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밀란 쿤데라 전집 1
밀란 쿤테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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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한 개인을 향해 농담을 던진다. 그 농담이 받아들여지든, 아니면 예상치도 않게 그것이 악의로 해석되어 그 사람에게 내팽겨쳐지든 그것만으로 끝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라고 마르케타 개인에게 보낸 루드비크의 농담은 그렇게 끝내지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열정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그것을 위하여 몸바친 어떤 사상과 주의를 바탕으로 조직된 단체에 의해 문제가 되고, 그것으로 인해 배반당하고 축출된다.

 

체코의 1948년 2월혁명 후, 젊은이들에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그 모습은 경직되고 심각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여러 학습 모임들이 조직되어 빈번한 모임을 가지고 모든 조직원들에 대하여 공개적 비판과 자아비판이 행해졌다. 가벼운 행동과 미소마저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에 나는 정말 누구였을끼?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아주 정직하게 답하고 싶다. 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러 모임에서 나는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확신에 찬 사람이었고,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제멋대로에다 짖궃었으며, 마르케타하고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냉소적이고 궤변적이었다. 그리고 혼자일 때면,(마르케타를 생각할 때면) 나는 겸허했고 중학생처럼 마음이 설레였다.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p55~56

 

여러 얼굴을 가진, 누구나가 다 그럴 수 있는 평범한 루드비크는 마르케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농담을 적은 편지를 보낸다. 문제는, 마르케타가 어떤 것의 저 너머를 보는 것이 불가능했고 오직 사물 자체만을 볼 수 있는 여자였다는데 있다. 결국 그 농담으로 루드비크는 당에서 축출되고 학업의 지속을 금지당하고, 최악에 속하는 검정표지를 받아 광부로서 군복무를 하게 된다.

 

루드비크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던진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었다면 그것이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는 것을.

그래서 루드비크는 그것을 농담이라고 했고 자신의 사상과 신념이 그 조직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단단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줄 안 것이다. 거기서부터 루드비크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 불행은 루드비크의 모든 것을 빼았았다. 예상도 하지 못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해 뒷통수를 맞은 인간은 나락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상당히 삶이 억울할 것이며 그 분노로 인해 쉽게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이해하며 루드비크의 루치에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본다.

 

'잊혔던 일상이라는 초원, 소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충분히 사랑할 만한 한 여인, 루치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

유배당한 루드비크의 삶에 구원처럼 나타난 루치에를 루드비크는 사랑한다고 믿었고 자신의 욕망과 행위가 '사랑'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이라서 당연한 그 행위가 루치에에게는 왜 당연하지 않은지 루드비크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질문해보지도 않았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떠나서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루드비크는 결국은 권력을 갈망했으며 자신의 여자는 성녀처럼 순결하며 구원을 가져다주어야한다는 그렇고 그런 이기적인 남자에 불과했다.

 

루치에는 코스트카에게 루드비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루드비크를 만났고 묘지에 있는 꽃을 훔쳐다 그에게 준다. 남녀간의 흔한 사랑은 아니라도 분명 루치에는 루드비크라는 한 인간을 불쌍히 여겼고, 어긋났지만 사랑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돌고돌아 먼 훗날 루드비크는 깨닫는다.

코스트카가

'즉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 쪽으로 향하고, 나에게 와 닿는 쪽에서만 그녀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그녀 자체의 모습, 그녀 혼자만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

을 해냈지만 자신은 그렇게 히지 못했다고 깨닫고, 마지막에 속죄를 함으로써 분명 루치에는 루드비크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랑은 다양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첫 장편소설 '농담'은 루드비크, 헬레나, 야로슬라프, 코스트카가 화자가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루드비크와 연관이 있다. 작가 개인의 삶이 이 작품에 많이 투영되어 있다. 작가의 첫 작품이라 그런지 문장 군데군데에 괄호로 부연설명이 많이 되어 있다. 초보자가 행할 수 있는 무수한 설명인지 아니면 무척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나 살면서 삶을 살아가는 당위와 이유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포장하는 가면이 되기도 한다. 코스트카에게는 종교가, 헬레나에게는 자신의 신념이. 야로슬라프에게는 전통이 그런 것이다. 그 선택들은 지극히 각자의 것이지만 다만 그것들이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한 변명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잃어 나락으로 빠진 루드비크는 억울함과 패배감으로 삶을 살아가고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결국은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친구 야로슬라프를 찾아간다. 농담이 놈담이 될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이며 치욕적이다.  

