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동성 그림,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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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로 유명한 파올로 코엘류의 책. 궁도를 익히고 그것에서 얻은 깨달음을 인생사와 관련하여 썼다. 뭔기 기예를 익히는 것은 정신적인 것을 요구하니 이런 것도 가능한듯 하다. 전작이 서사가 있어 그런줄 알았는데 서사는 없고 인생에 대한 언급으로 채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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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수다
전김해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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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보는 전김해 작가의 책이다. 저번에 본 책은 '사자와 쥐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는데 이번에도 어김 없이 사자가 등장한다. 아마도 사자는 작가의 페르소나인 듯 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사자라는 생물이 가진 두 가지 상반된 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자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이며 암사자 무리를 이끌지만, 사실상 혼자 다니는 외로운 존재이며, 언제든지 다른 젊고 강한 외부의 숫사자에 의해 쫓겨날수 있는 불안한 처지에 있다. 이런 사자의 특성 때문에 작가는 사자를 선호하는게 아닐까.

 전김해 작가의 책을 보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림이 재밌다. 전작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좀처럼 같은 사자를 그리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사자는 갈기나 표정, 형태, 크기가 제각각인데 이런 면도 재밌다. 같은 것을 매번 다양하게 그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 만해도 그렇다. 매번 완전히 다른 장르의 다양한 책을 보려고 하지만 책을 보고 써놓은 나의 글을 보면 나라는 개체를 거쳤기에 하나 같이 똑같다. 무척 아쉬운 부분인데, 때문에 작가가 다른 내용의 글과 그에 맞는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건 쉽지 않았을 것이고 대단해 보이는 부분이다.

 '사자와 수다'에서는 사자의 상반된 특성처럼 인생의 여러 모순되는 장면을 통해 삶에서의 나름의 의미를 찾은 작가의 생각을 드러낸다. 책은 시나 단편처럼 짧은 글로 이루어지는데 '아버지와 아들1'에서는 강하고 위대한 아버지 사자를 닮으려는 아들에게 '나처럼 되지 말고 진정한 너가 되어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반대로 아버지와 아들2에서는 아들을 좀처럼 못 놔주는 과잉보호 사자에게 신이 아들을 과감히 내려놓으라고 자신은 그렇게 해서 아들을 한번도 잃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서로 상반되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말하는 연작이어서 재밌었다. 

 '슬픔이의 슬픔'이란 이야기도 좋았다. 큰 기와집 처마 밑에서 작은 슬픔이들이 울며 슬퍼하고 있었는데 왜 그러냐고 사자가 묻자 이 집이 부적을 붙여놓으며 슬픔들을 받아들이지 않아서라고 하였다. 사자는 집안 사람들을 오만하다고 비웃으며 마침 큰 슬픔이 지나가자 집안의 오만한 것들을 한방에 날려버리라고 한다. 하지만 큰 슬픔은 이들이 작은 슬픔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집이 한방에 무너질수 있고 자신들의 일을 집을 무너뜨리는게 아니고 연약함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 말한다. 인간에게 실패와 세상사로 인한 슬픔이 그를 무너뜨리기보다는 딛고 일어서고 웬만한 역경을 견디게끔 단련시켜주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책을 두껍지 않지만 이솝이야기처럼 큰 5개의 주제아래 여러 이야기가 얽혀있다. 상당히 신박한 것도 다소 평범한 것도 있으며 이야기에 맞춰 다양한 그림들도 있다. 그림은 모두 흑백이고 대부분 거친 펜이나 연필로 그린 듯하다. 무거우면서도 다소 가볍게 생각하고 그림을 같이 그려내며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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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닷슈 2021-09-1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추석잘보내세요 스콧님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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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철수가 이루어졌다. 침공 20년만의 철수로 미국은 결국 유럽세력권이 아닌 지역에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데 다시 실패했다. 아프간의 역사는 한국만큼 복잡하다. 아프간은 중국과 연결된 혹모양의 자연스럽지 못한 국경을 갖고 있는데 이는 영국과 러시아간의 그레이트게임의 흔적이다. 

