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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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관한 한 편의 서정시같다. 서정시? 마음에 와닿기는 하는데, 무어라고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나는 감동받았어. 하지만 어떻게 설명은 하지 못하겠네. 그냥 좋아. 이 정도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


로벨리 책을 몇 권 읽었다. 최근 과학계에서도 한참 앞서가는 사람이라는 소개가 있는데, 고전물리학도 잘 모르는 처지에, 양자물리학의 첨단에 서 있는 학자의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해한다고? 그렇지도 않다. 무언가가 잡힐 듯한데, 개념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로벨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흐릿하다.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라고 해야 하나. 엔트로피가 낮으면 단순하니, 명확할 수 있겠다. 바로 과거가 그렇다고 한다.


복잡한 일들을 정리해서 단순화한 것. 그것이 과거 아닌가. 그래서 과거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쉽다고 한다. 반면 미래는?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혼란 상태다. 혼란 상태기 때문에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 엔트로피는 증가하지 감소는 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는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계속 복잡하고 혼란한 상태. 그러니 우리가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 할 수밖에. 과거를 생각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과는 달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번역했는데, 이는 시간이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절대적인 시간은 없다고 하는 것. 따라서 시간은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선을 따라 곧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고 하는 것. 이렇게 혼란한 지점에 있는 것들을 자신과의 관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시간이라고 나는 이해했는데...


시간은 실체가 아니라 사건이라고... 관계라고. 그러니 언제든 변할 수밖에 없고, 고정될 수가 없다고. 따라서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은 없다고. 다만 다양하게 맺어진 시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시간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알기 위해서이지 않은가. 우리를 알기 위해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데, 시간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이 관계가 사건이고, 이러한 사건들이 시간이라고 하면 될 테니까. 이 책에서 음악을 예로 들고 있기도 한데, 음악에서 각 음표들을 생각한다. 음표들이 실체인가? 그 음표가 홀로 존재할 때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아니다. 각 음표들이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음악이 된다.


음표들은 각자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음표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특성을 발현한다. 즉 음표들의 관계가 선율을 만들어낸다. 같은 음표는 없다. 관계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시간도 그렇지 않은가. 음표들의 관계를 사건이라고 하면, 시간은 사건이고, 인간은 이러한 사건들의 총체인 것이다. 사건이라는 말이 좀 마음에 걸린다면 관계라고 하자. 사건이 바로 관계니까. 따라서 이 책은 시간을 통해 인간이 만나게 되는 다양한 관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주 속 인간...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피상적으로 그렇게 그냥, 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관계가 없다면 나란 존재는 의식도 하지 못할 것이다. 뇌의 작용 역시 관계니까. 그러니 관계가 끊기는 순간이 죽음이고, 이는 내게는 사건의 끝이니 시간의 끝이기도 하겠다. 그 이후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여기까지 나아가면 좀 지나친가? 


아무튼 이 책은 한 편의 서정시와 같다. 마음에 드는데,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가 없고, 또 무어라 설명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울린다. 좋다. 


기억해 둘 만한 문장들...

시간은 산에서 더 빨리, 평지에서는 더 느리게 흐른다. - P17

눈으로 보기 전에 이해하는 능력은 과학적 사고의 핵심이다. - P19

모든 물체는 자기 주위의 시간을 더디게 한다. 지구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주위의 시간을 더디게 한다. 평지에서 시간이 더 많이 지연되고, 산에서는 덜 지연되는 이유는 산이 지구의 중심과 좀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 P20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해 있는 물체보다 더 짧은 기간을 경험한다. 시계의 초침이 덜 이동하고 식물이 덜 자라며, 아이들은 꿈도 덜 꾼다. 움직이는 물체에서 시간은 줄어든다. - P49

시공간이 중력장이고, 중력장이 시공간이다. - P83

양자역학 덕분에 얻은 발견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인데, 물리적 변수의 입자성granularity과 미결정성, 관계적 양상이다.

- P 89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 P105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 것이다.
실제로 잘 살펴보면, 매우 ‘사물다운‘ 사물들은 장기간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 P106

‘물리적‘인 세상이 사물로, 존재자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 세상이 사건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작동한다. - P107

양자중력 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사물들이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상 사물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 P127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외부에서 본 세상이 아니라 내부에서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 P161

세상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것은 에너지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낮은 엔트로피다. - P 167

우주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무질서해지는 과정이다. - P172

미래가 아닌 ‘과거의 흔적만‘ 있는 이유는 과거에 엔트로피가 낮았기 때문이다. ...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의 엔트로피가 낮았다는 것뿐이다. - P173

시간은 본질적으로 기억과 예측으로 만들어진 뇌를 가진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하는 형식이며, 우리 정체성의 원천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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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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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는 남의 고통을 구경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남의 고통이 중계되기도 한다. 나와는 떨어져 있는 고통. 그러한 고통을 구경하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일까?