 

언젠가부터 난 누군가로부터 오해받고 상처받기 싫어 농담을 안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고 비겁한  것 같아 싫었다. 그러나 오히려 누군가를 위한답시고 훅 들어가 그 사람의 약함과 치부를 보고 당황하며 돌아서기 보다 그냥 그 언저리에서 머물며 기다려주는 것이 어쩌면 더 괜찮은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멋진 농담을 준비해놓고 말이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들떠 올라서 내려버릴 수 없는 나의 정신에 차분함을 주었다. 이 소설로 가을의 느낌을 만끽했고 현재의 가을과 함께 했다. 고맙다.

쓰러진 야로슬라프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루드비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을 환하게 밝힌 구급차이다. 그 빨간 불빛속으로 들어가는 나이가 되었을 때 돌아 본 나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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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10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농담리뷰 당선 축!카 ㅋㅋ

쿤데라 ‘불멸‘ 읽고 있었는데 흠,

프랑스로 망명하기전에 작품들 체코어로 쓰인 농담-참을수 없는 존재들-불멸들이 최고작들인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0-12-10 23: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쿤데라의 작품들을 다 읽고 싶은데 왜이리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없는지 모르겠어요~~
scott님의 ‘불멸‘ 후기 기대할께요^^

페크pek0501 2020-12-23 14: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

서니데이 2020-12-23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가정간편식 - 귀찮지만 집밥이 먹고 싶어서
이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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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요리책을 들여다본다. tv만 틀면 맛있게 먹어되는 먹방이 난무하고, 요리앱이나 유튜브에서는 레시피가 가득하다. 그러나 막상 끼니마다 뭘 해먹으려면 오늘은 도대체 뭘 만들어 먹을까를 고민한다.

 

요리에 관심도 재주도 없는 나는 그 무슨 베짱인지는 모르지만 밖에 나가서 사먹는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식당을 갈지 선택하는 것도 귀찮고 막상 가도 그 맛이 그 맛이다. 그래서 대부분 집에서 요리를 한다. 한 번 요리를 하면 몇시간 싱크대 앞에서  노동을 하고 그것을 며칠씩 울궈먹는다. 우려먹다, 울궈먹다라는 말이 요리에서 시작된 것이라, 이럴때 참 절묘하다. 딸아이는 이런 나의 습관에 질색하지만 시간에 쫓기며 사는 나에게는 어쩔수없는 선택이다.

 

귀찮지만 집밥이 먹고 싶어서 '가정 간편식'은 요리 재료에 대한 기본 상식, 재료별 요리 레시피, 한그릇 요리, 간식등이 소개되어 있다.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변화되었고 세상살이가 간편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건강과 먹거리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 책은 집에서 부담없이 간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재료준비가 간단하고, 먼저 양념을 배합해 놓고 그것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요리를 만든다. 책의 한 페이지에 요리 하나씩이 소개되어 있어 굉장히 쉽게 보인다.

 

간편하고 쉽게 보여도 음식이란 것을 만들려면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재료 준비도 힘들고 양념도 고루 갖춰 있어야 한다.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그것의 성과는 적다. 먹어버리면 없어지고 다음 끼니가 또 들이닥치니 참 허무하다. 그래도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 우리들은 또 요리책을 들여다보고 끙끙대며 앞치마를 두른다.

