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예수와 함께한 학교생활
김옥 지음, 박영미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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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시골에서 서울 학교로 전학을 온 예준이. 아빠와 엄마는 하루 종일 일을 하러 나가시고, 그렇다고 마땅히 학원도 다니지 않는 예준이는 하루하루가 너무 지루하고 싫었다. 새로 가게 된 학교의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도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으니 정붙일 곳은 하나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일일 교사로 예수님이 오신다. 외로움을 느끼던 예준이는 그의 출현에도 시큰둥하지만, 선생님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찾아 나서기 시작한 천국의 열쇠. 과연 예준이는 그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2. 감상평 。。。。。。。    

 

     오랜만에 읽은 초등학생 용 도서다. 데이비드 그레고리가 쓴 ‘예수와 함께한…’ 시리즈를 모티프로 삼아서 쓴 책. 주인공은 아이로 바뀌었고, 주제인 복음을 설명하는 방식도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배경인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어린이용 도서다보니 주제 전달에 있어서 복잡한 논증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았고, 대신 좀 더 단도직입적이고 단순한 이야기서술 구조를 택하고 있다.

 

     띠지에 쓰여 있는 문구처럼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책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우선은 책의 원형인 그레고리의 것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화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고, 무엇인가를 따라한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저항감이 이런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듯하다.

     하지만 다행히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은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공인된 내용들이기에, 기꺼이 추천을 할 수 있겠다. 사실 교회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제대로 된 책이 많지 않기에 그 선택지가 충분히 넓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책의 출간이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어린이들이라면 부모님들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고, 책 뒤편에 부록은 부모와 아이가 서로 질문과 답변을 하며 친밀감을 높여가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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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는 것과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비슷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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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치란,

국민이 주체적인 사고와 판단에 따라 국가 운영에 관한 의견을 내고,

이 의견을 모아 국가의 운영방향을 결정하는 정치체제이다.

참 멋진 정치 형태 중 하나이다.

이런 정의대로의 체제라면 난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이 멋진 정치형태가 올바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도적 장치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마도 그 '장치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일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이 투표를 '잘' 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그 국가가 민주정치를 행하고 있느냐를 판단할 수 있는 주요 기준이다.
 

 

무엇이 투표를 '잘' 하는 것이냐에 관한 논의는 거의 정리가 되어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 41조 1항에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라는 투표의 4대 원칙이 등장한다.

'보통선거'란 누구나 학력, 성별, 재산 정도 등의 구별 없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원칙이고,

'평등선거'란 1인 1표의 투표원칙이다.

'직접선거'란 그 국민들이 다른 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투표소에 가서 기표를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마지막으로 '비밀선거'는 투표의 전과정이 본인 이외의

누구에게도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규정한다.
 

 

이 원칙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처음에 말한 것처럼 국민들이 주체적인 사고와 판단에 따라

투표의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역시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 개개인의 '주체성'이다.

 





 
하지만 이런 도구들이 잘 갖춰졌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자동적으로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튼튼하고 잘 만들어진 자동차가 있어도

그것을 운전하는 사람이 제대로 운전법을 모르면

차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라는 좋은 자동차도

그것에 직접 올라 타 운전하는 사람들이
 
정확한 운전법을 모르면 결코 국가는 정상적으로 가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떤 상태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이제 도구적인 장치들은 잘 만들어졌다.

이승만 부패정부나,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시절에는

이 원칙들이 흔들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그것을 운전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여전히 충분히 적응이 되지 못한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우리나라 정치 영역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전문가 집단'에게 맡겨버리고

자신들과는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소위 '전문가 집단'에는 정치인들, 언론인들이 대표적이다.

사실 그 전문가 집단의 의식 수준은 보통 사람들보다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 데도,

아니 종종 보통 사람들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이런 무책임한 태도를 쉽게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수준이 떨어지는 가장 대표적인 증거는

'상식 이하의 도덕적, 윤리적 의식 상태'이다.

술을 마시고 술주정을 하는 것 까지는 뭐라 하기 어렵겠지만,

그렇게 자기 제어가 풀려버렸을 때

그 사람의 의식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모 정당의 어떤 국회의원들이 하는 꼴을 보면,

지정된 열차 좌석을 마음대로 바꾸라고 열차를 발로 차고,

음식점 여종업원의 신체 부위를 주무르기도 한다.

60대 경비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려치는 등의 행패는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일들이다.

 


그들의 특권의식은 정당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함께 술 먹고 놀러 다니려고 소방헬기를 불러 탔다는 얘기는 가히 압권이다.

그들이 과연 일반인들보다 뛰어난가?

 


상습적인 '말 바꾸기'도 중요한 수준 낮음의 증거이다.

자기들의 세의 유불리에 따라 오늘은 여기에 붙었다, 내일은 저기에 붙었다 하는 모습은

이제 특별한 뉴스거리도 안 될 정도로 흔한 일들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같은 대상을 향해

그렇게 열렬한 비난과 찬양의 말을 동시에 할 수 있는지,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주체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사고와 판단을 '언론들'에게 맡겨버린다.

