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리커버, 영화표지)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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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 놓은 건지 모르지만 옛 친정집 책장에는 김성종의 추리소설 5이 꽂혀있었다. 제목의 의미도 모르면서 무심코 그 책을 읽기 시작했고 너무 재미있어 몇 번을 반복해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나이가 몇 살쯤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간간이 나오는 야한 장면을 읽기에는 조금 어렸었던 것 같다. 살인청부업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읽은 건 그 소설이 처음이었는데,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는 냉혹한 킬러 B에게 그만 홀딱 빠져버렸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B는 언제나 제거해야 할 대상보다 한 발 앞섰고, 항상 주어진 임무를 성공시키는 킬러였다.

 

16세에 일을 시작해 지금 64세가 된 조각은 킬러 B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움직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고 조금만 무리하면 관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는 물리적 노화가 시작된, ‘신체적 노화가 노력을 추월할 속도가 된 노인의 신세가 된 것이다. 상품화 되지 못해 버려지는 과일인 파과에 더 달고 깊은 맛이 있듯, 이 업계에서 레전드가 된 조각도 그동안 쌓아 온 숙달된 경험으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해충대신 쥐와 벌레 같은 인간 방역을 목표로 하는 에이전시 신성방역의 세계는 보통 사람이면 잘 모르고, 별 관심도 갖지 않은 곳이다. 소설 파과는 여기에 소재를 두어 일단 독자의 관심을 끈다. 거기다 다 늙은 여자 킬러가 주인공이라면 더 흥미롭다. 소설 여러 장면에서 조각의 생각으로 서술되는 노화의 단상이 사실적이라 공감이 간다. ‘조각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거기에 조각의 욕망과 허무가 들어있다. 소설적 서사로서는 썩 괜찮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소설의 진행도 좋다. 다만 소설적 맥락에서 식상했고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살인청부업자는 선과 악, 둘 중 하나의 편에 서서 임무를 완수해야한다. 설사 세상의 정의를 위해 악을 제거한다 해도, 그것은 선의가 될 수 없다. 그들이 사용하는 살인이라는 도구는 그 어떤 이유라도 정당하지 않다. 한 번의 살인으로 깨끗이 정리되는 것은 인간이 사는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다. 살인은 살인을, 죽음은 죽음을, 복수는 복수를 부르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벌레 같은 인간들이지만, 그들은 죽이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출발은 불행을 기반으로 한다. 태생적 소시오패스가 아닌 이상 원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열다섯에 식모살이를 시작해 스승 류의 필요에 의해 희생자로 선택되고, 뜻밖의 소질 있음으로 살아남은 조각이 갈 수 있는 길은 방역업 외에는 없었다. 그런 조각의 출발은 동정을 얻을 수 있지만 살인병기로 길러진 조각의 그 이후의 삶은 그녀의 선택일 뿐이다.

 

조각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청부업자가 된 투우는 조각을 쉽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조각이 노련미에서는 앞서지만 투우의 실력으로 봐서 조각은 그에게 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투우는 어릴 때 잠시 동안 조각과의 인연으로 사람의 따스함을 느껴버렸다. 역시 출발이 불행했던 투우는 조각과는 다르게 이 연을 끊어버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조각보다 투우가 훨씬 더 인간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역시나 조각과 투우에게 중간은 위험했고 그들은 그것이 없는 삶을 선택한다.

 

소설 파과의 존재는 알았지만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민규동 감독의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식이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볼까, 소설만 읽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를 먼저 볼까, 아니면 소설을 먼저 읽을까도 고민이 되었다. 일단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러 갔다. 소설은 끝까지 쉬지 않고 읽힐 정도로 재미있었다. 강 선생의 아버지를 죽이라고 한 의뢰, 강 선생의 딸인 해니를 투우가 납치하는 설정, 마지막 투우와의 결전에서 총으로 다섯 명을 조각이 제거하는 것은 조금 식상했다.

 

민규동 감독은 영화의 영어 제목을 ‘The old woman with the Knife’라고 정했다. ‘칼을 든 노파라는 말이 조각의 정체성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영화 파과의 여러 포스터 중 조각의 뒷모습만 보인 이 포스터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시작과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그저 조각이 끝까지 걸어가는 모습이 좋았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죽을 수도 있고,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조각도 알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겠는가?

 

소설을 읽고 나서 본 영화는 이해가 잘 되어 좋았다. 소설과 영화가 서로 방해가 되지 않고 조화가 잘 되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대화나 행간을 민규동 감독이 잘 살린 것 같았다. 지루하지 않게 박진감도 있었다.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만 본 사람은 나보다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커피를 들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내 옆에 모녀가 앉아 있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끝까지 내 옆의 엄마는(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였다.) 시종일관 사람 죽이는 잔인한 장면에서 놀라서 탄식하고 얼굴을 가리면서 안타까워하며 영화 보기를 힘들어 하였다. 계속 악, ! 하며 소리를 내었다. 반면 나는 커피를 마시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영화를 즐기며 봤다.

