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정부의 독재적 지도자, 그로 인한 격렬한 폭력이 동반된 충돌과 그 피해를 정면으로 뒤집어쓰는 (곧 난민이 될 운명의) 평범한 시민들이라는 작품 속 이미지는 저자가 시리아 난민들을 보고 떠올린 것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우리는 더 많은 곳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고 있다.
사실 이런 소재라면 좀 더 정치적인 메시지나 분석이 담길 만도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저자는 철저하게 아일리시라는 개인의 눈으로 사태를 서술한다. 만약 좀 더 직설적으로 정치적 비평을 가했다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피해자 중심으로 서술함으로써 사태의 잔혹성, 정치적인 문제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더 생생하게 묘사해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자신에게 아부하는 간들에 둘러싸여서 입맛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입을 틀어막고, 정치적 반대파와의 대화를 거부한 채, 종래에는 상대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가며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까지 획책했던 윤석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 참혹한 모습은 어쩌면 윤석열이 바랐을 미래였을 지도 모르겠다(직접 그 끝까지 그리지는 못했을 지라도―생각이 참 부족한 인사였으니까―그가 그렸던, 그리려고 시도했던 미래와는 비슷할 것이다). 최근에는 트럼프가 그와 비슷한 짓을 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도 하다.
작품 속 사건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후에는 어떻게 그 문제가 결말에 이르렀는지 퍽 궁금하다. 권위주의적 독재정부를 출현시킨 것도 시민들의 의사(투표)를 통해서였을까.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는 어떻게 끝났을까. 그리고 누군가는 제대로 책임을 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