절대로 아니다. 그러한 사회는 문제가 있는 사회다. 즉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고통을 구경하고 있으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으니까.


저자는 목격과 구경을 이렇게 분한다.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둘 다 보는 일이지만 목격이 가치중립적이라면, 구경할 때 눈은 흥미거리와 관심거리를 찾는다.'(24-25쪽)고.


이 정의에 따르면 고통을 구경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다. 자신의 흥미와 관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으로 고통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의 고통이 남의 고통만으로 끝날까?


남의 고통이 곧 자신의 고통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세상이니, 다른 이에게 닥쳤던 고통이 내게 닥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만큼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닌 사람은, 그러한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개인의 고통이 집단의 고통이 되고, 이는 공동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즉 고통은 사적인 것에서 공적인 것으로 전환될 때 사회적 연대가 가능해지고, 고통의 원인을 없앨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고통을 거치는 과정, 애도의 순간들. 개인의 애도가 공동체의 애도가 된다면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진다. 저자는 이 책의 끝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애도가 우리의 애도가 되고 결국 우리를 바꿔놓을 수 있도록.'(262쪽)


아마, 이 책의 제목을 '고통 구경하는 사회'라고 지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고통을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을 목격하고, 그러한 고통의 맥락을 찾고 고통의 원인을 없애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바람을 담아서.


따라서 저자는 고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고통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누구에게? 아직 고통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뉴스룸 기자로서 많은 고통들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던 저자는, 그러한 고통을 전달할 때 고통받는 사람에게 또다른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닌지, 또한 고통을 전시함으로써 고통의 맥락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한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를 담은 것이 바로 이 책이고, 이러한 기자로서의 자세는 우리가 흔히 '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단지 흥미를 위해서 또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또 자기 만족을 위해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러한 고통을 없앨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즉 고통과 고통을 이어 고통을 없애는 연대를 마련하기 위해 기사를 쓰는 기자들. 이런 기자들에게 '기레기'라는 이름을 붙이는 사람은 없다.


'기레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심해진 이유를 기자들도 찾아야 한다. 그들이 내보내는 기사들에 대해 이 책의 저자만큼 고민을 했는지... 아마도 그러한 고민을 하고 기사를 내보냈다면 '기레기'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온 '갈등이 있다고 외치기보다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묻고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일'(206쪽)이라는 말처럼 기자들이 고민하고 기사를 내보낸다면 다른 이들의 고통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하여 그러한 고통을 없애려 하는 시도를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닌가 하고.


읽으면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이 떠올랐다. 사람 몸도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으니, 좋지 않은 말을 들은 물이 찌그러지듯이, 좋지 않은 뉴스들을 접하면 우리 마음도 많이 망가진다는 그런 주장을 한 책. 어떤 사람은 그래서 신문을, 뉴스를 보지 않게 되었다는 후일담도 있는 이 책인데...


그렇다고 이런 뉴스들을 듣지, 보지 않고 지낼 수 있나? 다른 이들의 고통에 눈 감는다고, 그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 몸이, 내 마음이 물과 같다면, 고통을 외면하면서 나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 책의 저자의 고민도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그러한 고통을 보여주는 이유가.


이 책에서 저자의 답을 얻는다.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34쪽)


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 감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보고 단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연대하여 그러한 고통이 지속되지 않도록, 또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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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 한글개정신판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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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도만 읽는 책이 아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정 종교의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금강경은 그런 책이다. 박중빈의 생애를 쓴 책을 읽다가 박중빈 역시 자신의 종교만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 전도보다는 자신의 생활에 힘쓸 것을 강조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금강경에서도 '전도'와 비슷한 내용은 있다. 보시를 행하는 것보다 금강경을 남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의 공덕이 더 크다는 내용이 나오니. 내용을 알려준다를 전도라고 해도 좋겠지만, 거기서 그친다. 깨달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니 자신이 전도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야 한다.


'나'를 잊는 것. 아니 나와 다른 존재들을 모두 잊는 것,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행위조차도 인식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행을 하는데 그것이 선행인지도 생각하지 않는 것. 그러니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희생을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금강경의 내용이 그런 것 아닐까? 결국 금강경 또한 우리가 인생을 잘 살아가도록 하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방편을 끝까지 쥐고 있으면 안 되는 것.