 

분명 나도 전에는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를 못 보던 사람이었다. 영화 아저씨추격자를 보면서 거의 반을 눈 감고 있었다. 그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사람 때리고 죽이는 영상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보게 되었다니. 결국 나에게도 중간이 없어지는 것인가?

 

조각 역을 맡은 이혜영배우가 멋졌다. 연극에 출연하신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완전 매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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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25-05-20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일로 영화를 아직 못봤네요. 소설과 영화가 서로 조화가 된다니 꼭 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5-05-20 14:10   좋아요 1 | URL
저는 괜찮더라고요.
생각보다 관객수가 적어 영화 볼까 말까 망설였는데, 지루하지 않게 봤어요. 조각과 투우의 감정신도 잘 살린 것 같더라고요^^

레삭매냐 2025-05-20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무척 재밌게 봐서 영화도
승승장구할 줄 알았는데...

요즘 영화시장이 워낙 다운이라
그런진 몰라도 영화 성적은 아
쉬워 보이네요.

페넬로페 2025-05-20 14:36   좋아요 1 | URL
소설과 영화에서 약간 식상한 전개가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관객들은 더 재미있고 강렬한 것을 원하는 것 같아요. 저는 투우와 조각의 인간적인 면이 좋았어요.
그만하면 액션신도 괜찮았고요^^

새파랑 2025-05-20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쟁이 페넬로페님은 영화보다는 책 먼저군요~!! 책도 좋고 영화도 좋군요 주말에 영화를 한번 봐야겠습니다~!!

페넬로페 2025-05-20 14:47   좋아요 1 | URL
보통 서로 방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좋았습니다.
조각역의 이혜영 배우도 너무 잘 어울렸어요.
새파랑님께도 즐거운 영화관람 되시길요.

책읽는나무 2025-05-20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셨군요?^^
소설 읽은 직후엔 영화 넘나 보고 싶었는데 며칠 지나니 흥이 가라앉았고 영화 보면서 대부분 소설을 못따라가 실망한 적 많아서 영화관 가길 포기했었어요.
근데 소설만큼 영화도 괜찮다고 하시니 또 슬며시 땡기네요.^^
전 전공의 드라마를 보면서 신시아 배우를 처음 보았는데요. 조각 어린 시절의 배역은 신시아 배우가 맡았다고 하던데 러블리한 신시아 배우가 어떻게 연기했을지 좀 궁금하네요. 특히 <파쇄>소설은 신시아 배우 생각하면서 읽게 되더라구요.
이혜영 배우님은 안봐도 연기가 멋졌을 것 같아요.
투우도 참 안됐단 생각이 들던데 결투씬을 어찌 찍었을지… 궁금해 하다가 페넬로페 님 말씀처럼 궁금했던 장면이 나오면 사람 죽이는 장면에선 그냥 눈 부릅뜨고 스크린 볼 것 같아요.ㅋㅋㅋ…소설을 읽었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 싶습니다. <추격자>는 와…완전 충격적인 영화로 기억에 남아있어요.ㅋㅋ

페넬로페 2025-05-20 22:43   좋아요 2 | URL
이혜영배우가 신동엽의 짠한형에 나와서 ˝영화 보고 싶다고 하면서 막상 영화관에 안 보러 올거죠˝하면서 팩트를 날리더라고요. 그래서 양심상 보러 갔어요. 방구석 1열에서 민규동 감독도 많이 만나 반가웠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신시아 배우가 전공의 보다는 파과에 더 어울리더라고요.
파쇄 읽으면 마음 아플 것 같아요.
김성철 배우도 워낙 연기 잘하잖아요.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노화 현상이 어찌 그리 공감되는지요 ㅋㅋ

서니데이 2025-05-20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파과>영화 보셨군요. 저는 원작 소설은 아마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출간 초기에 앞 부분 읽고는 어딘가 두었던 것 같아요. 얼마전 영화 소개를 보니까 조각 이미지가 이런 느낌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영화 재미있으면 저도 보러 가고 싶네요.
페넬로페님, 편안한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5-05-20 22:45   좋아요 1 | URL
원작을 재미있게 읽어 영화 보러 갔어요. 원작보다는 조각 이미지가 좀 더 절제된 느낌이라 조금 아쉬웠는데 영화가 글보다는 압축적이라 그런 것 같았어요.
서니데이님도 굿밤 되세요^^

