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세대 -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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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화성에 보내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화성에 사람들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거대 기업 운영자도 있지만, 그것이 가능해졌다 치자. 화성은 지구와 중력도 환경도 모두 다르다. 그런 곳으로 당신 자녀를 보내겠느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답할 것인가?


지구에 적응된 몸이 화성에 가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모른다. 아무리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만든다고 해도 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몸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어른들도 많은 변화를 겪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더욱 커다란 변화,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몸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당신 자녀를 화성에 보내겠느냐는 질문.


뜬금없이 화성이 나온 것 같지만 아니다. 화성에 이주하는 것이 지금 과학기술로 어느 정도 가능해지기 시작했다면, 이미 이 지구에 그러한 화성이 만들어졌음을 알아야 한다는 취지로 이런 질문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지구에 있는 화성, 즉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지구와 달라진 지구를 만든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지털이다. 더 범위를 좁히면 '스마트폰'이다. 내 손 안에 있는 컴퓨터이자 고해상도의 사진기, 음악 플레이어, 텔레비전 등등의 역할을 모두 하는 기기. 언제 어디서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니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신을 보게 만드는 기기.


이 기기에 잠식당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은 화성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편리함에 눈을 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2010년 이후에 전세계에서 청소년들의 우울과 불안이 급증한 이유가 무엇인지 찾다가 바로 '스마트폰'에서 즉 '디지털 세상'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상관관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것은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라고 한다.


그만큼 청소년들의 불안과 우울 증세가 심해졌고, 그것에 원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라는 것인데... 단지 스마트폰만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변한 세상이라고 하겠다.


놀이를 중심으로 하던 아동기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하는 아동기로 바뀌었고, 이를 '아동기 대재편'이라고 이름짓는다.


아동기가 대재편되었는데, 이것은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26쪽)'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에 대해서 구체적인 근거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는데,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는 미국에서 아동을 홀로 두게 하지 못하는 법만 봐도 알 수 있다. 자녀를 차에 홀로 두고 쇼핑을 해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현실, 아동이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어도 아동학대가 되는 과잉보호.


그런데 반대로 가상 세계, 스마트폰으로 들어가는 다른 세계에는 보호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연령 제한이 있는 사이트도 감시를 별로 하지 않아 자유롭게 아동들이 접속할 수 있으며, 어른들이 규제를 한다고 해도 풀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해, 가상 세계에서는 보호가 거의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만 그런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 역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현실 세계 과잉보호는 지금 심각하다. 특히 학교에서... 걸핏하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교사들을 보라. 신고당하는 부모보다 교사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데...


아이를 남게 해서 상담을 했다고 정서 학대로 신고하는가 하면, 무단 외출을 하는 아이를 막고 나가려는 아이 팔을 잡았다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문제를 일으킨 학생에게 진술서를 쓰라고 했다고 학대라고 신고하는 부모들도 있는 현실.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거부하겠는가. 체험학습에서 사고가 나면 신고당하는 사람들이 교사이기 때문이다. 교육적 활동에서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는데,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무엇도 하기 힘들어진다. 그러니 체험학습같이 학교를 벗어난 다양한 활동을, 또 또래끼리 방을 함께 쓰면서 잠을 자고 함께 이야기하면 활동을 하는 경험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과잉보호다. 아이들을 이렇게 현실 세계에서는 과잉으로 보호하면서, 스마트폰의 사용은 어떤가? 부모들이 감시하기 힘들다. 또한 스마트폰을 주어서 부모들의 돌봄 노력을 줄이려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온갖 문제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일어난다. 


저자는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의 네 가지 기본적인 해악은 ...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 중독'(174쪽)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아이들에게도 너무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학생들은 쉬는 시간만 되면 스마트폰에 눈을 주고 주변을 살피지 않는다. 게임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스마트폰 세계 즉 가상 세계 속에서다. 현실 세계에서는 더 많은 접촉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 수면 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업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하려고 애를 쓰는 아이만이 아니라 많은 아이들의 정신이 스마트폰에 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는 중독 수준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해악을 주는 스마트폰 세상은 가히 '화성'이라고 할만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화성으로의 이주'를 완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저자는 빨리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어른들이 먼저 정신차려야 한다고... 부모와 학교와 나라(정치)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각자의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해주고 있는데...