금강경에 유명한 비유가 있지 않은가? 진리를 깨우쳤을 때 거기까지 오게 한 뗏목은 버려야 한다는 것. 자신을 고집하면 그것 자체가 이미 진리의 길에서 벗어났음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김용옥은 다양한 지식을 금강경을 설명하는 데 원용하고 있다. 역시 방편이다. 금강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성서의 내용과 노자, 장자의 사상도 인용하고 있다. 진리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종교만을 강요하는 행위를, 물질을 우선하는, 점차 대형화되어 가는 종교를 비판하고 있다. 그것은 형식에 집착해서 진리를 잃어버리는 꼴이라고 한다.


또한 많은 금강경 판본 중에 우리가 반드시 참조해야 할 판본은 해인사본이라고 한다. 고려 때 판각한 소위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것에 속해 있는. 그 좋은 해인사본을 놔두고 다른 판본을 열심히 번역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 이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또한 한자어로 된 많은 번역본 중에서도 구마라집이 번역한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했다. 한자의 맛과 중국인의 사상을 잘 살린 번역이라고. 그래서 우리도 우리말의 울림을 잘 살린 번역을 해야 한다고.


하여 이 책은 금강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물론 쉽다고 깨달음에 이른다는 말은 아니다. 깨달음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스스로가 받는 것이다. 이 받음에는 들을 귀가 필요하다.


귀가 없는 인간들이 많은 시대는 진리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시대다. 하여 금강경은 부처와 수보리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수보리는 바로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고, 이런 들을 귀를 가진 사람으로 인하여 부처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강경을 읽으며 다른 것은 몰라도 '듣는 귀'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무척 힘든 일이긴 하지만, 듣는 귀를 가지게 되면 나만을 고집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다시 살펴볼 책이 바로 '금강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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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이 왜곡한 한국사의 장면들 - 국어사전으로 한국사 공부하기, 국어사전 속 한국사 용어와 인물들
박일환 지음 / 새로운눈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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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학교에 다닌 사람들은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각종 상을 줄 때 상품으로 사전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국어사전, 옥편, 영어사전 등을 부상으로 줬다. 그만큼 사전은 공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집에 사전을 비치해 놓고 있는 집은 많지 않다. 굳이 종이 사전을 펼쳐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대부분 해결이 되고, 또 인터넷 사이트에 질문을 올리면 답이 곧장 올라오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에서 사전을 검색해서 찾아도 되고.


종이 사전이든 인터넷 사이트에 있는 사전이든 사전은 무언가를 모를 때 참고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요즘 쉽게 접하는 위키피디아라든가, 나무 위키 등을 보면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사실들이 정리되어 있다. 물론 잘못된 사실도 들어가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은 밝혀지는 즉시 수정이 된다.


그야말로 여러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토대로 사전 작업에 참여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잘못된 내용은 즉시 수정을 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수정해줄 사람들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내용 중에 그래도 사전은 믿을 만하다고 여긴다. 사전을 참고하는 경우는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잘못된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굳이 싣지 않아도 될 사람 이름까지 싣고 있는데, 이왕 수록할 것이면 제대로 하던지, 이렇게 많은 내용이 잘못되었을 줄은 몰랐다.


조선어학회에서 사전을 만들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겠는가. 그들은 사전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우리말을 모아, 그 말들이 계속 살아남도록 하기 위한 노력. 목숨을 잃은 학자도 있는데... 지금은 많은 자료들을 편리하고 빠르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 아닌가.


그리고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이라면 사실에서 오류는 최소화해야 하지 않나. 오류가 발견되면 즉시 고쳐야 하고. 따라서 표준국어대사전을 비판하는 내용을 발견하면, 그것에 대해서 검증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즉시 해야 하지 않나. 그것이 국립국어원이 해야 할 최소한의 업무 아닌가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하기 전에 '우리말 샘'이라고 따로 운영하는 사전이 있다. 사전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두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미 수록된 낱말들에 오류가 있다면 당연히 즉시 수정해야 하지 않나.