언론의 속성상 결코 '중립적이며 객관적'이지 않은데도

사람들은 언론에 실린 이야기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요즘엔 소위 '언론 권력'이라는 말도 등장한다.

각 언론사들은 자기의 유불리에 따라 논조를 조작해

'이것이 여론이다'라는 식으로 선전한다.

때로는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을 감싸주고,

작은 잘못을 나라를 뒤흔들만한 문제로 확대하기도 한다.

 


물론 언론사들이 각자의 논조를 갖는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 것들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무엇으로 생각한다는 데 있다.

이제 사람들은 언론이 머릿속에 넣어주는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 것으로 착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적은 '민주적 의식의 부재'이다.

절차적 부실은 의식만 있다면 언제든지 갖출 수 있지만,

의식의 부재는 절차의 갖추어짐을 무효화시키기 때문이다.

민주적 의식이 없는 대다수의 지지로 만들어진 정부나 의회는

민주정치의 상징이라기보다는 '군중정치'의 산물일 뿐이다.

 


이 글은 모든 우리나라 사람들을 멍청한 군중으로 묘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분명히 어떤 분들은 나같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정치적인 의식을 갖고 있으며,

다행히 그런 사람들은 적지 않아 보인다.

다만, 여전히 많은 일반 시민들의 민주적 의식이 좀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들이 여전히 자신의 지역구에서 지지를 받고 있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독재자의 이름이 구국의 영웅으로 떠받들여지고 있고,

각 당의 대변인이라는 작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독설을 쏟아내기 바쁜 것을 보면

이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얼마 없지 않을까.

 


얼마 전 이탈리아의 한 지방의회 의원이

의회 회의 시간이 촉박해 앰블런스를 타고 혼잡한 도로를 빠져나가 회의장에 도착했다가

그 사실이 밝혀져 의원직을 사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참 신선하지 않은가?

정상적인 것이 이렇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민주정치 수준이 낮음을 증명하는 것일 터.

상식이 기적이 되는 곳이 여기에 또 있다. 

 





상황이 이 정도니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철인(哲人)정치라고 했다는 플라톤의 주장도 이해가 간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들에게 정치를 전담하도록 하자는 말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뉴스에서

정치인들의 망언이나 패싸움은 보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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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 일본 - 일본 귀족문화의 원류
모로 미야 지음, 노만수 옮김 / 일빛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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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781년 백제에서 건너간 이주민의 후손이 낳은 야마베노가 일본의 왕이 되면서 시작된 헤이안 시대의 사회 문화 전반에 관한 개설서이다. 작가는 그 시대의 인물(1장), 식생활(2장), 종교(3장), 문학(4장) 등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그리 과장되지 않는 문체로 정갈하게 서술해 나간다. 

     마지막 장인 5장에서는 ‘겐지 모노가타리’라는 인물의 복잡한 여자관계에 관한 일본 최초의 소설을 작가가 직접 각색해 당시 귀족들의 삶의 한 단면을 재미있게 훑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 감상평 。。。。。。。

 

     아직 칼을 들고 설치는 사무라이들이 활개를 치던 가마쿠라 막부 시대가 시작되기 전, 조금은 더 단출하고 하지만 나름대로는 꼿꼿했던 귀족 문화가 발달했던 시대. 헤이안 시대에 관해 이 책을 읽고 든 느낌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삼국시대 정도 된다니, 대개 대륙에 비해 문화의 발전 속도가 늦기 마련인 섬나라인지라 아직 화려한(종종 일본 문화에서 볼 수 있는 좀 과장되기까지 한) 수준의 무엇은 아니지만, 평생을 시골에서 살며 자신만의 고집과 고상함을 유지하는 중년의 남자의 느낌이랄까.

     일본 사람들의 이름은 왜 이리 길고 안 외워지는 걸까. 이 책을 읽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복잡한 이름들을 구별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책은 나름대로 헤이안 시대라는 특정한 시대의 여러 가지 문화적 측면을 다루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역시나 과거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사서들을 참고해야 할진대, 대개의 사서들이 인물중심으로만 쓰여 있으니 자연히 그 소개서도 인물 중심으로 나온다. 사실 내 경우 좀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음식과 생활풍속 등을 다루는 부분이었는데.

     한 사회, 특정한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어디 책 한 권으로 될까 만은, 아버지의 나라를 외국에 알리고 싶다는 알찬 결심이 그대로 묻어나오기 때문인지, 읽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무엇이 있다. 다만 마지막에 실려 있는 겐지 이야기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서 나머지 부분을 잡아먹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좀 아쉽다.(내가 보기엔 그저 부족한 것 없이 자라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드리는 것으로 한 평생을 보낸 한량의 이야기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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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증 치료 성분인 글루코사민이라는 물질의 분자구조다.


인간에 대한 염증은 어떤 약으로 치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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