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비거니즘 만화 - 어느 비건의 채식 & 동물권 이야기
보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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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비건하면 상당히 부정적인 느낌이 많이 든다. 하지만 국내에도 채식주의자의 수는 제법 많다. 어떤 형태나 이유든 채식을 하는 사람은100-150만으로 추정되고 이중 엄격한 채식을 하는 사람도 50만에 달한다. 물론 전인구 대비 수는 매우 적지만 그래도 제법 의미있는 숫자다. 

 채식이 거부감을 주는 이유는 우선 엄격주의에 대한 편견이다. 주로 우린 비건이 주변에 없다보니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채식주의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훈계하거나 매우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하는을 조금 봐왔을 것이다. 이는 좋은건 알겠지만 사실 잘 이해 및 공감이 안가는 모습일 뿐더러 육식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적응해 있는 우리로선 다가가기 매우 어려운 모습이다. 

 둘째는 아마 필요성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이 고통을 받는다지만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목도한 적이 없으며 다른 동물은 반려형식으로 무척 아끼면서도 식용동물은 물건처럼 대상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채식이 가져올 환경보호의 측면이나 온실가스의 절감등은 역시나 좀처럼 체감화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욕식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인간은 잡식동물로써 채식과 더불어 육식도 꾸준히 해왔다. 일부학자들은 육식을 하게되면서 인간의 여분의 열량을 충분히 얻어 뇌가 커질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송곳니와 포식자로서의 사냥본능과 초점을 맞는 눈을 갖고 있으며 어려가지 사냥문화와 도구를 갖고 있다. 즉, 고기를 먹는 포식자로 진화한 것이다. 그런 인간에게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하라는 것이 무척이나 반본능적인 행태일 것이다. 실제 맛있는 채식 요리의 음식보다 고기의 굽거나 익히는 냄새는 우리의 식욕을 훨씬 더 자극한다. 육식에 대한 갈망엔 한국의 경우 사회문화적인 면도 상당히 작용한다. 농경사회로 진입하여 인구가 상당히 늘고 농작물을 키우며 가축을 농사도구로 쓰게되며 고기는 상당한 사치품이 되었다. 힌두교에서는 소를 그리고 이슬람에서는 소를, 그리고 조선에서 소고기를 금지시킨 것은 이 때문이다. 오랜 가난으로 채식만하고 고기는 국으로조차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오면서 고기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갈망은 역사문화적으로 상당히 컸었다. 그리고 최근 산업화로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고 선진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수천년간 억눌렸던 고기에 대한 갈망을 드디어 해소하게 되었다. 극히 최근에 해소하게 된 욕망을 멀리하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에대 채식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일단 과거와 다르게 인간은 충분히 3대 영양소를 모두 제공하는 식물을 재배할수 있다. 과거처럼 단백질이나 지방부족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채식은 동물을 고통에서 해방한다. 동물이 실험용이나 의류, 식용으로 쓰이면서 자연수명을 누리지 못하고 극한에 고통에 시달리다 죽게된다. 채식으로의 전환은 이를 해소한다. 마지막으로 환경과 건강이다. 육식은 여전히 사치품으로 그 생산과정에서 상당량의 물과 사료로써의 곡식, 그리고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채식은 이런 문제를 크게 완화한다. 또한 채식은 건강에 더욱 좋다. 미농무부는 권장식단을 꾸준히 개선해왔는데 늘 붉은 살코기와 유제품이 권장되어왔지만 2011년 개정판에서는 채소와 과일, 곡물, 건강한 기름, 단백질, 물을 필수사항으로 권장한다. 고기와 유제품이 선택사항으로 바뀐 것이다. 이는 건강한 신체유지와 성장을 위해 고기와 유제품이 필수적인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의사들은 채소가 건강에 좋음을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이처럼 채식을 좋은 것은 많고 안 좋은 것은 거의 없는 에너지 획득 방법이다. 물론 고기를 먹고자 하는 본능을 억눌러야 하는데 충분한 이유가 있으니 조금씩 실천해볼만 한 것이다. 서론이 무척 길었는데 책 내용을 좀 살펴보게다.

 우선 채식주의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가 있다.

비건- 동물 착취로 얻은 가죽, 화장품, 동물성 식품을 모두 소비 하지 않음

락토-채식주의이나 유제품을 먹고, 달걀은 거부

락토오보-달걀과 유제품은 먹지만 나머지 육류는 거부

페스코-생선과 달걀, 유제품은 먹지만 나머지 육류는 거부

플로-붉은 살코기만 거부

플렉시테리언-채식을 지향하지만 육류와 생선을 허용

프루테리언-식물의 생존도 매우 중시하여 식물을 죽이지 않는 열매, 잎, 곡식만 허용

 이렇게 다양한데 이는 동물의 고통과 이를 더 확장해 생명의 손상까지 어느정도 허용하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걸로 보인다. 가장 어려운 것이 프루테리언, 그리고 비건일테고, 가장 쉬운 것이 플렉시테리언일 것이다. 자신이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을테지만 건강을 위해서던 아니면 환경이나 동물을 위해서든 가급적 육식을 삼가고 채식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플렉시테리언일 것이고, 고기류는 안먹고 해산물만 먹는다면 이미 플로일 것이다. 

 책에는 주인공이 자신이 비건이 되기로 한 이유, 그리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만화로 구성하는데 두께도 제법 두껍고 내용이 많아 아주 가볍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식용동물이 받는 고통을 충분히 서술했는데 이는 이미 이전 리뷰에서도 많이 다루어 잘 몰랐던 가죽이나 털에 대해서 정리해보겠다. 

 인간은 오랫동안 동물의 가죽과 털을 의류로 이용해왔는데 지금은 이 모피도 식용처럼 야생이 아닌 공장식 축산을 한다. 모피의 80-85%가 이미 농장에서 얻어진다. 농장에서 사육되면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는데 평생의 2/3을 물에서 보내는 밍크는 농장에선 하루종일 철창신세가 된다. 가죽을 생산하는 방법은 잔혹하기 그지 없는데 사후에는 가죽이 경직되어 벗기기 어렵고 털의 윤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털성장 호르몬이 투여되어 모피동물들은 이것의 부작용으로 관절염과 시력저하에 시달린다. 

 라쿤은 몽둥이로 때러서 뒷다리를 잡고 바닥에 내려쳐 기절시킨 후 산채로 가죽을 벗겨낸다. 가죽이 벗겨진 라쿤은 대개 살아있는데 깨어나서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앙고라는 토끼 종류로 이들이 의식이 있을때 손으로 털을 뽑아낸다. 도구를 쓰는 경우 토끼가 발버둥치다 상처를 입으며 앙고라는 3개월마다 털을 뽑히고 2-5살이 되면 목이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다. 양은 기계로 털을 깎는데 항문부위가 배설물로 더럽혀지고 기생충이 잘생겨 이 부위의 피부와 살점을 아예 도려내는 불징이 자주 행행진다. 물룬 마취는 없다. 바다표범은 새끼를 곤봉으로 때려 기절시키고 가죽을 벗기는데 42%정도가 잘 기절하지 않아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가죽이 벗겨진다. 밍크는 가스에 노출시켜 질식사후 가죽을 벗기니 조금 신세가 낫다. 

 매년 세계에서는 4천만 마리의 동물이 모피 산업으로 희생된다. 모피코드 한벌을 위해서는 개는 15-20, 흑담비60-70, 다람쥐200-400, 라쿤30-40, 밍크30-70, 바다표범6-10, 수달10-16, 스라소니8-12, 여우10-20, 오소리10-12, 친칠라30-200, 토끼30-40마리가 필요하다. 한 마리당 한벌이 당연히 아닌 것이다. 이들 역시 가축처럼 분뇨를 많이 발생시키는데 매년 270만t의 분료는 배출한다. 밍크의 경우 모피1kg당 110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어획 및 양식도 문제가 많다. 어획이 가능한 해양의 30%에서 남획이 이뤄진다. 남획은 부수어획이 있는데 이는 특정 어류를 잡으려고 던진 그물에 다른 해양생물이 잡히게 되고 이들을 그냥 버리는 행위다. 전세계 부수어획은 무려 40%에 달한다. 이들은 그냥 폐기된다. 유령어업은 바다에 버려진 그물, 어망, 밧줄이 그대로 남겨져 해양생물을 죽이는 것이다. 유령어업 장비는 해양쓰레기의 10%를 차지한다. 양식의 문제는 크게 4가지로 양식장의 오염물질이 주변 해양을 오염시키는 것이고 다른 생물에게 양식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퍼지며, 먹이로 작은 다른 물고기를 잡아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고 물고기가 독소를 섭취하는 것들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채식을 해야하는 다양한 이유가 등장한다. 그리고 절대로 엄격한 채식을 강권하거나 권장하지 않는다. 누구나 적당한 분리수거주의자나 재활용주의자로 살고 있는 것처럼 누구나 쉽게 적당한 채식주의자가 되는걸 권장한다. 이는 현실가능하면서도 많은 수가 행한다면 지구 환경과 동물의 행복추구에 충분히 도움이 되는 행동이다. 한국엔 적지만 동물복지농장이 있고 여기서 유통된 고기와 음식엔 동물복지 마크가 붙는다. 이런게 있는 줄도 말랐다. 워낙 동물복지 농장이 적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실천이 더 나은 사회와 지구를 만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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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11-07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채식주의에 다양한 형태가 있는 이유가 제겐 흥미 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 등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제겐 합리화하는 이유로 보였습니다.