 아프간은 20세기 초중반까지 왕정이었다. 이슬람이 주 종교였지만 사람들은 비교적 자유로웠고, 여성도 교육받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1972년 왕의 해외순방 중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 세력도 오래 못가 공화정이 들어선다. 공화정은 다시 사회주의 정권으로 교체되었고 이에 소련이 침공한다. 소련에 대항해 아프간내 여러 반군 세력이 일어났는데 그 중 하나가 탈레반이고 그들을 소련의 적인 미국이 지원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침내 소련이 아프간에서 물러나고 반군세력간의 내전 끝에 탈레반이 1995년 정권을 차지한다. 종교근본주의로 아프간 사람들의 자유는 사라지고 여성의 인권은 바닥을 쳤다.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났고, 알카에다의 중심으로 알려진 아프간은 미국의 침공을 받고 탈레반은 무너진다. 하지만 결국 미국은 아프간에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를 세운는데 실패하고 철수했으며 다시 탈레반이 돌아왔다. 지난 20년간의 절치부심으로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정받는 것의 필요성을 절감하는듯 하지만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 기준에 얼마나 스스로를 맞추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 기준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어려서 미국으로 건너간 아프가니스탄의 사람이 영어로 쓴 최초의 소설이다. 출간된지는 10여년이 흘렀지만 아프간의 복잡한 역사와 그 안에 휩쓸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배경으로 한 사람이 용기와 용서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려낸 소설이다. 읽으면서 아프간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 사회적 배경등에 대해 알게되었는데 그져 가난한 불모지에 폐허, 이슬람 근본주의로만 상기되는 아프간의 이미지를 좀 더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는 카불인데 그곳에도 우리나라의 강남같은 부유층 거주지가 있었고 근사한 정원과 이층집을 가진 바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바바는 명문가 출신으로 부유한 상인이면서 아프간의 왕정과도 인연 및 친분이 있었다. 바바의 집엔 4명이 살고 있는데 바바 본인과 그 아들인 아미르, 하인 알리와 알리의 아들 하산이었다. 아미르의 어머니는 아미르를 출산하면서 사망하였고, 하산의 어머니는 하산이 출생한 후 4개월이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가버렸다. 

 아미르와 하산은 친구처럼 지내지만 아미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하산과 놀지 않는다. 바바와 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의 주요계층은 파슈툰 족이지만 알리와 아산은 하자라족이기 때문이다. 하자르족은 몽골계출신으로 외향이 확연히 달랐고 시아파였다. 반면 파슈툰은 백인계였고, 다수이자 수니파였다. 하지만 아버지 바바는 알리와 하산을 무척 아꼈과, 아미르 역시 하산과 친하게 지낸다. 

 바바는 거친 남자이면서 주변 사람들을 많이 돕는 사람이었지만 유독 아미르에게 엄격했다. 반면 아미르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약했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런 아미르를 이해해주는 것은 바바의 친구 라힘칸이었다. 아프간에서는 매년 겨울 연날리기 대회가 자주 열렸는데 여기서 우승하는 것은 소년들의 로망이자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아미르가 바바에게 인정받을 만한 것은 이부분이 유일했는데 아미르는 연날리기엔 제법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미르는 하산과 더불어 마침내 가장 권위가 있는대회에서 우승한다. 연날리기 대회에서는 우승못지 않게 떨어진 연을 줍는 것도 중요한 성과였는데 이 부분에 일가견이 있던 하산은 지친 아미르를 대신해 마지막까지 아미르와 경쟁한 파란 연을 쫒는다. 

 아미르는 기력을 회복하고 하산을 찾는다. 하산은 푸른 연을 찾는데는 성공했지만 평소 아미르와 하산을 괴롭히던 아세프 무리에게 하산이 둘러쌓인걸 목격한다. 아세프는 하산에게 푸른연을 요구하지만 하산이 거부하자 아세프는 하산을 성폭행한다. 아미르는 이 모든 것을 목도하고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모든 희생을 치루고 연을 가져온 하산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하산을 보는 것만으로도 용기없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용서가 되지 않았던 것. 영문을 모르는 하산은 아미르가 자신을 피하자 괴로워하기 시작했고 둘은 서로를 피하기 시작한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아미르는 결국 자신이 받은 생일 선물들을 하산의 침대에 숨겨놓고, 결국 하산이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아버지 바바는 하산에게 물건을 훔쳤나고 묻고 놀랍게도 하산은 자신의 행위가 아님에도 이를 인정한다. 더 놀랍게도 바바는 바로 용서를 하지만 하인 알리는 아미르의 소행임을 눈치채고 더이상 이집에 머무르게 어려움을 감지한다. 하인 알리는 아들 하산과 집을 떠나고 하자라족들이 모여사는 하자라자트로 가버린다. 바바는 친구 같던 알리의 떠남에 눈물로 만류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아프간의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소련군이 침공한다. 바바의 부는 무의미해졌고, 사람들은 서로간의 모함으로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위기를 느낀 바바는 모든걸 버리고 아들 아미르와 파키스탄을 거쳐 미국으로 도망간다. 바바와 아미르는 미국에서 처음부터 모든걸 다시 시작했고 부유하고 명망있던 바바를 한낮 주유소 직원으로 전락한다. 바바와 아미르는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떼고 팔아 부수입을 올리기 시작했고 형편이 조금 나아진다. 