자목련 2025-05-21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지만 내용이 구체적으로 생각이 나지 않아요. ㅎ
영화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저는 OTT에 올라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신시아 배우는 <마녀2>에서 보았는데 저도 슬기로운 보다는 <마녀2>나, <파과>에서의 역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5-05-21 14:48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재미있게 주욱 읽게 되는 책은 금방 잊히더라고요
ㅎㅎ
아마 곧 영화가 ott에 올라올 것 같아요. 마녀 내용을 잘 모르는데, 한 번 봐야겠어요^^
 
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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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딱히 큰일이나 안 좋은 일이 없어도 마음이 무거울 때가 많다. 슬프기도, 아련하기도 한 이 감정은 수시로 나를 찾아온다. 어떨 땐 만개한 꽃이나 아장아장 걸어가는 어린 아이를 볼 때도 그렇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자연과 인간의 물리적 생과 사가 나를 허무하게 만든다. 무겁기에 더 가벼운 곳으로의 도약을 꿈꾸지만, 태생적 무거움은 가벼움과 상극이라 그것도 쉽지 않다.

 

그런 나에게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움은 지극히 명쾌했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이 도덕과 책임이 결여된 화자의 변명과 합리화로도 읽힐 수 있지만, 난 이 글을 그렇게 보는 사람과 다시는 상종하지 않을 각오를 할 정도로 보뱅의 글에 푹 빠져버렸다. 이 책의 모든 문장에 나를 투과해 내 삶을 바꾸고 싶을 정도였다.

 

읽으며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여러 이름을 가진 주인공 뤼시의 엄마처럼 속에서 웃음이 솟구쳐 나왔다. 그만큼 보뱅은 내 기분을 크고 좋게 상승시켜 주었다. 각 에피소드 마다 기발한 생각과 그 가벼운 마무리가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다. 그렇게 살아도 되는 인생에 우리는 스스로 너무 많은 굴레와 책임을 씌어 버린 것이다.

 

[적절한 보폭, 가볍게 존재한다는 것,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요약할 수 없는 삶,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 바로 그때가 되면 생각하는 것이다, 무성의한 익숙함, 내 마음을 통과했던 사람, 사소한 것들에 깃들어 있다, 지울 수 없는 희극적 요소, 바라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기다림 피곤 지루함으로 이루어진 투박한 삶, 감정을 넘어 선 그 너머 다른 곳, 어쩔 수 없다는 말에서 해방되고 싶다, 거리두기의 기술, 나의 그늘에 안녕을 고한다, 내 안의 가출소녀, 다른 무언가에 다다를 시간, 가끔은 일단 저질러야 한다, 이해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듣지 않으려고....]

 

이런 보뱅의 글들에 오래 머물 것 같다.

회전목마를 타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이 책이 좋고 봄꽃이 만발해 집 밖으로 나왔다. 천변 가에 활짝 핀 벚꽃에 살짝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곧 보뱅을 생각하며 나를 가볍게 만들었다.

 

요즘 산책길에서 지팡이나 워크를 끌고 혼자 걷는 여자 노인에게 달라붙는 괴물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괴물은 2명이나 3명이 짝을 지어 다니며 할머니를 감싼다. 그들은 힘없이 겨우 걷는 할머니에게 바짝 붙어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에 오라고 꼬드긴다. 옆에서 살짝 듣고 있으면 그 말들이 가관이다. 나라면 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낼 것 같은데 할머니들은 다 착하셔서 조용히 듣고 있다. 다른 사람의 가벼움을 무거움으로 만드는 사람이야 말로 천국에 갈 수 없을 텐데 정작 저 사람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보뱅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p. 68

 

내가 하는 산책길에도...

그러니 방해하지 말고 꺼져줄래?

너희는 늑대를 길들일 수 없어!]

 

이번 봄엔 매년 수백 장씩 찍는 봄꽃 사진을 찍지 말고 되도록 눈에 담자고 했지만 그래도 몇 장을 찍고야 말았다. 올해는 진달래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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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4-11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글이 너무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늘이 벌써 4월 11일이네요 막 4월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요 오늘 날씨 참 좋더라고요 주말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5-04-11 21: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오늘 공원에 가니까 벚꽂, 개나리, 진달래가 지고 있고 철쭉이 피기 시작하더라고요.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합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고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

카리나 2025-04-12 0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덕분에 접한 보뱅의 글은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가벼운 책의 무게도 좋은데...그 가벼움에 어울리지 않게 인생의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하는 글이에요.
곱씹을수록 행복해지는
가벼운 마음~
모든 것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페넬로페 2025-04-12 10:39   좋아요 1 | URL
보뱅의 책에 이제야 제대로 입문했어요.
많은 분들이 좋다고 하셨는데
왜 그런지 알겠더라고요.
어떤 삶의 방향 같은 것도 있고,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해도 조금은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위로도 받았어요.
맞아요.
곱씹을수록 행복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다른 책들도 하나씩 읽어 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5-04-19 08:50   좋아요 1 | URL
카리나님의 보뱅 리뷰도 읽고 싶어요~!^

독서괭 2025-04-12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저도 가벼운 마음 참 좋았어요! 봄꽃이 아름답네요~ 벚꽃은 주말 지나면 다 질 것 같아 아쉽습니다.