닷슈 2021-11-07 20:40   좋아요 1 | URL
합리화는 맞는 것 같습니다. 피터싱어의 시각으로 보면 쾌락과 고통의 감수능력이 있는 존재를 인격체로 보고 그들의 그 부분을 인정하게 되면 비건이 됩니다. 다만 우유나 달걀은 그 생산과정에서 그들에게 많은 위해를 가하긴 하지만 직접적 살생은 아니기에 수용하게 되어 락토나 락토오보가 되고, 물고기는 고통의 정도를 표정이나 소리를 낼수 있고 사지가 있어 몸부림을 충분히 칠수 있는 육상동물 특히, 포유류만큼은 공감이 안가기에 그들까지 먹는 페스코가 되는 것 같습니다. 프루테리언은 거의 슈바이처의 생각으로 모든 생명에 외경을 갖고 존중하는 입장으로 동물로써 에너지를 착취하지 않을 수 는 없으니 그들의 몸을 죽이지 않고 뜯어내는 선에서 기준을 잡는 입장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윤리적 대상의 선을 자신이 어느정도까지 긋느냐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본능적 욕구를 얼마나 제어할수 있느냐에 따라 형태가 갈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말은 이렇게 그럴듯하게 하지만 저는 이제 채식에 좀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 플렉시테리언에 불과합니다. 요즘 이 부분에 관심을 갖고 책을 보고 생각을 하다보니 고기의 대상화단계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느낌입니다. 오늘 먹은 오리탕의 오리가 오리로 보이기 시작하던군요......
 
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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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킨스의 책은 어렵거나 쉽다. 자신의 식견을 그대로 써서 독자들이 보기에 좀 어렵게 쓴 책도 있고, 대중화를 위해 마음먹고 정말 쉽게 쓰는 책도 있다. 이기적 유전자나, 만들어진 신, 확장된 표현형은 전자이고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나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은 후자다. 이번 책은 중간 정도인데 굳이 말하자면 후자쪽에 더 가깝다. 만들어진 신을 읽은 분이라면 굳이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도킨스 팬이라면 이 책을 볼 수 밖에 없다.

 선제적 산업화를 통한 서구의 전 세계 지배 여파가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금 지배적 종교는 여전히 기독교다. 아이러니는 미국을 제외한다면 서구는 스스로 만들어낸 기독교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종주국들이 버리고 있는 종교를 후발주자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퍼지고 있다는 점은 좀 우습다. 하여튼 그래서 도킨스의 비판은 기독교를 향한다. 같은 신을 가진 일파인 유대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기독교는 보통 일신교로 알려져있지만 도킨스가 보기엔 상당히 허구다. 우선 그 뿌리부터다. 고대 이스라엘인은 우선 자신들의 부족신은 야훼를 믿었는데 원래 그는 폭풍의 신이었다. 즉, 다른 여러것을 관장하는 신도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스라엘인들은 야훼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들의 신들도 믿었고 인정했다. 다만 자신들의 신이 좀더 시기심이 강하고 힘이 세다고 생각했던 것 뿐이다. 자기들 신이니 말이다. 그리고 현대 기독교도 상당히 다신교적 면모가 많다. 우선 공의회에서 확립한 아버지 신. 아들 신, 성령의 개념이다. 이는 사실상 삼신교인 셈이다. 이들이 사실상 매우 다르고 실제 다르게 취급하며 다른 기도문과 성격을 가짐에도 억지로 이들을 일체라 칭한다. 거기에 동정녀 마리아도 있다. 마리아 역시 신적인 취급을 받아며 그를 위한 기도문과 상이 따로 있다. 여기에 천사들도 존재한다. 천사는 치품천사에서 대천사 개인적 수호천사로 위계하는데 신자들은 이들에게 모두 기도를 올린다. 또한 성인도 존재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483명을 시성했고 지금 교황인 프란치스코2세도 813명을 시성했다. 몇 년전 한국에 와서도 제법 시성을 많이 하고 갔던 걸로 기억한다. 이쯤되고보면 기독교는 그리스로마신화 뺨치는 다신교라 해도 무방하다. 이런 지적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신이 하나뿐이고 나머지들을 다른 신이나 신적인 존재를 유일신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정확히 그리스로마신화도 그러하다. 

 다음 공격대상은 기독교의 경전 성서다. 현대의 복음서는 마르코, 마태오, 요한, 루가 복음서이다. 문제는 이 복음서의 신빙성인데 이 복음서들은 모두 예수 사후 수백년이 지나서여 쓰여졌다. 가장 오래된 마르코 복음서 조차도 예수 사후 수십년이 지난 시점에 쓰여진 것인데 그 사이 사람들에 의해 여러가지 전승과 기적이 혼합되고 조작되고 과장되었을 것이니 써있는 것을 글자그대로 믿기는 매우 어렵다. 예수 사후 널리 퍼진 기독교는 중심지인 팔레스타인에서 지중해 동부 곳곳에 존재했는데 이들은 매우 소규모 집단으로 서로 교류가 없었고 언어도 달라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즉, 예수에 대한 신앙과 이야기는 이들 각각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사실상 기독교의 창시자인 바올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난무하는 기독교 신앙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매우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온갖 이야기가 난무하는 기독교의 공식 경전이 정해진 게 그 바올로의 죽음 이후 수백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때 신약 27권 구약 39권이 공인되었고, 수백년간 여러 집단에 의해 여러 전승을 거진 시점이라 복음서가 난무하는 상황이었다. 이 중 네개가 공인되었는데 그 기준도 이상하다. 영향을 미친 것은 복음서의 신빙성이 아니라 공의회 무려 2세기전에 살았던 이레나이우스에 의해서였는데 그는 개인적으로 땅 귀퉁이가 4개이듯, 바람도 네개 일 것이고 올바른 복음서도 네 개여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한다. 이게 큰 영향을 미쳤다니 어이없다. 땅이 네 귀퉁이라는 것도 지구가 평면이라는 생각에서 나온것일 테니 더욱 합리성은 떨어진다. 경전 확립 후, 나중에 요한 묵시록이 추가되는데 이는 재림과 휴거, 최후의 전쟁에 영감을 주었다. 이부분이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사건이 많았기에 도킨스는 무척 아쉬워한다.

 복음서들은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여러 이야기가 수백년을 휘돌다 쓰여졌기 때문일텐데 마태오, 루가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다윗의 직계라 주장한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은 그 위의 직계조상을 25명으로 설정하고 루가는 41명으로 설정한다. 엄청난 차이다. 동정녀의 존재도 이상하다. 구약인 이사야에는 히브리어 알마가 사용되었는데 이단어는 동정녀란 뜻과 젊은 여인이라는 뜻이 같이 갖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동정녀인 파르테노스로 번역되었고, 마태오가 훗날 이를 읽고 마리아를 동정녀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미가가 유대인의 메시아가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으로 예언했다. 신약의 저자들은 이를 실현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문제는 예수가 나자렛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루가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요셉을 베들레헴인으로 만들어 예수가 사실상 베들레헴 사람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마태오는 헤롯을 이용한다. 헤롯왕이 베들레헴의 모든 아이들을 죽이려고 해서 요셉과 마리아가 이집트로 피신후 신분위장해 나자렛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구약에도 문제가 많다. 구약엔 유대인의 출애굽기가 나온다. 이는 매우 큰 사건으로 성경이외에도 반드시 역사적 흔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게 존재하지 않는다. 만들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바빌론 유수는 증거가 많다. 실제 성경은 바빌론 유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물의 신 에아가 우트나피시팀에게 거대한 배를 만들라고 미리 알려주는데 노아의 방주의 이야기가 흡사하다. 바빌론의 조로아스터교에는 선과 악의 개념, 최후의 전쟁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기독교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도킨스가 다름으로 지적하는 점인 신의 완전함과 선함에 대한 의심이다. 성경에는 질투에 가득한 신이 자신의 종들을 가혹하게 의심하는 장면이 가득하다. 우선 욥기에서 신은 사탄과 내기를 해서 욥의 신앙심을 실험한다. 그 과정에서 잘 살던 욥은 무려 10명의 아이를 잃고, 하인과 소유한 동물들도 모조리 잃는다. 그럼에도 욥이 신앙심을 버리지 않자 신은 그제서야 욥에게 다시 새로운 10명의 아이들과 하인, 동물들을 선사한다. 이런 시험때문에 무고한 그 전의 사람들은 죽어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신이 완전하고 전지전능하다면 이미 욥의 신앙심에 대한 시험결과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신은 무지하고 심지어 간신히 이기긴 했지만 사탄과 동급으로 보인다. 둘다 욥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기에 구약의 신은 툭하면 십계를 통해 자신들의 부족은 살해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다른 부족은 오히려 도륙하라고 말한다. 신이 정말 천지와 우주만물을 창조했다면 적어도 같은 인간들끼리 이러한 차별은 있어서는 안된다. 유대교가 초기 유대인이 만들어낸 그들만을 위한 종교라는 증거다. 구약 '판관기'에는 입다라는 이스라엘 장군이 나온다. 그는 승리의 대가로 자신이 개선해 처음보는 것을 신에게 번제로 바친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개선한 그가 가장 먼저 본것이 반기는 외동딸이었다. 장군은 결국 외동딸을 바친다. 번제는 제물을 태우는 것이다. 