 

'가정 간편식'은 요리를 많이 해본 사람이 보기에는 좀 부족하고, 요리 초보자에게 적당할 수 있겠다. 요리에 대해 하루하루 발전하고 이것 저것 해먹고 싶은 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많이 멋부리지 않고. 소박하고 적당한 요리가 있어 부담이 없다.

 

한번씩 시청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큰 그릇에다 맛있는 재료를 넣고 쓱쓱 버무려 찰지고 맛깔나는 음식을 뚝딱 해내시는 대한민국의 여인들이 경이롭고 부럽다. 이 생에서 나에게 그런 재주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지만, 그나마 요리책이라도 보며 힘겹게 살포시 만들어내는 나의 요리가 그래도 대견하다. 간편하고 쉽게 한그릇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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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8-18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음식을 못해서 요리 잘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부럽습니다 저는 저 혼자의 입만 건사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가 만든 밥은 뭔가 맛이 없더라구요....

페넬로페 2020-08-18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이버님!
정말 그렇다니까요~~
저도 제가 한게 맛이 없어요 ㅎㅎ
그래도 더운 여름에 입맛 떨어지면 안되니
혼자라도 잘 해드세요^^

서니데이 2020-08-20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텔레비전에서 한국인의 밥상이 나오고 있어요.
음식 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일 같아요.
먹을 때는 잘 모르지만, 할일이 너무 많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0-08-20 23:5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에 건강 조심하시고
우리 코로나 위기를 잘 견디자구요!


페크pek0501 2020-08-21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밥이 최고죠. ^^

페넬로페 2020-08-22 00:16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거 같아요~~
가족들과 같이 먹어서 그런거 같아요^^
 

 

 

 

 

 

 

 

 

 

 

 

 

 

 

소설가, '김금희' 가 쓴 산문들은 조용하다. 직접적이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세상과 삶을 깊숙히 들여다보게 한다.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완성해가는 과정들에 많은 생각들과 느낌들이 교차하는 것 같다. 작가의 가족과 어린 시절의 얘기들, 책과 영화,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을 담담하면서도 살짝 아프게 드러내 놓았다.

 

아픈 기억을 버리거나 덮지 않고 꼭 쥔 채 어른이 되고 마흔이 된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손에서 놓았다면 나는 결국 지금보다 스스로를 더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삶의 그늘과 그 밖을 구분할 힘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서문에서

 

아픈 것들을 손에 꼭 쥐고 그것들을 글로 써주는 사람이 소설가가 아닌가 한다. 드러내지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알려주는 것, 쉽게 이해할 순 없지만 그 사람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어떤 진실 같은것을 소설가들은 서술해준다. 치열하고 힘들게 새겨진 글자들은 나에게 편견없이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나쁨' 에 대한 지겨운 고백을 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울어야 할 일과 절대 울고 싶지 않은 일, 되돌려주고 싶은 모욕과 부끄러움, 한순간 광포한 것으로 변해버리는 환멸과 후회들이 차창 밖처럼 연속된다. 나는 누구나 아주 나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믿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소설은 어느 나쁘지 않은 오후에 누군가의 문상을 가듯 읽어 주었으면. 우리는 언젠가 이 세계에서 지워져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이들이 되겠지만 아직 우리는 내가 나빴습니까, 하고 더 물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므로 문상을 가는 우리의 얼굴이란 다 젖었다가도 마르고 어두워졌다가도 다시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p152

 

저렇게 절절한 소설가의 바램을 들으며,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 먼저 경외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남에게 내보이는 글은 그 치부를 드러내며 발가벗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곁을 떠나간 글들은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쓴 글은 영원히 자신의 것이다.