그 방법은 참 단순하다. 사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면 된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이 가장 힘들다. 왜냐하면 기업이 이윤을 위해서 수많은 어린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또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의 힘이 필요하다. 법률로써 제도화해야 한다. 이 점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에 넘어갔다고 하는 판에, 가능할지... 참.


그래도 저자가 주장한 아주 단순한 해결책을 보자.


1.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 금지

2. 16세가 되기 전에는 소셜 미디어 금지

3.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 금지

4. 감독하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많이 보장하기


이것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말하라, 연결하라'고 한다. 알려야 한다. 사실 알고는 있지만 먼저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과감하게 먼저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 역할을 하라고.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라고. 홀로 할 수는 없으니.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홀로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부모가 있으면 아이 역시 고립되지 않을 테니까... 마찬가지로 법으로는 현실 세계에서 걸핏하면 아동학대로 신고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로 정비해야 한다고... 이것을 말하고 연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가상 세계에서 아이들이 벗어나 현실 세계에 발딛고 지낼 수 있게 하는 방법, 이것은 위에서 제시한 네 가지 방법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방법에는 비용도 들지 않는다. 얼마나 효과적인가? 문제는 실행 의지다. 부모와 학교, 나라(사회)가 얼마나 강한 의지를 지니고 이것을 실행하느냐다. 


이 실행이 더 늦어지면 우리 아이들은 '화성'에서 살게 된다. 몸과 마음이 '화성'에 맞게 변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이지만 그들이 실제 살고 있는 세상은 '지구'다. 그러니 마음이 아플 수밖에. 불안과 우울에 시달릴 수밖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느껴왔던 스마트폰으로 인한 문제들을 잘 정리했다는, 해결책 역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는, 그래서 더더욱 우리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육에 목을 매달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정책이지만,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것 아닌가 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연결이 되겠지. 적어도 이 책은 문제를 크게 말하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특히 아이를 둔 부모들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이들이 정치인에게 압력을 넣어야 법과 제도가 바뀔 테니. 최근 교육부에서 학교 수업시간에 스마트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청소년 단체로 있다고 하고, 인권과 책임, 그리고 사회의 미래. 


교육부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 (관련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과 같은 책들을 참고 서적으로 하여 더 깊이 있는 토론을 하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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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망상의 시대 - 자기기만의 심리학
어맨다 몬텔 지음, 김다봄 옮김 / arte(아르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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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확증 편향'이다.


보통 과학적 문해력이 뛰어날수록 이성으로 감성을 제어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연구에 의하면 '과학적 문해력과 수리력이 늘어날수록 문화 양극화는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심화된다. 일반 대중이 과학을 더 많이 배울수록 ... 이들은 더 능숙하게 자기 집단의 의견과 관련된 경험적 증거를 찾고 - 혹은 필요한 경우 꾸며 내고 - 의미를 부여한다'(263쪽)는 주장이 있다.


이것을 인정하기 힘든가? 과학자들은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창조과학론'을 생각해 보자. 진화론을 믿지 않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들을 창조론에 꿰어맞추려고 한다. 


이런 점만 봐도 인간은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꼭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인간의 합리성에 반하는 사고 경향을 이야기하고 있다.


후광 효과라는 것도 그렇다. 사람이 신이 아니고,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엄청난 비난을 퍼붓는다. 그가 자신은 그런 존재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음에도.


특히 유명인들에게 이것은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마치 그 사람은 완벽한 존재여야 한다는 듯이, 그가 말했다 또는 그가 그렇게 행동했다가 판단 기준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 이러한 후광 효과는 인간의 이성과는 배치되지만 우리가 실생활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후광 효과말고도 비례 편향이라는 것이 있다. '거대한 사건(과 거대한 감정)에는 마찬가지로 거대한 원인이 있기를 바라는 심리적 갈망'(53쪽)이라고 하는데, 이는 음모론과 연결이 된다. 외계인의 음모라든지 뭐라든지 무언가 알지 못하는 원인을 이야기하는 것, 이것이 비례 편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정 선거라는 음모론이 특정 사람들을 휩쓴 적이 있다.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를 자신들의 정책이 잘못되었거나 정치를 잘못했다는 쪽에서 찾지 않고 부정 선거라는 쪽으로 돌리는 것, 이것도 일종의 비례 편향이다. 