 그리고 도킨스는 종교가 언제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유타주를 지배하는 모르몬 교는 지극히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조지프 스미스는 1823년 모로니라는 천사가 나타나 고대문자로 쓰인 금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주장한다. 스미스는 자신이 그 금판을 마법의 모자안에 든 마법의 돌의 도움을 받아 번역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1830년 영어번역으로 출판하는데 여기에 쓰인 영어가 200년전 킹 제임스 성경 영어다. 많은 전문가들은 스미스가 그럴듯한 이야기로 킹 제임스 성경을 배낀 것으로 추정한다. 심지어 모로몬경에는 아메리카라는 과거엔 존재조차 몰라 신과 무관해 보이는 이땅에서의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기원전 600년경 이곳으로 이주한 이스라엘의 자손이 아메리카 원주민이라 주장한다. 

 태평양지역에는 극히 최근에 생긴 종교들이 있다. 2차대전중 미군의 보급품이 실수로 섬지역에 떨어지거나 미군과의 접촉이 문명세계를 모르는 원주민들과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이 화물인 카고신화를 생성하게 된다. 이들 중 하나는 존프룸이라는 신화를 갖고 있는데 아마로 존 프롬 아메리카라는 말을 듣고 기억하는듯 하다. 원주민과 만난 존은 분명 자신은 '존 프롬 아메리카' 즉, 미국에서 온 존이라는 말을 했을 것이고 원주민을 이를 존프룸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물건을 가져다 준 그는 훗날 재림해 다시 기적을 일으킬 존재로 여겨진다. 일부 원주민들은 2차대전 중 만들어진 공항에서 여러가지 비행기가 오르내리고 진귀한 물건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사라진 후에 여러가지 물건을 주워 공항과 매우 비슷하게 생긴 신전 혹은 성역 같은 것을 만들어 내었다. 데이비드 대튼버러는 타나섬에서 샘이라는 존프룸 숭배자와 대화는 나누었는데 존프룸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네는 오기로 한 예수를 무려 2000년이나 기다리지 않았나 자기네는 겨우 19년을 기다렸단다. 

 그렇다면 이렇게 허구적이고 아마도 인간이 만든 것이 분명한 종교는 왜 발생했을까. 도킨스는 이를 패턴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경향에서 찾는다. 인간은 예측할수 없는 자연에서 규칙과 패턴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진화상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패턴 만들기는 항상 옳지는 못하다. 진정한 패턴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과학이나 수학, 여러 사회법칙이 그렇다) 아닌 경우도 패턴을 찾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거짓 긍정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 부정이다. 거짓 긍정은 실제 패턴이 전혀 없는데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주로 여러 종류의 종교적 신앙이나 미신, 징크스가 이에 해당한다. 검은 고양이를 보았더니 재수 없는 일이 생각하거나 내가 경기를 보기만 하면 우리 팀이 진다고 생각하는게 그런 것이다. 이런 경우가 충분히 반복되면 거짓임에 쉽게 드러나나 우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거짓 부정은 패턴은 실제로 있는데 패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다. 인간은 최근까지 모기와 말리리아간의 패턴을 파악하지 못했다. 모기에 물리는 사람이 말라리아에 걸리는 경우가 압도적이었음에도 말이다. 도킨스는 이런 거짓 긍정 패턴 찾기가 종교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리고 다음 과정이 필요하다. 일단 생성된 거짓 패턴에 대한 믿음의 유지와 계승이다. 아이들은 진화상 어른이나 부모의 말을 잘 듣는 경향성이 있다. 어른들은 위험한 세계에 대한 믿을 만한 경험과 대책을 갖고 있는 사람이므로 무방비의 아이들은 이런 어른의 말을 우선 믿고 순종하는 경향성을 띄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이것이 특정 종교를 믿는 어른의 믿음이 아이에게 유독 잘 먹히고 또 계승 전승되는 이유다. 실제 특정 종교 문화권에서 태어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 종교에서 벗어나기가 무척 힘들다. 왜 기독교는 믿는 지역에선 기독교인만 있고 불교나 이슬람교 신자는 극히 생겨나기 어렵고 반대로 이슬람 지역에서 왜 기독교인과 불교신자가 극히 어려운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자녀는 부모의 같은 종교를 갖게 된다. 

 종교는 또한 한 사회나 국가의 생존을 높을 가능성이 있다. 전사들을 우대하고 그들이 싸우다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는 신앙을 가진 사회는 전투에 강할 가능성이높다. 또한 구성원이 같은 종교르 갖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사회결속에 매우 유리하다. 그리고 종교는 사회 감시 기능이 있다. 인간 사회가 커지면서 서로간에 믿지 못하고 충분히 감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는데 보이지 않는 신이라는 절대자가 서로를 감시하고 대신 벌을 준다는 믿음이 있다면 상호간의 신뢰가 생겨날 수 있다. 이는 초기 사회에 효과적으로 작동했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는데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인 국가가 범죄률이 훨씬 높고, 미국같은 선진사회에서도 수감자들의 경우 종교를 가진 비율이 무신론자보다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하여튼 도킨스의 종교파훼법론은 이번에도 재밌었다. 도킨스의 나이가 상당히 많은 편인데 EBS 그레이트 마인드를 보니 아직 건강해 보여 다행이다. 앞으로도 좋은 책을 많이 써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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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1-11-07 19: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유신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의 책을 지속적으로 번갈아가며 읽다보니 제가 왜 기독교를 믿지 않는지를 한 번 정리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건 아마 서양인들과의 경험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다룬 글이 될 것 같아요.

닷슈 2021-11-07 20:34   좋아요 3 | URL
그런 글을 써주신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종교를 믿는데는 우선 그 나라의 성향(이슬람사회에서 태어난다면 안믿기 어렵겠죠, 유타주에서 태어나면 역시 모르몬에서 벗어나기 힘들겁니다.), 그리고 나의 부모의 종교 유무 여부, 타고난 나의 성향(진보적 혹은 보수적, 보수가 더 종교적이라 생각합니다.), 이후의 교육정도에 따라 형성되는 나의 성향(역시 진보적, 혹은 보수적, 합리성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 생각이고 짜라님의 고견 기대해봅니다.

짜라투스트라 2021-11-07 20:58   좋아요 4 | URL
제 개인적인 경험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말을 해본다면, 정치성향과는 큰 연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는 정치성향이 달라도 기독교인은 없거든요. 그걸 보면 문화적인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아니면 가족의 영향이거나. 뭐, 여기에는 충분히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2022-10-25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구 온난화가 매우 심각하다. 대륙 서안에 자리잡아 연간 강수량과 기온이 안정적이던 유럽도 극심한 고온과 추위, 홍수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럽연합은 작년 그리고 올해부터 기후대책에 상당한 힘을 쓰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는 물론이고 유럽연합에 물건을 팔거나 투자를 받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탄소를 적게 사용하여 만든 것임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아직도 곳곳에 화력발전소(이명박정권이 추진한 짓이다.)를 새로 짓고 있는 한국으로선 상당히 신경써야하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의 포스코는 이런 이유로 인해 세계 여러 연기금이나 투자회사 및 금융권으로부터 투자철회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내에 인간윤리의 확립과 환경 문제 해결의 하나로 대규모 가축사육에 대한 문제가 거론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실 잘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가축이 일으키는 탄소배출과, 식량낭비, 오염은 그 자체로 매우 심각하다. 가축은 그 생산 과정에서 냉방과 난방, 대규모 도축과 운송, 가공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를 배출한다. 또한 가축을 먹이는데 사용되는 많은 식량작물을 키우는데는 역시 화석연료를 이용한 막대한 비료가 사용되며 전 세계 엄청난 수의 가축은 그 자체로 메탄과 이산화탄소의 온실가스를 대규모로 방출한다. 참고로 세계의 가축수는 230억 마리에 달한다. 포식자인 인간의 수가 80억이나 되니 당연히 그 수보다 많은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연상태에서 이렇게 많아 질 수는 없는 것이기에 환경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수라 하겠다. 

 그리고 인간은 이런 대규모의 가축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사자처럼 얼룩말이나 사슴을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잡식성 동물로써 인간은 채식만으로도 충분히 연명이 가능하며, 과학기술의 발달로 과거처럼 탄수화물 위주의 곡식만 주로 먹게 되어 단백질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도 아니다. 우리에겐 이미 충분한 식물성 단백질이 존재하고 이를 충분히 싼 가격으로 대규모 공급도 할 수 있다.  

 거기에 인간의 대규모 공장식 가축 사육은 필요이상으로 가축에게 상당한 고통을 준다.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큰 박스에 갇혀 서로에게 압사당하거나 질식사당하거나 혹은 산채로 가루가 되어 동료의 먹이가 되거나 비료로 쓰인다. 암탉은 평생을 좁은 케이지에 갇혀 살아야 하며, 육계는 성장호르몬으로 인해 비균형적으로 자라 인간으로 해당하면 관절염환자 같은 고통속에 걷지도 못하다 도축된다. 돼지 역시 서로가 비좁은 곳에 갇혀 꼬리를 씹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꼬리를 잘리며 어미 돼지는 평생 뒤를 돌아보지 못하며 새끼만 낳다가 생산력이 떨어지면 도축된다. 소 역시 뿔이 잘리고, 거세되며,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헤어진다. 젖소는 계속 우유를 생산해야하므로 새끼를 키우지 못하고 생이별, 임신이 반복되다 쓸모없어지면 결국 도축된다. 