페넬로페 2025-04-12 14:39   좋아요 1 | URL
네, 정말 좋더라고요.
오늘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는데
꽃잎도 같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독서괭님
귀요미들과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

새파랑 2025-04-12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마음이라는 제목과 책의 내용과 표지까지 3박자가 완벽한 작품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보뱅을 느끼기에 최적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페넬로페 2025-04-12 18:12   좋아요 1 | URL
제목도 좋고, 책의 내용도 모두 외우고 싶을 정도로 의미가 많았어요.
다른 보뱅의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서니데이 2025-04-13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주 날씨가 계절을 앞서간 것처럼 기온이 올라가더니 다시 이번에는 추워지네요.
저희집 앞에는 금요일부터 벚꽃이 피기 시작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아쉬워요.
가볍고 즐거운 책도 좋고, 읽으면서 생각할 것 있는 책도 좋은 것 같아요.
페넬로페님,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5-04-13 22:19   좋아요 1 | URL
오늘 저는 전주에 와 있는데 하루종일 바람이 엄청 불었어요.
요즘 날씨는 정말 갈피를 잡지 못하겠어요. 벚꽃도 작년이 더 예뻤던 것 같아요. 내일은 또 비소식이 있고 꽃샘추위가 있다고 하네요.
서니데이님,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래요^^

자목련 2025-04-14 14: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보뱅의 소설, 페넬로페 님의 리뷰로 만나니 더 아름답습니다!

페넬로페 2025-04-14 15:44   좋아요 0 | URL
책 속 내용 전체가 좋아 리뷰 쓰는게 쉽지 않아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썼어요 ㅎㅎ
 
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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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도식 아파트 11층에 살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올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하늘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듯 하늘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색깔과 농도가 달라지며 구름과의 어울림도 각양각색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비 오기 전이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온통 먹구름으로 덮여있는 회색빛 하늘, 별과 달이 함께 있는 검푸른 하늘 모두 경이롭다.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 해질 무렵 노을 진 하늘의 모습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매일 나타나는 노을의 모습은 수만 가지다. 클로드 모네가 매번 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가서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가 될 정도이다. 하늘과 노을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벅차다. 그냥 쿵 내려앉는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걱정과 번뇌가 사라진다.

 

자주 생각한다. 작가란 내가 이렇게 본 세상 모든 것을 언어로 표현해주는 사람이 아닐까하고. 그저 좋다’, ‘아름답다’, ‘멋지다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언어를 창조하고 조합해 나의 감각과 느낌과 육체를 통합해주는 사람.

 

세 번째 읽은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통해 내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다가온 이 소설이 점점 언어와 문장으로 집중되어 갔다. 세상 모든 서사의 중심은 사건이 아닌 언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언어로 표현된다는 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었다. ‘한 작품을 마치면 이미 자신은 그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언어는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과 독자를 변화시킨다.

 

적절하게 표현되지 못한 말 대신 내 속에서 나온 헛되고 의미 없는 언어와 타인의 말들은 저절로 부풀어지고 딱딱한 덩어리가 되어 옹벽 속에 갇히게 한다. 기억과 감정, 심지어 내 몸 구석구석에 붙어 있어 나를 구속시킨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책을 읽는다. 작가는 그런 나의 옹벽을 조금이나마 깨부수어주는 사람이다. 그들이 쓴 문장으로, 나와 비슷한 경험의 에피소드로, 내가 사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곳의 사람들과의 공감으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럴 수 있다는, 그렇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더 많이 그래야 한다는 것으로 작은 길을 열어준다.

 

[글을 쓰려면 시간을 사유해야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먼저 나의 삶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필멸하는 인간의 짧디짧은 수명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내가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 글을 써왔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을. ‘언어라는 나의 불충분하고 때로 불가능한 도구가, 결국은 그것을 읽을 누군가를 향해 열려 있는 통로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해야 한다는 것을.

-p.340]

 

작년 한 해 동안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을 읽었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을수록 그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기능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발자크 소설이 시대를 대변하는 동시에 보편성으로까지 연결되지만 내 마음까지 움직여 주지는 못했다.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서 뒤처지거나 편승하지 못한 인간은 함몰되어 버리고 마는 적나라함을 너무 솔직히 보여줘 힘이 빠지기 일쑤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작가의 작품을 다시 하나씩 읽으면서 발자크로 인해 깨어진 소설적 감수성을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다. 한강 작가 역시 발자크와 같이 이 시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가이다. 어떨 땐 읽기가 너무 힘들다. 하지만 서술하는 방식과 결과가 다르다. 소재의 스펙트럼도 엄청 넓다.