 아미르는 전문대학에 진학해 문학을 전공하고 책도 쓰는 작가가 된다. 그리고 역시 미국으로 도망온 전직 장군의 딸 소라야와 결혼하게 된다. 아미르가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 굳건하던 바바는 암으로 사망한다. 아미르와 소라야는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둘 사이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모든 인공수정시도도 실패로 돌아갔고 무엇보다도 둘 사이엔 의학적으로 불임의 원인도 없었다. 아이는 없었지만 아미르는 작가로서 책을 네권이나 내며 안정되어갔고 소라야도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아미르에게 아프간을 떠난지 20여년 만에 라힘칸에게서 연락이 온다. 라힘칸은 하산의 소식을 전하며 아미르가 아프간으로 와주기를 원한다. 바바는 아프간을 떠나며 친구 라힘칸에게 자신의 집을 맡겼다. 라힘칸은 큰 저택을 혼자 관리하는데 힘이 붙였고 이에 하자라자트로 가서 알리와 하산을 찾았다. 알리는 사망한상태였고 하산은 결혼하여 소랍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놀랍게도 어려서 하산을 버리고 도망간 하산의 어머니도 돌아온 상태였다. 젋어서 뭇 남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던 하산의 어머니는 세월의 고초를 심하게 겪어 모습이 많이 변한 상태였다. 

 하산을 설득한 라힘칸은 같이 카불로 돌아와 바바의 저택에 살게된다. 수년간 행복했고, 하산의 어머니는 소랍을 애지중지 키우다 소랍이 네살이 되던 해에 죽는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탈레반이 집권하자 모든게 급변한다. 하자라족이 대저택에 살던게 마음에 들지 않던 탈레반은 이를 빌미삼아 하산과 그 아내를 처형한다. 그리고 아들 소랍은 고아원으로 넘겨버린다. 이로 인해 라힘칸은 미국의 아미르를 찾는다. 하산의 아들 소랍을 아프간으로 와서 찾아가야한다는 것이다. 

 아미르는 망설인다. 용서를 구하지도 못한 하산이 죽어버린 것은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아들까지 찾으라니. 하지만 아미르에게는 소랍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이는 아미르에게 무척 숙명적인 일이었다. 이후의 부분은 아미르가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 소랍을 찾는 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아미르는 스스로를 용서하게 되고 그럴만한 일도 용감하게 해낸다. 

 저자가 책을 쓴 시점은 2000년대 초반으로 탈레반 치하에서 아프간이 미국으로부터 해방되고 침공당한 시점이다. 그래서 탈레반 이후의 희망이 다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불과 십수년이 지나 다시 탈레반의 차지가 된 아프간을 보며 저자가 어떤 심경일지 고민된다. 아마도 무척 절망스러울 것이다. 미국의 현지 사회문화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미국이 세운 아프간 정부의 무능을 감안하더라도 그토록 탈레반의 치세가 가혹했다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탈레반이 정권을 되찾을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미국과 부패한 아프간 정부를 탈레반 보다 더 싫어한게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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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 인지 과학이 밝힌 진보-보수 프레임의 실체
조지 레이코프 & 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 생각정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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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정치, 사회, 문화, 인권, 교육 여러 면에서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 사이의 어느 스펙트럼에 위치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평소 성향,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또는 다른 사람을 보수적 혹은 진보적이라고 칭한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진보와 보수적 성향이 왜 생겨나는 것일까? 

 인지과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자신의 제자인 엘리자베스 웨흘링과 대담하는 구조의 이 책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제시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초기5년간 신체경험에서 비롯되는 경험을 통해 생성된 초기개념을 활용한 은유를 통해 다른 개념을 이해하며, 인간의 진보적, 보수적 성향은 어릴적 양육환경에서 얻은 개념을 이용한 은유에 기대어 형성된다는 것이다. 