 

알라딘의 북플에서 1년 전 쓴 나의 글들이 올라온다. 공개적인 매체에 글을 쓴 지 벌써 1년이 됐나보다. 그동안 책을 읽고, 특히 소설을 좋아해 많이 읽으며 '나쁨'에 대해 지겹도록 알았고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책이 나에게 많은 행동의 변화를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가 남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책을 읽느라 가족과 사람들에게 소홀해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을 읽으며 가난에 대해 몸서리치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상대적이겠지만 나의 가난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 는 건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쁘지 않게 살아가야하는 것인데 한번씩 책이 나를 좀먹게 하고 있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도 더 착하고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읽는 것에 좀 더 책임을 가지고, 글을 쓴 분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글을 허투루 읽지 않기 위해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힘들게 힘들게 조금씩 채우고 있고 더디지만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나의 지인중에-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다- 뜨개질을 잘 하는 분이 있다. 그녀는 힘들게 뜨개질을 해서 만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준다. 내가 지금 들고 다니는 숄더백과 사용하고 있는 카드 지갑과 파우치는 그녀가 나에게 만들어준 것이다. 귀한 것을 받기만 해서 송구스런 나에게 그녀는 자기가 그것을 좋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에는 '흥성스러운'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러 사람이 활기차게 떠들며 계속 흥겹고 번성한 분위기라는 뜻인데 내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이라 생소한 단어였다. 그러한 단어를 익히며 갑자기 알라딘 서재가 떠올랐다. 흥성스럽게 책들을 읽고 글들을 써내며 활기차게 떠드는 곳이 알라딘 서재가 아닐까 한다. 손재주가 없어 뜨개질을 할 수 없는 내가 위로받을 수 있고, 더 많이 읽어라고 흥성스럽게 자극하는 곳이 이곳이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예단하지 않고 내가 여기까지 해주겠다 미리 선 긋지 않는 선의. 그러한 선의가 필요한 순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올 수 있는 것. 그것은 얼마나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가. 이러니 매순간 배워나갈 수 밖에 없다.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것에 다행스러워 하면서. 그런 마음들을 기꺼이 배우겠다 다짐해보면서.-p79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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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07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 1인입니다.

2020-08-07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4-03-29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2020 이젠 꽤 오래 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안남은 이달 잘보내시길요!!

페넬로페 2024-03-29 18:06   좋아요 1 | URL
2020년이 정말 아득하게 느껴지네요.ㅎㅎ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탓인 것 같아요. 서곡님께서도 남은 3월, 잘 지내시길 바래요^^
 

 

 

 

 

 

 

 

 

 

 

 

 

 

언제부터인지, 왜 그런건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는 닭을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직접 공수되어온 닭은 덩치가 크고 위풍당당했다. 마당 한구석도 아니고 중간 쯤에 다리가 묶여 있던 닭이 흉물스러워 쳐다보지도 못하고 피해다녔다. 엄마는 닭이 도착하면 바로 요리를 하지 않고  몇 날 며칠씩 묶어 놓곤 했다. 마당에 닭이 있다는 것 자체가 영 불편했다. 그런 닭이 싫어 닭 몸뚱이가 그대로 들어 있는 삼계탕을 먹지 못했다.

 

살아있는 닭이 죽어 음식이 되는 과정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자라면서 한번도 아버지가 닭을 잡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살아있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고 끓는 물을 부어 닭의 털을 뽑아내고 내장을 제거해 엄마는 닭 요리를 했다. 아주 어린 소녀였을 엄마가, 처녀로 자라고, 시집 와 아기를 낳았을 엄마는 언제부터 닭 모가지를 비틀 수가 있었을까?

 

딸아이가 생일 선물로 사준 책, '코스모스' 를 읽고 있다. 700여쪽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은 생각보다 잘 읽힌다. 문장의 힘이 대단하다. 읽는 동안 딴 곳으로 생각을 돌리지 못하게 코스모스의 문장은 쉽고 친절하다. 무구한 세월동안 서서히 이루어지는 이 광대한 우주의 변화 속에서 우리 지구는 정말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에게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지긋지긋한 일상을 이어가야만 한다.