 

회복하는 인간파란 돌은 똑같이 죽음이 있지만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슬픔의 강도가 파란 돌이 더 강했다. 그 사람이 잊히지 않아 다시는 행복할 수도, 웃을 수도 없을 것 같은 불행이 있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슬프고 힘든 내용은 다 마음이 안 좋지만, 파란 돌은 나의 소설적 노스탤지어를 가져다주어 더 그런 것 같았다.



촉촉한 함박눈이 내리던 3월초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강연을 읽었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여름의 소년들에게출간 후에와 연결되었다. 맥이 같았다.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서 살고 있는작가라는 숙명을 가진 사람의 고통이 보였다. 매번 그 질문의 모양과 내용은 다르지만 작가의 소설이 결국 사랑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좋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비와 구분이 잘 안 되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눈은 사람이 다니지 않은 모퉁이에 순식간에 두껍게 쌓여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눈을 좋아하고, 눈에 대한 표현을 기막히게 잘하는, 사주에 역마가 든 한강 작가(작가의 말)가 오랫동안 글을 많이 써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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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3-17 0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강작가님의 희랍어시간을 제일 좋아했었는데 몇일전에 소년이 온다를 읽고 생각이 바꼈습니다 ㅋ 그래도 희랍어 시간 너무 좋아요. 저도 희랍어 사간을 읽고 언어가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는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페넬로페 2025-03-17 09:45   좋아요 1 | URL
희랍어 시간은 오래 전에 읽고 이번에 재독했는데 완전 새롭게 읽혔어요. 내용도 좋았지만 글이 아름다워 계속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소년이 온다도 재독할 계획입니다^^

자목련 2025-03-17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의 글 정말 좋아요!
페넬로페 님의 글도 좋고요. 많이 많이!!

페넬로페 2025-03-17 13:01   좋아요 0 | URL
네, 좋고~~
노벨상 수상으로 더 좋아요.

전야제 2025-03-17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감수성 풍부하신 페넬로페님!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풍경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것에서 일상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느껴져요.
저도 노을 너무 좋아해요ㅎㅎ
매번 같은 시간, 같은 노을인데 말씀하신대로 다른 풍경이 펼쳐져요.
하루 일과 중에 가장 벅차오르는 시간!
한강 작가님의 글도 아름답지만 페넬로페님의 서정적인 표현들도 아름다워요.

가끔 어떤 책을 구석구석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몇번이나 읽어야 할만큼 푹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책들을 읽고 나면 정말로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더라구요.
그렇게 성장해나가는 느낌이 좋아서 모두들 독서에 빠지는 건가봐요ㅎㅎ
하물며 글을 쓰는 사람이란, 그걸 만들어내야 하니깐 얼마나 또 성장하게 될까, 부럽기도 해요!
저는 페넬로페님의 글을 읽으며 또 배우고 성장합니다^^
오랜만에 서재에 들어왔는데 너무 읽고 싶었어요.
천천히 읽어나갈게요ㅎㅎ

페넬로페 2025-03-17 22:00   좋아요 1 | URL
전야제님도 노을 좋아하시는군요.
자연은 보는 시선이나 위치에 따라 느끼는 것이 달라 보여 매번 신비로워요.
이제 조금 있으면 봄꽃이 필 텐데 기대되기도 합니다.

어느 책이건 한 번보다 여러 번 읽으면 확실히 그 의미가 깊게 보이고 느낌도 달라지더라고요.
근데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천천히 읽지를 못합니다 ㅠㅠ
특히 서재에 들어 오면 읽고 싶은 책이 두, 세배로 늘어나요 ㅎㅎ

whiterio74 2025-04-18 0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센셜안에 있는 [단편 소설 파란돌]은 한강 작가의 ‘바람이 분다. 가라‘ 의 내용 일부와 연결됩니다. 장편 소설 속 정희와 인주 그리고 삼촌의 슬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시는걸 추천합니다.

페넬로페 2025-04-18 07:3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곱세크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인경 옮김 / 꿈꾼문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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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하고 생기없는 얼굴에, ‘모형 인간(p.17)같은, 또는 ‘어음 인간‘인 76세의 <장에스테르 반 곱세크>는 고리대금업자이다. 열 살 때부터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사건들과 시련을 겪었지만, 그것을 견디고 부를 쌓은 사람이다.

곱세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유일한 것은 돈(금)이라고 여긴다. 신처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파리 사람들을 조롱한다. 그들의 허영과 거드름에 냉소를 보낸다. 피곤한 삶의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돈이 필요한 허영심 많은 인간들의 마지막에 늘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파리의 고리대금업자들은 주중의 정해진 날에 모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서로 공유한다. 그들은 이름 있는 가문들의 금융 비밀이 들어있는 ‘검은 장부(p.47)‘를 가지고 있다.