굳이 정치를 이유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이러한 비례 편향에 빠져 원인을 외부로 돌릴 때가 많다. 힘없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 이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앞에서 든 것들 외에도 참 많은 생각의 오류, 판단의 오류들이 나오는데 '매몰비용 오류, 제로섬 편향, 생존자 편향, 최신성 환상, 과신 편향, 환상 진실 효과, 쇠퇴론, 이케아 효과'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들이 우리들의 생활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여러 사례들을 들어 보여주고 있는데...


읽으면서 맞아, 나도 그런 적이 있어.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는 책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들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가령 이케아 효과 같은 것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존재에 다른 것보다 더 애착을 느낀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 존재에 쏟아부은 자신의 노력은 양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의 판단으로 제한되지 않으니 말이다. 자기가 시간과 공력을 투여한 존재에 어찌 애정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전문가가 만든 훌륭한 작품보다도 더 나에게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높은 가치를 매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높은 가치에는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 들어 있으니까.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 경향도 있지만 우리를 부정적인 쪽으로 몰아가는 사고 경향도 많으니,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늘 합리적일 수는 없지만, 대체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려 하지 않는가. 그것이 진화의 결과이기도 할 테니까.


그러니 이러한 사고 경향을 알아두는 것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 상황에 맞는 사고 경향을 떠올릴 수 있고, 떠올리는 순간 그러한 사고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적어도 그러한 사고 경향을 떠올렸다는 것은 감정에 푹 빠져들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니까. 자신을 조금 떼어놓고 볼 수 있는 이성이 작동하는 시간을 확보했다는 뜻이니까.


하여 이 책에 나온 많은 사고 경향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많은 대담들을 통해 그러한 경향에 빠진 사람들과 또 자신의 경험을 적절히 조화시켜 이 책을 썼기에 이해하기가 쉽고, 그것들이 지닌 위험성을 파악하기도 쉽다. 그리고 내가 그러한 경향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면서 자신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하고 있으니, 정보의 바다가 넘실대는 현대 사회에서 차근차근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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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국의 적은 누구인가 심용환 역사 상상력 아카이브 3
심용환 지음 / 사계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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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눈을 갖는 것. 현상황을 파악하고 나아갈 길을 찾는 것.


탄핵 이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아직은 아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만 바뀌었다. 기존 국무위원들은 그대로다. 국무총리 인준이 끝나야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을 추천하고 그들이 청문회를 거쳐 임명이 되어야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야 제왕적 대통령이란 소리를 안 들으니)했으니 끝인가?


촛불, 응원봉으로 대변되는 광장의 외침이 선거가 끝나면 끝나는 것인가? 아니, 광장의 외침은 지속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빛의 혁명'은 계속 되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광장의 외침은 민주공화국의 회복이다. 대통령이란 작자가 왕처럼 군림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는 민주공화국. 그것이 광장의 외침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대통령과 국무위원을 바꾸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민주공화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어떻게? 먼저 무엇이 민주공화국을 가로막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걸림돌을 찾아야 없앨 수 있다. 그러한 걸림돌을 찾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광장의 외침은 실현되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 책 제목에서 현 상황을 파악하는 단초를 발견한다. '민주공화국의 적은 누구인가' 그렇다. 민주공화국의 적을 먼저 찾아야 한다. 무엇이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알게 되면 모른 척 할 수 없다. 이미 밝혀진 사실을 감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주공화국의 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저자가 무엇을 들고 있는지 살펴보자.


총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이 모두 민주공화국의 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민주공화국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


비상계엄, 대통령, 군부, 공무원, 검찰, 사법부, 

국회, 기독교, 경제, 뉴라이트, 북한과 국제관계, 국민


이 열두 개 항목 중에 비상계엄은 말 그대로 민주공화국의 적이다. 민주와는 거리가 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역대 대통령을 다 살피지 않아도 독재정권이라 불리는 이승만, 박정희와 전두환이니, 민주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다들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상계엄을 '계몽'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에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행위를 어떻게 계몽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대다수 국민'이라면 민주공화국은 이루어질 수 없다.


