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눈동자 1939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
한 놀란 지음, 하정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을 뺏겼지만,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우리가 내주지 않는 한,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그들이 뺏어갈 수 없다.

 

 

 

 줄거리 。。。。。。。                                                  

 

        우리나라로 치면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쯤 될까? 독일에도 비슷한 단체가 있다. ‘신 나치주의(Neo-Nazism)’가 그것이다. 히틀러의 나치정권을 찬양하고, 그 신조를 오늘날에 다시 되살리려는 시대착오적 집단. 유럽이나 미국 쪽에서는 실제로 유대인들이나 유색인종에 대한 린치, 방화를 비롯한 각종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니, 어지간히 정신에 문제가 있는 놈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힐러리는 바로 그런 신 나치주의 집단에 얼마 전 가입한 소녀다. 사실 뭐 투철한 계급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어머니에 대한 반항감으로 인해 밖으로만 돌다가, 브래드라는 역시 약간 불량기 있는 철없는 남자를 만나 빠졌고, 그로 인해 가입하게 된 것이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데서 자유를 느끼고, 브래드와 함께 일탈행위를 하는데서 기쁨을 얻게 된 힐러리. 어느날 일어난 오토바이 사고는 힐러리를 의식불명의 상태로 이끈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하게 된 힐러리. 자신의 의식은 분명히 있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의식이 깨어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힐러리는 알 수 없는 꿈에 계속 빠져든다. 꿈 속에서 힐러리는 샤나라는 이름의 폴란드 계 유대인 소녀로 변한다. 시대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샤나와 그의 가족은 갖은 고통과 핍박을 받게 되고, 자신이 이유 없이 증오하던 유대인이 된 힐러리는 이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감상평 。。。。。。。                                                 

        알라딘 서평단에 신청했던 것이 당첨되어서 무료로 받게 된 책이다. 아싸.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배경으로 한 유대인들의 고통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전에 읽었던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이라는 책과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점은 주인공의 성별쯤?

 

        물론 두 책에서 좀 더 다른 점도 있었다. 『운명』에서 주인공은 고통이라는 상황 자체가 가져다주는 정화(淨化)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살피고 있는 반면, 『소녀의 눈동자』의 주인공에게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고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것은 말 그대로 불필요한 것에 불과하다.(p. 260) 이 책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부여하는 근거 없는 폭력과 강제를 통해, 반어적으로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강조하는 듯 하다.


 

 

        이런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저자는 샤나의 경험을 매우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만약 내가 『운명』을 읽지 않고 이 책을 봤다면 이 책의 이런 부분에 높은 점수를 주었겠지만, 사실 상황에 대한 묘사만 보자면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운명』이 좀 더 깊은 사색과 고민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에 담긴 실감나는 묘사는 나치의 반인륜적인 만행을 널리 알리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의 구성이다. 저자는 힐러리와 샤나라는 두 인물의 교차를 통해 무엇인가 효과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둘 사이의 유사점이란 소녀라는 점만 빼면 거의 없다. 물론 힐러리가 유대인 소년 하나를 괴롭히고, 꿈 속의 샤나가 유대인이 되었다는 점도 유사점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단지 그것뿐, 내용상의 연결점은 별로 없다. 힐러리와 샤나의 상황 역시 매우 다르다. 힐러리의 문제는 어머니와의 의사소통의 부재이고, 샤나의 문제는 나치에 의한 이유 없는 고난이다. 굳이 이런 구성을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하나, 책의 곳곳에 적어 둔 성경 구절들은 내용 전개에 그다지 녹아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굳이 그런 식의 인용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각 구절들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들이미는 것은 구성상 좋은 방법은 아닌 듯 싶다.


 

 

        주제나 묘사는 좋지만, 구성이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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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세계 역사를 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 590일의 기록 서해역사책방 7
안토니 비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전쟁의 본성은 원시적이면서도 동시에 고도로 복잡한 두 가지 감정을 만들어 냈다.
민간인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받고 머뭇거리는 병사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 대한 동정심은 왜 여자와 어린애들이 전투 지역에 얼씬거리느냐는 식의
비논리적인 분노로 변질되어 버렸다.

 

  요약 。。。。。。                                                

         상당히 의미심장한 책 제목이다. ‘여기’가 어디길래 ‘모든 희망을 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이 책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스탈린그라드라는 도시에서 벌어진 양 군의 치열했던 전투가 중심 내용이다.

 


        사전에 최후통첩도 없이 갑자기 소련을 공격한 독일의 히틀러. 비록 극비리에 진행되기는 했으나, 대규모 병력의 이동과 재배치 움직임은 이미 소련의 정보기관에 입수되었다. 그러나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자신의 판단만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이러한 모든 징후들은 무시해버린다.

 

        이 오판에 따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이후 수 백 만 명의 소련군인들이 죽었고, 천만에 달하는 민간인들의 희생도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히틀러도 마찬가지다. 초반에는 강력한 기세로 소련 땅 곳곳을 밀고 들어갔지만, 곧 닥쳐온 영하 수 십도를 가볍게 넘어버리는 추위와 모든 상황을 혼자서 통제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히틀러의 과대망상은 상황을 더욱 악화 시킨다.