그 어떤 발자크의 소설을 읽어도 신기할 정도로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은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인간 행태가 지금 우리의 삶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미지가 주는 허상만을 좇는 현대인의 삶. 그것을 이용하고 조종해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축적하며 무자비하게 세계를 난도질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발자크가 그려내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법은 모든 것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권력은 돈을, 돈은 권력이 필요한 절대적 상황에서 그 둘은 법을 등에 업어야만 동시에 비상할 수 있다.

이웃으로 만난 곱세크와 소송 대리인 데르빌은 우정을 나누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눈다. 데르빌은 발자크 인간극의 ‘인물재등장‘ 기법으로 열네 편의 소설에 등장한다. 데르빌은 다른 소송대리인과는 달리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기에 곱세크가 ‘드 레스토‘ 집안에 가한 인정사정없는 재산 몰수로 인해 그들은 결별하게 된다.

《고리오 영감》의 등골을 빼먹고, 결국 그를 빈털털이로 죽게 한 고리오 영감의 큰 딸인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 백작 부인도 곱세크의 주요 고객이다. 그녀는 자신의 정부인 잘 생긴 놈팽이인 막심 드 트라유 백작때문에 곱세크에게 빚독촉을 받는다.

루이 15세 집권 때의 장 라스 지폐 시스템의 붕괴, 혁명정부가 발행한 아시냐 화폐의 가치 폭락으로 프랑스인들은 지폐를 불신했다. 그런 이유로 발자크 시대는 거의 어음과 채권이 유통되었고 사람들은 연금에 목숨을 걸었다. 수없이 할인되어 돌고 도는 어음은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고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파산하기 일쑤였다.

셰익스피어의 샤일록과 달리 발자크의 곱세크는 나름의 철학과 신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이 나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허상에 집착해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 한다. 그는 단지 그런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존재할 뿐이라고 한다. 마치 <오셀로>에서 이아고의 말에 잠시 혼이 뺏겨 그의 말을 인정하게 되는 것처럼 곱세크의 말에 넘어간다.

물론 그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기 직전의 곱세크와 그가 사는 집의 꼬락서니를 보면 결국 곱세크의 생각과 말이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돈을 지배한다는 오만에 사로잡힌 곱세크는 그때부터 돈에 예속되어 지옥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발자크 소설 읽기의 좋은 점은 작가가 치밀하게 설계하고, 계산한 서사와 문장들로 독자가 편하다는 사실이다. 독자는 그저 그의 글들을 읽고 묵묵히 생각만 하면 된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지,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매번 상상한다.
혹시 로또 당첨으로 나에게 돈이 많이 생긴다면
그 돈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어쩌면 난 그 돈의 노예가 되어 돈만을 좇는 전형적인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신이시여!
저에게 돈을 내려 주시어 저를 시험해보지 않으시렵니까?

[풍속에 대해서 말한다면 인간은 아무 데서나 마찬가지라네. 어디서나 가난한 자와 부자의 싸움이 있지. 어디서나 그것은 불가피하다네. 그렇다고 하면 남들에게 착취당하는 자가 되는 것보다는 자신이 착취자가 되는 편이 더 나은 게지.

-p.29


거기에서 보았던 것은 탐욕의 마지막 단계로, 시골의 수전노에게서 곧잘 그 예를 볼 수 있는 이 탐욕에는 비논리적인 본능밖에 남아 있지 않지요. 곱세크가 숨을 거둔 방의 바로 옆방에는 썩은 파이와 온갖 종류의 식료품, 심지어 뽀얗게 곰팡이가 덮인 어패류와 생선까지 있어서, 그 잡다한 악취 때문에 나는 하마터면 질식할 뻔했습니다. 사방에 구더기와 벌레들이 우글우글했지요.
_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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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3-12 0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돈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만 중요하지 않을 텐데...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기도 하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사람이 있기도 하네요 자신이 하는 안 좋은 일을 정당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5-03-12 17:52   좋아요 0 | URL
돈을 쫓기 시작하면 어떤 인간도 자유로울 수 없는게 세상의 진리인 것 같아요 ㅠㅠ

2025-03-18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5-03-17 21:52   좋아요 1 | URL
분명 일주일마다 로또 당첨자가 나오는데 왜 저만 비껴 갈까요? ㅎㅎ
지금 마음은 그렇지만 돈이 많이 생긴다면 욕심이 날 것도 같아요.

발자크 소설이 소재가 다양해 읽는 재미가 있고 생각할 것이 많아 흥미로워요^^

2025-03-18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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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뭔가 이상하고 믿기지 않아 책의 처음부분으로 다시 돌아갔다. 여기 실려 있는 아홉 편의 글이 츠바이크가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쓴 기록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작가 소개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있었다.

