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기원
필립 W. 컴포트 지음, 김광남 옮김 / 엔크리스토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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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성경의 기원에 관한 다양한 논문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1부는 총론 격으로 성경의 영감과 권위 등에 관한 내용을, 2부에서는 신구약 정경들이 어떻게 모아졌는지, 그리고 외경들에 관한 간략한 소개가 담겨 있다. 3부는 성경의 문학성에 관한 논문들이고, 4부는 사본학에 관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마지막 5부는 성경 번역에 관한 내용이다.


성경의 영감을 다루고 있는 1부의 글 몇 개를 읽어 보면 이 책이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신학에 기초해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열세 명의 저자가 쓴 열다섯 개의 글이니 완전히 동일한 시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책으로 엮으려면 대체로 신학적 견해의 공통점은 있을 테니까. 때문에 여기 실린 글들은 보수적인 관점에서 본 성경의 기원, 정확히 말하면 성경의 형성사에 관한 다양한 내용이다.





개인적으론 뒤로 가면서 점점 더 재미가 느껴졌던 책이다. 사실 성경의 영감이나 무오성에 관한 것들은 원칙론에 관한 내용인지라, 무엇을 밝히고 발견하고, 연구할만한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본문이 어떻게 모이고, 거기에 담긴 내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에 관한 방법론적 연구는 확실히 성경을 좀 더 제대로 아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책은 이 부분에 관련해서도 보수적이면서 건전한 학문적 관점이 충분한 타당성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한 무리의 사람들은 성경 속 문체의 차이를 그것이 편집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차이는 글을 쓸 때 이야기의 속도와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작 성경 속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의 차이를 가지고 네 명에서 수십 명의 다른 저자들을 떠올리는 건 근거에 기초한 학문적 결론이라기보다는 그저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상상력이 (어떤 면에서)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물론 성경의 전승사를 공부하다 보면 명확한 부분보다 때로는 모호하고 생각했던 것만큼의 선명한 증거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건 과거, 혹은 역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모든 학문에서 발견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그러한 모호함이 전체의 그림을 아주 왜곡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종종 모호해 보이는)증거들을 수집해서 충분히 믿을만한 과거를 정리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핵심적인 교리에 있어서 이런 ‘모호한 부분’에 기초한 내용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모든 증거들은 애초에 성경의 신뢰성을 의심하기로 작정한 이들에겐 별 소용이 없는 논증일 수도 있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건 전제의 문제지 증거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보수적 복음주의의 시선으로 성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수되었는지를 맛볼 수 있는 책. 다만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서 각자의 주제를 다루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일부 서로 겹치는 부분들도 보인다. 이 부분을 편집하면서 정리해 다듬었다면 전체적으로 좀 더 좋았을 것 같긴 한데, 또 여기에 참여한 각각의 학자들의 위치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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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유대인은 솔로몬 성전을 초기 신앙의 본질로 이해했으나

사실 솔로몬 성전은 그 시대에 왕실 밖에 거주하던

경건한 신앙인이 이해하던 성전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강제 노역과 조세 구역, 전차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솔로몬 성전은 낯설기만 했다.

여러 면에서 지중해 해안 지역이나

나일 계곡의 더 진보한 이방 문화를 모방한 탓이다.

이방인 아내들, 중앙집권체제,

북쪽 지파를 대하는 무자비한 태도를 감안할 때

솔로몬이 이교를 포용했던 것은 아닐까?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여러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 장소는 아니었을까?


-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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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가 전부는 아니다 - 기후 위기를 둘러싼 종말론적 관점은 어떻게 우리를 집어삼키는가
마이크 흄 지음, 홍우정 옮김 / 풀빛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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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기후’는 이 시대를 상징하는 주제어 가운데 하나다. ‘기후 변화’, ‘이상 기후’라는 말이 나오더니, 어느 순간부터 ‘기후 위기’라는 말로 바뀌었고, 이제는 ‘기후 재앙’이라는 표현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파국의 날을 계산하는 카운트다운도 꽤 자주 보인다. 카운트다운 속의 남은 시간은 (당연히) 볼 때 마다 줄어드는데, 종종 그 속도가 급가속되기도 한다.


이른바 기후 종말론이 우리 시대를 덮고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기후 문제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생각이 문제인 이유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기후로 돌리고,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후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쓰였다.






오늘날 기후주의는 하나의 사상이 되었다. 모든 문제를 기후의 문제로 환원시키면, 자연히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난 것도, 수많은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것도, 미국에서 큰 산불이 자주 일어나거나, 텍사스의 전력망에 장애가 발생하고, 사람들의 수면이 부족하고, 점점 사나운 게시물을 SNS에 올리고 하는 식의 모든 문제가 다 기후 때문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기후 이상의,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원인들이 배경에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후주의는 이런 복잡한 배경을 단순화하고, 당연히 해결절차 역시 맹목적이 되게 만든다. 예를 들면 탄소배출량을 일정한 수치로 줄이는 것이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식으로. 그 결과 저개발국가의 사람들에 부당한 억압적 조치를 가하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오히려 애초의 목표 달성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지구적 규모의 체계는 인간이 모두 살피지 못할 만큼 너무 크기 때문이다.


기후주의는 이제 그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정도로 거대한 바구니가 되어버렸다. 이제 어떤 문제도 우리는 기후라는 용어를 사용해 치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습을 저자는 흥미롭게도 종교적인 용어들로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주의자들은 마치 영지주의자들처럼 자신들만이 세상에 관한 신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이 지식은 과학자라고 불리는 상급 사제들에게서 전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도 언급한 종말론적 수사는 여기에 자연스럽게 딸려 온다.


생각해 보면 당면한 기후재앙을 언급하며 진심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툰베리 같은 캐릭터는, 흔히 시한부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이비 종교집단 안에서도 발견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툰베리가 “과학의 소리를 들으라”며 절절히 외치는 소리는 조금 흠칫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이 문제는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무슨 이념을 좇듯 무지성 돌격을 하다보면 오히려 중요한 다른 문제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과학은 우리의 미래를 예언하는 도구가 아니다. 과학은 과거의 사례들을 종합해 현재를 설명하는 도구일 뿐이고, 그 예측은 옳을 수도 있지만 심각한 오류를 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저자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우선 고려하고, 기후주의의 “시한부주의”를 완화하고 “겸손의 기술”과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 “다원적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기후문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일부가 철석같이 신봉하는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보다 넓은 시야에서 인류가 마주하는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이다.


조금은 모호해 보이는 제안이긴 한데, 우선은 기후주의로 인해 좁아진 시야라는 문제를 치료하려면 조금 멀리서 문제를 바라보는 게 가장 중요하긴 하다. 또, 저자는 단순히 기후주의로부터 멀어지자는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다른 문제들을 좀 더 가까이서 바라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탄소 발생량을 줄인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고,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살인율이 떨어지고, 우리나라의 출생률이 올라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기후문제에 관련해 꽤 흥미로웠던 책이다.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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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증거에 의거해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에만 답한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은 그보다 더 나가고 싶어 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는

더 깊은 질문들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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