특히 이렇게 그러한 오류들을 바로잡아 알려주는 책이 나와 있는데...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립국어원의 책임방기라고 할 수 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사전 작업에 참여하기 힘드니, 오류를 알려주면 국립국어원에서 사전을 담당하는 사람을 두어 수정 작업을 하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래야 어떤 사실들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사전을 믿고 참고할 수 있지. 물론 사전에 사람 이름들이나 역사적 사건들까지 다 수록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들은 따로 인명 사전, 역사 사전 등으로 발간하면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이미 국어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사람 이름이나 역사 사건들에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수정해야 한다. 그런 작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이 책의 저자는 힘써 말하고 있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이다. 앞에 K를 붙여 K-팝, K-컬처 등등이라고, 세계로 확산되어 가는 한국 문화를 자랑스레 여기는 이 때,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잘못된 내용이 있나를 살피고 수정하는 것이 그러한 문화를 지속시키는 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자기 나라 사전조차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서 세계에 어떻게 문화 강국이라고 자랑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내용들, 참고하고 사전의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 이 책에 나와 있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 얼마나 표준국어대사전에 잘못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지...


사회교화사업(社會敎化事業): <교육> 잘못된 사회 풍조를 바로 잡고 좋은 풍속을 키우기 위하여 사회 대중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사업.


좋은 말 같다. 그런데, 지금 사회교화사업이란 말은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말의 유래는 무엇일까? 저자는 일제시대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 말을 썼다고 한다. 즉 일본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펼치는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굳이 사전에 등재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굳이 등재를 할 것이면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알려주든지. (190-192쪽)


이렇게 잘못된 내용들, 또는 불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이다. 사전의 오류를 밝히고 있지만 읽으면서 우리 역사나 인물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으니, 한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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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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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최대의 축제가 될 수 있었는데, 노벨문학상 주간이라고 해서, 한 달을, 아니 그 이상을 문학 축제의 장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찬물을 확 끼얹어 버렸다. 그 누가. 이름을 대기도 싫을 정도인 사람이. 역시 속 좁은 사람은 자기보다 남이 잘 되는 것은 보지 못하나 보다.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결과는 그렇게 되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세상이 축제 기간이어야 할 기간을 비상 계엄이라는 냉동의 시간으로 바꾸어버린 사람. 그러나 시민들은 냉동의 시간에 얼지 않았다. 빛으로, 빛과 빛을 연결하는 실로,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더해 얼음보다 더한 비상 계엄의 시기를 견뎌냈다. 견뎌낸 것이 아니라 물리쳤다.


물론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축하 주간이니 뭐니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테지만... 한강 작가로 인해 모처럼 우리나라에서 문학을 기리고, 문학으로 인해 축제가 벌어지는 그런 장이 펼쳐지길 기대했었는데...


이미 지난 시간은 어쩔 수 없고. 마침 한강 작가의 글이 책으로 엮어 나왔다. '빛과 실'이다. 아하! 우리에게 다가왔던 저 겨울을 이겨낸 사람들의 마음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한 제목을 달 수 있을까.


제목에서 감탄하고,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을 읽으면서 다시 감탄하고, 시를 읽으면서 한번에 읽을 수 없단 생각을 하고, 정원 일기를 읽으면서 식물, 빛, 거울에 마음을 빼앗기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곱씹으면서 내 몸에서, 마음에서 소화시키면서 읽어야지, 그냥 북향 정원에 햇빛을 주기 위해 거울을 설치하고 수시로 바꿔주듯이, 내 곁에 이 책을 두고 있어야지. 


정원 일기를 읽으면서 식물과 빛을 생각하고, 그 빛이 사람과 식물을 연결지어주는 실의 역할을 하고 있음도 깨닫고.


그렇게 이 책은 내 마음에 빛을 주고, 또 다른 사람들과 연결해주는 실 역할도 해주고. 빛이 실이 되어 서로 연결되는 순간, 빛에는 볕이라는 온기가 담겨 있게 된다.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스함.


여전히 어려운 시대다. 봄은 왔지만 아직 봄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강 작가가 식물을 위하여 거울의 각도를 수시로 바꿔주듯이, 우리 역시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아직 오지 않은 우리 사회의 봄을 위해 우리는 빛을 그리로 보내야 한다. 우리 자신이 각자 서야 할 자리에 서서 그렇게... 그런 빛들이 모여 마치 실처럼 연결이 되면, 빛은 밝음뿐만이 아니라 따스함까지 지니게 되니, 그때서야 비로소 봄이 오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에 빛을, 또 우리 마음을 빛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그리고 그 마음들을 실로 연결해서 따스한 우리 사회가 되도록...


책장을 덮은 순간 아쉬움, 아니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 


책의 마지막 글 제목이 '더 살아낸 뒤'인데, 한강 작가는 글쓰기로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고, '아주 깊게, 진하게 / 사람들을 만났'다고 '충분히 살아냈'(166쪽)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글쓰기가 아닌 글읽기로 더 살아낸 뒤 한강 작가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마음에 빛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 실로 누군가와 또는 무엇인가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을 주는 책.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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