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Che, 회상 - 체 게바라의 부인이자 혁명동지 알레이다 마치 회고록
일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여기서 생겨나는 물음.

체 게바라에게 열광하는 오늘의 젊은이들은 그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까.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중남미 친미독재정권의 군대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혁명가 게바라가 아닌,

시가를 입에 문 또 다른 할리우드 꽃미남을 따르는 것은 아닐까.

혁명은 탈색되고 그저 반항적이고 성적인 이미지로서의 게바라만 남은 것은 아닐까.

 

 

1. 줄거리 。。。。。。。

 

     쿠바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최일선에서 막아내고, 나아가 쿠바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다른 나라들의 투쟁을 돕기 위해 나섰다가 결국 볼리비아에서 암살을 당한 혁명가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반제국주의에 관한한 20세기 최고의 아이콘인 체 게바라의 두 번째 부인으로, 본격적인 쿠바민중혁명의 기간 동안 그와 함께 했던 일레이다 마치가 쓴 회고록이다.

     저자는 자신의 성장과정과 체 게바라를 만나고, 그와 함께 활동했던 시기들, 그리고 그를 떠나보내고 혼자 쿠바에 남아 지내야 했던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풀어 놓는다.

 

 

2. 감상평 。。。。。。。

 

     책의 전면과 후면은 체 게바라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이 책은 그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그의 아내인 일레이다 마치에 관한 내용들이다. 자신의 회고록을 쓰면서도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운명을 일레이다 마치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위대한 혁명가와 관련이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겐 충분했을까. 어떤 사람이 ‘그 사람 자신’으로 불리기보다는 ‘누구와 관계가 있는 사람’으로 불린다는 것은 내 생각에는 썩 유쾌한 느낌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이런 편집방식과 홍보방식 덕분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중의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체 게바라라는 인물에 집중을 하기 위해 손에 든 사람은, 체 자신 보다는 그의 아내인 일레이다에 관한 내용이 더 많다는 데서 중간에 포기를 할 가능성이 높고,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관념적(때때로 그저 교육된 사상을 되풀이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인데다가 썩 엄밀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는 데서 책 자체에 대한 불만족스러움도 더해질 테니 말이다.

     내 생각엔 이 책을 손에 드는 사람은 체 게바라와 매우 가까우면서도 친밀한 위치에 있었던 저자의 기록을 통해 체의 모습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을 품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쉽게도 책은 상황마다 체에 대해 그저 반복적인 동경을 하는 한 여인의 글에 가깝다. 더구나 글솜씨에 있어서도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예를 들면 ‘우리(체와 일레이다)가 서로를 알아보고 감정을 표현할 때까지는 끔찍한 사건과 오해를 겪어야 했다’(p. 23)는 문장은 자연히 이후 어딘가에 그 ‘끔찍한 사건과 오해’에 대한 흥미진진한 서술이 따라올 것 같은 기대를 품게 만들지만, 책을 너무 대충 읽었기 때문인지 나는 아직 그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책의 거의 유일해 보이는 장점을 꼽자면 체의 개인적인 편지와 대화들이 실려 있다는 부분인데, 그것들도 체에게 인간적인 면이 있었다는 것 정도밖에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들이니까.

     어떤 사람을 기념하고, 그의 업적과 삶을 재조명해보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는 체를 잘 그려내고 있는 것도, 그렇다고 일레이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도 아닌 어정쩡한 느낌을 받게 만드니... 물론 체와 가까운 사람이 그와 관련된 내용을 남겼다는 것은 이쪽을 전공하는 학자들이나 관심 있는 개인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긴 하겠지만, 나처럼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독자들에게는 그냥 그렇다는 느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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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맨 2008-09-29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쓰신 글을 보니 책 제목이 잘못된 것 같네요.

오랫동안 RSS로 받아보기만 하다가 첨으로 글을 남깁니다.
실은 제가 로긴을 할 수 있는지 이제서야 알았네요.
반갑습니다. ^^

노란가방 2008-09-29 08:0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
볼 건 별로 없지만 종종 들려 주세요- ㅎㅎ
 

"오래 전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요."

 


쉘 실버스타인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 소년을 사랑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소년이 어렸을 때,

나무는 소년에게 놀이터가 되어 주었습니다.


소년이 나이가 들어 돈이 필요했을 때,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팔아 돈을 마련하라고 했습니다.


소년이 좀 더 나이가 들어 집이 필요할 때,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잘라 집을 짓도록 해 주었습니다.

 
소년이 이제 중년이 되었을 때,

나무는 자신의 몸통을 잘라 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이 노인이 되어 돌아왔을 때,

나무는 기꺼이 자신의 그루터기를

소년이 앉아서 쉴 곳으로 내어 주었습니다

 


누군가를 후회없이 사랑하려면,

이 나무처럼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처럼 평생을 한 사람만 기다리면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름답긴 하겠지만,

그런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찾으면 됩니다.

그 자신이나 그를 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너무 가혹한 일이니까요.

지나치게 감상에 빠진 모습은,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들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 받지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을 해야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물론 사랑은 정확한 손익을 따져야만 하는 장사와는 다릅니다.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나도 이만큼은 받아야 돼'라는 생각은

사랑을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죠.

하지만 성경의 사랑법에 따르면,

사랑을 하는 두 당사자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퍼주는 것은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랑을 줄 수 있는 그 순간이 되었을 때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나무는 소년이 자신에게 왔을 때,

그 시점에서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주었습니다.

