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안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재판에 관한 기록들에 관한 긴 주석이다. 아니, 주석보다는 일종의 탈굼이라고 해야 하나. 탈굼은 원래 유대 랍비들이 구약 성경의 내용에 길게 해설을 붙여둔 글을 말하는데, 이 책은 그 본문이 신약 복음서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또 주석과는 다른 게, 주석은 주로 학문적인 연구와 비평을 하는 데 반해 이 책의 경우 그런 종류의 접근을 하지는 않는다. 굉장히 자유롭게 다양한 글을 인용하면서(꽤 자주 문학 작품을 언급하기도 한다) 본문에 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돕는다.
네 권의 복음서에서 공통적인 장면을 각각 한 개의 장으로 구성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각 복음서에 실린 서술의 차이점에 집중하게 된다. 저자는 마가복음에서는 침묵으로 초월의 세계를 바라보는 모습을, 마태복음에서는 참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전문지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누가복음에서는 배제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서의 선택을 요구하는 내용을 읽어 낸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심판의 한 결과인 순교에 관한 내용을, 여섯 번째 장에서는 심판대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대답의 내용에 관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전반적으로 딱 제목에 나온 것처럼 심판 행위 자체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에 관해 무엇을 드러내 주는지, 또 그 본문들이 우리가 어떤 존재임을 가리키는지를 설명하는 책.
개인적으로는 고난주간을 앞두고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책일까 하면서 폈지만, 그런 내용은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는 심판의 과정과 결과로 일어난 고난과 나아가 부활이 중요함을 언급하면서도 여기에서 그 부분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로완 윌리엄스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읽어가는 맛이 있는 글이다. 성경 본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신앙생활로 연결시키는 능력은 탁월하다. 다만 이번 책에서 아쉬운 점은 복음서의 공통 본문의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에서 생각보다 본문 자체에 천착하는 부분이 약했다는 부분이다. 저자가 각각의 복음서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그리스도의 재판을 다룬 각 복음서의 서술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은 각 복음서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인데, 저자가 각각의 복음서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얼마든지 다른 복음서와도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복음서를 그저 빌려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 정도. 물론 그 내용이 전혀 엉뚱한 건 아니지만.
C. S. 루이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서 쓴 책 “헤아려 본 슬픔”에서 “오직 극심한 고통만이 진실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말한다. 극심한 고통은 카드로 만든 우리의 집을 허물어 진짜를 드러낸다는 의미다. 그리스도가 서셨던 심판대는 그분에게 임해 있는 심오한 진리를 드러냈고, 나아가 우리에 관한 진리 또한 드러낸다. 이런 면에서 저자가 선택한 주제는 꽤 의미가 있었다고 봐야 할 터. 조금은 현학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있긴 해서 살짝 아쉽다.
대부흥운동의 직접적인 결과는
자급, 자전, 자치하는 복음주의 한국 개신교회의 형성이었고,
그 장기적인 결과는
한국 개신교회가 일제 식민지 기간의 핍박과 난관을 충분히 인내할 수 있는
영적인 힘과 거룩한 기억을 제공받은 것이었다.
- 옥성득, 『한국 기독교 형성사』 중에서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능력은 당연히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해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이 사람들이 내게 백인 노동 계층의 어떤 점을
가장 변화시키고 싶으냐고 물을 때마다,
내가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대답하는 까닭이다.
- J. D. 밴스, 『힐빌리의 노래』 중에서
더숲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고대 역사 세 번째 책은 히타이트 제국에 관한 내용이다(참고로 첫 책은 바빌론이었고, 두 번째는 동로마였다). 개인적으로는 바빌론의 역사에 꽤 감동을 받아서 이 시리즈는 나올 때마다 하나씩 구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역시 첫 책이 중요하다.
바빌론의 역사 때도 그랬지만, 고대 근동의 역사에 관한 책은 사실 그리 많이 나와 있지도 않고, 그래서 자세한 내용을 알기가 쉽지 않다. 물론 요새는 어지간한 내용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손에 잡히긴 하지만(어차피 그 내용도 다 어딘가의 책이나 논문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래도 이렇게 책으로 잘 엮어서 나오면 소장하는 느낌이 또 다르다.
이번에 다루고 있는 히타이트의 역사 역시 비슷하다. 바빌론이나 아시리아에 비해 잘 알려지지도 않은데다가, 어지간히 고대사에 관심이 있지 않으면 이름도 모를 게 당연한 그런 이야기. 이렇게 정리를 해 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장부터 6장까지는 히타이트가 어떻게 시작되고 멸망했는지의 과정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리해 두었다. 그런데 워낙 기록으로 남은 내용이 적은 쪽의 역사라 이렇게만 쓰고 나면 책이 너무 얇아져 버린다. 그래서인지 7장부터 13장까지는 본편의 역사보다는 다양한 히타이트의 문화적 측면들에 관한 연구 성과를 간략하게 정리해 두었다. 법과 군사, 종교, 도시 건축과 일상생활 같은. 물론 이런 내용들 역시 남아있는 기록 자체가 적기 때문에 아주 자세한 학술적 연구물이라기보다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추정해 나가는 스케치 정도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9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사람들이 히타이트라는 이름을 좀 아는 이유는 (거의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제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그런데 직접 히타이트 유적 발굴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던 저자는, 남아있는 유물의 양과 질로 볼 때, 고대 히타이트가 특별히 철기 문명을 앞서서 세웠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당시의 철기는 일종의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히타이트는 사실 청동기 제국이었다는 것. 흥미로운 설명이다.
또 하나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성경에 나오는 헷 사람들과의 연관성 부분인데, 이쪽은 성경 기록 이외의 다른 문서 자료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학문적 입장에서 저자는 히타이트와 “헷 사람”의 연결 가능성을 좀 낮게 보는 느낌이다. 물론 그게 관련이 없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고, 연결지을 수 있는 다른 자료가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구약성경에서는 이들 헷사람을 가나안 종족 중 하나로 묘사하는데,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가 바로 이 헷 사람이었다. 연대상 다윗 왕국이 BC 11세기 말에 해당하고,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것이 BC 1200년 경이었으니, 멸망 후 여러 갈래로 흩어진 히타이트의 일족이 가나안 쪽으로 남하해 살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수많은 히타이트의 왕들과 도시들의 이름들이 잔뜩 나온다. 우리와 전혀 다른 지역의 역사를 접할 때 조금 어렵게 느껴지도록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전쟁과 정복 이야기를 집중하다 보면 마치 영화를 보거나 놀이공원의 어트랙션을 타고 쭉 지나가는 것처럼 신이 난다(물론 모든 사람에게 이런 식의 반응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다음 책은 또 어디를 비출까?
덧. 이런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이 부럽다. 역사, 인문학 분야에서 은근 일본 저자들의 책들이 자주 보이는데, 그들의 저력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본격적으로 독서모임 운영에 사용하고 있는 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희가 하는 게 정답은 당연히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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