 / 살림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불교와 시의 연관성은.

그런데 언뜻 생각해 보아도 불교와 시는 상당히 연관이 있다.

부처가 그 많은 말들을 해놓고도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역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온갖 상징들.

그리고 이렇듯 언어를 절대시하지 않지만, 또한 언어로부터 진리를 설파할 수밖에 없는 모습.

비록 염화시중, 이심전심, 교외별전이라는 말로 언어로부터 독립한 진리의 설파를 더 강조하고 있지만.

 

시란 말을 분석해보면, 시는 말과 절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또한 절이라는 말은 땅과 마디로 나뉘어져 있고, 결국 시란 아주 작은 땅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생계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사람들의 언어가 중언부언 길어질 이유가 없으니, 시가 추구하는 모습과 너무도 비슷할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든다.

 

불교와 현대시의 연관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아주 작은 책이다. 이 작은 책을 다시 3부로 나누고 있는데, 1부는 불교와 시의 연관성을 불교와 시의 특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점을 이론적으로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어, 불교와 현대시의 관련성이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2부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분석하고 있다. 거창하게 독립을 염원한 시다, 아니 그런 거창한 의미를 찾기 보다는 이 시는 그냥 이별을 다룬 시다 등등 많이도 해석이 되어 이 시를 우리나라 형이상시, 또는 사상시의 세계를 개척한 시라고들 말하는데, 여기서는 선시(불교시)의 관점에서 해석을 하고 있다. 절대 진리의 세계를 추구하는 선시라고 말이다. 또 하나의 타당한 해석이 이 시에 붙여지고 있으니, 좋은 시는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되고, 향유가 된다는 사실을 한용운의 시를 통해 알 수 있으니, 이 부분은 시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참 좋겠단 생각이 든다.

 

3부에서는 조오현의 시조를 이야기하고 있다. 선시, 즉 불교시를 다루는데, 일반인들이 깨달음을 쓴 시를 다루기보다는 스님이 쓴 선시를 이야기하는 편이 이해하기에 훨씬 쉬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조오현의 시조는 일상의 감정에서부터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시조까지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이 책의 제목과 연관되는 시조는 후기의 시조이리라.

 

스님으로서 깨달음을 얻은 경지를 시조로 표현하고 있고, 이 조오현의 시조가 지니는 의의는 한시로 표현하지 않고, 이를 우리의 전통적인 시가 형식인 시조로 표현하고 있는데 있다고 한다. 그렇다. 천 년을 넘게 이어져 온 이 시조 양식 속에 깨달음을 담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조오현의 시조는 선시조로서의 면모도 있지만, 우리의 형식을 살려, 그 속에 깨달음을 담았다는 문학사적 특서오 지니고 있게 된다. 이 점을 이 작은 책에서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그렇다고 어렵다고 할 수만은 없다. 2부와 3부는 쉽게 다가온다. 그리고 시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 가까이 두고 읽어볼만한 책이다.

 

덧말

 

조오현 스님의 "절간이야기"란 시집이 있다. 앞부분은 산문시이고, 뒷부분이 이 책에서 이야기한 시조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앞부분 산문으로 길게 쓰인, 이야기가 있는 그 시들, 참 좋다. 가슴이 뭉클하다. 한 번쯤 읽어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