 

알려진 대로 유대인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브라질까지 갔었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사람이 어떻게 이런 희망적이고도 따뜻한 내용의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경쾌하기까지 하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 특별한 사람을 세상 끝으로 내몬 집단적이고도 말이 안 되는 폭력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하늘을 나는 새에게도 하느님은 먹을 것을 주시니, 하물며 인간인 너는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구절이 있다. 미래를 걱정하다가도 이런 구절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사실 효력은 오래 가지 않는다. 츠바이크의 말마따나 세계의 어느 지역에 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빵 한 조각, 맥주 한 잔, 잠잘 방 한 칸, 옷 한 벌을 얻으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돈은 절대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지 않는다.

 

걱정 없이 사는 기술에서 성경 구절대로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과서적으로 신을 믿는 삶을 사는 안톤은 한국의 홍반장(영화 홍반장’,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주인공)같은 사람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저런 사람은 가상의 세계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츠바이크가 거주했던 작은 도시에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때에 나타나 생색내는 일 없이, 문제를 해결해주고 필요한 만큼만 대가를 받는 안톤은 정직하고 욕심 없는 사람이다. 가난하지만 하루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원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게 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았던 츠바이크는 안톤이라는 특별한 사람을 만나 세상을 대하는 지혜를 배운다. 그를 통해 자본주의적 속성만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지 않음을 확신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타 할아버지에게 강남에 있는 한강뷰의 아파트를 받고 싶다는 초등학생의 대답이 현실과 세태를 반영해 씁쓸하게 느껴지지만 그 학생을 무조건 비판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톤을 통해 그 초등학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1923년 독일-오스트리아 통화인플레이션(3년이나 계속되었다.)으로 물가는 엄청나게 올랐고, 돈의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졌다. 츠바이크는 1년간 작업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인세를 받았지만 인플레이션으로 그 금액은 원고를 보낼 때 썼던 우편요금보다 가치가 적게 되었다. 전쟁을 치르고 그 후로 돈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분명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들었지만 오히려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태도는 강했다고 츠바이크는 말한다.

 

힘들지만 일상을 유지하려는 집중을 했고, 돈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삶의 오랜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29개월 동안 계속된 독일의 레닌그라드 봉쇄시기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도서관에 모여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했을 때, 인간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느꼈지만, 그것은 특수성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츠바이크는 나에게 돈이란에서 그런 나의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게 도와준다. ‘돈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의 진수를 깨닫는다는 말의 진심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내가 돈을 무시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터다. 돈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자극을 나는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모든 방문객에게 하듯이, 나는 돈에도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둔다. 하지만 돈은 방문객 그 이상은 아니다.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 ‘나에게 돈이란’, 중에서]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날, 그곳(콩코르드 광장)에서 가까운 센강에서는 수많은 낚시꾼들이 보통 때와 같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군중의 환호와 왕의 목이 바구니 안으로 굴러들어가는 역사적 순간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물에 떠 있는 찌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일화에 대해 츠바이크는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 극적인 날에 낚시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 뒤 츠바이크 역시 파란만장한 역사적 흐름을 몸으로 체험하고서야 그들의 일상을 인정하고 이해하게 된다.

 

비극이 계속될수록,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을수록 사람들은 그 자체를 잊으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공포와 괴로움에 공감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삶에 대한 인간적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소망인 것이다. 고통과 참담함에 대해 너무 몰두하다 보면 인간은 피곤해지고 그것을 감당할 여력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난국의 시대에 일상에 충실한 사람을 너무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너져가는 세계의 폐허를 계속 노려보는 대신 더 나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는 것이다.

 

202412,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사용되지 않을 허구의 단어라고 여긴 계엄이라는 말이 선포되었다. 몇 시간 만에 그것은 철회되었지만 충격적이었다. 그 말은 나라를 완전 두 쪽으로 나누었고, TV 뉴스를 여전히 장식하고 있으며 해결된 일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기함한 국민은 아직 안정되지 않은 채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이 와중에 읽은 센강의 낚시꾼은 지금의 상황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고 매일, 매시간 역사적 사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츠바이크가 말한 이 내용은 많은 상징을 가지고 있고 의미가 깊다. 다만 일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을 살기 위해 역사의 현장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폐허를 등지고는 새로운 것을 건설할 수 없다. 그것은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문제를 안겨주는 것이다. 피곤하고 지치더라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위해 집중해야 한다. 이 글의 제목처럼 어두울 때 보이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거대한 침묵, 이 어두운 시절에, 하르트로트와 히틀러에서도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나치의 모든 죄악과 폭력에 의해 강요된 침묵, 자유의 억압, 굴욕, 소설의 이야기들이 현실에 적용되는 사례들을 언급한다. 츠바이크가 조국에 대해 실망하고 억지로 그곳을 떠났지만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와는 갈라설 수 없다는 사실에 숙연해진다.