 

 

        파죽지세로 스탈린그라드까지 이른 독일군. 그리고 엄청난 민간인들과 군인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끝까지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린 스탈린. 전투의 초중반은 독일군의 우세로 진행되었지만, 엄청난 영토와 인구에서 나오는 소련군의 기적적인 생산력은 ‘천왕성 작전’이라는 거대한 반격, 포위 작전을 성공케 한다. 그리고 다시 여기에 이어지는 엄청난 독일군의 피해.

 

       직접 전장에는 한 번도 나와 보지 않은 채, 탁상공론이나 일삼으며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두 명의 고집스러우면서 능력까지 없는 독재자들로 인해, 스탈린그라드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감상평 。。。。。。                                             

 

        오랜만에 읽은 두꺼운 역사관련 책이다. 저자는 마치 현장을 따라다니는 종군기자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황을 보고하고 있다. 물론 이런 글쓰기 방식은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분량을 생각할 때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수 백 만의 병사들과 그보다 몇 배나 많은 민간인들의 피해가 생생하게 실려 있기에 매 페이지를 안타까움과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독재자들에 대한 분노를 안고 읽게 된다.

 


        스탈린그라드라는, 어찌 보면 별 전략적 가치도 없는 거점 하나를 두고, 양국의 두 독재자가 마치 자존심 싸움을 하듯 엄청난 수의 인명과 물자를 물 쓰듯 투입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독제정체의 비효율과 후진성을 잘 드러내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자체의 정당성을 잠시 뒤로 미뤄두고 생각하자면) 일선의 담당자들의 모든 의견을 묵살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강요하는 독재의 전형이다. 두 명 모두 전쟁에 관한 어떠한 책임도지지 않았고, 도리어 자신의 논리만을 되풀이하며 정당화하는 궤변만을 늘어놓지 않았는가.


 

        이 책에서 잘 드러나는 부분 중 하나는, 이러한 지도자들의 무능력함에도 불구하고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선의 병사들의 모습이다. 자국군이 전멸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략적 목적을 위해 이를 외면해버리는 비열한 히틀러와, 자신은 뒷전에 앉아 끊임없이 오판을 하면서도 자신의 개인 비밀경찰들을 동원해 사람들을 맹목적인 희생으로 몰아넣는 스탈린의 모습이 강조되면 강조될수록 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전쟁의 참혹한 모습은 나를 더욱 강한 반전론자로 만들어 주었다. 과연 수많은 사람의 인격과 생명까지 희생하며 지켜야할 정치체제가 이 세상에 있는가? 국가가 사람보다 우선이라는 극단적 생각을 하는 사람들치고, 직접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일하는 사람이 적은 것을 보면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초점은 사람에게 있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약간 두꺼운 점만 감내할 수 있다면, 2차 세계대전의 한 부분을 읽어내는 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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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신국원 지음 / IVP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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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위기와 포스트모던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토대는

  바른 사회의식과 윤리에 입각한 건강한 공동체이다.

 

 

 

 . 요약 。。。。。。。                                                

 

        한국에 몇 안 되는 문화연구 전문가. 더구나 이 연구를 철저하게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진행하고자 노력하는 저자이기에, 역시나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책이다. 딱 봤을 때 지극히 평범한 제목, 사실 이조차도 화려한 겉치레보다는 알찬 내용으로 승부하는 저자 특유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너무 편파적인가? ^^;)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것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1부)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주제는 그 정의부터가 매우 어렵다. 사람들마다, 분야별로 매우 다른 정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포스트모더니즘 자체를 정의하기 보다는, 그것이 보여주는 여러 양상들을 소개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2부) 3부에서는 구체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의 면면을 살펴봄으로써, 그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결론부에서는 이제까지 소개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요소들을 다시금 정리하며, 그것들을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를 간단히 논한다.



 

 . 감상평 。。。。。。。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주제에 대해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알 수 있었다. 때문에 다른 책들과의 비교는 잘 할 수 없다.


        사실 익숙하지 않은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에 읽어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의 주장들을 소개하는 3부의 경우 몇 번씩 반복해서 읽어야만 했다. 특별히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역사적 배경과 사상적 전개를 함께 제시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생소한 용어들과 사상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대략적으로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점은, 이 책이 기독교적 입장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균형있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무조건적인 맹종이나 극렬한 저항으로만 나타날 수 있지만, 이 책은 어느 것에도 빠지지 않고 있다. 근대문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의 공(功)과 과(過)를 잘 평가하면서도, 결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 발전적 극복에까지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이 갖는 특별한 가치이다.


        약간 어렵긴 하지만, 인내를 갖고 모두 읽고나면 보람이 느껴지는 책이다. 문화 영역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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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동물원
츠츠이 야스다카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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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나 현 상황에서 텔레비전의 인기는 유명한 동물 탤런트가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런 때, 국회에 고릴라, 물개, 말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회제 민주주의, 의회민주정치가 아니겠습니까?"

 

 

  줄거리 。。。。。。。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각 장마다 각각의 인물과 상황이 등장하는 ‘모음집’이다. 무려 열 네 개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주는 요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저자 특유의 풍자와 비꼼이 아닐까 싶다.