 사실 과거 고기는 왕족이나 부유층이나 먹을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서민들은 고깃국에 들어간 한점조차도 얼마나 갈망했던가. 이런 고기가 싸진 것은 현대문명에 들어서인데 책 '값싼 음식의 실제 가격'은 고기가격이 실제로는 전혀 싸지 않음을 잘 설명했다. 여기엔 대규모의 사료가 들어가고 이 사료는 화석연료에 의해 재배되며 막대한 정부보조금도 포함된다. 환경에 대한 부담까지 생각한다면 사실 고기는 여전히 비싼 것이며 우리는 이를 알아채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한국의 공장식 농장의 실태를 매우 잘 드러낸다. 소, 돼지, 닭 농장에 저자가 취직해서 직접 경험한 것이므로 르포식이며 매우 적나라하게 실태를 드러낸다. 읽으면서 적잖이 놀랐다. 평생 케이지에 갇혀 있는 산란계는 저자가 보기에 털하나 없고 흉측해 닭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스트레스 환경과 거듭된 산란으로 너무나 약해져 꺼내기 위해 날개만 만져도 쉽사리 뼈가 부러졌다. 한국이다보니 식용 개에 대한 취급도 다루어졌는데 그 도살과정이 적잖이 끔찍했다. 

인간의 힘이 강해지며 그 도덕 적용대상이 확대되고, 논리적 일관성으로 인해 동물에게도 인간의 윤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인간도 진화상 동물의 하나이고 같은 과정에서 진화했기에 상당히 다르지만 인간은 동물과 많은 특성을 공유한다. 무리를 이루어살고자하는 것, 움직임 욕구, 본능에 충실하고자 하는 갈망, 가족을 이루는 것, 어미가 새끼를 돌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것들로 인해 고통과 쾌락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에서 인간과 동물을 엄밀히 구분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에 피터 싱어 같은 공리주의자들은 도덕적 대상으로 쾌고 감수능력이 있는 동물을 넣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책' 동물 해방'은 그러한 내용이 잘 집대성 된 책이다. 우리가 쾌고 감수능력이 있는 동물을 같은 윤리적 대상으로 삼고 그들의 이익을 고려해야하므로 채식을 해야하는 이유 그리고 인간이 식용, 그리고 연구용으로 동물을 대하며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사실 식용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좀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연구용은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또한 동물실험은 인간에게 많은 의학적 혜택을 준다는 포장으로 쉽게 정당화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실험은 의학만의 것이 아니다. 여러 화학제품의 위험성에 대한 임상실험과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심리학 동물실험이 이루어진다. 

 원숭이의 모성에 대한 심리학 실험을 위해 심리학자들은 새끼 원숭이가 천으로 만든 어미 원숭이에게 안길 때마다 전기충격을 주었다. 새끼가 안을 때마다 전기가 발생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새끼는 천으로 만든 가짜 어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새끼가 안을 때마다 날카로운 철사가 나와 새끼를 찌르게 하였는데 역시 별효과가 없었다. 대체 동기와 목표를 알 수 없는 실험이다. 반대로 어미의 모성을 시험하는 실험도 있었다. 모성을 박탈하기 위해 어미가 될 암컷은 무리에게 격리되어 키워졌고 정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도 방지하기 위해 강간대라는 곳에 묶인체 강제로 임신되었다. 이 어미 원숭이들 중 일부는 결국 모성이 자라나지 않았는데 그들은 충격적이게도 자기 새끼의 두개골을 부수는 행위를 하기도 했다. 뻔한 결과인데 굳이 이런 일을 하는 저의가 궁금할 지경이다. 

 토끼에 대한 트레이즈 실험은 오래되었고 유명하다. 토끼를 못 움직이기게 고정시키고 화학제품이 눈에 미치는 악영향을 보기 위해 꾸준히 화학 물질을 토끼의 눈에 투여하는 식이다. 이 경우 토끼는 대개 10일 정도면 극도의 고통과 함께 눈이 멀어버린다. 

 의학분야에서의 실험도 심각하다. 마약 중독의 효과를 알기 위해 동물들에게 코카인을 투입하여 일부로 중독시켜 뻔히 아는 그 결말을 본다. 암을 발생시키기도 하며 인간의 각종 성인병을 일부로 유발하기도 한다. 그나마 의학발전에 도움이 되면 모르겠는데 인간과 동물은 비슷하지만 다르기에 아무런 효용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일부 약품들은 동물에겐 해가 발생했지만 결국 인간에겐 무해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은 이미 기업화되었는데 미국의 여러 기업들이 심리학 연구소나 의학 연구소, 화학연구소가 원하는데로 동물을 가공하여 공급한다. 털이 없거나 색을 조절하거나, 여러 생태적 조건을 조절하는 형태다. 

 다음은 식용동물의 고통이다. 우선 닭이다. 미국에서는 매우 1억 200만 마리의 닭이 도축되며 연간 53억마리가 도축된다. 육계의 경우 태어난지 하루된 병아리가 창문없는 긴 닭장에서 자라나게 된다. 지붕에 달린 깔대기에서 모이와 물이 공급되며 초반 1-2주는 성장을 빨리 하기 위해 하루 24시간 밝은 조명을 유지한다. 하지만 자라나면 점차 조명을 줄여 거의 어둡게 하는데 이는 서로간의 공격을 줄이기 위함이다. 이들은 서로 공격하여 상처내어 상품성을 떨어뜨리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뜨거운 칼로 부리를 잘라낸다. 육계는 좁은 사육장에서 자신들의 배설물로 인해 공기가 오염되어 질식사하거나 자기들 무리에 깔려 죽기도 한다. 이들은 앉기도 어려운데 바닥이 배설물로 가득하여 앉을 경우 다리엔 궤양이 가슴엔 물집이 무릎에는 화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리는 가공과정에서 잘리게 되므로 큰 상관은 없다. 이렇게 세월을 보낸후 6-7주후 이들은 도축된다. 전기충격으로 기절된뒤 두 다리가 조임쇠에 묶여 거꾸로 들린채 칼날에 목이 잘려 죽게 된다. 피가 모두 빠지고 뜨거운 물에 빠져 털이 뽑힌후 배가 갈려 내장이 제거되고 우리가 아는 포장형태로 가공되는데 간혼 기절하지 않고 산채로 뜨거운 물에 닭이 들어가 쪄죽거나 질식사하는 경우도 많다. 

 산란계의 고통도 만만찮다. 이들은 태어난 후, 그리고 어느 정도 자란 후 두차례 같은 이유로 부리가 제거된다. 산란계는 매우 좁은 새장에 갇히는데 이는 경사진 철사바닥이다. 닭은 본능적으로 흙은 발로 긁거나 몸을 바닥에 문대 흙목욕을 하는데 새장에선 이게 모두 불가능하다. 마찰이 없어 발톱이 계속 자라나 바닥 철사와 얽혀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흙목욕을 하려고 철사에 몸을 문대는 바람에 털이 몽땅 빠지기도 한다. 자리는 매우 좁아 날개를 펴거나 앞뒤고 움직이지 못하며 그 와중에서도 서열이 낮은 녀석은 평생 다른 녀석에게 깔려지내기도 한다. 닭은 마땅히 둥지를 짓고 그안에 비밀리 알을 낳고 싶어하는데 알다시피 새장에선 모두에게 공개된채 알을 낳아야 한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변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피터싱어는 말한다. 

 돼지는 자연상태에서 안정된 사회집단을 형성하고, 공동보금자리를 만들며, 보금자리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대소변을 처리한다. 활동적이며 거의 하루종일 땅에 코를 박고 먹이탐색을 한다. 특히, 암퇘지는 출산이 임박하면 잠시 공동체를 떠나 땅을 파고 그곳을 풀과 가지로 가득 채운 후 새끼를 낳는다. 출산후 10일 정도가 지나면 새끼를 데리고 공동체로 복귀한다. 하지만 공장식 축사의 돼지는 단단한 콘크리트나 작은 널빤지 바닥에 수용된다. 다리에 쉽게 상처가 난다. 암퇘지는 돈사에서 출산하면 새끼를 일찍 떼어놓는데 이로 인해 젖을 빨리 떼게 되어 더 빠르게 임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과거 돼지들은 연간 평균 16마리를 출산하는데 그쳤지만 지금은 무려 45마리까지 출산한다. 고기돼지는 몸무게를 불리는게 중요하므로 평소 마음껏 먹는 편이다. 하지만 출산돼지는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굳이 살을 찔 필요가 없으므로 적정 사료양의 60% 정도만 공급한다. 그래서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게 된다. 