 조지레이코프는 인간은 자신의 사고에 대해서 4가지 잘못된 가정을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자신의 사고가 의식적이라 가정하는 것이고, 둘째로 인간의 합리성은 신체와 독립적이라는 것이며 셋째는 추론은 보편적이라는 것이고 마지막은 인간은 사물을 존재하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인식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대부분의 사고(98%)를 무의식적으로 행하며, 합리성은 물리적 실체인 뇌와 자신의 신체에 기반하며, 추론은 개인의 성향 그리고 문화적,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사물은 은유에 기반하여 이해한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세계를 개념적 은유를 통해 이해한다. 은유에는 두 가지 영역이 필요한데 하나는 사유하고 이해하기 위한 인지영역이며 다른 하나는 그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이미 경험을 통해 쉽게 이해하고 있는 영역이다. 전자를 목표영역이라고 하며 후자를 근원영역이라고 한다. 근원 영역은 대부분 어려서의 신체경험을 통해 형성되며 매우 구체적이다. 목표영억은 근원영역을 통한 은유를 통해 이해되며 보다 추상적인 영역이다. 

 예를 들어 양과 수직성을 은유한다. 인간은 어려서 물이 차오르거등 무언가 많아지는 것을 높이로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세계공통적으로 양과 수직성이 은유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거나 내린다는 표현, 주식이 오르거나 내리는 표현, 성적이 오르거나 내리는 표현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실제 양과 수직성은 뇌의 다른 영역에서 다루며 논리적으로도 상관이 없다. 많음은 반드시 수직성과 연결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를 온도와 은유것도 그렇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이 식었다던가 관계가 차가워졌다 등의 은유를 사용하며 반대로 사랑이 불타오른다던가 등의 식으로 관계와 온도를 은유한다. 이는 어려서 부모나 보호자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과정에서 밀접한 신체접촉이 이루어지고 자연히 따스함을 느끼면서 생겨나는 은유이다. 

 이처럼 은유는 사람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은유의 기반은 근원영역이 의지하여 목표영역을 이해하므로 근원영역은 사실상 목표영역에 어떤 윤곽을 부여할 수 있으며 목표영역에 내재하는 것을 감추거나 부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어떤 은유적 사상이 더 자주 사용되고 공적일수록 이러한 은유는 강화되어 사람을 특정한 성향이나 이해로 몰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 과정은 무의식적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적인 토의와 정책결정의 기반이 되는 이런 은유적 구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은 근원영역을 형성하는 경험을 대부분 어린 시절 가정에서 하게 된다. 때문에 유년기 가정에서의 경험은 향후 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이해틀이 되는 은유구조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개인은 국가를 이해하고 바라보는데 있어 국가-가정 은유를 사용한다. 모국이나 조국이라는 표현, 국가의 아들딸, 건국의 아버지 같은 은유는 이러한 반증이다. 진보적 보수적 성향에 대한 레이코프의 생각도 여기에 착안했다.

 레이코프가 보기에 보수 혹은 진보의 주장은 도무지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 보수는 미국에서 낙태를 반대하고, 자유경제를 옹호하며, 세금감면에 찬성하고, 총기사용에 찬성하며, 인종차별적이며, 성적소수자를 비정상으로 보고, 복지에 전체적으로 반대하고 범죄에 대해 징벌적이다. 반면 진보는 낙태에 찬성하고, 수정 및 관리되는 경제를 옹호하며, 부자에 대한 세금증세에 찬성하고, 총기사용에 반대하며, 인종평등적이고, 성적 소수자를 인정옹호하며, 복지에 찬성하고, 범죄에 대해 교화적이다. 이런 입장을 우린 평소 당연히 일관되게 접해서 논리적 일관성이 있다고 착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낙태의 반대와 자유경제는 무슨 상관이며, 복지에 대한 반대와 범죄에 대한 징벌은 대체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접점을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해 레이코파가 알아낸 해법은 이러한 보수, 진보적 성향이 이럴적 가정양육환경에서 형성된 근원영역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다. 레이코프의 의하면 인간의 가정양육환경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자애로운 부모유형이다. 