대통령이 다음에 나오는 것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왕적 권력을 가졌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말 자체가 민주공화국과 양립할 수 없는 말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대통령 개인이 많은 권력을 쥐고 정치를 좌지우지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공무원은 상명하복이라는 말을 실천하는 존재일 뿐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공무원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면, '민주공화국'은 될 수가 없다. 관료주의도 문제지만, 관료가 관료 역할도 못하고 대통령이나 권력자의 눈치나 보면서 업무를 처리한다면'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말이 법 조항으로만 존재하게 해서는 그런 공무원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군부와 검찰은 이야기할 것도 없다. 개혁의 대상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군부는 지속적으로 힘이 약화되었지만, 그럼에도 이번 비상계엄처럼 동원되어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적절히 통제되지 않는 군부는 민주공화국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망설이는 실질적인 태업을 하는 군인들이 있었다는 점, 이는 우리나라 군대가 어느 정도는 민주화 되었다는 말이다. 군대를 동원한 비상계엄이 일어날 수 없는 사회가 되도록 지금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검찰과 사법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지닌 이들은 민주공화국에서 개혁의 대상이 된다.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절대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검찰과 사법부, 경찰은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그것도 시민들이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지금도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집단이 이들 아닌가. 이들을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민주공화국이라 하기는 힘들다.


이런 역할을 국회가 해야 한다. 국회는 대의기관 아니던가.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해 법안을 마련하는 기구인데, 적절한 기능을 하지 않고 대통령의 친위 역할을 하는 국회는 민주공화국의 적이 된다. 그런 국회의원들을 소환할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 선거법부터 소환까지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당선되고 난 뒤에 자신들을 선택한 국민들을 나 몰라라 하는 국회의원이 줄어들 수 있다. 또 당리당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입법활동을 하는 국회의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당리당략에만, 자신의 당선에만 관심이 있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변인이 아니라 국민을 배반한 민주공화국의 적이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다만 잘못된 활동을 하는 기독교는 비판받아야 하고, 종교는 정치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함에도 종교를 가장해 정치에 간여하는 종교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여기에 경제는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뉴라이트는 비판할 가치도 없다. 잘못된 주장을 펼치는 그들은 분명 민주공화국의 적이다. 학문을 표방하면서 제 욕심을 채우려는 집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북한과 국제관계 역시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민주공화국으로 가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지, 북한을 이용해 독재 권력을 강화했던 역사에서 이제 북한은 그러한 역할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 미국을 비롯한 국제 관계 역시 민주공화국이 지속되느냐 마느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니,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마지막이 국민이다. 국민이 민주공화국의 적이라고? 아니다. 저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국민을 언급하는 것은 이 책의 '들어가며'에서 한 말과 통한다. 민주공화국의 성공 여부는 국민에게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인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은 역사가가 국민에게 바치는 상소上疏 와 같은 글이다. 한국 현대사는 중요한 승리 이후 심각한 실수를 반복해 왔다. 첫 번째는 4.19혁명 이후였다. 두 번째는 6월민주화항쟁 이후였다. 세 번째는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권의 등장에서였다.'(4-5쪽) 


승리 이후 사회를 바꾸지 못하고 사람만 바꾸었던 역사적 경험. 그래서 지독하게도 계속 반복되는, 윤석열 탄핵 이후에는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을 검토하고 재반복하지 않게 해야한다는 저자의 당부. 그래서 상소다. 국민에게 보내는. 


상소를 받은 국민이 상소를 받아들여 대책을 세우느냐 아니냐에 따라 민주공화국의 성패가 결정될 수 있다. 그러니 민주공화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민이니, 국민을 이 책의 맨 뒤에 놓은 것이리라.