나무는 뒤의 일을 계산해 가며,

잘려나가는 자신의 가지를 보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무가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질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선뜻 자신의 몸통을 잘라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무는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소년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사랑을 담아 주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란 감정이 싹이 틀 때 지나치게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진짜라는 확신은 어디서 얻지?'

'혹시라도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그렇다면 한 번에 다 줘서는 안 돼.'

 


이런 생각들은,

대개의 경우 '사랑'이란 것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지고지순한 그 무엇,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하지만 사랑은 일상적인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의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친절, 배려, 때로는 그냥 미소만으로도

훌륭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이 시작될 때,

한없이 두려워 하고 있다가

결국 그 사랑을 떠나보내고 후회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이별을 할 것이 두려워서 꽁꽁 싸매어 가지고만 있으면,

후회의 분량이 작아질까요?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사랑한 사람은,

마음이 아프긴 하겠지만, 후회는 오히려 더 적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 주고 싶은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다 주었으니까요.

 


하지만 두려워하며 걱정만 하는 사람은,

해 주지 못한 것, 표현하지 못한 것들이

후회라는 이름으로 깊이 새겨지게 됩니다.

슬픔이 훨씬 더 오래 가게 되죠.

'그 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이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랑을 시작하셨거나,

사랑을 할 기회를 만나게 되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2주 간의 사랑이든,

2개월의 사랑이든,

혹은 그 이상이든

사랑을 하는 그 순간에는 걱정이나 불안은 조금 뒤로 내려놓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사랑을 하는 것이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더라도

가장 적게 후회하는 사랑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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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기간 위문을 위해

오랫만에 얼굴에 위장도 해 보고..

방탄헬멧도 써 보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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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야 형제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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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 여자들은 모두 널 보고 싶어 해."

작은 소리로 말하면서 미소 지었다. 박하 비슷한 향이 났다.

'해로울 게 없으니까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1. 줄거리 。。。。。。。 

 

     서른이 훨씬 넘도록 함께 사는 형제. 둘은 기묘하게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둘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특히나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는 더!!)를 수월하게 해 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그래서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집 안에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취미생활로 보내고 있긴 했지만, 나름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사랑 때문에 숱하게 상처를 받기도 했던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가 없었던 것인지, 형제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세상과(그리고 여성들과?) 소통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소통의 방법은 자신들의 집에서 여는 작은 카레 파티에 그녀들을 초대하는 것.;;; 그들의 이 ‘소심한 용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2. 감상평 。。。。。。。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에서는 자주 소소한 일상들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서술되곤 한다.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작가의 손을 거치고 나면 참 ‘문학적인 무엇’으로 바꾼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그다지 특별해보이지 않은 두 형제를 특별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게 작가적 능력인걸까. 

     여자들이 보기에 그다지 매력이 없는 두 형제, 실외활동보다는 실내 활동을 더 좋아라하고, 직소 퍼즐 같은 것에 몰두해버리고, 책에 담겨 있는 세계에 빠져버리는 모습 등은 거울을 볼 때마다 보는 내 모습이기도 해서 읽으며 살짝 당황스러웠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도 마미야의 냄새가 느낄지도..;;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은 많이 읽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냉정과 열정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도쿄타워』같은 작품들로 이어지는 그녀의 작품세계에는 한결같이 ‘사랑중독증’과 같은 지독한 애착을 ‘진정한 사랑’으로 그려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작품도 그런 우려를 안고 읽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기우였다.


     이번 작품에는 사랑에 빠져(혹은 애착을 사랑으로 알고) 허우적대는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에 만족하며, 자신들의 마음에 찾아온 바람에 약간의 흥분을 느끼면서 바람이 이끄는 대로 작은 시도를 하고, 그 추이에 따라 고조되기도, 좌절하기도 하는 좀 더 실감나는 인물들이 내용을 채운다. 다만 내용이 극단적으로 치닫거나 깊이 천착하는 것이 아니니 읽으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은 좀 적어진 느낌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여자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집안 분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나도 이제 때가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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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유모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백은실 옮김 / 한길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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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개선하려고 할 때 저 같은 지식인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한 일은

나중에 진정한 힘을 지니고 나타날 하층민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 놓는 것밖에 없을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들의 숙명일지도 모르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거꾸로 보기’의 역사해석을 시도한 책이다. 역사서술의 주체였던 남성적, 권력자적인 입장이 아닌, 상대적 약자인 여성적, 비 권력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의 시각으로, 그가 얼마나 방탕하고, 자기중심적이었는지를 비꼬고, 시성이라고 불리는 단테가 얼마나 그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무관심한 채, 오로지 자신의 이상만을 쫓다가 죽었는지를 꼬집는다. 칼리쿨라의 말(馬)의 시각으로 로마의 황제를 그리는 부분은 재미있는 시도였다.

     심기를 껄끄럽게 한 부분은, 여전히 이번에도 드러나는 저자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이다. 이 책에서는 성경, 특히 복음서와 관련해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하나같이 자기 멋대로의 해석이다. 대부분 자유주의적인 성경해석이며, 굳이 자신의 전공분야도 아닌 것을 쓰려는 이유가 미심쩍은 부분이다.

     이번에도 저자의 영웅숭배는 여전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에서 이것은 특히 더 잘 나타나는데, 저자의 눈에 든 인물은 모든 행동이 극도로 치켜세워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한없이 깎아내려지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글의 특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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