 엄격한 아버지 모형은 보수로 은유되는 가정양육환경이다. 이 모형에서 아버지는 가정의 수장으로 합법적 권위를 가지며 권위에 대한 도전을 허락치 않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권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아버지에게 이런 도덕적 권위가 허락되는건 이 세계가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정을 제외한 다른 세계를 악으로 가득찬 세계이며 아버지는 악에 대항해 가정을 보호한다. 세계는 경쟁적이며 선악 이분법적으로 구분된다. 아버지와 가정의 역할을 이런 위험한 세계에 대응하여 자녀가 세상과 경쟁할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녀는 절제를 해야하며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통제하고 역량과 자제력을 배양하기 위해 상벌제도를 강요한다. 자녀 자체도 악하게 태어나기에 상벌로 옳고 그럼을 가르쳐야 하며 상보다 벌을 더 강조한다. 이를 통해 자녀는 자신만의 힘을 길러 세계와 싸워 이기는 힘인 절제를 갖게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보수는 절제로 누구나 세상에서 승리하고 성공할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러므로 성공은 개인의 노력에 달린 것이고 실패하는 사람의 책임은 개인의 절제력 부족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보수에게 빈곤은 악이며 빈곤에 처한 자는 게으른 사람이 된다. 보수가 복지에 반대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절제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오히려 절제력을 발휘해 마땅한 성공을 거둔 사람의 부를 빼앗게 되는 것이고 퍼주기로 인해 빈곤한 사람이 더욱 절제력이 없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역시 절제력이 없는 사람이므로 징벌이 마땅해진다. 시장에 대해서도 여기에 함부러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절제력을 발휘해 성공을 이룬 기업가를 방해하는 행위가 된다. 법인세를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다. 총기 역시 세계는 위험한 곳이기에 우리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필요한 것이 된다.

 자애로운 부모 유형은 진보로 은유되는 가정양육환경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감정이입하고 자애롭게 베풀며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모두 강조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며 자애로운 태도를 보이고 이를 통해 자녀를 자애로운 사람으로 양육한다. 부모는 특정 성공을 강조하기 보다는 자녀게 스스로의 꿈을 쫓도록 권한을 위임한다. 성공보다는 개인적 탁월함에 대한 강조다. 타인과의 관계도 경쟁보다 협동을 중시하며 타인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타인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역량을 갖게 한다. 위계적 의사소통이 없으며 자녀의 눈높이에 맞춘 열린 의사소통을 한다. 이를 통해 자녀는 부모에 대해 사랑과 존경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진보는 세계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시각을 갖게 된다. 세계는 경쟁해서 성공해야하는 곳이기 보다는 서로 협력해야하는 세계이며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곳이다. 때문에 복지가 필요하다. 사람의 실패는 그사람의 귀책이라기보다는 개인의 환경, 사회적 상황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인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이는 다양한 사람과 사회에 의존한 것이므로 오로지 그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부자증세와 법인세등으로 빈곤층을 부양하는 사회복지에 찬성하게 된다. 성소수자나 다른 인종 및 종교에 대해서도 관용적이게 되며 범죄자에게도 징벌보다는 교화에 초점을 두게 된다. 총기는 나와 우리, 그리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규제되어야 한다. 