이렇게 저자는 역사를 살피면서 12개 항목을 통해 지금 현실을 바라보도록 하고 있다. 알아야 한다고.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거쳐왔다고... 또다시 실패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발 나아가야 한다. 저자의 상소를 받아들여야 한다. 상소를 받아들이는 주체는 대통령, 국무위원, 국회의원, 검찰, 경찰, 판사, 재벌 들이 아니다. 바로 우리 국민들이고, 이러한 상소를 받아들여 그것이 실현될 수 있게 주권을 행사해야 할 존재 역시 국민들이다. 저자는 그 점을 말하고 있다. 명심하자. 지금이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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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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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힘들다.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또 소위 강대국이라고 하는 나라,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 한때 평화운동의 상징이었던 사람 등등이 눈 감고 있다는 사실에.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시 강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설마?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아직도? 라는 비탄으로 끝난다. 아직도, 여전히? 이런, 참.


전시 강간은 전쟁 범죄와 같다. 분명 이는 반인도적 범죄 행위이고,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그런데도 지금 전시 강간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전시 강간을 전쟁 범죄에 포함시키기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전쟁 범죄에 포함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겨우 재판정에 세웠는데,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의 상심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에서 적은 부분을 일본군 성노예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그 범죄에 대해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진행형이다.


일본이 배상을 한다고 했지만, 그건 정부 차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생색내는 행위에 불과했기에 피해자들이 거부했던 것. 그 이후 일본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아니, 뻔뻔하게 그런 일은 없다고 하고 있으니, 이런 일본 주장에 부화뇌동하는 작자들도 있는 현실이니...


우리나라뿐이 아닌 것이다. 전 세계에서 제대로 된 처벌이 없고, 오히려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이니...


이 책에서 전시 강간을 다루면서, 범죄자들을 재판정에 세워 정의를 이루려고 했지만, 많은 경우 아직도 제대로 된 처벌이 되지 않고 있는 모습을 알려주고 있는데, 이런 일들이 피해자들에게 정의가 여전히 멀리 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있다.


정말 많은 나라에서 전시 강간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이라크와 시리아 사이에 살고 있던 야디지 족,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졌던 보코 하람의 만행, 버마에서 일어났던 로힝야 족에 대한 범죄, 여기에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났던 일. 르완다. 보스니아, 2차세계대전 직후의 소련군. 남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일들,  아프리카 콩고,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벌어진 강간 등등. 


이것이 과연 인간인가? 이것이 20세기, 21세기에 이 지구에서 벌어진 일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어떻게를 실천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증언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 자리잡고 살 수 있도록 함께하려는 사람들, 재판정에서 진실을 밝히고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응징하는 분위가가 형성되도록 하는 사람들이 비록 갈 길은 멀지만 정의를 실현하려고 '어떻게'를 채워가는 사람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전시 강간이 벌어지고 있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미신을 위해서 아주 어린 사람들을 강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함께해야 할 문제다.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하고,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은 어떻게든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전쟁 범죄를 언제든 처벌하듯이, 전시 강간 또는 강간을 기한을 두지 않고 처벌해야 한다. 또한 처벌을 강도를 높여야 한다.


강간은 반인도적 범죄이고, 인격 살인이기 때문이다. 전시 강간은 전쟁 범죄이기 때문이고, 그러한 행위에 가담한 사람은 전쟁 범죄자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불관용 원칙이 적용되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국가가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아직까지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야 한다. 이 책에 나온 여성의 이 말. 이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말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사람들이 모르고 있기도 더 힘든 일이에요." (476쪽)


알고 있는데도 해결하지 않으면 그것 역시 범죄를 묵인하는 행위다. 지금 전세계가 권력자들이 이렇게 범죄를 묵인하고 있는 경우, 전시 강간 또는 강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묵인하는 것 역시 범죄에 동조하는 것임을 명심하게 하고, 국가 또 권력자 또 전세계가 이러한 강간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피해자에게 첵임을 전가하는 행위 역시 금지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을 지니게 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를, 그렇게 유발한 권력자들을 응징해야 한다. 우리가 겨누어야 할 방향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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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티시 - 광신의 언어학
어맨다 몬텔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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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의 언어학'이라는 작은 제목이 있다.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가는 언어라는 뜻이다. 자기의 삶을 다른 사람의 언어에 의해 틀지워지는 것, 그것의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어떤 식으로 그런 일이 생기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컬트라고 한다. 좋은 의미로 쓰지 않고,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흐름을 컬트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컬티시라는 말은 합리, 이성을 넘어 맹목적으로 휩쓸려 가는 상태를 말한다고 보면 된다.(물론 컬트를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도 있다.이 용어 자체의 난해함에 대해서는 28쪽-33쪽에 설명이 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냥 좋지 않은 흐름으로 사람을 빠뜨리는 정도의 언어로 쓰겠다)