 

초복인 오늘, 난 집에서 삼계탕을 끓였다. 닭 모가지를 비틀지는 못하지만 마트에 포장되어 있는 닭을 사와서 손질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해졌다. 여전히 닭에 대한 감정은 그대로여서 고무장갑을 끼고 만질 수 밖에 없다. 내가 해 준 삼계탕을 맛있게 먹고 있는 식구들을 쳐다본다.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용감해진 나는 그대신 우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코스모스에 나오는 여러가지 신비하고 과학적인 단어들은 '내일은 뭐해서 먹일까?' 라는 문장에 묻혀버린다.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그렇게 용감하셨던 엄마는 40대 후반쯤에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때쯤은 누구나 마트나 시장에서 손질된 닭을 살 수 있었지만, 어쨌든 엄마는 종교의 영향으로 살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닭요리를 좋아하는 딸아이때문에 오히려 내가 살생되어져온 닭을 계속 살생한다.

 

이 드넓은 우주의 한 점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나도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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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17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와 닭모가지가 이렇게도 만나네요. 저도 결혼후에 그렇게나 좋아했던 닭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됐어요. 손질이 어렵더라구요. 요리되어 나올때는 몰랐던 세계가 있더라구요.
잘 읽고 갑니다^^

페넬로페 2020-07-17 12:05   좋아요 0 | URL
코스모스와 닭모가지!
좀 황당하죠~~
그래도 어쨌든 우리와 닭은 우주의 질서속에서 살아가니까요^^
어제 백숙을 끓이며 머릿속으로
생각난 것들을 글로 옮기고 싶었어요^^

페크pek0501 2020-07-18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복에 삼계탕을 먹었어요. ㅋ 그러고 보면 인간들의 잔인성이 느껴져요.
저도 닭과 새를 무서워합니다.

페넬로페 2020-07-18 14:45   좋아요 1 | URL
복날에 왜 삼계탕을 먹어야하는지 그 유래가 궁금해지네요 ㅎㅎ
먹고 사는 문제가 참으로 중요한 인간으로서 삶이 주는 무게가 크게 느껴집니다**
 
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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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에 사는 한아가 겪었던 얘기는 그저 인간의 상상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점으로 찍힌듯한 작은 초록별에 사는 우리들이 우주에 대해 아는건 거의 없다. 그래서 난 이 얘기들을 믿고 싶다.

 

이 소설은 SF로 분류되지는 않는데-(알라딘 책소개)- 내용중에 우주로 가고, 외계인이 등장함으로 다분히 그런 요소가 있다. 작가는 그러한 소재로 지금의 우리와, 우리들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소설은 결국 인간의 원형적인 선함과 노력을 요구한다. 사랑에 대한 가치와 그 의지도.

 

어쩌면 유치하고 황당할 수 있는 이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내용들을 상쇄할 수 있는 작가의 따뜻한 문장들이 많다.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관점도 재미있었다. 지구의 경민과 외계인 경민을 섞은듯한 성향을 가진 나의 남편이 생각나 살짝 웃은 적도 있다.

 

먼 우주의 한 곳에서 성능좋은 망원경으로 지구의 나를 지켜보고 있는 외계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신 바짝 차리자.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결코 한아의 외모 때문에 벌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추측과는 달리.-p9

‘환생-지구를 사랑하는 옷 가게‘-p11

경민을 사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한아는 그 순간에도 체념하듯 생각했다. 체념이라고 부르는 애정도 있는 것이다.-P23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대 명제,‘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만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P36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P37

"한때 저 별에는 괴로울 때 몸의 가장 연약한 부위에 귀한 결정이 맺히는 이들이 살았어. 그 사람들은 그 결정을 최고 단위 화폐로 인정해주었지.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더 큰 대가를 주기 위해서.‘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저렇게 폐허야?"
"시간이 지나자 모두 자해를 시작했거든. 비극과 고통과 그로테스크에 중독되어버렸어."-P158

‘너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해준 거 알아. 고맙게 생각해."-p205

흔하지 않지만 어떤 사랑은 항상성를 가지고, 요동치지 않고, 요철도 없이 랄랄라하고 계속되기도 한다.-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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