        ‘원시 공산제’와 ‘의회제 민주주의’에서는 현대에서 더 이상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인된 두 개의 주요한 정체(政體)인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강변하고 있으며(특히 모든 내각의 장관과 국회의원이 연예인 출신이라는 설정으로, 하는 일 없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게 일이 된 국회의원들과 고급 각료들을 비꼬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근대도시’와 ‘미래도시’에서는 시민들의 어려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자기들의 규칙과 방식에 따라 느릿느릿 일하는 공무원들의 관료의식과 복지부동의 자세를 비판한다. ‘조건반사’에서는 현대의학기술의 급격한 발달과 이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내용들이 전혀 무겁지 않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매우 유머스럽게, 때로는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한 상황 설정으로, 그리고 실제로는 거의 일어날 것 같지 않을 정도의 확대와 과장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을 듯.


  

  감상평 。。。。。。。                                                      

 

         줄거리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풍자, 아니 약간 선을 넘어서는 비꼼이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비꼼을 좋아한다. 물론 이 비꼼의 대상이 약자나 자기가 속한 부류의 사람들일 때는 예외겠지만, 때로는 자신의 특정한 모습이 거기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약간의 놀람과 부끄러움,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즐거워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도구를 잘 사용하는 저자는 매우 효과적인 무기를 갖고 있다고 해도 좋으리라.


        저자가 일본인이어서 그런지, 책에는 일본 사회가 앓고 있는 각종 정신적 병폐들이 자주 등장한다. 지나치게 가벼움, 일본 특유의 호들갑스러움, 경박함, 허황됨, 성적 질서의 해체, 정치인과 공무원들에 대한 실망과 비웃음, 그리고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위기감 등이 이야기들의 주요 배경이다.

 

        저자는 이런 소재들을 사용해, 현재와 같은 모습이 과연 정상적인가 하는 질문을 역설적으로 던지는 듯 하다. 성의 방종, 언론의 경박스러움, 이기주의가 극단화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 나타나는지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으로 인정되는 세계가 얼마나 끔찍한 모습인가를 풍자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생각해보면 비단 일본만의 일이겠는가? 짧은 기간에 근대화가 되고, 서둘러 세계화에까지 나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다.


        다만 성적인 부분이 자주,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이 책을 청소년들이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쉽게 추천해주기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 역시 이런 부분에 지나치게 관대하고 일상화 된 일본의 상황을 반영한 것인 듯.


        웃음은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풍자는 좀 더 날카로운 무기쯤 될 것이다. 재미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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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쾌락 - 부엌과 식탁을 둘러싼 맛있는 역사
하이드룬 메르클레 지음, 신혜원 옮김 / 열대림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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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학적으로 식사시간의 특별함이란
사람들이 식사 전과 마찬가지로 식사 후에도 여유시간을 가지는 것,
식사가 일종의 아름다운 박자와 기분 좋은 여운을 포함하는 것에 있다.


 

 

   

 . 요약 。。。。。。。                                                  


        제목과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의 음식문화를 시대순으로 설명해 놓은 책이다. 저자는 호메로스 등의 신화작가들의 글과 그리스 로마 시대의 각종 문헌들, 그리고 중세, 르네상스 시기의 책들에 등장하는 음식에 관한 설명들을 종합해 하나의 주제에 관한 좋은 역사서를 써 냈다.


        자칫 딱딱한 설명조의 글이 되기 쉬운 내용이지만, 저자는 이런 위험을 잘 피해나가면서 서술을 이어간다. 아마도 저자의 경험 등이 뒷받침 되어 있기에, 음식의 조리나 완성된 모양에 대한 저자의 서술은 제법 생생하다.


        책은 오늘날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고대와 중세의 요리들의 그 진짜 모습을 제법 흥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과는 달리 모두 손으로 음식을 먹어야 했던 상황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을 지를 마치 눈앞에 보고 있는 듯 그려내고 있다. 또, 흔히 알고 있는 과거의 음식 문화에 대한 몇 가지 오류들을 교정해 주는 것도 이 책의 유익이라고 할 수 있다.

 

 


 . 감상평 。。。。。。。                                               

 

        우선 흔히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고대의 문헌들의 ‘요리에 관한 부분’을 이런 식으로 되살려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런 책들을 보면서 식사 장면이나 요리에 관한 부분들이 나오면 그냥 읽고 넘어가버릴 텐데, 저자는 용케도 그런 부분들의 특징을 잡아내 멋진 ‘역사책’을 썼다. 절로 박수가 나온다.


        책을 다 읽고 저자 소개를 찾아보면서 다시 한 번 감탄을 했다. 저자의 전공은 요리와 호텔경영, 그리고 다른 대학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분야들에 대한 저자의 폭넓은 관심에 한 번 놀라고, 또,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 대해 이런 수준의 학문적 책을 써 낼 수 있었다는 데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장인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가?


        유럽에는 취미로 즐겨 하던 낚시의 역사에 관한 책을 쓰는 평범한 직장인들이 있다던데, 참 멋진 일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그것을 진지한 자세로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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