 소는 송아지의 고통이 끔찍하다. 빌이란 어린 송아지의 고기는 과거부터 사치품이었다. 풀을 먹기 전의 송아지는 그 고기가 매우 연하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현재 빌용 송아지를 공급하기 위해 수송아지를 낙농계에서 빠르게 도축한다. 하지만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기에 인위적으로 빌상태를 유지하면서 무게를 충분히 불린 다음 도축하는 형태가 많다. 일단 송아지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떼어 감금장치에 움직일수 없게 가둔다. 이들에겐 젖이나 풀이 아닌 비타민, 미네랄, 성진촉진제가 포함된 액체사료가 젖병도 아닌 통의 형태로 공급된다. 이렇게 16주를 가두어 키우면 빌 상태로 181kg까지 무게가 늘어 상당히 수익성이 좋다. 빌용 송아지는 고에너지의 사료로 인해 빨리 크고 열을 많이 방출하는데 태어난지 10주면 털갈이가 시작되어 몸손질 충동경향이 많아지지만 움직일수 없어 방법이 없다. 또한 소처럼 발굽이 있는 동물은 틈이 없는 단단한 바닥이 좋지만 빌송아지는 움직이면 안되므로 배설물이 빠지게 틈이 있는 바닥을 만들어 송아지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건초사료를 먹지 못해 송아지는 위가 정상발달하지 못하고 만성 소화불량과 만성설사에 시달린다. 빌송아지의 고기가 색이 연하고 부드러운 것은 사실 철분이 부족해서다. 소는 풀을 통해 철분을 얻는데 빌송아지의 액체사료에는 당연히 철분이 없다. 그리고 혹여 철분을 얻을까 빌송아지의 우리는 철저히 철제가 아닌 나무로 제작된다. 빌송아지란 결국 어려서 어미와 떨어져 젖을 한번 빨지 못하고,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해 소화관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데다가 평생 움직여 보지 못하고 살만쪄서 몸은 크나 빈혈에 시달리는 소인 셈이다. 

 소들은 대개 뿔이 잘리고, 거세당하고, 소인이 찍힌다. 하지만 닭의 부리처럼 소의 뿔은 인간의 손톱과는 달리 동맥이 흐르고 신경과 조직이 얽힌 곳이다. 이런 곳을 잘라내는 건 소에게 큰 고통과 출혈을 유발한다. 거세는 더욱 심하다. 소의 거세는 소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날카로운 칼로 음낭을 찢어발기고 고환을 손으로 뜯어내는 작업이다. 소인 역시 달궈진 인두로 수초간 소의 피부를 지지는 일이다. 

 이렇게 험난한 공장식 사육장에서 자라난 가축들에게 다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도축장으로의 운송이다. 미국처럼 큰 국가에서는 도축장으로 이동하는데 2-3일이 소요되기도 한다. 과거 이것이 너무 가혹하다고 하여 철도로 운송하는데는 시간 제한이 주어졌지만 지금처럼 트럭으로 주로 운송하는 방법이 이 법에서 벗어난다. 대부분의 트럭기사들은 운송이 시간싸움이기에 운송하는 가축에게 관심을 쏟지 않는다. 돼지나 소들은 대부분 당연히 트럭을 처음 탄다. 흔들림과 굉음에 겁이 질리기 마련인데 운송하는 트럭은 외부로 노출되어 겨울엔 추위, 여름엔 더위에 시달리게 된다. 가축들은 운송후 체중감소와 수송열이 발생한다. 소들은 대개 체중이 무려 9% 가 줄어든다. 1986년의 기록에 의하면 7400마리의 소, 3100마리의 송아지, 5500마리의 돼지가 수송중 죽거나 심각한 상처로 폐기되었다고 한다. 운송중 서로 놀라 한 곳으로 물려 깔려 죽는 녀석들도 있다.   

 도축은 대개 전기 충격으로 시작된다. 전기충격으로 기절시킨후 뒷다리를 매달아 공중에 띄운후 칼로 도축하는 식이다. 이는 소, 돼지, 닭이 같다. 전기충격은 기절을 유발하는데 기절했다고 해서 고통이 없을리 만무하다. 한번에 고통을 느끼지 못할 사이 죽인다면 모르지만 이런 일도 쉽지 않다. 최근의 도축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데 1981년 한 시간에 225마리 도축에서 1986년 275마리 도축으로 빨라졌을 정도다. 1988년엔 5만 8천면의 도축장 피고용인이 부상을 당했는데 이른 빠른 도축 때문에 칼을 다루거나 기계를 다루나 다친 것이다. 사람이 이정도인데 동물은 어떨까, 거기에 정신적 스트레스와 살인적 강도의 노동, 부상으로 이 업계의 이직률은 무려 60%에서 100%에 달한다. 숙련되지 못한 사람이 빠른 속도로 부상의 우려속에 도축한다면 과연 동물이 고통없이 한번에 도축되는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거기에 미국에선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경우 동물이 정신을 잃고 도축하는게 교리상 금지다. 손상을 입은 동물은 도축하면 안된다는게 그들의 교리인데 여기에 기절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처럼 동물을 맨정신인체로 거대한 쇠도끼로 도축한다. 이 도끼는 사실상 망치에 가까운데 한방에 정수리를 부수어야 빠른 그리고 그나마 고통이 덜한 즉사가 가능하다. 

 이처럼 동물에 엄청난 고통을 주는 공장식 사육장이지만 그 생산성은 형편없다. 동물단백질 1파운드를 생산하기 위해 인간은 동물에게 21파운드에 달하는 단백질을 먹여야 한다. 모든 생물이 먹는 것이 다 그대로 살로 가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100%소화흡수는 모든 생물이 하지 못하며, 자신의 몸의 생명유지와 활동에 에너지가 소모되고, 남는게 성장에 이용된다.), 1에이커의 땅에 단백질 함량이 높은 콩이나 완두를 심으면 300-500파운드의 단백질이 생산되지만 가축의 경우는 40-50파운드의 단백질 생산에 그친다. 대충 식물성 식품이 10배 효율을 갖고 있는 셈이다. 가축 중엔 그래도 소보단 돼지가 단백질 생산이 높은 편인데 이런 돼지보다도 귀리는 6배의 칼로리, 브로콜리도 3배의 칼로리를 같은 면적에서 생산한다. 그리고 낭비가 심한 소보다는 귀리는 무려 25배의 칼로리 생산이 가능하다. 가축은 물과 에너지도 많이 소모한다. 미국 물 사용량의 절반을 가축이 사용한다. 소고기 1파운드를 생산하려면 같은 양의 밀보다 무려 50배의 물이 필요하다. 이로인해 미국과 호주등의 건조지역에서의 가축생산은 해당 지역의 지하수를 빠르게 고갈시키고 있다. 가축 생산은 에너지도 많이 소모한다. 1칼로리의 화석연료당 귀리는 2.5칼로리, 감자는 2칼로리가 나오고, 밀과 콩도 1.5칼로리가 나와 채산성이 있다. 하지만 고기는 3칼로리의 화석연료를 투입해도 1칼로리의 고기 생산에 불과하다. 특히 소는 1칼로리당 무려 33칼로리의 화석연료가 필요하다. 

 환경오염도 문제다. 가축은 그 수많은 엄청난 양의 분뇨를 만들어낸다. 가축의 수가 이미 자연이 허용하는 수를 넘어선 만큼 분뇨의 양도 그러하다. 네덜란드의 예를 들면 농장에서 매년 9400만톤의 분뇨가 발생하는데 땅이 자연적으로 수용할수 있는 양은 5000만톤 정도다. 나머지는 오염을 일으키는 것이다. 미국에선 매년 수자원 관련 문제를 대부분 축사가 일으킨다. 그리고 고기수요는 산림도 파괴한다. 지난 25년간 고기를 탐닉하는 북미로의 고기 공급을 위해 중미에서는 거의 절반 가량의 열대우림이 파괴되었다. 이 열대우림은 많은 동식물의 서식지이자, 이산화탄소를 흡수저장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존재였다. 열대우림의 파괴로 지금 대규모의 멸종과, 땅의 침식과 강의 범람, 강우량과 나무의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동물에 대한 공장식 가축 사용방식은 에너지 측면, 그리고 식량생산면에서 모두 매우 비효율적이다. 거기에 생산과 유통 소비과정에서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많은 수의 가축 자체가 온실가스를 생성해며, 분뇨등으로 많은 수질, 토양오염을 일으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동물의 본능과 사회성, 개별성을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야기한다. 때문에 동물해방에서 피터싱어는 이러한 동물을 먹지 않아야 함을 주장하다.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것이다. 에너지를 스스로 얻을 수 없는 동물의 하나로써 인간은 결국 무언가를 먹어야만 한다. 그래서 피터싱어는 쾌고를 감수하는 능력을 가진 동물들만을 먹이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쾌고를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식물전체와 일부 동물은 식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동물일부의 경우 결국 감각을 느끼는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기에 동물전반에 대한 식용을 금지하는 쪽으로 가자는 것이다. 