 

[그러나 작가는 조국을 떠날 수는 있어도, 창작하고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와는 갈라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독일어로 나치의 자기 신격화에 맞서 줄곧 싸워왔고, 바로 이 독일어야말로 세계를 파괴하고 인간 존엄을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범죄적 망상에 맞서 싸우는 데 쓸 수 있는,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입니다.

- ‘이 어두운 시절에중에서]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내용은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이었다. 빈에서 츠바이크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모든 학생들이 신뢰하고 좋아했던 동급생이 있었다. 어느 날, 대형 금융회사 대표였던 친구의 아버지가 사기범으로 체포되었고, 2주 동안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는다. 3주째에 접어들어 그 친구는 학교에 왔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고개도 들지 않고 쉬는 시간에는 복도 끝으로 가서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10대의 아직 어린 그들은 친구가 힘들고 외롭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선뜻 다가가 위로해 줄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방법을 몰랐던 것이고 누군가 대신 먼저 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다음날부터 그 친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그 뒤 빈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어떤 종류든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고 나의 위로가 그 사람에게 다시 상처가 될 수도 있어 주저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이 부분은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한다. 위로뿐만 아니라 사과도 마찬가지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별 것도 아닌 일에 좋은 사람을 잃는 경우도 많다. 츠바이크는 이 경험을 통해 쉽지 않지만 누군가를 돕고 싶은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하라고 말한다.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다.

 


츠바이크가 로댕을 만나 그에게서 받은 영원한 교훈은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어떤 일을 완수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평범하고 이미 아는 것임에도 새로웠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읽으며 다양한 감정이 들었고, 소설이 아닌 에세이가 줄 수 있는 직접적인 힘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가슴에 새기고 전환시켜 바로 실천해야 하는, 나에게 주는 화두도 있었다. 무엇보다 츠바이크의 글은 항상 한 가지로 귀결된다. 그가 글을 너무 잘 쓴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책은 짧은 에세이를 수록한 것이라 더 그랬다. 그의 글 한 편 한 편이 완벽해서 내가 쓰는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은 사족에 불과하다

츠바이크의 글은 그저 읽기만 하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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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5-01-13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께서 쓰신 이 글이 저에게는 ‘안톤‘같은 존재입니다.
더 잘하려고 애쓸수록 무너지는 기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요즘이었어요.
봉쇄시기에서도 도서관에 모여 책을 읽었다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이야기에 감동받았습니다.
일상을 유지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힘은 누구에게든 그렇듯이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니깐요.
하지만 말씀해주신 삶의 오랜 가치,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의 진수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 글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돈, 재산, 권력 등등 언제든 세워지고 무너지는 것들 앞에서, 나 자신은 어떠한 사람인지 돌아보고 어떠한 가치를 지켜나갈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5-01-14 09:44   좋아요 1 | URL
일상이 정말 소중한데 우리를 둘러 싼 것들에 의해 쉽게 무너지고, 집중력도 잃게 되는 것 같아요. 마음으로는 힘을 내자고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실천하기도 어려워요.ㅠㅠ
에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단숨에 읽었어요. 지금 세태를 반영하는 듯한 좋은 글들이 많았어요. 근데 책 내용이 짧아 조금 아쉬웠어요.
제 생각에는 전야제님께서 안톤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요^^

희선 2025-01-14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위로할 말은 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어릴 때는 더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무슨 말이든 별로 위로는 안 되고... 안 하는 게 나을지 뭔가 한마디라도 하는 게 좋을지... 밥은 잘 먹고 잘 자느냐고 하는 말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모르겠네요

어둡다고 안 보려고 하기보다 뭔가 보이는 걸 보려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못할 것 같기도 하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5-01-14 09:49   좋아요 0 | URL
위로하는 말, 정말 쉽지 않죠. 상황에 따라 적절한 문장을 찾기도 힘들고요. 츠바이크가 말한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하란 것이 의미있게 다가왔어요.

어두울 때, 분명 보이는 것이 있고, 그것을 보려고 해야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은 진리인 것 같습니다.
희선님, 한 주가 시작되었어요.
건강하고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래요^^

새파랑 2025-01-14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는 소설도 좋은데 에세이도 좋군요. 역시 글잘쓰는 사람~!!

저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5-01-14 09:51   좋아요 1 | URL
역시 츠바이크는 글을 잘 쓰는 작가임을 확인했습니다. 이 글들이 짧은 에세이라 더 임팩트가 있더라고요.

새파랑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요^^

그레이스 2025-01-14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가 마지막 인사하던 글귀 넘 인상적이었어요.

페넬로페 2025-01-15 21:07   좋아요 0 | URL
네, 저도~~