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 - Push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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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초능력자들을 모아 인간무기를 만들어 세상을 지배하려는 비밀조직 디비전. 그들의 실험실에서 도망쳐 나온 ‘푸셔(기억 조작자)’인 키라는 금새 쫓기게 된다. 한편 디비전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잃은 닉은 갑자기 나타난 소녀 캐시(닉은 염력을 사용하고, 캐시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와 함께 키라를 보호하며 디비전의 음모를 막기 위해 나선다. 여기에 키라가 가지고 나온 능력자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약물을 빼앗기 위해 나선 홍콩의 조직까지 뛰어들면서 사건은 점점 혼돈으로 접어든다. 

 




 

2. 감상평 。。。。。。。

 

     감독은 홍콩의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들을 배경으로 쉴 새 없이 카메라를 움직이며 관객의 눈을 바쁘게 만든다. 덕분에 영화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전개를 가지게 되었고, 이는 영화의 긴장감을 높여주었다. 여기에 영화의 주인공들도 시종일관 여기저기를 달려 다니니 확실히 지루한 느낌은 없다.

     이 영화를 말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는 역시 다코타 패닝. 솔직한 느낌으로는 이 십대 소녀 배우의 포스(?)에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가려버리는 듯했다.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력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94년생이라는 이 배우의 연기력이 눈에 띤다. 영화 전체를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문제는 이게 다 라는 거?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배우들이 나와서 그냥 뛰어다니다가 끝난다는 거다. 무엇보다 스토리 자체에 긴장감이 없다. 폴 맥기건 감독의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를 보면서 그 로맨스물에 담긴 치밀한 복선들과 스토리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나로서는 ‘감독이 돈이 급했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실망스러웠다. 뭐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전적으로 다코타 패닝에 기댄, 다코타 패닝을 전면에 내세워야만 하는, 다코타 패닝을 위한 영화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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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 - Red Cliff 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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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전편에 이어 마침내 시작된 적벽에서의 대결. 압도적인 군세의 조조군을 손권과 유비군이 적벽에서 막아내 패퇴시켰다는 내용은 이미 관객 대부분이 역사적으로 알고 있었을 터. 삼국지연의의 작가는 이 기적적인 승리를 설명하기 위해 바람의 방향을 바꾼 제갈량의 도술과 황개의 고육지책을 도입했지만, 영화의 감독은 그 둘 모두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듯 잘라 내 버린다.

     주유 중심의 이야기 전개를 선택한 감독이 도입한 에피소드는 손권의 동생인 손상향과 주유의 아내인 소교 등 두 명의 여인이 중심에 서 있었다. 삼국지의 여성 중심의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으려나. 

 


 

2. 감상평 。。。。。。。

 

     전편을 보고 가졌던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만한 영상이었다. 우선 엄청난 인원을 동원해 고대 전쟁의 모습을 충분히 잘 재현해 냈고,(우리나라에서 방영되는 역사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동네 전투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등장인물 각각의 성격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웠다. 컴퓨터 그래픽을 적절하게 사용한 대규모 전투신은 그냥 그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이 영화를 볼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줄거리 설명에서도 간단히 언급했듯, 이 영화에서는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역사물의 경우 여성들은 대개 주변인물의 역할을 맡아야 했던 것이 보통이었지만, 더구나 삼국지와 같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작품에 새로이 여성의 역할을 부여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썩 괜찮게 영화 속으로 녹여냈다. 물론 당시 여성이 혈혈단신으로 적진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가능했겠느냐 하는 질문은 별도로 해 봐야 할 부분이고..

     서양의 역사물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여러 국가들에 팔리는 것처럼 동양적 소재들도 서양에 팔리는 영화로 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는데, 이 정도 영화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물론 동양 역사에 어느 정도 흥미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어필할 수 있겠지만..) 꼭 환타지가 아니라도 동양 역사 자체를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부담없이 즐기기엔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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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너무 쉽게 다른 사람에게 비수를 꽂는다.