 언젠가 연구가 되어 동물 전체 및 식물마저 감각을 느끼는 존재로 판명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썬 현실적인 주장이란 생각이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미 최상위 포식자라는 지위자체를 아득히 넘어섰다. 개체수면에서도 그렇고 자원활용능력이나 다른 생물들과의 힘의 차이에서도 그렇다. 때문에 다른 최상위 포식자들이 필요시만 식량자원으로 다른 동식물을 활용하는데 반해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동식물, 특히 동물을 활용한다. 사냥의 즐거움, 불필요한 연구의 이용, 사치와 탐닉으로써의 고기음식등이 그러하다. 이는 충분한 힘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란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피터싱어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윤리체계를 일관되게 완성하지 못하는 하나의 중대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윤리체계는 좋은 결과를 불러일이키고자 하는 행동양식과 그 행동의 대상이 일관되어야 하는데 동물에 대한 우리의 행동은 대상에 대한 문제를 반드시 일으킨다. 동물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적절한 인간중심의 윤리체계를 가진 인간이 먼훗날 과학기술이 더 발달하여,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낸 미약한 신호가 운이 없게도 발견되어 훨씬 강한 외계의 존재를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강하게 그 행성 및 항성계 자체의 지배자로 진화한 존재다. 과학기술은 인간과 비교가 안되며 더욱 강한 존재다. 그들이 인간보다 훨씬 발달하여 더 강한 이성과 과학기술로 곧이 다른 존재를 해할 필요가 없다. 에너지를 원시적으로 포식의 형태로 소화시키지 않고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기계 혹은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생물학적 형태도 별로 남아있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우연히 인간의 고기가 자신들의 미각을 즐거운 방향으로 엄청나게 자극한다는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들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인간 문명을 파괴하고 그들의 공장식 사육장에서 맛을 강화하는 형태로 멋대로 진화시키고, 인간 사회와 가족을 해체하고, 여성에겐 새끼만을 낳게 하고, 수컷은 그저 죽이거나 고기로 쓰기 위해 폭력성을 줄이기 위해 강제로 중성화하기로 결정한다면 사람은 뭐라고 말할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행성의 다른 존재와 다르게 더욱 이성적이고, 말을 할 수 있으며, 사회를 이루고, 도구도 쓸수 있으며, 문화와 양식이 있고, 가족과 사랑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특성을 일부 공유하는 외계인들에게 있어 그건 자신들의 그것들보다 매우 수준이 떨어지는 원시적인 형태의 양식이다. 이미 그들은에게 인간의 그것은 어느 정도 공유하지만 진화과정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오래전에 지나온 과정에 불과하다. 즉, 인간은 그들에게 동물정도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고통이나 쾌락을 느끼고 가족과 사회를 이루고, 본능과 생각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고 힘이 훨씬 미약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인간이 윤리체계를 제대로 완성해놓았다면 조금은 그들이 어느정도 들을 수 있을 만한 할말이 생길 것이다. 당신들이나 우리나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먹기 위해 다른 존재를 죽여야하지만 괘락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을 땐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아마도 이말이 유일하게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 좀더 발달하여 배양육 기술이 보편화하고 싼 값에 고기를 공급하는 날이 온다면 사실 굳이 우리가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더라도 고기에 대한 윤리와 비생산성, 환경 파괴의 문제는 해결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물에 대한 태도를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른 분야에서의 동물에 대한 행동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식량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윤리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여러 형태로 동물을 괴롭히고 죽일 것이라는 말이다. 

 피터싱어는 책에서 자신은 동물을 먹는 사람은 존경할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채식은 무엇보다도 건강에 좋고, 우리의 미각을 충분히 만족시킬만한 것이라고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고기의 섭취를 줄이려고 하는 노력은 동물을 고통에서 해방하고, 지구의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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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윤리학 - 제3판
피터 싱어 지음, 황경식.김성동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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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에 생물이 생겨난 이후로 유기체의 생존 방식은 경쟁과 협동 두 가지 방식이었을 것이다. 경쟁과 협동은 서로 다른 종끼리 그리고 같은 종끼리도 일어났다. 협동을 하면서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이익과 목표를 공유하고, 배신자를 엄단해야했고, 호혜적일 필요가 생겨났다. 이는 처음엔 아마도 같은 종 중에서도 유전적 이익을 같이 공유하는 친족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공생의 역사도 무척이나 길다는걸 보면 협력은 서로 다른 종이나 같은 종의 유전적으로 먼 집단에서도 생각보다 빠르게 생겨났을 수도 있다. 

 윤리는 이런 협력을 위한 내적 도구로 생겨났다. 인간을 비롯한 협력을 하는 많은 생물들이 내적으로 타고난 도덕성을 상당히 갖고 있다. 협력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고 진화상의 적합도를 높이는 협력을 위한 내적 도구가 윤리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런 윤리성은 매우 아름답고 진화상의 적응으로 내적인 만족감을 서로에게 주며, 매우 유용하기에 실용적인 도구임에도 매우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인류역사의 많은 철학자들이 완벽한 윤리법칙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종교인들은 그 근원을 신에게서 찾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두에게 이로움만을 주는 완벽한 좋음은 있을 수 없기에 윤리성을 정의하는 완벽한 법칙을 찾고자 하는 학자들의 노력은 사실상 실패해왔다. 더군다나 인간의 윤리는 기본적으로 협력의 도구이자 그것이 확장된 것으로 인간의 사회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해왔다. 처음엔 아마도 윤리법칙의 적용 대상이 친족집단이었겠지만, 이후 같은 족으로, 이후에는 같은 도시민, 이후에는 같은 국가의 사람들로 말이다. 

 사회의 확장 뿐만 아니라 경제적 변화로 인해서도 윤리법칙의 대상은 꾸준히 확장했다. 농경경제인 과거 왕국과 제국 시절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같은 국가의 구성원이라도 신분상 노예계급이나 하층민들은 동등한 윤리적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산업화로 특정인에게서 벗어난 다수의 임금노동자와 소비자로서의 대중이 필요해지면서 노예계급이나 하층민은 전 세계적으로 폐지되었다. 이후 여성노동력과(2차대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의 정치적 표도 필요해지자 여성도 남성과 정치적, 윤리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획득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식량생산성의 현저한 증가로 닭, 돼지, 소 3종의 가축의 대량생산으로 고기를 충분히 얻을 수 있게되자 과거엔 식용이던 몇몇 동물들은 그러한 위치에서 해방되어 인간의 반려자로만 기능하게 되고 어느 정도 윤리적 지위까지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한국만 봐도 이미 다른 고기가 충분하기에 더 이상 식용개고기가 필요 없어지게 되었고, 식용개고기 불법화 논의도 최근 대통령으로부터 언급되고 있다.)