 이처럼 엄격한 부모유형과 자애로운 부모유형을 근원 영역으로 보고 사람들의 보수적 성향과 진보적 성향을 은유하면 완벽에 가깝게 들어맞는다. 책은 중도는 없다고 말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엄격한 부모유형과 자애로운 부모유형을 갖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이용하여 정치사회문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책은 미국에서 보수가 강한 이유로 보수가 도덕성이나 자유 등의 여러 주요 가치를 선점하고 이를 자신들의 가치를 설파하는데 이용하기 때문으로 본다. 예를 들어 자유시장경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 보수는 자유시장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진보의 시장정책은 규제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움으로써 싸움에서 불리하게 만든다. 때문에 진보와 보수라는 두 이해의 템플릿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이중개념자들에게 보수가 더 설득력있게 다가오게 된다고 주장한다. 진보는 보수가 짜놓은 프레임이 흔들리기보다는 자신들만의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보수성과 진보성에 대해 설명한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었고, 설득력이 있었다. 레이코프는 인지과학자로 탁월한 통찰로 은유개념을 통해 인간의 진보성과 보수성의 근원영역으로 가정양육환경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더 근원적으로 인간의 가정양육환경이 어째서 엄격한 아버지 모형과 자애로운 부모유형으로 크게 나타나는지에 대한 고찰이 아쉽다. 이는 필경 진화심리학에 의지해야하는 부분인데 이에 대한 접근은 책에 없었다. 있었다면 더 깊이 있지 않았을까. 두 유형이 나타난건 생각해보면 매우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생명체 본연의 목적인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세계는 개인에게 맞서 싸워 버텨내야하는 곳이다. 이런 위험한 곳을 악으로 생각하는 관념과 이겨내기 위한 노력과 절제력 획득을 위한 엄격함은 반드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반면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개인적 경쟁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은 같은 종 심지어 다른 종과도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협력을 한다. 협력이 생존가능성을 크게 높여주기 때문이다. 협력을 위해선 다른 개체를 이해하고, 감정이입해야하며 서로 믿고 도와야 한다. 때문에 이런 감정이입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협력을 역시 반드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실 때문에 개인을 키우는 부모의 가정양육형태는 양방향으로 다소의 치우침과 적절한 섞임속에 나타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으로 은유되는 것도 나타날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이것에 대한 부작용을 줄이자면 책에서 레이코프가 언급한 것처럼 자신이 이런 은유에 의지해 세상을 인식함을 인지하고, 자신도 모르게 남이 짜놓은 프레임에 휘둘리기 보다는 사실에 집중하여 사안을 이해하고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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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전쟁 - 나도 크리에이터가 될 거야!, 1인 미디어 세상 작은 씨앗 큰 나눔
양은진 지음, 류한서 그림 / 엠앤키즈(M&Kids)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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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초등학생 직업 1위는 유튜버다. 한 십년전엔 드라마의 영향으로 파티쉐가 많았는데 이젠 유튜버가 단연 대세다. 그래서 이렇게 유튜브를 소재로 한 아동도서도 나왔다. 아이들이 관심이 많고, 영향도 많이 받으며 실제 유튜버로 활동도 하는 만큼 시의적절한 도서다.

 주인공은 마리라는 아이로 초등 5학년이다. 엄마가 돌아가셨고, 병치레가 길어서 아버진 병원비를 갚느라 밤낮없이 일한다. 외동인 마리는 집에서 늘 홀로 지낸다. 친구도 딱히 없다. 그져 유튜브를 보는 것과 얼마전 외진 동네골목에서 발견한 길고양이 츄츄를 돌보고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게 삶의 전부다.

 그러다 전교부회장 유진과 알게된다. 유진은 마리의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되어 마리와 친해진다. 그리고 유진은 호진이란 이란성 남자 쌍둥이 동생이 있다. 호진은 유튜브가 무척 되고 싶어하는데 자신이 콘텐츠를 만들고 마리가 편집을 해주면 유튜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리는 탐탁치 않지만 호진을 돕기로 한다.

 그런데 호진이 만드는 영상이 하나같이 재미가 없다. 그러자 호진은 다른 못된 어른 유튜버들처럼 재미만 있고 악한 화제성 동영상을 찍기로 한다. 그리고 며칠후 반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한 아이의 급식 미역국에서 벌레가 나온 것이다. 아이와 담임선생님은 놀랐지만 급식선생님이 확인해보니 이건 장난감 벌레였다. 그리고 진이라는 아이가 갑자기 괴로워하며 울면서 교실을 뛰쳐나가는 일이 생긴다. 악담을 퍼붓는 편지를 받은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호진이 벌인 일이었다. 호진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사건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그리고 마리에게 편집을 부탁하지만 마리는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호진은 츄츄가 있는 외진 골목의 영상을 함부러 찍어 자신의 유튜브에 올린다. 츄츄는 최근 여러마리의 새끼를 낳은 터라 마리는 무척 걱정이되었다. 가보니 이미 츄츄와 새끼들은 사라졌다. 며칠 뒤 츄츄는 쥐약을 먹어 죽은체로 발견되고 새끼한마리만은 간신히 찾아낼수 있었다.

 이 일로 호진은 자신의 행위를 크게 반성한다. 호진은 급식건으로 크게 혼나고 진이에 대해서는 진이 부모님께 호진의 부모님이 사과를 드려야만했다. 그리고 마리는 츄츄의 새끼고양이를 키우기로 한다. 그리고 마리의 삶은 외톨이에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책은 초등4학년 정도에 적합해보이는 책으로 내용이 단순하고 무척 쉽다. 거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튜브의 위험성에 대해 잘 다룬다. 유튜브를 많이 사용하고 유튜버로 활동하는 아이들이 많은 만큼 한 번 읽어보며 자신의 행위와 받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주는 책으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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