'소위 컬트 (컬트 집단에 몸담으려는 움직임과 이에 대한 인류학적 매혹 모두)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특히 존재론적 고민이 널리 이루어지는 시기에 성황을 누린다.' (40쪽)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불안정한 시대에 사람들이 쉽게 컬트에 휩쓸리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불안한 시대에 단정적이고 확정적으로 말하는 컬트에 사람들은 위안을 받기 때문에 컬트가 유행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컬트의 특징은 무엇일까?


컬트의 언어는 전향conversion, 조건형성 conditioning, 강제 coercion라는 체계적인 기술을 적용한다고 한다. (97쪽)


전향은 바로 '러브 바밍 love bombing'이라고 할 수 있는 말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특별하고 인정받는다고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은 사람은 불안한 시대에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 또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받고, 그 사람이나 집단에 충성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양한 언어 전술을 통해 사람들은 지도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고. 집단 바깥의 삶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여겨진다.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행동을 학습하는 이 무의식적인 과정은 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이 작업을 조건형성이라고 부른다'(98쪽)고 한다.


마지막으로 '언어는 사람들이 기존의 현실, 윤리의식, 그리고 자의식과 완전히 상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만든다. 여기에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태도가 깔려 있으며, 최악의 경우 개인이 파괴될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강제라고 한다'(98쪽)고 하는데, 이 과정까지 가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존재의 말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컬트 집단이 지닌 모습이고, 거기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이성적인 인간이 컬트에 빠질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는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스스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치가 작동된다고 한다.


첫번째가 바로 편 가르기다. 내 편과 저쪽 편을 갈라 다른 쪽을 배제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언어를 쓰게 되는데, 이를 로드된 언어 loaded language라고 한다. 그 말만 들어도 전율이 이는 언어. 그런 언어들을 우리는 집회에서 많이 보지 않았던가. 특히 몇몇 집단의 경우에서 더더욱. 여기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고 차단 클리셰를 사용하면 컬트는 완성된다고 한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될 때 그것을 더 이상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말들. 그런 말들을 우리 역시 자주 만나지 않았던가. 누군가와 토론을 할 때 아예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말을 차단하는 말들. 그것이 바로 사고 차단 클레셰다.


이 책에서 말한 그러한 '컬티시'가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인가? 아니다. 저자가 들고 있는 컬트의 예는 종교, 외계인을 믿는 집단, 다단계 판매, 피트니스(지금 우리 사회에서 하고 있는 피트니스와는 결이 다르다)와 같은 운동,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 등등이 있다. 이것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컬트에 빠지게 했는지를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보여주는데,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컬티시가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 집단들, 다른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게 단정적으로 차단하는 말들. 우리 편 아니면 다 나쁜 쪽이라는 사고를 고수하는 집단들. 참 많다. 그런 집단들이 우세하게 되면 안 된다.


이 책에서 컬트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컬트의 위험성을 이 책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니,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자가 말한 방법은 너무도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우리가 충분히 실행할 수 있게 한다.


우선 '적당히 신중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논리적 사고나 (다 이유가 있는) 감정적 직감을 포기하지 않도록 주의하'(322쪽)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생존의 본능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 감정적 직감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직감에 질문, 논리적 사고를 덧붙이면 컬트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 저자는 '마음 한편에서는 동시에 여러 '컬트'에 속하'(324쪽)는 방법도 건강한 방법이라고 한다. 다양한 집단에 속해 있으면 편향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이 컬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는 다른 관점을 들을 귀를 갖추라는 말과 통한다. 즉 열린 귀를 가지고 다양한 말들을 듣는다면 편향된 쪽으로 우리를 몰아가는 컬티시한 언어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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