 이처럼 윤리는 인간의 현실적 생존 도구로 필요에 따라 큰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그 범위와 적용대상을 달리 해왔다. 그리고 피터싱어는 윤리의 보편 법칙으로 공리주의를 들며, 모든 감각적 대상에 대한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을 제시한다. 공리주의는 윤리적 대상의 쾌락을 가장 크게 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방식에 윤리성을 부여하는 사고로 결과주의다. 그리고 이는 윤리가 인간의 생존도구로 그 적합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인간은 협력을 하고 윤리적으로 행동하면서 상당히 계산적은 측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상호호혜적으로 대상에 접근하고 협력적으로 행동하지만, 배신이 일어나면 반드시 응징한다. 또한 인간은 윤리적으로 행동하면서 주변 관찰자를 반드시 인식하며 이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기도 한다. 좋은 평판은 좋은 이웃이나 짝과의 연결로 이어져 나의 적합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피터싱어의 윤리는 공리주의이기에 윤리적 대상은 그 전제로 반드시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쾌락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이에게 이득과 손해가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이 길을 가며 나의 길을 막아서는 돌을 걷어찰 때 돌은 아무런 의사표현을 하지 않기에 그것이 돌에게 이득인지 손해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쥐나 토끼한테 그러한 짓을 한다면 그들에게 신체적 손상과 고통을 줄 것이므로 반드시 손해임을 알 게 된다. 때문에 그들은 윤리적 대상의 존재가 된다. 피터싱어가 주장하는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은 이러한 이익을 가진다는 특성 외에 다른 능력이나 특성들에 근거해서 타자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다. 즉, 윤리적 대상이 되는 조건으로 그 대상이 쾌락과 고통을 갖고 있다는 것만이 조건이 될 뿐, 인격을 갖고 있거나, 언어를 갖고 있거나, 특정 인종이거나, 특정 성이거나, 인간과 유별나가 가깝다거나, 인간에 진화상 가깝다라던가, 도구를 이용할수 있다던가, 상호작용 할 수있는가 등의 다른 특징들은 그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각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모두 완전히 동등한 것은 아니다. 가급적 그들의 쾌락을 보장하고 고통을 피해줘야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그들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가, 그리고 미래와 관련하여 욕망을 갖는 능력이 있는가, 자율성을 갖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그 대상의 쾌락과 고통의 정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령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외계인이 인간을 납치하여 실험대상으로 삼으려고 한다. 인간은 위의 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기에 실험직전까지 상당한 공포와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이런 요소가 없는 동물은 막상 실험을 당하기 전까지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그런 사전 고통을 겪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요소가 없는게 고통을 더 유발하는 경우도 있기에 애매한 측면이 있다. 가령 조난당한 인간을 외계인이 구조해준다면 인간을 그것을 알기에 안심한데, 하지만 동물은 도움을 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구조과정에서 눈이 가려지고, 어딘가에 갇히는 것에 대해 상당한 고통과 공포를 겪는다. 위 요소를 고려해야하는 것이지 좀 더 그런 것을 갖춘다고 해서 더큰 고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구체적 사례로 들어가면 피터싱어는 임신중절에 찬성하는 편이다. 임신중절에 반대하는 쪽은 사실 종족우선주의에 기반한다. 인간의 생명이 모두 신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터싱어의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에 의거하면 태아는 아직 인격체라고 볼 수 없는 존재다. 자신의 미래는 물론, 그에 맞춘 설계, 자율성이 없다. 해당시점에서 웬만한 동물보다 낫다고 보기 어렵다. 즉, 쾌락과 고통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기에 윤리적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태어는 거의 대부분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높은 존재다. 이는 고려해야하는 요소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태아의 발생 및 발달단계를 상당히 세분화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오히려 태아를 보통 인간같은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 볼지 안볼지의 문제를 더욱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 체외수정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정란은 보통 인간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높지만 실험실에서 쉽게 폐기되고 분화되어 늘어난다. 그리고 치명적 장애를 가진 것으로 밝혀져 뇌가 없거나 식물인간으로 자라나거나 태어난 후 고통속에 가까운 시일내에 사망할 것이 분명한 경우도 있다. 이런 모든 요소는 태아를 단지 보통인간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해야하는 근거를 희박하게 한다. 때문에 피터싱어는 태아를 윤리적으로 대하는데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은 태아자체가 아니라 그 태아로 인해 영향을 받는 다른 보통인간의 쾌락과 고통이라고 말한다. 태아가 죽음을 맞아서 큰 고통을 겪을 주변 가족이나 타인, 양심의 가책을 받을 사람들이 아니라면 태아를 죽이는 것은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피터싱어는 안락사도 허용한다. 안락사는 자의적 안락사, 반자의적 안락사, 비자의적 안락사가 있다. 자의적 안락사는 죽임을 당하는 사람의 자의적인 요청에 의해 수행되는 안락사다. 반자의적 안락사는 자신의 죽음에 동의할 능력이 있으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예다. 비자의적 안락사는 능력상실로 자신의 죽음에 동의하거나 요청하기 어려운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피터싱어는 안락사가 정당화되는 경우는 자신의 계속적인 존재와 비존재의 결여로 동의능력이 결여되고,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사람이 관련된 모든 것을 알고 자의적으로 확실히 죽겠다고 결심하는 경우라고 말한다.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은 병이나 다른 이유로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이를 제거해주는 것은 공리주의 입장에서 그의 이익을 고려하는 옳은 일이다.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통도 있겠지만 그것이 자신의 고통보다 우선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자의적 안락사와 비자의적 안락사는 쉽게 수락된다. 하지만 반자의적 안락사는 좀처럼 없는 경우지만 발생하기에 고려될 필요가 있다. 전시에 의사들은 부족한 의료자원으로 인해 부상당한 병사를 3단계로 구분했다. 가망이 없는 경우와 치료해서 살릴 수 있는 경우, 굳이 지금 치료하지 않아도 위중하지 않은 경우다. 이 경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죽도록 내버려두거나 죽임으로써 죽음을 당하는 경우이므로 고통을 주는 경우다. 하지만 이것은 어쩔수 없는 경우이므로 싱어는 이런 상황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다만 조심해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매우 쉽지 않았다. 문장이 상당히 어려웠고 상황 하나하나를 논증하며 고려하는 싱어의 말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공리주의는 윤리라는 인간의 내적도구가 생겨난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도덕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여러 상황에서 윤리적 판단을 해야하는 기준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실제 인공지능의 윤리적 기준을 세우는 상황은 목적론적 법칙이 아닌 결과론적인 상황중심이다. 인공지능에게 하나의 윤리적 기준이나 법칙을 주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성별, 직업등이 다른 사람들중 일부가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을 하게 하고 이 대량의 자료를 인공지능아 학습해가며 기준을 세워가는 형식이다. 인공지능이 이런 식으로 윤리빅데이터를 가지고 학습하다보면 어쩌면 인간도 자각하지 못하는 기준이란게 나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공리주의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피터싱어가 말하는 모든 감각적 존재에 대한 이익 고려의 법칙은 사실 힘의 법칙이다. 피터싱어는 어쩔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감각적 존재에 대한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윤리적이며 마땅히 따라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배고픈 포식자가 다른 동물에게 큰 고통을 주며 잡아먹는 것은 어쩔수 없는 위중한 경우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단지 재미를 위해 사냥을 하거나 어쩔수 없이 잡아먹는 경우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가 된다. 

 이처럼 인간이 다른 감각적 존재에게 윤리적일 수 있는 것도 모두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른 식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로 식물처럼 스스로 에너지를 생성할수 없고 반드시 죽여서 빼앗아야만 하는 존재이기에 본래적으로 다른 감각적 존재에 대해 윤리적일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단순한 최상위 포식자 이상의 존재가 되었기에 즉, 힘이 있기에 다른 감각적 존재에게 윤리적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인간 문명이 무너져서 다시 잡아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거나 오지에서 여전히 수렵채집에 의존해야 생계가 유지되는 종족에게는 다른 감각적 존재를 죽이고 사냥하는 것은 윤리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감각적 존재의 구분 문제다. 피터싱어는 슈바이처 처럼 모든 생물체를 윤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식물이나 조개류처럼 고통과 쾌락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는 과감히 그 대상에서 제외한다. 사실 다른 생물체에게 에너지를 의존해야 하는 인간의 입장에선 그나마 이런 것들이 있어야만 윤리적일수 있긴 한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우리가 다른 생명체들이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충분한 과학적 소명이 안되었다는 점이다. 실제 과거 물고기는 고통을 못느끼는 존재로 상당 부분 취급되었었다. 그리고 언젠가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나 인공지능이 자신의 생존에 좋은 것과 좋지 못한 것을 구분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하여 마치 쾌락과 고통이 있는 물체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 올때 윤리적 대상으로 삼아야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반드시 발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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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05 1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합니다
11월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닷슈 2021-11-07 14:07   좋아요 0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mini74 2021-11-05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닷슈님 *^^*

닷슈 2021-11-07 14:07   좋아요 2 | URL
당선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1-05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선작 축하드려요~

닷슈 2021-11-07 14:05   좋아요 2 | URL
감사하고 당선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11-05 1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닷슈 2021-11-07 14:0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11-05 19: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닷슈 2021-11-07 14:0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초딩 2021-11-07 11: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닷슈 2021-11-07 14:08   좋아요 2 | URL
당선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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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와 술, 과식을 즐기는 사람에게 그것을 그만두게 하는 것은 무척 힘들다. 그들은 그것의 해악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 위험성에도 이를 잘 체감하지 못하고 여전히 그것을 즐긴다. 때문에 다그치는 것도 나무라는 것도 좀처럼 효과가 없다. 환경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인간은 자신의 평안과 만족, 즐거움을 위해 자연을 소비하고 있으며 이미 생존 이상의 평안을 누림에도 소비로 인한 환경 문제에 무관심하다. 위험성도 우리 대부분이 수십년전부터 잘 알고 있지만, 이제서야 슬슬 위험성을 체감하고 있으나 그것도 극히 일부 사람만 그렇다. 또한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그들 중에서도 정말 더 극소수일 것이다.

 이런 인간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책이 선택한, 그리고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담담하게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이 얼마만큼 자연을 사치스럽게 소비하고 있고, 그 결과가 어떤지를 말이다. 책엔 큰 감정조차 없는데 이런 방식은 의외로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실 우린 환경파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수치나 환경파괴의 영향, 그리고 그것이 남과 다른 생물체에게 어떤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지는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과거와 지금의 사치정도를 비교하는 기준으로 1969년을 들었다. 특별한 것은 없고 1969년이 바로 저자가 태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이 태어나서부터 목도하고 저지른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1969년보다 인간의 경작지는 겨우 10%늘었다. 하지만 인구는 배로 늘었는데 이게 가능했던 것은 농작물 수확량은 무려 3배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는 농업기술의 발달과 품종개량, 비료, 농약의 강화로 가능했다. 1부셸은 곡물의 측량단위로 대충 30리터들이 한 바구니에 들어가는 곡물량이다. 아마도 담는 곡식의 무게와 부피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1부셸은 대충 무게로 22-27kg정도다. 50년전엔 1부셸에 해당하는 옥수수를 재배하려면 농구장 크기의 경작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동차 두대정도의 넓이면 된다니 얼마나 생산량이 늘었는지가 체감된다. 

 전 세계 비료사용량도 69년에 비해 3배가 늘었는데 관개능력도 2배가 좋아졌다. 이러니 지하수가 고갈될수 밖에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농경환경은 영양과 물이 넘쳐나는 곳으로 재배작물 뿐만 아니라 다른 식물과 해충들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이들의 제거를 위해 인간은 해마다 무려 500만톤의 살충제를 사용한다. 한중일의 논에는 해충방지로 클로드피시포스를 살포하고 아열대, 온대, 중위도는 잡초제거라 아트라진을 사용한다. 글리포세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농약으로 과거 밭고랑에만 뿌리다 개량되어 이젠 밭 전체에 뿌려도 된다. 글리포세이트의 사용량은 지난 20년간 15배가 늘었고, 내성을 갖춘 잡초도 15종 이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 글리포세이트는 발암가능물질이다. 그리고 전 세계는 미국산 농작물에 의지한다. 