눈빛으로, 태도로, 말로, 글로..

그래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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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사랑은
상대로부터 떨어지고 싶다는 충동과
상대를 절대 놓고 싶지 않다는 애착이라는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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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IVP 모던 클래식스 3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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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특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안전을 확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진정한 안보에 이르는 길은 정의다.

 

1. 요약 。。。。。。。 

 

     저자는 오랫동안 인간 존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종교’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회피적 종교와 형성적 종교가 그것. 특별히 기독교 안에서도 이 두 흐름이 발견되는데, 중세 기독교와 종교개혁 이후의 루터교 일파는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회피적(내세 지향적) 종교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칼뱅주의로 대변되는 개혁주의자들은 세계 형성적 종교로서의 특징을 가진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자 한다. 저자는 개혁주의자의 후예로서 현대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관해 논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현대 세계는 빈부격차의 문제, 근시안적 민족주의로 인한 문제, 도시환경에 있어서의 무질서 등 불의와 억압으로 가득 차 있다.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저개발 국가들을 ‘주변국가화’ 시키고 있고, 강자들은 약자들을 착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샬롬 중심적 세계관’을 그 대답으로 제안한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인 개혁자와 비 그리스도인 개혁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둘 모두 사회의 ‘개선’ 혹은 ‘선의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면, 그리스도인의 독특함은 무엇인가? 저자는 그 독특함을 예배에서 찾는다. 단순한 예전이나 교회 밖의 삶을 위한 주유소쯤의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성함을 접촉하고, 그분으로부터 기쁨과 안식을 얻을 때 정의와 샬롬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2. 감상평 。。。。。。。

 

     우리나라처럼 좌우의 갈등이 첨예한 나라도 많지 않으리라. 슬프게도 기독교 안에도 이러한 갈등 혹은 구분이 존재한다.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조금이라도 비판할라치면 단숨에 좌파니 뭐니 하는 비난을 해대고, 하나님의 주권이나 영혼구원을 강조할라치면 보수니 우파니 하며 단정 짓는다. 인간 영혼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사회에 대한 책임과 개혁을 말하려는 시도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주변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미심쩍은 비난과 지적을 단숨에 뒤집어버릴 수 있는 철학적, 신학적 근거를 제시해주고 있다. 저자는 소위 보수 쪽에 속하는 개혁주의 혹은 칼뱅주의 안에 이미 세계 변혁적인 비전이 담겨져 있음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그들의 신학적 전제에 충실할 때, 그들은 이 세계에 정의와 샬롬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참 매력적이다. 내 평생의 작업도 바로 여기에 놓여 있으니까.

 

     슬픈 현실은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지 20년이 훨씬 더 넘었음에도, 책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전히 세계는 강대국들이 설정한 질서에 따라 움직이고 있고, 인종적 갈등과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기독교인들도 이런 사회의 변화를 올바로 집어내지 못하고 그저 번영과 강자를 위한 논리를 개발하고 있으니 심각한 일이다.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많은 비난이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기인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세계 형성적 기독교라는 것을 바르게 인식시키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형성해 놓은 이 세계의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종종 그 자체로 죄를 짓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기독교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가져야 할 비전은 훨씬 더 크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모두 시야에 넣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성경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 사회참여에 관한 고전이라는 책 소개가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큼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세상을 품는 큰 꿈을 꾸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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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맨 2009-03-2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 저도 공감합니다.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
지금 페이퍼를 쓰고 있는데.. 블로그에 관한 페이퍼인데요.

과연 블로그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결국' 장기적인 운영을 하게 될까요..??
주인장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뜬금 없는 질문 죄송합니다. ^^

노란가방 2009-03-23 13:42   좋아요 0 | URL
블로그 운영의 목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저 같은 경우는 우선 저 자신을 위해 블로깅을 하는 터라
누가 보든 안 보든 그냥 쭉 운영할 것 같구요..
다른 무슨 목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 목적이 잘 될 때야 계속 운영하시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