 인간의 농업과 축산은 낭비가 무척 심하다. 미국은 옥수수를 무척 많이 키우는데 이중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건 겨우 10%다. 나머지 45%는 사료이고 나머지 45%는 거름형태로 전환된다. 어차피 거름이 될걸 뭐하러 키우는지 이해 불가지만 하여튼 그렇다. 문제는 이 거름전환양이 1억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011년 이후 전 세계의 육류 생산량은 연간 3억톤 이상으로 1969년의 3배에 달한다. 이중 97%는 소, 닭, 돼지로 이 3가축의 운명은 기구하다. 미국에서는 매 시간 100만마리의 동물이 식재료가 되기 위해 도살되고 있다. 매년 소는 3천만마리, 닭은 90억마리, 돼지는 1억 2천만 마리가 도살된다. 거기에 이들은 69년에 비해 몸집도 무려 20-40%가 커졌다. 고기를 얻기 위한 품종개량 때문인데 빠른 성장, 낮은 신진대사, 높은 번식력이라는 모순되는 생물학적 특징이 나타난다. 69년엔 송아지가 생후 3개월이 지나야 간신히 45kg이 되었지만 지금은 50일이면 90kg이 된다. 

 육류는 그 자체로 낭비다. 때문에 육류를 얻으려면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다. 문명의 발상이후 지배층을 제외한 나머지가 육류에 굶주린 이유이며 힌두교는 소를 이슬람은 돼지를 금지한 이유라고 할수 있다. 일단 보통 3kg의 사료를 사용해야 고기 0.5kg을 얻는다. 물론 칼로리가 늘어나는것도 아니다. 인간은 매년 10억톤의 사료를 동물에게 먹이고 고작 1억톤의 고기와 무려 3억톤의 분뇨를 얻는데, 맛이 더 좋다는 것을 뺀다면 에너지나 환경면에서 지극히 손해보는 거래가 아닐수 없다. 과거 축산이 이득이었던 것은 사람이 먹지 못하는 곡물의 부위나 잡초를 가축에게 먹이고 고기를 얻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을 먹이는 것이니 에너지상의 이득이 전혀 없다. 실제 미국인이 주당 1.8kg의 육류 섭취를 반으로 줄인다면 1억 5천만톤의 곡류 저장이 가능하고, OECD국가 36개국이 육류 소비를 절반으로 줄이면 세계 곡물 생산이 무려 40%나 늘어나게 된다. 모두가 비건이 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놀랍게도 축산은 바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바로 양식이다. 인구증가와 남획으로 바다 자원이 줄자 인간은 바다에 목장을 세운다. 바다 양식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데 연어 양식을 하려면 알을 부화시키고, 먹이를 주고, 목욕시키고, 예방주사를 놓고, 약을 치고 벌레를 잡고, 기생충을 제거하고, 홍합이 못자라게 양식장 울타리에 구리를 쳐야한다. 거기에 어류는 인간보다 5배 자주 배설하기에 찌꺼기를 걸러내주기도 해야한다. 노르웨이에는 연어양식자잉 있는데 크기가 보통 지름 50미터에 깊이도 비슷하다. 그리고 이 크기에 무려 100만마리의 연어를 양식한다. 연어는 양식장에서 다 자라면 담수탱크로 이동하고 거기서 일년간 머무르며 6kg의 항생제와 1kg의 기생충퇴치제, 9kg의 마취제를 먹는다. 각 양식장에선 매년 3-4천톤의 연어가 생산되고 이런 연어양식장이 노르웨이 피오르드는 따라 서쪽 해안에 수천 수만개가 있다. 노르웨이 연어가 전 세계 마트마다 있는데는 다 이유가 있던 셈이다. 

 이 바다축산은 육지축산만큼이나 낭비가 심하다. 물고기는 짧은 소화관 때문에 육지동물보다 오히려 더 많은 단백질이 필요하다. 이 단백질 공급을 위해 외해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아 압착하고 건조하여 가루로 만든다. 당연히 외해에서 이 작은 물고기를 먹고사는 큰 물고기들은 굶게 된다. 1kg의 연어살을 얻기위해 작은 물고기 15kg이 필요하다. 

 인간은 바다 농장도 갖고 있다. 1969년 전 세계 바다에서 해초는 200만톤이 생산되었다. 지금은 2500만톤이다. 양식 때문인데 해초 소비의 절반은 토양비료, 사료, 다양한 제품 가공생산이다. 육지에 이어 비료로 만들기 위한 재배를 여기서도 한다. 해초는 점성용액을 만들때 필요한 하이드로 콜로이드 제조에 사용되는데 알긴산, 한천, 카라기닌이다. 모두 용액을 진하게 하는 저칼로리 탄수화물로 대부분의 아이스크림, 휘핑크림, 샐러드 드레싱에 콩과 해추추출물이 들어간다. 이들은 음식에서 우유, 계란, 크림의 식감을 낸다. 

 단맛을 좋아하는 인간은 설탕과 액상과당도 탐닉한다. 과거 미국인들은 설탕을 대량으로 사서 가정에서 음식을 만드는데 썼지만 지금은 주로 업체에서 만드는 간편식을 통해 설탕을 섭취한다. 1970년 주당 450그램의 당분을 간편식을 통해 섭취했지만 2004년엔 주당 700그램으로 섭취가 늘었다. 1977년 하루 건너 한 캔이던 당분음료의 섭취도 2000년대 들어 17시간 한 캔으로 늘어났다. 미국인의 소모 칼로리 10%가 당분음료에서 나올 정도다. 설탕에서 액상과당으로 당분이 전환된건 1972년 소련 우크라이나 지역의 대 가뭄으로 사탕무 농사가 망한 것과 1974년 카리브해 열대폭풍으로 사탕수수 농장도 타격을 크게 입은 것고 관련한다. 업체들은 액상과당에 주목함으로써 이 위기를 돌파했고 그 이후로는 액상과당의 시대가 되었다. 액상과당은 미국은 섭취 당분은 1/3을 차지한다. 설탕은 산과 섞이면 가수분해하고 맛이 이상해지며 갈변하지만 액상과당은 늘 액체상태이고 안정적이며 액체이기에 다른 것에 첨가하기도 매우 좋다. 현재 인간은 설탕과 액상과당의 과다 섭취로 음식물 소비가 줄었고, 일반 음식물의 무려 40%가 쓰레기로 전락하게 되었다. 

 늘어난 인간은 많아진 가축처럼 자신의 분뇨로 환경을 오염시킨다. 거기에 인간은 각종 쓰레기도 만들어낸다. 성인은 매주 1kg의 대변과 15kg의 소변을 만들어낸다. 세계 인구가 80억이란걸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일 것이다. 인구증가와 음식물 섭취 증가로 배설물의 양은 크게 늘었는데 사실 정화장치만 괜찮다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세계 인구의 20%는 배설물 정화장치가 없는 곳에서 거주하며 10억의 인구는 오염물을 완전히 걸러낸 음용수가 없다. 인간 배설물과 음식물 쓰레기, 각종 유기물 쓰레기는 매년 8천만 톤이 생겨나며 OECD모든 국가는 이 폐기물 양이 1억 5천만톤이고 전 세계 합산은 4억 톤이다. 특히, 음식물은 먹고 남기는 것 외에도 크고 작다고 버려지고, 운반중 소실되며, 우유와 고기는 유통과정 및 판매단계에서 상하고 썩어서 버려진다. 미국 수퍼에서 1/7의 신선식품이 버려지며 이중 버려진 과일채소의 양은 연간 아프리카 필요량에 달하고, 버려진 곡물의 양은 연간 인도에서 필요한 양에 달한다. 

 에너지 사용량도 엄청나다. 전기 사용량은 50년 전에 비해 4배가 늘어났다. 미국은 전 세계 에너지의 15%, 전기 에너지의 20%를 쓴다. 미국의 전 세계 대비 인구비중은 4%다. 현재 전 세계에는 10억대의 자동차가 있고 교통수단중 비교적 에너지 절약형인 철도는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늘고 도시가 더욱 커졌음에도 쇠퇴하고 있다. 미국에선 자동차가 매년 600만대가 팔리는데 2017년 자동차의 수가 인구수보다 50%나 더 많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미국인은 겨우 5%다. 과거 자동차는 오일쇼크를 겪으며 에너지 효율이 무척 좋아졌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미니벤이나 SUV, 픽업트럭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통근거리도 무척 길어지면서 이 효과가 완전히 상쇄되었다.

 미국과 유럽연합, 브라질은 식량으로 에너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또한 매우 낭비다. 만드는 과정에서 채산성이 떨어져 미국은 무려 400억 달러의 보조금은 농부에게 지급한다. 미국은 옥수수 기반 에탄올을 , 브라질은 사탕수수 기반 에탄올을 유럽연합은 대두와 카놀라유 기반의 바이오 디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생산량도 매우 적어 미국은 겨우 6일치, 브라질은 3주, 유럽연합은 고작 3일치의 화석연료 대체효과가 있다. 바이오 연료는 육류만큼 낭비가 커서 1kg의 바이오 연료를 위해 무려 20kg의 사탕수수가 필요하다. 이들은 그럼에도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것은 위기나 안보상의 대비 때문이다. 

 이 책은 언급한 것 외에도 지구 온난화, 세계적 발전 등 인류가 풍요의 대가로 지출한 많은 손익계산서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책의 말미엔 잊을까봐 이를 한문장 한문장 두 페이지에 걸쳐 정리해놓았는데 이게 더 극적이다. 이미 선진국의 일원으로 환경을 적극 파괴하고 과소비하는 우리 입장에선 꼭 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부수고 쓴건 일부지만 그걸 치우고 피해를 보는 건 전체이며, 역시 부수고 쓴건 먼저 태어난 사람이지만 이를 해결하고 감당해야하는 것은 나중에 태어날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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